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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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이데올로기'가 노조운동에 미친 영향4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118호
김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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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이데올로기’가 노조운동에 미친 영향 (4)
- 현대자동차 사례를 중심으로


김경근 / 한노정연 연구원, 연구위원회



3. 역대 집행부 활동을 통해 살펴본
‘고용이데올로기’의 변화 과정

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조합 운동의 주요 과제들은 98년 이후 모두 ‘고용’으로 대체되었다. 임금이 고용으로, 노동조건 개선이 고용으로, 계급적 단결이 고용으로 변하게 되었다. 고용은 다른 무엇을 포기해서라도 사수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고용을 위한 그 노력들은 오히려 고용을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98년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서의 노동조합의 패배 이후 조합원들은 극도의 고용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의 집합적・계급적 힘을 통해 자신들의 권익과 생존을 보장받던 기존의 방식을 포기하고, 개별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본에 대항해가는 것을 선택하는 대신 개별적인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노동자 내부의 분할과 위계화 전략에 동조하게 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잔업 특근의 요구와 비정규직 확보 요구 등의 실리추구 움직임으로 나타나게 되며, 이러한 ‘조합원들의 보수화’는 ‘대의원들의 보수화’로, 그리고 더 나아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전반적 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조합원들의 불신과 공포를 차단하지 못하는 한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이 불신과 공포의 상태에서 벗어나서 신뢰를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가?’로 모아지게 된다.
이러한 고용불안과 ‘고용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으며,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는지를 이번에는 조금 다른 각도로 살펴보고자 한다. 98년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운동의 역사 속에서 커다란 쟁점으로 부각되었던 사안들을 간략히 살펴보고, 이를 통해 노동조합 집행부 차원에서의 활동이 고용이데올로기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아 왔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림1>은 역대 집행부의 활동을 중심으로 고용이데올로기의 발생과 제도화,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그림1. 역사적 사건들을 중심으로 살펴본 고용이데올로기의 확산 과정



<그림1>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현대자동차의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은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낳고, 이는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 상실과 사측의 일상적 구조조정 시도와 맞물려 조합원들의 노동시간 상승(잔업・특근 선호)과 비정규직 선호라는 변화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조합원들의 변화는 활동가들의 변화를 야기하였고, 두 현장주체들의 변화는 ‘완전고용 합의서 체결’로 드러나게 된다. 이는 고용을 위해 다른 것을 양보하는 전략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가시적 양보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고용불안을 완전히 해결해내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고용 문제와 관련하여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더욱 상실하게 만든다.
그 결과 현장의 변화에서 자본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고, 활동가들은 변화된 조합원들을 거스르기 보다는 그들을 인정하고 그에 맞추어 자신의 활동을 재구성하려는 경향을 드러내게 된다. 이에 따라 이후 사측의 구조조정 요구에서 고용 문제만을 우선시하고 다른 사안들은 부차화시키는 경향이 현장에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한편 이러한 모습들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운동의 활동 양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특히 역대 집행부 활동 과정에서 7・5 연대 총파업 철회, 산별노조로의 조직전환 추진과 실패, 사회공헌기금 추진 등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대응의 향방을 결정짓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대응들은 기존의 경향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이 결과 현대자동차 현장에는 물량 확보가 곧 고용 안정, 회사의 발전이 곧 고용안정이므로 회사 발전을 위해 양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자리잡게 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은 노동강도 강화, 비정규직 확대, 직업병과 노동재해의 만연, 다시 말해 ‘노동자의 몸과 일상 그리고 삶’이 황폐화되는 현실을 감내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고용불안감이 더욱 일상적으로 만연하고 있다. 각 과정들에 대해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자.

1) ‘고용이데올로기’의 발생

(1) 발생 배경 - 신경영전략 신경영전략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연구팀. 2000. 구조조정과 현장통제 대응전략, 노동전선’ 을 참조.
을 통한 노동자 개별화와 통제의 내면화
단결을 바탕으로 한 집합적 행동만이 자본에 맞설 수 있고 자신의 노동조건과 삶의 조건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음을 노동자들 스스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을 실천으로 옮겨서 커다란 성과를 얻은 것이 바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이다. 87년 대투쟁 이전까지, 자본에 전적으로 순종하더라도 그 보상의 수준이 절대적으로 낮은 - 비록 저항함으로써 일자리를 뺏기거나 심지어는 목숨까지 위협받았던 상황에 비할 바는 아닐지라도 - 조건 속에서, 노동자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단시간 내에 폭발적으로 단결하고 행동하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가져온 성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이 시기 ‘노동자는 하나’였으며, ‘대중과 활동가는 하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은 반격을 모색한다. 그러한 시도 중의 하나가 노동자들의 단결을 위협하기 위한 장치들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노동자 단결의 선행조건 중 하나인 ‘동질성’을 공격하고 노동자들을 나누기 시작하였다. 개인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동일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자본은 그러한 보상을 차별화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요구와 단결을 바탕으로 한 공동 행동이 모든 노동자에게 명백하게 이로운 것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개별 노동자들에게 ‘다른 이들은 순응하지 않는 조건에서 나만 순응하는 것’이 더 이로운 조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노동자들을 다시 불신과 경쟁의 관계로, 수동적 주체로 만들기 위한 자본의 공세가 전면적으로 행해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90년대 초반 이후의 성과급제, 능력주의 인사관리, 팀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신경영전략’이다. 98년보다는 오히려 이 시기를 중요시하는 의견도 있다.
▷대의원 L-1 : 98년이 큰 계기가 된 것은 맞다. 그러면 그전에는 안 그랬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90년대 들어오면서 노동조합이 주춤하던 시기… 특히 회사가 인사정책으로 밀고 들어올 때…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풀려야 하는데 보류되고 회사는 밀고 들어오면서 조합원들이 자기들 살 방향을 찾은 거다. 98년 이전부터 고과에서 내가 상급자로부터 플러스를 받느냐 마이너스를 받느냐의 문제가 있었다… 회사는 고과정책을 강화시켜왔고, 성과급도 계속 시행해왔는데 집단대응하지 못하고 개별대응하고 개별적인 자기 처신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2) 발생 -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패배 98년 구조조정 반대투쟁은 앞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므로 여기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언급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97년 경제공황(IMF관리체제. 이하부터 IMF로 줄여 표기)이 발생하게 되고 현대자동차에서는 98년 정리해고가 일어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노동자의 단결을 바탕으로 한 집합적 행동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98년의 구조조정은 90년대 초반 이후의 신경영전략으로 인해 흔들리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던 노동조합의 힘과 노동자들의 단결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노동자들은 투쟁의 패배 이후 일시에 ‘개별적 고립’과 ‘수동적 반응’을 선택하게 된다.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이 모두 돌아서게 된다면 자기 혼자만 피해를 입게 된다는 생각으로 인해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이러한 공포는 단순히 98년의 1회적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노동자들의 행위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번 불신으로 간 상황에서 쉽사리 신뢰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투쟁 시작 이전부터의 일관된 양보교섭. 둘째, 투쟁 과정에서의 조합원에 대한 방치, 셋째, 투쟁 이후 평가의 부재.
이러한 세 가지 문제점이 고용이데올로기의 발생과 지속을 용이하도록 만들게 된다. 특히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문제는 투쟁의 ‘결과’보다 바로 투쟁의 ‘과정’에 있다. 즉 단순히 투쟁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해결책을 자신의 개인적인 행위에서 찾게 된 것이 아니라, 투쟁 과정에서 보여준 집행부와 활동가들의 한계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며, 이후에도 그러한 점들이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 사회를 뒤흔든 IMF와 민주노총 차원에서의 노사정 위원회 참여를 통한 정리해고 수용이라는 상황이 커다란 한계로 작용했음은 명백하다. 그러나 아무리 조건이 나빴다 하더라도 주체의 잘못된 판단과 행보에 대해서는 확실히 평가해야 한다.
집행부는 처음부터 일관된 양보교섭을 시도했으며, 공장 점거 투쟁이 지속되었던 36일 동안에도 자발적으로 분출되던 투쟁을 내버려두거나 오히려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집행부는 독자적으로 사측과 합의를 결정하고, 조합원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하였다. 이것은 당시 집행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구조조정은 대세라는 인식과 노동조합의 힘으로는 구조조정을 막아낼 수 없다는 판단에 갇혀, 구조조정을 원천적으로 막아내기 보다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힘을 쏟은 결과였다. ‘투쟁을 통해 이겨낼 수 없다’ 혹은 ‘피해를 최소화해야한다’라는 판단은 IMF 직후부터 시작된 위기 국면과 정리해고 합의까지 계속해서 부침을 거듭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대응은 소위 ‘합리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합리성’은 제한되고 왜곡된 정보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다른 경로를 스스로 봉쇄함으로써 대중저항의 역동성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 갇힌 것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대단히 특수한 조건이었던 98년 구조조정 당시의 대응양식들이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진다는데 있다.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결과’에 논란이 집중되었을 뿐, 그 ‘과정’은 거의 평가된 바 없다. 이는 98년 투쟁에 대한 활동가들의 ‘침묵’과, 그로 인한 오류의 반복이다. 현대자동차의 활동가 대부분은 ‘무엇’이 ‘왜’ 문제인지를 집단적으로 고민하거나 공유하지 못한 채, 98년의 기억을 개인의 아프디 아픈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많은 활동가들은 98년의 투쟁 과정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채 ‘결과’만을 가지고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단지 당시 위원장이 마지막 순간에 내린 결정에 대해 ‘어려운 처지에 대한 감정적 동일시’, ‘아쉬움’, 혹은 ‘추상적인 비판’을 가할 뿐이다.
98년 투쟁은 해당 시기 한국의 자본의 역량과 노동의 역량이 여실하게 드러난 투쟁이었으며, 그 평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98년 투쟁이 가지는 위상과 그 이후에 미친 영향에 비해, 그것에 대한 평가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안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 안에서도 많이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역사 속에서 98년의 평가와 반성은 전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서로간의 책임 떠넘기기나 마지막 순간에서의 결정에 대한 논란이 주로 등장했을 뿐이다. 예컨대 98년 11월 6일 노동조합소식에서 집행부는 집행부 불신임을 주도하고 있는 하나의 현장조직에 대해 그들의 노선이 노사정 위원회에 들어가 정리해고 법제화를 수용한 만큼 그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왜’ 패배했는지 보다는 ‘누구 때문에’ 패배했는지가 논쟁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12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발간사에서 “공권력과 대치한 상황에서 ‘정리해고 결사반대’라는 구호 하나만을 외치며 결사항전 했을 때, 저 개인적으로 ‘투사’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가져오는 현실적인 피해는 과연 복구가 가능한 것인지 돌아서서 냉정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평가는 투쟁주체와 요구 그리고 투쟁의 역동성 등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단지 ‘마지막 순간에 합의를 했어야 했나 하지 말았어야 했나’라는 논의로 국한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98년에 대한 평가와 반성의 부족은 이후 그 패배의 결과에 따른 현장의 변화를 올바르게 분석하고 대응하지 못하는 장애물이 되어, 그때와 똑같은 오류들, 즉 ‘양보교섭’과 ‘조합원에 대한 방치’를 계속 반복하게 만들었다.
<표1>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98년 구조조정에 대해 설문 조사 결과이다. 먼저 98년 구조조정 반대투쟁에 대한 평가 중 동의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서, 98년 투쟁에 대해 크게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 4.2%, 성공도 실패도 아니라고 보는 사람이 37.2%,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이 51.2%이다. 활동가들의 반 정도가 98년 투쟁을 실패라고 평가하고 있고, 실패의 원인으로는 지도부의 잘못과 민주노총 상층부의 잘못이 비슷한 비율로 나오고 있다.
다음으로 98년 정리해고 반대투쟁 결과가 현장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순서대로 두 가지를 고르도록 하였다. 가장 많은 활동가들이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팽배’라는 조합원의 변화를 지적하고 있으며, 그 뒤로 ‘평생일터 개념이 무너지고’, ‘상시적 고용불안감’이 발생했음을 지적하고 있다.(표2)
한편 회사에 대한 애사심이 없어졌다는 것을 지적한 활동가에 비해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고 답한 활동가의 수가 훨씬 적은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응답 내용
빈도(명)
비율(%)
무응답
33
7.3
① 실패 : 지도부잘못(비민주성,투쟁력부족,전술상의 오류 등)
105
23.3
② 실패 : 민주노총 상층부 잘못(정리해고수용,전국전선부재..)
102
22.6
③ 실패 : 조합원 잘못(집회 소수참여, 사측에 동조 등)
24
5.3
④ 성공도 실패도 아님 : 어려운 조건에서 최선 다한 투쟁
75
16.6
⑤ 성공도 실패도 아님 : 긍정적, 부정적 측면 모두 존재함
93
20.6
⑥ 성공 : 정리해고 최소화 이후 대상자 전원복직
14
3.1
⑦ 성공 : 유혈충돌방지와 노동조합 조직 보존
4
0.9
⑧ 성공 : 이성적 합의를 통해 일보후퇴 이보전진함
1
0.2
합계
451
100.0
표. 98년 구조조정 반대투쟁에 대한 평가


첫번째 영향

두번째 영향
빈도(명)
비율(%)

빈도(명)
비율(%)
무응답
28
6.2

28
6.2
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팽배
148
32.8

54
12.0
② 특근,철야 등 초장시간 노동심화
8
1.8

41
9.1
③ 노동조합에 대한 믿음,신뢰 깨짐
27
6.0

45
10.0
④ 회사에 대한 애사심 없어짐
75
16.6

71
15.7
⑤ 평생일터 개념 무너짐
78
17.3

97
21.5
⑥ 상시적 고용불안감
51
11.3

65
14.4
⑦ 싸워도 안된다는 패배감
5
1.1

9
2.0
⑧ 저임금 비정규직의 확대양산
25
5.5

30
6.7
⑨ 활동가들의 보수화
6
1.3

11
2.4
합계
451
100.0

451
100.0
표. 98년 투쟁의 결과 현장에 미친 영향 (순서대로)

활동가들은 정리해고 반대 투쟁의 패배로 인해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진단에 대해서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고 있다. 당시 집행부의 태도와 활동에 대한 신뢰 문제일 수 있으나, 노동조합 자체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것은 아니라는 판단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3) 99년 무급휴직자 복귀 전까지의 현장

정리해고 강행 이후 1300여명의 무급휴직자들이 복귀할 때까지인 1년~1년 6개월 동안 현장은 사측에 의해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노동강도는 이전보다 엄청나게 증가하였으며,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갈 정도의 엄격한 현장 통제가 이루어졌다. 또한 관리자들이 조합원들에게 무보수 특근을 강요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다(노동조합소식 98.11.24). 현장에 남아있던 조합원들은 어떠한 불만도 표시하지 못 하면서 묵묵히 일만 할 뿐이었다. 이 시기의 현장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글이 있다. “경제위기 이후 배치전환과 노동강도 강화등이 사용자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예를 보면 고용조정 이후 회사는 인력감축에도 불구하고 기존 생산라인 편성효율을 유지 또는 증대함으로써 대부분 생산부서에 있어서 평균 20%수준의 노동강도 강화를 전제하고 있다. 또 기아차의 경우에는 1998년 생산량은 77만대였다. 그런데 그간 만오천명이 퇴사하여 99년 인원이 약 2/3이 되었는데 생산량은 85만대 가량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만큼 노동강도가 강화된 것이다. 노동강도 강화의 주된 방법은 라인 재배치이다. 예를 들어 생산이 부진한 차종 라인의 인원을 다른 라인으로 추가 투입하면서 동시에 이 라인의 생산량도 늘이는데 이 때 인원투입보다 더 높은 비율로 생산량 증가가 이루어진다. 이 때 노동조합이 방관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에서는 공정조사위원회를 가동하여 노동강도 강화여부를 조사하고 이에 대한 노사협의도 한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노사협의회 과정에서 회사 측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회사에서는 과거의 편성효율이 65~70%에 불과했다고 하면서 이것을 90%이상으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을 막으려면 조합원들이 현장투쟁을 하거나 라인을 정지시켜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조합원들은 지금 당장 노동강도가 높아도 새로이 사람이 들어오면 나중에 고용불안의 원천이 될 것을 우려하여 문제제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말에 의하면 노동강도가 상당히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조합원의 문제제기는 많지 않다. 현장관리의 강화도 노동강도 강화의 한 요인이다. 기아차에서는 작업장에 개인별 불량상황과 근태가 모두 공개되고 있다. 조합원들은 이것이 추후 고용조정 대상의 기준이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 또 과거에는 조반장 등 현장관리자로의 승진이 주로 고참순으로 되고 일단 승진이 되면 계쏙 그 지위를 유지한 반면 근래에는 승진도 능력위주이고 임기제이다. 이 때문에 현장관리자들은 그 직위를 박탈당하지 않기 위해 회사 측의 지침을 관철하는 데에 매우 적극적이 되었다. 이런 상황을 보면 고용불안은 기업 내에서의 권력관계를 상당히 변화시켰으며, 자본은 그것을 기반으로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노동통제를 실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이환, 1999, 경제위기와 한국 노사관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28~29P.)

[12차 회계연도 사업보고서 발간사] “공장에 살아남은 조합원들도 임금삭감의 고통과 WIN21이라는 현장통제 수단에 의해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숨막히는 압제에 시달렸다.”

대부분 무급휴직을 받았던 활동가들에게 그 1년간의 현장 풍경은 그다지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한다. 활동가들은 단지 열악했던 현장이 자신들의 복귀와 함께 일정하게 개선되었고 노동조합의 현장 장악력이 회복되었다고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남아있던 조합원들에게 그 1년은 결코 그렇게 사소한 기간이 아니다. 이들은 1년여 동안 사측의 통제에 완벽히 순응해야 했으며, 엄청난 노동 강도를 견뎌야 했으며, 어떠한 불만도 제기할 수 없었다.
1년 반 있다가 현장에 들어오니까 의장 컨베이어 타는 사람들이 2시간 30분 동안 화장실을 한 번도 못가는 거에요. 98년 이전 같으면 조장을 불러놓고 화장실도 가고 그랬거든요…. 저는 현장이 완전히 초토화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조합원들의 의식상태나 현장권력이 어디로 갔는지가 보였던 거지요. (대의원 A-2)
현장이 완전히 무너지고 나니 우리에게 뒤따라오는 것은 작업 편성율을 사측의 의도대로 올리는 것, 현장이 아비규환으로 변하고 누구하나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한동안 노동운동이라는 자체가 어려웠다. (소위원 K-2)
근무시간에 화장실 가는 것조차 통제받고, 작업장에 의자도 없었고, 반장은 거의 왕 수준이었고, 상당히 뭐 휴식시간에 뭐 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작업장에서 유인물이나 신문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였고요. 현장에 남아있던 조합원들도 그렇게 된 것이 당연한 듯이 여기고 있었고 조・반장이 한마디 하면 대꾸도 못하고요. (대의원 K-2)

98년 투쟁 당시 동료 조합원들이 투쟁할 때 사측의 회유와 강압으로 인해 산과 들로 야유회를 떠났던 많은 조합원들은 투쟁에 결합했던 조합원과 사측에 의해 동원되었던 조합원간의 갈등은 무급휴직자들의 복귀 이후 드러나게 된다.
▷소위원 K-2 : 98년 이후는 분리되었다. 투쟁했던 동지와 사측에 끌려갔던 동지들 간 한동안 반목하고 회식도 같이 못하는 것을 겪었다.
투쟁의 패배를 지켜보면서, 그리고 ‘잃어버린 1년’ 동안을 지내면서 스스로에 대한 정당화와 합리화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활동가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달라진 조합원들을 바라보며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노동조합소식 99년 6월 24일] “지난 고용안정투쟁 이후 현장의 조직력은 무너져 내리고 있다. 활동가들이 현장을 떠났고 얼마 남지 않은 활동가들도 무지막지한 탄압에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조합원들은 활동가들의 이야기보다 관리자들의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게 현실이다. 지금 현장의 모습은 대의원들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가 없고 대의원들 또한 자신감의 상실로 현안문제에 나서지 않고 관리자들과 적당한 타협점 찾기에 바쁘다.”

패배 이후 회사 측에 순응하거나 침묵했던 이들과 그것에 맞서 싸웠던 이들, 조합원들과 활동가들의 정신적/물리적 격리는 이후 현대자동차 노동운동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제 조합원과 활동가들은 서로 ‘다른 존재’가 되기 시작한다. (다음 호에 계속)

2006-03-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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