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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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렁이는 현대중공업 현장, 노조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현대중공업 어용노조 비리사건을 민주노조건설의 기폭제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118호
윤교선

술렁이는 현대중공업 현장,
과연 노동조합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현대중공업 어용노조 비리사건을 민주노조건설의 기폭제로!

윤교선 / 학생




구시대 학생운동의 유물로 취급받는 위치로 전락한 ‘노학연대’를 아직까지도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학생운동권들에게 현대중공업 노조는 그야말로 “신화”이다. 물론 이는 부르주아 언론들이 내뱉는 노사상생의 표본, “12년 무쟁의 신화”와는 완전히 다른 “신화”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한가운데에서 민주노조가 건설된 이후 94년까지 128일 파업, 골리앗 투쟁 등등 민주노조 역사에 획을 긋는 투쟁을 해왔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94년 68일 파업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파업한 적이 없다. 심지어 2004년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가 분신했을 때조차도 “열사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반노동자적인 행태로 인해 그 해 9월 민주노총에서 영구 제명될 정도였다. 이런 행위로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에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2005년 6월, 탁학수 집행부는 새 이념 · 새 강령 선포식에서 “참여와 협력”, “노사 공존경영”, “기업경쟁력 강화”, “상생문화 창출” 등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면서 자신들의 어용성을 만천하에 널리 알렸다.
이런 어용세력이 집권하기 전의 민주노조는 안타깝게도 비리사건으로 물러났다. 02년 현중 노조창립일 기념품 입찰과정에서 노조 사무국장이 뇌물수수 혐의를 받았고, 당시 노조감사로 활동했던 노민투(노동자민주혁신투쟁위원회-02년부터 지금까지 현중 노조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는 세력) 회원의 제보로 인해 경찰이 수사한 결과, 결국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 민주노조 집행부가 총사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비리사건을 고발했던 노민투가 06년에는 스스로가 비리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한겨레 21의 취재로 드러났다. 이 기막힌 반전드라마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 각본 없는 드라마가 다시 한 번 민주노조 건설로 귀결되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시청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것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술렁이는 미포만

현장으로의 이전을 고민하는 학생운동가들에게 현대중공업은 어느새 이전하기 두려운 사업장으로 그 위상이 변해버렸다. 극심한 현장탄압과 엄청난 노동강도, 그리고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산재 사고 등등의 이유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현중 노조가 박일수 열사의 이름을 더럽힌 죄과로 민주노총 제명에 빛나는 어용의 성지라는 점이다. 이 글을 보시는 선배 동지들은 학생들이 그 정도의 패기와 용기도 없이 무엇을 하겠느냐고 질책을 하실지도 모르지만,(사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별로 할 말은 없다.) 끝도 안보일 정도로 넓은 공장터에 나 한명 간다고 뭐가 바뀌겠냐는 자포자기식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찬란한 민주노조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현대중공업 노조이기에 최근 몇 년 동안의 어용 역사가 더욱 크게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한줄기 빛이 뜻밖에도 노조내부에서 터져나왔다. 노조의 후생복지시설 위탁업체 선정과정에서 입찰업자 양 모씨가 사업자 선정권을 따내기 위해 노조 간부들에게 뇌물을 뿌리고 서류를 조작했다는 폭로가 나온 것이다.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로 이수호 집행부가 총사퇴한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또 다시 터진 노동조합의 비리 사건. 이는 단순히 부도덕한 개인 또는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어용화된 노조와 노조간부, 더 나아가서는 어용화된 노동운동이 필연적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수렁이다.
지금, 미포만 현장은 술렁이고 있다. 회사와 어용노조가 합창하는 ‘12년 무쟁의 신화’, 그 한켠에는 지난 4년간에만 산재사망자 50인이라는 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용 집행부는 유인물에 검인을 안해주는 등(현장에서 배포되는 유인물에는 집행부나 대의원들의 검인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신음하는 현장위에 군림하는 봉건군주와도 같은 어용노조의 비리를 폭로하려는 민주파의 정당한 목소리를 봉쇄하려고 하지만 이미 그러한 시도는 실패하고 있다. 민주노조 건설의 의지는 집행부의 검인이 없어도 조만간 구체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현중 노조 활동가들의 몫이다. “노조혁신 대책위”는 미포만의 술렁거리는 현장의 구심점으로, 술렁임을 민주노조 건설의 움직임으로 이끌어나갈 책임이 있다.

도덕성이 아니라 계급성이다!

이번 비리폭로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폭로를 한 양씨의 진술대로라면 노동조합 간부가 이권에 대해 접근성을 갖고 이를 이용하여 각종 향응과 접대, 뇌물 수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씨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라며 당당하게 변명하는 노조 운영위 핵심 간부의 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입찰이 끝나면 선정된 업체 사장으로부터 밥과 술을 얻어먹으며, 현중 어용노조를 장악하고 있는 ‘노민투’가 회사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 노동자가 자본으로부터 콩고물을 얻어먹는다는 사실을 그토록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노동조합의 모습인가?
어용노조집행부는 터져나오는 현장의 노조 혁신 분위기를 억누르려 하고 있다. 또한 '유언비어 유포자'를 엄중대처 하겠다며 민주파 활동가들에게 직접적, 간적접으로 경고하고 있다. 비리사건은 현장의 신음을 먹으며 기생하는 어용노조의 존재, 그 자체에서 파생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집행간부 몇몇의 문제로 한정하여 자신의 질긴 생명줄을 유지하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각종 노조 비리 사건의 핵심은 파벌이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다. 알량한 떡고물로 노조 대의원들을 포섭함으로써 현장전체를 장악하려는 자본의 포섭전략에 노동운동이 그대로 넘어간 것이다. 노동자로서의 계급의식을 상실하고 자본의 앞잡이가 된 노동조합이 현장 공동화를 초래하고, 비정규직 투쟁을 방관하다 못해 이제는 오히려 앞장서서 탄압하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박일수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분노하는 노동자들이 친 천막을 부순 구사대들은 누구인가? 현중 대의원(여기서 말하는 대의원은 대의원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어용 대의원들을 말한다.)들이 아니었던가! 하청노동자와 해고노동자들의 농성천막의 정리를 요구하며 뻔뻔스럽게도 “영원하라, 현중노조여”를 불렀던 작자들이 바로 현중 노조 대의원들이 아니었던가! 레닌은 계급을 초월하는 이데올로기는 없다고 말했다. 자본가와 노동자, 둘 다를 위하는 이데올로기는 없다는 역사적 진리를 그렇게 표현했던 것이다. 사측으로부터 유무형의 떡고물을 받아먹으면서 자신의 배를 배불리 채우는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금의 현중노조가 영원하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중노조의 비리사건을 접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예전에 강승규 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 때만큼 언론이 시끄럽지가 않다는 점이다. 신문이나 뉴스에서도 제대로 소식을 접해본 적이 없다. 한겨례 21은 대서특필했지만 왜 다른 언론들은 이전과 비교했을 때 이상하리만치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음모론이 근거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쪽에 속하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이러한 침묵 속에는 더럽고 비열한 이해관계가 숨어있는 것 같다. 민주노총 비리사건 때 터져나왔던 이야기들이 기억하시는 동지들은 아마 필자처럼 어이없어 할지도 모른다. 회사가 어떻게 되건말건 자신들의 임금과 복지만을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집단이기주의의 극치를 보여주는 노동운동의 더러운 뒷모습이라고 욕해댔었는데, 노사상생, 기업경쟁력 강화 등을 외치면서 무쟁의를 선언해온 현중노조가 똑같은 모습을 보였으니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자본가들로서는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대충 노조 간부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초점을 몰고가면서 시간 지나면 수습하고 없던 일처럼 살아가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는 길이 회사에게도 이득이 아니겠는가? 전 노조위원장은 배를 주문한 해외의 어떤 회사 사장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쟁의행위없이 열심히 일하겠다’는 충성을 맹세할 정도니 이런 노조가 없어지면 절대로 안되는 것이다, 저들에게는.
이건 여담인데 이러한 음모론과 더불어 이번 한겨레 21에서는 현중 비리 사건과 관련된 또다른 추가기사가 보도됐다. 02년 비리사건은 노민투의 함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성 기사인데, 왠지 모를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필자뿐일까? 궁금하신 분들은 한겨레21 제 601호(3월 21일자)나 인터넷에서 찾아보시길 바란다.

언제까지 ‘지옥선’에 오를 것인가

민주노조는 영어로도 ‘Minjoonojo’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보통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경제투쟁(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도식적으로 구분하기는 어렵지만)에 집중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노동력을 최대한 높은 값으로 판매하기 위한 협상창구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실천적으로 박살냈던 것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남한의 민주노조, 그 가운데서도 현대중공업 노조였다. 한 단위사업장의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육지로는 백골단이, 해상으로는 해경함정을 통한 상륙작전이, 하늘에서는 헬기가 동원된 적을 본적이 있는가? 90년 골리앗 파업투쟁 때는 1만 5천여 명들의 경찰이 투입되어 이 분야에 깨지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정권이 현대중공업 노조의 투쟁에 대응한 방식이 대규모적이고 폭력적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에 대한 기계적인 규정을 깨뜨렸다는 것이 아니다. 90년 5월 현중 노조의 골리앗 투쟁은 전노협의 총파업 선언으로 자본 대 노동의 전면전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당시 전노협의 요구는 “민자당 해체! 노태우 퇴진! 공권력 해체!”였다. 94년까지 매년 벌어졌던 현중노조의 파업투쟁은 할 때마다 자본과 노동의 전면전 성격을 띠게 되었고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변증법적으로 결합되고 발전했던 것이다. 이런 현중노조를 지금과 같이 엄혹한 시기에 다시 세워내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바램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해고가 된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고자 신문으로 원직복직 투쟁을 하는 현중 해고자들을 봤을 때, 현장에서 얼마 남지 않는 민주파 활동가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온갖 고생을 다하는 선배 동지들을 봤을 때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현장권력을 위해 싸워야 한다.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노동조합은 더 이상 노동조합으로서 존재할 가치가 없다. 현중 집행부는 어떻게든 이번 비리 사건은 개인의 문제라고 우기고 싶겠지만, 이번 사건의 전모와 상관없이 언제든 비리가 터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이다. 쉽게 말하자면, 노조관료들이 자본의 뒷구멍을 마음껏 빨아먹으며 조합원 대중들을 기만하면서도, 문제없이 재집권할 수 있는 구조 때문이다.
노동조합은 노사상생을 위한 조직이 아니다. 이갑용 현중 해고자가 이야기하듯, 현중 12년 무파업 신화(!)로 만들어진 노사상생경영 뒤에 남은 것은, “회사는 사상 최대의 매출과 흑자를 내지만, 노동자는 산재로 죽고 비정규직은 분신으로 죽고 출근시간은 점점 빨라지고 근골격계 질환은 늘어만 가는” 현실이다. 4년간 50인이 죽어가는 사업장, 그야말로 백무산 시인이 이야기했던, ‘지옥선’이 아닌가. 이번 사건을 현대중공업 어용 노동조합 자체를 박살내는 계기로 만들어가야 한다.
언제나 적들의 대응은 기민하다. 이번에도 어용노조의 대응은 자신들의 긴장감 때문인지 재빨랐다. 오히려 ‘조합원들은 카더라 통신에 현혹되지 말라’고 현장에 엄포를 놓으며 민주파 활동가들을 죄어오고 있지 않은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분과동지회연합과 청년노동자회 등의 민주파 활동가들은 어용의 비리문제를 기폭제로 어용세력의 존재 자체를 일소해가야 한다. 현중 노조의 자랑찬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미포만의 붉은 해 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더러워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조합원 동지들도 민주노조가 무엇인지 몸으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미포만 노동자들의 심장박동이 어용노조가 아니라 민주노조의 리듬을 타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하다. 달리 말하자면, 활동가들의 선도적인 투쟁 없이는 12년 동안 숨죽여왔던 미포만이 다시 타오를 수 없다. 이 기막힌 반전드라마, 결론은 뻔하디 뻔한 ‘민주노조 건설’이었으면 좋겠다.

2006-03-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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