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학내 교육투쟁을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설정하고
학내 조직화 사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비정규법 개악을
비롯한 시급한 계급적 정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보다 교육투쟁을 잠시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우리는 학교가 학생운동의 ‘진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점점 자본의 입맛에 맞게 변화해 가는 교육 현실은 학생들의
삶을 질곡하며, 이는 직접적으로 학생운동의 조직력에마저
영향을 끼친다. 학생과 노동자의 처지가 똑같지는 않지만 둘을
조야하게 비교해 보자면, 등록금 인상은 임금 삭감, 학사관리
엄정화는 노동 강도 강화, 학부대학-전문대학원 체제는
비정규직화, 국·공립대 법인화는 공기업 사유화 등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재 대학구조조정의 광풍은 무섭게 몰아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나름의 ‘현장’조차 방어해 내지
못한다면 이후의 학생운동 전반이 몰락함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미래에 그 어떤 현장도 조직할 수 없다는 생각에
교육투쟁에 역량을 투여하고 있다.
서두가 쓸데없이 길었는데, 어쨌든 우리는 학내에서 교육투쟁에
관한 찬반 총투표를 선전하기 위해 나름대로 엄청난 양의
선전물을 부착하였다. 캠퍼스 투어 가이드를 해도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교 구석구석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자보와 포스터를 붙였다.
그런데 선전물을 붙이다 보니 다른 포스터도 많이 보게 되는데,
한 종교단체에서 붙인 강연회 포스터의 물량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게시물을 붙일 수 있는 곳이면 거의 어디에나 2~3장씩
붙어있는, 그것도 매일매일 덧붙여지는 그 포스터를 보면서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투표를 선전하는 자보나 포스터보다도 종교 강연회 포스터가
더 많이 붙어 있다니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왜 진작부터 저렇게 대공업적인 선전 작업을 하지
못했는지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학생운동의
현주소를 다시 돌아보았다. 지금 우리의 실천은 어떠한가? 몇
주, 아니 몇 달째 똑같은 자보가 붙어 있고 심지어는 교육투쟁
특별위원회에서 붙여달라고 할당해 준 선전물조차 제대로 붙어
있지 않은 한 메이저급 단과대학의 게시판들을 보면서, 대중의
수동성 때문에 투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운동사회
어디에나 있는 작자들의 무능하고 수동적인 작태가 생각나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선전물 많이 붙인다고 곧바로 대중이 조직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식지형이 후퇴한 것은 사실이고 학생운동권의
조직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며 현재 상황에서 대중이 어느 정도
수동적인 것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어쩌면 어떻게든 학내
교육투쟁을 부여잡고 있는 우리가 대중지형을 ‘쿨하게’
돌파하지 못하고 원칙에만 기대는 멍청이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보 하나 붙이기 싫어하고 포스터 하나 붙이지도
않으면서, 가장 기본적인 최소한의 실천조차 하지 않으면서
언제까지 대중의 수동성을 핑계 삼아 골방 속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교육투쟁은 하는 시늉만 하면서 새로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들에게 집회 경험이나 좀 심어준 다음 적당히 접어
버리고, 난데없이 한-미 FTA 반대 실천단 물론 한-미 FTA 반대
투쟁 자체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함께
책임지기로 한 교육투쟁을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완전히 방기해
버린 후 다른 투쟁을 제시하는 것은 진정성 없는 태도이다.
을 구성하고 관성화된 4.30-메이데이 사업을 일찌감치
준비함으로써 ‘반신자유주의 주체’를 만들어서 자기네 단위
재생산이나 한번 잘해보겠다는 플랜 아닌 플랜이 지금 내가
목도하고 있는 남한 최대규모 학생좌파조직의 행동양태다.
왜 지금 상황에서 교육투쟁이 한-미 FTA 반대 투쟁보다 더
정세적으로 옳은 실천인지에 관해서는 이 글의 범위를 넘어서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당장의 자기 문제인 교육문제를 갖고서도 학생대중을
조직해 내지 못하면서 한-미 FTA 반대를 통해 ‘반신자유주의
투쟁’을 하겠다는 발상은 우스울 뿐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샐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밖에서는 안 새는 척 하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를
본 적이 또 있는 것 같다. 아니, 사실 노동운동판에서 꽤 많이
보았지만 가장 기억나는 바가지 하나만 떠올려 보자. 혹시, 단사
비정규직 투쟁을 정규직 정서 운운하면서 회피하고 심지어
비정규직 열사가 생겼는데도 그를 인정할 수 없다며 우리 모두를
열사를 열사로 부르지도 못하는 홍길동으로 만들어 버린 한
대공장 노조의 전 집행부가 기억나지 않는가? 그 노조 위원장
인터뷰를 보면, 뻔뻔스럽게도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와 단결
뿐"이라는 헤드라인을 달고 있다. 하청노조의 선도적 투쟁을
엄호하진 못할망정 임단협에 걸림돌이 될까 전전긍긍하고,
실질적인 원·하청 공동투쟁을 위한 정규직 교육이나 조직화
사업에 (내가 아는 한) 일호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으면서
정규직·비정규직 연대라니, 역시 우스울 뿐이다. 불법파견
판정까지 받은 단사 안의 비정규직 1만 명도 정규직화 못
시키면서 합법적으로 노예 생활을 하는 전체 800만 비정규직을
걱정하시다니, 정말 통도 크시다.
물론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끌어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고 조합원대중의 의식상황이 귀족노동자 이데올로기로부터
100%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점은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묻고
싶은 것은, 그래서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지금 같은 퇴조기에서 투쟁을 하기가 힘든 것이
당연하지만, 힘든 상황에서도 투쟁을 하기 위해 활동가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 아닌가? 운동이 그렇게 쉬운 것이라면
굳이 활동가라는 사람들이 왜 필요한 것인가? 하다못해 나쁜
조건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고 나서야 평가의
한 가지 변수로서(어디까지나 일개변수로서) 대중의 수동성을
탓해볼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지금까지 두 가지 사례를 주로 비판하긴 했지만, 사실 이러한
모습은 전체 운동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다들 무슨 얘긴지 알
만한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것도 딱히 한
사람이나 한 조직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이 공동화
되고 조직력은 떨어지고 조합원들의 대중 의식은 낮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정세는 엄혹하고 중요한 투쟁은 항상 패배로
끝나 왔으며 지배계급의 결정타가 목전에 와 있는데도 당장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승리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최대 전술을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최대의 실천을 집행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적당히 상황 봐 가면서 실천의 수위를
조정해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상황에 처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능력도 여러모로 부족할 뿐더러
일상적 실천에 있어서도 미숙한 부분 투성이다. 하지만, 적어도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한다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못하면서) 대중의 수동성을 핑계 삼아 자신의
무능력함과 실천 없음을 정당화하는 자족적인 책상놀음만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소중한 교훈을 기간의 교육투쟁 과정에서 생긴
고민을 통해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