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통신
방송민주화 없이 한국의 민주화는 없다.
- 지금 세계는 핵무기가 아니고 여론이 지배한다
엄 민 형 (방송개혁국민회의 사무국장, KBS노조 정책실장,
KBS편성실PD)
지난 10월 29일 국회 제도개선 특위에서 열린 공술인공청회
참석자 중 한 사람은 방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방송법을 중요하게 다룰 수밖에 없습니다. 저질 방송은
마을 공동우물에 독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나,
방송법의 어떤 부분이 바뀌어야 하며, 방송법이 왜 여야간의
첨예한 쟁점이 돼 국회 제도개선특위에서 거론되고 있는지는
막연한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 그냥 ‘방송법’이라고 불리었던 법을
‘통합방송법’으로 개정한다는 의미는, 말 그대로 별도로
존재하던 ‘방송법’과 ‘종합유선방송방송법’을 통합하고 다시
위성방송법을 추가한다는 것이 정확한 의미이다. 여기에
기술발달로 인한 통신과의 기술적․내용적 융합을 법제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설명도 매우 형식적인 것으로
“왜 그런 문제로 난리가 일어나고 있는가?”하는 의문에는 답이
되지 못한다.
15대 국회 개원협상은 상당한 진통 끝에 여야가 동수로
참석하는 ‘제도개선특위’에서 쟁점법안을 논의하기로
합의하면서 결말을 맺었다. 개원협상에서도 여야간 대립의
초점은 ‘검경중립법’과 ‘방송법’이었다. 그런데 검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도모한다는 ‘검경중립법’의 경우는 그
논의의 내용이나 배경이 매우 쉽게 일반인들에게 이해된다.
그렇지만 ‘통합방송법’의 제정을 둘러싼 논쟁과 대립은,
정치적 문제와 결부된 배경이 복잡하고, 내용이 전문적이어서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문제이다.
‘통합방송법’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은 결국 ‘정치권력’과
‘돈’과 ‘여론지배권’이다. 이제 ‘TV에 의한 정치’를
의미하는「텔레크라시」란 표현은 매우 일상화 돼있다.
사회발전과 텔레크라시의 영향력은 비례한다. 미국의 선거는
이미 ‘TV선거’가 된지 오래고 다른 국가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선거뿐 아니라 모든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방송의
의도적인 여론조작에 의존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태이다. 이와
함께 이제 방송은 단순한 부가 영향력을 초월해서 매우 훌륭한
돈벌이 수단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세계경제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선진국들의 필요에 의해서 3차산업 중심의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이 가장 시장지배력이 강한
영화․음반․마켓팅․금융․통신 등의
산업을 교역상품화하고 지금까지 당연시되어 왔던 이들
문화정보상품들에 대한 무역제한을 철폐시키는 것이 미국의 주요
목표이다. 이러한 강대국 거대자본의 의도는 대미종속적인
특성이 어느 나라보다도 강한 한국에서 급격한 수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대표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굴종적인 대외개방은
방송, 통신, 금융서비스 등이다. 이를 위해 국내법들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민영화니 생산성 향상이니 국제화니 하는
미사려구가 동원되어 일반인들에게 문제점을 희석시키고 혼란을
주는 기법이 이용된다. 일반인들은 당연히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 정부와 대기업들은 이런 시장개방정책을
강행하는가?”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그동안 저임금
노동력에만 의존한 2차산업의 수출에만 주력하며 기술개발과
디자인개발 등 고부가가치 생산성의 발전을 게을리해 온 탓에
주요 한국상품 수입국인 미국 등이 3차산업의 시장개방을
조건으로 수입제한위협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제 산업구조조정압력의 가장 첫 희생은
농민들이었고, 그다음이 노동자들이다. 영화시장개방을 둘러싼
영화계의 진통, 통신시장개방을 둘러싼 작년도 한국통신노조의
투쟁, 작년과 올해에 걸쳐 있었던 방송법개정을 둘러싼
방송노조의 투쟁, 그리고 올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노동법개정을 둘러싼 노정간의 투쟁 역시 국제산업구조조정기에
발생한 자연스러운 대립이다.
이모든 것은 한마디로 정권과 자본가들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새롭게 초국적자본의 시장창출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거대이익의
부수적 찌꺼기이익을 국내자본가들이 선점하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결과이다.
방송법을 둘러싼 논쟁 역시 이러한 국제시장의 변화와 국내
지배권력의 보수적 이익확대욕구가 결합된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순한 목적은 과연 어떻게 방송법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인가?
방송법을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문제는 방송의 힘을 누가
지배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가를 정하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서 방송에 관한 힘을 결정하는 요소는 크게 네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누가 방송사를 허가해 주는가이다. 방송국은 공보처의
추천을 받아 정통부의 ‘무선국 시설허가’를 받도록 돼있다.
그러나 공보처에서 ‘단수’로 추천하므로 실질적인 허가권은
공보처에 집중돼 있다. 공보처가 허가권을 행사해옴에 따라
특혜․정경유착․정치자금 수뢰․비리의혹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대표적인 예가 6공에서의 SBS
특혜허가였다. 그러나 YS정권은 6공을 비웃기라도 하듯 5년만에
100개가 넘는 방송사를 허가했다. 방송을 허가받은 자는
허가권자로부터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고, 방송내용이
허가권자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또한
방송의 운영에 필요한 광고를 사는 자본가의 이익 역시 보장해야
한다.
둘째, 누가 방송사의 인사권을 행사하는가의 문제이다. 현재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사장은 각 이사회에서 선출하게 돼
있으며 이사들은 방송위원회에서 선출한다. 그런데 방송위원은
정부에서 약 90%를 선출하기 때문에 현행 방송법상으로
방송위원과 KBS와 MBC의 이사진, 그리고 양사 사장은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임명하게 돼 있다.
셋째, 각종 방송관련 규제․감독권한의 소재이다.
현행법상으로 행정규제와 감독권은 공보처가,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권은 방송위원회가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영향력하에 있는 방송위원회의 위상을 볼 때 규제권도 역시
정부의 영향력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넷째, 방송사의 수익과 직결된 광고판매권과 가격결정권을
누가 행사하는가의 문제이다. 현재는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광고공사에서 광고배분과 가격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방송사들은 광고공사에 의해 생명줄을 잡혀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현행 방송법에 의한 규정은 거의 모든 방송에 대한
지배적 영향력을 정부가 행사하도록 돼 있다. 이러한 문제점은
YS정권 스스로도 인정하고 언론개혁, 방송개혁을 추진했었다.
그러나 다른 부문에서의 일정한 개혁은 추진되었으나 유독
언론개혁, 방송개혁만은 지난 5년간 방치되었었다. 그뿐만
아니라 공보처가 만들어 국회에 상정키로 한 통합방송법은 지난
5공, 6공에서 만들었던 방송법보다 개혁되기는커녕 더욱 개악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이유도 확실하다. 1년 남은 정권의 임기와
관련되어, 방송의 민주화는 곧바로 정권을 잃는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실제로 방송법의 내용은 매우 복잡하고 전문성이 강하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설명하고 대중적인 이해를
확산시키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논의가 일부 쟁점에
집약되고 있다. 주로 언론에서는 ‘방송위원의 구성방식’과
‘재벌․신문사의 방송참여 허용여부’로 논의를
집중시키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9인의 방송위원중 정부측에서 8인을 선출한다.
방송노조와 시민단체에서는 유럽에서와 같이 각계 시민대표들로
공평하게 위원을 구성하자는 주장이고, 야당에서는 시민세력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기적으로 여야간의 비율을
5:4정도로라도 맞추자는 주장이다. 이상적으로는 각계 시민대표
선출방식이 가장 옳지만 대체적으로 여건을 볼 때 야당측의
주장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지지를 받고 있다.
재벌․신문사의 방송겸영허가문제는 두가지 큰 문제가
제시되고 있다. 외국에서도 자본과 여론시장의 독점지배를 막기
위해서 특정기업이나 신문기업의 방송참여에 제한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 우선적 문제이고, 둘째로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따른 문제이다. 한국에는 외국에서 예를 찾기 어려운
재벌위주의 경제가 운영되고 있다. 신문기업 역시 외국과 달리
개인이나 일가, 또는 재벌기업의 독접소유체제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서의 방송소유는 ‘분산자본의
분산지배’로 인한 부작용 감소가 가능하지만 정부의
방송법안대로 될 경우, 우리나라에서의 방송소유 허가는
‘독점자본의 독점적 방송지배’로 이어진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방송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들의 문제이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진외국들의 노력은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구현되었다. 첫째가 방송을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켜서 공익에 이바지하는 존재로 구축하는 공영제의
구현이다. 주로 유럽의 민주국가들이 채택한 방법이다. 둘째가
완전한 상업경쟁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도모하며 파생되는
문제는 제반 성숙한 시민세력의 감시와 견제, 그리고 잘 보장된
사법제도에 의한 법적 규제로 보완하는 미국식의 방법이다.
아직까지 이 두가지 방법 외에 다른 최선의 방법은 구현되지
못했고, 다른 나라들도 이런 두가지 모델 중의 하나를 지향해
왔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불행은 이 두가지 모델의 충실한 추구를
거부한데 있다. 지난 ’80년 이후 정권은 외형적으로는 유럽식의
공영제를 도입했지만 법제의 중요한 부분들은 정권통제형으로
변질시켰으며, 관행적으로도 법정신을 존중하기 보다는
파행적이고 불법적인 지배권력의 행사를 지속해 왔다. 더욱 큰
문제는 노태우정권에 이어 김영삼정권 하에 이르기까지 연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기존의 문제점을 방치하거나 더욱 개악시킨 채
무리하게 미국식의 상업경쟁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유럽식 공영제와 미국식 사영제의 가장 나쁜 점만을 모아
기형적인 방송제도를 구축하려는 정권과 자본의 기도는 한국의
방송을 비민주적이고 저질적인 국민수탈수단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권은 출범 초인 ’93년부터 정부와 관제연구기관을
동원해서 야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고, 이때부터 지금까지
방송노조와 시청자단체들간의 다툼은 5년째 지속되고 있다.
결국 방송사노조와 시민단체들은 방송법의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 ’95년부터 방송개혁국민회의라는 연대기구를
결성하여 조직적인 투쟁해 왔다. 이는 다른 모든 민주화투쟁이
그러하듯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정권과 대자본의
연합세력과의 싸움이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지난해 국회에서 여야간에 대립되었던
통합방송법은 마지막 순간에 연기결정을 맞았고, 올해
국회에서도 일부 여야간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조항만을
잠정합의한 채 내년도 2월의 임시국회로 연기되고 말았다.
이를 놓고 과연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그러나 개혁을 달성하지는 못했으나 개악을 막았다는 의미는
부정할 수 없다. 이과정에서 정부내의 분란도 가시화되고 있다.
재계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통부는 미국식의 시장논리에 근거해서
보다 빠른 뉴미디어의 무차별한 도입을 통해 시장개방과
시장확대를 이루자는 주장이고, 공보처는 이러한 정통부의
주장에도 동의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것은 정권의
유지이므로 정권의 방송지배력을 희생하면서까지는
방송시장확대를 추진할 수 없다는 부분적인 이견을 내세우고
있다.
이제 5년간의 방송법 논란은 내년도 2월의 임시국회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벌써부터 공보처는 통합방송법과 별도로
비밀리에 위성방송특별법의 성안에 착수했다. 위성방송을 재벌과
신문재벌에 매판하기 위해서 다른 방송법의 개선양보를 하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더 이상 위성방송근거법을 미룰 경우 대선과
시기가 겹치게 되고 그럴 경우 정치적 부담이 많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내년 2월에 방송법 개정을 마무리지은 다음 빨리
위성방송 채널 허가를 하고 이를 통해 재벌들의 정치자금 지원과
신문사들의 편파적인 여론홍보를 유보하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대통령선거도, 국회의원선거도, 노동법개악도, 무분별한
시장개방도, 외채의 막대한 증가도, 한총령사태도, 남북한의
격화되는 냉전도 결국 방송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 모든 문제들이 방송을 통한 여론조작과 여론지배
없이 발생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다. 모든 민주세력들이
통감해야 할 문제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집권세력과
지배세력들은 방송을 중심으로 한 언론의 통제야 말로 자신들의
지배권력 유지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전력을 다해왔다.
그러나 전체 민주세력들이 과연 이들 지배세력들의 통찰과
노력에 비교해서 얼마나 자신들의 노력을 경주해 왔는가의
반성이 필요하다.
아직도 방송언론의 문제를 국지적인 문제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영원히 그들이 원하는 목표에는 도달할 수
없다. 방송언론의 민주화는 다른 모든 부문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 선점해야 할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 결국 이 문제를
부분으로 보는 자는 이 문제를 전부로 보는 자에게 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