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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적 노동자 네트워크-NAFTA의 뒤안길에서

현장에서 미래를  제14호
사이라 키더와 메리 멕긴

국 ◦ 제 ◦ 노 ◦ 동


초국적 노동자 네트워크
- NAFTA의 뒤안길에서


사이라 키더(Thalia Kidder)와 메리 멕긴(Mary McGinn)



이 글은 New Internationalism (95년 여름, 제 14호) Social Policy에 실린 Wake-up NAFTA를 번역한 것이다. 필자인 사이라 키더는 노조와 공동체 활동의 조직가이며, 지금은 미네소타 대학 국제 발전학과 대학원 과정에 있다. 메리 멕긴은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조직사업과 관련을 맺고 있는 노동 운동가이며, Mujer a Mujer(여성 대 여성)와 ‘초국적 정보교류’라는 조직의 일원이다.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들어서 나타난 협의회와 네트워크, 소식지, 행동, 조직화된 캠페인 등의 폭발현상은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실천과 관련된 것이다. 초국적으로 조직화된 노동자란 현상이 새로운 것은 아닌데, 국제 노동조합 사무국(ITS)과 세계적 규모의 노동자 연맹은 100년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경제적 통합조약 주변의 다국적 연합은 점차 강력해 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초국적인 조직작업은 조직적 풍부화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 형태와 목적의 다양성에 비추어 볼 때,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부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초국적으로 조직하는 것은 공통된 사용자에 대항하여, 작업장에서의 계약적 이슈에 대해 자신들의 교섭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미주와 아시아, 그리고 유럽에 산재한 포드 자동차의 노동자들은 1987년 회합을 가져 신기술의 증가와 해고, 그리고 효과적인 작업장내 전략에 대해서 논의했다.
또 다른 네트워크는 노조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비교섭적 특정 사안들이 기존의 노조 지도부에 의해서 제기되지 않았을 때나 노조와 관련된 국제적 사안들이 기층 조합원들의 참여를 제약하는 형태로 구조화될 때, 형성되기 시작했다. 기존의 국제 조직 회합에 참여한 대표들이 일반적으로 연배가 있고 백인이고 남성인 지도적 위치의 인사에 한정되어지는 반면에, 국경을 초월하는 조직을 취하는 또 다른 채널의 경우 보다 젊고, 여성이나 유색인들을 포함한 기층 하부구성원들로부터 제기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기존 노조에 도전했던 멕시코시의 여성 의류 노동자들은 뉴욕과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아시아와 멕시코계 미국인 여성 의류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가족과 노조내의 여성 행동주의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공유했다.
노동자와 노조가 사회적 조직들과 연대를 추구하여 공동체의 발전이나 성문제, 그리고 건강과 환경문제 등의 공동관심사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적극 대처하기 위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의 증가는 역시 국경을 넘어선 조직창출이라는 목표에 불을 당겼다.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 미조직 노동자와 조직 노동자들은 페미니스트 건강 본부와 환경그룹 등과 회합을 가져 마킬라도라(수출 자유지역-역주)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로부터 발생하는 생식기능에 대한 위협에 대해 연구했다. 노동자들은 또한 일부 학자들이 지구적 상품 사슬이라고 부르는 지구적 생산과정에 연해서 조직되었는데, 이는 얼마나 그들의 국지적 문제가 국제적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가를 배우기 위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코코아와 설탕 노동자들은 유럽의 쵸콜렛 제조 노동자와 ‘지속 가능한 농업’이라는 주제를 연구한 연구자들과 만나서 농업분야의 초국적 기업의 행위에 대해서 서로 서로 교육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국제적 압력이 대규모 기관에 대항한 지방그룹에 의해서 제기되는 욕구를 증폭시킬 수 있을 때면 언제나 초국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해 왔다. 특히 파업에 대한 국제적 관심은 파업의 조직자들과 파업 참가자들에 대해서 기업과 국가에 의해 저질러지는 폭력의 강도와 범위를 약화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초국적인 노동자 네트워크의 경계가 다른 사회운동의 네트워크와 중복되며, 분명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연관고리의 대부분은 비공식적이며, 따라서 이것은 정책 입안자나 연구자, 노조 관리들에게, 국가간 조약주변에서의 로비 노력이나, 노조에 의해서 주도되는 증가추세의 국제적 캠페인처럼 가시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초국적 노동자 네트워크는 지난 20년간 중요한 세력으로 자리잡아 왔다. 네트워크는 국경을 초월하여 지역그룹들과 연결망을 갖고, 의식을 제고하고, 지도력을 배양하며 새로운 의제를 창출함으로서 보다 규모가 큰 제도내로 압력을 가한다.
결국 초국적 네트워크의 형성방식과 아울러 이러한 연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 대한 이해야말로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으며,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다음 세가지 일반화가 가능하다.
1. 일부 초국적 네트워크는 많은 노조의 활동가를 포함하고 있기는 해도 공식 노조와 연계를 갖지 않는 모임의 주도자(convenor)가 있거나, 노조를 넘어서는 연합을 형성한다. 네트워크 건설의 최초의 창설자들은 노조와는 다른 자원을 통해 형성되며, 이러한 자원에는 재단이나 교회, 그리고 학술적 기구 등이 포함된다.
2. 새로운 초국적 네트워크들은 비경제적 이슈를 매우 강조한다. 몇몇 목표와 목적들은 노동자와 기업의 교섭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도 있다. 네트워크들은 의식적 요소를 제고하고 그러한 문제에 힘을 실으며 기관의 정책이나 규범 등의 변화를 추구한다.
3. 새로운 초국적 네트워크는 위계적 형태로 조직되기보다는 네트워크(연결망 혹은 그물망-역주) 형태의 조직화를 시도한다.

네트워크가 잘 하는 일과 못 하는 일

네트워크는 공통의 소유주나 법적․계약적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계적 조직과는 다르다. 오히려 상호간에 교류되는 연대적 행동은 장기적으로 독립적인 관계에 의해서 주도된다. 정치학자 마가렛 케크와 케스린 시킨크에 따르면, “초국적 문제를 다루는 네트워크는 어떤 이슈에 대해 공유된 가치나 공통의 언술, 정보․서비스와 밀도있는 교류에 의해 함께 묶여진 국제적으로 일하는 행위자들의 적절한 세트를 포함한다.” 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은 ‘관심을 끌고 행동을 자극하며, 정보와 증언의 자원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이슈를 형성하는 것에 의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국제적이고, 지역적인 논쟁에 불어 넣는다.
또한 네트워크는 위계적인 조직에 비해 유연하다. 정보의 밀도있는 교환은 네트워크 참가자들에게 뉴스를 확산하도록 하며, 정보를 빠르게 해석하도록 한다. 행위자들은 다른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무형의 자원에 의존함으로서 상호이익을 얻는데, 이는 ‘다른 사람을 희생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권리를 배척’하는 것이다. 상호성과 독자성, 그리고 타인에게 빚지지 않는 정신이야말로 장기적으로 네트워크의 여러 진영을 결속시키며, 학습과 혁신의 유인을 만들어 낸다.
다른 한편, 위계적 조직은 대량 생산과 분배에 적절한 것인데, 생산에 대한 편중은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단위와 질을 획일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노조의 맥락에서 볼 때, 제공된 ‘생산물’이란 상당정도 균일한 계약과 선거를 위한 대량의 정치적 동원을 의미하며, 따라서 사정이 이러할 때 커다란 위계조직이 가장 적실한 것이었다. 중앙집중화 되어 있거나, 위계적인 조직은 힘을 한데 집중시킬 수 있고, 책임감을 불어넣는 절차 등을 발전시킬 수 있다. 네트워크가 반드시 보다 민주적인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힘의 동학이란 양 조직의 형태내에서 공히 명백하며, 이는 문제를 제기할 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는 연합과도 또한 다르다. 연합은 공동의 목표, 즉 어떤 계약이나 입법 캠페인, 혹은 선출된 관료나 기업에 대한 특정한 요구 등에 초점을 맞춘다. 연합의 구성원들은 단일 전략을 추구하거나, 혹은 중앙을 통해 조정된 일련의 실천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지만,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추구할 것이다. 네트워크는 공동의 전망이나 원칙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준다.
네트워크는 다음의 경우에 형성될 가능성이 큰 데, 그것은 (1) 사람들이 복합적인 문제를 다루기 위해 대량의 독특한 정보를 수집하고 해석할 필요가 있을 때 (2) 노동자들이 새로운 정보기술과 여타 운동(여성, 원주민, 환경조직)의 국제적 회합과 연관될 때 (3) 조직간의 의사소통 채널이 막혀 있을 때의 경우이다. 예를 들어 시민들이 자신이 선출한 관료에게 어떤 요구를 제시할 통로가 차단되어 있는 경우, 제반 그룹들은 그 나라 밖에서 정보를 모으고 공개하여 자신의 정부에 대한 압력을 증가시킨다. 마찬가지로 기업이나 제도적 노조들이 노동자들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을 때, 노동자들은 정치적, 경제적 요구를 증대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초국적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

초국적 네트워크의 경험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 들어, 국경을 넘어선 지구적 차원의 재구조화 과정이 대해 노동자들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노동자들은 정보와 다양한 조직의 전략 교류를 촉진해 줄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참가자들은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보다는 노동자의 네트워크 형성과 다른 운동과의 연계를 고무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몇몇 지속적인 네트워크에는 호주에 있는 ‘호주와 아시아 노동자 연대’, 스페인의 ‘Comisions Obreas’, 영국의 ‘브라질 네트웍’, 디트로이트에 있는 ‘Labor Notes’, 그리고 암스테르담과 상 파울로에 있는 ‘초국적 정보교류소’, 브라질에 있는 ‘IBASE 노동자 교육센터’, 로마에 있는 ‘IDOC’등을 들 수 있다. 처음에는 소규모의 국제모임이나 등사 인쇄된 소식지 등으로 시작한 일부 그룹 들이 개최하는 협의회(conference)에 현재에는 수천명이 참여하고, 네트워크가 발행하는 수백종의 출판물이 각 대륙의 독자에게 전달된다.
다음의 예는 노동자 네트워크의 다양성과 복합성, 그리고 중요성에 대해 시사점을 준다.
유럽의 노동 분야 연구자들과 조직들이 1979년에 창설한 초국적 정보 교류소(TIE : the Transnationals Information Exchange)는 개발 도상국내 혁명운동과의 연대를 위해 일하고 있다. 초기 자금은 종교, 교육, 그리고 노동자 조직에게서 나왔다. 초국적 정보교류소의 설립의도는 초국적으로 단결하는 힘의 증대 현상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의 국제적 포럼을 개최하는 활동 등을 통해 한마디로 1983년의 TIE 소식지에 따르면, ‘노동운동내에서의 국제전략의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초국적 정보교류소는 또한 노동조합 하부 대중의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본 조직의 목표는 ‘노동자들간의 접촉’을 증대하고, 노동자의 경험이라는 관점을 통해 제반 이슈를 토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TIE 협의회는 “폐업과 유휴 노동자, 그리고 임금과 같은 단기적 문제에 일차적 관심을 지녔다.” 그러나 여전히 ‘노동운동의 민주화’와 ‘시장적 힘의 부당성과 그 퇴영적 힘에 대한 대안 그리고 … 보다 분명한 비젼’을 추구했다.
TIE의 조직화를 이끈 동력은 노조의 부적절함이 아니라 다른 사회 운동의 견해와 정보를 통합함으로서 복합적인 문제에 대처할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한 대안적인 관점에는 “단체교섭의 범위를 확대하고, 단지 산업영역에 있는 노동자 뿐 아니라 여타 사회그룹의 이득과 열망을 포함하기 위해서 … 단지 사용자에 의해 지시되는 제반 조건에 대해서 싸우는 것으로부터 다른 쟁점으로 이동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TIE 회합을 통해, 코코아 노동자들과 관련해서는 세계은행의 프로그램과 생물학적 기술의 문제, 그리고 자동차에 대해 과도하게 의존해 있는 세계 교통체계의 대안에 관한 문제, 그리고 여성의 가사와 직업 사이의 딜레마는 물론 임금차별 등과 같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농업과 무역정책을 위한 기구(IATP)는 지역적 수준에서부터 국가적 또는 국제적 수준에 걸쳐 있는 농민 연합체를 만들기 위해 일하고 있다. 미네소타와 캐나다의 가족적 농업을 방어하기 위한 조직들은 처음에는 미국의 남동부에서 흑인과 백인 농민들을 함께 조직하는 작업에 관계했다. 가 족 농장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조직된 수뇌회담(summit)은 50여개 나라에서 참가하였다. 1990년 12월에 3만명의 농민들과 일반 시민들은 브뤼셀에서 GATT 협상에 대해 시위를 벌였는데, 노동자 작가 제레미 브레쳐에 따르면, 시위대에는 북미에서 온 100명의 농민, 200명의 일본 농민과 한국과 아프리카, 남미에서 온 다수의 농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회합과 네트워크를 통해서, 농업 투자와 생산, 그리고 식량 가공산업에 대한 초국적 기업체의 독점에 관한 정보가 해석되었고, 축적되었다. 네트워크를 통한 교류는 개별 농민들을 스스로 사적 기업인으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농업기업체에 대해서 공동의 요구를 지닌 노동자들로 변모시켰다.
그렇다면 어째서 농민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국제적으로 일을 도모하려고 하는가? ITAP의 사무장 마크 리치는 “국내에서 해결을 요하는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있지만” GATT와 같은 사안에 대해서 “우리는 함께 일해야만 한다”라고 믿고 있다. “기업들은 국내적 법률의 효력을 피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농민들은 “바로 여기 국내에서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가능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에 있어서, ITAP와 같은 주도자들이 외부 자원과 함께 핵심적 행위자로 등장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일부 농민 네트워크는 다른 사회운동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특히 중앙 아메리카와 함께 하는 미국, 캐나다 연대운동 그리고 환경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까지 조직이 유지되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은 특히 북미와 아시아에서 초국적 연대를 형성해왔다. Mujer a Mujer(Women to Women ; 여성 대 여성)은 멕시코의 주택문제 운동가들이 미국 남부를 방문한 후, 1986년에 창설했다. ‘미국내 자발적인 여성집단’이 뒤이어 조직을 형성했으며, 지속적으로 교류를 증진시켰다. 그러한 사례가 흔히 보여주는 것처럼, 중산층 여성들이 선도적으로 초국적인 접촉을 촉진했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실무요원의 자원자가 되었다.
‘여성 대 여성’에 의해 조직된 ‘경험 교류’는 다음의 세 부문, 즉 도시빈민 여성과 멕시코와 멕시코계 레스비안 여성 그리고 노조에서 일하는, 특히 독립적인 ‘September 16’ 여성 의류 노조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멕시코와 미국에서 여러 차례의 방문과 협의회를 개최한 후, 드디어 1989년 11월에 ‘여성 대 여성’은 멕시코 시티에서 ‘여성의 경험교류를 위한 제1차 국제협회’를 창립했는데, 여기에는 아시아계 이민 노동자 옹호그룹과 국제 숙녀의류 노동자 연합을 통해 조직된 노동자를 포함하여, 미국과 멕시코, 한국, 그리고 과테말라로부터 50명의 여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경제통합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했고, 멕시코와 미국의 여성 노조원들간에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연대가 만들어지기를 소망했다. 그 반응으로 ‘여성 대 여성’은 멕시코의 노조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지도자들과 함께 장기적인 ‘지구적 차원의 전략 학교’를 개교했다. 1992년 11월, ‘여성 대 여성’은 대륙 통합문제에 대한 3국 여성노동자협의회가 조직되는데 일조했다.
‘여성 대 여성’과 여타의 여성노동자 네트워크의 초점은 공동 관심사나 공동의 경험을 중심으로 미국과 멕시코 노동자들 사이의 직접적인 회합을 통해 지도력과 지원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직가들은 양 나라의 경제는 이미 연관된지 오래인데, 지역그룹,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의사소통의 채널을 거의 확보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 조직의 목표는 방문과 교육, 그리고 특정의 교류를 통해 장기적으로 친밀한 인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테네시 산업 보존 네트워크(TIRN)’는 1989년에 창설됐는데, 여기에는 ‘Highlander Center’와 ‘Almagamate 의류, 직물 노동자 연합’, 지역 공동체내 여러 집단들, 그리고 포드 재단으로부터 자금이 지원되고 충원되었다.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회합이 역시 TIRN의 국경을 초월한 작업의 핵심이다. 수년동안 TIRN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 접한 상대방 지역에 대한 방문을 조직했는데, 이러한 미국-멕시코 국경이야말로 그들의 회사가 재입지한 곳이었다. 자금 조달 역시 가능했는데, 그 이유는 TIRN의 소집자들이 기금을 내놓은 공동체와 연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초국적 연결은 국내 회의에 참석하는 전문가적 인사들을 통해 촉진되었다.
TIRN의 구성원들은 정보를 수집하여 해석하고, 그러한 정보를 노동자들에게 힘을 불어넣고 동원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변호사이자 TIRN의 활동가인 프랜 앤슬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보는 도움이다. 당신은 자신의 삶이 엉망이 된 해고 노동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해고가 다소 노동자 자신의 실수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어떤 패턴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발견할 때 …, 그것이 우리가 가져다 준 거대한 자원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도록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이 발생했는가를 파악하도록 하는게 가능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로 충분한 것은 아닌데, TIRN의 수잔 윌리엄스는 다음과 같이 확신한다. “사람들이 교류를 하는 것은 엄청난 교육적 경험이며, 그러한 학습과 활동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다른 지역의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 걸맞는 일정한 하부구조 역시 필요로 한다.”
여성조직들에 의해서 형성된 초국적 네트워크는 여러 가지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네트워크들이 표방하는 목표는 특정한 계약이나 법적․제도적 승리보다 개인과 집단에 대한 실제적 힘의 부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공동의 토대를 창출하기 위해서 통계적 정보나 계약적 언어보다 ‘경험의 교류’를 이용한다. 이러한 유형의 네트워크들은 변화와 자신들의 사업에 대한 평가를 위해 보다 장기적인 틀거리의 창출에 초점을 맞춘다.

장애요인

초국적인 노동자 네트워크들은 그 조직화 과정에서 동일한 문제점에 직면하는데, 그러한 문제점중 다수는 다양한 독립적 성원들 사이의 힘의 동태성이나 중앙집중화된 조직에서나 적절한 동원과 캠페인 같은 사업을 조율하는데 따른 어려움과 관련된 것이다.
TIE 협의회를 조직한 활동가들은 다양한 갈등에 대처해 왔다. 초기에 참여자들은 독립적 기금의 결여와 연구자들의 우세를 인정했다. 1980년대 중반에 TIE는 일부 국제적 수준의 노조들에게 구성원도 없이 ‘너무 좌익적’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훗날 벌어진 논쟁은 적절한 후속작업의 결여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여기에는 ‘너무 많은 나라’가 협의회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선진국과 제3세계 참가자들이 직면한 서로 다른 이슈들과 관련하여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반응으로 TIE의 실무진이 재편성되었고, 지역협의회가 개최되었다. 또한 구성원들은 ‘남(south)과 남(south)’의 교류를 추구했는데, 여기에서 제3세계의 노동자들은 공동의 문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노출 프로그램’이 협의회를 통해 만들어졌는데, “이를 통해 노동자들은 서로 다른 구성원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는 이들이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참여와 힘의 일부 ‘불균형’한 분포에 대해 네트워크가 완전히 면역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선진국과 제3세계 그리고 전문가와 노동자 사이의 미묘한 힘의 동학과 아울러 기금과 후속작업의 문제 등은 협의회의 평가를 통해 빈번히 제기되는 주제이다.
‘여성 대 여성’ 역시 하나의 조직으로, 그리고 여성 노동자의 네트워크의 촉매자로서 많은 장애요인에 직면해 왔다. 첫째로, 유색 인종의 여성을 백인 중산층 여성들의 공동기금내로 통합하는 문제는 어려운 일이었다. 1989∼1990년에 ‘여성 대 여성’은 멕시코와 멕시코계 미국인 여성을 공동 기금마련을 위해 충원키로 결정했다. 이것은 ‘여성 대 여성’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해 왔던 백인여성들에게 의존하는 대신, 번역가와 언론 활동을 통해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실무자들에게 급여를 제공하기 위해서 돈을 모으는 과제를 제기했다. 합류한 최초의 멕시코계 미국 여성은 작업 유형과 전망에 대해 비판했다. 언젠가의 네트워크 회합에서는 모든 의류 제조업자들은 부유한 유태인이라는 판에 박힌 생각이 멕시코와 유태인 출신의 노조 참가자들 사이에 갈등을 야기했다. 미국에서 온 멕시코계 여성들은 멕시코 여성을 만나기를 꺼려했는데, 이는 멕시코의 여성들이 멕시코인들의 투쟁에 대해서 자신들의 견해표명을 요청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여성 대 여성’ 네트워크의 기금과 자원의 문제는 항상적인 문제가 되어 왔으며, 느슨한 네트워크 조직 형태에 의해 더욱 증폭된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딜레마와 같은 것이었다. 또한 조직은 여행과 상호 방문을 통해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후속 프로그램이 결여되어 있었다.

조직형태의 결합

초국적 노동자 네트워크가 주도한 캠페인 중 규모가 크고 성공적이었던 것들 중 하나는 과테말라내 코카콜라 노동자를 위해서 그들과 함께 전개한 캠페인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코카콜라 캠페인이 위계적인 조직과 네트워크, 그리고 연합조직의 힘을 함께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과테말라 시티의 코카콜라 노동자들은 1970년대 후반, 군사독재의 폭압적 상황에서 그들의 노조인 STEGAC의 승인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들의 조직적 노력은 군부와 미 텍사스인 소유의 콜라병 제조회사에 의해서 고용된 악당들에 의해 자행된 폭력과 부패한 기업노조의 반대에 직면했다.
코카콜라 캠페인에는 ‘기업의 책임성을 위한 종교간 본부’(Interfaith Center for Corporate Responsibility)에 의해 주도된 다수의 종교조직과 여러 나라에서 온 노동자와 학생, IUF 그리고 식품 부문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국제 노동조합 사무국(International Trade Secretariat)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투쟁은 부분적으로 국제적인 성과를 얻었는데, 왜냐하면 코카콜라가 너무 보편화되어 있음으로 해서 조직가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시킬 수 있었다. 캠페인은 코카콜라 모회사가 자회사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아이디어(혹은 규범)를 중심으로 국제적 토론을 배치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이것은 모든 코카콜라 노동자들이 상징적으로 ‘공통의 사용자’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많은 사람들과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국제적 수준의 노조의 힘은 캠페인을 통해 핵심적 요인이였음이 드러났다. 네트워크 혼자만으로는 아마도 그렇게 빠르게 이처럼 포괄적인 동원을 조직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노조와 학생 그리고 종교 조직 내의 네트워크는 캠페인을 확대시켰고, 코카콜라의 주주들과 정부의 행동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캠페인의 힘을 강화시켰다.
초국적 노동자 네트워크(TWN)의 유효성은 강력한 지역조직에서도 역시 예견되고 있다. 지역노조인 STEGAC 활동의 두 가지 측면은 장기적 투쟁을 위한 토대를 형성하는데, 먼저 조직의 구성원들은 스스로를 초국적인 위상으로 위치시켰고, 참여를 통해 힘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노조의 조직사업은 비 작업장적 이슈와 요구 사이에 가교를 놓았다.
독립적인 관계에 기반한 네트워크는 노동자의 초국적 조직화에 효과적인데, 왜냐하면 그러한 네트워크는 신속한 정책결정과 시기적절한 정보의 교류, 그리고 참여를 통해 하부대중과의 건설적 관계를 허용해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페인과 하부토대, 초국적 조직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보다 커다란 책임성과 확고한 재정적 기반을 지니고 있는 몇몇 중앙 집중적인 조직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한다.
네트워크는 지구화의 경제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우리 스스로 이해하고, 그러한 관계의 문제를 재형성하도록 자극한다. 많은 노동자 네트워크의 유연함과 장기적 전망은 시민권과 조직의 구성원이나 전형화된 실천형태라는 협소한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공동의 토대’를 건설한다. 상호연대를 위한 이러한 모색은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의 힘이라는 전망의 표현이다. 지난 20년간의 노동자 네트워크의 폭과 깊이는 우리에게 풍부한 경험과 미래의 조직사업을 위해서 상당한 교훈을 제공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노/정/연

(옮긴이 : 최형익, 서울대 정치학 박사과정, 「노동과 정치」연구팀 간사)

1996-08-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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