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총파업투쟁과 97년 노동운동의 과제본 발제문은 2월 28일
연구소 총회토론회를 위한 발제 초안이고 토론회이후
수정․보완하여 자료집으로 재발간할 예정이다.
총회 토론회 준비팀
4단계 총파업투쟁을 앞두고
2월 25일 민주노총 제3차 중앙위원회에서는 “전교조 합법화,
정리해고제 철회,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반대 등 민주적 노동법
개정과 ‘한보사태’로 드러난 부정부패 척결 및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 타파, 그리고 단위노조 탄압 중지 요구 실현”을 위해
2월 28일부터 4단계 전면 총파업에 돌입할 것을 결정하였다.
지난해 12월 26일 ‘노동악법․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에
항의해 ‘완전무효화’를 요구하며 총파업투쟁에 돌입한
때로부터 두 달만에, 1월 21일 여야 영수회담 이후 국회
내에서의 재개정 논의를 지켜보겠다며 한 발 후퇴한 이후 한
달만에 민주노총은 다시 ‘4단계 전면 총파업투쟁’을
결의하였다.
투쟁의 수위와 관련해서 민주노총은 “전면 파업을 기본으로
하고, 여야 협상 등 상황을 고려하여 세부 방침은 27일 오후에
기자회견으로 발표”한다고 단서를 달고 있지만, ‘야당
단일안’ 자체도 수용할 수 없는 민주노총이 여야협상에서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의 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2월
28일 여야간 협상 시한을 앞두고, 신한국당은 26일 당정회의에서
“무노동무임금 원칙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야당이
받아들일 경우 정리해고제를 근기법에서 삭제하고, 복수노조는
상급단체에 한해서 허용할 수 있다”는 조건부 수용안을
제시했고, 이에 보수야당은 “상당한 전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전경련은 2월 26일 30대 그룹 기조실장회의에서 “야당이
마련한 노동법 개정안은 경제의 위기 상황을 도외시하고
국가경쟁력 강화를 저해하는 내용이어서 재계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 복수노조 허용은 시기 상조이며,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무노동 무임금원칙은 꼭 지켜져야 하고, 정리해고제와
변형근로시간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여야협상과정에서
막바지 압력을 가하고 있다.
적어도 민주노총 지도부가 ‘날치기 노동법의 원천 무효화’
“지금 이 시점에서도 노조 활동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규정,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는 규정과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교환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민주노총은 합법화보다 노조의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조항의 반대에 더 중요성을 갖고 있다. ---
민주노총의 입장은 날치기 노동법의 원천 무효화임을 거듭
밝힌다.”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공청회’에서, 1997. 2. 20.)
와 ‘민주적 노동법 개정을 위한 10대 핵심 요구’ 민주노총은
2월 21일 ‘97년도 노동법개정투쟁본부 제2차 대표자회의’에서
“대량실업 초래하는 정리해고제 반대, 장시간 노동․임금
삭감 가져오는 변형근로시간제 반대, 참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교원의 노동기본권 인정(전교조 합법화), 쟁의 기간 임금지급
금지 삭제 및 노조 전임자 임금 금지 입법화 반대, 직권 중재
필수 서비스 한정,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 인정, 제3자개입금지
삭제, 쟁의기간 중 대체근로 금지, 보안작업․사업장내
쟁의행위 금지 삭제 등 민주노총의 10대 핵심 요구를 일괄
수용한다면,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보장하는 ‘복수노조 허용’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결정한 바 있다.
를 계속 견지해 나가려고 한다면.
국회 내 여야간 협상시한을 며칠 앞 둔 시점에서 민주노총이
‘4단계 전면 총파업투쟁’을 결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여야협상에 대한 막바지 ‘압력’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2월 계급 정세’의 현실적 귀결이다. 민주노총은
12월 26일 총파업 이후, 1달여간 파업투쟁을 전개할 때에만
‘정치적으로’ 독립적일 수 있었을 뿐, 국회 내에서의 논의가
이루어지면서는 자신의 입장을 보수야당을 통해 관철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1. 17. 투쟁방침의 전환과 1. 21. 여야 영수회담 이후
노동법․안기부법 개정 논의의 주도권이 ‘국회’로 넘어
가자마자 ‘한보부도사태’ “한보부도사태는 정경유착,
관료부패, 금융비리, 재벌의 횡포 등 현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모순의 발로”(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회, 「한보
비리사건 수사 결과에 대한 공개 서한」, 1997.
2.21.)이고, 김영삼 정권의 ‘문민개혁’의 허구성와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준 사례이지만, 부도 시기를 1월로 택한 것은
현 정권이 준비한 것이었다.
를 둘러 싼 여야간 이전투구(泥田鬪狗)와 북한의 황장엽 비서
망명사건이 부르조아 언론을 휩쓸었다. 그러나 전후 최대의
부도사태인 한보부도가 총파업투쟁 국면을 덮어버리고, 다시
북풍(北風)이 한보바람을 뒤덮고 있는 동안, 그리하여
한풍(韓風)과 북풍(北風)이 ‘정치적으로’ 쟁점화되어 국민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는 동안, 생산 현장에서는 자본에 의한
‘정치적 공세’가 이루어졌다. 무노동 무임금의 적용, 손해배상
청구소송, 무단결근 처리, 고소고발, 징계 조치 등 단위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겨냥한 자본의 공세가 그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의 정치적 승리를 민주노총의 조직적 기반을
와해시키고 현장을 장악함으로써 무력화시키겠다”는 자본의
공세로, 1월 총파업투쟁 국면에서의 ‘불완전한 승리’의
결과였다. “민주노총․한국노총 지도부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동시에 현장의 대중투쟁동력과
조직력을 파괴하고 무력화시키려는 자본의 공세 - 무노동무임금,
손해배상청구, 고소․고발, 노조탈퇴 강요, 징계 등 -를
총노동 차원에서 저지해 내야 한다. 이러한 공세는 1월
총파업투쟁의 ‘불완전한 성과’마져 노동자대중투쟁의 성과로
가져 갈 수 없게 하려는 자본의 ‘정치적 공세’이다. 이 정치적
공세의 초점은 민주노총 지도부와 노동자대중을 분리하고,
노동자대중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켜 내려는데 있다.” (박성인,
「현 시기 ‘파괴와 건설’의 새로운 정치를
위하여」, ꡔ현장에서 미래를ꡕ1997. 2.,
58쪽,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불완전한 승리인만큼 다시 한 번 ‘힘의 격돌’은 불가피한
것이다.
이제 국회 내에서의 ‘여야간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고,
민주노총은 다시 ‘정치총파업’이라는 무기를 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나 4단계 총파업을 둘러 싼 정세는 12월
26일 정세와는 다르다. 정치적 쟁점이 노동법만이 아니라 한풍과
북풍과도 복잡하게 얽혀 있고, 여야 협상이라는 형식을 거치면서
‘날치기’에 대한 도덕적 분노의 거품도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개별 사업장에서의 자본의 탄압으로 대중투쟁동력과 조직력이
어느 정도 복원될 지 아직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세를 반영하여 민주노총은 4단계 투쟁 목표를 “전교조
합법화, 정리해고제 철회,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반대 등 민주적
노동법 개정과 ‘한보사태’로 드러난 부정부패 척결 및 재벌
위주의 경제구조 타파, 그리고 단위노조 탄압 중지 요구
실현”으로 잡고 있다. ‘노동악법의 완전 무효화와 민주적
재개정’이라는 과제만이 아니라 한보부도사태를 둘러 싼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 북풍에 따른 안보공세, 그리고
개별자본의 탄압에 대한 대응까지를 포함하여,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 구조 전체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즉 4단계 총파업투쟁은 총파업투쟁 동력 그 자체를 조직적으로
복원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정치적 방향’을 어떻게 잡아
나갈 것인가 하는 점도 총파업투쟁의 중요한 전제로 되고 있다.
이는 지난 12월 26일의 총파업 돌입 때와는 달리, 민주노총의
‘정치적 지도력’과 ‘조직력’만큼만 총파업투쟁 동력이 될
것임을 뜻하고, 따라서 4단계 총파업투쟁은 1~3단계
총파업투쟁의 성과까지 포괄하여, 투쟁의 정치적, 조직적 성과를
온전하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느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투쟁이 될 것이다.
권영길 위원장은 “민주노총은 3단계 파업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 강도로 파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ꡔ말ꡕ지, 1997년 3월호, 29쪽
고 피력한 바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분명 지난 총파업투쟁의
소중한 성과다. 그러나 동시에 “마무리를 함께할 수 있는
투쟁으로 전술이 구사되어야 한다. 이 투쟁으로 인한 탄압에
대해서도 개별적으로 대응하게 해서는 안된다. 총파업투쟁은
총파업투쟁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단위 노조의 임투의
형식으로 단사 내로 들어가면 안된다. 그렇게 될 때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것이다”는 현장 조합원들의 우려 또한
존재한다. 따라서 4단계 총파업투쟁의 성패 여부는 1~3단계까지
투쟁의 성과와 지신감을 어떻게 극대화시켜 내고, 동시에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
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역사적 의의와 성격
이번 총파업투쟁이 어떠한 식으로 결말이 날 지 아직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난 1월의 총파업투쟁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역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총파업투쟁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전국적인 정치적 총파업투쟁이라는 데에 그 역사적인
의의가 있다. “이번 총파업투쟁은 한국 노동운동사상 몇 안되는
총파업의 하나이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 사실상 처음있는
일이며, 법률 개악에 반대하는 정치투쟁의 형태를 띄었다. 또한
특정 지역이나 특정 산업의 범위를 뛰어 넘은 전산업, 전국
차원의 대규모 파업이었고, 광범한 대중의 투쟁 의지를 바탕으로
한 조직적이고도 계획적인 성격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이번
총파업은 완강한 기세로 진행되었으며, 비교적 장지걱이면서
공세적인 형세를 보여주었다. 한편 각계 각층의 넓은 지지와
국제적 연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총파업은 노동법
재개정과 파업지도부 구속 철회를 이끌어 냄으로써 일단은
승리의 고지를 차지했다고 평가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파업은 정치적․대중적 총파업으로 규정될 수 있다.”
(김금수, 「정치적․대중적 총파업투쟁과
노동운동의 전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1997. 2.4.)
“이 총파업투쟁은 전후 노동운동사에 있어 사실상 최초의
전국적 총파업투쟁이다. 그리고 이번 총파업은 법제도의 개선 혹
은 개악 저지라고 하는 쟁점에서 촉발되었지만 정치적 총파업의
성격을 분명히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획기적인 것이다.”
(임영일, 「총파업투쟁과 민주노조운동의 과제」,
ꡔ노동법․안기부법 개악 무효화를 위한
시국토론회ꡕ자료집 54쪽, 1997. 1.20.)
전후 45년간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극도의 제도적,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탄압 속에서 그 계급적․정치적
성장이 억압되어 왔다. 그러나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자생적 투쟁 동력을 회복한
노동자계급이 마침내 10년만에 ‘정치적 총파업투쟁’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을 ‘정치적 주체’로 우뚝 세워낸 것이다.
둘째, ‘노동악법 완전무효화’라는 정치적 요구를 중심으로
전노동자게급의 이해와 개인별, 지역별, 업종별, 산업별 이해를
일치시킴으로써,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기업별 노조체계 아래서의 임금과 노동조건, 복지수준,
노동과정의 차이, 그리고 민주노조운동의 역량과 역사적 경험의
차이 등 임금노동자 내부의 다양한 차이를 뛰어넘어 투쟁 속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우뚝 선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산별노조
건설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에서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노동자의 ‘인간 선언’이었다면, 96년
12월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노동자는 하나의 계급이라는
‘정치선언’인 것이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역사적 총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조건」,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특별호, 29쪽, 1997. 1.
15.
세째, 이번 총파업투쟁을 통해 한국 사회는 이제 청년 학생이나
소부르조아세력이 사회운동을 주도하던 시대로부터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을 주도하는 시대로 전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중심에 노동자계급이 있으며, 그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선두에 민주노총이 있다는 점을 이번
총파업투쟁은 현실의 힘으로서 보여주었다.
“이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은 일거에 1천2백만 한국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한국 노조운동의 명실상부한
전국적 구심체로서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으며, 노동자계급이
우리 사회의 민주와 진보를 명실상부하게 주도하는 사회적
힘으로 급격히 부상하게 되었다.” 김세균,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자 총파업투쟁」,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1997. 2월호, 46쪽,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네째, 이번 노동자 총파업투쟁이 전세계 노동운동의 발전에
새로운 기폭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의 언론이
한국의 노동자 총파업투쟁을 앞다투어 보도하고, 국제
노동단체들만이 아니라 각국의 노동자들이 ‘노동법 개악안의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고 한국의 총파업투쟁을
지지․지원했다. 최근 수십년 이래 이번만큼 노동운동의
국제적 연대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이야기될 정도로
한국노동자계급의 총파업투쟁은 전세계 노동운동의 국제적
연대의 활성화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해 준 것이다.
“전세계 노동자들이 한국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의 추이와
결과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단지 ‘날치기 통과’에 대한
도덕적인 분노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노동자들의 총파업투쟁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나라에서 자본의 신보수주의적 공세에
대항하는 투쟁이라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보수주의
공세에 고통받고 있는 각국의 노동자계급 역시 이 투쟁을 자신의
문제로 자각하고 있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역사적 총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조건」,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특별호, 34쪽, 1997. 1.
15.
물론 이러한 역사적인 의의를 갖는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우연의 산물’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산물임과 동시에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산물이다. ‘노동악법의 날치기 통과’가
한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반영한 지배세력의 정치적 공세
“독점자본의 초과 착취를 보장하기 위해서 노동자계급에게
고용불안과 장시간․저임금 노동을 강요할 수 있게 하고,
그에 수반하는 대중적 저항에는 국가가 파쇼적 억압장치를
강화함으로써 대응하려는 것이 이번의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의
개정 목표이다.”(채만수, 「‘96/’97 총파업 - 해방을
향한 대장정의 시작」, 5쪽, 1997. 2.)
였다면,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지난 10여년간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한 투쟁의 성과 “우리나라 민주노조의 성격은 건설의
시작에서부터 정부와 자본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조직이며 산별조직의 건설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총자본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서 제도외적 노조연합조직 -
전노협, 전노대, 민주노총 -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의 건설은 총자본에 대한 총노동의 대응력 - 거의
전업종을 포괄하고 있는 -을 조직할 수 있는 유리한 조직체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산업, 전업종의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투쟁을 조직하게 된 거이다.” (마창민주노동자협의회,
「총파업투쟁을 복구하라!, 14쪽, 1997. 1. 30.)
인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진영은 87년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악법 철폐투쟁을 전개해 왔고, 노동악법의 철폐는
민주노조운동의 존립 조건 그 자체이기도 했다. 작년 4월
‘신노사관계 구상’ 발표 이후, 민주노총의 초기 동요로
‘노동법 개정’의 주객이 전도되는 혼란 “지난 87년 이후
노동법 개정투쟁의 주체는 민주노조운동진영이었고, 노자관계의
민주화는 노동자투쟁의 성과만큼만 진전되었다. 그러나 4월 24일
‘신노사관계 구상’이 발표된 이후 노동법 개정의 주체와
대상은 뒤바뀌어버렸다. 투쟁의 주체였던 민주노총은 부분적
개정과 개악의 수용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고, 개혁의
대상이었던 정부는 오히려 개혁의 주체가 되어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남구현, 박성인, 「하반기
노동법개정투쟁의 방향」,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1997. 9/10월호, 37쪽,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을 겪기도 했지만, 이번 총파업투쟁을 통해 ‘노동법 개정’의
진정한 주체가 바로 노동자계급임을 현실의 힘으로 입증해
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갖는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그 기본 성격,
즉 주체와 운동의 목표 그리고 투쟁의 형태에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반민주적․반노동자적 신보수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총파업투쟁은 실질적
민주주의(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계급내적으로 결합시킨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투쟁으로서 기존의 무계급적 민주주의투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예를 들어 87년 6월항쟁과정에서 소위
‘넥타이부대’라고 일컬어지는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의 경우
하나의 ‘시민’으로 민주주의투쟁에 참여했지만, 이번
총파업투쟁 과정에서는 노동자계급의 일부로 민주주의투쟁에
조직적으로 나선 것이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을 주축으로 하면서 노동자-민중연대투쟁 및
범국민적 연대투쟁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 시기의 투쟁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중심축으로 삼으면서 정치적
민주주를 위한 투쟁을 결합시키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투쟁이라는 기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투쟁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그 반민주성과
반민중성을 한층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지배세력의 반동적인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저항이며, 궁극적으로 그러한 공세의
최종적인 집행자로서 ‘반민주적 신자유주의 정권’으로
기능하고 있는 현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김세균,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자
총파업투쟁」,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1997.
2., 47쪽,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또한 투쟁의 형태면에서도 총파업투쟁이 중심이 되어 가두
집회와 시위를 결합하고, 가두 집회와 시위 역시 노동자계급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87년 6월민중항쟁이나
87년 7~9월 노동자대투쟁보다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총파업투쟁과 가두투쟁은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해로부터 출발하고 있고, 그 계급적인 이해와 대립이
‘정치적’인 문제로 드러나고 있으며,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총파업투쟁이 타계급을 견인, 추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생,
지식인 중심으로 ‘호헌 철폐, 직선제 쟁취’를 요구하던 반독재
민주화투쟁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총파업투쟁은 87년 노동자대투쟁보다 훨씬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이 비록 그
규모면에서는 엄청났지만, 요구가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 노조
결성의 자유보장이라는 경제적인 요구를 중심으로 개별 기업에
대한 투쟁이라는 성격을 가졌고, 투쟁의 결과는 ‘기업별
민주노조’의 건설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총파업투쟁은
‘노동법 개악 전면 무효화’라는 정치적 요구를 중심으로,
총자본의 대행자인 정권을 대상으로, 그리고 민주노총이라는
전국적인 투쟁 지도부를 중심으로 투쟁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역사적 총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조건」, 32쪽,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특별호, 1997. 2. 15.
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87년 6월 민중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을 노동자계급의 주도하에 결합시키고 있다. 그러나
반독재 민주화투쟁이 ‘6.29’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수용(‘직선제’ 수용)과 그 정치적 성과를 가로챈 소위
‘문민정부’의 출현으로 역사적이고 계급적인 한계에
봉착했다면, 97년 노동자대투쟁은 그 한계를 뛰어 넘어 자본의
신보수주의적 공세에 대항하는 새로운 계급적 주체로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번의 총파업투쟁은 지난
10여년간 투쟁의 성과일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새로운 계급적 주체가 출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치
선언’이다.
노동자 총파업투쟁, 성과와 한계
아직 ‘노동법 개정’을 둘러 싼 노동자 총파업투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총파업투쟁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성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단계 총파업투쟁의 승패는 곧
이번 총파업투쟁 전체의 승패를 가름할 것이라는 점에서,
3단계까지 총파업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점검하는 것은
‘현실적인’ 의의를 갖는다. 4단계 총파업투쟁은 지금까지의
축적된 성과 위에서 그 성과를 극대화시켜 나가고, 동시에
한계를 최소화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4단계 총파업투쟁은 이 성과와 한계를 자각한만큼, 그 성과를
조직하고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조직적 준비를 한만큼 진전될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성과’의 측면을 살펴보자. 민주노총 기획국은 이번
총파업투쟁에 대한 중간평가를 통해 ‘의의’와 ‘성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총파업투쟁 중간 평가와
4단계 총파업투쟁 방침」, 1997. 1. 29.)
“1) 민주노총이 주도한 건국 이후 최초, 최대 규모의 정치
총파업이었다.
2)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기본권,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정치투쟁이었다.
3) 노동자의 총파업투쟁이 범국민적 투쟁을 선도하고 투쟁의
확산을 가져왔다.
4) 자본의 세계화, 신보수주의 공세에 맞선 투쟁으로 세계
노동자의 연대와 지지투쟁을 가져왔다.
5) 정부와 자본의 탄압을 막아내고, 범개정, 구속 철회 등
정권의 후퇴를 이끌어 냈다.
6) 민주노총의 조직력을 확대․강화하고 산별 노조
건설의 토대를 구축했다.
7) 민주노총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이 강화되었다.
8) 조합원의 정치의식을 강화하고 민주주의 투사로서
노동자를 각인시킴으로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토대를 만들었다.
9) 유연하면서도 완강한 투쟁 전술로 승리로 이끌고, 다양한
투쟁 형태의 개발과 전술에 있어서 풍부한 경험과 교훈을
남겼다.“
첫째, 이번 총파업투쟁의 가장 중요한 성과는 자본의 ‘유연화
공세’와 정권의 ‘신보수주의 공세’에 대한 노동자계급대중의
투쟁 동력이 살아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3단계에 걸친
파업기간 동안 528개 노조 40만 3,179명이 한번 이상 파업에
참가했으며, 하루 평균 168개 노조 18만 9,119명이 파업참가
했다. 파업참가 누적규모로 3,206개 노조 359만명이 파업에
참가했고, 집회 참여 연인원만 110만 명인데, 이처럼 완강하고
장기적인 투쟁은 바로 노동자계급대중의 투쟁동력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이는 이번 노동법 개악저지투쟁이 자신의 이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정한 정세적
조건과 조직적 지도 아래서 노동자계급대중은 언제든지 투쟁에
나설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야말로 이번
파업투쟁의 최대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성과를 어떻게
노동자계급대중 자신의 성과로 가져가게 할 것인가가 4단계
총파업의 1차적인 과제로 될 것이다.
둘째, 투쟁을 통한 노동자의 민주적․계급적 단결이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총파업투쟁 과정을 통해 민주노총의
조직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광범위한 미조직
노동자대중을 자극하고 용기를 주어 노동조합을 통한 단결의
유지의 필요성을 일반화시켰고, 투쟁의 전과정에서 한국노총을
압도하고 견인함으로써 노동조합운동의 민주적 재편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는 50만 조직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의 투쟁이
1,200만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 것으로, 이후 민주적 산별노조
건설의 주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미가맹 조직들이 민주노총
가입을 결정하거나 추진하고 있고, 한국노총에 대해 투쟁력과
조직력이 민주노총에 있음을 검증했다. 나아가 민주노총의 지도
집행력이 강화되고 조직적 결속도도 강화되었다. 민주노총의
방침이 각 산업별 차원에서 구체화되고 단일한 방침에 따라
실천하는 경험, 동일한 시기에 파업대오가 집중하고 투쟁하는
경험은 임단투의 경험을 뛰어 넘는 것이며, 산별 단일노조
건설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민주노총 기획국, 「총파업투쟁 중간 평가와 4단계
총파업투쟁 방침」, 1997. 1. 29.)
세째, 노동자계급대중의 정치적․계급적 자각이다. 정치적
총파업투쟁의 강고함과 확산은 일상적인 시기에 ‘시민’이라는
허위의식에 잠겨 있던 대다수 ‘봉급 생활자’(임금노동자)의
의식을 뒤흔들어 ‘노동자계급’의 일원임을 자각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투쟁 그 자체를 통해 김영삼 정권의 반노동자성을
드러내고, 보수 야당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폭로함으로써,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네째, 민주노총의 사회적․정치적 위상의 강화를 들 수
있다. 민주노총에 대한 호감도, 총파업 지지도, 민주노총의
영향력, 민주노총에 대한 기대는 총파업 이전과 비교하여
비약적으로 증대했다. 자본의 신보수주의적 공세에 대항하는
민주주의투쟁에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이 가장
강력한 투쟁 주체이며, 또한 그 투쟁의 강고함을 통해
민주주의투쟁 전선에서 광범위한 민중을 자신의 주변으로
결집시켜 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민주노총은 ‘합법성’을 뛰어 넘는 ‘시민권’을 획득했으며,
나아가 ‘총파업’ 자체의 ‘시민권’도 쟁취해 냈다.
다섯째, 노동악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로 처리하여, 97년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김영삼 정권의 대선 전략에
파열구를 내고, ‘노동악법․안기부법의 국회 내
재논의’와 ‘파업지도부 사법처리 유보’라는 부분적인 양보를
쟁취해 냈다는 점이다. 이는 자본의 미래를 반동적이고
유혈적으로 개척해 나가려는 ‘한국판 신보수주의 공세’를
부분적으로 저지해 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후 자본의 유연화
공세를 둘러 싼 노자간 대립에서 노동자계급이 일방적으로
밀리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여섯째, 노동운동의 국제적 연대의 활성화이다. 한국
노동자계급의 총파업투쟁의 규모와 그 강고함은 80년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자본의 유연화 공세와 정권의
신보수주의 공세에 대한 투쟁의 전형을 창출하면서, 세계 각국의
노동자계급에게 신보수주의 공세에 대한 ‘투쟁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총파업투쟁은 노동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활성화시켜 국제 노동운동 발전의 새로운 새로운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이번 총파업투쟁 과정에서 각 국의
노동단체나 노동자들로부터 보내온 항의 및 지지 서한이
223통이고, 22개국에서 항의 시위를 했으며, ICFTU 등에서
국제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국제적 연대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이러한 성과를 이후 어떻게 조직해 나갈
것인가는 민주노총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진영 전체에 관건적인
‘정치적’ 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조직화가
‘단선적으로’ 또 ‘의도한만큼’ 그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정권과 자본은 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성과를
온전하게 노동자계급의 것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다양한 공세를
할 것이며, 총파업투쟁 과정에서 동요하던 보수야당이나
소부르조아 시민운동세력 역시 투쟁의 정치적 전리품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의 노동자 총파업 투쟁은 투쟁의 역사적 의의와 성과만큼,
노동자계급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에 있어서 많은
한계와 문제점 또한 드러내 보여 주었다. 또 그만큼 총파업투쟁
과정에서 논란의 쟁점이 되기도 했다 이 한계와 문제점을 분명히
자각하여 그 극복을 위한 의식적이고 조직적인 계획과 방침을
가지지 못할 때, 그 한계와 문제점은 지배세력과 소부르조아
세력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 될 것이다. 따라서 4단계
총파업투쟁을 앞두고, 이러한 한계와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확인하는 것은 이번 총파업투쟁의
승리를 위한 중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제기되어야 할 점은 파업 대오를 장기적으로
이끌 내용과 프로그램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민주노총의 결정만 기다릴 뿐 파업 프로그램과
내용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시간 때우기식으로 동원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두집회에서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형식적인 구호와 투쟁
보고만 수행할 뿐 노동자계급대중에게 지속적으로 계급의식을
불어 넣고 강력한 선동으로 노동자들의 투쟁 열기를 북돋아 주지
못했다. “파업 프로그램과 사업이 전체 조합원의 의식 강화에
기여하고 조직력을 강화하는 노동자 학교로서 전개되지 못했다.
이는 이번 총파업투쟁이 최초의 정치파업이고, 장기간 파업을
준비하지 못한 점 때문이다. 조합원의 정치의식을 강화하기 위한
대중토론, 정치 연설, 정치교육이 전체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기획국, ‘앞의 글’에서)
두번째로 제기되는 점은 이번 총파업투쟁의 ‘한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 대정권투쟁과 대자본투쟁을 분리시킨 점이다.
이 점은 특히 총파업투쟁을 주도적으로 수행한 주요 사업장에서
나타난 경향인데, “이 싸움은 정치권과의 싸움이지, 단사
자본과의 투쟁은 아니다. 노동자는 회사를 사랑하기 때문에
파업이 끝나고 나면 회사를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해 주겠다”는
입장으로 표현된 이러한 인식과 경향은 한편으로는 기업별
노동조합체계의 한계로부터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번 총파업투쟁의 성격에 대한 노동조합 지도부의
불철저한 인식으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논리는 총파업투쟁의 본질적 성격에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리어 총파업투쟁의 계급적 의의를
훼손하고 있다. 총파업투쟁은 자본의 끝도 없는 무한 경쟁과
생산성 향상에 대한 조합원의 분노와 노동법 개악으로 무한
생산경쟁에 대한 생존권의 위기감이 이 투쟁을 이끌었던 주요한
동력이었다. 현장에서의 노동강도 강화와 노동통제 강화에
숨막힐 듯한 고통이 노동법 개악과 연관되어 있지 않았다면
순수하게 그야말로 순수하게 정부와의 투쟁이었다면 단언컨데
그렇게 많은 노동자들이, 그렇게 폭발적으로 투쟁을 조직하지
못했을 것이다. --- 이러한 선언은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한치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창민주노동자협의회,
‘앞의 글’, 25쪽)
세번째로 이번 투쟁과정의 한계로 들 수 있는 것은 ‘국민적
편의’, ‘국가 경제’, ‘국민 여론’을 우선시한 전술
구사이다. ‘국민 여론’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고, 특정한
정세적 조건에서는 고려할 수도 있지만, ‘국민 여론’, 혹은
‘국민의 편의’라는 명분으로 투쟁의 수위를 낮추고,
총파업투쟁과 가두투쟁을 ‘합법적 기조’에 가두려고 한 것은
결국 투쟁의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자신의 발목을 묶어 두는 것이
된다. “민주노총의 투쟁 지침은 총파업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12/13 파업 유보 결정, 1/9 완급 조절이라는 명분
하에 부분파업으로 전환, 1.16. 지하철 등 공공부문의 국민
여론을 위한 파업 철회 결정은 어렵게 총파업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금속, 자동차연맹 등 투쟁하는 동지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수세적 전술은 현장 동력을 고려치 못한
상태에서 나온 전술이다. 수요 파업 지침은 현장 동지들에게는
전면 파업보다 더욱 수행하기 힘든 전술이었다.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 노선은 강조되었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게
계급적 관점을 널리 선전하는데에 소홀한 것은 총파업이라는
정치적 각성과 선전의 계기를 적극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전해투, 「민주노조 압살 음모분쇄와 4차 총파업승리를
위한 성명서」, 1997. 1.28.)
1월 중순, 3단계 파업투쟁을 앞두고 공공부문의 투쟁을 시한부
파업으로 제한하고, 1월 17일에 총파업투쟁 동력이 최고조에
이르고 국민적 지지가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던 시점에서
‘수요 파업으로 전환’한 것은 이러한 전술 구사의 한계와
오류를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전술적 차원에서
노동자대중이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국회에서의 논의와 사회 여론화에 관심을 가지고 유연한 전술을
고민하다 보니까, 항상 전술은 수세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주도적으로 우리의 정세를 만들어 나가는 투쟁 전술을 고민하지
않으면 투쟁의 성과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단위현장 노조
간부와의 인터뷰’에서, 1997. 2.)
네번째로는 보수야당에 대한 정치적 의존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물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치조직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나 1월 21일 여야 영수회담 이후
노동법 개정 논의의 주도권을 ‘국회’로 넘기고, 의회 밖에서
‘성명서’와 ‘집회’를 통해 보수 야당에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1. 17. 투쟁방침의 전환 때문이었다. 의회 내에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조직이 없는
조건에서, 노동자계급이 가질 수 있는 정치적 힘은
‘총파업투쟁’ 그 자체의 강고함이었다.
이번 총파업투쟁 과정에서 드러난 이러한 한계는 아직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이 이데올로기적으로는
‘국가경쟁력 강화론’, ‘생산성 향상론’ 등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조직적으로는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해와 정치적 입장을 철저하게 대변하는 정치조직의 부재는
결정적인 시기에 보수야당의 정치력에 의존하게 만들고 말았다.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에서 총파업투쟁이
보여주었던 이러한 한계는 물론 짧은 시간 내에 극복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자각하고 4단계 파업 과정에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다면 총파업투쟁의 성과는 한낱 물거품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97년 노동운동의 방향과 과제
97년 노동운동의 방향과 과제는 물론 4단계 총파업투쟁의 결과에
의해 일차적으로 조건지워진다는 점에서 4단계 총파업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은
국회 내에서의 여야 협상 결과와 무관하게 이번 투쟁의 최소
목표인 ‘노동악법․안기부법의 완전 무효화’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대중투쟁동력을 새롭게 조직해 나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싸움의 성과를 남겨 민주노조운동의 미래를
보는 것이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싸움의 성과는 조직적 성과와
법의 내용이라는 실질적 성과이다. --- 그 내용의 결과가
비슷하다면 귿이 조직적 성과를 까먹고 내부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할 국면 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없다. 전면 무효화의 기조
속에서 여야를, 자본가에 대한 공세를 계속해야 한다. 우리는
전면 무효화라는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이번 싸움이 분명히
국민의 요구에, 그리고 노동자의 요구에 바탕을 둔
정치투쟁이었음을 성과로 남겨야 한다.” 전문노련,
「재개정 논의에 대한 아주 간단한 검토」, 1997.
1. 29.
4단계 총파업투쟁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3단계 파업투쟁의
단순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세적인 조건
속에서의 투쟁이다. 북풍(北風)과 한풍(韓風)이 전선을
교란시키고, 국회 내에서의 협상은 ‘날치기 거품’을 거둬 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영삼 정권도 2월 25일 ‘대국민 담화’를
계기로 내부를 정비하고 노동자 총파업투쟁에 대비할 것이며,
자본의 ‘경제위기’ 공세와 현장에 대한 탄압은 더욱 거세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정세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4단계
총파업투쟁을 준비해 나갈 것인지가 97년 노동운동의 정세를
규정할 것이다.
먼저 4단계 총파업투쟁을 앞두고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번
총파업투쟁의 목표인 ‘노동악법․안기부법의 전면
무효화’ 요구를 계속 견지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노동법개정투쟁 국면에서 임단협 국면으로 투쟁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것은 오히려 임단투 그 자체의 동력도 제대로 조직해
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정치적 총파업투쟁’은 정치적
총파업투쟁으로 마무리되어야 한다. ‘정치파업’의 강고함만이
3월 이후 임단투의 동력을 조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은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4단계 총파업투쟁의 승패의 관건은 정치적 파업투쟁을
경제적 파업투쟁으로 전환시켜 내는데서가 아니라, 강고한
정치적 파업이 경제파업을 촉발시켜 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두번째로 확인해야 할 점은 4단계 파업투쟁과정에서는
‘의식적’이고 ‘조직적’으로 준비한 만큼만 투쟁의 동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날치기 거품’이 사라지고,
지배세력도 내부를 재정비하면서 총파업투쟁을 예측 가능한
선에서 통제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갈 것이다. 4단계
총파업투쟁을 준비하고 조직하는데 있어 가장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지점은 바로 ‘대정권투쟁과 대자본투쟁과의
분리’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의 극복은 기업별 노조체계 아래서
어떻게 ‘생산성 향상’ 이데올로기를 극복할 것인지, 그리고
총파업투쟁을 말그대로 생산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으로 조직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이번 투쟁이 정권과의 싸움이지만, 그
정권은 바로 지금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본의 유연화
공세를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정권이라는 점을
대중적으로 자각시켜 내고 개별 자본에 대한 투쟁과 정권에 대한
투쟁을 결합시켜 낼 수 있는만큼 4단계 총파업투쟁의 동력은
조직될 것이다.
세번째로 확인해야 할 점은 노동자계급은 4단계 총파업투쟁의
승리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조직적
독립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총파업투쟁의
승리와 노동자의 정치적․조직적 독립성의 견지는 분리할
수 없다.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계급대중을 단지 동원의
대상으로만, 지침을 내리면 움직이는 대상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노동자의 계급적․정치적 의식이 고양될 수 있는
정치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전술의 구사에 있어서도
국민 여론에 대한 일차적인 고려가 아니라 노동자계급 내부의
단결과 정치의식․계급의식의 고양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노동운동의 민주적․계급적
발전의 방향과 경로에 있어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가장 심대한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자양분을 ‘총자본의
신보수주의적 공세에 대응하는 새로운 계급적 주체’의 형성으로
조직해 낼 수 있는지의 여부가 97년 노동운동의 방향과 과제와
관련하여 가장 관건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제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것.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역사적 총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조건」,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특별호, 1997. 1. 15.)
이러한 ‘새로운 계급적 주체의 형성’을 위해 노동자계급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국가경쟁력 강화론과 생산성 향상
이데올로기를, 그리고 정치적으로 보수야당과
소부르조아세력에의 정치적 의존성을 극복해 내는 것이 일차적인
과제이다. 나아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선거를 통한
의회로의 진출’로 협소하게 규정하는 선거주의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부문운동으로 한정지우려는 무계급적 민중주의와 선을
긋는 것도 정치적 독립성을 획득하는데 중요하다.
조직적으로는 산별 노조 건설의 전망 속에서 산별연맹체계의
발전, 민주노총의 민주적 강화,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그리고
노동전선의 민주적 재편의 과제가 있으며, 동시에 노동법 개정
여부와 무관하게 지속될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현장 조직을 강화하는 것 역시 중요한 조직적 과제라 할 수
있다.
나아가 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주요한 성과의 하나인
노동운동의 국제적 연대도 ‘새로운 차원’에서 모색해 나가야
한다. 세계 노동자의 지원과 압력에 대한 요구만이 아니라
자본의 무한경쟁 시대에 대응하는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극복하면서, 국제노동기구만이 아니라 이러한 투쟁에
함께 할 수 있는 노동조합, 기층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강화해
나가는 것이 그것이다.
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문제가 바로
노자간의 계급 모순이며, 이 모순의 해결만이 우리 사회의
진보적인 발전을 가능케 할 것이라는 점을 현실로써 입증해
주었다. 또한 그러한 문제의 해결 주체로 노동자계급이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신보수주의적 공세에 대응할 가장 유력한
계급적 주체임을 이번 총파업투쟁은 또한 보여주었다. 자본의
신보수주의적 공세에 대항하여 “노동자계급이 운동의 중심적인
주체가 되는 가운데 노동자계급의 이익과 우리 사회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분노와 희망을 참답게
대변하면서 노동과 정치를 재결합시키고 대중의 직접
민주주의적인 정치적 실천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키는 가운데
이들의 사회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를 결합시키고 있는
새로운 형대의 민주주의투쟁” 김세균,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자 총파업투쟁」, 47쪽
인 이번의 총파업투쟁은 우리 사회의 미래가 결코 어둡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