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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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인 현중 민주노조 대책위원회
 노동자가 쓰는 노동운동사8

현장에서 미래를  제118호
정병모

11인 현중 민주노조
대책위원회


정병모 / 조선소 노동자


11인 대책위원회 구성


약속시간보다 일찍 간 성당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좁은 강의실이 꽉 차도록 노동자들이 왔다.
석탑 장명국 선생의 강의가 있었던 24일에 모였던 사람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온 것 같았다. 24일 모임에 왔던 사람들이 현장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회의를 하기 위해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회의를 시작했다.
정해진 사회자도 없는 상태라 약간 어수선하였지만, 24일 서명 작업을 하자고 주장했던 박우신씨가 나서서 회의를 진행했다.
우선 전날에 있었던 서명결과에 대한 보고부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서명을 받았다는 것을 보고했고, 회사측을 만나 우리의 얘기를 전달한 것도 이어서 보고했다.
전날에 있었던 얘기를 들은 노동자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워졌다.

여러 가지 얘기가 터져 나왔다.
한 노동자가 나와서 발언을 신청했다.
“회사측이 우리의 순수한 요구를 무시하고 계속 어용노조를 감싼다면 우리가 이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나서서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끄떡거린다.
나이 든 노동자가 나왔다. 마이크를 잡더니 갑자기 웃옷을 걷어 올리고 가슴 쪽을 가리키며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내가 민주산악회에 속해 있다고 해서 끌려가서 고문을 받은 사람입니다. 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죽도록 고생을 해 온 사람입니다.”
주제와 어긋나게 자기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얘기만 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또 다른 노동자가 나왔다.
“우리가 이렇게 모여 있다는 것을 회사에 알리고 우리의 요구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우리의 대표를 뽑아야 합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의 대표를 뽑읍시다.”
맞는 말이었다.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서도 대표를 정하는 것이 필요했고, 우리의 정확한 요구를 알리고 설명을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대표를 뽑을 필요가 있었다.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대표를 선출한다는 얘기가 나오고서야 조용해졌다.

사회를 보고 있던 박우신씨가 우리의 대표를 어떻게 뽑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다들 막막한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그랬는데 몇몇 사람은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하면서 공부를 같이 해왔기 때문에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앞으로 우리를 대표할 대표를 뽑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기에 어떤 방식으로 추천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추천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간간히 헛기침소리만 들려 올 뿐 긴 침묵이 흘렀다.
긴 침묵을 깬 것은 젊은 노동자였다. 그가 어렵게 입을 뗀다.
“제가 평소 존경해 오던 분이 있는데 전 그 분을 우리의 대표로 추천할까 합니다. 설계부에 계시는 김필수씨를 추천합니다.”
추천을 받은 김필수씨는 사회자의 요청에 의해 일어났으나 몇 번이나 손 사레를 지으며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받아 들였다.
또 다른 분을 추천해 달라는 사회자의 거듭된 요구에도 추천되는 사람은 없었다.
사회자가 유일하게 후보로 추천된 김필수씨를 대표로 추대하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을 물었으나 없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박수로 추대하자는 말에 사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대표로 추대된 김필수씨의 인사가 있었다.
“부족한 저에게 중책을 맡겨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나 큰일을 하기에는 저 혼자의 힘으로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해야 우리의 정당성을 알릴 수 있습니다.”
대책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된 김필수씨는 사전에 노동법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한 모양인지 조직 운영에 대한 얘기를 망설임 없이 풀어놓고 있었다.
김필수씨가 하는 말의 핵심은 이랬다.
우리 회사가 너무 방대하니까 몇 사람이 운영할 수 없다. 특별히 조직에 대해 연구한 것은 없지만 운영하기 쉽도록 사업부별로 책임자를 두고 운영을 해야 한다고 제안을 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모든 사람들이 공감을 했다.
또 여러 가지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사무장이 필요한데 자기와 호흡이 맞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설계부에 있는 이재식씨를 추천한다고 했다.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박수로 통과시켰다.
사회를 보던 사람이 말을 한다. 이제 우리를 대표할 위원장과 사무장이 뽑혔으니 자기는 마이크를 넘기고 물러가겠다고 했으나 사람들의 성화에 그대로 진행했다.

사회자가 이어서 말을 한다.
사업부별로 책임자를 뽑아야 하는데 적임자가 있으면 추천해달라고 하니 다들 꿀 먹은 벙어리 모양이 되었다. 모두의 표정을 보니 전전날에 한번 보긴 봤어도 누가 누구인지 상대에 대해서 모르는데 어떻게 책임자로 추천을 한다는 말인가? 하면서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들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도 누구 하나 나서서 추천을 하지 않는 긴 시간이 지나갔다.
사회를 맡은 사람이 여러 차례 재촉하자 그때서야 입이 열린 듯 여기저기에서 추천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책위원장이 앞서 말한 회사 조직도에 따른 추천이 대부분이었다.
서로서로 잘 모르는 탓인지 앞선 회의에서 눈에 띄는 발언을 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사람을 추천하고, 평소에 알고 지내던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대부분 추천했으나 거의 이의 없이 통과되었다.
확정된 조직도는 이렇다.

대책위원회 위원장 : 김필수
사무장 : 이재식
조선설계부 : 박우신
조선사업부 : 김진국
의장생산부 : 장세근
프랜트 사업부 : 이영수
장비 운영부 : 김형권
용접기술연구소 : 이채석
품질경영부 (해양 1공장) : 조성훈
특수선사업부 : 정병모

해양 2공장이라 불리던 해양사업부는 여러 사람들의 이름이 거론되었으나 당사자가 자리에 없는 탓으로 정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는 10명의 대책위원만 확정했고, 나중에 유성렬씨가 해양부문 대책위원으로 확정되었다.
87년 뜨거웠던 여름, 현대중공업 조합원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뜨거운 사랑을 받은 ‘11인 대책위원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대책위원장의 소개로 모두가 앞에 나가 인사를 했다.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꺾이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인사를 하면서 각오를 다졌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다보니 우리끼리 의견을 나눌 필요도 있었고, 향후 대책도 시급히 마련해야 했기에 전체회의를 마치기로 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향후 일정이 생기면 연락을 하기로 하였다.
임시 연락처는 아내가 하던 주산학원으로 한다고 공지를 했다.
성당에서 자리를 빌리기로 약속한 시간이 지나서 주산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지만 우리는 조직도만 덩그렇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향후 계획이나 세부일정은 얘기조차 못한 상태였고 상세한 조직도와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어설프지만 대책위원회의 전체 첫 회의를 시작했다.
서로 서로를 잘 모르기에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간단히 했는데, 모두들 긴장한 탓인지 아니면 열의가 넘친 탓인지 딱딱한 분위기로 자기소개가 끝났고 뒤이어 회의를 시작했다.
우리가 우선 해야 할일과 꼭 해야 할일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했는데 회의는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우리가 우선 해결해야 할 일로 제일 먼저 어용노조 대표를 만나 담판을 짓는 것을 꼽았다. 그 사람들이 끝까지 고집을 피우고 물러나지 않으면 문제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만나 보고나서 모든 것을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오늘 회의를 마친 즉시 연락해 만나기로 했는데 사무장인 이재식과 박우신씨가 가기로 했다.
두 번째는 회사측을 만나서 담판을 짓는 것인데 월요일 출근과 동시에 회사측을 만나기로 했고 대책위원장을 포함한 대책위원회 전체가 가기로 결정했다.

어용노조와의 만남: “젊은 놈들이 버릇없이…”

여러 사람들의 주선 끝에 어용노조 위원장 쪽과 연락이 닿았다.
만나기로 한 곳은 명덕에 있는 허름한 지하 다방이었는데 우리 쪽은 이재식과 박우신이 참석을 했는데 위원장인 권오성씨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임원이었던 홍사기씨, 이선웅씨와 다른 사람 한명이 나왔는데 정확히 이름은 기억 못한다.
싸늘한 긴장감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쪽은 우리였다.
“본인들로서는 다소 억울한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지난 7월21일에 만든 노동조합은 회사의 사주를 받고 만든 어용노조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장이었던 이재식씨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문을 부드럽게 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으나 이선웅씨가 발끈한다.
“시작도 하지 않은 우리를 보고 무슨 근거로 어용이라고 막말을 하는 거냐?”
20대 중반이었던 이재식과 박우신에게 40대였던 그는 대뜸 반말을 하면서 화부터 벌컥 내면서 위압감을 조성했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 하나로 상대의 기를 죽이려는 모양이었다.
“평소 노사협의회위원 활동을 해오면서 해 오신 일부터 그렇고, 우리가 그렇게 연락을 하려고 애를 써도 만날 수 없었던 금속노련 이진우가 참석해 서류를 작성해주면서 노조설립을 도왔다는 것만 보더라도 회사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죽지 않고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이재식을 향해 앞뒤 가리지 않는 고함이 쏟아진다.
“당신들만 근로자고 우리는 근로자 아니냐? 회사가 도와주었다는 명확한 근거도 없이 우리를 매도하면 되느냐?” “젊은 놈들이 버릇없이......”
“근거를 대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쌍스러운 말까지 앞세우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몰고 갔다.
더 이상 참을 수도 없었지만 그냥 그대로 듣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근거는 없지만 현장 노동자들이 모두들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난 21일에 만들었다는 노동조합이 왜 아직까지 보고대회조차 하지 않습니까? 언제쯤 보고대회를 할 계획입니까? 보고대회도 못 열고 있는 노동조합이 어떻게 유인물을 현장 구석구석에 있는 식당에 갖다 놓을 수 있습니까?
미포조선에서 회사가 노동조합 설립을 방해하려다 실패했는데, 우리는 갖다 놓은 유인물이 왜 그냥 그대로 곱게 있습니까?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동조합은 결코 안 된다고 말해온 정 회장님의 생각이 바뀐 것도 아닌데 왜 우리는 방해하는 사람이 없습니까?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면 조합원들을 가입시켜야 하는데 왜 아직까지 조합원가입도 받지 않고 있습니까?”
조목조목 차분하게 설명하는 이재식과 박우신에게 말문이 막혔는지 대뜸 삿대질과 큰소리가 오가기 시작했다.
“젊은 놈이 어디서 배운 버릇이야? 나이도 어린 것들이 뭘 안다고.”
“혼이 나야 제 정신을 차리겠구나.”
“버릇을 고쳐주어야겠다.”며 고함을 지르던 그는 잠바 속에 손을 넣더니 칼을 꺼내 들었다.
당장 찌를 듯이 고함을 지르던 그는 사람을 찌를 생각이 없었는지 위협하다가 탁자에 칼을 내리 꼽았다.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은 탁자에 꽂혀 파르르 떨고 있다.
떨리는 칼날만큼 가슴이 콩닥거리고 놀란 것은 우리 사람들이었다.
마치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는데 당황하지 않을 사람이 몇 있겠는가? 솔직히 다들 어용노조 임원들을 만나러 가면서도 이런 일은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잘 이야기만 하면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들도 다 똑같은 노동자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우리의 얘기를 한다면 우리들의 순수한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바보같이.......
설령 그 사람들이 사전에 회사와 치밀한 계획 속에 진행했다하더라도, 아니면 순간의 판단 착오와 실수로 어용노조를 만드는 데 협조하고 그 대가로 노조 임원이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순수한 마음만 전하면 어쩌면 잘 풀릴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고 우리는 눈앞에 칼을 보고서 비로소 꿈에서 깨어났다.
그 사람들과 더 이상 얘기를 할 수도 없었다. 소용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백날 천 날 얘기를 해도 그 사람들의 생각은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주인은 이미 자기가 아니었다.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무의미했다.
놀란 가슴 쓸어 담으며 뒤돌아섰다.
그도 사람을 찌를 생각은 전혀 없었으리라. 단지 우리를 위협하려고 했을 뿐이라고 애써 위안을 삼으며 이재식과 박우신은 돌아왔다.

7월 27일이 되었다.
무심한 아침은 늘 그렇듯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전날 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결정한대로 작업현장에는 가지 않고 노사협의회 고충상담소로 곧바로 출근했다. 간단한 점검과 함께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전날에 있었던 어용노조측과 만났던 결과를 침통한 마음으로 들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서로 의견은 다를 수는 있지만 같은 노동자끼리 칼로 사람을 위협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현실에, 설령 사람을 찌르지는 않았다하더라도 찔린 것보다 더 큰 아픔과 분노가 밀려왔다.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는 앞으로도 이보다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 분명한 만큼 각오도 새로워야 했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현장의 여론은 들끓고 있었고 우리들의 갈 길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렵사리 다시 회사와 연락을 시도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서문화씨와 회사측 실무자 몇 명이 우리와 자리를 같이했다.
우리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회사측에서 누가 나왔던지 따지지 않았고, 회사측 또한 우리의 대표성 문제를 따지지 않고 만나주었다. 첫 번째 모임에서 있었던 똑같은 지루한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어용노조를 회사가 보호해주지 말고 물러가게 하라고 요구를 했고, 회사는 노노 문제에 회사가 개입하면 안된다는 원칙의 얘기를 지루하게 주고받았다.
몇 번의 정회를 하고 다시 만나도 바뀌지 않는 회사측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수십 번을 얘기해도 똑같은 얘기를, 결론을 낼 수 없는 얘기만 입 아프게 하다가 두 번째 만남은 끝이 났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긴급회의를 했다. 긴급회의라고 해봤자 전날에 결의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이었는데, 어용노조가 물러나지 않으면 우리의 예정된 일정을 그대로 강행한다는 최후의 점검회의였다.
모두가 돌아가면서 신상발언을 했는데, 더 이상 회사측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대부분 갖고 있었고, 어용노조와의 결판도 물 건너 간 것이 분명하기에 우리 갈 길을 가자는 의견이 많았다. 비장한 각오로 회의를 마쳤다.

사무실에 뿌려진 첫 번째 유인물

회사와 어용노조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여러 차례 밝혀왔듯이 우리의 행동시한은 7월 28일이었다. 7월 27일까지 어용노조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행동을 통해 조합원 여론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고 장담을 했고, 회사측은 조롱하듯 그래봐야 당신들만 손해라고 비웃었다.
시간은 정말 별로 없었고 우리들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4일 모임 이후 참석해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퇴근 후 시내에 있는 주산학원에 모여 줄 것을 부탁하고 서둘러 회사를 빠져 나왔다.

7월 27일 아침, D데이를 하루 앞둔 그 날 사무실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사무실을 중심으로 구석구석에 뿌려진 유인물의 출처와 그것을 만든 장본인을 찾으려는 회사측의 색출 작업이었는데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아마 다음날 있었던 87년 7.8.9투쟁의 서막을 열어제친, 7월 28일의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열기에 놀라 그런 것은 따질 여유조차 없었던 탓일지 모른다.
설계부에 일하고 있던 박우신씨가 손으로 써서 급하게 200여장 정도 복사해 뿌린 것이었는데, 그때까지 ‘11인 대책위원회’의 명칭이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탓으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된 홍보물을 발행했다. 이름은 조금씩 다르나 모두 ‘11인 대책위원회’에서 발행한 유인물이다. 또 조합원들이 알고 있는 명칭은 ‘11인 대책위원회’였으나, 정확한 이름은 ‘현중 민주노조 대책위원회’이다.
아래 유인물은 박우신씨가 손으로 써서 사무실에 뿌린 유인물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원본 그대로 싣는다.

“어용노조 추방하고 민주노조 쟁취하자”

-현중 어용노조 개편 대책 위원회 경과 보고-

*이만사천 현중 노동자에게 드리는 글*
현대중공업 창사 이후 지금까지 노동자들은 저임금, 부당한 대우, 생명을 위협당할 정도의 열악한 노동조건하에서 노예처럼 굴종당하며 짓밟혀 왔다.
우리의 열망인 민주노조 결성을 위한 준비가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노동자들의 비난을 받아오던 어용 노사협의회 주체들이 어용노조를 결성함으로써, 이만사천 현중 노동자들의 원망과 표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7월 22일 뜻을 같이 한 노동자들이 울산시내 모처에서 모임을 갖고 현중노조개편대책위원회를 결성하게 되었다.
7월 25일 중식시간에 뜻을 함께 한 3,125명의 노동자들이 서명했으며 그 사실을 안 현 어용노조는 간교한 속임수의 유인물 배포 등 우리 노동자를 또 다시 기만하는 작태를 보였다.
그러나, 대책위원회는 전 노동자들의 열화와 같은 투쟁 열기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스스로 퇴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럼에도 협상은 끝내 결렬되고 말았다.
이만사천 현중 노동자는 하나로 뭉칠 때 민주노조를 쟁취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제 민주노조 결성을 위한 대책위원회의 활동을 밀어주신다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것이며, 우리 전 노동자가 승리하는 순간까지 투쟁할 것을 천명한다.
이에 우리의 결의를 밝힌다.

-현 어용노조는 27일 오전까지 공개사과문을 발표하고 즉각 퇴진하라.
-회사측은 민주노조 결성을 인정하라.

위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을시 7월 28일 어용노조 타도 및 전 노동자의 단결된 힘을 과시하기 위한 투쟁 경과보고 대회를 감행할 것이다.
이제 이만사천 현대중공업 노동자 여러분은 혼연일체가 되어 민주노조 설립을 위한 평화적, 비폭력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대책위원회는 어용노조가 퇴진하는 즉시 민주노조결성 기반을 마련해 준 후 현 조직을 해체하고 현업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며 위와 같이 결과 보고를 대신합니다.

1987. 7. 27

-현대중공업 노조개편 대책 위원회-

민주노조 건설하여 민주노동사회를 이룩하자.
8시간 노동하여 생활임금 쟁취하자.
현중 노동자 단결하여 민주노조 설립하자.
어용노조 추방하고 민주노조 쟁취하자.
(계속)

2006-03-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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