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노총(DGB)은 독일자본과 함께 새로운 동반자의 길로 갈 것인가?(하)
하이쯔 쉐페(Heinz schӧfer, 경제학 박사)
출처: Z. 제 20호, 1994년 12월호
<편집자주>
독일노총 내부에서는 1996년 11월 특별총회를 앞두고 ‘강령 개정’을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노동조합이 ‘대안적 사회질서’를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질서 내에서 여러 가능한 사회?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이 강령논쟁에 대한 소개가 최근 ‘민주노총의 강령 수립’을 위한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 |
IV.
독일노총과 새로운 기본강령 사이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조합원 대다수가 토론에서 배제된 채- 노조의 기존기구에서는 엄격히 말해 자아도취적인 절약잔치를 지향하며 노조 조합원들로서는 생계문제가 걸려 있는 조직개혁이 토론되었다.
노총대회의 조직개혁에 관한 연설에서 언론노련 위원장 데트레프 헨쉐와 금속노련 함부룩 지부 위원장 프랑크 타이히뮐러가 강한 논조로 발언한다.
헨쉐는 1994년 18~19일에 개최된 언론노련 노조회의에서 결의된 바 있는 "독일노총 개혁에 관한 테제"에 기초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 낸다.
1. 조합원과 그들의 요구 및 이해에 최대한 접근할 것. 후퇴는 없다.
2. 최대한의 조직내 민주주의. 선거의 기능이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기층과 최대 결합할 것. 여기서 노총의 기층지역단위의 의미가 커진다. 교통체계와 유치원에 이르기까지 기층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조합원을 추동한다. 조합원들은 여기에서 강력하고 현장감 있는 그리고 투쟁을 불사할 수 있는 노총을 기대하고 있다.
3. 노총이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개별 영역에서의 문제들과 관련해 노조보다도 훨씬 잘 대응할 수 있는 환경단체를 비롯하여 교회와 세입자 단체에 이르는 수 많은 조직들이 존재한다. 그들과의 동맹을 통해 노조는 더욱 강해 질 수 있다.1)
프랑크 타이히뮐러 역시 마찬가지로 퇴각에 반대하면서 노조의 "비상근 인자들"을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2)
노총대회는 그러나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노조 기층조직의 참여를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퇴각으로 가는 침로가 설정되었다.
V.
산별노조 가운데 최대 규모인 금속노련의 입장은 노총의 향후 진로와 관련해 결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노총을 중재 위주의 평화적인 사회동반자적 방향으로 끌고 가고자 하는 과거의 모든 시도는 바로 금속노련에 의해 좌절되었다.
70년대 하우엔쉴드와 라페집행부 시대에는 화학-제지-세라믹 노련이 이전의 노총 노선과 결별하였다고 한다면, 금속노련은 프란츠 슈타인퀼러 집행부 산하에서 유사한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3)
여전히 종결되지 않았으며 또 강력한 조직내 반발에 부딪쳤던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금속노련 수석 부의장 산하의 기초 강령분과이다.
"우파의 밖 ... 그리고 독일 좌파의 잘못된 전략"이라는 저서를 탈고한 뒤에 볼프강 코발스키가 1992년 4월 기초강령분과에 합류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우파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면서 좌파적 비판을 조소하고 있다. 그는 랄프 죠다노가 나치 시대와의 연속성을 언급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이로부터 브레히트의 <아르투로 우이>의 종장 즉 "모태는 여전히 수태할 수 있고 여기서부터 그것은 기고 있다"는 말이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고 결론 맺는다. 모든 외국인에 대한 공격행위는 파시즘이라는 목걸이의 진주처럼 걸려 있다. 그는 극우 공화주의자들을 "신나치"라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신우익은 역사적 파시즘과 무관함을 보여 주고 있다."4)
외국인 임시수용소에 대한 공격행위는 지금까지 조직화된 것이 아니고, 국가개입을 부르는 것은 궁극적으로 "좌파의 파산선고"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슈타인퀼러는 코발스키에 반대하였다.
노조대회 직후 기초강령분과위원들인 한스-요아힘 샤베도트와 볼프강 슈뢰더는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지에 "정치망명자 및 유엔평화유지군 파병문제 논쟁에 있어 좌익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기고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노조의 제반 정책상의 전환을 요구하였다.5)
군사개입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만들 뿐이라는 명제가 "원칙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한" 구실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금수조처에서 군사개입에 이르는 국제적으로 조율된 모든 행동들을 세심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금속노련 기초강령 분과가 작업한 <금속노련산하 노조교육사업의 개혁과 혁신>이라는 문건이 1994년 8월 공개되었다. 이 문건은 교육사업 내용의 완전한 개정만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다. 로어(Lohr)교육원측에서는 "이 문건에 기초한 금속노련의 노선변화를 지지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프뢰회벨 교육센터측도 이 문건에 드러난 정치이해는 "지극히 중앙주의적이면서 비민주적이고" 저자들은 "금속노련의 노선변화"를 원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6)
이 문건은 "혁신과정"을 거부하거나 대항하는 활동가로부터 조직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조기면직 또는 여러 요구에 대해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최후수단으로는 사업장의 사정에 맞게 해고하는 것이다." 기초 강령분과의 이 작업들이 금속노련 지도부내 후원자의 지지없이 노조의 교육정책 분과와 의장단의 담당책임자인 직프리드 블라이허를 거쳐서 수용되리라고 보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 클라우스 쯔빛켈은 전 조직 하부에 내려 보낸 서한에서 자신은 "선택된 방식"에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내용이나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1994년 단체교섭은 현하 문제가 되는 것이 노선 변화라고 하는 것을 극명히 보여 준다. 1994년 2월 21일 기자회견석상에서 행한 클라우스 쯔빛켈의 발언에 따르면 금속노련은 이미 단체협상이 마무리된 시점인 1994년 3월 5일보다 훨씬 이전에, "우리의 요구수준 이하에서 임금협상운동의 목표를 설정한 2월 8일자 의장단선언을 통해" 타협할 용의를 보였다고 한다.7)
발터 리이스터는 이미 1월 13일의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단체협약에서 고용보장과 관련된 현재의 노사간의 대치에 직면하여 우리는 노동시간을 하향 조정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8)
포괄적 임금협약에 있어 30시간 옵션제를 정의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이와 병행하여 사업장의 당사자들이 사업장의 부분적 문제를 협정할 수 있는 노동시간 범위를 정의하는 것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임금보전하에 주당 34, 33, 32 혹은 31시간 노동제를 시행하는 것처럼 여기서 개별적인 사례들을 명시할 수 있다."9)
리이스터가 여기서 협상이 종결되기 이전에 이미 예단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나중에 한스 문도르프는 <한델스블랏트>지에 다음처럼 논평하고 있다. "과거 맑스주의적 편향에 매몰되어 단체교섭에서 계급투쟁과 분배투쟁을 모색한 것은 다름 아닌 금속노련이었다. 지금 그들은 훨씬 실용주의적으로 되었다."10)
이미 오래 전부터 이러한 "새로운 방식"이 언론에도 감지되었다. 독일산업협회(BDI)에서 편집하는 1992년 <기업과 사회>라는 잡지는 다음처럼 쓰고 있다. "노조와 사용자간의 항상적인 대화자세,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방식이며 리이스터가 공표한 노르트뷰템베르크와 노르트바덴의 금속, 전자산업의 임금구조변경안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가을의 금속노련대회에서 11명으로 이루어지는 연방의장단에 2명을 새로 선출하는 것을 앞두고, 이렇게 유능하고, 멀리 내다볼 수 있으며 특정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 있는 인물이 이미 새로운 수뇌부의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11)
또 <프랑크푸르트 룬트샤우>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어떤 노조지도자도 스투트가르트 지역 위원장 만큼 '사회적 정파'(리이스터)의 잘 알려진 대립노선과 그렇게 급진적으로 단절한 인물은 없다. 사회주의가 자연적이고 필연적으로 점차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독일노총 청년비서가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꿀벌처럼 부지런한 실용주의자가 되었다. ... 그리고 이는 필요시 그리고 가능하다면 '대립하는 측'과의 대화와 협력 속에서 일어난다."12)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더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금속노련은 겨우 1년 반의 기간 안에 독일금속연합(Gesamtmetall: 금속산업내 사용자단체 - 역자)과 공동으로 3개의 문건을 펴냈다.
1. 금속/전자산업의 입장에서 본 구 동독지역과 베를린을 경제입지로
확보하기 위한 장기적 방안(1993년 1월)
2. 경쟁력과 고용증대를 위한 방안(1994년 4월)
3. 외국인 적대행위에 대한 공동대응방안(1994년 7월)
이 문건들을 보면 원칙적인 사회적 문제에 있어서도 금속노련과 금속연합측이 마치 공동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첫번째 문건의 핵심은 어떻게 국가에 의해 투자수단이 동원될 수 있는 지에 대한 방안을 제시한 데 있다. 기업이득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 문서가 서명된 직후 구 동독지역의 금속연합은 일방적으로 임금협약을 파기하였다.
두번째 문건에서는 원칙적으로 기업측은 어떤 문제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의무를 지지 않는 점이 문제가 된다. 여기서 기업은 단체교섭의 자율성은 인정하지만 노동촉진법(AFG) 116조13)와 모든 탈규제조치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물론 금속노련은 "사회적 시장경제에 기초한 소유질서"를 인정한다. 투자정책적 프로그램의 재원조달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없이 "공공재정에 있어서 긴축과 우선순위변경"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공공자산의 사유화"에서 추가재원의 조달 가능성을 찾고 있다. 문건은 향후의 대화를 위해 기술개발을 위한 전문가협의회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서 "체계적인 관찰", "권고", "원칙과 관점의 개발" 그리고 "사회집단의 참여권한" 등과는 달리 공동결정권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공동문건의 의의에 대해 금속노련 위원장인 클라우스 쯔빛켈은 94년 5월 31일 독일산업협회(BDI)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제 금속산업에서 처음으로 양단체 지도부의 동의하에 경제정책적 합의에 도달하였다. 이 기회를 근시안적인 선거책략적 관점으로 놓쳐버린다면 그것은 치명적이 될 것이다. 이 기회를 원칙적인 사회정책적 관점하에서 활용할 것이 절실히 요청된다."14)
이미 1993년 2월 금속노련의 좌파활동가들은 1회 아욱스부르거 포럼에서 자신들의 조직내에서 "새로운 노조 정책적 자기이해로 부터 금속노련의 기본적인 강령적 입장의 수정을 옹호하는" "현대화-실용주의"가 영향력을 얻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계몽된 경영"과의 합의하에 실현가능한 그러한 사업장내에서의 새로운 것을 형성해 나갈 가능성은 과대평가되었는 지 모른다. 추상적 수준에서 볼 때 양질의, 높은 동기를 갖춘 자주적인 종업원에 대한 자본과 노동간의 공동이해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사업장내의 협정 혹은 단체협약에 있어 종업원의 제반 권리를 확정하고자 할 때 양자의 이해가 단절적임이 곧바로 드러날 것이다.
VI.
화학-제지-세라믹 노련과는 달리 금속노련에서 패러다임의 교체는 오히려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좌파는 "금속노련의 정치적-전략적 기본 지향점에 대한 공공연한 대결을" 회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독일노총의 기본원칙 강령은 우파에 밀린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해결은 언제나 일하는 사람들의 당면이해에서 출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예컨대 노자모순에 대한 추상적 토론과 같은 엉뚱한 무대로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은 고용과 분배문제이다. 노조의 지향이 이로부터 벗어나 기업이 원하는 것을 추수하고 이 문제를 무엇보다 단위 사업장 수준에서 해결하고자 한다면, 각 생산지역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공동의 연대활동을 어렵게 하거나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프랑크 데페15)가 "자본주의 경제의 내적인 발전동력에서 파생되는" 그러한 복합적 모순에 대한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해답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에게 동의할 수 있다.
특히 대량실업문제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위 사업장이나 기업별 수준에서는 해결될 수 없다. 만일 폭스바겐사에서 임금협약이 잘못되고 새로이 대량해고 사태가 이슈화된다면 이 문제는 내년 자동차산업에서 본격화될 것이다.
강령논의와 관련해 접수된 다수 신청서 중에 사회적 조정 즉 시장이 당면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요구는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한 관점은 사실상 대항권력이 전개되고 그 뿐만 아니라 이것이 기업과의 합의하에 실현될 수 있다는 희망이 주어질 때 그때서야 이러한 생각들은 관철될 수 있을 것이다. 노조의 현재 및 미래의 과제는 순응과 사회 동반자주의적 협력 그리고 사회적-정치적 역관계의 변화까지를 포함하는 그러한 사회정책적 대안을 포기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번역 이해영(서울대 지역종합연구소 특별연구원, 연구위원)
1) 노총 대회의사록, 188-9쪽.
2) 위의 책, 191쪽.
3) 여기에 대해서는 하인츠 쉐퍼, 정치적 패러다임의 교체? 금속노련 노조대회에 대하여, in: Z, 13호, 1993년 3월호, 58쪽 이하.
4) Wolfgang Kowalsky, Rechtsau en ... und die verfehlten Strategien der deutschen Linken, Frankfurt/M. /Berlin 1992, 24, 25, 29, 31, 49, 56 쪽.
5) Frankfurter Rundschau 1992년 11월 7일자.
6) Siegfried Bleicher에게 보낸 편지에서 재인용.
7) 여기에 대해서는 Heinz Sch fer, Mit einer defensiven Strategie ist eine aktive Tarifpolitik nicht zu verwirklichen,
7) 여기에 대해서는 Heinz Sch fer, Mit einer defensiven Strategie ist eine aktive Tarifpolitik nicht zu verwirklichen,
PDS Informationsdienst Gewerkschaftspolitik, 18. M rz 1994, 8쪽.
8) Gewerkschaftliche Monatshefte 3/1994, 154쪽.
9) 위의 글, 155쪽.
10) Handelsblatt 1994.3.7일자.
11) Unternehmen und Gesellschaft, 92년 5월호, 27쪽.
12) Frankfurter Rundschau, 1993년 9월 29일자.
13) *역자주. 독일노동법에 있어 대표적인 반노동자적 "악법"으로 꼽히는 이 조항은 1984년도 서독의 노동쟁의 과정에서 당시 연방노동청장인 하인리히 프랑케의 조치로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노사쟁의에 결정적인 장애로 등장하였다. 프랑케의 조치란 예컨데 쟁의발생시 하청업체의 경우처럼 쟁의발생지역 외부에 있는 사업장에서 쟁의로 인해 작업이 중단되었을 경우 연방노동청이 실업기금을 지원하던 것을 이전과는 달리 중단한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이른바 '노노갈등'이 생겨나고 파업노동자 역시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것을 흔히 '차가운' 직장폐쇄라고도 한다.
14) Hektographiertes Manuskript, Pkt. 10 (강조는 인용자).
15) Frank Deppe, Erneuerung des politischen Mandats, Anforderungen an die Programmdiskussion der Gewerkschaften, in: Sozialismus, H.4/1994, 47쪽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