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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확인한 노동자 정치운동의 열기

현장에서 미래를  제13호
최경희

이달의 참관기

다시 한번 확인한 노동자 정치운동의 열기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창립 1주년
기념토론회를 다녀와서


최 경 희 (한국외국어대 석사, 정치외교학)





무더운 여름의 열기일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발산하는 노동운동에 대한 열기일까?
하여튼 그 자리는 열기의 도가니인 것은 분명했다!!

한여름의 무더위가 한창일 때, 1995년 여름에도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의 창립 토론회가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올해 1996년에도 창립 1주년 기념 토론회를 가졌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외형적으로는 요즘에 어느 토론회장에서 볼 수 없는 ‘성황과 열정’이 있었다. 이번 연구소 기념토론회에는 아침 일찍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꾸준히 토론장에 도착한 사람들이 최고 200여 명을 육박하는 성황을 이룬 것이다.
올해 창립 1주년의 기념 토론회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은 토론회의 주제 때문일 것이다. ‘노동자 정치운동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는 노동운동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두고 있는 각계 각층에게 관심의 주제가 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특히 1992년 이후 한국의 변혁적 민중운동은 ‘전환기’를 겪으면서 일정정도의 침체기를 경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중민주 운동세력들은 더이상에 후퇴선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지금의 어렵고 또한 중요한 시기를 함께 모색하고 돌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무르익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토론회의 자리는 그러한 의지를 발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이 된 것이다.

포괄적인 주제 그리고 정치적 상상력의 자극

토론회는 1부 ‘세계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라는 소주제를 중심으로 변화된 세계 자본의 운동과 그 변화에 따른 노동운동의 대응에 대한 전망을 밝힌 ‘지구화와 노동운동’이란 글을 시작으로, 유럽․브라질의 국가별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사례연구와 남아공의 변혁운동의 사례분석등을 통해 한국 노동운동의 전망 수립을 위한 외국 노동자 정치세력화 사례를 발표하였다. 제2부 부터 우리의 시야를 국내로 돌려서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노동자 정치운동’에 대한 역사적 개괄과 ‘80년대 이후 노동단체의 정치운동’을 다루었다. 이것은 군부독재, 문민독재로 이어지는 정권의 성격변화에 따른 사회변화와 이에 대응하는 주체 운동세력의 조직적 분화, 발전이라는 측면을 정치조직의 역사적 개괄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특히 전반적으로 노동운동 발전에 영향을 미쳤던 ‘노동단체의 정치활동’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다루었다. 제3부는 토론회의 대주제인 ‘노동자 정치운동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에 최고로 부합하는 순서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서 학계와 민주노총, 운동단체 등의 다양한 입장을 개진하는 자리가 되었다. 제4부는 전체 토론회를 정리하는 시간으로서 각 순서별 사회자들이 약간의 논평과 의견개진이 있었고, 또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의 소중한 경험과 입장을 들어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여했던 사람들과의 토론은 그 열기를 한층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있었던 토론회의 모든 내용들이 쉽게 정리할 수 있는 문제들은 아닌 것 같다. 세계노동운동의 역사적 개괄, 그 운동이 주는 한국에서의 함의는 무엇인지, 지구화라는 자본의 움직임과 노동운동이라는 대응은 제 4인터내셔날이라는 국제적 노동운동을 잠시 상상하게 하는 순간도 만들고, 80년대 노동자 정치조직, 정치 단체에 대한 운동을 논하는 글을 읽으면서 지금은 없어져 버린 한 때의 ‘나의 조직’에 대한 아련한 추억과 아픔이 느껴지기도 하고 내지는 현재 자기가 소속해 있는 조직을 한 번 생각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노동자 정치운동을 올바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도 조직적 경험을 반추하면서 생각도 해보게 하고, 앞으로 만들어져야 할 ‘노동자의 당’은 어떠한 성격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하여’ 존재해야 하는지도 스스로와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인간 해방, 노동해방’에 대한 세계관을 갖게 된지도 얼마되지 않은 햇병아리로서 아니 햇병아리라기 보다는 영계 정도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삶은 직접적 노동에서 일정정도 자유로운 학생이라는 신분으로서 노동현장에서 때로는 운동현실에서 제출되어지는 문제들이 피부와 같이 느껴지기에는 늘 역부족을 느낀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의 삶의 목적을 ‘그것’이라고 확언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서로에게 통할 수 있는 에토스가 있다는 것을 안다. 하기에 우리는 그 출발선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시대의 주체들이 설정해 놓은 운동의 목적인 ‘그 무엇’을 향하여 매진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만 그 정도에서, 오늘의 내가 바라보는 토론회의 내용과 형식을 읽을 수 있을 뿐이다.

토론회에 모인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를 분석해 보면 노동자, 학생, 지식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늘 항상 변혁운동의 선두를 담당했던 주체들이 모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운동단체,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분들 그리고 민중운동단체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모였다. 그리고 여전히 이러한 토론회라는 자리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학생들이 모였고, 한국의 학계에서 얼마되지 않는 진보적 교수들은 오늘 이 자리에 다 모인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쉬움이라면, 아직 이 자리에 더 모여야 될 층이 있다는 것과 노동자의 목소리는 더 크고, 더 당당하고, 더 정연하게 울려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체 운동 발전의 척도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노동자주의에서 나오는 발상이 아니라 계급투쟁을 주도하는 이들만이 현실의 모순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 본 ‘이론과 실천’

‘한국의 노동자 정치운동의 과제와 전망’이라는 주제에 대한 각 주체들의 입장을 제출하는 이 자리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적어도 ‘이론과 실천’이라는 테제에 대해 사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식인이 이론적으로 생산하는 글에도 현장에 대한 고민이 있고, 현장의 감각과 경험을 중심으로 제출되는 글들도 이론적으로 접근가능할 수 있도록 발전하는 측면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지식인이 문제제기하고 노동자가 실천한다는 사고를 반대한다면, 현장에서의 매 순간마다 대응하는 사건과 투쟁이 조합주의적, 경험주의적으로 빠지지 않으려면,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서 운동 현실속에 존재하는 각자의 주체는 여전히 그것을 중요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이론과 현실’이라는 구조적 거리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단지 맑스주의자라면 ‘이론과 현실’이라는 거리는 ‘이론과 실천’ 사이의 거리와 중첩되면서 이 간격을 메우려고 노력하는 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운동’과 ‘사회주의’를 결합하려고 했던 끊임없는 노동자 정치운동만이 ‘이상과 현실’이라는 구조적 거리를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통일이라는 무기로 그 거리를 좁혀 나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분화와 연대’라는 조직원리를 실천할 때

매번 확인하는 사실이지만, 한국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라는 문제가 만만하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지역주의가 구조화된다거나, 노동조합 조직율이 낮다거나, 전체적으로 노동자계급의 의식 수준의 발전이 정체되어 있다거나, 자본의 신경영전략에 따른 노동통제방식의 세련화가 진행된다거나 하는 객관적 조건에 대한 인식을 차치하고서라도 각 운동의 주체들이 바라보는 정치노선과 조직노선의 차별성을 실감하게 한 자리였다. 나는 항상 이러한 토론의 자리를 마치고 난 다음에 느끼는 감정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그러나 나는 서로의 인식의 차별성을 안다는 현실 그 자체의 중요함을 느낀다. 그렇다고 그 차이를 안다는 것에 만족한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상호발전하는 주체이고자 한다고 본다. 이것은 내가 타인에 대해서 대상화되기를 거부하고, 타인도 대상화되기를 거부해야 하는 진정한 노동자 정치원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회의 구성원리로서의 민주주의를 생각하게 된다면, 내지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가 사라진 ‘당-국가 관료제’의 모순이 존재했던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경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당내 민주주의’의 문제는 당적 수준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 원리로서 ‘노동자 계급의 민주적인 정치원리’의 문제로서 더욱더 중요하게 사고해야 할 지점이다. 물론 그 날의 논의의 차원이 당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졌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판단하는 것은 그 날 모였던 사람만큼 한국에서의 ‘노동자 계급에 의한, 노동자 계급을 위한’ 정당을 사고하는 사람도 없다고 본다. 따라서 여기서부터 ‘노동자 계급의 정치’에 대한 현실과 미래가 있다고 본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담론이 오고간지도 언 5∼6년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그 수준은 미천하다는 것을 다 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도 현재로선 막막하다. 그러나 실천의 출발은 ‘노동자 계급의 정당’을 만들기 위한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 개별적 조직의 메카니즘과는 상대적으로 분리해서 논의되어져야 한다. 민주노총의 발전만으로 노동운동단체의 의견개진만으로 분산적인 노동자정치조직의 노력만으로도 전국적인 시야를 갖는 정당을 만들 수는 없다. 분화와 연대라는 조직원리를 실천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인식의 출발은 ‘노동자 계급정치 현실과 전망’에 대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완성한 다음에야 변혁을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국가권력을 장악할 때만이 혁명을 얘기할 수 있나, 선거를 통한 적극적 진출을 위한 의회의 개입을 통해서 이행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에게 ‘노동자계급의 정치란 무엇인가’는 아직 답이 없는 문제로서만 남아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서 이와 같은 토론회는 값진 자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년에도 이러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면, 그 때는 좀 더 구체적인 것을 대상으로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분명한 것은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에 따른 문제들이다. 한/노/정/연

1996-07-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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