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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가고 있는 ‘문민정부’의 경제정책
 96 하반기 경제운용 방안의 논리.논거에 대한 임금문제를 중심으로 한 비판

현장에서 미래를  제12호
채만수

정 ․ 세 ․ 초 ․ 점

막가고 있는 ‘문민정부’의 경제정책
’96 하반기 경제운용 방안」의 논리・논거에 대한 임금문제를 중심으로 한 비판


채 만 수(부소장)


지난 7월 2일에 확정・발표된 김영삼 정권의 ‘하반기 경제운용 방안’(‘방안’)은 김영삼 정권의 계급적 기초와 정책 기조가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그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신보수주의’라는 최근 10여 년래의 세계적인 추세에 편승하여 드디어 노골적으로 막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발표된 경제상황 진단은 모순적인 정치적 수사로 장식되어 있다. 그것은 한편에서는 “지난 6개월간의 경제운용은 경기를 연착륙시키는 데는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으나...” 운운하여 정권의 ‘경제운용의 성과’를 자찬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최근 우리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며 이 “어려움을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더욱 경쟁력 있는 체제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날 발표된 ‘방안’은 사실은 금년 ‘하반기’만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본질적으로 중장기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들인데, 그 내용에서 명확히 하고 있는 것처럼, ‘자본에게는 최대한의 금융적 기타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그리고 ‘노동자에게는 고통과 억압을!’이 앞으로 자본과 정부가 합심하여 기울일 ‘총력’이다.
이번 ‘방안’의 지도 이데올로기나 논리・논거를 비판하기 전에 우선 자본한테 베풀 ‘총력’을 보면 그것은 정리해고제의 확대, 근로자 파견제 및 변형근로제의 법제화 등 노동에 대한 사적 자본의 통제력의 강화, 신규 건설 참여라는 통로를 통한 공항・항만・도로・철도 등 각종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독점자본의 소유 및 경영의 지배 확대와 그 건설을 빌미로 한 내외 금융 편의・특혜의 확대, 자본의 투자 및 영업활동에 대한 각종 세금의 감면・공제의 확대, ‘전략 업종’의 대대적인 선정 및 지원 강화, 나아가 담배인삼공사 등 수익이 보장되는 국영기업 및 공영기업의 사유화 등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특혜와 지원이 총망라되어 있다.
자본에 대한 국가권력의 이러한 총력 지원 자체가 엄밀히 말하면 노동자 계급 일반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에 자본과 정부가 노동에 베풀 ‘총력’ 자체를 따로 열거할 필요는 없지만, 정리해고제의 확대, 근로자 파견제 및 변형근로제의 법제화 등 노동에 대한 사적 자본의 통제력 강화는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신노사관계’의 핵심적 의도와 관련하여 특히 상기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산업연수생’의 ‘연수기간’ 연장 및 추가 ‘도입’ 방침에 대해서도 그것이 갖는 특별한 의의가 환기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부터 출발하자.

1. 어느 하나도 진실이 아닌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 제도’

보도에 의하면 ‘방안’은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의 연수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연내 1만명을 추가로 도입해 수출 비중이 30% 이상인 중소기업에 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둘러싼 최근의 정치・사회 정세를 감안할 때 정부 당국의 이러한 발표는 우리를 전율케 하기에 충분하다.
현재 국내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상태는 극도로 열악하고, 그 일부는 고대 로마나 지난 세기에 미국의 악질적인 노예농장에나 있었음직한 가히 살인적인 노예상태, 노예노동 그것이다. 이러한 노예상태는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 자신 및 그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지원하는 노동운동단체들 및 진보적인 시민운동단체들의 투쟁에 의해서 그 실상의 일부가 폭로되고 있고, 당국이 ‘연수생’ 운운하던 그날도 명동성당에서는 그러한 노예상태에 항의하는 외국인 노동자 등의 농성과 그에 대한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및 경찰 등의 포위・감시가 20여 일째나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한 정세 속에서 정부 당국이 그들을 가리켜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이라고 부르고 그들의 노동과 생활을 ‘연수’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조금의 수치(羞恥)도 모르는 철면피한 작태인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을 제정하라는 요구를 외면하고 억압하면서 ‘연수기간 연장’이니 ‘추가 도입’이니 할 수 있다니! (이러한 경우 인력의 움직임에 대해서 대개는 ‘유치’(誘致)라는 표현을 쓰고, 또 정상모리배 등의 그것에 대해서는 심지어 ‘영입’(迎入)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비교할 때, ‘도입’이라는 용어도 당국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비하하고 있는가를 엿보게 해준다.)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 제도’와 그 확대를 통해서 자본과 정부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노리는가?
말할 것도 없이 부불잉여노동(不拂剩餘勞動)의 극대의 착취이다. 그러나 그러한 착취의 극대화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에만 한정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명백히 오류이다. 자본과 정부는 외국인 노동력 수입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국내의 임금 수준을 억누를 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임금이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의 임금에 비해서 월등히 높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제시하는 ‘통계’를 감성적으로 확증하는 것으로서,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학대와 극한의 저임금을 통해서 그 확증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다 ꠏꠏꠏ “이렇게 학대하고 저임금을 줘도 지들 나라에서보다 돈벌이가 좋으니까 모여 들지 않느냐?!” 하고 말이다. 그들의 그 다음 말이, ‘방안’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고임금 등 고비용 구조 개선’인 것은 우리가 보고 듣는 대로이다.
그러나, 한국의 그러한 상대적인 ‘고임금’ 신화는 그렇게 환률 환산에 의한 ‘통계’에 의해서 증명되고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의 ‘도입’과 학대를 통해서 확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환률로 환산한 크기로만 보면 한국의 임금이 대개의 동남아 국가들의 그것에 비해서 월등히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동남아 국가들의 그 낮은 임금으로 어쨌든 그 나라에서는 생계를 꾸려갈 수 있지만 그 임금으로 한국에서는 생존조차 유지할 수 없는 것도 동시에 사실이다. 말하자면, 임금은 사회・문화・경제적 제조건과 관련한 노동력의 재생산비이기 때문에 고임금 혹은 저임금 문제는 단순히 환률 환산하여 수평적으로 비교할 성질의 것만은 아닌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의 평균임금이나 그에 가까운 임금을 받을 경우, 우선 그들은 한국 생활에서 한국의 노동자들에 비해서 사회적 문화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ꠏꠏ 육체적․정신적 긴장은 더 크고 그에 따른 소모는 클지언정 ꠏꠏ 정상적인 사회적 문화적 생활에 따른 비용이 절감되고 그렇게 해서 모은 돈을 자국 돈으로 환산할 때 상당한 액수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이 ‘고임금’ 신화의 가장 기본적인 실체이다. 그리고 이 관계는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 또는 미국과 일본 등과의 관계에도 동일하게 존재한다. 즉, 한국에 동남아 국가들의 노동자들이 ‘고임금’에 이끌려 오는 것처럼, 미국과 일본 등에 한국의 노동자들이 ‘고임금’에 이끌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환률 환산한 임금의 차이만큼 동남아 국가들의 노동자들에 비해서 잘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일본이나 미국의 노동자들이 그 임금 차이만큼 한국의 노동자들에 비해서 잘 사는 것도 물론 아니다.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발전단계의 차이와 그에 따른 생활 문화, 조건의 차이를 반영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회’를 노린 노동자들의 그러한 이동의 이면에 있는, 그들을 노린 많은 브로커들의 기만과 사기, 그들이 조성하는 환상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을 직접 고용하는 중소기업과 정부 그리고 대개의 제도 언론은 ‘노동력 부족’이나 심지어 소위 ‘3D 기피’를 들어 외국인 노동력의 수입과 그들 노동의 착취를 합리화하고 한국 노동자들의 ‘나태’, ‘호사’를 질타한다. 그리고 그들의 강력한 선전력으로 이 또한 ‘신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 ‘노동력 부족’이나 ‘3D 기피’의 실체는 무엇일까?
이번 ‘방안’을 확정한 지난 2일의 청와대 확대 경제장관회의에서는 대통령 스스로 “경기양극화의 해소에 미흡”했다면서 그것을 “해소하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하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경기양극화’란 독점재벌의 지배력 확대에 밀려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중소기업의 곤경・위기와 도산를 표현하는 음어(陰語)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곤경과 위기에 따라 중소기업의 노동조건과 임금조건 역시 극도로 열악해졌고, 저임금, ‘장래성’의 부재 등등이 중소기업의 별명으로 되어 있다. 중소기업의 이러한 열악성을 반영하여 노동력 취업구조에 뒤틀림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여러 가지 이윤 동기와 정치적 동기에서 독점 재벌을 위시한 대자본들은 전반적인 사회분위기를 퇴폐・향락 쪽으로 몰아가고 그를 위해 향락 서비스 부문에 일정하게 일자리를 조성한다. 이것이 이른바 ‘노동력 부족’, ‘3D 기피’의 구조이고 실체이다!

2. 다시 ‘고임금’ 문제에 대해서

보도를 보면, 이번의 ‘방안’을 마련하고 확정하는 데에는 최근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국제수지 적자의 문제나 일부에서 일고 있는 경제위기론 등과 관련해서 경제의 이른바 ‘고비용 저능률 구조’가 주요하게 주목되고, 그 중에서도 특히 ‘고임금’의 해소가 주요한 정책의지로 되어 있다. “이날 발표된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은 ‘고비용 저능률’ 가운데 ‘고비용’ 쪽에 지나치게 치중돼” “고임금・고금리・고지가・고물류비용 등 4대 고비용 요인 가운데서도 고임금이 최대 문제아로 지목”됐고, “나 (웅배) 부총리는 물가불안과 경상수지 적자의 근본원인으로 ‘임금의 급격한 상승에 따른 기업경쟁력의 약화’를 가장 먼저 뽑았다”(ꡔ한겨레신문ꡕ 96. 7. 3.)는 것이다. ‘고임금’ 혹은 ‘임금의 급격한 상승’의 주요 근거란 것은 재정경제원 등이 제시하는 ‘임금 관련 지표들’인데, 보도에 따라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94년의 제조업 임금이 지난 85년의 3.8배로 올라 선진국은 물론 경쟁 개도국의 임금상승 속도를 훨씬 앞질렀다 ... 같은 기간에 미국은 1.3배, 일본은 1.2배, 대만은 2.4배 오르는 데 그쳤다...
“국내 제조업 근로자가 94년에 받은 연간 임금은 1인당 국민총생산(GNP)의 1.80배로, 미국의 1.02배, 일본의 1.28배, 대만의 1.2배 등에 비해 비율이 높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인건비가 부가가치 생산액에서 차지한 비중이 제조업 평균 47.7%로 매우 높아 경쟁력을 저해했다...” (이상, 「우리임금 정말로 높은가ꡕ, ꡔ한겨레신문ꡕ 96. 7. 4.).

이러한 이른바 ‘임금 관련 지표들’에 대해서 관련 ‘지표들’을 가지고 반론을 전개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통계의 이니셔티브를 자본과 국가측에서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논리・논거나 부분적인 ‘지표들’을 들어 그들 주장을 허위를 파헤칠 수밖에 없는데, 우선 위 ‘지표들’은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94년의 제조업 임금이 지난 85년의 3.8배로” 올랐음에 비해서 “같은 기간에 미국은 1.3배 ... 오르는 데 그쳤다”는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물가상승률을 제(除)한 실질임금’의 상승 배수일 터이다. 그런데 먼저,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85년에서 94년 사이에 1.3배 상승’한 것이 아니라 ‘70년대 말 이래 94년 말까지 약 20% 정도 하락했다’는 것이 오늘날 광범위하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의 제시는 한국 임금이 더 한층 급상승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이 제시하는 ‘통계’니 ‘지표’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구적인 숫자놀음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의 비근한 예는 ꡔ한겨레신문ꡕ이 96년 7월 4일에 보도하고 있는 ‘정부 발표 전국 물가지수’와 남대문시장(주)가 조사하여 발표한 남대문시장 물가의 다음과 같은 비교표이다.


지수물가와 남대문시장 물가 비교 (상승률, %)
품 목
전국 지수물가
(95.6~96.6)
남대문시장 장바구니 물가
(95.7초~96.초)
품 목
전국 지수물가
(95.6~96.6)
남대문시장
장바구니 물가
(95.7초~96.초)
갈치
21.6
46.6
마른멸치
42.6
200.0
배추
36.6
133.3
상추
62.6
200.0
마늘
-25.9
100.0
돼지고기
-9.9
-25.0
쌀
21.0
22.2
김
0.9
40.0
양파
65.2
73.9
두부
4.0
0
화장지
5.4
51.6





위 표는 정부나 자본가 단체들이 제시하는 ‘통계’니 ‘지표’니 하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밝혀주는 때마침의 자료이다. “정부의 물가지수는 서울을 비롯한 전국 32개 도시의 매달 평균물가를 나타내는 것이어서 어느 특정 시장과 시점의 물가와 막바로 비교할 수 없다”는 등의 반론을 폈다지만, 구차하기만 할 뿐이다.
연간 임금 대 1인당 국민총생산의 비율이라든가 ‘부가가치 생산액에서 차지한 인건비’ 비율에 관한 ‘지표들’도 대개는 위와 같은 숫자놀음에 불과할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재경원 관계자가 “임금이란 기본적으로 노동력의 가치와 동일해야 하는데도 가부장적인 사회구조 때문에 가족 전체를 부양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노동자들이 요구하고 있다”며 “이런 임금 요구방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 산업의 대외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ꡔ한겨레신문ꡕ 같은 곳 참조), 그의 ‘노동력의 가치’ 개념은 전적으로 비사회적인 것이고, 사회구조가 ‘가부장적인’ 것의 책임조차 노동자들에게 묻고 있다.
정부가 작성하고 제시하는 숫자놀음으로서의 통계와 지표가 어떠하든, 동남아 국가 등과 수평비교된 환률환산 임금의 상대적 크기가 어떠하든, 우리 사회의 노동자 평균임금은 ‘노동력의 가치’ 혹은 ‘노동력의 재생산비’의 하한에 가까운 선에서 결정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의 임금의 결정은 임금이 철저히 그러한 선에서 결정되도록 하는 기구와 운동 속에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향한 노동자계급 내부의 경쟁은 언제나 높은 긴장도로 지속되어 왔고, 임금의 크기를 둘러싼 노자간의 투쟁은 언제나 국가권력과 유착한 자본의 압도적 힘의 우위가 보장되어 왔지 않았던가? 노동자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신장되어 있다고 하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의 정세도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자본의 압도적인 힘의 우위가 지속되는 그것 아닌가?
게다가 깊은 본질에서 국가권력을 그 수중에 쥐고 있는 자본은 노동자계급의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승리조차 곧바로 무(無)로 돌려버리는 제반의 정책수단을 운용하고 있고, 실제로 그를 통해서 그렇게 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구가 그 대표인데, 위와 같은 숫자놀음은 사실상 그 인플레이션의 실상을 은폐하고 조작한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보도(예컨대, ꡔ한겨레신문ꡕ 같은 곳)된 바, 정부와 자본의 ‘고임금’과 그로 인한 ‘경쟁력 저하’ 주장에 대한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소위 ‘생산성 임금론’적 반론은 유감스럽게도 철저히 잘못된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반론을 그러한 논리와 논거로 조직하는 것은 조작된 통계와 기만적인 논리에 놀아나는 것이고, 이른바 ‘노동경제론’ 등을 내세우면서 노동자의 이익을 옹호하는 체하지만 사실은 자본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위장된 진보이데올로그들에게 농락당하는 것이다. (이른바 ‘생산성임금론’이란 것이 얼마나 기만과 모순에 찬 허구인가에 대해서는 내가 연전에 썼던 「‘생산성임금제’론 비판ꠏ‘생산성임금제’론의 허구성 및 기만성 해부ꠏ」, ꡔ경제사회연구ꡕ 제1권 제1호 [1993년 7・8월], pp. 63~111이 있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계급의 과학으로 무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한국의 노동자들의 실제의 평균적 임금이 ‘노동력 재생산비’의 하한에 가깝다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자본의 이데올로그들측으로부터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자계급의 ‘진보적인 활동가들’ 내부에서조차 ‘절대적 빈곤’의 대체적인 해소니 ‘실질임금’의 상승이니 하는 것들을 들면서 반론이 제기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질임금의 상승’이란 주장은 대체적으로 옳으나 ‘절대적 빈곤의 해소’라는 주장은, 여기서 그것을 논할 여유가 없지만, ‘절대적 빈곤’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실질임금’이 상승되었다고 해서 한국의 노동자들의 임금이 ‘고임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임금이 육체적 필요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조건과 필요에 의해서도 결정되는 노동력의 재생산비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철저히 잘못된 것이다.
지금의 시장임금이 ‘고임금’인지의 여부는 현재의 조건에서 요구되는 노동력 재생산비와의 관련에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옛날에 요구되었던 노동력의 재생산비와 비교해서 판단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회적․문화적으로 규정되는 노동력 재생산비의 변화는 주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활동 결과가 아닌가?

3. 최근의 ‘경제위기론’에 대한 약간의 의견

이번의 ‘방안’은 김영삼 정권의 장기적인 경제정책을 반영함과 동시에 최근 자본 진영의 일부에서 강하게 제기한 새로운 ‘경제위기론’도 상당 정도 염두에 두고 작성된 것이다. 그를 뒷받침 하는 예로서는, 이를 확정한 청와대 회의 석상에서의 “원인과 규모를 살펴보면 위기감을 가질 정도는 아니고” 운운 등의 대통령의 발언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경기의 양극화’라는 널리 회자돼온 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최근 2~3년간 우리 사회의 적어도 독점재벌들은 거대한 호황을 누려왔으나, 특히 금년 들어서 일부에서 균열과 불안의 징후가 진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몇 년동안 주체하기 어려울 만큼의 떼돈을 벌어다주는 기억형 반도체의 세계적인 과잉생산에 의한 가격의 폭락이라든가, 자동차, 석유화학 부문 등의 과잉생산에 의한 타격은 상당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에 따라 국민경제의 국제수지 연간 적자폭도 $1백억를 훨씬 넘을 추세로 진행되고 있다. 자본과 정부의 일각에서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제위기’를 운운할 충분한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기’가 어떤 원인에 의한 어떤 성격의 것이고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인데, 그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판단을 내리기에는 아직 상황의 진전보다 문제의 제기가 빠른 것 같다.
현대자본주의의 중대 위기 요소 중의 하나인, 하루 거래량 $1조를 넘는다는 국제적 금융자본의 투기활동의 격화, 그에 따른 국제 외환・금융시장의 불안정, 특히 최근의 일본 엔화의 약세로의 반전, 그에 따른 세계 상품교역시장에서의 경쟁 여건의 변화, 앞서 말한 일부 품목의 세계적인 규모의 과잉생산 등이 ‘위기’의 배후에 있는 것들인데, 이것이 일시적인 불규칙적인 동요인 것인지, 혹은 한국경제 등 일부에만 한정된 것인지, 아니면 79년도 하반기 - 80년도 상반기나 89년도 하반기 - 90년도 상반기의 상황이 그랬던 것처럼 또 한차례의 세계적인 규모의 주기적 공황의 전조인 것인지, 이러한 것들을 판단하기에는 아직 상황이 충분히 진척되지 않은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미국의 (대자본의) 경제는 주로 정보통신혁명에서의 우위에 힘 입어서 지금 한창 번영을 거듭하고 있고, 유럽의 경제는 아직 90년대 초이래의 불황을 기본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일본 경제는 수십조 원에 이르는 정부의 경기부양조치와 엔화의 약세화 등에 힘입어서 이제 막 91년 이래의 깊은 수렁에서 기지재를 켜며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일부 기미를 보이는 (한국경제의) ‘위기’가 어떤 성격의 것이며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이다.
다만, 확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위기’가 결코 한국 노동자들의 ‘고임금’에 원인이 있는 것도 아니며, ‘고임금’을 다스려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 ‘위기’는 분명 현대자본주의 세계시장의 불안정성과 연관을 가지고 또 그 불안정성에 의해서 발생・발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4. ‘방안’과 김영삼 정권의 역사적 임무

이번에 확정・발표된 ‘방안’을 보면서 갖게 되는 생각은 무엇보다도 김영삼 정권이 그에게 부여된 역사적 역할을 주저없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80년 이래의 서유럽 및 미국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정권들이 그러한 것처럼, 김영삼 정권도 철저히 신보수주의적인 이데올로기와 정책기조에 따라서 구체적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해가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의 이러한 역할로 한국의 자본주의는 한층 더 ‘발전’할 것이다. 한편에서 소수 독점자본의 수중에는 더 많은 자본과 생산,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지배력이 집중될 것이고, 중소기업과 소생산은 더욱더 위기를 맞아 몰락해 갈 것이며, 사회의 다른 편에는 더욱더 거대한 규모의 노동자계급과 사회적 빈곤이 축적될 것이다. 그리고 급격히 전개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 혹은 정보통신혁명은 한국에서도 가속도적으로 산 노동을 배제한 생산을 증대시켜 갈 것이다. 김영삼 정권이 부여받은 역사적 임무는 바로 이 일련의 과정을 가능한 한 차질없이 진행시키는 것이다 ꠏꠏ 임박한 자유의 왕국을 준비하기 위해서! 한/노/정/연

1996-06-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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