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선거정치(1)
지상강좌
노동자 계급과 부르주아 선거정치
김영수 / 한노정연 부소장
1. 문제의식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 시즌만 맞이하면 보수
언론이 이끄는 가운데 온 나라에 ‘말의 정치’가 난무한다. 억
단위 돈의 규모를 나타내는 40당 30락이니, 후보자간 혹은
정치세력간의 연합을 의미하는 새로운 영문 이니셜이니, 후보의
정당성 시비니, 그리고 인민재판 형식의 무슨 무슨 심판이니
등이다. 노동자 계급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시즌만큼은 노동자
계급의 후보를 당선시키자, 보수적인 정치세력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의 상황을 이용하여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달성하자 등. 이러한 현상은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각종의 선거,
예를 들면 2006년 5월의 지방자치선거, 2007년의 국회의원선거와
대통령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는 민주노동당도
이러한 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하거나 지지율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노동자들도 자신의 투쟁으로 쟁취한
선거정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후보자로 직접 나서거나 혹은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을 지원한다.
역사적으로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투쟁으로 선거정치를
쟁취하였다. 자신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이나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위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부르주아 계급은
이러한 위임제도를 이용하여, 노동자 계급이 정치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저지하거나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투쟁을
억압하였다. 즉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를
선거정치로 협소화시키면서 선거정치 이외의 노동자 계급정치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들의 이해를 보장하고
있는 법과 제도의 공간에서 전개되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은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적 허용공간을
각종의 투쟁으로 확장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투쟁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 계급은 선거정치만으로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시킬 수 없다는 것을 체화하고 있고 또한 선거정치가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보장하는 국가기제로 전락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부르주아 계급의 선거정치가
내포하고 있는 다양한 의미, 즉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의 선거정치를 규명하려 한다.
2. 노동자 계급과 2004년 4.15총선
민주노총이 내세웠던 지난 4.15총선투쟁의 목표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거투쟁을 통해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통일단결을 추진, 진보진영의 정치적 단결과 민주노총의
정치활동 강화, 민주노총 전 조직의 역량을 선거투쟁에 투여,
노동자 후보의 국회진출, 조합원의 정치의식 제고,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민주노동당의 당원 확보, 선거투쟁에 필요한 기금의
확보” 등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조직적 지원과 지지를
바탕으로 2004년 4.15총선에서 299명의 국회의원 중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였다. 2명의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정당지지율을 13% 획득한 결과이다.
4.15총선의 이러한 결과에 대해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1948년 이후 최초로 의회에 진출,
진보정당운동이 이제야 본 궤도에 오르게 된 것 등을 내세우면서
감격의 만세를 불렀다. 의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은 그 동안
노동자 계급의 대안적인 정치세력으로서의 역할을 구축하려
하였고, 노동자·서민들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한 법·제도
개선투쟁을 전개하였다. 보수적인 세력이 독점해 왔던
의회활동의 새로운 전형을 창출하려 노력하였다.
조돈문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당원 및 지지표의 결과를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을 4.15총선에서 광의의 노동자 계급에게 지지를 받아
승리한 계급정당으로 규정하였다. “당원의 구성을 보면, 2004년
4월 25일 현재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39.2%에 달하는
사무전문직을 중간계급에 해당하는 임노동계급으로 간주하고
있다. 조돈문,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중심으로」, 한국산업사회학회 2004년
춘계학술대회, 2004년 5월 7일.
을 합한 전체 임노동계급이 69.5%이다. 그리고 정당투표에서
민주노동당에 투표한 사람들의 직업별 비율은 다음과 같다.
농·임·어업 10.7%, 자영업 12.6%, 블루칼라 13.7%, 화이트칼라
23.0%, 가정주부 11.8%, 학생 14.3%, 무직 16.0%이다.” 조돈문,
2004년 4월 15일 조사 결과.
아무튼 광의의 노동자 계급은 4.15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선거에 참여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이 계급의식에
기반하는 선거정치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평가이다. 민주노총
공공연맹도 4.15총선의 결과를 이러한 평가와 비슷하게 규명하고
있다. “계급투표의 위력을 조직할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지고 정치세력화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의회진출은 민주노총 차원에서 7년여 넘게 꾸준히 실천해 온
결과이다. 이제야 비로소 진보정당운동이 본 궤도에 올랐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다. 조합원이 당의
정치활동과 별개로 생각하는 것을 극복하였다. 공공연맹은
8,500여명에 달하는 조합원들에게 교육하였고, 1,000명이 넘는
조합원들을 당원으로 가입시켰다. 총 연맹에 납부하는 돈을
제외하고 1억 8천만 원의 예산 중 1억 2천만 원의 기금을
모금하였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 「4.15총선
평가초안」, 2004년 5월.
그러나 노동자들이 선거에 참여해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하였다
해도, 그러한 노동자들의 계급적 정치의식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투표행위만으로 계급적 정치의식을 규명하기 힘들뿐만
아니라, 지역대표를 선출하는 한 표는 보수적인 후보를 지지하고
난 이후에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나머지 한 표로 민주노동당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노동자들은 불균등한
정치의식을 보유하고 있다. 사표를 방지하고자 하는 경향성이
내재되어 있어, 그 동안 보수정당 간에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보수정당에 투표하곤 했다. 지난 4.15총선에서도 이러한
경향성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의 낮은
지지율이 그것을 반증한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이러한
경향성을 부추기기도 했다. 한 표는 당선이 가능한 사람에게
찍더라도 정당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다른 한 표는 꼭
민주노동당에 찍어 달라고 했던 전략이 그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계급적으로 통일시키는 투쟁을 전개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을 위해 노동자들로
하여금 부르주아적 개혁에 안주하게 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제
노동자들은 당선이 가능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정당의 후보라도
지지해도 좋으니 정당투표만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면 되는
것이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 사람이 여러
정치노선을 동시에 지지해도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의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불균등하고 낮은
수준의 정치의식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최선의 선택’은 제도화되지
않는 정치조직이나 정치적 주체들이 부르주아 계급의 선거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적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은폐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의 선거정치를 뛰어 넘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투쟁을 최소화하려는 부르주아 계급의 의도와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3. 주기적으로 권력을 위임하는 계기
부르주아 계급의 선거정치는 법과 제도에 근거해서 주기적으로
실시된다. 사회구성원들은 그러한 법과 제도의 틀 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위임한다. 그런데 부르주아 계급의 선거정치는 권력을
위임하거나 위임된 권력의 정당성을 보장하는 절차이기도
하지만, 권력집행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수단이자
주기적(週期的)인 권력위임의 수단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권력의
주체들을 ‘정치적으로 소외시키고 대상화’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노동자 계급은 단 한 번의 절차로 권력을 위임하고 난
이후에는 일정한 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권력을 위임할 대상 중에서 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실질적으로 관철시키고자 하는 정치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은 부르주아적 개혁이나 개량의 외피를 쓴
부르주아 계급에게 자신의 권력을 위임할 수밖에 없다.
현재 대통령 선거는 5년에 한 번, 국회의원과 지자체는 4년에 한
번 씩 선거를 치른다. 최고의 논리는 위임된 권력의 안정적인
집행기간이 필요하고 또한 위임절차의 비용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판단한다면, 오히려 그
기간은 10년으로 연장해서 권력의 안정성과 비용의 최소화를
더욱 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기간을 연장하면
독재정치라는 비난과 저항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조치들은 취하지 않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은 오히려 이러한 주기적 권력위임을 이용하여
노동자 계급을 장기간 지배하고 있다. 단지 부르주아
계급정당이나 사람들만을 교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기성의 문제는 자신의 권력을 한 번 위임하고
난 이후에 다시는 자신의 권력을 통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환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권력을 위임받았던 사람이 부르주아
세력의 법과 제도를 준수한다면 말이다. 권력을 위임했던
사람들이 그것을 통제하거나 환수하려 하면, 그들은 오히려
부르주아 세력의 법과 제도를 준수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권력을 위임받았던 사람들로부터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은 부르주아 선거정치의 주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상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환수하려 한다. 파업과
같은 대중투쟁의 정치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노동자 계급은 이
외에도 자신이 위임한 권력을 실질적으로 통제하거나 환수할 수
있는 선거정치를 전개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동조합의 권력을
수립하거나 집행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는 선거정치의 본질적
의미를 살려 왔다. 노동조합 위원장에게 협상 권력을
위임하더라도 그 협상의 결과를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권력은 조합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들은 권력을
위임받은 노동조합의 위원장을 일상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4. 부르주아 지배세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계기
부르주아 국가권력은 자본주의 사회체제를 유지·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억압, 포섭, 동의를 유도하는
등의 통치전략을 구사한다.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통치전략에
통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부르주아 국가권력에
포섭되거나 혹은 부르주아 체제의 동의기반으로 존재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의 정당성을 선거정치에서 드러나는 투표의
결과를 내세운다. 2004년 4.15총선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74%에 달했다는 점을 내세우거나, 혹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이 13%에 불과하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 물론 노동자 계급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해석을 내세우면서 비판할 수 있다. ①부르주아 계급에 의해
구조화된 반공주의적, 지역주의적 투표 행태 ②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은폐하거나 엄폐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대중정당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미약 ③노동자 계급의 생활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적 장치 ④노동자 계급의 이해를 추구할 수
있는 계급정당의 부재 및 계급정치의 경험 미약.
그러나 부르주아 계급의 선거정치는 노동자 계급에게 ‘양날의
칼’로 존재할 수 있다. 한 날은 부르주아 계급의 국가권력에
대한 투쟁의 무기일지라도, 다른 한날은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주체나 노동자 대중들을 포섭하는 국가의 기제라는 사실이다.
특히 제도화된 국가장치들이 노동자 대중들을 포섭하는 기제이자
동의를 유도하는 기제로서의 역할을 맡을 경우, 노동계급의
계급이해는 획득되지 못한다.
민주주의 이행의 주요 판단지표 중에 하나가 ‘공정한
선거경쟁의 게임법칙’이다. 역사적으로 독재정권에서는
선거경쟁 자체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거나, 아예
사회구성원들의 선거참여 자체를 부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르주아 지배세력은 형식적으로는 자유로운 선거경쟁의 법칙을
존치시키지만, 실질적으로는 공정한 선거경쟁의 법칙을 만들지
아니한다. 노동자·민중들은 단지 불공정한 게임에 동원되어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면 그만이다. 소위 선거공영제가
그것이다. 선거투쟁의 제한, 선거참여의 제한, 소수대표제의
제한 등이 법의 테두리에서 합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공연맹 정치위원회는 4.15총선투쟁에서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성장이 큰 힘이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단위 사업장에서만 할 수 있는 사업을 개발하려 했지만, 개정된
선거법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결국 지원도 못하였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공공연맹 평가초안) 개악된
정치관계법에서는 “비례대표 후보자들의 선거운동 금지,
노동조합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 지구당의 폐지, 지구당
후원회제도의 폐지, 합동연설회 및 정당연설회의 폐지, 후보 외
어깨띠의 착용 금지 등이 규정되었다.” 사회구성원들을
정치적으로 소외시키는 법이다. 민주노동당은 4.15총선투쟁에서
이러한 악법을 준수하면서 선거투쟁을 전개하는 경향성을
드러냈다. 탈법적인 행위가 곧 비례대표 정당투표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논리가 주를 이루었다. 대중들로부터 표를 획득하는
최소한의 전술이었다. 그 동안 민주노동당을 정당으로
보기보다는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단체로 간주하는 대중적
시각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선거정치의
다수대표제는 지배세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최고의 수단 중에
하나이다. 양적인 폭력이 행사되고 있다. 49% 대 51%의 논리뿐만
아니라, 전체 유권자의 20-30% 정도가 참여하여 결정되는 각종의
보궐선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부르주아 세력들은 이러한
현상을 유권자들의 책임으로 전가시키고, 또한 권력을 위임하는
절차의 효율성을 앞세운다.
2004년 4.15총선에서 지역구의 후보를 선출하는 투표이든
비례대표의 후보를 선출하는 투표이든, 수구반동적인
자유(보수)주의 세력과 개혁적인 자유(보수)주의 세력을
지지하는 지지율은 평균 70% 이상이고, 약 40%의 사람들이
투표를 거부하였다. 투표의 결과만을 가지고 본다면, 이들
세력에 대한 사회적 지지기반이 강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상은 두 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진보적인 정치세력이 투표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활동만을
가지고서는 그 지지기반을 약화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부르주아 정치질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세력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후자의 세력들은 대부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 원인을 어떻게
규정하든, 노동자 계급의 정치주체가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으로 이런 무관심 세력들을 정치의 주체로 전화시켜야
한다.
5. 정치권력의 독점화를 추구하는 계기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들에게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문제는 투표를 마친 노동자들에게 투표 이외의 정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표를 통해 권력을 위임받은 정당이나
사람들은 선거정치 이외의 모든 정치를 독점한다. 만약 권력을
위임했던 노동자들이 그들의 독점적 정치에 관여하거나 통제하려
하면, 부르주아 계급은 즉각적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국가장치를 동원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정치를 독점화하려 한다. 그 구체적인 양태는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네트-웤의 구성, 절차적인 권한의 형성과 집행, 소수
엘리트의 특권적 체제 강화, 정치적 대상화나 소외의 강화
등이다.
1) 정보를 독점할 수 있는 네트-웤 구성
선거정치를 통해 의회권력을 확보한 정당은 국가의 각종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권한은
대부분 권력을 위임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당의 계급적 이해를 위해 사용된다. 의회권력과 사법권력,
그리고 행정권력의 상호 네트-웤이 그 주요 수단이다.
물론 유권자들은 그러한 권한의 행사에 대해 직접적으로
저지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선거정치를 통해 권력을 위임한
대의제의 원칙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의 조건을 내세우면서 대의제의 한계가
은폐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의제의 한계는 “주권자들에게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어 그
정보가 공유되고 주권자들의 의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토론된다면, 그리고 그러한 주권자들의 의사가 제도적으로
국가권력의 행사과정에 반영될 길이 마련된다면, 비록 주권의
주체와 주권의 행사자가 분리되더라도 주권자의 의사가
행사자에게 강제될 계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주의 원칙, 즉
주권자들이 ‘평등한 주권행사 및 주권에 대한 주권자의
자기실현’을 위한 투쟁의 성과이자, 권력주체들이 권력체제를
변동시킬 권리를 몸소 행사하는 것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의회에서 권리를 위임받은 자들이 권리를 위임한 사람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권력을 제멋대로 행사하고, 정책의
‘효율성’을 내세워 민주적인 정책결정 과정을 배제하거나
형식화하는 현상이 보편화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이는 권력의
주체가 전도되는 ‘위임 권력의 이중성’, 즉 위임하는
과정으로서의 권력과 집행되는 과정으로서의 권력이 주기적으로
역전되는 권력행사방식인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한계는 대의제로 운영되는 모든 정치과정에 대한
대중들의 참여와 통제장치가 보장되고 확보되는 과정, 즉 권리의
보유자와 행사자간의 관계에서 권력주체의 의사(意思)가 권력
행사자에게 강제되는 과정에서 극복되어야 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평등한 권리행사는 보장하더라도 권리에 대한
주권자의 자기실현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2) 절차적인 권한의 형성과 집행
민주노동당이 2004년 4.15총선을 통해 의회에 진출하자,
보수주의 진영은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조합운동과
의회에서의 정치는 다른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의회정치의
틀에서 합리적인 정당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의회에서조차
대중투쟁의 방식을 동원할 경우, 민주노동당은 합리적인
대안세력을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에 민주노총
공공연맹은 민주노동당의 의회활동에 대한 기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민주노동당이 의회에 진입했다 해도, 투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빨 빠진 호랑이, 빛 좋은 개살구가 될
것입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을 믿고 더 자신있게 투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에서 분산된 이슈와 투쟁을
집약시키고, 민주노동당의 정책투쟁과 결합시키는 등 노동자
출신의 국회의원을 잘 활용하려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회공공성 강화가 우리 사회의 중심 과제로 부각될 수 있도록
현장투쟁을 전개해야 할 몫은 여전히 노동조합에 있다. 이 힘을
받아 국회 안에서 지금까지 소외되어 왔던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투쟁의 몫은 민주노동당의 것이다.”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동조합연맹, 『공공연맹』, 2004년 5월
호.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의회활동은 의회 내에 존재하는 절차적인
권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비정규법안 관련하여
환경노동원회 위원장이 경호권한을 발동시켜 법안을
통과시켰듯이, 부르주아 의회의 절차적인 권한은 선거정치와
무관하게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보호하는 다중적
국가장치이다. 만약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이해를 보장할 수
있는 법안을 부르주아 의회에 제출할 경우, 그 법안은 부르주아
의회의 다양한 절차를 거치면서 법안의 본래 취지와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입법 전문위원 검토 단계, 소관 법안 심사
소위원회, 법제사법 위원회, 그리고 국회 본회를 거치면서
말이다. 또한 이러한 단계를 거치면서 통과된 법안은 행정권력의
주도하에 제정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으로 노동자 계급의 이해와
무관하게 또 한 번의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다.
3) 소수 엘리트의 특권적 체제 강화
노동자 계급은 선거정치를 통해 소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위임한다. 한국의 경우, 한 명의 대통령이나 299명의
국회의원들에게 권력을 위임한다. 부르주아 세력도 선거정치의
시기에 가끔 지적하다시피, 한 명의 국회의원이 수 십 만 명에
달하는 유권자들의 권력의지를 실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지역으로 구분되는 선거구 제도는 유권자들의 수가
불균등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위임을 정당화한다. 만약
10명의 대통령이 한 국가를 집단적으로 운영하게 하거나 혹은
국회의원의 수를 3000명으로 확대하자는 것에 찬성할 부르주아
세력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이러한
소수 특권화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의 목표를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첫째로는 부르주아 계급정치의 정당성을 유지·강화한다.
①각종의 권한을 소수에게 집중해서, 정치적 지배블록을 보다
쉽게 구축할 수 있다.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 간의 부르주아적
관계를 구축함과 동시에 지배적인 정치 엘리트의 재생산을 보다
쉽게 추구할 수 있다. ②정치적 지배블록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일상적인 생활의 공간에서
정치권력에 의존하거나 두려워하는 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③부르주아 계급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적 관계뿐만
아니라 이해관계를 보다 쉽게 구축하거나 조정할 수 있다.
둘째로는 노동자 계급정치의 정당성을 폄훼하거나 약화시킨다.
①정치권력의 사회화를 저지할 수 있다. 부르주아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정치적 권한이 노동자 계급이나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확대되는 것을 방지한다. ②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다수지배의
논리를 배격하는 대신 정치적 생산성과 효율성의 논리를
극대화할 수 있다. ③노동자 계급의 다양한 ‘투쟁의 정치’가
정당하지 못하다는 논리를 강화할 수 있다. ‘투쟁의 정치’를
주도하는 권력주체들을 부르주아적 선거정치를 거치지 않은
불법적·폭력적 세력으로 전도되는 경우이다.
4) 정치적 대상화나 소외의 강화
정치적 대상화나 소외는 ‘정치권력을 생산한 주체가 실질적으로
권력을 향유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권력으로부터 지배받는
현상’을 의미한다. 권력을 보유한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위임하고 난 이후에 ‘자기권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하거나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이러한 경우를
극대화한다. 한 번의 선거정치로 획득한 위임권력의 절대적
가치를 유지하지 않는 한, 권력을 위임했던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권력을 되찾으려 하거나 간섭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대상화와 소외의 대표적인 현상 중에 하나가 정치적
무관심이나 기권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유권자들의 무책임에서 찾으려 한다. 자신의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몫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이 확대되는 현상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①부정과 부패로 일관하는 부르주아 정치권력을 방관자적 태도로
비판하는 현상 ②정치권력에 대한 관심과 간섭을 축소시키려는
부르주아 지배세력의 조작 현상 ③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개혁적이라고 생각했던 부르주아 정치권력의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포기하는 현상 ④정치적
참여나 동원의 성과와 혜택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정치권력의 도구로부터 탈피하려는 현상 ⑤가중되는
생활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적 활동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상 ⑥자신의 희망을 정치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조직적
주체의 결핍 현상 ⑦정치적 참여나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국가폭력을 인식하고 있는 현상 ⑧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는 정치적 지배블록의 존재조건을 인정하는 현상.
물론 노동자들도 정치적 소외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부르주아 정치권력은 오히려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소외시키려
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저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가 단지 선거정치의 시기에
투표에 참여하면 그만인 것이다. 만약 노동자 계급이
선거공간에서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만으로 간주되거나
득표확대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면, 노동자 대중들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를
당선시키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6. 계급적 이해를 대중적 이해로 전화하는 계기
부르주아 계급은 대중정당의 형식과 내용을 선점하였다. 원래
대중정당은 ‘명망가 정당’에 대한 투쟁의 성과로 출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계급은 그러한 투쟁의 성과를
가로챘다. 부르주아 계급은 대중정당이 대중들의 자유로운
참여나 탈퇴, 자발적인 지원과 지지, 계급적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하고 지원하는 몰계급적 대중들의 이해를
추구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그래서 부르주아 계급은
이러한 의미의 대중정당을 매개로 하여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은폐하거나 엄폐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당의 성격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부분에
대한 판단기준으로 규명할 수 있다. ①정강정책 ②정당의 구성원
③정당의 활동 및 운영 ④자본과의 관계 ⑤노동자·민중과의
상호관계 등이다. 이러한 기준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부르주아 정당들은 대부분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적
좌표를 내세운 상태에서 자본의 이해에 조응하는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활동을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민중들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정당의 성격은 최소한 다섯 가지의 판단기준들을
총체적으로 반영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조차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고 강화하는 정당이라고 규명하기도
한다. “민주노동당은 사회민주주의적 이념조차 정강정책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홍세화와 조승수 대담, 한겨레신문, 2004년 5월.
그런데 부르주아 계급정당은 이러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판단을
하기 이전에 이미 대중적인 정당으로서의 이데올로기적 수단을
확보해 버렸다. 국가 이데올로기와 민족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구성원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정당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그러한 역할과 기능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바로 선거정치이다. 각종의 공약과 정책들은
몰계급적인 구성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추상화된다.
개별적 수준의 사회적 계약관계를 토대로 하는 국가의 이해가 곧
모든 구성원의 이해라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노동자·민중들은 선거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이해를
실현할 수 있는 정당을 지지하고 지원하지만, 개별적인 참여의
방식을 뛰어 넘지 못하고 있다. 개별적인 참여를 총화하는
주체는 오로지 국가와 민족일 뿐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통치전략에
조응하는 노동자·민중의 선거정치인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민중들에게 자유주의 이념의 토대인, ‘자신의 권리를
자신만이 행사할 수 있다.’는 개별적인 선택의 권리만을
부여하고 있고, 그러한 권리조차 기표소를 만들어 은밀하게
행사하게 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그러한 권리행사의 방식을
비밀투표라는 것으로 정당화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노동자·민중들의 존재기반과 선거정치를 고립시키려는 목적, 즉
‘외부로부터의 고립’된 상태에서 선거정치의 권리를 행사하게
하려는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이 쉽게 블록투표 혹은 집단투표의
방식 등을 도입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7. 비제도적인 정치투쟁을 고립화하는 계기
노동자·민중들은 선거정치 이외의 다양한 대중적 투쟁의 정치를
전개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 파업투쟁의 정치, 봉기투쟁의
정치, 무장투쟁의 정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 계급은
노동자·민중들에게 그러한 투쟁의 정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대중적 투쟁의 정치를 체제와 국가를 위협하는 폭력으로
매도하거나 국가장치를 동원하는 억압만을 부여할 뿐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공정한 게임의 법칙’에서 경쟁하는
선거정치를 민주주의의 한 전형으로 간주한다. 사회구성원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권리를 가지고서 이러한 게임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의 이면에는
부르주아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폭력을 배제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만이 정당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는 타협이나 대화를 거부하는
정치주체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로 작용한다.
국가가 대중적 투쟁의 정치를 주도하는 주체들을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의도이다.
부르주아 계급은 오로지 국가만이 공적권력을 형성·운영하는
주체로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국가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있는 노동자·민중들도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각종의 국가장치들을 이용하여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에게 폭력을 행사해 왔다.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사상의 자유를 탄압했던 국가보안법이나 사회안전법, 집회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상실했던 사법기관과 검찰,
반체제적이거나 반정부적인 사람들을 감시하거나 그러한
사람들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던 국가안전기획부나 기무사,
그리고 각종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폭력의 명분을
조작하고 만들었던 언론, 그리고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의
불법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원되는 공권력 등이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대표적인 장치들이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국가장치를 수단으로 하는 국가폭력
조희연과 조현연은 국가폭력의 주도성 여부, 국가폭력의 형태로
구분하여 국가폭력의 구조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희연·조현연, 「국가폭력·민주주의 투쟁·희생에 대한
총론적 이해」, 조희연 편, 국가폭력 민주주의
투쟁 그리고 희생, 23-166쪽.
은 다양한 현상으로 구체화되었다.
테러·집단학살·살인·구속·구금·고문·사상탄압·협박·감시
·공권력 탄압·비인간적 처우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국가가
직·간접적으로 행사하는 국가폭력을 도식적으로 구조화하면,
<그림1>과 같다. 국가폭력의 주체, 국가폭력의 수단, 그리고
국가폭력의 대표적인 현상을 구조화한 것이다.
<그림1>에서 알 수 있듯이, 국가폭력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의
변인, 즉 국가폭력의 주체, 수단, 그리고 구체적인 현상으로
구성된다. 부르주아 계급은 국가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세 가지의
변인을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국가폭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주체의 의지가 각종의 폭력적인 국가장치를 수단으로 하여
국가폭력의 구체적인 현상으로 실현되어 왔던 것이다.
<그림1> 국가폭력의 구조적 패러다임
8. 결론
노동자 계급은 계급투쟁의 산물인 선거정치에 조응하면서 자신의
다양한 계급적 이해를 관철시키려 하였다. 군사독재정권을 민주
정권으로 바꾸기 위한 선거투쟁, 노동조합의 어용 지도부를
교체하는 선거투쟁, 노동자 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위한
선거투쟁 등도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어떠한 사회체제에서든 사회구성원 모두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한, 노동자 계급의 선거정치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선거정치는 ‘득표확대, 정당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제고, 정치적 명망가 배출’ 등의 한계를
극복하는 투쟁의 공간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르주아 선거정치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노동자 계급은 선거투쟁에
객체로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 참여하여야 하고, 정치적
주체들은 그러한 투쟁의 공간을 형성해야 한다. 그 공간은
노동현장일수도 있고 생활현장일수도 있다. 선거투쟁의
시기만이라도 현장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해를 정치적 투쟁의
의제로 전화시키는 활동이 전개되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을
일상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되고 그 주체들의 의지가
현실화될 때, ‘계급정치의 생활화, 생활정치의 계급화’라는
노동자·민중의 정치 프로젝트가 완성되어 갈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세력화는 권력주체가 권력의 대상화 혹은
소외로부터 해방되는 과정의 산물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권력을 행사하고 집행할 공간을 넓히는 과정이며,
부르주아적인 제도와 절차를 뛰어 넘는 정치활동의 방식을
세워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목표가
노동공간에서 현장권력을 강화하고 생활공간에서 생활권력을
강화로 설정한다면, 노동자 계급은 ‘계급정치의 생활화,
생활정치의 계급화’라는 노동자·민중의 정치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한다. 이러한 과제는 노동자·민중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을 극복하는 과정과 연계되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