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를 가슴에 묻고 세운 민주노조
박선태(경동산업
위원장)
위원장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주름살 패인 아줌마 조합원들과
얼싸안고 울었다.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둔 두분 열사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민주노조를 외치며 산하해 가신 두동지에게 늘 죄인된 마음으로
살았는데 이제는 조금은 당당할 수 있을것 같다.
“강현중, 김종하 동지여! 이제 동지들의 쌓인 한을 살아 남은
우리들이 - 민주노조를- 지켜나갈것을 약속합니다. 부디
노동해방된 세상에서 편안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경동에 민주노조를 쟁취하기 위해 목숨걸고 투쟁했던 지난
역사를 회상해 본다
84년부터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비인간적인 노무관리에 분노하여 노동조합을 건설하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서이동과 함게 폭행을 당하고 2명이 해고되면서
1차 시도가 좌절하게 되었다.
85년 들어 다시 노동조합을 세우기 위한 결성식을 갖고
노조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으나 회사측은 결성식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협박,매수하여 노조 결성식전날에 퇴사한것으로
조작하여 어용노조, 아니 유령노조를 만들었다. 이후 계속되는
해고자 투쟁과 식당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노동조합과 사무장이 구사대를 이끌고 식칼을 휘두르며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14명이라는 대량해고자가 발생하여, 1명은
구속되게 된다. 이사건이 계기가 되어 “민주노조 건설및
임금인상”를 위한 14일간의 파업투쟁이 전개되었다.
“파업기간 동안 모든 문제 책임을 묻지 않는다” “노조가
하는일에 절대 방해 하지 않겠다” 라는 합의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고, 임시민주노조 집행부를 결성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합의서에 찍은 도장이 마르기도 전에 모든 약속을
위반하고 위원장 선거 하루전에 회사와 경찰,노동부가
삼위일체가 되어 각목부대,페퍼포그를 동원하여 임시집행부
노조사무실로 쳐 들어와 모든집기와 서류를 불태우고 살인적인
폭력을 휘두렀다. 이때 임시집행부와 투쟁에 적극적이던 23명의
조합원이 구속연행되어 또다시 민주노조 건설이 좌절되고
말았다.
89년 어용노조는 임금인상을 회사측 요구안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려 하자 이에 분노한 조합원들이
“평조합원 임금인상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발한 활동이
하였다. 이것이 이후 디딤돌이라는 친목모임이 되었다. 디딤돌
회원들이 현장활동을 강화하자 회사는 부서공청회를 했다는
이유로 3명을 해고시키고,노동조합은 이에 발맞추어 4명의
동지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였다. 이렇듯 노동조합은 회사의
충견노릇을 충실히 선봉에서 조합원 탄압을 해 되기 시작하였다.
회사는 디딤돌 회원들이 불법단체에서 풍물을 배우는 것은
친목모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디딤돌 회원 전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였다. 이에 디딤돌 회원들은 즉각적으로
“부당징계 철회”를 혈서로 써서 생산과 사무실에 붙이고
농성에 돌입하였다. 폭압적인 노무관리를 자랑하는 회사는
200여명의 구사대를 상주시켜 농성자를 위협하고 농성자
가족들도 밖에서 동조투쟁을 하자 가족들에게도 폭행을 서슴치
않았다. 농성자들은 극에 달한 탄압에 맞서 사측과 담판을 짖기
위하여 온몸에 신너를 붓고 사무실로 들어가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사측은 “죽을려면 죽어라”하며 농성자들의
분노를 증폭시켰다. 결국 두명의 동지가 회사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분신으로 항거하였고, 많은 동지들이 화상을 당하였다.
이사건을 계기로 조합원들이 떨쳐 일어나 “경동노동자
탄압대책위”를 꾸리고 300여명의 조합원들이 합류하여
농성대열을 정비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9월 4일 분신한 두동지는
15일 병원에서 운명을 달리하였다. 또한 13일에는 대책위 13명의
지도부를 전원 연행하고 구속시켰다.
경동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에서
헌식적인 투쟁으로 9월 30일 대책위의 요구대로 사장의
공개사과, 어용노조위원장 사퇴,조합원 총회개최 등 요구안을
관철시켜 9,4투쟁은 수많은 조합원이 해고와 구속 그리고 우리들
가슴에 두분의 열사를 묻고 마무리 되었다.
4년의 감옥생활과 복직투쟁
이후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노동자들이
모두 구속, 해고된 상태라 현장 조직력이 크케 와해 되었다. 그
당시 9.4투쟁에 “경동노동자 대책위” 위원장을 맡은 본인은
노동자 중에서는 최장기 4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93년 12월에
만기 출소하였다.
출소하고 나와 보니 첫소식이 회사의 부도소식이였다. 바빠진
마음에 쉴틈도 없이 먼저 출소한 동지 3명을 규합하여
출근투쟁을 시작하였다. 4년의 감옥생활을 하면서도 반드시
돌아갈 현장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지냈다. 그렇게
그리던 우리 조합원들은 오랫만에 나타난 해고 동지들에게
회사의 억압적인 노무관리 때문에 따뜻한 손길하나 잡아주지
못했지만 바라보는 눈길은 따뜻했다.
계속적인 출근투쟁과 정문 피켓팅으로 회사에 복직을
요구하였지만 회사는 대화조차 거부하였고 어용노조는
해고자들을 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복직의 열기를 굽히지
않은 해고자들은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2월말 부터 회사 정문
앞 콘크리이트 바닥에 텐트를 치고 6개월에 걸친 투쟁끝에 3명의
해고자가 복직을 하게 되었다. 경동산업 복직투쟁은 인천지역의
공동투쟁으로 확산되었고, 투쟁전술 또한 다양한 방법으로
전개하였다. 대표적으로는 매주 수요일 회사 정문 앞에서
“해고자 원직복직을 위한 현장음악회”를 열어 지역노동자와
현장조합원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헸다.
드디어 첫 출근 하는 날 , 그날의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임금,산재의 해결에서부터 출발한 민주노조 건설 활동
현장에 들어가 보니 노동강도는 예전보다 몇 배 높아 있었다.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에 남자들은 거의 떠나가버린 상태였고
나이먹은 아줌마들이 남자들이 하였던 힘든 일을 떠맡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복직자들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조합원들의 고충사항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현장조직을 재건하고 민주노조를 건설하기 위한 작업을
정리하며 실행에 돌입했다.
개선할 사안은 산적했지만 제일 먼저 각종수당을 기본급으로
계산한 잘못된 임금부분을 노동부를 쫓아다니며 통상임금으로
환원시켜 미지급 임금을 전부 받아냈다. 또 산재노동자를 개별
면담하여 모임을 꾸리고 불이익을 당한 산재조합원 일을 속
시원히 해결하는 등 조합원들에게 경제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는 부분부터 직접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신뢰성과
성실성을 심어주기 위해 닥치는 대로 잔업,철야를 하면서 조합원
속에 철저히 파묻혀 들어갔다.
96,8월에 있을 위원장 선거를 준비하다
평소 어용노조에 불만이 많고 현장에서 제목소리를 내는
조합원들과 접촉하여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선거전에 돌입하니 4명의 후보가 등록하고 치열한
선거전이 되었다. 복직자에게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과격하다’
‘외부세력과 연계되어 있다’ ‘회사 망한다’등등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결사적으로 당선을 막으려는 회사에 맞서
우리는 조합원과 개별접촉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조합원을 한번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다.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대안세력이다”. 등 공세적인
자세로 선전하였다.
그리고 선거는 조합원의 축제인 만큼 재미있고 다양한 전술을
구사했다. 아줌마 조합원이 많은 관계로 구호도 재미있고,
로고송도 재미있게 표현하고 전달했다. 선거 중반기에
접어들었을 때는 평소 20명의 선거원을 갑자기 50명으로 늘려
위세를 가하기도 하였다. 선거기간 동안 회사의 따가운
시선속에서도 조합원들이 자진하여 선거홍보용 T셔츠를 달라고
하고, 이른 아침부터 정문에 나와 운동원들과 함께 구호와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민주노조에 대한 조합원들의 갈망이
뜨겁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선거는 사상처음으로 일차에서 과반수를 넘어 당선되었다.
회사는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했으며 어용의 무리들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새벽6시에 회사에 출근해서 T셔츠를 입고
민주노조 구호를 외친 나이드신 아줌마들, 꼬깃꼬깃한 돈을 몰래
건네준 조합원들, 성금을 모아 선거자금을 보낸 부서원들,
내평생 소원이 민주노조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조합원들,
집안의 가보인 묵주 목거리를 걸어주며 꼭 당선되어 우리들의
한을 풀어달라는 아줌마, 이렇게 민주노조를 향한 열망을 담아
제5대 집행부 위원장으로 당선시킨 450여명의 조합원과 세분
열사의 염원으로 민주노조는 쟁취되었다.
싸움은 이제부터
10여년에 걸친 경동노동자들의 강고한 투쟁은 민주노조를 끝내
쟁취하였으나 정작 싸움은 이제 부터였다.
모든 노동자들의 생계에 비상이 걸린 고용불안 문제는
경동노동조합도 시급히 풀어야 할 첫번재 과제다. 특히 회사는
94년 부도이후 법정관리 상태가 지속되어 있고 부서하청을 꾀한
경영방침은 조합원들의 심리적 부담감을 가증하고 있다.
87년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된 해외공장투자는 결국 인도네시아
공장에 4,000명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국내는 인천공장
400명 대구 80명으로 크게 감소되었다. 계속적인 부서하청화와
법정관리로 인한 조합원들의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절대적으로
봉쇄하고 현재의 인원감축을 막아내고 강도높은 작업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모자란 인원을 보충해 내는 일도
현노조의 주요활동 방향이다. 회사의 경영참가 또한 시급히
추진할 문제다.
지난 3/4분기 노사협의회 때는 기존의 노사관계를 뒤집는 일도
했다. 회사는 과거처럼 노동조합을 회사의 일개부서로 취급하고
관리해야 할 부서로 바라본다면 노사화합은 이룰 수 없고 동등한
입장에서 노사관계가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더불어
이제 노동조합도 방만한 회사경영에 문제를 제기하고 회사살리기
방안을 제시했다.
노동조합이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가 또 한가지 있다
경동산업의 고질적인 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경동의 임금은 회사와 어용노조의 야합에 의해
임금동결,직권조인등 조합원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련의 작태로
기본생계 조차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다. 전체조합원중
새마을금고에서 대출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저임금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근속년수가 10--20년이 되어도
평균임금은 50만원을 넘지 못한다. 더군다나 현장조합원의
불만은 입사 5년이 되도 50만원, 20년이 되어도 50만원을 받는등
잘못된 임금체계의 시정도 조합의 시급한 과제이다.
현장조합원과 노조간부를 중심노조를 중심으로 10명의
임금조정위원회를 꾸려 구체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계획을
실행중이다.
경동노동조합이 할 일은 태산이다. 현재의 일당제를 3년내에
월급제로 전환시키는 일, 산재예방에 관한 안전장치 부착문제등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구조적 문제까지 풀어야 할 사항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후 노동조합 운영방식은 전체 조합원과 함께
하는 방식을 택하고 장기적으로는 전체 조합원의 교육을 통해
강고한 조직으로 만들 것이다.
총파업 투쟁 동참과 민주노총 가입
지난 96년 12월 26일 새벽 노동법이 날치기 통과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로 출근해 비상확대간부회의를 개최하였다.
그동안 노동법이 날치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비상대기하고
있던 터라 회의 진행은 순조로웠고 총파업투쟁에 결합의지도
쉽게 풀렸다. 사실 경동노동자에게 노동법 날치기 통과는 큰
타격이다. 부서하청화를 꾀한 경영합리화는 정리해고제와
연관되어 있다.
평소 저임금에 시달리던 경동 노동자에 임금이 또다시 삭감되는
변형근로제 등은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이기에
조합원들이 총파업 대열에 높은 열기로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
회사가 법정관리 상태라 다소 어려운 점은 예상되었지만 정작
경동 노동자에게 다가올 피해 또한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첫날부터 간부파업을 시작으로 중식집회,전조합원 조퇴등을 통해
지역집회나 중앙상경 투쟁을 해 나갔다. 총파업 과정중에
경제위기를 노동자들 탓으로 돌리는 정부,여당의 기만적인
작태나 노동자들 생계에 위헙을 주는 악법을 보고서도
한국노총의 미지근한 태도에 경동 조합원들은 과감히 한국노총을
탈퇴하고 민주노총 가입을 93%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선택하였다. 민주노총 가입에 있어 평소 간부들 교육도 도움이
되었지만 36년만에 처음으로 거리에 나선 경동 노동자들에게는
민주노총의 힘찬 투쟁은 우리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희망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총파업 과정중 회사의 정리계획안이 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어
많은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오히려 총파업으로 인해 조직내부의
갈등이나 한계를 극복하여 한층 강고하게 묶어주고 경동
노동자는 하나라는 확신을 가지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악질적인 노무관리,각종 산재사고로 악명이 높았던 경동산업에
민주노조의 힘찬 깃발을 올리기 까지에는 해고자들의 죽음을
각오한 투쟁도 있었지만 조합원들의 끈질긴 투쟁의 성과라고
본다. 지난 경험을 회상해 보면 조합원들을 끝까지 신뢰하고,
말보다는 실천으로 행동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노동조합 운동에
발전을 가져 올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