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뜨거운 가을
-병가 시 임금 지급 축소를 둘러싼 분쟁-
이승협(해외 연구원, 독일 튜빙겐 대학 박사 과정)
1. 병가 시 임금 지급 분쟁의 배경
올해 96년은 독일 노동자들에게는 악몽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올해 1월을 기점으로 독일의 실업자 수는 4백 만 명을 넘어섰고,
작년 11월 클라우스 쯔비켈 독일 금속 노조 의장에 의해
제안되었던 “일자리를 위한 연대”는 올해 자본노동국가의
정상 회담에도 불구하고 좌절되고 말았다. 또한 계속되는 사회
보장 제도의 축소는 독일 노동자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격화되는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
강화를 명목으로 더욱더 노동의 양보를 강요하고 있으며, 콜
정부 역시 선거 승리 이후 계속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과 국가의 계속되는 공세는 “경제 입지로서의
독일”에 기초해 있다. 독일 자본은 자신들이 다른 나라
자본가에 비해 “부당(?)”하게 높은 생산 비용을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편으로는 높은 단위 노동 비용, 다른 한편으로는 높은 조세
부담으로 인해 생산에 대한 재투자율이 낮을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한 국제 경쟁력의 상실을 보상 받기 위해서는 인원 감축
내지 공장의 해외 이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주장한다.
따라서 자본은 이러한 논리에 따라 노동에 대해서는 임금과
유연한 노동 시간 활용에 대한 양보 교섭을 요구하고, 국가에
대해서는 기업의 조세 부담을 줄여 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국제노동
독일의 뜨거운 가을
콜 수상의 연립 정부, 특히 자유당(FDP)은 이러한 기업의 주장을
받아들여 최근 기업의 조세 부담을 대폭 감축하는 방향으로 조세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사회적으로 모순된
정책 결과를 가져왔는데, 한편으로는 정부의 재정 부담을 내세워
각종 사회 보장 정책(주택 보조비, 의료 보험 혜택의 축소,
고용촉진법의 개정을 통한 실업 보조 대상의 축소 등)을 축소
내지 삭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기업의
조세 감축을 시행함으로써 막대한 조세 수입의 감소를 자초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콜 정부의 정책은 “빈익빈 부익부”를
가중시킬 뿐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지만, 콜 정부는
막무가내로 자신의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이러한 국가와 자본의 공세는 드디어 병든 노동자에게까지 그
칼을 들이댔다. 11월은 병가 시의 임금 지급에 관한 새 개정
법률안이 시행되는 달이다. 이 개정 법률안의 내용은 간단하다.
이전까지 병가 시 6주일 동안에는 평시 임금의 100%를 그대로
지급하기로 되어 있는 것을 앞으로는 80%만 지불하도록 임금
지불액을 축소시켜 놓았다.
자본가들은 병가 시의 임금 지불에 대한 이전의 법률이 막대한
자본 손실을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독일은 병을 이유로 한 결근율이 세계 제일이며, 구체적으로 일
년에 약 20일 정도의 노동 시간 결손, 금액으로는 수천 만
마르크의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병으로 인한
결근의 경우 6주까지 임금이 100% 지불되므로 노동자들이 “아무
부담 없이” 또한 “별로 아프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병가
신청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당한(?)” 비용 손실을 참을 수 없었던 자본가들은
새로운 개정 법률안이 11월부터 시행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노동조합과 체결된 단체 협상안을 어겨 가며 일방적으로 10월
1일부터 병가 시 임금 지급을 80%로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회사
창립 이래 몇 년 동안 최고의 매출액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다이뮬러 벤쯔가 총대를 매고, 그 뒤를 기다렸다는 듯이 오펠,
포르쉐, 지멘스, 티산 등 유수의 대기업들이 따라 나섰다.
이에 대해 노동조합과 종업원 평의회는 즉각적으로 파업 및 항의
시위를 조직했다. 금속 노조 의장인 클라우스 쯔비켈은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단체 협상을 어기고 병가 시
임금 지급을 삭감한 경영주, 특히 다이뮬러 벤쯔사에 있다고
경고하면서 해당 작업장에 대한 파업을 조직하고 사법적 대응에
나섰다. 노조원들과 직장 내 노조 파견원(Vertrauensleute)들은
해당 사업장에서의 계속적인 파업을 준비해 갔다. 또한 기업
경영주가 병가 시 80% 임금 지급을 적용하겠다고 한 기업의
종업원 평의회(Betriebsrat)에서는 잔업 및 기타 연장 근무
거부에 들어갔다. 특히 자동자 산업에서 거센 저항이
일어났는데, 큰 자동차 공장의 경우, 벤쯔, 포드, 오펠 등에서
각각 만 명 내지 1만 5천 명의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항의
시위에 참여하는 등 전체적으로 수십 만의 노동자들이 항의
시위에 나섰다. 쯔비켈은 40년 전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의
파업이미 병가 시 임금 지급 문제를 둘러싸고 40 년 전인
1956/57년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에서 4개월에 걸친 장기
파업이 일어났었다. 파업의 결과 노동자들은 병가 시 100% 임금
지급을 단체 협상안에 포함시킬 수 있었고, 1969년부터는
정식으로 법에 의해서 규제되었다.
을 상기시키면서, 병가 시 100% 임금 지급을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을 거듭 사용자에게 경고했다.
계속되는 항의 시위와 노동조합의 강력한 대응으로 막대한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여론이 사용주 측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사용자
단체 연합은 독일 노총과 정상 회담을 갖고 기자 회견장에서
공식적으로 회원 기업에 병가 시 80% 임금 지급을 철회할 것을
권고했다. 더구나 콜 수상까지 현재의 단협으로 규정된 병가 시
100% 임금 지급안은 준수되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사용자 측에
대한 지원 사격을 포기해 버렸다. 그 결과 지멘스, 아우디,
포르쉐, 티산 등 사용자들의 단체 행동을 주도했던 기업들은 할
수 없이 다음 번 단체협상까지 현재의 병가 시 100% 임금 지급을
유지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현재 개별 노동조합들은 자본가 단체와 임금 협상에 들어갔다.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병가 시 임금 지급 문제, 휴가비,
크리스마스 수당 등이 논의될 예정이다. 가장 최근의 협상(11월
초)에서 금속 노조의 경우 사용자 단체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용자 단체와 노동조합 양자 모두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측은 현재 계속되는 자본의 공세에 격앙되어
있는 셈이다. 보쿰(Bochum), 오펠(Opel) 공장 평의회 부의장인
한스 레펠(Hans Reppel)의 말을 빌리면, “노동자들은 ‘인내의
한계(Schmerzgrenze)’에 도달해 있다.” 더 이상의 양보는
노동자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편
사용자들도 “더 이상 잘못된 단체 교섭안을 체결하지는 않을
것임(금속 산업 사용자 단체 대표 슈룸페)”을 강조하면서 향후
단체 협상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양쪽의
발언을 단협을 앞에 둔 상황에서의 의례적인 발언으로만 볼 수는
없다.
노동자들은 통독 이후 강화된 자본의 합라화 공세에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더구나 콜 정부의 복지 국가의 해체라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올해 들어 본격화되고 구체화된 형태로
노동자들의 생활고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올
여름 수십 만의 노동자들이 콜 정부의 사회 보장 축소 정책에
반대해서 거리를 점령했던 것도 예전에 보기 힘든 모습이었을 뿐
아니라 이번 병가 시 임금 지급 문제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나선 것도 이러한 위기 의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자본가들의 이번 병가 시 임금 지급 문제 제기도
전체적으로는 자본가들이 구상하고 있는 독일식 노사 관계
모델의 변형이라는 커다란 구도 하에 놓여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집단적 노사 관계 모델을 일본 내지 미국식독일의
자본가들이 구상하는 모델은 노동 시장 및 고용 구조에 있어서는
미국식 모델 즉 고용에 대한 보장 없는 유연한 노동력 이용이고,
생산 조직에 있어서는 일본식 모델이다. 일본적 생산 방식 및
노사 관계 모델에 대한 독일 자본의 관심은 이미 오래된 것이고,
최근 노동 시장 및 고용 구조와 관련해서는 미국식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으로 개별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도의 중심은 당연히
현재의 산업별로 맺어지는 포괄적 단체 협상을 최대한 해체하고,
단협을 개별 기업으로 개별화하는 데 있다.
앞으로의 결과는 향후의 협상 여하에 달려 있어서 아직은 속단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 단체의 한 간부는 신문 인터뷰에서 “협상을
하게 되면 100%도 아니고 80%도 아닌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입장은 사용자 단체에 비해 훨씬
강경한 입장이지만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100% 입장을
고수하기는 힘들 것 같아 보인다. 따라서 100%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노동 시간의 유연한 활용 등 다른 사항을 허용하면서
병가 시 100% 지급을 얻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2. 분쟁의 결과와 향후 전망
이번 분쟁은 일시적이긴 하지만 노동자 측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사용자 단체의 대표가 공식적으로 기자 회견을 갖고 가입
기업에 대해 노동조합과의 단체 협약안을 준수할 것을
권고함으로써 거의 모든 기업이 다음 번 단체 협상 때까지 병가
시 80% 임금 지급안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이번 분쟁을
노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요인을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무엇보다 자본가들의 전술적 실수를 들 수 있다. 여론이
결정적으로 자본가들에 적대적이었던 것은 개정법안이
시행되기도 전에 무리하게 작업장에 시행안을 적용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여론과 방송매체는 자본가 측에 대해
냉담했고, 노동조합 쪽에 우호적이었다.
둘째로, 자본가들이 무리하게 법안의 시행 날짜 이전에 법안을
적용하려 했던 것은 이번 개정 법안이 절대적으로 적용 가능한
게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법안은 공식적으로 노자 간에 체결된
단체 협상안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단체 협상에서 병가 시 임금이 100%로 체결된다면 법안은 아무런
효과를 갖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법안 실시 이전에
“실질적으로” 병가 시 80% 임금 지급을 사실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본가들은 두 번째 실수를 했다. 즉
단체협상안이 유효한 시점에서 단체 협상안을 일방적으로
깨뜨리고 병가 시 임금 감축을 선언했다. 따라서 자본가들이
자발적으로 병가 시 임금 감축안을 철회하지 않고 노동 법원에
제소가 되었더라도 노동조합 측에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로,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저항의 조직화를 들 수 있다. 금속
노조는 다이뮬러 벤쯔의 결정이 나오자마자 벤쯔 공장의 종업원
평의회와 함께 적극적으로 항의 시의를 주도하고 파업을 조직해
나갔으며,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를 조직했다. 이러한 노조의
적극적인 항의 시위는 전술적 약점을 갖고 있던 자본가들에게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했다.
넷째로, 계속되는 정부의 사회 보장 제도의 축소와 긴축 재정,
기업의 합리화, 실업 등 심화되는 사회 불안이 상대적으로
노동자들을 단결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를 위한 지난 번
연대 캠페인에서 보였던 것처럼, 이번에 상당히 많은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항의 시위에 참여했다.
병으로 인한 결근을 줄이려고 자본과 국가가 사용했던 정책적
도구는 두 가지였다. 그 하나가 바로 병가 시 임금 지급을 80%로
낮추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연방보건부 장관인
제호퍼(Seehofer)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 보험 개혁이다.
구체적으로 의료 보험 회사에 대한 기업 내 노동자 건강 보장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 지원을 전면 삭제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즉 한편으로는 임금 지급을 축소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켜 최대한 병가로
인한 결근율을 낮추는 것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독일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이번 분쟁을
통해 최소한 병가 시의 임금 지급 문제를 지켜냈으며, 나아가
노동자의 단결된 힘만이 개별 노동자를 자본의 공세로부터
지켜낼 수 있음을 깨달은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이번 분쟁
이후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급속히 높아졌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금속 노조에 따르면 10월 이후 신규 가입
노동자가 1만 3천 명으로 이전에 비해 약 두 배 정도 가입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병가 시 임금 지급 문제도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며,
의료 보험 개혁은 이미 시행 중이다. 또한 경영 측은 병가 시
임금 삭감에 이어 계속해서 휴가비의 대폭적인 삭감 내지 삭제,
크리스마스 수당의 삭감 내지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도
독일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은 계속되는 자본의 공세 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