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특집 > 목록보기 > 글읽기

 
김영삼정권의 ‘신노사관계구상’과 노동법개정

현장에서 미래를  제16호
이광일

9612(16)김영삼정권의‘신노사관계구상’과노동법개정.hwp 9612(16)김영삼정권의‘신노사관계구상’과노동법개정.hwp(32 KB)

김영삼정권의 ‘신노사관계구상’과 노동법개정

이광일(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정치학)


87년 6월 정치적 자유화운동과 7~9월 이후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운동은 김영삼정권의 성격은 물론 최근 노동정책의 변화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 계기이다. 김영삼정권의 성격을 둘러싼 논의들은 결국 이들 계기간의 긴장을 반영하고 있는바, 그 가운데 “제한적 민주주의,” “파시즘적 자유민주주의”라는 규정은 이를 확연히 드러내 주고 있다. 즉 이들 규정은 현 정권이 독점자본주의의 하나의 지배형태인 자유민주주의국가에 포함될 수 없음을 공통적으로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현 정권의 출범 이후 추진된 개혁조치가 법적, 제도적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노동권리의 부재’라는 비판을 그 핵심에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서구 자본주의국가들에서조차 ‘권위주의 국가화’가 일반적 경향이 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권위주의화에 대해서는 N.Poulantzas, State, Power, Socialism (London:Verso, 1980), Part Four 참조.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경우, 최소한 법적 수준에서나마 노동기본권과 노동자계급의 정치활동보장 자체를 문제시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배어 있다.
김영삼정권의 이러한 한계는 일련의 자유주의적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87년 7~9월 노동쟁의 이후 전면에 대두한 노동자계급의 민주화 요구를 ‘국가경쟁력 강화’를 앞세운 ‘세계화’ 논리에 종속시키며 배제하였던 점에서 확인된다. 오히려 김영삼정권은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의 두 축인 독점자본과 파시스트세력의 ‘분리’를 겨냥한 개혁조치―특히 금융실명제, 5‧6세력에 대한 ‘사법처리’ 등―를 추진하여 한편으로 사회의 위에 존재하는 중립자로서의 이미지를 제고시키고 다른 한편 이를 통해 확보한 지지를 노동자계급에게 ‘고통분담’을 전제한 “세계화”에의 동참을 강제하는 기반으로 활용함으로써 더 유연하게 독점자본의 이해에 부응하여 왔다. 특집:김영삼 정권의 ‘문민개혁’을 평가한다

김영삼정권의 ‘신노사관계구상’과 노동법 개정



김영삼정권은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지난 4월 24일에는 ‘신노사관계구상’이라는 자유주의적 노동개혁의 이념적 지표를 제시하고 5월 9일 그 제도적 표현인 노사관계개혁위원회(이하 노개위)를 출범시킴으로써 민주노동운동에 대한 배제와 억압이라는 기존의 소극적 노동정책으로부터 이들의 ‘포섭과 고립’을 목표로 하는 좀더 적극적인 노동정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였다. 이는 일련의 자유주의적 개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독점자본 및 파시스트세력과의 일정한 거리 유지 필요성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었고 “제한적 민주주의” 또는 “파시즘적 자유민주주의”로 자신을 비판하는 데 핵심적 준거가 되는 노동권리부재 상황을 위로부터 해소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의 표현이었다.이와 관련하여 “법과 제도가 합리적으로 바뀌고 나면 나 자신 누구보다도 강경론자가 되겠지만 아직 법과 관행에 비합리적인 면이 많은 상황에서는 온건하게 문제를 풀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청와대 사회복지수석 박세일의 인터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ꡔ한겨례신문ꡕ(1996. 6. 21) 참조.

그렇지만 이러한 노동정책의 변화가 독점자본에 구조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김영삼정권의 성격을 상쇄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미 이 점은 집권 원년 개혁에 대한 독점자본의 미온적 태도를 위무하기 위해 발표한 ‘신경제 5개년계획’과 현대중공업 노동쟁의의 와중에서 도출된 ‘이인제파동’에 의해 확인된 바 있다. 특히 무노동 부분임금의 수용, 노동관계법의 개정, 해고노동자 복직 문제 등에 대한 노동부장관 이인제의 친화성 발언을 둘러싸고 증폭된 갈등의 해소과정은 김영삼정권의 구조적 종속성에 대한 더 이상의 논의가 불필요함을 각인시켜 주었다. 이른바 ‘이인제 실험’은 독점자본, 그리고 급속한 수출주도형 산업화 과정에서 이들과 밀착해 온 국가관료기구 내부의 반대―특히 경제기획원(지금의 재정경제원)과 상공부(지금의 통상산업부)―에 직면하여 결국 하나의 ‘에피소드’로 끝났지만 김영삼정권이 취할 수 있는 개혁의 폭이 얼마나 협소하며 반대로 지배권력에 대한 독점자본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확연히 가늠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김영삼정권의 자유주의적 개혁조치가 민주화라는 호명 속에 단속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서 이른바 사회의 위에 불편부당하게 존재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부르주아민주주의 국가―자체의 존재만큼 피지배계급, 계층에 대해 헤게모니적인 것이 없다는 논의의 의미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 P.Anderson, “The Antinomies of Antonio Gramsci”, New Left Review, No.100, (Nov.1976/Jan.1977).
왜냐하면 이 주장은 자유주의적 신노사관계구상의 정치적 효과를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김영삼정권이 노동법개정의 추진과 함께 ‘재벌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보다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김영삼정권은 12.12쿠데타 및 5.18민중항쟁의 원인규명 문제를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당초의 입장이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진영의 완강한 사법처리요구에 부딪히자 이를 수용함으로써 자신의 ‘과거청산’이 발본적임을 과시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여파를 몰아 국가보안법 개폐문제와 더불어 최대의 현안으로 남아 있는 노동법개정 문제의 해소를 위해 ‘신노사관계 구상’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조치는 김영삼정권이 추진해 온 개혁의 한계와 타협성을 상징하던 이들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일면 파시스트세력과의 차별성을 보다 분명히 하고 이를 통해 시민운동을 포함한 기존 제도 내․외의 범자유주의 세력의 결집을 제고시키는 한편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운동세력을 분화․흡수시키겠다는 적극적인 정치적 공세―이른바 범개혁 지지세력의 결집―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이러한 적극적인 대응은 합리적 수준의 노동법 개정을 통해 자신의 물적 기반인 독점자본의 재생산구조를 안정화시키고 이를 토대로 파시스트세력과 간격을 유지하며 헤게모니를 강화하고자 하는 김영삼정권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었다.
자유주의적 ‘신노사관계구상’이 발표되자 독점자본은 5월 8일과 14일 각각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를 통해 복수노조허용과 3자개입금지 폐지 등이 ‘노사불안’을 조장시킬 우려가 높다는 이유를 들어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 공식적으로 이에 반대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반응이 이른바 신노사관계구상 그 자체에 대한 자본의 반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독점자본의 경우, 과거 파시스트권력의 각종 경제규제에 대한 혐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시의 억압적 노동통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국제기준과 관행’을 앞세워 노동법 개정을 요구하는 선발자본주의 국가가 여전히 자신의 가치실현을 위한 주요한 시장이라는 점, 과거 공공연했던 파시스트권력과의 정경유착이 현 정권에 의해 사법적으로 검증됨으로써 반민주적인 재벌체제의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는 점, 노총­경총 임금가이드라인 합의를 무화시킬 만큼 민주노총이 성장하고 실세화함으로써 이들의 노동법개정 요구를 외면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는 점 등 때문에 법개정 그 자체에 반대하는 입장을 유지할 수 없었다.
따라서 독점자본은 김영삼정권이 집권 말기에 들어섰다는 국면에 주목, 노개위에서의 법개정 논의를 지연시키며 생산성 제고라는 자신의 이해를 최대한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의 전략은 이들이 신노사관계구상에 대해 외견상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는 구체적으로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개정에 대한 반대로 나타났다―과는 달리 미시적인 개별사업장 수준에서는 노동통제와 민주노조의 현장장악력 침식을 겨냥한 유연화전략을 도입하는 것으로, 제도적으로는 ‘노동의 유연화’를 제고시키기 위한 정리해고제, 변형근로제, 근로자파견제, 근로기준법상의 노동과잉보호조항 철폐 등 이른바 ‘개별적 노동관계법’ 개정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이에 대해 ‘비합리적 정경유착’의 근절―이것은 최근 ‘나눠먹기식’ 국책사업자선정에서 확인할 수 있듯 독점자본 사이에 최소한의 형식적인 경쟁의 확보를 의미한다―과 ‘재벌경영의 투명성’을 강조하며 자유주의적 노동개혁을 추진하고자 한 김영삼정권은 노개위의 성과물이 나와야 하는 활동 시한을 96년 말로 제시하며 자본과 노동―특히 민주노총―양자의 ‘태업가능성’에 압력을 가하는 한편, 이른바 국제경쟁력 강화에 가장 본질적인 노동으로부터의 협력확보를 위해 법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김영삼정권은 지속적인 개혁을 앞세우며 독점자본의 조합주의적 이해 추구를 완화시키고자 이들과 밀착된 공정거래위원회, 재정경제원의 비리에 대한 한정된 수사를 압력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10월 25일 이미 초청협정에 서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노동법개정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경우, 김영삼정권의 대외적 위상이 제고되고 이러한 국가의 위상제고와 안정이데올로기에 쉽게 매료되는 중간층의 지지가 확산되어 국내외의 정치적 기반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은, 내년 대선을 앞둔 김영삼정권으로 하여금 노동법개정에 적극 나서게 하는 정치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그러나 김영삼정권의 이러한 시도는 ‘노사합의에 의해 노동법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가장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는 원칙이 노동현실에 직면해 드러내는 모순 때문에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현대 민주주의에서 기본권의 핵심이라 할 노동3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자본과 논의해야 할 협상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현실을 외면한 채, ‘노․자합의’를 통한 법개정을 추진한다는 것은 이른바 노동귀족이 협상의 주체로 참여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김영삼정권이 노개위에 ‘동등한 주체로서의 노․자’가 참여하는 최소한의 ‘독립 기구’로서의 위상을 부여하지 않고 한국노총을 포함한 노․자의 상이한 견해가 표명되는 ‘자문기구’의 성격을 공식적으로 부여한 이유를 간접적이나마 인지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결과 노개위는 김영삼정권의 구상과는 달리 자유주의적 노동개혁을 촉진시키는 기제로 기능하기보다 그것의 실현을 저지시키는 기구로 변형되었다.
그렇지만 노개위가 지니는 이러한 모순이 제도 내적인, 혹은 정치적인 요인의 자기 완결성에 의해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들 모순을 작동시키는 구조적 요인은 신노사관계구상의 기저에 흐르는 이른바 세계화 논리―과도하게 단순화시킨다면, 이는 자본주의세계체제에서의 생존을 위해 ‘계급들’은 국가에 종속되고 국가는 국제경쟁력이라는 외투를 입은 ‘국민적 대표성을 지닌 자본’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의미한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 구조적 요인이 독점자본에 의해 최근 증폭되고 있는 경제위기론을 매개로 노동법 개정 방향을 더욱 ‘우경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모순을 간직하고 출범한 노개위가 지배권력과 자본, 그리고 민주노동운동에게 주는 구체적 의미는 무었인가? 먼저 노동법개정의 주체와 관련, 노개위 출범은 그 동안 노동법개정 문제에 대해 민주노동운동이 행사해 왔던 주도권이 노․사합의라는 외피를 통해 김영삼정권으로 이전되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였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이러한 주체의 전치와 더불어 법개정의 우선 대상인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위상이 ‘개별적 노사관계법’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하되었다는 점이다.
노개위에서 주로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개정으로 표출되었던 노동악법의 개정은 80년대 반파시스트 민주투쟁을 경과하면서 민주노동운동이 줄곧 요구해 온 것이었고 법개정의 핵심적 내용은 이러한 투쟁을 반영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일반적 권리로서 노동3권의 보장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운동이 주체가 되었던 노동법개정의 이러한 내용은 노․사합의를 원칙으로 하는 노개위가 출범함으로써 전도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먼저 주체와 관련, 김영삼정권은 민주노총이 참여한 가운데 노개위를 출범시킴으로써 이른바 노․자를 초월한 중립적 조정자라는 외양을 강화시키며 노동법개정의 최종결정자로서의 위상을 일단 획득하게 되었고 자본은 노개위에 참여하여 노동악법의 개정에 제동을 거는 것만으로 ‘노동의 유연화’를 제고시킬 수 있는 법적조치들―이는 노개위에서 이른바 개별적 노사관계법의 개정으로 표현되었다―의 확보가능성을 높이게 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민주노동운동진영은 노동법 개정문제에서 행사해 왔던 헤게모니를 점차 침식 당하게 되었고 나아가 노동악법의 우선적인 개정이라는 기본적 요구가 거부되는 상황을 감수해야만 했다. 즉, 80년대 반파시스트 민주투쟁 이후 민주노동운동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법개정의 내용은 최소한 노동3권의 보장이었고 이것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일반적 권리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노․자합의라는 덫을 지닌 노개위가 출범하면서 이러한 기본적인 내용은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의 유연화조치들과 교환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변하게 되었고 노동3권의 보장도 모든 사회구성원이 일반적으로 누려야할 할 기본권리라는 의미에서보다는 자본과의 협상결과에 따라 그 보장 여부가 결정되는 지위로 전락되었다.
10월 2일 민주노총이 노개위로부터 철수를 결정하고 권력과 자본의 노동법개악 움직임에 경고를 가하자 이를 계기로 그동안 지연전략을 추진하였던 자본은 노동법개정의 유보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노동법개정을 모색해 왔던 김영삼정권이 부딪히게 될 국내외의 정치적 부담으로 인해 이 요구가 제외되자 독점자본과 청와대 경제수석실, 재정경제원, 통상부, 심지어 중립성을 강조했던 노동부까지 언론을 매개로 ‘국가경쟁력 강화론’을 내세우며 자본이 요구하는 개별적 노사관계법의 대폭적인 수용을 전제로 한 노동법개정을 강력히 시사하였다. 자유주의적 ‘신노사관계구상’의 제도적 표현이었던 노개위는 노사의식과 협상문화의 정착을 차기 과제로 설정하며 노동법개정의 무대에서 사라졌고 새로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노사관계개혁추진위원회(노개추)가 구성되어 최종적인 법개정의 추진자로 등장하였다. 이는 정치적으로 김영삼정권의 자유주의적 신노사관계구상이 실패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른바 세계자본주의체제에서 차지하는 한국자본주의의 불투명한 중위의 위상이 여전히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헤게모니 지배’, 즉 ‘제한된 민주주의의’의 극복가능성을 용인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노개위의 활동이 유명무실화된 가운데 민주노총은 11월 10일 노동자대회를 통해 노동법이 개악될 경우 총파업도 불사할 것이라고 발표하였고 이로부터 이틀 후 한국노총도 동일한 결정을 내렸다. 그러자 독점자본은 이에 대응하여 11월 12일 전경련 모임을 통해 “복수노조 허용과 3자개입금지 철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천명하여 노동법개정을 원점으로 회귀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였다. 이들 조항에 대한 철폐반대는 특히, 민주노동운동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독점자본의 극우적 성격을 재차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자유주의적 신노사관계구상의 한계가 분명히 노출된 상황에서 독점자본이 단순한 노동법개정의 차원을 넘어서는 요구, 즉 노동자계급에게 민주주의냐, ‘파시즘’이냐라는 화해할 수 없는 정치적 선택지를 내 놓고 ‘타협’을 강요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노동법개정이 단순한 법조항의 개정 차원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법개정 문제의 기저에는 노동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노동운동이 지난 80년대 전개했던 반파시스트민주투쟁의 역사가 확인해 주듯 ‘권위주의 국가화’의 경향을 끊임없이 강화하려는 독점자본과 이들의 파트너인 반민주적 관료세력에 대한 정치적 대결, 더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민주주의투쟁을 자신의 지배를 위한 기반으로 전취하려는 자유주의 세력과의 정치적 대결이라는 문제가 깔려 있다.
따라서 기우에서이지만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민주노총의 노개위 참여전술 그 자체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두어져서는 안 된다. 현재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미 짧은 과거가 된 민주노총의 노개위 활동을 매개로 드러난 성과와 한계, 제세력의 논의와 주장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구획해 내는 작업이다. 나아가 이들 작업의 결과물을 일반적 권리로서의 노동기본권 보장이 실현된 노동법확보투쟁을 매개로 현장 노조지도자, 노동자와 함께하면서 정치세력화의 대중적 기반을 다져나가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로 이러한 작업들이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실천될 때, 이른바 97년 대선정국을 앞둔 상황에서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영향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올바른 정치전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전망을 가시화시킬 수 있는 더 적실한 경로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한/노/정/연

1996-12-01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