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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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망명자
 세상만사

현장에서 미래를  제118호
최세진


두 망명자

최세진 / 한노정연 연구원




우리나라는 1994년부터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했는데, 작년까지 500여명의 난민신청자 중에서 난민을 인정받은 숫자는 겨우 37명에 불과하다고 한다.(대한민국 헌법상 탈북자는 본래부터 대한민국 국민이지 난민이 아니다.)
한국 정부는 버마(현재 버마의 군부 독재는 버마를 ‘미얀마’라 부른다)의 민주화 투쟁 중 피신한 망명자를, 본국으로 추방하면 처형당할 것이 너무도 뻔한 상황에서도, 일부만 난민으로 받아들이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강제 출국 명령을 내려서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과거 6.25 직후 많은 난민을 세계에 보낸 역사가 있고, 군부독재 시절에 홍세화씨를 비롯한 많은 운동가들이 다른 나라로 망명해야 했던 경험이 있으며, 그 중 직접 망명 경험이 있는 김대중 전임 대통령을 가진 나라인데, 이건 좀 많이 심하다.
그에 비해 캐나다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에 비해서도 난민과 망명에 상당히 관용적인 나라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이 역사상 37명의 난민만 수용한 것에 비해 캐나다의 경우 2004년 한해 통계만 보더라도 합법적인 이민자 24만여 명 중 절반 가량인 43%가 망명과 난민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리…. 이는 2004년 한해만 해도 최하 10만여 명의 난민자와 망명자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이다. 최근 우경화의 길을 가고 있고, 현재 보수당이 집권당이 되긴 했지만, 이민정책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발표로 봐서 당분간은 이러한 관용적인 이민정책을 고수할 모양이다.
아마도 노동인구의 부족이 이렇게 관용적인 이민정책을 나은 주요한 원인일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는 난민과 망명자 수용에 대해 ‘인류애 차원의 조치’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테러리스트로 의심되는 사람이 캐나다에 망명을 신청한 상태에서 미국에 체포되어 관타나모에 갇히자 ‘증거도 없이 의심만으로 우리나라 국민을 가두고 있다, 내놔라’고 미국과 다투기도 하는 것을 보면 캐나다의 난민 수용 정책이 ‘말뿐인 인류애’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인의 경우에도 여성들이 ‘남편의 폭력’을 피해서 난민 신청을 하고 망명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여튼 캐나다가 그렇게 망명자가 많은 나라다보니 우연히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처음 만난 망명자
토론토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마냥 걸어 다니기만 하던 때, 핫도그를 사먹다가 만난 아저씨.
음식값 때문에 밖에 돌아다닐 때는 보통 핫도그로 끼니를 해결하는데, 이 노점의 아저씨들이 말하는 언어는 내가 생전 처음 듣는 언어였다. 억양이나 악센트, 단어 어느 것 하나도 익숙하지 않아서 궁금증이 솟아 “혹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봐도 되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이란’에서 왔다며 나보고는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남한이냐? 북한이냐?” “남한” “어느 도시?” “서울”이라고 대답하니까, 자기도 90년대에 서울에 가 본적이 있다며 ‘롯데월드, 이태원’ 등등 아주 좋았다고 하더라. 그러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이 아저씨는 이란에서 망명을 온 사람이었다. 캐나다로 망명오는 길에 정부의 추적을 피해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거칠 때 서울에 들린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가 망명을 오게 됐냐”고 물으니까 대답은 안 해주고 갑자기 내 나이를 묻는다. 그래서 몇 살이라고 대답해줬더니, 자기는 몇 살쯤 되었을 것 같냐고 해서 우리에 비해 빨리 늙는 얼굴인 걸 감안해서 대충 40대 후반으로 이야기하니까 훨씬 올려 보랜다. 그래서 50대 중반이냐고 했더니 더 올려 보랜다. 그래서 50대 후반? 했더니 60대 중반이랜다. 60대 중반이면 정말 젊은 얼굴이다. (사진: 토론토 길거리에서 만나는 유일한 먹거리, 핫도그 가게)
그러더니 내 다리를 주먹으로 툭툭 치는데, 분명 살살 건드리는 것인데도 거의 벽돌로 내리찍는 기분이었다. “주먹이 이렇게 단단하고, 이렇게 젊어 보이는 이유는 젊었을 때 운동을 많이 해서.” 내 나이가 어려서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자신이 “예전에 팔레비 국왕의 왕실 경호원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혹시 그 국왕이 호메이니 이슬람 혁명에 의해 물러난 사람이 아니냐”고 물으니 “오… 니가 우리 역사를 아는구나” “나이는 어려도 호메이니의 혁명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고 이야기 하니까, 바로 그 호메이니 혁명 이후에 완전히 사회적으로 매장 당해서 이렇게 망명을 오게 됐단다.
그런데 캐나다에 왔다고 문제가 끝난 게 아니었다. 이란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캐나다 정부에서는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의심하면서 모든 여권과 신분증을 다 압수해서, 현재는 가족을 캐나다로 초청할 수도 없고, 자기가 출국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캐나다 정부가 다른 망명자들과 달리 취급하는 것으로 봐서 ‘국왕 경호원’이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거나, 캐나다 정부에 뭔가 대단한 밉상이 박혔나보다.
여튼, 자기는 이슬람 혁명이 싫어서 망명했는데, 거꾸로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의심받아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다니 억울해 미치겠다는 이야기였다. 나보고 종교가 있냐고 묻길래 없다고 했더니, 모든 종교는 악의 근본이라며 욕을 하기 시작하는데, 최고 악질 자본가들이 바로 그 목사나 랍비 등 종교가라던가, 교황이 실은 ‘호모’라던가… 등등등…. 그 이야기에 웃음이 나와서 “나야 종교를 싫어하니까 이런 이야기 괜찮지만, 캐나다는 기독교인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이야기했다간 난리가 날꺼다”고 했더니, 크크큭 웃으면서 “맞어. 맞어. 조심.. 조심..”
이란의 역사에서 부패와 무능의 상징으로 남은 팔레비 국왕의 경호원이었다면, 아마도 한국의 과거 군부독재 시절 ‘중앙정보부’나 ‘안기부’처럼 ‘一人之下 萬人之上’의 권력을 휘두르며 돈과 사람들을 주물떡거리던 사람이었을께다. 한때는 부패정권에서 모든 권력을 누렸지만, 지금은 이제 캐나다에서 갈 곳 없는 망명객으로서 테러리스트로 의심받으며 감시받고, 늙은 나이에 이란에 남은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핫도그 노점에서 번 돈을 몽땅 이란으로 보내면서 너무 외롭다고 한탄하는 이 아저씨.
마치 일제시대 대지주로 떵떵거리면 살다가 6.25때 인민군에게 재산 다 빼앗기고, 인민재판 피해서 피난 내려왔더니 남한에서 ‘간첩’으로 의심받으며 혼자 외롭게 말년을 보내는 상황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경호원을 하고 있을 때야 나하고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이겠지만, 이제 평범한 노점상이 된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친해져 버렸다.
그 다음부터 핫도그를 사먹으러 가면 나보고 ‘브라더’라고 부른다. 흐….  “이 ‘못 된’ 캐나다에 있는 거보다 차라리 그때 한국에 남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라고 이야기 하길래 “한국에 있었더라면 더 살기 어려웠을거다”고만 이야기해주고 말았다. 민주화 운동하다가 쫓겨온 사람도 쫓아내는 나라인데, 과거 부패 정권에 있다가 도망쳐 나온 사람을 망명자로 받아줄리 만무하다. 아마도 한국에 있었더라면 강제로 본국으로 추방당해서 처형당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동안 그 동네에 가지 않았는데, 아직도 날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두 번째 망명자 
지난번 홍실이님이랑 우모자를 봤던 날 밤늦게 헤어져서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택시 운전사 아저씨가 늘상 하는 인사 “How are you today?”에 “오늘 멀리서 친구가 와서 오랜만에 즐거웠다”고 대답했더니 그때부터 이 운전사 아저씨의 질문이 쏟아졌다.
“친구가 무슨 일로 왔는데?” “뭐하는 친구인데?” “너는 무슨 일 하는데?”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보통 그냥 ‘글쓰는 사람’이라고 답하는 편이다. 학생도 아니고 ‘불법 이주 비정규 노동자’로 지내면서 내세울 뚜렷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글 쓰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는 게 제일 편하다.) 그랬더니 “어떤 글을 쓰느냐?” 등등을 거쳐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하길래 “코리아”에서 왔다니까 “남한이겠구나?” 그러더니 “남한과 캐나다를 비교하면 어떠냐”고 물어본다. “캐나다의 사회복지 시스템의 경우는 남한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했더니, 잠시 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질문이 점점 정치적인 이야기로 옮겨가기 시작한다.
나보고 “너는 너희 나라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난 글쎄…. 그다지 안 좋아한다”는 대답에 또 그 이유를 묻는다. “현재 남한 정부는 미국적인 ‘심하게’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을 따라가려고 난리다. 난 그게 싫다”고 이야기 하니까 이번엔 “그럼 너희 정부에서는 너를 어떻게 생각하냐?” 라는 황당한 질문을 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정부도 날 별로 안 좋아할 거다.”  아저씨 왈 “너는 자본주의 별로 안 좋아하니?” “응.”
그 뒤 이 운전사 아저씨 물어보길 “남북간의 통일 문제에 대해 현재 미국의 취하고 있는 입장과 남한 정부가 취하고 있는 입장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한다. 헐…. 그래서 “미국은 남북한간의 통일을 그다지 원하지 않는 것 같고,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현재 남한 정부는 북한과 통일 문제를 진지하게 평화적으로 논의하고 싶어하는 것 같고, 이것 때문에 미국 정부와 갈등이 있기도 하다”고 했더니 “부시에 대해 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냐?”고 묻는다. “글쎄…. 내 생각에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은 부시를 싫어하는 것 같다. 이라크 침공이나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 등 때문으로 생각된다”고 하니까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한손을 쭉 내밀더니 “난 팔레스타인에서 온 망명자다. 혹시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를 아냐?”고 악수를 청한다. 처음에는 우리가 아는 그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명과 발음이 다르게 들렸다. 그래서 못 알아들었더니 다시 한 번 발음하는데 그때서야 알아듣고 “아… 팔레스타인! 나도 만나서 반갑다.”
‘자본주의를 좋아하는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부와는 어떤 관계인지’ 이 모든 사상 검증을 마친 후에야 반가운 얼굴로 자신의 정체를 밝힌 것이다. 헐헐헐…. 그런데, 그 때 집에 도착해버렸다.
그래서 “시간만 더 있으면 묻고 싶은 게 많은데 아쉽다”고 했더니 이 운전사 아저씨, 차를 세우면서 뭐 괜찮다며 계속 이야기 하잔다. 그래서 제일 먼저 “스필버그의 영화 <뮌헨>”에 대한 입장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음… 그 영화… 봤는데… 내 생각에는 그 영화에 일부 팔레스타인 입장이 소개되고, 스필버그는 중립적인 영화라고 이야기 하지만, 내 생각에는 유태인을 위한 영화다.” 그런다. 나도 막 웃으면서 “내 생각이랑 똑같다”고 하니까 너무 반가워한다. 그러면서 그 영화 배경에 대해 아냐고 묻길래 “잘은 모르지만, 이스라엘의 역사와 시오니즘, 팔레스타인의 역사, 검은 9월단 사건 등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 많은 한국 언론들과 영화를 본 사람들이 그 영화를 평화를 위한 중립적인 영화라고 이야기하지만, 난 당신 생각에 동의한다” 하니까 나보고 “지적인 사람과 만나게 돼서 반갑다”란다. ㅎㅎㅎ
그리고 스필버그의 옛 영화들에 대한 생각들, 그 외 영화나 책 이야기를 주고받고 어쩌고 하다 보니 내가 이 사람 영업시간을 너무 많이 뺏는 것 같았다. 개인택시도 아니고 회사택시인데…. 그 아저씨 나랑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계속 미터기를 켜놓고 있어서 그 사이에 4불인가가 올라갔다. 그래서 나도 같이 이야기했으니 2불을 내겠다고 했더니 처음엔 괜찮다고 자기가 메꿀 수 있다고 하다가 그래도 내가 돈을 내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고맙다며 받는다.
내가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겠냐? 혹시 토론토에 팔레스타인 커뮤니티가 있냐?”고 물으니까 자기도 다시 만나고 싶다면서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지적인 사람을 만나게 되서 반갑다”고 또 이야기 하는데, 과연 내가 이슬람교의 ‘종교와 정치의 일치’에 대해 문제제기를 시작할 때도 나보고 “지적”이라고 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후후….
여튼 그렇게 받아든 전화번호로 다음 주에 연락하기로 했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아직 연락을 못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한번 연락을 해봐야겠다. 

ps.
조금 이야기를 엇나가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마호멧에 대한 만평 때문에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이슬람 시위가 일어나던 그 즈음, 토론토와 퀘벡에서도 이슬람계 캐나다 사람들의 항의 시위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시위는 다른 유럽들과 달리 기독교인과 유태인들도 참가해서 ‘타 종교에 대한 모독을 중단하라’고 함께 요구하고, 연설을 하기도 했다. 캐나다 유태인 연합에서도 타 종교에 대한 모독 행위를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다. 시위는 평화로웠고, 다음날 신문에는 그 시위대를 향해 인종주의적인 욕설을 소리 친 구경꾼이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는 장면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알버타주에 본사를 둔 잡지 ‘웨스턴 스탠다드’와 ‘유대인 자유언론’이 문제의 마호메트 만평의 일부를 재게재하자 무슬림 단체들은 두 언론사를 증오범죄 혐의로 고발한 일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 캘거리 검찰은 ‘특정 집단에 대한 증오를 유발하기 의도로 볼 수 없다’며 기소를 취하했고, 이에 화가 난 ‘캐나다 이슬람연합’은 법 개정 운동에 돌입했다.
캐나다는 참 여러모로 재미있는 나라다.

2006-03-31 0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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