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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개정투쟁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14호
백순환

노 ◦ 동 ◦ 시 ◦ 평

노동법개정투쟁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백 순 환 (전국민주금속연맹 부위원장, 대우조선노동조합위원장)


기업별 노조의 한계

“당신이 뭔데 내려와서 조기작업 하지 말라고 그래!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데! 그렇게도 할 일이 없어!”
94년초 대우조선에서 한창 신경영전략이 춤을 출 때, 노조위원장이 아침 일찍 현장에 내려가서 조기작업을 정지시키려고 하자, 조합원이 위원장에게 덤벼들면서 한 소리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사실 일부 조합원들은 조기작업 때문에 힘들다며 노동조합 지도부에서 막아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럴만도 한 것이 조합원들은 하루 두시간씩 잔업을 해야만 생활임금을 확보할 수가 있어서 하루 평균 10시간씩은 일을 하고 있다. 이것만 해도 육체가 피로한데, 돈도 받지 않는 조기작업을 두시간씩 해야 하니 하루 12시간을 꼬박 노동하는 꼴이다. 더군다나 조기작업시간은 정규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상을 적용시킬 수 없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자발적으로 돈 안받고 일하는 것이니까, 일하다 죽어도 그만이다. 이런 모순투성이인 조기작업을 노조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조기작업을 막으려다가 된통 당하고 일단 후퇴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조기작업이 없어진 상태이다).
신경영전략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해마다 단체교섭을 하는데, 단체교섭이란 조합원의 단결된 힘이 없으면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교섭을 한다고 하더라도 요구조건이 관철되지 않는다. 그런데 조합원들은 모이라고 하면 모이지 않는다. 찾아다니며 왜 모이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인사상―일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적용하는 인사고과는 1호봉 6,000원인데, 장인이 되면 5호봉 인상과 장인수당, 회사행사시 각종 특혜를 받는다. 기정은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직급체계로서 기능사원 바로 위 직급이다―불이익을 받을까봐 회사관리자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하여 조기작업도 하고 노동조합에 관심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임금투쟁에서 6만원만 인상시켜도 호봉 10개와 같다. 단체협약갱신에 자녀학자금 지원만 늘려도 일년에 300만원은 저축할 수 있다.
그런데도 조합들은 큰이익을 버리고 동료간에 서로 이간질하고 경쟁하면서―실은 자신도 회사를 그만 때려치우고 싶다고 한다―작은 것에 매달린다. 87년 이래 90년 투쟁때까지 “자본가 박살내자, 노동해방 쟁취하자”라는 구호를 외쳤던 조합원들이 그 때 그 사람들인가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활동가들마저 소외당하고 외면당한다. 조합원들을 위해 징역도 살고 두들겨 맞기도 하고 해고도 당하면서 투쟁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회사의 칼날같은 보복과 조합원들의 외면이다. 이쯤되니 활동가들도 사표를 쓰거나 거제도를 떠나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계급적으로 단결해야 하고, 정치적 각성을 해야 한다”고 떠드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 소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것은 분명히 아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단결의 토대이다. 이것마저 포기한다면 노동자의 꿈과 희망은 사라지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노동을 하지 않고 역사가 발전한 적은 없다. 노동은 분명히 역사를 만들어 왔고 발전시켜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노동은 지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많은 부분 소외당하고 탄압을 받아 왔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은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그들이 속한 사회 속에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필자는 이 원칙을 소홀히 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다만 현시기 노동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세워야 하며 투쟁의 전술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여러 가지 측면은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이해가 상충하며 서로 대립하고 있다. 문제는 두 계급이 서로 대립하는 관계를 ‘변증법적 개념’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내느냐 하는 과제이다(참고해야 할 사항은 단순히 남한 사회라는 국한된 현상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세계사적 생산방식’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생산방식 - 의 문제점과 그 성격들을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필자는 만인이 평등하고 가장 이상적인 사회상이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제시할 만한 능력은 못된다. 다만 노동자는 이 세상을 만들어 나가며 사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며 이 사회의 중심은 노동자계급이어야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사회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정체세력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말로 이야기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고 당위성을 인식한다고 되는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이론과 실천을 겸비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 이론은 여러 가지로 제시되지만, 실상 방법론의 문제에서는 사소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제는 더이상 논란의 질곡으로 빠질 것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

산별노조건설과 노동조합활동

그 실천의 첫째 관문이 산별노조 건설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기업별 노조형태이다. 기업별 노조에서는 아무리 연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야기해도 그 실현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단언한다. 왜냐하면 이 글 앞 부분에서 서술된 단위노조의 정치역량 확대는 기업별 노조에서는 자본의 막강한 힘 때문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하다. 돈만 있으면 법이든 두뇌든 폭력이든 무엇이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장 신경영전략으로 노동조합조차 지탱하기도 어려운데 연대가 무엇이며 정치적 각성이 무엇이겠는가. 지도부의 의지에 따른 개연성은 있겠지만 조합원들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돈 몇푼이 중요하지, 계급간의 이해관계를 고민하려고 노력조차 않는다. 이런 현실을 활동가들은 직시해야만 된다. 따라서 산별노조의 필요성과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접목시키는 사업에 1차적 목표를 두어야 한다.
둘째, 외국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노동자들은 자기 조건이 어려울 때는 폭발적인 투쟁력과 결속력이 있지만 삶의 질이 높아져 가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은 떨어진다. 이런 현상은 요즘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일상적인 삶과 항상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가정생활에서부터 사회 구석구석까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도록 해야 한다.
셋째, 노동운동의 사회적 필요성을 국민 모두가 인식하도록 하여 조직 노동자의 수를 확대해야 한다. 이 과제는 기업별 노조에서는 너무나 한계가 뚜렷하다. 당장 모기업 노동자와 하청노동자간의 이질감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업별 노조체계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당장 임단투에서도 나타나듯이 항상 조직이기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96년 노동법개정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고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96년 노동법 개정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동법 개정투쟁은 향후 노동운동의 전망을 세우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좌우하는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올해 노동법개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향후 노동운동은 또 한차례 침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노동법 개정투쟁에 대한 조합원들의 이해는 ‘바닥 상태’이다. 활동가 및 노조간부층에서만 노동법 개정투쟁에 대한 논의가 초보적인 단계에서 이야기되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96년 노동법 개정투쟁은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의 논의와 별도로 치밀하게 준비되고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노동법 개정투쟁은 ‘노사개혁위원회’에서 합의안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관계없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것도 최선의 노력으로. 왜냐하면 남한 노동자들은 87년의 노동자대투쟁 이후 제대로 조직된 정치투쟁의 경험이 없다. 그동안 임단협 투쟁과 노조사수투쟁 등 단사 차원의 투쟁 외에 자신과 밀접한 정치투쟁이 전무한 상태이다. 따라서 향후 산별노조를 통한 정치적 이해를 넓히기 위해서라도 노동법 개정투쟁은 대중적 토대 위에서 전개되어야 한다. 문제는 조합원들 스스로 노동법 개정투쟁에 참여해야 할 당위성을 지도부에서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은 이 문제가 가장 초점이 되어야 한다.
항간에 ‘노사개혁위원회’를 둘러싸고 탈퇴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는 듯하다. 그 논의 자체는 투쟁을 국소화시킬 우려가 있다. ‘노개위’에서 탈퇴하고 나면 노동법 개정투쟁을 잘한 것처럼 오도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88년 노동법 개정투쟁 이후 해마다 하반기 사업으로 지속적인 노동법 개정투쟁을 해 왔지만 구호에 그쳤을 뿐 그 자체를 조합원의 것으로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올해 일정정도 관심을 갖는 것은 ‘노개위’라는 매개를 통해 조합원들의 기대감과 우려가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법 개정투쟁은 조합원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 방향에서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 조합원과 함께 해야 할 중요한 사안은 노동자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지위향상을 위해서는 어떻게 노동법을 개정해야 가장 이상적인가를 명확히 교육, 홍보하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민주노총에서 ‘노동법개정 투쟁본부’를 구성하여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 지역이나 산별 또는 단위노조에서 동력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 각 단위노조마다 선거가 시작되는 등 그 사정도 있겠지만 조합원들의 투쟁동력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글을 맺으며

96년 노동법개정투쟁은 각 조항의 개정, 개악도 중요하겠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노동자들이 단결투쟁할 수 있는 대중적 토대와 향후 노조운동의 전망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중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노동법개정이 잘 되고 못 되고 하는 것에 치중하는 것보다 이번 노동법개정투쟁을 얼마나 조합원 전체와 대중적이고 조직적으로 투쟁대오를 형성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이 투쟁의 계기를 통해 조합원들이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보다는 노동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제조건들이 노동자 개인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996. 9. 5. 씀)

1996-08-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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