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제106호 이전)

현장에서 미래를 > 특집 > 목록보기 > 글읽기

 
노동법개정에 감추어진 자본의 “전략”

현장에서 미래를  제19호
정세분석실

노동법개정에 감추어진 자본의 “전략”
정세분석실

재개정의 막은 올랐다

12월 26일 개악노동법의 날치기 통과는 어떤 점에서 전화위복이었다. 침체에 빠졌다고 믿은 노동운동이 총파업을 펼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민주노총이 깃발을 든 지 1년여 만에 이루어낸 전국적이고 정치적인 투쟁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자본과 정부는 재개정 논의라는 부분적 양보에도 불구하고 상처투성이 패배자의 나락에서는 벗어났다. 한보 불법대출의혹과 황장엽 망명사건은 노동법에서의 후퇴를 어물쩍 덮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정부는 양보의 제스츄어 속에서도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관철시키고자 했던 자신의 의도를 단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자본은 여․야 영수회담으로 노동법의 재개정이 사실화될 때부터 ‘노동법 개정의 기본정신’을 잃지 않도록 여러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하였다. 자본이 말하는 노동법 개정의 정신이란 ‘국제 경쟁력 강화’,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의 근본논리 역시 이러한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국민회의와 자민련도 단일안을 마련하여 국회에 제출하였지만 그 내용은 대부분 노개위의 공익안에 기초하고 있다. 노개위 공익안 자체도 이미 그 핵심에서는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국회에서 여․야가 만들어낼 개정안이라는 것은 생색내기 자구수정에 머무를 가능성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이미 이것은 국회환경노동위의 공청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법안의 재개정에 대한 보다 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12월 26일에 개정된 노동법안을 다시 한 번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개정 노동법안 속에 관철되고 있는 자본의 논리와 전략을 이해할 때만이 재개정될 노동법안에 대한 태도 역시 분명하게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하에서는 개정법 조항을 하나하나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개별상황(고용․임금․근로시간)과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한 내용으로 나누어서 분석하고자 한다.

해고의 자유와 실업의 자유

개정 노동법 증에서 현장 노동자를 가장 분노하게 만든 내용 중의 하나가 바로 ‘정리해고의 명문화’였다.
근로기준법 제27조 2(경영상의 이유에 의한 해고) ① 사용자는 경영상 이유에 의하여 근로자를 해고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계속되는 경영의 악화,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과 기술혁신 또는 업종의 전환 등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
② 계속되는 경영악화로 인한 사업의 양도·합병· 인수의 경우에는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본다.

‘고개 숙인 남자’들의 명예퇴직 이야기가 사회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냈던 것이 바로 정리해고 문제였다. 이 조항에 대해 야당은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정리해고제한에 관한 특별법’으로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하고 이의 ‘시행을 3년간 유보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야당안 역시 ‘정리해고’의 실시를 전제로 한다. 정부와 여당도 정리해고를 인정하되 정리해고의 요건은 강화하는 쪽으로 재개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경총과 전경련은 정리해고 요건과 절차의 강화에 대해 ‘정리해고의 노동위원회 신고 절차 삭제’를 요구하고 있다. 결국 국회는 정리해고를 ‘국민적 합의’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자본과 정부는 개정 노동법에서 정리해고의 요건을 엄격히 규정하였기 때문에 정리해고의 실시가 어려울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민주노총의 단체협약 모범안을 보면 정리해고의 조건을 ‘집단해고를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경영위기, 기업의 도산 등 더이상 근로관계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경영위기’로 하고 있는데 반해 개정 노동법은 정리해고 사유(위의 법조항)를 이보다 훨씬 더 넓게 규정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이나 기술혁신 또는 업종의 전환’ 따위는 자본간의 경쟁이 격화되거나 산업기술이 발전하면서 항상 진행되는데 이런 것들을 이유로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본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정리해고’를 감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근로기준법 제27조 3(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절차)에서는 해고일 60일전까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그 사실을 통지하도록 하고 해고회피의 방법 및 해고의 기준에 대해서 근로자와 ‘성실’하게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자본과 정부는 이것이 정리해고에 대한 ‘노동자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장치’라고 선전하지만, 민주노총 모범단협에도 훨씬 못 미치는 규정이다. 민주노총의 단협안에는 회사의 분할, 양도, 합병, 업종전환 등은 정리(집단)해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안다. 또 정리해고 시에는 60일 이전, 분할·양도·합병 시에는 90일전, 정리해산·이전·업종전환 시에는 6개월 이전에 노동조합에게 통보하여 합의하도록 하고 있다. 민주노총 단협안은 노동자가 고용불안으로 위협받게 될 경우 그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두고 노동조합과 합의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이번 개정 노동법은 그 사안의 경중에 관계없이 통고시한을 일률적으로 정함으로써 혹시라도 있게 될 노동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정리해고를 신속히 실시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정리해고가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실업자가 중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경원은 지난 해 12월 실업률이 2.3% 높아진데 이어 올 1/4분기 중의 실업률이 2.56%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조선일보 2월 11일자)
정부와 자본이 실업문제의 해결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고용보험법에 의한 실업급여의 지급이다. 이것을 위해 자본과 정부는 노동법이 개정되기 전부터 고용보험법 관련 조항들을 손질, 정비하였다. 96년 3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친 고용보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인력재배치지원금 지급요건 완화’ ‘고령자의 직업훈련 또는 교육훈련 장려금 지원범위 확대’ ‘실업급여액 산정기준이 되는 임금범위 확대’ ‘사회보장제도로 인한 급여수여가 있을 경우 실업급여의 기본급여에서 공제’ 따위 조항을 신설·개정하였다. 그리고 96년 9월 7일에 입법예고된 고용보험법은 ‘사실상 재취업이 곤란한 65세 이상 자는 실업급여 지급대상에서 제외’, ‘고용조정 지원제도의 혜택 지원대상 확대’, ‘급여기초임금일액의 평균임금 산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노동자는 해고를 말없이 ‘당해야 하는’ 의무와 ‘실업급여라도 받아서 생활’ 해야 하는 권리만이 남게 되었다.

줄어드는 정규직, 늘어나는 임시직

우리가 고용과 관련하여 또 하나 관심을 가져야 할 법 조항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19조 3(단시간 근로자의 정의) 이 법에서 ’단시간 근로자‘라 함은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당해 사업장의 동종 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의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에 비하여 짧은 근로자를 말한다.

단시간 노동자에 대해서는 이전까지 ‘시행령’으로만 규정하고 있었는데 이번 개정에서 ‘노동법’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만큼 단시간 근로자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는 문제가 사회화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뒤집어 보면 단시간 근로제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노동제를 합법화한다는 의미도 있다. 임시직과 파트타임 노동자는 그 법적 지위가 분명하게 보장되어야 마땅하지만 이런 내용은 개정법 어디에도 없다. 단지 단시간 근로자를 인정하는 것에만 그친 개정 노동법은 그 동안 줄기차게 비정규직의 확대를 노린 자본의 전략만이 반영되고 있을 뿐이다. 근로자 파견제가 2차 개혁과제로 유보되었다고 한숨을 돌리기엔 근기법 제19조의 3이 미칠 영향은 너무 엄청나다.
민주노총은 모범 단협안에서 임시직과 용역직 노동이 ‘비정규직으로 고착화’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정규직 업무의 용역전환 금지’ ‘용역노동자의 정규직으로의 전환’ ‘임시직과 시간제 고용시 조합과 사전 합의’ ‘정규직 업무의 임시직 전환 금지’ ‘임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임시직과 시간제 고용, 용역은 이처럼 한시적으로 필요한 부분에서 잠깐 이루어지는 노동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드는 위협요소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런데 자본과 정부는 노동법 개정이전인 96년 4월에 직업안정법 시행령을 ‘채용박람회 등의 소용경비 또는 일부의 지원’ ‘국내 유료직업소개 사업의 허가요건 완화’ ‘직업정보제공사업을 신고제로 변경’ 할 수 있게 개정하였다. 96년 7월에 개정된 동법(同法) 시행규칙에서는 직업소개사업에 종사할 수 있는 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그 설치를 간단하게 할 수 있도록 관련조항들을 수정하였다.
직업소개소의 소개업무가 대부분 제조업보다는 유통·서비스 분야이거나 비정규직 취업을 알선하고 있는 실정에서 이러한 개정이 빚어낼 상황을 분명하다. 즉, 더욱 자유로워진 직업소개사업은 정리해고로 없어진 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를 값싸고 관리하기 편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메워 나가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권리보장은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가?
근로기준법 제22조 2(단시간 근로자의 근로조건) ① 단시간근로자의 근로조건은 당해 사업장의 동종업무에 종사하는 통상근로자의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산정한 비율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③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현저히 짧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단시간근로자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할 수 있다.

이 조항에 의하면 단시간 근로자는 그 일한 시간에 비례해서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사업주들은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비정규직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또 근로기준법 제29조에 의하면 ‘일용근로자로서 3개월을 계속 근무하지 아니한 자, 2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사용된 자, 계절적 업무에 6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사용된 자, 수습사용중의 근로자’들은 예고해고의 적용예외로 분류되어 있다. 법대로 한다면 비정규직, 단시간 노동자들은 장기적 고용관계를 맺지 않는 한 항상적 고용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단시간 노동자들을 장기간 사용한다면 그것은 결국 정규직의 업무를 침해하고 정규직을 임시직, 비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단시간 근로자의 범위를 ‘4주간을 평균해 1주간 소정근로 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로 재개정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임시직․파트타임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과 ‘임시직의 장시간 사용 금지’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다. 노동법상의 ‘단시간 근로자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뿐이다. 이는 노동자를 비정규직 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로 분리․이중화하는 고용정책을 유지한다는 뜻이며 핵심적인 업무를 제외한 정규직 업무의 상당부분을 계속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43조 단서조항으로 인하여 ‘쟁의행위시 대체근로’가 허용되었으며 자본과 정부는 ‘동일 사업내 대체근로’ 뿐만 아니라 ‘신규하도급’까지 인정하고 있다. 동일사업 내 대체근로의 허용은 쟁의행위에 참가하지 않는 정규직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하여금 조합노동자들이 담당하던 업무를 수행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백화점 노동자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파견근무’가 보다 보편화될 수도 있다. 또 쟁의행위 시 신규하도급을 허용하는 것은 일정량의 업무가 하도급 노동자들에게 넘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바, 이렇게 되면 조합원 정규직노동자들은 할 일이 없어지게 된다. 쟁의행위에 참여하는 조합원 정규직 노동자들을 기다리는 건 ‘실직’이 될 것이다. 결국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노조원과 비노조원의 갈등이 빚어지고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갈등, 하청노동자와 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갈등 역시 증폭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5년간 유예로 대충 가닥을 잡아가는 단위 사업의 복수노조가 합법화되어 대체근로 참여문제로 대립하게 된다면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간의 갈등까지도 예상된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와 여당은 대체근로시 외부대체와 신규하도급은 허용하지 않는 쪽으로 재개정할 뜻을 비치고 있다. 야당 역시 대체근로는 허용하지만 신규하도급은 금지하는 노개위 공익안으로 단일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렇게 재개정이 되더라도 대체근로는 여전히 허용되므로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를 무력화하는 수단으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정 노동법은 핵심(대기업)노동자와 주변부(하도급 혹은 중소기업) 노동자의 이중화에서 정규직의 축소와 비정규직 업무의 확대를 통한 또 다른 노동의 이중화를 가능하게 한다. 노동자의 분할은 자본이 노-노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보다 효과적인 노동자 통제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 주는 48시간, 또 한 주는 40시간

자본은 노동자를 분할하는 이중화에서 그치지 않고 노동시간을 탄력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장치도 마련하였다. 바로 탄력적 근로시간제(근로기준법 제 42조의 2), 선택적 근로시간제(제42조의 3), 간주근로시간제(제46조의2 제1항), 재량근로시간제(제46조의2 제3항)를 일컫는다.

이 중에서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가져다 줄 폐해는 계속 제기되어 왔다. 2주 단위 48시간 한도의 변형근로는 취업규칙에 정하기만 하면 실시할 수 있고 1개월 단위 56시간 한도의 변형근로 역시 근로자대표(노동조합이 아님을 유의)와의 서면합의로 실시할 수 있게 되었다. 변형근로는 1일 8시간과 1주 44시간 노동의 원칙(근기법제42조 1,2항)을 사문화하는 것으로 자본의 필요와 생산량의 변동에 따라서 노동시간을 변동시킬 수 있게 된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취업규칙에 의하여 시업 및 종업시각을 근로자의 결정에 맡기’는 제도로 ‘노사합의로 적용대상 근로자의 범위, 정산기간(1개월 이내), 정산기간 중 총근로시간 등을 결정’하여 시행할 수 있다. 이 제도에 대해 정부와 자본은 주부를 비롯한 여성인력의 취업을 확대되고 전문․사무직의 능률이 향상될 것이라고 하지만 이 제도 역시 변형된 근로시간을 노동자에게 강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근기법 제42조 4(연장근로의 제한)①당사간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42조의 근로시간(1일 8시간, 1주 44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② 당사간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는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42조의 2(탄력적 근로시간)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으며 제42조의 3(선택적 근로시간) 제2호의 정산기간을 평균하여 1주간에 12시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제42조의 3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 ( )는 필자 주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주로 제조업 생산직 업무에 적용가능한 변형근로 형태라면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굳이 특정한 시간대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 사무직에 적용할 수 있는 변형근로 형태이다. 특히 현재 대다수의 사무직 노동자들이 그 넥타이 덕분에 연장근로를 하고서도 시간외 근로수당 등을 전혀 못받고 있는 실정에서는 공공연한 연장근무가 가능하게 한다. 만약 이 법이 시행된다면 월말 정산처럼 업무량이 폭주할 때 노동자로 하여금 연장근무를 시키더라도 시간외 수당은 지급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일이 없을 때는 적게 일하도록 해서 임금을 줄이고, 바쁘고 업무가 집중될 때는 노동시간을 집중시켜 시간외 수당이 없는 노동을 시키겠다는 것이 정부와 자본의 전략인 것이다. 노동력의 사용이 노동자의 의지가 아닌 자본의 필요와 의지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공히 1주 12시간을 초과한 노동을 할 수 있으므로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1주에 최대 56시간까지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이렇게 되면 ‘1일 8시간 노동’ 규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게 된다.

근로시간의 변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노총조차도 개정 노동법 검토 법안에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한 재량근로제와 간주근로제 역시 변형근로의 한 형태이다.

재량근로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재량적 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하여는 노사합의로 정한 시간만큼 근로한 것’으로 보는 제도이다. 노동부가 개정 노동법 해설에서 밝힌 재량적 업무는 ‘연구개발업무, 정보처리시스템 분석업무, 기사 취재․편집업무, 프로듀서 또는 감독업무, 각종 디자인 고안 업무’ 등이다. 이러한 업무들은 그 업무의 특성상 근로시간 보다는 업무의 완성도 및 성과가 중요시되는데 만약 재량근로시간제가 인정된다면 이들 업무는 자본이 인정한 시간만큼만 일한 것이 된다. 이는 이 업무 종사자들이 누려 왔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노동형태가 유지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예를 들어 소프트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데 드는 노동시간을 정해 버린다면 이 시간 내에 이를 완수하지 못한 노동자는 그 시간동안 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거나 인사상, 임금상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재량적 근로시간제는 자유 전문직 노동자들에게 성과중심의 노동을 강제하는 수단이다.

간주근로제란 ‘근로시간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업장 밖에서 근로하여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소정 근로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보고 ‘소정 근로시간을 초과한 경우에도 통상 필요한 시간을 근무한 것’으로는 보는데 ‘노사합의가 있을 경우에는 합의에서 정한 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보는 제도이다. 주로 외근형태로 근무하는 영업직 노동자와 판매직 노동자들에게 적용될 이 제도 역시 재량적 근로시간제와 마찬가지로 노동시간 인정 기준을 성과위주로 할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새로운 노동시간제도는 노동시간의 의미를 ‘일한 시간’이 아닌 ‘일한 성과’로 바꾸어 놓았다. 결국 변형근로시간제는 ‘능력주의 임금체계’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자본의 일관된 전략 중의 하나인 것이다.

수당은 없어지고

변형근로시간제는 임금의 실질적 감소를 낳는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분석한 바있다. 한때 민주노총이 ‘변형근로의 도입으로 인한 임금감소 효과는 없다‘는 내용을 발표하여 노-자 모두 깜짝 놀라게 하였지만 그것은 변형근로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오류이다. 주 40시간 노동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어도 주당 48시간 한도의 2주 단위 변형근로는 13%의 임금감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한 결과는 이미 발표되었다.박하순, 변형근로시간제의 문제점,『현장에서 미래를』96년 12월호

그렇다면 이런 임금감소 효과는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두말할 필요없이 변형근로는 지금까지 노동자 임금의 상당한 보전방법이었던 ‘시간외 수당’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근로형태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정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고비용 구조의 해소’를 위해 각종 수당 지급액을 크게 줄이는 방향으로 노동법을 개정하였다. 연․월차휴가를 적립하여 유급급여로 지급받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리임에도 이를 불합리한 관행으로 몰아 연차휴가 상한제를 도입하였다. 또 연․월차 휴가를 자본이 필요하다면 특정한 시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하여 일이 없는 시기에 연․월차휴가를 줄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근로기준법 제48조)도 마련하였다.
퇴직금제도도 손질하여 중간정산제를 도입함과 동시에 연금으로도 지급이 가능(근로기준법 제28조)케 하여 자본이 한번에 부담해야 하는 퇴직금의 액수를 크게 줄였다. 이는 곧 노동자가 받을 수 있는 퇴직금의 총액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자본의 유책사유로 인한 휴업시에는 평균임금의 70% 이상을 휴업수당으로 지급하게 되어 있던 것에서 이 지급액이 통상임금을 상회할 경우 통상임금으로 지급하게 하는 개악(근로기준법 제38조)을 단행하였다. 야당은 노개위 공익안 수준에서 재개정을 하겠다지만 이와 관련한 공익안이라는 것 역시 지불액수의 축소라는 방향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다.

이처럼 각종 수당을 줄이는 자본의 의도는 지난 2월 5일 발표된 경총의 임금조정 기본방향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날 발표된 임금조정 기본방향은 ▲고용안정을 전제로 한 임금조정 ▲상여금, 수당, 복지후생비 신설 및 확대 억제 ▲능력주의 임금관리 ▲인력관리 혁신을 통한 인건비 절감 ▲경비절감과 건전소비문화 정착으로 요약할 수 있다. 수당을 줄이고 수당체계를 간소하게 하면 현 임금체계에서 임금총액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이를 계기로 노동자들에게 능력주의 임금체계를 강제하겠다는 것이 바로 자본의 전략이다.
야당은 단일 안에서 2주 단위의 48시간 변형근로만을 인정하겠다고 했을 뿐 나머지 3개의 근로시간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부여당은 개정법을 고수하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자본의 기본적인 의도와 전략은 여전히 보호되고 있는 중이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조직이어야

지금까지 이번 법개정에는 노동력의 유연한 사용과 각종 수당의 축소, 임금체계의 변화라는 자본의 전략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를 분할하고 경쟁과 갈등을 조장하게 되리라는 점 역시 살펴보았다. 따라서 개정 노동법이 적용된다면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고 그 활동을 제한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개정 노동법에서 노동조합의 활동을 제약하고 무력화하는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조합 민주주의의 요소와 형식들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다수자의 의지가 관철되는 법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며 조합민주주의는 당연히 조합원 대중의 의사가 관철되는 경로와 방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 개정 노동법에서는 노동조합의 지도와 책임을 명확히 한다는 논리로 비공인파업을 금지(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 제37조 제2항)하여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파업과 투쟁을 완전히 봉쇄해 버렸다. 그리고 비합리적인 관행을 개선한다는 미명으로 단체교섭의 교섭권과 체결권을 노동조합 대표에게 일원화(노동조합법 제29조 제1항)하였다. 이 조항은 조합원 대중이 직접 그 의사를 결정함으로써 조합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그간의 민주노조 운동의 성과를 그 뿌리에서부터 부정하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이 노개위에 불참한 틈을 타 이 조항에 합의하는 기회주의적 작태를 드러냈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노동조합의 활동에 조합원 대중의 의지가 관철될 수 있는 여지가 적으면 적을수록 유리하다. 노동조합 간부들에 대한 당근과 채찍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을 뿐아니라 조합활동에 대해 대중들이 무관심하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활동과 대중들을 이반시키는데 성공한다면 노동조합은 자본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다.

둘째, 단위 사업장 노동조합의 역할을 상당부분 축소시키고 있다.
노동자의 과반수로 조직되어 있지 않은 노동조합에 대해 노동자의 대표성마저도 부정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정리해고의 실시와 관련하여 사업장내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 대표와 협의(근로기준법 제27조 3)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근로기준법상의 각 조항에서도 노동자와 협의하여 시행하여야 하는 경우 노동조합이라 명시하지 않고 ‘근로자대표’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한편 노사협의회의 구성과 관련해서도 노동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자위원을 따로 선출(근로자 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이하 근로자참여법) 제6조 제2항)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근로자의 채용․배치 및 교육훈련에 관한 사항을 비롯한 14개 항목의 협의사항(근로자참여법 제20조)과 근로자의 교육훈련 및 능력개발 기본계획의 수립을 비롯한 합의사항(근로자참여법 제20조 2)을 다루는 노사협의회에 노동조합의 대표 혹은 그의 위임을 받은 사람이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자본과 정부가 이러한 개악을 시도한 것은 단위사업장에서 노사협의회와 노동조합을 대립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노동조합의 활동력을 거세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이렇게 사업장 내(정규직이 아닌 점에 유의!) 노동자의 과반수 이상을 조직한 노동조합에게만 실질적인 권한을 주게 된다면 복수노조의 허용 역시 하나마나 한 생색내기가 될 공산이 크다. 과반수 이하의 조직율을 가진 노동조합의 교섭권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개정 노동법 체계에서 현재 자본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섭체계 일원화가 덧붙여진다면 복수노조 허용은 어떤 의미도 없어진다.

그리고 노조전임자의 임금 지급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로 명문화(노동조합법 제81조 4호)하여 도저히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 비록 그 시행을 2002년까지 유예하고 있긴 하지만 이 시간 내에 단위 사업장 노동조합의 사정이 달라질 어떤 근거도 없는 실정이다. 임금에서 노동조합비를 일괄공제하는 체크오프제도를 관행으로 인정하고 조합비의 상한선 규정을 삭제하였지만 앞 장에서 살펴본 여러 제도의 시행으로 임금의 축소가 불가피한 노동자들에게 조합비를 더 걷어서 노조의 재정자립도를 높이라고 하는 것은 노조전임자를 없애라는 이야기보다 못한 충고이다. 단위 노동조합은 전임자의 존립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져야 할 상황이 닥치고 있다.

셋째,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이며 노동조합의 존재조건인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제약하고 있다.
이번 노동법 개정과정에서 정부와 자본은 ‘연합단체의 정의’를 유지시켰다.
노동조합법 제10조②제1항의 규정에 의한 연합단체인 노동조합은 동종산업의 단위노동조합을 구성원으로 하는 산업별 연합단체와 산업별 연합단체 또는 전국규모의 산업별 단위노동조합을 구성원으로 하는 총연합단체를 말한다.
노개위에서는 이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는데 정부와 자본은 이를 무시하였다. 이 조항은 노동조합의 연합단체로 ‘산업별 연합조직’만을 인정하는 것으로 노동조합들 간의 자유로운 조직결성을 봉쇄하고 있다. 개정 법에 따르면 현총련은 연합단체가 될 수 없고 자동차연맹은 ‘산업’에 대한 해석여부에 따라 그 인정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게다가 조정전치주의(노동조합법 제45조)를 도입하여 의무조정기간을 일반은 15일, 공익은 20일로 하여 기존의 냉각기간을 5일 더 연장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리고 노개위 합의과정에서는 공익사업범위(노동조합법 제71조 제2항)에서 빼기로 했던 은행사업을 그대로 두었다. 또 재작년 12월2일 날치기 통과된 한국조폐공사법강재규, 파렴치한 정부와 신한국당을 규탄한다, 『현장에서 미래를』96년 1월호
에 의해 공익사업으로 규정되어 온 조폐사업을 노동조합법상의 공익사업으로 추가하였다.

그리고 공익사업의 쟁의시에는 특별조정위원회가 조정을 하도록 명시하였다.(노동조합법 제72조) 개정 노동법은 필수공익사업을 따로 규정하고 있는데 ‘도시철도, 철도, 시내버스 운송사업, 수도, 전기, 가스, 석유정제·공급사업, 의료사업, 은행사업, 통신사업’(노동조합법 제71조 제2항)이 포함된다. 이 필수공익사업에서 벌어지는 쟁의행위는 특별조정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중재에 회부(노동조합법 제74조)할 수 있어서 기존 노동법의 직권중재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중재는 조정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해야 하며 중재에 회부되면 15일간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이와 동시에 긴급조정제도를 강화(노동조합법 제76조)하여 긴급조정이후 30일간 쟁의행위를 금지토록 하고 있다. 이런 절차를 모두 밟게 되면 필수공익사업장의 경우 65일 정도 쟁의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이는 쟁의행위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쟁의행위를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이 조항은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 또는 그 규모가 크거나 그 성질이 특별(노동조합법 제72조)’할 수밖에 없는 대기업과 공공기업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업과 공공사업장의 단체행동권은 자본과 정부의 상황인식에 따라 언제든지 제한될 수 있게된 것이다.

단체행동을 제한하는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쟁의행위에 돌입했을 때 참가하지 않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파업에 참가를 설득하고 촉구하는 행위를 제한(피케팅의 제한 (노동조합법 제38조 제1항))하고 있는가 하면 쟁의행위의 장소를 제한하여 사업장 내 시설의 점거를 불법화하고 보안작업의 쟁의행위 참가를 금지시켰다.(노동조합법 제42조) 이것은 쟁의행위시 대체근로허용과 맞물려 쟁의행위와 상관없이 생산활동은 계속되도록 하여 파업이 자본에 대한 대응수단으로서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게 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쟁의기간 중의 임금지급을 요구하는 쟁의행위를 금지(노동조합법 제44조)시켜 임금으로 먹고사는 노동자들이 파업 자체를 기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다시 한번 전진을 기대하며

자본은 노동에 대한 지배를 결코 포기하거나 중단하지 않는다. 이번 노동법 개정은 산업구조 조정과 맞물린 자본의 유연화 전략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고, 이것이 여-야의 재개정 논의로 국민적 합의인 것처럼 치장되고 있다.
때문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은 정부와 자본에게서 노동법 재논의를 얻어낸 것으로 득의의 미소를 지을 수는 없다. 민주노총은 2월 22일 ‘민주적 노동법 개정을 위한 10대 핵심요구’를 내걸고 이를 수용한다면 ‘복수노조 허용을 포기’할 수 있다고 정부와 자본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렇지만 날치기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사라지고 부분적인 양보가 엄청난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될 상황에서 다시한번 투쟁동력을 조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보다 세부적이고 치밀하게 97년의 투쟁을 준비하고 계획하여 자본의 공세를 무력화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노동자 대중들은 노동법 재개정 문제를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이미 인식하고 있고 총파업 투쟁을 통해 그 의지도 충분히 보여주었다. 민주노총은 대중의 정서를 충분히 반영하여 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지도부로서 자신에 찬 투쟁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총파업의 성과를 잇는 투쟁으로 ‘조직강화와 노동자 대중의 지지’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야 한다.
투쟁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1997-03-01 00:00:00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