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87 ’96, ‘부정의 부정’을 향해
남구현(편집위원장)
우리의 근현대사는 반복되는 항쟁으로 점철되고 있다. 멀게는
갑오농민혁명에서 3.1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해방후의 4월혁명,
광주민중항쟁과 6월항쟁 그리고 작년 이래 지금도 진행중인
노동자 총파업과 시민항쟁에 이르기까지 그때마다의 모순구조를
타파하려는 민중의 항쟁, 부분적인 승리, 이에 대한 반동 그리고
승리의 성과물에 대한 찬탈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전하는 것이 아니라, 밀고 당기는 가운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일찌기 마르크스는 세계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이 두 번씩
나타난다는 헤겔의 말에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
나타난다고 첨부하였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역사에서
우리는 지난 1980년 민중학살과 함께 등장한 전두환 정권 때에는
비극적으로, 1987년 6.29 선언 후 선거를 통해 등장한 노태우
정권 당시에는 희극적으로 군부독재정권이 재창출되는 것을
보았다. 이제 작년 말 국회에서 신한국당 단독으로 시도된
날치기 악법통과와 잇따른 12월 총파업을 보면서 희극과 비극이
복합된 블랙 코미디를 보는 느낌이다. 우리 나라라는 역사의
무대위에서 벌어진 이 세계사적 사건들은 어떠한 연극보다도
더욱 극적이다.
1979년 박정희 암살이래 전국은 민주화의 요구로 가득차 있었다.
70년대의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여파로 저임금, 저곡가 정책에
기반한 수출주도의 양적 경제성장정책을 펼쳐온 유신체제는
YH노동자투쟁, 부마민중항쟁으로 이어지는 학생-노동자를
중심으로한 민중투쟁으로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급기야
79년 10월 26일 대통령의 암살로 붕괴위기에 처하게 된다.
1980년의 서울의 봄은 20년에 이르는 박정희 군사독재를
끝장내고 우리 사회가 민주화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종의 권력의 진공상태에 신군부세력이 한번은 군부내
반대세력에 대해 한번은 민주세력과 민중에 대해 단계적으로
쿠데타를 감행하면서 권력의 중심으로 군사작전을 전개하듯이
돌진할 때, 정치무대에서는 3김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치세력이
각기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미몽하에,
거세어지는 민중투쟁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면서 유신헌법이
폐지된 이후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중심으로 민주화 일정을
협상하고 있었다. 노동자투쟁과 학생시위는 점차 대규모화
하였지만 산발적이며, 비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저 유명한
서울역 회군은 이러한 한계의 표현이었다. 총리가 나서 민주화를
약속하고, 5월 20일 개원하는 국회에서 이를 논의하겠다는 3김의
발표가 있자 학생들은 스스로 투쟁을 철회하였다. 대책없는
후퇴전술의 구사에 대해 저들은 민중학살로 답한다. 광주에서의
처절한 민중항쟁은 미래의 투쟁을 위한 이정표를 피로써 제시한
채 진압된다.
1987년의 6월항쟁은 헌법문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호헌선언,
헌법에 대한 논의 금지와 여당후보 선정 등의 일정이 공표되자
대통령직선제를 가능케하는 민주헌법 쟁취를 구호로 전국이
시위의 물결로 뒤덮인 것이다. 결과는 6.29선언과 12.26
대선에서의 야권분열, 노태우 당선으로 이어지는 희극적인
결말이었다. 7,8,9월로 이어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은
1,000여개의 민주노조를 건설하지만, 양김을 중심으로
대통령선거후보전술을 둘러싼 논란 속에 그 성과는 묻혀진다.
1996년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대해 노동자는
총파업으로, 교수, 종교인, 학생을 위시한 사회 각계각층은
서명, 성명, 농성, 가두시위 등으로 항쟁에 나섰다. 집권여당의
의원들이 새벽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시작된
코미디는 소위 통치권자의 연두기자회견에서 드러난 무지함에서
희극적인 요소를 더하였다. 연말연시에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거행하였고, 노동자, 시민, 학생들은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연일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전국각지에서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이 투쟁에 나섰다는 점에서 96년의 투쟁은 흔히 87년의
6월항쟁에 비유되지만, 조직된 노동자계급이 처음부터 투쟁의
전면에 나섰으며, 정치적 민주주의의 형식성이 아니라 노동법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내용이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12월 총파업은 전 사회적 쟁점으로 전화하였으며, 아직
결말을 짖지 않았다. 부분파업으로 전환한 이래 대화국면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저들의 탄압은 오히려 파업 및 시위의
파고가 낮아지며 기승을 부리고 있고, 열사들의 죽음은
비극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의회에서의 논의를 통한 법개정 역시
간단치 않다. 노자간에 또 여야간에 존재하는 이해의 대립은
다시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어떠한 식으로 법개정이 되더라도
앞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역사적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지도부가 단결하여 분명한 승리의
전망 속에서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적으로 확인된 투쟁의
결의를 지킬 때, 대중투쟁은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질풍노도와
같은 엄청난 괴력으로 폭발하는 것을 보았다. 반면에 투쟁의
파고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지도부가 주저하고 동요할 때,
대중의 투쟁력은 물거품처럼 일시에 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나라 운동은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식어버리는
냄비형이라고 흔히 이야기 한다. 또한 마지막 순간에 골
결정력이 약하다고도 한다. 이는 운동의 조직적인 힘을
강화시키고, 지도부와 대중 사이의 결합도를 단단히 함으로써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역사적 투쟁의 계기마다 우리는 무수한 배우들이 역을
바꾸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지만 무대위에는 여전히 3김이
그때마다의 적대관계를 달리하며 보수정치의 주역으로 버티고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김은 우리 나라의 현대사에 뿌리 깊은
보수정치세력의 상징이다. 또한 투쟁의 성과물은 그때마다
결과물을 챙기려 노리는 자들에 의해 찬탈된다. 그러나
보수정치세력을 아무리 탓해 본 들 새로운 대안세력이 형성되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어지지 않는다. 싸움을 이끄는 자와 훈장을
받는 자, 피보는 자와 빛보는 자가 다른 것은 일하는 자와
생산물을 전유하는 자가 다른 모순을 해결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 것이다.
모순이 지양되지 않는 이유는 모순을 지양하기 위해 투쟁을
끌어간 주체의 준비 정도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낼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볼 때 새로운
주체의 형성이 최대한의 관건이다. 현 정권을 퇴진시키는 것이
자동적으로 올바른 정권창출로 이어지지 않듯이 타도하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 부정하는
것만으로 모순이 지양되지는 않으며,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만이
새로운 사회가 형성된다. 헌 껍데기는 오직 새 순이
돗아남으로써만이 벗겨지는 것이다. (1997.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