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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노동자

현장에서 미래를  제2호
이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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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 제 ◦ 노 ◦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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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노동자



이상현(한국외국어대학 중남미지역학과 석사)


1973년 9월 11일 세계 최초의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을 무자비한 불법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집권한 피노체트는 대외개방과 자유경쟁을 기조로 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실시하였다. 이후 칠레 사회는 모든 영역을 경쟁의 원리 속에 가두어버리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급격한 변모를 겪게 되었다. 특히 노동자들은 이러한 변화의 핵심적 대상이었다. 그러면 칠레 국가가 실시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이로 인한 칠레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1. 칠레 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영향


1973년부터 칠레 국가에 의해 실시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칠레의 생산구조와 계급구조에 현저한 변화를 가져왔다. 여러 해에 걸친 대외무역 자유화정책과 사유화정책, 소득분배구조의 변화, 그리고 생산요소 및 이자율의 급속한 변화들은 칠레 사회를 바꾸어 놓았다. 칠레 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의 “자유경쟁은 중소기업의 몰락을 촉진하여 탈산업화 및 실업자의 양산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는 주장을 수용하여 시행한 수입대체 산업화정책을 정반대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서 부정하고 실시한 것이다. 칠레의 신자유주의적 안정화정책은 국가간섭 배제, 공공투자 축소, 해외수입개방 등을 통한 인플레이션률 하락에 몰두하였다. 이 결과 인플레이션은 어느 정도 진정되었지만 국내산업의 퇴조, 해외수지의 악화, 실업문제를 심각하게 야기시켰다. 김병국 외 공편, 라틴아메리카의 도전과 좌절 (서울: 나남, 1991), p.443.

‘시장을 통한 자유경쟁’을 지향하며 피노체트 시기에 실시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칠레의 모든 경제·사회영역을 정복자와 피정복자만이 존재하는 전투장으로 변화시켰다. 시장을 변화의 지향점으로 삼아 실시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단지 국가기능의 축소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경제재구성의 구체적인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정치·사회의 영역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이면서도 심도 깊은 변화를 모색하였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론자들의 국가의 퇴장과 자유경쟁의 명제에 근거하여 실시된 경제정책은 칠레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작지만 강한 국가’라는 신자유주의론의 명제 아래 실시된 경제정책으로 인한 생산구조와 계급구조의 변화는 탈산업화와 독점, 노동부문의 해체 그리고 국민대중의 광범위한 빈곤을 가져왔다.

1. 생산구조의 변화

칠레에서 신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그 오류와 비효율성으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받았던 수입대체 산업화정책은 구리 중심의 한 수출과 국내시장지향의 산업화를 추구하였다. 수입대체 산업화정책이 채택되었던 1960년부터 1972년 사이 총산업생산액(Valor Agregado Industrial)은 21억 9천6백만불에서 41억 7천만 달러로 증가하였다. 또한 산업분야에서 22만 4천개의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었다. 특히 기계, 금속, 운송, 음료, 식료품, 그리고 섬유분야에서 고용이 크게 확장되었다. Rigoberto García, "Cambios Industriales en Chile 1973-1987", p.138.

이에 반해 1973년 이후 칠레에서 추진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국내시장을 지향하는 수입대체 산업화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비교우위에 입각한 수출지향 산업화정책을 제안하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보호주의’나 ‘개입주의’는 자유교역과 국가개입의 최소화 및 제한없는 대외개방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단기적으로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부문의 쇠퇴를 가져왔다. 이러한 산업부문의 쇠퇴를 가져온 신자유주의적 경제조치들은 수입전 예치금제의 폐지, 관세장벽의 철폐, 노동자들의 임금인하, 가격자유화, 실질환율 상승, 수출관련 보조의 철폐, 산업원자재 및 자본에 대한 면세, 외화거래 자유화, 면세지역 설치, 그리고 Pacto Andino 탈퇴 등의 내용이었다. Ibid., p.128.

1974-87년 기간에 칠레의 제조업은 겨우 0.6%만이 성장하였다. 또한 칠레 제조업의 GDP 참여율은 1974년 29.5%에서 1986년에는 20.8%로 낮아졌는데 이는 1950년대 말 수준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고용과 기업의 능력, 기술력 및 생산력, 그리고 소유와 투자에 미친 영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총산업생산액(VAI)을 살펴보면 그 내용은 명확해진다. 1974-87년 평균 총산업생산액은 1960-1972년 사이의 평균 5.4% 성장에 비해 2.5% 감소를 기록했다. 만약 1960-72년에 보인 5.4%의 연평균 성장이 지속되었다면, 1987년 칠레의 총산업생산액은 86억 7천만불에 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39억 4천만불에 달하는데 그쳤다. Ibid., pp.110-111.
이러한 ‘탈산업화’현상은 관세율의 삭감으로 대표되는 대외개방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국내지향산업의 경쟁력 상실이 그 직접적 원인이었다.
결국 칠레의 ‘탈산업화’현상은 중남미 제국 내에서 산업생산부문의 순위를 1971년 4위에서 1986년에는 6위로 하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1-86년 기간 동안 중남미에서는 연평균 5.5%의 생산증가와 2%의 고용증가를 기록하며 450만개의 새로운 고용을 창출시켰다. 그러나 칠레는 이 기간 동안 1인당 생산이 2.5% 하락했으며 고용의 연평균 성장률도 -3.5%를 기록했다. 한편 이 기간의 또 다른 차이점은 외채의 사용에 관한 것인데,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가 외채를 사회간접자본 및 새로운 산업과 수출촉진을 위해 사용한 반면, 칠레는 외채를 사치품 소비와 투기에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하였다. 그 결과 칠레는 ‘탈산업화’된 취약한 산업구조를 갖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탈산업화’는 사회적 부의 독점이 증대되는 현상과 함께 진행되어 다수 국민대중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부의 독점’을 강화시킨 가장 큰 계기로 작용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대표적인 조치는 가격 자유화정책과 국영기업의 사유화정책이었다. 자유경쟁에 의한 시장의 효율성 추구를 그 목표로 했던 가격 자유화정책과 사유화정책이 가져온 결과는 자유경쟁이 아닌, 경제력의 재집중과 재집적이었다. 특히 사유화정책은 경제적 효율성을 위한 정책이었다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지닌 정책이었다. 즉 사유화정책은 새로운 거대 자본가 계급을 창출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James Petras & Steve Vieux, "The Chilean 'Economic Miracle': An Empirical Critique", pp.62-63.

1982-84년의 위기는 수천개 기업의 도산과 대기업의 재편으로 인한 독점형태의 변동을 야기했다. 국가는 이 위기를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1985년에 국가는 총산업생산액의 65%에 이르는 통제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러나 1985년부터 실시된 재사유화정책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가중된 독점을 가져오게 되었다.
재사유화 정책의 결과 1988년 중반에는 새로운 몇몇 대기업에 의해 부의 독점이 더욱 강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자본의 집중은 Angelini-Fletcher Challenge 그룹이 1987년 총수출의 40%를 장악했다는 데서도 그 강도를 알 수 있다. 반면, 1987년에 총수출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4%정도에 불과했다. Rigoberto García, "Cambios Industriales en Chile 1973-1987", p.130.

한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하에서 가장 혜택을 입은 금융자본의 집중과 독점은 칠레에서의 독점의 가속화 현상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부문이다. 칠레의 금융산업은 국내·외 간에 존재하는 이자율의 차이를 노리고 외채를 도입하여 엄청난 불로소득을 획득하며 성장했다. 한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일시적인 성공으로 이끄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금융부문은 1981년 이후 국제금융시장의 위기로 말미암아 파산하게 된다. 그러나 금융부문은 국가의 개입으로 그 손실을 사회화하고, 1985년 이후의 재사유화 정책에 따라 더욱 강화된 자본의 집중현상을 주도하게 된다. 결국 칠레 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생산구조에 있어서 ‘탈산업화’와 금융부문을 중심으로 한 ‘부의 집중’을 가져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2. 계급구조의 변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가장 심한 타격을 받은 부문은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이었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야기한 생산기구의 축소와 탈산업화, 실업과 불완전 고용을 증가시키는 고용구조의 변화,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저항을 억압하려는 혹독한 탄압은 민중의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사회적 영향 특히 가장 큰 시련을 겪은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한 칠레의 민중운동을 살펴보겠다.
1973년 이전의 칠레 노동조합은 중남미 다른 국가들과 다른 모습을 갖고 있었다. 1973년 칠레 노동자의 35%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었는데, John Lear and Joseph Collins, "Working in Chile's Free Market", p.12.
이 때 노동조합은 일반적으로 관료화 수준이 낮았다. 정당과 결합이 강한 반면, 국가와의 관계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 달리 간접적이었다. 즉 칠레의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정치참여를 확장시키고 경제발전을 공평하게 만드는 기본 기구였다.
그러나 군사쿠데타와 더불어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시작되었다. 1973년 9월부터 1978년까지 모든 노동자의 권리는 실제적으로 봉쇄되었다. 파업을 포함한 모든 협상의 도구는 불법화되었고, 사회 각 분야의 요구를 중재할 수 있었던 정당들의 역할은 정치체계와 단절됨으로써 중지되었다. 동시에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일반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주요기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Guillermo Campero, "El Sindicalismo Chileno en el Régimen Militar 1973-1987" In Rigoberto García (Comp.), Economía y Política durante El Gobierno Militar en Chile 1973-1987 (México: Fondo de Cultura Económica, 1989), p.271.

국가의 강력한 탄압으로 인한 노동조합의 기능상실은 그 조직의 급격한 감소를 가져왔다. 1975년 국제노동기구(ILO) 자료에 따르면, 1973년 CUT(Confederación Unitaria de Trabajadores)에 동조하던 130개 연맹과 동맹들 중에서 1974년 2월까지 활동하고 있는 노조는 불과 4분의 1에 불과했다. 이러한 조직의 급격한 감소추세는 계속 이어지는데, 공식통계에 따르더라도 1977년 7,077개 노조와 916,472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었던데 비해 1983년에는 4,401개 노조와 320,903명의 조합원에 불과했다. 결국 1987년에는 만연한 실업 그리고 강력한 정치적 탄압과 새로운 노동법의 합작으로 인해 조합원이 쿠데타 전의 3분의 1수준에도 못 미치는 11%에 불과하게 되었다. John Lear and Joseph Collins, "Working in Chile's Free Market", p.19.

그런데 칠레 노동자에게 억압에 대한 공포보다 더 큰 공포는 실업에 대한 공포였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안정적인 고용을 창출해 주던 국내 산업, 특히 제조업의 쇠퇴는 칠레의 고용구조를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1974-87년 기간의 공식적인 평균실업률은 20%나 되었다. Ibid., p.16.
게다가 시장법칙에만 의존하는 신자유주의론의 통화주의적 접근에 기반한 노동정책은 실업문제 등의 해결은 커녕 그 상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또한 이러한 불안정한 고용구조와 노동조직의 위축은 노동자의 협상력 저하로 이어져 실질임금은 낮은 상태가 유지되었다.

< 표 > 실질임금 1970-1988년 (1970년=100)
연도
1970
1974
1976
1978
1980
1982
1984
1986
1988
실질 임금
100.0
65.1
64.8
76.0
89.4
97.7
87.1
84.9
90.3

노동정책에 있어서 신자유주의적 접근은 1979년 새로운 노동법(Plan Laboral)의 발효로 그 절정에 달했다. 이 노동법의 특징은 1975년부터 추진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이 노동법을 통해 칠레 국가는 노동관계를 국가차원이 아닌 각 기업단위로 귀착시키고자 했다. 새로운 노동법은 가입의 자유를 내세우며 산업부문별 연맹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연맹의 협상권은 금지하였다. 즉 국가는 노동자와 고용주 관계에서 개입자 역할을 유지하면서, 노동자에게는 국가차원 및 산업부문차원의 협상을 금지했다. 새로운 노동법은 신자유주의적 관점에 의거하여, 임금은 시장에 의해 조절되며 시장이란 완벽하고 투명한 존재라는 전제를 고수했다. 또한 협상이나 파업권과 관련해서도 노동조합이 활동하기 어렵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파업은 59일까지만 할 수 있으며, 이 기간 이후에는 고용자의 최후 교섭안을 받아들이거나 스스로 포기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한 노동관련 특별법원은 폐지되었다. Guillermo Campero,"El Sindicalismo Chileno en el Régimen Militar 1973-1987", pp.276-277.

한편, 이러한 노동부문의 해체와 더불어 칠레 국민대중의 빈곤을 가중시킨 것은 재정정책의 변화였다. 신자유주의론자들은 그들의 ‘작지만 강한 국가’의 명제 아래 재정정책을 실행했다. 이는 민간부문의 창의성을 믿으며 국가재정의 축소와 더불어 자유시장은 국가의 여러 행위를 대체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론자들의 믿음에서 실시되었다. 이러한 믿음 아래 칠레 국가는 보건, 주택, 교육 그리고 연금제도 등의 사회복지제도를 민간 서비스 시장으로 이전시켰다. 그러나 이는 소득분배의 불평등 아래 고통받는 국민대중의 어려움을 외면한 정책이라는 것만 확인해 주었다.
총재정지출을 살펴보면, 재정정책이 국민대중에게 끼친 영향은 더욱 분명해 진다. 1973-1986년 기간동안 총사회지출은 연평균 4%가 증가하였는데 이는 총재정지출상의 비율로 볼 때 27%에서 53%로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GDP에 대비해 보면 총사회지출의 증가율은 0%이다. 이는 이 기간의 GDP 성장률 2%에도 미치지 못함은 물론이고 인구증가율 1.7%에도 못 미치는 수치이다.
총사회지출의 내역을 살펴보면 재정정책의 모순은 두드러져 보인다. 우선 이 기간 동안 연평균 증가율이 0.15%에 그친 보건부문의 약화를 꼽을 수 있다. 반면 사회구제비용(Gasto de Asistencia Social)은 23%가 성장하여 총사회지출 중에서 가장 큰 성장을 보이는데, 이것은 대부분의 비용을 경제정책 실패로 인한 실업률 증가의 정치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시한 최소고용계획(PEM)과 세대주고용프로그램(POJH)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택분야는 1973년 총사회지출 비중이 17%에서 1986년 4%로 감소하여 심각한 주택부족 사태를 가져오게 된다. Fernando Cordero, "Evolución del Gasto Militar y del Gasto Fiscal Social en Chile, 1973-1987" In Rigoberto García (Comp.), Economía y Política durante El Gobierno Militar en Chile 1973 - 1987
(México: Fondo de Cultura Económica, 1989), pp.246-251.

칠레 국가는 신자유주의적 기조하에서 재정정책을 통해 정치적 통제의 목적을 가진 영역과 군사비를 제외한, 거의 모든 국영분야를 비효율적이라는 명목으로 해체했다. 이를 통해 일부 부를 소유한 민간부문은 혜택을 입었고 동시에 군비증강에 우호적인 총사회지출구조를 새로이 정립했다. 하지만 이는 소외된 사회 계층의 빈곤을 더욱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칠레 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에게 예외없이 큰 영향을 끼쳤다. 즉 칠레 국가에 의해 실행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조직·비조직 노동자 모두를 궁핍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조직 노동자들의 조직력을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칠레 국가가 노동자들을, 그리고 앞선 정권들 아래서 노동자들이 성취한 조직을 칠레 자본주의 축적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보았다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 즉 안정적인 자본주의 축적구조를 위해 칠레 국가는 직·간접적인 방법들 - 생산구조의 변화와 강력한 탄압을 통해 노동운동의 해체를 도모하였다.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은 만성화된 실업과 혹독한 탄압이라는 이중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안겨주었다. 결국, 칠레 국가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광범위한 확장이라는 강력한 법적·물리적·이데올로기적 개입을 통해 칠레의 노동운동을 개개인의 영역이라는 노동자들의 가장 작은 단위로 축소시켰다.


2. 칠레 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의미


칠레 국가에 의해 실시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칠레 부르조아지의 이해가 걸려있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보호하고자 하는 시각 하에 칠레 사회를 ‘탈정치 사회(Apolitical Society)’로 변모시키고자 하는 의도로서 실시한 정책이었다. 칠레 국가의 최종적인 목표는 가장 정치화되었던 사회 중 하나였던 칠레 사회를 탈정치화 하는 것이었다. Rhoda Rabkin, "How Ideas Become Influential: Ideological Foundations of Export-Led Growth in Chile (1973-1990)", World Affairs, Vol.156, No.1, Sum. 1993. p.7.

쿠데타 후 칠레 국가는 1973년 이전의 수입대체 산업화정책을 산업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으로 간주하였다. 이에 칠레 국가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통해 프레이와 아옌데 정권시기를 거치며 강력해진 칠레의 조직 노동자들을 해체하고 위기에 빠진 자본주의적 질서를 재확립하고자 했다.
이러한 칠레 국가의 의도는 경제정책 운용상에서 보여진 많은 실책에서 불구하고 성공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의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사회주의 정책을 시도했던 아옌데의 집권에도 그 원인이 있었다. 이는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는 쿠데타의 지지세력이자 이후 실시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노동자들 못지 않은 피해자였던 산업자본가와 중간계급의 침묵이 그 원인이었다. 즉 이들 세력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동의’를 보내게 되었다.
이러한 성공은 다음의 사실들로 입증된다. 우선 칠레 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일관성과 더불어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유례없는 지속을 들 수 있다. 16년에 달하는 피노체트 정권의 지속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시로 인한 산업자본가 및 산업노동자의 위축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한편 이와 더불어 칠레 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오랜 민주적 정당정치의 역사를 가진 칠레에서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정권의 초기 정권기반의 취약에도 그 원인이 있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쿠데타를 조종했다고 믿어지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금융세력의 역할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한 탈산업화와 노동세력의 몰락은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최대 위협세력인 노동운동 세력의 정치세력화를 저지하였다. 이러한 노동세력의 정치적 약화는 1984년 10월에 있은 경제위기에 대한 반대투쟁에서 드러났다. 당시의 반대투쟁에 군사정권은 혹독한 탄압을 통해 사회·정치적 조직들을 해산시키려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운동은 1983년부터 새로이 조직화되기 시작한 그들의 사회 및 노동조합 활동의 기반들을 다시금 급격히 잃는 취약성을 보이게 된다. Guillermo Campero,"El Sindicalismo Chileno en el Régimen Militar 1973-1987", pp.281-282.
이러한 노동부문의 취약성은 1981년부터 조직화되기 시작하여 소위 ‘민주화 이행’으로 이끄는 과정에서 주축이 된 반대세력의 구성과 이행의 모습을 통해 뚜렷이 알 수 있다. 1981년부터 재개된 반대세력의 정치적 활동은 광범위한 대중을 정치적으로 이끈 것이 아니라, 단지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상층부들만의 광범위한 연합을 세우기 위한 합의의 과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Patricio Silva, "Technocrat and Politics in Chile: From the Chicago Boys to the CIEPLAN Monks", p.409.

결국 이러한 상층부들만의 연합을 통한 소위 ‘민주화 이행’은 새로운 정권에서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지속되어 사회경제적으로 아무런 결과를 바꾸지 않는 상황을 가져왔다. 즉 표명되는 민중적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후 민간정권시기의 칠레 국가의 정책은 헌법, 군대, 경찰 등 피노체트 시기의 모든 제도적 환경들을 유지한 채 정책의 기본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James Petras & Steve Vieux, "The Chilean 'Economic Miracle': An Empirical Critique", p.65-70.



3. 결론과 교훈


칠레 국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은 아옌데 정권시기에 노동운동이 전개했던 대 자본관계 수준을 넘어선 국가변형의 시도를 자본가 세력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로 좌절시키고 실시된 것으로, 이를 통해 아옌데 정권 이전의 국가 모습을 회복시키려 함과 동시에 노동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해체를 시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칠레 국가의 의도는 성공하였는데, 이는 ‘국가에 의한 수동적 혁명’으로 정의될 수 있는 소위 민주화이행과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기조유지라는 자본주의적 축적질서의 안정으로 귀결된다.
결국, 선거를 통해서 사회주의 정권을 창출할 정도로 막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던 칠레의 노동운동은 혹독한 억압통치와 더불어 실시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공세 앞에서 극심한 쇠퇴를 겪어야만 했다.
칠레는 자유경쟁의 허구성과 국가정책의 편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현재 세계화와 자유화의 구호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우리에게 칠레 노동자의 경험은 한 가지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즉, 힘의 논리에 바탕을 둔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노동자의 유일한 대응은 결국 노동운동진영의 의식적인 ‘강고한 단결’ 즉 ‘노동자의 힘’뿐이라는 사실이다. 한노정연

1997-09-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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