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신생아성감별이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는 여성이나 장애인은
생존이 어려운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생아가
‘기형아’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면 그 어떤 이유에서도 낙태는
당연지사가 되고 만다.
인간의 생명의 가치기준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본다.
기형아에 대한 사회적 판단의 기준은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불행한 삶이고. 불행한 인생이 될 운명은 아예 태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낙태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또한 여아도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 남아선호사상의 희생물로 낙태를
당하는 것이다.
결국 장애인으로 여성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사회구조에서
장애여성의 일생이 얼마나 많은 차별과 억압을 당하며 살고
있는지를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앞으로 장애여성의 현실과 그에 따른 상담을 통해본 과제들을
다루어 볼까 한다.
1. 장애여성이라는 이유
장애여성들은 어려서 여성이기보다 성이 없는 존재 즉
무성적(無性的) 존재로 살아왔다. 여성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성역할(가사, 보육, 성, 남성에게 각종 서비스)을 수행할 수
없는 장애여성들은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이 아니었다. 여성이
해내야 하는 역할은 남성의 내조자로 성적 제공과 가사전담과
출산에 따른 육아보육 등을 해내지 못하면 여성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을 수 없었다. 이러한 것을 할 수 없는 장애여성들은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가운데, 가족들로부터 거의 방치 상태로 놓여지거나 영원한
의존자로 규정되어진다. 그래서 장애여성은 자신의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살아나가게 된다.
한 가정 안에 장애인이 발생하면 그에 따르는 교육과 재활과
사회화는 온전히 가족들의 책임으로 전가되는 현실에서 장애를
가진 딸에 대한 지원을 가족들이 담보해내지 못하면 장애여성은
가정 안에서 고립되고 방치 되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부모님이나 형제들에게 의존적인 상태로 살아오던
장애여성들이 부모님 돌아가시면 본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독립을 꿈꾸어보지만 현실적으로 사회적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그러한 꿈은 꿈으로 끝나고 끊임없는 자아상실을
경험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이러한 장애여성이 학력이
낮거나 장애가 중증일 경우엔 사회적으로 더욱 열악한 상태에
놓여지게 된다.
장애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이미지는 사회 정화적인 천사 모습에
만년 소녀적인 모습으로 규정되어 있다. 언제나 존중을 못 받고
장애여성의 의사표현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고 수직적 관계에
놓여짐으로 많은 폭력을 경험하게 된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장애여성의 위치는 장애여성들이
경험하는 차별들 안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져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사회적 위치는 각종 폭력에 노출되어 있고 특히 성폭력은
이제야 겨우 장애여성전문 상담소라는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대안이 나온 지경이다.
그러나 이에 따른 장애여성의 장애유형에 따른 프로그램이 있는
쉼터도 태부족하여 성폭력 당하고 위급상황에 놓인 장애여성에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관과 할 수 없는 장애여성의 가정폭력도 더 기다릴 수 없는
상태로 심각하다. 유아 때 장애를 가지게 된 여성들이나, 성인이
된 후 장애를 가진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가정폭력의 삼각성에는
더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실정이다.
2. 교육, 취업에 나타나는 장애여성의 현실
이러한 것들을 좀 더 깊게 살펴본다.
장애여성에 대하여 전국적인 실태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2005년 전국 장애인
실태조사(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장애여성은 84만
2,826명(40.1%)으로 나타났으며 장애남성(59.9%)에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은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장애여성의 장애등록률이 낮은 이유가 혹자는 남성이
사회 활동이 많아서 사고로 인한 중도장애률이 높아서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은 여성의 잦은 질병으로 인한 장애는
장애등록이 잘 안 되는 범주에 있기도 하며, 장애로 인한 사회적
보장제도가 대부분 가족 중심으로 지원됨으로 혼자 사는
장애여성의 경우 그 지원에 제외되기도 하기 때문에 장애등록을
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장애여아를 부모부터 자기 딸에 대한 가능성을 찾지를 못한다.
앞에서도 말한 사회적 성역할을 수행 할 수 없는 여성의
행복이란 남성사회의 진입이 가능해야 가지만 장애를 가진
여성이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가족들은 판단한다.
무엇보다 장애 때문에 학교에 접근 할 수 없는 많은 현실들이
있다. 우리나라 정규교육의 현장에 접근할 수 없는 편의시설
부족과 이동문제 또한 장애유형에 맞는 교육 없음과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어야 한다는 차별의
깊은 인식은 통합교육을 막게 된다. 이것으로 인하여 부모들은
장애를 가진 자녀를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먼 특수학교를 찾아
이사를 하거나 어떤 형태로든 부모의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특히 어머니의 희생이 강요된다. 이러한 현실은 장애를 가진
딸이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집 앞을 나설 수조차 없는 장애인이동이
보장되어있지 않은 사회에서 장애여성이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러한 것은 교육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취업에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교육이 장애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재가여성장애인 욕구조사 및
프로그램개발’에서 나타난 것을 살펴보면 장애여성이 취업하고
있는 직종은 판매, 서비스직(33.3%)이며 생산, 노무자(25.5%)
취로사업(22.5%)으로 나타났다. 근로형태로는 일용직 근로자가
29.1%로 가장 많으며 자영직은 17.4%로 나타났다(‘2002년
재가여성장애인욕구조사 및 프로그램개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같은 연구자료에 나타난 소득정도를 살펴보면 장애여성이 어떤
악순환 속에 놓여 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월평균 근로소득이 50만원 이하가 59.4%로 과반수를 넘으며
100만원 이하까지 합하면 전체의 86.8%가 월소득 100만원 이하
저임금으로 노동하고 있다. 50만원 이하 저임금은 특히
정신장애(85.7%), 정신지체 및 발달장애(71.4%),
뇌병변(70.0%)보다 높다.
이와 같은 조사가 말해주듯이 장애여성의 현실은 낮은 학력과
빈곤의 악순환으로 사회적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이에
따른 사회적 대안은 없다.
3. 이젠 장애여성이 말하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은 1998년에 창립된 장애여성인권운동단체이다.
우리 사회에 장애여성인권이 논의 밖에 있을 때 장애여성의
사회적 취약한 위치에서 놓여 있으므로 발생되는
장애여성인권유린의 현실을 고발하고 장애여성의 경험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단편적으로나 위에서 살펴 본바와 같은 장애여성의 현실은
장애여성의 일생을 두고 자아상실과 자신의 정체성 혼란과 각종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장애여성공감이 활동을 하면서 장애여성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고 여러 상담을 하게 되었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2003년 주제를 ‘폭력’으로 정하였다.
2002년엔 ‘장애여성의 성’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장애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무성적 존재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창가에 않아 사람이 지나가면 ‘여자가 지나갔다.’ ‘남자가
지나갔다.’라고 한다. 그런데 장애인이 지나가면 ‘장애남성이
지나갔다.’ ‘장애여성이 지나갔다’라고 하지는 않는다.
‘장애인이 지나갔다’라고만 할 뿐이다.
이 만큼 장애인에겐 성의 정체성이 없었다.
그러한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장애인 화장실이다. 장애인
화장실은 남 여 구별이 없다.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가 함께 사용해야 함으로 장애여성들은 늘
불결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때론 장애인화장실이 비장애남성
화장실 앞을 거쳐서야 들어갈 수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때
장애여성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고 장애인에 대한
시설이 얼마나 고민 없음인지를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장애인에 대한 고민 없음이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부터 이러한 차별들이 뿌리 깊고 대응력 없고, 선택권
없는 장애여성들은 고스란히 감수하며 살아간다. 어려서 장애를
가지게 된 여성이나 중도에 장애를 가지게 된 여성도 마찬가지로
가족들의 무시와 폭력을 경험하면서 자존감 없고 자아상실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이러한 상태는 사회에 나와서도 자기표현이
힘들고 자기 권리를 찾지를 못한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장애여성들 중에 이성교제의 어려움도 있고 결혼을 한다고 해도
남편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계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고통스러워한다. 뿐만 아니라 이혼을 할 경우 모성권(母性權)을
박탈당하고 장애를 이유로 자녀들까지 빼앗겨야 할 때
장애여성들은 자녀들과 살기 위해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참아가며
사는 경우도 있다.
‘2002년 장애여성공감 교육과정’에서 주제로 다룬
‘장애여성의 성’에서 이러한 차별성이 보여 진다.
어려서 초경을 시작할 때 가족들이 보이는 반응은 결혼을 하지도
못 할 것이고 출산도 못 할 텐데 생리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불임수술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물론 심한 경우 강제로
불임 수술을 한 예도 있어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여성은 출산을
하지 않으면 여성도 아니고 성의 정체성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장애인시설에서도 쉽게 일어나는 일이다. 이러한
것이 인권유린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시설장들도 있다.
장애여성들은 초경에 가족들이 보인 부정적 반응이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고 자아 존중감을 상실하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가족 사이에서도 당연히 결혼을 못할 사람으로
제외시키고 여성으로서 인정 받을 때는 가사를 전담하고 있을
때뿐이다. 비장애 형제들을 대신해서 가사를 전담하며 자신의 삶
없이 나이만 들어가는 장애여성들이 있다.
장애여성들에게 있어 ‘성’이란 것은 그녀들의 사회적 하나의
소통이다. 장애여성들이 비장애여성들과 다른 특별히 다른 성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같다’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장애여성은 이성교제의 기회가 현저하게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장애여성에게 ‘성’은
하나의 사회적 소통이라고 하는 것은 어려서 주변에서 정체성
혼란을 주는 경험들을 하게 됨으로 성장해서 그런 것들의 영향을
받고 있다. 또한 현재도 장애여성에겐 성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자신을 인정받고 싶어하고 존중된 상태를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002년 장애여성공감에서 장애여성 서울 경기지역 165명의
장애여성을 ‘장애여성 성인식 실태조사’를 하였다.
조사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장애여성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대부분 외출조차 하지 않는 묻혀 살고 있는
장애여성들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이러한 작업이 길지 않아서
시설에 있는 장애여성들과 장애여성공감 활동하는 회원들과
그래도 사회 활동을 한다는 장애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우리가 예상했었던 것보다 성인식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성폭력 경험 및 조치’(장애여성
성인식 실태조사자료집 p47
-장애여성공감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에서 나타난 것으로는
성폭력경험이 20%였다. 이러한 폭력에 긍정적 대처능력도 놀라울
만큼 높게 나타났다. 물론 연령에 따라 다른 결과가 있지만
‘참는다’(75.0%)라고 응답한 연령은 40대였다. 반면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38.5%)는
10-20대였다.
어느 정도 사회 활동하는 장애여성들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정보와 학습으로 되어졌기 때문에 대처능력을 가질 수 있지만
‘서울 시정개발연구원’의 ‘재가여성장애인욕구조사 및
프로그램’에 나타난 성폭력대처 방안엔 ‘참는다. 도망친다’가
67.5%로 나타났다.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 성폭력상담소
개소’ 한 지 5년여가 되어가면서 장애여성 문제의 현장을 본다.
‘장애여성들에게 누가 성폭력을 할까’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정신지체여성들의
경우 인지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동네 남성들에게 성폭력의
대상으로 노출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가해자들과 주변인들은
장애여성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처벌받아야 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웃은
‘모자란 여자에게 무슨 인권이냐’ 하면서 가해자옹호를 하며
피해장애여성과 가족들에게 제2차 가해를 서슴없이 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 차별적인 인식은 장애여성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현실적으로 ‘참는다. 도망친다’가 맞는 것이다. 관념적으로
아는 것과 현실은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장애여성의 현실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폭력들을
경험하면서 당연스럽게 운명처럼 살아왔었다.
또한 장애여성에게 가해지는 가정폭력의 특성은 같은 여성인
어머니 자매간에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가정
안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어머니 자매간에
분노 표현이 가장 힘없는 대상에게 폭력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시설 내 폭력을 당하는 장애여성들도 그렇지만 가정 내에서나
시설 내에서 폭력을 당해도 장애가 중증일수록 참으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디에 갈 곳이 없고 선택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장애여성의
현실에 특히 정신지체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성매매의
현장으로 유입되어지고, 그 곳을 탈피할 의지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애여성들이 느끼는 좌절감은 사회한테 분노하지도 못하고,
모두를 자기의 운명으로 끌어안고 수용함으로 우울증과 무력감을
가지게 되기도 한다.
이러한 우울증과 무력감은 또한 몸으로 후유증을 나타내면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나오며
때로는 아주 멀게도 느껴진다.
장애여성 인권이 지켜지는 세상이….
장애여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차별의 벽은 높고 견고하기만 한
것 같다.
장애여성을 절대 존중하지 않은 반말과 어린애를 대하는 듯한
가르치려 하는 태도들, 과잉 친절함에 보여지지 않는 수직관계의
불평등을 느낀다.
장애여성의 다양한 경험들이 존중되어지는 것을 장애여성은
원하고 있다.
장애여성은 장애를 부정하거나 비장애와 같은 몸이 되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여성으로 자유로운 사회, 그것은 진정으로 이 사회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장애여성의 다양한 경험에서 나오는
언어들을 들으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장애여성이 원하는
평등한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다.
처음 운동을 시작했을 때, 장애여성이라는 말조차
생소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장애여성들 스스로 변화되어가는 모습이 보여지고
차즘 장애여성의 목소리가 드러나는 사회를 발견할 땐 희망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희망으로 오늘도 장애여성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