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정책 변해야 산다
이재관(현대중공업 노조 편집 차장)
썩어도 준치?
“맞아. 돈을 딜여서라도 연구를 해봐야 되는기라.”
“연구갖고는 부족하다 아이가? 할바사 해부를 해뿌야지?”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노?”
“후우 ─ , 내도 모리겠다. 머리통이 빠개질라칸다.”
여기저기서 한숨소리만 들린다. 바로 현중노조를 두고 하는
얘기다. 노동조합은 조합원, 대의원 집행부로 꾸려진 조직이므로
말하자면 현대중공업 조합원 자격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되는 셈이다. ‘사람들’을 연구하고 해부해 봐야 할
판이라는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정부 여당과 김영삼정권의
새벽날치기에 맞서 건국이래 최초의 정치파업 물결이 온나라를
덮었을 때도 현중노조는 그저 잠잠했다. 유리한 여론을 등에
업고 이땅 모든 양심세력들의 힘실린 지원을 받으면서도
현대중공업
노조는 파업에 참가하는 열성조합원 100여명. 2백여 대의원 중
평균잡아 100여명, 그리고 집행간부 50여명으로 꾸려진 250여
파업대오로 버텼으니 그것도 저력이라면 저력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까? 2만 2천 조합원가운데 2-3백대오가 온갖
탄압(성과급 떼어먹히고 무결잡히고 부당징계받으면서)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움직였으니 이걸 두고 ‘일당백’이라고
하는 걸까?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를 무효로 하기 위한
전국총파업 현중노조 비상대책위원회는 총파업 첫날의 4천여
파업대오를 키워가는 데 실패하고 결국 ‘전국 상황에 우리가
찬물을 끼얹어서는 절대 안된다’는 ‘눈물을 곱씹는’
‘전략’으로 물러서야만 했다.
파업정국이 주춤하고 ‘숨고르기’를 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동안, 현중노조는 전국노동형제들의 연구대상으로
도마에 올랐다.
“정말이냐? 다른데도 아닌 현중노조가?” “이게 골리앗
전사들의 진짜 얼굴이란 말이냐?” 현장통신
노조정책 변해야 산다
현중노조 조직력 몰락 원인은?
크게 두 가지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하나가 현대그룹의
노무관리전략 가운데 ‘현중노조 죽이기’ 일환으로밖에 볼 수
없는 현중 회사측의 노무관리를 들 수 있다. 우리는 자신있게
말한다. 세계 그 어느 곳에 내놔도 일등노무관리상을 받을
것이라고. 둘째는 현중노조 내부가 안고 있는 한계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중노조의
정책은 사실 ‘무정책’이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 두
가지 큰 원인은 언뜻 보기에 독립해있는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서로 물고 물리며 얽히고 설켜 있다.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를 일으킨 동기, 곧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그 원인을
샅샅이 파헤쳐 ‘해부’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문제 풀이에
대한 실마리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10년 역사에 10대 집행부
현중노조 집행부 임기는 2년이다. 현중노조가 결성된지
10년이므로 정상대로라면 지금 5대집행부가 들어서 있을 터이다.
그런데 결과는 평균잡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조합원 다수의 신임을 받고 뽑힌 ‘민주 표방’ 위원장과
집행부는 오래가지 못했다. 회사의 집중공략대상이 되었고
구속과 해고로 조합원들에게서 분리되었다. 그 틈을 비집고
이른바 회사측에 ‘협조’ 잘하는 노조 간부를 내세워 노조
무력화를 꾀했다. 노동조합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노조가
내부싸움에 빠지도록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번번히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한 조합원들의 싸움이 일어났고 이러한
80년대식 방식으로는 더욱 효과 높은 노조 길들이기에 맞지
않다고 판단해 만들어낸 것이 ‘중간 허리치기’이다. 다수
대의원, 운영위원을 집중공략하여 노동조합의 일상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막았다. ‘리모콘 대의원’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이쯤이다.
이러한 회사측의 의도는 제대로 맞아 떨어졌고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다. 현장 조직력을 장악해 버린 것이다. 현장의
동맥이요, 허리 구실을 해야할 대의원과 운영위원들 중 다수가
현장에서 집회조차 제대로 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연히
노동조합 대의원들에 대한 믿음과 위상은 곤두박질하게 되었고
그 공백을 현장관리자(직책을 가진 조합원)들이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친 노조 성향 조합원들을 고립하라
‘나선 놈만 다친다.’ ‘나서봐야 손해다.’ 언제부터인가
현장안에 이러한 피해의식이 팽배해졌다. ‘반생산체제’로
전환하고 현장의 장악력이 대의원에서 직책자들로 넘어가면서
부터이다. 집회에 참석하거나 노동조합의 지침에 따르는
사람들은 그 집중 관리의 ‘표적’이 되었다. 잔업과 특근을
통제당하여 생계까지 위협당한다. 96년 단, 임투 과정에서
노조지침에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껏 (97년 3월 현재까지)
잔업과 특근을 통제당하는 조합원들도 있다.
기본급보다 각종 수당에 의존해야 하는 현 임금체계에서 잔업과
특근을 통제당한다는 것은 30-50만원 정도의 임금 손실을
말한다.
이러한 ‘고립’ 작전은 노조활동을 위축시키고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멀리 하도록 유도하는 데 크게 일조하고 있다.
회사측의 ‘일상활동’
지금까지 겉으로 드러난 회사측의 노무관리 전략을 살펴보았다.
‘민주성향’ 집행부 고립하기, 노조 허리인 대의원, 운영위원
공략하기, 노조선거개입하기, 직책자를 이용하여 ‘콩깍지로
콩볶기’, 친노조성향 조합원 개별 고립 관리하기, 생계로
볼모잡기 따위로 다양하다. 이는 회사측의 ‘일상활동’이다.
사실 모든 자본가들은 방법과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노조
일상활동을 끊임없이 펼친다. 노동조합과 일정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구사하는 회사가 있는가 하면,
오로지 일관되게 채찍을 휘두르는 회사가 있다.
이러한 회사측의 ‘일상활동’은 노조의 의지와는 사실 무관하게
펼쳐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동조합에서 ‘노조탄압’으로
규정하는 이 ‘일상활동’은 회사측 노무관리 ‘고유업무’인
셈이다.
노동조합의 일상활동
이쯤에서 노동조합 내부를 들여다 보기로 하자.
현재 노조집행부 조직 체계를 보면 정책연구실과 조직쟁의실 두
중심축이 맞물려 집행이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중 노조가 안고있는 취약점이 바로 ‘현중 노조만의
독특한 정책 부재’와 ‘현장 조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 두 실 인원이 다른 실에 비해 많다. 노동조합이
독자로 추진해야 할 조합원에 대한 정책이 거의 없거나 부실하고
현장을 야금야금 장악해 들어오는 회사측 노무관리에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조합활동의 밑바탕이 되어야 할 노동조합의 일상
활동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모든 것이 홍보물
하나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비단 현 집행부의 문제가
아니라 역대 어느 집행부에서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과제이다.
흔히 ‘조합원 2천 대오만 있으면 싸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128일 투쟁이 그랬고 골리앗 싸움이
그랬다. 63일 투쟁과 근래 날치기노동법 무효투쟁에서도 이러한
과정이 되풀이 되었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이제 이런 식의
소수정예 부대만으로는 노동조합을 지켜내기 힘들게 되었다.
회사측의 온갖 부당한 ‘일상활동’에 대처할 힘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전체 조합원이 노동조합을 내
조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을 때 회사측의
‘일상활동’은 결코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2만의 일을 2백이 한다?
갈수록 집행 간부, 대의원 활동이 힘들다고 말한다. 힘은 더
들면서도 눈앞에 나타나는 성과는 없다. 이번 노개투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확인했다. 왜 그런가? 2만이 할 일을
2백이 해야 하는 현실 때문이었다. 이는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다. 조합간부들이 조합원속에 들어가 있지 못하고 따로
떨어져 고립되어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역사의 주인이요, 주체라고 우리는 말한다. 이 회사의
주인 역시 현장의 조합원들이다. 노동조합이 힘을 가진다는 것은
결국 무엇인가? 조합원들이 맡고 있는 ‘생산’, 회사 존폐
여부를 사실상 가름하는 ‘생산력’을 노동조합에서 갖는
것이다. 회사의 ‘10% 생산성’이라는 지시보다 노동조합의
‘10% 생산성 올리기’ 지침이 먹혀들어 가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모든 구성원(조합원)이 노동조합을 ‘내
몸, 우리조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현재 현중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대해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한다. 회사측이 조합원들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듯, 노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10년동안 노동조합에서 조합원과 함께 하려했던 사업이
있었던가, 있었다면 2만여 조합원과 공유하면서 조합원들의
참여와 힘을 담보로 일하려고 노력했던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공약은 위원장이 아니라 조합원이 만들어 간다
‘한 번의 집회를 가지기 위해서 두 달을 준비했다’는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현중노조가 ‘전조합원 집회’를 한달에도 여러차례 가지지만
인원 동원 문제나 장소나 시간, 참여 여부, 집회 내용 검토에
충실했는가 하는 점을 미리 꼼꼼하게 따진 적이 몇번이나
있었던가 반성할 일이다. 이제 조합원을 동원대상 정도로 여기는
사업 방식은 재검토해야 한다.
500에서 2000정도, 많이 모여야 1/10인 ‘전 조합원 집회’는
오히려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집행부가 해야 할 일, 대의원이 해야 할 일이 있듯이 이제
조합원이 해야 할 일을 찾아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약은 위원장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만들어 가는 풍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위원장은 만능 해결사가 아니다. 위원장에게 힘을 갖게 하는
것은 ‘민주성향’을 가진 몇몇 노조간부들이 아니다. 조합원
다수의 노조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집행부는 노동조합 모든
집행을 바로 조합원에 대한 집행으로 맞추어 가야 한다. 의식이
뒤떨어진다는 얘기를 하기 이전에 꾸준하고 일관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조합원과 밀접한 산업안전, 후생복지에도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조합원이 노동조합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하는 집행에 초점을 맞출 때 현중노조는 위기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엇을 할테니 따라달라는 주문보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조사하고 어떻게 하면 해낼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여론을
만들어 힘있는 집행을 해야 한다.
당장 일주일, 한달, 일년 앞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3년, 5년,
10년에 대한 장기계획을 조합원과 함께 세우고 함께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걸음씩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가 ‘저지르자’
흔히 우리는 노동조합 활동 몰락의 원인을 노조 내부의 문제로
인식하기에 앞서 회사측의 집요하고 치밀한 노무관리 방식에서
찾아왔다. 맞다. 회사측의 탄압이 없었더라면 노동조합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회사측의 ‘일상 활동’은 노조가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노조가 있는 한 계속될 회사측의 업무이다. 그들이
저질러 놓은 ‘업무’를 언제까지나 뒷수습해야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끊임없이 저지르는 현안 문제, 끝도
보이지 않는 뒷수습의 악순환은 이제 노조 스스로 털어낼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 노동조합이 일을 ‘저지를’ 때가 되었다. 그 일이란
첫째,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만들고 둘째,
우리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조합을 통해서 미래의 희망을
품게하고 셋째, 조합원 스스로 자신의 할 일을 갖도록 하는
정책에서 출발한다.
더디지만 함께 가자
‘가장 늦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르다.’
요즘처럼 이 말을 실감해 본 적도 드물다. 모두들 한숨만 쉬고
모두들 허탈해 한다. 완전히 ‘바닥’이라고 절망한다. 희망을
갖지 못한 채 거대한 자본의 벽앞에 주저앉아 있다.
지금까지는 ‘한사람이 열걸음’이었다면 앞으로는
‘반걸음이라도 열사람’이라는 자세로 가자.
500명밖에 모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면 5천명이 모일 수 있는
정책을 내걸자. 해보기도 전에 포기하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만들어 가자.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