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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이란 어떤 법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12호
이원희

특 집 2

노동운동과 노동법, 그 이론과 역사

노동법이란 어떤 법인가․이원희

노동법 개정투쟁 10년, 그 의의와 한계 ․김종배

브라질 노동법 개정 과정에서 본 시사점․오삼교

자료 : 노동법 개정안 대비표


노동운동과 노동법, 그 이론과 역사
명동성당을 뜨겁게 달구었던 투쟁의 열기는 이제 민간대기업 투쟁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고, 노개위를 매개로 한 정부와 자본의 ‘신노사관계 구상’은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개정과 개별적 노사관계법의 개악’을 그 윤곽으로 하면서 다시 공세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투쟁 전선을 극대화하고 상반기 투쟁의 총괄적 평가를 준비하면서 동시에 다가오는 노동법 개정투쟁을 그것도 대단히 ‘긴장된 자세’로 준비해야 할 상황에 민주노조운동은 직면하고 있다.

7월호 특집 2 「노동운동과 노동법, 그 이론과 역사」는 노동법의 개념과 노동법 개정투쟁의 역사, 외국의 투쟁 사례 등을 점검하면서 다가 올 노동법 개정투쟁을 위한 기초작업 차원에서 기획하였다.
우리는 이번 특집을 기획하면서 이 분야에 대한 노동운동진영의 성과가 이론․정책적으로 대단히 미흡함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안고 가야 할 과제라는 점 또한 분명하게 확인했다. 참고로 자료로 실린 ‘노동법 개정안 대비표’는 민주노총에서 작성한 것을 게재하였다.
8월호 특집은 ‘상반기 투쟁 평가’를 주제로 잡았다. 우리 노동운동에서 96년이 갖는 의미, 상반기에 나타난 투쟁과 조직의 특징, 주요하게 제출된 요구 및 이론․정책적 쟁점 등을 정리하면서 상반기 투쟁의 총체적 상을 그려보고 이로부터 제기되는 과제를 정리해 볼 예정이다.


노동법이란 어떤 법인가


이 원 희 (연구위원, 아주대 교수, 법학과)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우리가 문제삼는 노동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법’으로서 사회의 역사적 발전단계의 차이를 무시한 단순한 ‘노동에 관한 법 일반’이 아니다. 오늘날의 노동법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생성․발전해 왔던 법으로서 일정한 역사적 과제를 담당하는 것이다.
이념적인 의미에서 말하면, 노동법은 노동기본권의 전개로서의 법체계이다. 즉 노동법은 자본주의적인 노동관계를 규율대상으로 하며,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의 요구를 승인하는 입장에서 규율해 가는 법이다
종래 노동법은, 예를 들면 “노동법의 대상을 이루는 노동은, 노동일반이 아니라 종속노동이다”라든지, “노동법의 기초는 종속노동관계”라고 하는 바와 같이, “종속노동”(die abhängige Arbeit) 내지 “노동의 종속성” (die Abhängigkeit der Arbeit)을 기초로 개념지어 왔다. 즉 노동법은 사용자에 대한 종속관계에 있는 노동자를 자각적으로 다루고, 노동의 종속성을 초래한 것이 자본제 노동관계를 유지하는 시민법 원리 자체에 있다는 인식에 입각하여, 시민법에 어떤 수정을 가함으로써 노동자의 생존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노동법은, 노동자의 단결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실질적 근거로 하여 성립하고, 또한 노동자의 생존권 실현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법이라는 점에서, 독자적 성격을 갖는다. 개인의 자유에 최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생활질서의 보장에 관해서는 직접 배려하려고 하지 않았던 시민법에 대해서 이러한 노동법의 출현은 일정한 변혁적 의의를 담당하는 것이다.

2.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노동법’과
‘자본주의법으로서의 노동법’

규율대상 및 이념의 두가지 면에서 접근하는 것은 우리 노동법학의 전통적 견해였다. 이 견해에서 보면 규율의 대상은 동일한 자본주의적 노동관계라도 이러한 의미에서의 노동법과 규율의 원리 내지 이념을 달리 하는 법의 경우에는 단순히 그것들을 ‘노동법’으로서 동일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노동관계를 규율하는 것이라도, 예를 들면 나치스 독일에서의 ‘국민적 노동질서에 관한 법’(1933년)과 같은 것에 관해서는 이것을 그대로 ‘노동법’이라고 부르기에는 주저되는 것이 보통이다(노동탄압법, 노동악법이라는 말은 쓰더라도).
역사적으로 생성한 노동법의 방향이 그러했던 것처럼, 노동법을 시민법에서의 형식적인 자유평등을 실질화시키려고 하는 것이거나 사회정의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서 다루고, 그것에 역행하는 파시즘의 법은 규율대상 측면에서 노동법의 이름을 쓰더라도 실질적으로 그렇지 않은 것이며, 이것을 노동법으로 부르는 것은 파시즘을 옹호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된다. 노동법 원리의 발전을 촉진한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생각에도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러나 노동법학의 연구대상이라고 하는 관점에서 보면, 나치스 노동법을 그 범위 밖으로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노동법이 생성된 후에도, 자본주의는 어떤 조건에서 이념을 달리하는 노동관계의 법적 규율을 만들어 내는가, 그 법은 노동관계 또는 나아가 사회전체에 어떠한 작용을 미치는가, 그것은 어떠한 조건에서 없어지는가 하는 등의 문제를 연구하는 것은, 노동법 이념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법이라고 하는 것 중에 그 이념을 완전히 달리하는 것이 있음을 명확하게 하면서 그 양자를 규율대상의 동일이라는 점(자본주의적 노동관계)에서 통일시켜 보고 이것을 또 하나의 노동법 개념으로 묶는 것도 유익하다.
그래서 규율대상과 이념의 두가지 측면에서 정의한 것을 통상의 노동법(‘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노동법’)으로 하고, 그 이념과 관련해서 ‘노동자적 요구가 낳는 합리적 근거를 승인하는 입장에서 규율해 가는 법’이라고 하는 부분을 ‘노동자적 요구에 대처하여 (이것을 인정하든, 억압하든) 규율해 가는 법’으로 확장한 것을 ‘자본주의법으로서의 노동법’(광의의 노동법 개념)으로 불러 둔다.
‘자본주의법으로서의 노동법’에는,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노동법’과 달리 인권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기본권에 반하며 치안차원에서 다루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며, 나아가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노동법’도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것으로 변화될 위험이 있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다.

3. ‘체제관통적인 노동법’ 또는 ‘현대의 법으로서의 노동법’

또한 자본주의와 역사적 발전단계를 달리하는 사회에 관해서도, 그 노동관계를 규율하는 법도 ‘노동법’으로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사회주의국가의 ‘노동법’도 노동법 개념에 포함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주의권의 국가를 포함하는 ‘노동법의 국제성’, ‘노동법 개념의 보편화’에 유의하고, ‘제2차 대전 후, 반파시즘 전쟁과 레지스탕스 속에서 보편적인 것으로서 승인된, 인권사상의 핵심인 인간의 존엄 Human Dignity-시민적 인권도 사회적 인권도 그것에서 유래한다(국제인권규약, A 규약 및 B 규약 참조)-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세계 각국의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를 규율해야 하는 실정법을, 널리 노동법의 개념에 포섭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것은 법이념의 보편성에 착안한 것으로서 특히 통일 후의 노동법을 염두에 둘때 유용한 개념이다. 이것은 체제의 차이를 넘어선 노동법의 개념을 시도하는 것으로서 현대에 있어서 특히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것을 ‘체제관통적인 노동법’ 또는 ‘현대의 법으로서의 노동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개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을 언급할 수 있다.
첫째는, 법의 규율대상인 노동관계의 성질, 따라서 그곳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동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법이념의 동일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원래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노동법이 생긴 것도, 노동관계에서 시민법의 자유평등이 형식적인 것에 머물고 노동자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자유․평등을 실질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러한 노동자의 고통과 모순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의 사회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을 수 없으며, 고통을 낳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서 구조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요구였다. 그래서 사회주의 노동법도,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노동법과 법이념-입법자의 정책의도는 별도이기도 하나-을 같이 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국제적으로 인권규약의 승인 등으로 인간존엄의 법이념 아래 실정 규범이 되어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법 역시 동일한 노동법 이념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둘째로, 이것은 또한 법이념을 달성하는데 어느 쪽이 보다 뛰어난가 하는 검토, 즉 권력의 성격 변경을 포함한 광의의 입법론, 또는 법의 변혁이 관계되는 과제와도 관련될 것이다. 그것은 현대의 역사적 과제이다.
셋째로, 위와 같은 관점에서 보아 노동기회, 노동조건 보호의 문제와 함께, 자본주의국가와는 문제의 성질이 다름에도 불구하고(예를 들어 단체교섭, 따라서 그것에 수반하는 쟁의행위의 기능은 크게 변할 것이다), 사회주의에서의 단결권의 문제는(특히 정당과의 관계에 있어서 단결자치나 조합민주주의의 문제를 포함하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윤추구를 근본 동기로 삼는 자본주의는 전쟁조차 이윤획득의 기회로 삼기도 한다. 사회주의는 원리적으로 이러한 이윤획득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노동자 또는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의 요구에 대해서, 보다 큰 가능성을 펼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도 현대의 자본주의와 생산의 기술적 기초를 같이 하는 까닭에, 노동자의 종속이 지양되지는 않는다. 또한 일부의 특수 이익, 관료주의의 증대라는 문제는 경제구조가 변화하더라도 여전히 남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어떠한 사회주의 노동관계, 노동법을 만들어내어야 하는가의 탐구는 자본주의의 극복이라고 하는 과제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문제이다.

4. 시민법과 노동법 - 노동법의 법체계상 지위

자본주의의 일정한 시기에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노동법’은 그 이전의 이른바 시민법과는 다른 새로운 법이념을 갖는, 독자적인 법분야로서 형성되어 왔다. 그러면 이들 ‘노동법’과 시민법은 어떠한 관계에 있을까.
이른바 시민법에 있어서는, 그 이념으로서 자유․평등이 주장되고 노동관계에서도 계약자유가 대원칙이 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품 가치의 실체를 형성하는 것이 추상적 인간노동이라면, 인간이 신분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롭게 노동력 거래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것, 따라서 법 아래의 자유․평등은 그 시대의 법이념이었다. 그러나 가치법칙의 작용은, 한편으로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는 경향을 갖는다. 그래서 생존을 위협받는 노동자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요구와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도 또한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운동 속에서 노동기본권적 의식이 나오고, 그것이 드디어 실정법상 권리로 인정되게 되었다. 이것이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노동법이었다.
그런데 이 노동기본권적 의식 내지 그 이념을 생존권 또는 인간존엄, 즉 노동기본권 이념이라고 불러 두면, 그것이 일정한 시기에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법 이념으로 된 것은 그 사회 자체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었다.
첫째로 이념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시민법의 자유․평등 이념이 형식적인 것에 머물러서 여러가지 사회적 폐단을 발생시킨 것에 대하여, 자유평등의 그 실질화를 목표로 하는 것이며, 따라서 오히려 자유평등 이념의 사회적 현실에 따른 발전이고, 그 내실화이며 이념적인 면에서 서로 용납되지 못하는 이질적인 것은 아니다.
둘째로 경제적인 면에서 말하면, 이러한 이념에 입각한 단결권은 총체적인 거래에서 나타나는 노동력의 가치를 보다 인간다운 생활의 보장으로 높이고, 또한 개별적인 거래에서도 그러한 노동력의 등가교환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단결권의 작용은 가치법칙의 부정이 아니라, 이 법칙을 일정한 형태 -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의 요구에 가능한 한 접근한 형태 - 에서 작용하게 함에 있다. 즉 당장은 자본의 이윤을 억제하는 것이라도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파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이 높은 노동력의 확보는 자본주의의 합리적 발전의 한 조건이기도 하다.
또한 셋째로 정치적인 면에서, 한편으로 사회주의라고 하는 경쟁자가 출현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파시즘이라고 하는 자본주의의 최악의 형태를 경험한 노동자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동의, 나아가서 협력을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제 조건에 따른 요구-이것은 국제적 민주세력의 요구이기도 했다-에 대한 일정한 양보가 필요해진다. 그 양보를 하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적 안정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다른 자본주의 국가로부터, 공정 경쟁의 요구가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전에 단결을 범죄시했던 태도에서 이른바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단결을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으로 인정하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로서 가능하며 필요한 선택이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법은, 일정한 조건에서 생존권, 즉 노동기본권 이념에 의한 권리보장을 확보하더라도, 노동자가 실질적 국가권력의 주체가 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노동법은 동요하는 국가권력의 안정, 그리고 그 안정된 상태에서의 필요한 노동의 확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권력이 자본의 이익을 첫째 기준으로 삼지만, 노동관계를 어떻게 규율하는가, 노동자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으로서 인정하는 가는, 그 이익을 장기적 시야에서 도모하려고 하거나 또는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가 등에 따라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법에서 표방되고 승인되는 노동법 이념과 그 입법을 행하는 국가권력의 구체적 정책의도와는 항상 상반될 가능성을 지니며,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 아래에서도 끊임없이 노동법을 둘러싼 투쟁이 일어나고, 또한 때로는 그 이념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힘이 발생하는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5. 나오는 말 - 법의 한계와 법의 변화

생존권 또는 인간의 존엄, 즉 노동기본권 이념에 입각하는 노동법도 직접 자본주의 경제의 테두리나 따라서 그것에 작용하는 가치법칙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그 노동법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을 넘어서서 때때로 자본주의법의 한계로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는 것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다.
‘단결의 법적 인정은 노동운동에 의한 자본주의의 극복까지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는 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요구에 양보를 하고, 노동운동을 자본주의의 테두리 내에 묶어두고, 그것을 통해서 자본주의 자체의 유지 발전을 도모하려고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현명’이 낳은 노동법의 문제이다.
단결의 법적 인정에 관해서, 입법자의 정책의도는 이러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현실적인 노동법이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단결권의 보장이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는 운동에 한계를 두고, 자본주의를 성역화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예를 들어 폭력의 행사는 인정되지 않지만, 노동운동이 노동자의 참정권, 표현의 자유 등을 행사하여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국민주권의 행사일 뿐이다.
‘법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라는 점에서, 자본가 계급에 경제적으로는 종속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계급적 대항관계를 부정당한 평등한 노동자상이 필연화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는 공장이나 사무소에서 자본의 힘과 싸우지 않으면 안될 뿐 아니라, 권력에 대해서도 대항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자가 국민으로서 법적, 형식적으로 ‘대등한 정치주체’이면서도, 실제로는 경제적인 불평등을 기초로 정치적 불평등이 존재하는 한, 행위 자체로서는 정당한 (폭력의 행사 등이 아닌) 단체행동을 통해서 그 실질적 시정을 도모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것은 정치에 있어서의 법적, 형식적인 ‘법 아래의 평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식적인 법 아래의 평등한 권리를 전제로 하여, 그 권리의 내용을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노/정/연

1996-06-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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