권두언
노동자를 위한 법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는 세상인가?
- 제3자 개입금지에 대한 회고 -
김도형 / 한노정연 이사, 변호사
지난 1월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 8부는 1994년 민주노총
설립이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던 때에 전국노동자대표자회의
공동대표 자격으로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현장에 찬조연설을
하였다는 이유로 노동쟁의조정법상 제3자 개입금지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권영길 국회의원에게 벌금 1,500만원의 유죄를
선고했다.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노동탄압국이라는
악명을 떨치게 된 대표적인 악법 조항이었고, 악법에 굴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의 성과에 의하여 결국 1997년 3월
13일 새로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을 제정하면서 옛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금지 규정을 전면 삭제하고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와 관련하여 노사가 외부의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그 규제범위를 완화하여 제3자 개입에 의한
형사처벌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었었다는 것은 다들 잘 알고
있는 사실일 터이다.
그럼에도 법원이 옛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을
여전히 적용하여 권영길 의원에게 유죄를 선고한 법적 이유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을 제정하면서 부칙 제10조에서
“이 법 시행 전의 행위에 대한 벌칙의 적용에 있어서는 종전의
규정에 의한다.”라는 경과규정을 두어, 노동쟁의조정법이
폐지되기 이전의 제3자 개입금지에 위반된 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실정법상으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렇지만 옛 노동쟁의조정법의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폐지된
이상 더 이상 옛날 법 의하여 형사처벌을 할 수 없어야 하는
것이 원칙인 바, 표현의 자유와 외부의 조력에 의하여 단결력을
강화할 수 있는 노동3권을 침해하여 부당하게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탄압한 악법이라는 시대적 반성에 따라 폐지한
것이므로 법 폐지 이후의 형사처벌은 더욱이 허용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권∙두∙언
따라서 폐지된 제3자 개입금지 규정에 의한 형사처벌을 여전히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부칙 제10조는 잘못된 법을 폐지하였을 때에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과거 제3자
개입금지 규정에 의한 부당한 노동탄압에 대한 시대적 반성을
부정하는 교묘한 독소 조항으로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정 당시부터 문제가 있는 조항으로 지적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이
개정되었음에도 그 과정에서 위 부칙 조항의 개정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이 번 권영길 의원 사건에서 제3자개입금지라는 유령이
죽지 않고 떠돌게 만들었다고 할 것이다. 정말 악법은 그냥
사라지지 않고 10년이 지나도 그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권영길 의원에 대한 이번 법원의 판결은 10여 년 전의 시절을
새삼 뒤돌아보게 해 주었다. 당시 제3자 개입금지는 그야말로
노동운동 탄압의 대명사였으며 민주노조 설립에 투신한
노동자들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데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였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시절에 제3자
개입금지라는 탄압을 뚫고 이루어낸 것이 민주노총의
설립이었다. 그것은 법을 무시하고 투쟁한 결과였다. 악법은
절대 법이 아니고, 노동법이라는 것 자체가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자본의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노동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법 타령이 난무하고 있다. 투쟁이 아닌 법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자를 위한 법이
만들어질 수 있다니 정말 세상이 좋아진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세상의 실체는
노동자를 위한 법이 제대로 만들어질 수는 없는 세상인 것 같다.
그런데 투쟁에는 손을 놓고 노동자를 위한 법이 만들어지는 저
편한 세상을 꿈꾸고만 있으니, 보수세력들로부터 노동귀족이라고
매도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투쟁을 하지 않는
노동운동이 귀족적으로 비쳐질 것은 당연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인 투쟁만이 살길이라고 외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투쟁과 함께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하고자 할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내기 위해선 비정규직 보호가 아닌 철폐를
위한 투쟁과 함께 해야만 그 산물로 제대로 된 비정규직
보호법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10년 전이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고 동참하려고 해도 제3자 개입금지
때문에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만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이런 점에서는 정말 세상이 좋아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외면한 채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은전(?)을 베풀어 보려고 궁리만 하니
노동귀족이라고 매도당하는 것이 아닌가?
제3자 개입금지라는 악법이 어떻게 해서 없어질 수 있었는지를
새삼스레 되새겨보면서, 지금도 투쟁의 현장에서 노동자를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혹시나 법 타령에
빠져들지는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우 속에서, “예전에는 변호사
같지 않았는데 요즘은 변호사처럼 보이네요”라는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의 말에 씁쓸히 웃으면서 법으로 밥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 자 적어보게 되었다.권∙두∙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