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개혁’과 ‘진보’를 넘어,
‘변혁’과 ‘해방’의 정치를! (2)
- ‘2006년 정세 전망’과 계급적·변혁적 좌파의 과제 -
박성인 / 한노정연 소장
‘노동운동의 정치화’, 대중투쟁의 전제
2006년 노자관계 전망과 관련하여, 2~4월에 걸친
비정규보호입법과 특수고용노동자 보호입법, 그리고
선진노사관계 로드맵의 입법화 등 중앙단위 노사관계 이슈가
쟁점으로 된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운동의 정치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사실 2006년 들어 노무현 정권이 사회적 양극화를
쟁점화하고 노동부장관을 교체한 것, 민주노총의 신임 집행부
선출을 둘러 싼 격렬한 노선 대립, 그리고 한국노총의 발 빠른
사회적 합의틀로의 복귀 등은 이러한 ‘노동관계의 정치화’,
혹은 ‘전국적 계투화’에 대비한 정치적 포석이자 갈등의
표현이다. 따라서 중앙단위의 노자관계의 쟁점을 둘러싸서
어떠한 정치적⋅계급적 지형이 형성되느냐가 2006년 상반기
임단투와 지자체 선거, 그리고 산별노조 추진 동력의 형성,
나아가 향후 중장기적 노사관계와 계투의 지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06년 상반기에 노동현장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으로
임금인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구조조정
반대⋅고용안정 보장에 대한 요구와 비정규직의 문제가
강하게 제기될 것”이며, “고령화에 대비하고 퇴직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임금피크제와 퇴직연금” 등이 대중적인 쟁점으로
될 것이다. 이러한 ‘생존권적 요구’들이 “노조재정자립기금
등 노조전임자 관련 요구”, “산별교섭 등 집단교섭 참가
요구” 등 ‘노동3권’ 보장 요구와 맞물리면 노동자투쟁이
확산되고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2006년 상반기, 노동 현장에서의 ‘생존권권 요구’를
중심으로 한 대중투쟁의 가능성은 2006년 2~4월에 걸친
비정규보호입법과 특수고용노동자 보호입법, 그리고
선진노사관계로드맵의 입법화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운동진영이
어떠한 ‘정치’적인 전선을 형성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운동진영이 ‘사회적 합의’ 이데올로기 공세 등에 밀리지
않고, 비정규보호입법과 선진노사관계 로드맵 입법화에 대한
전국적인 투쟁 전선을 유지해 낼 수 있다면, 이러한 정치적 투쟁
전선은 상반기 임단협 투쟁과 맞물리면서 광범위한 생존권투쟁을
촉발시켜 내고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계급투쟁으로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5.31.지자체 선거와
하반기 산별노조 전환투쟁에도 커다란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적인 정치투쟁 전선과 분리시켜, ‘사회적
합의’나 ‘지자체 선거’, 혹은 ‘산별노조 조직 전환’을
추동하려 한다면, 이는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거니와 노동운동을
심각하게 후퇴(탈계급화, 탈정치화)시켜 버릴 것이다. 또한
2~4월에 이러한 대중적인 정치전선을 구축해 내느냐의 여부에
올해 비중이 크게 부각될 것으로 예측되는 공무원, 교원, 공기업
등 공공부문에서의 노동자투쟁, 그리고
비정규직⋅사내하청⋅지역노조⋅특수고용형태종�
瑛悶� 미조직근로자 등의 투쟁과 조직화 여부가 달려 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정부와 자본의 공세도 중앙단위 노사 쟁점과
현장의 쟁점을 분리시키고, 이원화시키는데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와 자본이 ‘노동운동의 정치화’를 그토록
두려워하면서 ‘사회적 통합’과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고, 최근 경총의 이수용 회장이
“노동자가 파업한다면 기업도 파업(공장 해외이전
등)하겠다”고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정치 전선의 형성을 대중조직의 과제로만
떠맡겨서는 안된다. 정치조직이 비정규입법과 선진노사관계
로드맵, 사회적 양극화 해결을 둘러 싼 쟁점, 사회적 합의주의
공세, FTA와 전략적 유연성 추진 등에 대해 먼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인 전국 투쟁전선을 형성하는 것 중요하다.
이러한 정치⋅이데올로기투쟁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
전국적인 ‘정치 대오’를 구축하고, ‘투쟁 강령’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 전국적인 ‘정치 대오’의 정치활동을
중심으로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단결과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대중투쟁 전선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럴 때 전국적인 정치전선은 노동 현장의 광범위한 생존권적
요구투쟁을 촉발시켜 내고 단일한 계급투쟁으로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역량을 바탕으로 5.31. 지자체
선거와 단일 상설연대체 추진, 그리고 산별노조 건설 등에 대한
실질적인 개입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시한폭탄’, 양극화와 빈곤
IMF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된 국내외 독점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한국 경제와 사회에 ‘양극화’라는 “사회적
시한폭탄”(<뉴스위크>지, 2006. 01. 23.)을 던져 놓았다.
여기서 ‘사회적 시한폭탄’이란, 양극화와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의 징후들이 지배체제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일컫는 것으로, “빈곤층과 부유층이 그룹화돼 집단간의 소모전
양상”과 “소득불균형 구조보다 더 나쁜 사회적 갈등의
확산”을 불러일으키거나, “빈곤의 대물림과 문화공유 상실에
따른 저항과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국내외
지배세력들은 그 날카로운 후각으로 양극화와 빈곤이 야기할 수
있는 ‘저항’과 ‘계급투쟁’으로의 진전 가능성을
읽어냈다.
확실히 한국 사회의 양극화는 ‘사회적 시한폭탄’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양극화’를 이야기할 때,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첨단산업과
재래산업 등 산업에서의 양극화를 먼저 드는데, 지금 시기
‘사회적 양극화’의 핵심은 “빈곤과 노동 불안정성”이다.
한편에서는 부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광범위한 노동자민중들이 빈곤과 노동 불안정성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 양극화의 핵심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1분기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소득의 5.87배에 달하는데 이는 정부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2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된
것이다. 2005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임금소득
지니계수(소득불평등을 재는 지수)가 1998년 0.280에서 2002년
0.305, 2004년 0.314 등으로 계속 높아지는데, 이는 상위계층의
임금상승률이 하위계층보다 높아 소득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업소득과 개인소득간의 양극화도
두드러지는데, 지난 2000년부터 2004년간 기업소득은 연간 50%에
가까운 초고속 증가를 보인 반면, 개인소득은 1%대의 증가에
그쳐 거의 정체상태를 보이고 있다. 또한 소득의 분배수준을
나타내주는 노동분배율은 59%로 90년대 평균 65.9%에서 급격히
낮아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5년 4분기 및 연간 가계수지 동향’에
따르면 지난 해 도시근로자, 자영업자, 농어민 등을 포함한
전국가구 중 상위 20%는 월평균 599만원의 소득을 올린 반면,
하위 20%는 79만원의 소득을 올리는데 그쳤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로 나눠 측정하는 5분위
배율은 7.56로 8배에 근접한 것이다. 이처럼 소득에서 양극화의
결과, 한국사회 10가구 중 3가구는 가계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소득 하위 30% 가구 가운데 적자가구의 비율은 전국
가국의 54.5%로 조사됐다. 최하층 뿐 아니라 중산층의 하위
범위까지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뜻이다.
일자리에서의 양극화도 가속화되고 있는데, 최근 10년 기준으로
평균보수 수준이 상위 30%와 하위 30%의 일자리는 크게 늘어난
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40∼70%의 일자리는 정체 상태에
있다. 그리고 여성의 빈곤화가 심각한데, 2005년 저임금
여성노동자 비율은 42%로 남성(15.8%)의 2.7배에 이르고, 여성
가장 노동자 가운데 임시 일용직 비율은 82.2%였다. 월소득도
82만원 이하의 저임금 소득군이 74%인 것으로 나타나 일하는
여성 가장 상당수가 일을 해도 빈곤에서 벗어나기 힘든 ‘근로
빈곤’의 상태에 놓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와 최저생계비의 120% 미만 소득을 올리는
차상위계층이 716만 명에 달했는데, 기초생활보장수급자 138만
명과 기초생활보장 비수급 빈곤층 372만 명, 잠재적 빈곤층
206만 명 등이다. 전체 인구의 15%가 빈곤층인 셈이다. 반면에
경실련의 발표에 따르면, 지가상승으로 발생한 불로소득은 토지
과다 소유자 상위 1%에게 24%, 상위 5%에 44%가 집중돼 있고, 그
결과 상위 1%의 자산소득은 26억 원으로 국민 1인당 자산총액
1.1억 원의 25배에 달하는 실정이다. 또한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전국토지소유현황에 따르면, 우리나라 토지보유자는 총인구
4,871만 명의 28.7%인 1,397만 명이며, 총인구의 상위 1%가 전체
사유지의 51.5%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평등한
토지 소유 구조와 부동산을 하나의 투기 시장으로 형성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은 빈곤을 확대하고 빈부격차를 더욱더
심화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소득과 일자리에서의 양극화는 소비와 교육, 의료, 보육
등에 있어서의 양극화로 이어지는데, 사교육비 지출 하위 20%
계층과 상위 20% 계층 사이 격차가 2001년 7.6배에서 20004년
8.6배로 늘어나는 등 사교육비 지출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고,
‘굶둥이’, ‘금둥이’라는 표현처럼, 많은 어린이들이 한 끼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지만 어린이 명품시장에서는 300만
원짜리 유모차, 4만원 기저귀, 50만원 어린이 정장 등이 없어 못
팔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양육에서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2005년 5월 삼성경제연구소의 발표에서 확인되듯,
“한국인이 느끼는 자본주의 이미지가 ‘물질적 풍요’에서
‘빈부격차’로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즉 자본주의
이미지는 빈부격차가 28.1%, 물질적 풍요가 21.2%, 경쟁이
19.4%, 부정부패가 14.2%, 풍부한 기회 6.9%, 효율성 3.7%, 착취
1.6% 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뇌관 제거하기?
그래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이 ‘사회적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노무현 정권이 지난 ‘신년
연설’을 통해 2006년 국정운영의 중심 과제로 ‘사회적
양극화의 해결’이라는 화두를 던진 것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으로 ‘일자리 창출’과
‘사회안전망의 확충’,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제시하고,
덧붙여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정권이 “양극화 해소를 통한 ‘서민층
끌어안기’로 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꾀하는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는 일부 언론의 분석도 있지만, ‘양극화
해소’ 문제의 정치적 쟁점화는 단지 지방선거용만은 아니라
2007년 대선에서의 정권재창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의 결과로 야기된 양극화와 빈곤
문제가 지배체제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진전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선점하면서 관리해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개혁 세력’이 과연
‘양극화’와 ‘대중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정치적 역량과
의지가 있는지는 별도로 하더라도, 2006년은 ‘양극화’의
원인과 처방을 둘러싸서 제 계급⋅계층과 정치세력간에
치열한 공방이 이루어질 것이다.
일단 정치적 ‘의제’ 선점에서 노무현 정권은 한 발 앞서나가고
있다. ‘양극화’의 원인과 처방을 둘러 싼 논쟁에서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한편으로는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수구보수세력에 대해 칼끝을 겨누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민중진영에 대해서도 칼끝을 겨누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권은 ‘고령화⋅저출산 대책
국민연대’의 결성 등 시민운동진영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나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이후 노동자민중진영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2005년 하반기 이후 노무현 정권은 ‘양극화’ 문제를
정치적으로 공론화하면서,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낙인을
어느 정도 벗어내고 있고, 정치구도를 노무현 정권을 중심으로
한 ‘진보’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의 대립 구도로
전환시켜 나가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지난 2월 14일
국민경제자문회의가 제출한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비전과
전략- 일자리 창출을 위한 패러다임 전환’ 보고서이다.
보고서는 “새로운 성장모형을 모색하기 위한 기존 경제시스템과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을 적극 모색해 나갈 것을 제안하고
있고, 노무현 정권은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즉 “저임금,
정책적 자금지원 등 요소 투입 위주의 과거 고성장기의 양적
성장을 과감히 버리고, 효율과 혁신, 글로벌 경쟁력 배양 중심의
선진국형 성장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향후
10년 내에 '사회안전망을 갖춘 G-10급 글로벌 지식-혁신
강국'으로 진입”해 나가겠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이다.
“‘세계화의 진전’, ‘지식정보 기반 경제로의 전환’,
‘중국의 부상’이라는 대외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성장→소비⋅투자증가→분배 개선’의 고리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사회적 양극화’의 해소 문제를 단기적으로는
‘일자리 창출’, ‘사회안전망 구축’,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을 중심으로 대응하면서,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략적으로 전환함으로써 자본축적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프로젝트 아래서 당장
양극화와 대중빈곤이라는 ‘시한폭탄’의 뇌관을 제거하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대타협의 구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노무현
정권의 성패가 달려 있다.
그러나 정책 패러다임의 전환은 중장기적 과제이고, 어떻게
현실화될 지는 불투명하다. 그리고 현실의 ‘양극화’와
‘대중빈곤’이 “경기침체의 결과” 혹은 “박정희 식의 압축적
성장 발전의 결과”가 아니라, 경제 성장 그 자체의 결과이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의 결과라는 점에서 ‘동반
성장’이 과연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나아가 양극화의
문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는 아직은
불투명하다.
지난 2월 15일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한국의 빈부격차
정도가 OECD 회원국 중 최악의 수준”이고, “이런 상태를
방치한다면 한반도는 빈부격차로 인한 2개의 대한민국과 북한,
즉 3개의 코리아로 나뉠지 모른다”고 하면서 ‘양극화’ 해소에
전력을 기울일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의 양극화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모순적일 뿐
아니라 기만적이기 조차하다. 먼저 바로 한국 사회의
‘시한폭탄’으로 되고 있는 “사회적빈곤의 확산과 빈부격차의
증대, 노동의 불안정화, 그리고 교육, 의료 등 제반 민중의 삶의
권리 파괴”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노동유연화의
결과인데,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 노동유연화는
더욱 강화하면서, 그 결과인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경제의 발전 자체가 가져올 소수로의 부의
집중과 대다수의 빈곤화와 고용불안을 은폐하는 것이다.
또한 지배세력은 양극화는 불가피하고, 소수의 가진 자들의
돈으로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가진 자들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 가령
8⋅31 부동산대책의 경우도, 노무현 정권은 사회 양극화의
해소의 일환으로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과도한 부동산 거품의
급작스런 붕괴를 방지하고 상대적으로 유동성 자산을
주식시장으로 유인하는 금융시장에 대한 위기관리 장치에 불과한
것”이고, 주택 문제 해결을 위한 ‘임대주택’ 정책도 사실은
과잉 건설자본의 해소책인 것이다. 그리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의 도입, 자활사업과 사회적 일자리
사업의 확대, 기초법 사각지대 해소 등도 임금과 고용의 안정적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일자리의 질 향상에 대한 고려 없이
빈곤층을 저임금 불안정 노동층으로 강제 편입시키는 정책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노무현 정권이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은 대중 빈곤으로 인한 불만과 저항을 적극 관리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시한폭탄’인 양극화와 다수 노동자민중의
빈곤은 단순히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소수로의 부의 독점과
대다수 노동자민중의 빈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이
가져 온, 즉 자본주의 발전의 극히 정상적인 결과이다. 따라서
부를 독점한 소수에 대한 대다수 빈곤층의 저항과 계급투쟁 역시
일시적으로 관리되고 지연될 수는 있어도 필연적이다. 비록
그러한 저항이 지금은 ‘생계형 자살’이나 ‘생계형 범죄’,
그리고 ‘저출산’ 등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말이다.
‘북’을 두드려라. 그러면 ‘남’이 열릴 것이다
2005년 초 북핵 제4차 6자회담의 개최가 부시 정권의 ‘폭정’
발언으로 난항을 겪었듯이, 2006년 북핵 제5차 6자회담의 개최는
위폐 문제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북한 인권에
대한 압박으로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은 작년 9월 마카오의 한
은행에 대해 북한 위폐유통 및 기타 불법 활동에 개입했다는
이유를 들어 제재조치를 단행했고, 또 10월에는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의 전위라는 이유로 8개 북한회사들에도
제재조치를 취했다. 이어 알렉산더 버시바우 신임 주한 미국
대사는 북한정부를 “범죄정권”으로 지칭했으며,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을 “위험한 정권”이라고 부르는 등
미국 관리들의 대북 강경발언이 계속됐다.
부시 역시 지난 신년 연설에서 “달러위조, 돈세탁 등 불법
활동을 차단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미국은 법에 따라 국민의
화폐를 보호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금융제재 해제를
6자회담재개와 결부시키는 데 반대함으로써, 북핵 5차 6자회담의
재개는 기약 없는 교착상태에 빠져 들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에 대해 북한도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북한은 연간 핵폭탄 10개분의 플루토늄 생산이 가능한 원자로를
재가동할 계획을 밝히는 한편, 신년 3대신문 공동사설을 통해
“남북이 힘을 합쳐 미국의 ‘도발책동’을 분쇄해야 하며 한국
내 ‘반보수대연합’을 이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촉구하고
6월15일을 ‘민족의 날’로 제정하자고 제의했다. 또한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와 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등으로
국제 정세가 어려워지자 “체제유지의 ‘방파제’로 삼기 위해
대북화해정책을 취하는 노정부와의 관계 강화를 통해 한국의
진보세력을 포섭”해 나가는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월
10일~18일에 중국을 비공식 방문하여 대대적인
개혁⋅개방의 추진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북-미간의 이러한 교착상태와 긴장은 5차 6자회담의 재개 여부와
관계없이 2006년에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 침략
전쟁 이후 대테러전의 명분을 상실하면서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명분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 봉쇄와 인권 압박을 계속할
것이다. 이미 지난해 3월 ‘민주주의 증진법’을 통해 북한을
최악의 비민주국가로 분류하여, 군사력 이외의 모든 역량을 쏟아
민주화시키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한 바 있고, 미 국방부의
‘국방전략 보고서’(NDS)에서는 북한을 “21세기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위협 국가”로 분류한 바 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역시 “핵무기와 정권의 생존”을 동의어로 보고
있어 핵 포기와 경제 봉쇄의 해제를 맞바꾼 리비아식 해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미국과의 강경한 대처 속에서도 중국에
기대어 대대적인 개혁⋅개방의 추진을 통해 사회주의
경제의 회생 가능성을 모색할 것이다.
2006년 들어 북-미간의 갈등으로 북핵 문제 해결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마찬가지로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노무현 정권이다.
2005년 하반기 제4차 6자회담 이후 대북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뿐 아니라, 남한에
대해서도 ‘북핵 문제’와 분리하여 ‘경제협력’을 추진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상품을
남한상품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압박도 덧붙였다.
이에 노무현 정권은 한편으로는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체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을 가하며 때로는 북한이
붕괴하길 원하는 듯이 보이는 미국 내 일부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여 네오콘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미 FTA의 신속한 추진’(02.03. 한-미 FTA 협상 공식 개시
선언)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1.20. 제1차 한미
‘장관급 전략대화’) 등으로 미국에 화답했다. 즉 미국으로서는
2004년 대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북핵 위기’를 매개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이끌어 냈다면, 2006년에는 ‘한-미 FTA’의
추진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라는 성과를 얻어낸
것이다. 북을 두드려라, 그러면 남이 열릴 것이다.
‘한-미 FTA 추진’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대해 남한 내부에서 광범위한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이 강행하는 것은 사실 노무현 정권 자신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청사진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
초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북핵
문제의 해결을 모색하고 평화체제의 토대를 마련하는 1단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추진하는 2단계,
평화체제를 제도화하는 3단계”라는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 군비통제, 연합지휘체제 조정(작전통제권
환수),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북한 경제 재건 등의 이슈를 3단계
로드맵의 형태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로드맵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북핵 사찰검증 일정을 기본으로 평화체제 구축이 함께
추진되고, 이와 맞물려 남북간 경제협력을 가속화하면서
군축협상 등으로 연결해나간다. 장기적으로 군축협상이나
평화협정을 추진하려면 한국군이 ‘당사자 자격’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미군으로부터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려면 한국군의 능력을
강화하는 국방개혁과 군 구조개편이 선행되어야 한다. ---
남북한 사이에는 평화협정이 체결되어 그간의 ‘정전체제’가
끝나고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는 해체된다. 휴전선
관리임무는 미군 등 유엔군을 제외하고 상호 감축이 진행 중인
남북한 군대가 맡게 된다. 남북은 이미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영토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담은 헌법 등을 개정함으로써,
현재의 휴전선은 군사대치선이 아닌 ‘국경’의 형태에
가까워진다. 안정된 관계를 바탕으로 남북연합 등 통일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 6자회담은 핵 문제가
마무리된 후 다자간 대화채널로 발전해 OSCNEA(Organization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North East
Asia·동북아안보협력기구)가 상설된다. 한국-일본-미국이
연대해 북한-중국-러시아 연대와 대항하는 형태의 국제 정세는
사라지고, 한국은 지역 내에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균형추
기능을 하게 된다.” 로드맵은 이런 계획이 완결되는 시점을
대략 2010년대 초반 정도로 상정하고 있는데, 이 시기는 대략
차기 정권 말 정도에 해당한다.
이러한 ‘한반도 평화 정착’ 로드맵은 한편으로는 한국 자본의
‘동북아 경제중심’ 플랜과 맞물려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매개로 한 정권의 재창출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노무현 정권은
남북협력공사의 설치를 통해 개성공단과 대북 송전, 농업 지원
등의 포괄적인 경제협력을 진행하면서 2010년대 초반 즈음에
남북한 경제의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 “국제금융 자본이 한국을 통해 북한에 투입되고, 저렴한
북한 노동력을 이용하는 한국기업의 수출경쟁력은 대폭 강화”될
것이다. 이 때 “북한의 경제개혁⋅개방은 돌이킬 수 없는
궤도에 오르고, 경제협력은 중국, 러시아 일부를 포괄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동북아 경제권’이 형성”될 것이다.
“한반도는 남북을 관통하는 송전망과 철도 등을 통해 지역 내
에너지와 물류 이동의 교량 역할을 하게 된다. 북한은 이를 통해
경제개발의 기반을 마련하고, 한국은 ‘동북아 경제중심’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성과에 바탕하여 차차기
정권을 재창출한다는 플랜이다. 2006년 ‘사회적 양극화’의
정치적 쟁점화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자본운동을 뒷받침하면서 2007년 대선에서의
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한반도 평화 정착’
로드맵은 자본운동을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동시에
차차기 정권 재창출까지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바로 이러한 ‘한반도
평화 정착 로드맵’에 기초한 것이고, ‘한-미 FTA의 신속한
추진’ 역시 ‘북핵’ 문제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이 노무현 정권이 ‘한반도 평화 정착 로드맵’에서 의도한
것처럼 이루어질 지는 미지수이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한국의 균형자 역할 수행’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중국 봉쇄를
목표로 하는 미국의 동북아 재편전략에 동원될 가능성이 더
크고, 남북 경협이 북한 내부에서 남한 자본의 지배력을 보장해
주기보다는 중국의 자본과 충돌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 역시 대대적인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개혁을 모색하고, 그만큼 남한의 자본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은 현 체제를 위협받지 않는 수준에서 조율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의 ‘한반도 평화 정착’ 로드맵은 장밋빛
꿈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