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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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성 복통

현장에서 미래를  제118호
정희석

신경성 복통

정희석 / 한노정연 연구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우선 이 말은 아주 오래된 속담은 아닌 듯 싶다.
왕의 절대권력 시대엔 왕의 땅을 시장에서 감히 거래할 수 없었다. 이러하기에 사촌은 적어도 봉건제가 무너질 쯤 즉 자본주의가 도입될 즈음 땅을 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속담은 오래되어봤자 우리 (증조)할아버지 또는 (증조)할머니들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유래된다.
이런 시대에는 사촌과 나의 사회적 처지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촌과 나의 정치, 경제적 지위는 동일한 신분, 동일한 족보 안에서 관리되어졌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촌-땅을 살 경제력이 없는 나와 유사한 사회적 위치에 있던 바로 그 사촌-이 땅을 사봐야 얼마나 많이 살 수 있었겠는가? 고작 사봤자 가족들 입에 풀칠할 정도의 논 또는 밭 몇 평이 전부 아니었겠는가?
사촌의 형편이 불과 조금 개선되었을 뿐인데도 나는 신경성 복통 증상을 느낀다. 하지만 이병은 우리 조상들이 어리석었기에 얻은 게 절대 아니다.
자본주의 경쟁체제가 나와 엇비슷한 형편을 지닌 이들의 살림살이가 다소 나아지는 좋은 일에도 시기와 질투를 느끼도록 살벌한 세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철도공사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이 있었다.
나는 한겨레신문에 “파업을 바라보는 상식 바로잡기”(2006.3.2)라는 제목의 글을 싣게 되었다. 기사의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이렇게 시민의 발이 볼모가 되는 것은 나의 불편함이다. 하지만 파업요구조건의 옳고 그름을 떠나, 파업참가는 그 또는 그의 가족에게 생존문제다. 자신의 편안함은 중요하고, 이웃의 생존은 중요하지 않다면 이는 몰상식이다. 연대(連帶/solidarity)는 상식의 최소한을 되찾아가는 행위이다. 시민으로써의 불편함을 토로하기에 앞서 같은 노동자로서 서로의 생존을 걱정해주는 것이 상식이다...”

이 글이 게재된 후 공감을 표하는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비난을 더 많이 보내왔다. 비난의 글 중 나를 가장 혼미하게 만든 내용은 “이들의 파업으로 제일 피해를 보는 사람은 결국 그들과 같은 서민들이요 노동자들이다”라는 글이었다.

위와 같이 파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 다름 아니다. 즉 이웃이 자신의 작은 밥그릇이나마 지켜내려 안타깝게 몸부림을 치는데, 이조차도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며 통증을 호소하니, 이는 신경성 복통 증세가 확실하다.
반면에 파업이 시작되어도 복통을 전혀 느끼지 않는 신체 건강한 이들이 있다. 이들은 건강을 십분 활용하여 권력자와 내기골프(또는 접대골프)를 치고 특혜와 권력을 서로에게 약속하며 기분 좋게 “나이스 샷”을 외쳐댔다.

사촌의 좀 나아진 형편 탓에 신경성 복통을 호소하다 먼저가신 조상들, 이 분들은 후손들이라도 동일한 질병에서 해방되기만을 두 손 모아 기도하실게다. 후손된 자로서 조상의 뜻을 받들어야 마땅치 않겠는가.
그렇다면 처지가 비슷한 이웃 간의 연대를 통해 자본주의 경쟁바이러스가 야기한 신경성 복통을 치료해보자. 무통치료, 무상치료는 필자가 약속한다.

2006-03-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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