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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한총련 항쟁의 진실

현장에서 미래를  제14호
서울대 총학생회 정책실

열 린 마 당



대학은 지금, 진리와 자유를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 96 한총련항쟁 보통 언론에서 연대사태/한총련사태라 부르고 있고 학생운동 일각에서는 연대항쟁이라 부르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여기서는 ‘한총련항쟁’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한총련사태가 아니라 한총련항쟁이라 부르는 이유는 광주사태를 광주민중항쟁이라 고쳐부르는 함의와 마찬가지이고, 연대항쟁 대신 한총련항쟁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현재의 흐름이 범청학련 통일축전에 대한 탄압으로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학생운동전반에 대한 탄압/ 학생자치질서에 대한 전면적 부정의 흐름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 진실을 알립니다


서울대 총학생회 정책실


이번 호 열린마당에서는 96년 한총련 항쟁의 진실과 학생운동진영의 과제를 정리한 글을 싣는다.
한총련항쟁의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운동적 관점에서 이 투쟁을 엄호하고 마녀사냥식 탄압을 돌파하려는 학생운동 주체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이 글은 우리에게 새로운 긴장감을 주고 있다.



1. 들어가며 : 대학은 지금 전쟁을 치르고 있다

8월27일 경찰청장, 대학생시위진압에 고무총탄 도입하겠다고 발표. 시위전담 특수진압부대 창설 발표
8월29일 전국 23개 대학에 경찰병력 침탈
8월30일 나우누리의 한총련 CUG 폐쇄
9월5일 인하대 상공에 헬기출동하여 학내집회 해산시킴
9월6일 고려대 학내집회에 특수진압부대 투입
9월6일 검찰 전국대학신문의 이적성 여부 수사계획 발표
9월7일 연대에서 교수님에 의한 대자보 철거 소동

연대항쟁으로 총연행자수 5천8백99명
총구속자수 4백62명
불구속입건 3천3백41명

지금 대학은 ‘공안정국’이라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한총련의 범청학련 통일축전에 대한 정권의 초강경 과잉진압으로 촉발된 공안정국은 더이상 소수 과격학생에 대한 탄압으로 한정되지 않고 있다. 5월부터 계속되었던 학생운동 지도부 구속은 7월 이후로는 거의 하루에 한명 꼴의 구속자를 기록하고 있고, 한총련 항쟁 이후로는 거의 각급 학생회장단을 ‘모조리 털다시피’ 광폭하게 진행되고 있다. 70∼80년대의 일로만 알았던 경찰의 학원침탈이 공공연하고도 버젓이 진행되고 있고, 학내에서 영장도 제시하지 않고 총기로 위협하며 학우들을 잡아가는가 하면 한총련을 옹호하는 기사가 있다는 이유로 대학신문 배포가 금지되기도 한다. 학교의 도장을 받지 않으면 대자보를 게시할 수 없다는 억지가 통용되는가 하면 정치성이 강한 동아리들에 대한 유․무형의 압박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금 대학은 우리의 선배들이 피로써 지켜왔던 진리와 실천의 공간을 지켜내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2. 학생운동에 대한 마녀사냥, 그리고 가리워진 진실들

폭력시위가 탄압을 초래했다는 주장에 대하여

연대항쟁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각종 언론을 통해 가장 많이 부각되었던 것이 바로 학생운동의 폭력성이다.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대표되는 학생운동의 폭력성은 ‘도시게릴라’, ‘친북적 무장세력’이라는 어마어마한 칭호를 부여받으면서 TV뉴스와 일간지를 장식했다. 연세대에 감금되어 있던 학생들이 최소한의 음식물과 의약품도 제공받지 못할 때에도 정권과 언론은, 한총련의 불법폭력시위가 초래한 탄압이므로 당연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어떤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진실은 범청학련 통일대축전에 대한 정권의 일방적인 진압방침이 참여학생들의 거센 반발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애초 한총련은 통일대축전을 평화적으로 치루기 위해 통일원 장관 및 정부 관계자에게 10여 차례나 대화를 요청했으나 아무런 응답도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행사에 임박해서야 일방적으로 통일대축전 행사에 대한 원천봉쇄 방침이 내려왔고, 곧이어 어떠한 납득할 만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행사를 이적행위로 규정해버렸다. 학생들의 반발은 이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분출되었고, 이후 공권력이 대회 해산시도와 강경진압으로 일관하자 이에 대응하여 조직된 것이다. 94년 기관사들에 대한 대량검거가 자동적으로 전체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이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일방적인 불허와 진압방침이 학생들의 반발을 초래한 것이다.
정권와 언론에서는 올해 들어 대학가 폭력시위가 대폭 증가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의도적으로 눈감아버리고 있는 진실은, 올해 들어 경찰의 시위 진압방식이 해산형에서 검거형으로 바뀌었고 이른바 「사수대」로 대열을 보호하지 않고서는 집회를 하는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현실이다. 올 3월에 스무살 젊은 나이로 목숨을 잃은 연세대 노수석 학우도 「대선자금공개와 교육재정확보」를 주장하는 평화적 시위에서 경찰의 몽둥이에 맞고 쫓기다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정권에 대한 어떠한 문제제기도 허용하지 않는 현실이 불가피한 충돌을 낳고 있는 것이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행위에 맞서 경찰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얼마전 박일룡 경찰청장은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병력과 예산의 획기적인 증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김영삼 정권은 내년 예산안에서 공권력에 대한 지원을 최우선 순위로 결정했다. 대학생들의 자생적인 반발이 ‘도시게릴라’, ‘무장폭력집단’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와중에서 경찰총기 사용, 고무총탄 등 살인적 진압장비의 도입, 안기부의 수사권 확대 등이 경쟁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 지금도 집회에 나가보면 참가 대중보다도 최소한 두 세배는 많은 전경과 백골단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 5월부터는 거의 수일에 한번 꼴로 각종 조직 사건이나 좌익폭력사범, 국보법 위반사범이 색출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하려는 사람들 곁에는 언제나 너무 많은 공권력이 존재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연대항쟁으로 자신감을 얻은 공권력은 최소한의 규제장치마저도 상실해가고 있다. 얼마전부터 신문지상에 등장하고 있는 각종 경찰관련 사고들 - 무고한 시민을 현행범으로 오인해 실탄을 발사한다든지, 불법연행에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총기로 위협하거나 위해를 가하는 등 - 과 이에 대한 공권력의 무감각은 우리 사회에서 진정으로 우려스런 집단이 누구인가를 반문하게 만든다.

한총련의 주장이 친북적이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연대항쟁 기간동안 정권의 반이성적 탄압에 대한 비판의식을 잠재웠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反北 이데올로기이다. 한총련의 주장이 북한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이유만으로 언론들은 ‘김정일의 충실한 하수인’, ‘북의 대남전략에 충실한 이적집단’이라고 한총련을 매도했다. 그러나 이들이 그렇게도 분개했던 한총련의 친북적 주장이란, 북미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연방제 통일 등이다. 이러한 한총련의 주장은, 냉전적 사고방식을 벗어버리고 본다면 한반도의 평화안착을 위한 고민, 분단을 빌미로 한 권력의 횡포를 견제하기 위한 고민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런데 단지 북한의 주장과 유사하다는 이유만으로 한총련의 주장은 진의를 왜곡당하고 더 나아가 反사회적인 주장으로 매도당했다. 여기서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것은, 남북관계와 통일문제에 대하여 정권을 제외한 누구도 발언해서는 안된다는 저들의 논리이다. 재벌총수들은 남북경협을 위해 북한에 갈 수 있고, 대통령은 북한과의 평화와 협력을 선언할 수 있지만, 일반 국민들은 누구도 어떠한 방식으로도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없다는 논리가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대학교육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연대항쟁 기간동안 김영삼 대통령은 대학총장들과 가진 자리에서 대학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확신할 수 있는 이념교육을 강화해 줄 것과 엄격한 관리를 통해 대학생들의 일탈(?)을 제어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에 화답하여 각 대학에서는 학사관리의 엄격화, 학내 자치활동에 대한 규제강화, 학생회에 대한 지원 배제 등의 방침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일부 과격운동권들의 준동에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하면서 …. 그러나 대학의 현실을 보자. 김영삼 정권의 출범으로 가속화된 대학간 무한경쟁은 학교내적으로는 학생들에 대한 통제의 강화로 현실화되고 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동자들의 권리가 유보되고 일방적으로 통제당하고 있는 것처럼, ‘자기학교 발전논리’는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억압하고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제 그 흐름에 덧붙여 이념적 공세까지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그와 같은 이념적 공세도 학생들의 다양한 사고를 인정하고 공개적인 논의에 부치는 것이 아니라, 대자보를 철거하고 학생회실을 폐쇄하고, 대학신문 배포를 금지하는 식의 일방적 배제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3. 현시기 학생운동탄압의 본질

김영삼 정권 출범이후 계속되어 왔던 학생운동 거세작업의 결정판이다

지금의 사태는 우연히 촉발된 상황이 결코 아니다. 또한 언론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학생운동의 잠재적 불법성을 간과해 오던 정권이 새삼스레 준법의 기치를 높이 세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권 출범 이후 치밀하고 끈질기게 진행되어 왔던 학생운동 탄압작업의 결정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위 문민정부 등장 직후의 통제논리가 “이제 어느 정도 민주화가 진전되었으니 학생운동은 건전한 비판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한해라”라는 것이었다면 어느덧 통제논리는 학생운동의 존재근거 자체를 부정하고 학생운동의 反정부성․反체제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4․11 총선 직후 급증하였던 공안사범과 매카시적 탄압은 이를 입증하는 것이다. ꡔ전태일 평전ꡕ과 ꡔ태백산맥ꡕ이 이적표현물로 둔갑하는 상황 속에서 몇 개월전부터 공권력과 언론이 흘려왔던 ‘학생운동의 폭력적 변질’, ‘공권력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 등의 언질은 현재의 탄압국면의 본질을 호도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운동 전반에 대한 낙인찍기, 한총련에 대한 여론사냥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바로 부당한 권력에 대한 비타협적 문제제기 집단을 궤멸시키고자 하는 것의 다름 아닌 것이다.

권력재편기에 정치적 반동화, 사회전반의 보수적 재편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의 학생운동탄압이 학생운동진영에 뿐만 아니라 전체 진보진영에 한층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정치적 반동화가 사회전반의 보수적 재편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와 같은 정권의 보수화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보수층을 끌어안기 위한 전략이라고 흔히 분석되고 있지만, 이러한 분석보다 한층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미약하게나마 형성되었던 정치의 장들이 급속히 축소되고 있으며 정권과 자본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김영삼 정권의 개혁이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주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상층에서 베풀어주는 식으로 진행되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을 수동적인 대상의 위치에 강제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노동자나 제반 민중들의 문제제기는 흔히 ‘집단이기주의’로 매도되고 민중들간의 연대는 ‘부당한 제3자 개입’으로 매도된다.

지금 통일문제는 명백히 계급투쟁의 장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가지 더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지금 통일문제가 명백한 계급투쟁의 장으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8.15 담화문을 통해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요체는 바로 평화와 협력”임을 천명했다. 동시에 남한 정권은 “북한의 안정을 원하고 있고, 북한의 고립을 원치 않으며, 일방적인 통일을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현실에 있어 여전히 북한은 ‘고립, 궤멸시켜야 할 대상’이며 통일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남한경제가 부담해야 할 흡수통일 비용의 過少일 뿐이다. 우리는 김영삼 정권이 ‘정부 차원의 수해지원 불가’, ‘도입쌀의 군량미로의 전화’ 등의 발언을 해 왔던 것을 기억한다. 동시에 범청학련 통일축전에서 북한당국과의 교신을 기획했다는 이유만으로 한총련의 이적성을 운운했던 것을 기억한다. 여기서 우리가 꿰뚫어 보아야만 하는 것은 남북관계와 통일문제가 反北 이데올기의 뒤를 이은 통치논리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노렸던 것은 한 축으로는 ‘북한 공산체제에 대한 남한 자본체제의 우위의 확인’이었고 다른 축으로는 ‘언제 발발할 지 모르는 한반도 긴장국면에 대한 국민적 통제․동원체계 재구축의 필요성’이었던 것이다. 과거 반북․반공 이데올로기가 ‘적의 준동에 대한 안보’라는 논리로 국민적 통제를 정당화했다면 지금 시기의 통일 이데올로기는 ‘북한체제의 붕괴를 무리없이 받아 안으면서 21세기 선진조국을 건설해야 하는 과업’이라는 논리로 국민적 통제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4. 공안정국 이면의 흐름을 주목하자

사회전반의 보수적 재편, 정치영역의 축소와 민중배제

우리는 현재와 같은 공안정국 조성이 우연한 상황이라기보다는 김영삼 정권의 통치전략 자체의 성격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전-노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전격적인 사법처리가 진행되는 순간에 동시적으로 정권의 보수적 색채가 전면화되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개혁’, ‘역사바로세우기’와 같은 정권의 캐치프레이즈는 한국사회의 부후성에 대한 대중적 성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철저히 정권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그리고 안정적인 권력 재창출을 도모하기 위한 통치전략으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따라서 개혁과 변화의 주체는 항상 정권일 뿐이고 대다수 민중은 개혁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진정한 개혁, 민주화를 이끌어왔던 민중들은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물러날 것을 요구받고 이것을 거부하는 경우 불순한 세력, 시대에 뒤떨어지고 무능한 집단으로 간주당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노동․교육부문의 재편

또 하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노동․교육부문에서의 재편의 흐름이다. 김영삼 정권의 야심찬 프로젝트로서 똑같이 청와대 직속의 「노사관계 개혁위원회」에서 주도되고 있는 노동․교육부문의 재편 움직임은 자본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재생산구조 재편이라는 점에서 서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두 부문 모두 권력상층의 폐쇄된 논의를 축으로 변화방향성이 제시되면서 동시에 고통의 당사자인 대중에게는 어떠한 문제제기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이후 한총련항쟁으로 정점에 이른 공안정국은 이면에서 주체들의 문제제기를 효과적으로 배제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세계화․합리화라는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모순의 당사자들의 문제제기를 일방적으로 억압하고 추진되는 개혁은 결국 민중에 대한 고통전가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5. 무엇을 할 것인가

부당한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중단될 수 없다

“학생, 노동자의 민주화 주장은 결코 물리적 폭압으로 눌러서는 안 되며 모둔 문제를 의회를 통해 적극 수렴하고 헌정질서 테두리 안에서 수용,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한다” (88.10.26 국회대표 연설)
“이들 폭력세력에 대한 무분별한 동정론은 일부학생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오히려 조장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학생시위는 정당한 시위라고 할 수 없다” (96.8.21 전국 대학총․학장과의 오찬)

야당의원 김영삼과 대통령 김영삼의 일구이언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학생운동의 정당성은 지배권력의 규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역사와 현실 속에서만 증명될 수 있다는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학생운동은 부당한 권력과 사회모순에 대한 실천적 문제제기를 통하여 존재해 왔다.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가 존재하는 한 학생운동의 존립근거도 여전히 존재한다. 정권과 언론은 섣불리 한총련의 와해를 점쳐 보지만 이것은 오만한 착각일 뿐이다. 물리적 탄압으로 ‘한총련이라는 조직’을 와해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학생운동의 존립근거, 대학사회의 저항정신 자체가 말살될 수는 없다. 학생운동이 진정 국민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조차 사회모순에 대한 비타협적이고 실천적인 문제제기는 잠시도 중단될 수 없다.

정치․사상의 자유의 전면화를 주장해야 한다

이번 한총련항쟁은 우리 사회의 정치․사상적 지평이 얼마나 협소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반공-반북이라는 시대착오적 주술만으로도 어떠한 비이성적․인권유린적 탄압도 정당화될 수 있으며 어떠한 저항이나 문제제기도 허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장되는 정치․사상의 자유의 범위는 합리적 토론이나 대중의 공론을 통해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배집단의 일방적인 규정에 의해 정해지고 있다. 노동자가 기업경영에 대해 개입하려 하면 도를 넘어선 요구사항이 되고,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문제제기하면 ‘국가전복 음모’가 되는 것도 사회적 논의를 거쳤다기보다는 정권의 일방적 규정에 의한 것처럼.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정치․사상의 자유가 권력집단에 의해 자의적으로 재단되는 것에 문제제기하고 각종의 억압적 국가기구들의 부당성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국가보안법 철폐는 하지 못할망정 안기부의 수사권 확대라는 반동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정권에 대하여 전면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공안정국을 분쇄하기 위해 노동자, 민중의 광범한 연대투쟁이 필요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학생운동탄압은 학생운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학생운동을 위협하고 있는 공안정국의 칼날은 내일은 어느 곳의 양심과 이성을 압살하려 할 지 모른다. 공안정국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학생운동의 선도성만이 아니라 학생운동과 제반 민중운동과의 실천적 연대의 흐름이기도 하다. 학생운동이 고립되어 존재의의를 부정당할 때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와 진보를 열망하는 집단의 역량은 전체적으로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민중운동 전반의 역량보존의 차원에서 그리고 정권의 고삐풀린 반동화를 제어하기 위해서 노동자, 민중의 광범한 연대투쟁이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다.

6. 맺으며 - 한총련항쟁이 학생운동진영에 던진 과제들

이번 한총련항쟁은 학생운동진영에 90년대 초반 이후로 누적되어왔던 미완의 과제들을 다시금 뼈아프게 확인시켜주었다. 현재 학생운동진영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공권력의 물리적인 탄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짧은 관심 이상을 보여주지 않는 학생사회에서 기인한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공권력의 비이성적 작태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러한 의식이 저항과 연대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총련항쟁 이후 한층 강화되고 있는 학생자치활동에 대한 통제도 직접적인 당사자들의 반발 이상 학생사회의 저항으로 연결되고 있지는 못한 것이다.
90년대에 들어서 학생사회가 개별화․파편화되고 있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일면적인 분석이 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정당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학생운동진영과 학생대중 사이에 의식적․실천적 연관고리가 파괴되고 있는 현실, 고전적인 학생사회 조직틀거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일 것이다. 동시에 지적되어야 하는 것은 현재의 대학인들이 기성세대와 비교하여 세계관적․실천적 스펙트럼이 그다지 확장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X세대’라고 명명될 정도의 자유분방함도 어떠한 의미에서는 이미 주어져 있는 가치체계 안에서의 발랄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인식해가고 자신의 존재기반을 뛰어넘은 실천을 벌여낼 수 있는 발랄함은 우리 세대에 있어서도 여전히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학생운동이 이와 같은 대학인의 자기검열을 뛰어넘을 수 있는 생산적인 프로젝트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위기의 진실인 것이다. 90년대 대학인의 삶의 원리로서의 ‘자치’라는 언명도 선언 이상의 내적 질서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현실과의 긴장성과 치열한 실천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80년대에 우리의 선배들이 독재권력에 맞서는 선도적인 투쟁을 통해 학생회라는 학생자치질서를 구축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시기 조직건설의 문제로 한정되지 않는 시대정신의 구현, 자치질서의 전면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현재의 학생운동 탄압을 학생자치에 대한 공세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학생운동 탄압 분쇄가 아니라 보다 대중적으로 ‘대학자치의 확립’이라는 기치로 세워내는 것은 온전히 학생운동진영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한/노/정/연

1996-08-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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