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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타협적인 투쟁전선을 구축하자

현장에서 미래를  제19호
정윤광

다시 비타협적인 투쟁전선을 구축하자

정윤광(공공부문노동조합대표자회의 지도위원)

실망스런 대통령의 시국담화

오늘 09시 30분 대통령 시국담화가 있었다. 전국민의 최대의 관심사인 ‘한보사태 관련자를 신분 지위를 막론하고 철저히 단죄하고 한보사태 원인과 경위를 밝혀 관계자의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는 것과, 아들 현철에 대해서 ‘임기동안 일체의 사회적 활동을 중단’케 하고 ‘근신’ 토록하겠다는 내용과, ‘임기 1년간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서 정치자금법, 선거법 등 제도 개혁을 하고 금융개혁과 인사개혁을 단행하겠다’는 것과, ‘차기 대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를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공정경선을 하고 당원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것 등이었다.
예상대로 실망스러운 내용이었다. 발이 썩는데 구두 위를 긁는 것처럼 국민들의 답답한 심정과 안타까움에는 조금도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노동법 개정에 관해서는 여전히 경쟁력을 들먹이면서 노사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여 여․야 합의로 개정하기를 원한다는 막연한 얘기에 그치고 있음에 이르러서는 우리들을 분노케한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담화문 발표 모습은 12. 26.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시의 기세등등함도, 금년 1월 7일 기자회견 때의 오만함도 사라지고 풀죽은 모습이었다. 1월 7일 기자회견 시에도 실은 겉으로 보인 오만함과는 달리 날치기 통과를 강행하자마자 되받아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의 일격을 얻어맞고 무엇인가 허둥대는 자신없는 모습을 엿보였었다.

현정권은 작년 여름 한총련 통일투쟁 폭력진압과 북한 잠수함 좌초사건을 이용, 신공안정국을 조성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97년은 대선의 해다. 현정권의 최대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고 모든 정책은 여기에 종속되고 맞추어졌다. 96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경제 불황은 97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것이 예측되었다. 이 시기 현정권의 정국구상의 핵심은 공안정국을 이용한 민중탄압과 정치공작으로 정국 주도권을 계속 장악, 노동-민주세력을 제거 약화시키고 자민련을 와해 또는 왜소화, DJP 공조를 깨뜨려 정권을 재창출하는 것이었다. 또한 재벌과 결탁 불황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노조운동의 무력화와 함께 고용의 감축, 경영합리화를 통해서 경제회복의 계기를 만들어 내고자 하였다. 이것이 개혁의 종식, 역사의 후퇴로 표현되는 전면적 개악형태인 노동법․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현 정권의 의도였다.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통과에 저항하여 민주노총은 즉각 총파업에 돌입하였고, 이를 중심으로 각계 각층의 민주세력이 연대하여 투쟁에 나섰다. 위력적인 노동자 총파업을 중심으로 한 거센 민중의 투쟁과 이 투쟁에 대한 국민의 압도적 지지와 국제적 지지에 현정권은 노동법․안기부법 재개정 약속과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유보라는 형태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은 정세의 주도적인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노동운동은 50년만에 다시금 정권과 자본에 강력하게 맞서는 총노동전선을 현실화시키고, 압살당할 위기에 처했던 노동자의 기본권리를 방어하였다. 노동운동은 존망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사회전반의 보수-수구화 흐름에 제동을 걸고 민주주의를 쟁취, 발전시키고자 하는 민중, 민주운동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공안탄압과 정치공작으로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을 무력화하고 인위적인 정계개편으로 정권 재창출을 기도하던 현 정권의 기본구도를 파탄시켰다.

정권의 의도를 벗어난 ‘한풍’과 ‘황풍’

한보사태는 노동자 총파업으로 다운당한 현정권을 그로키 상태로 몰아 넣었다. 한보사태는 사이비 재벌과 부패한 권력이 합작하여 만들어 낸 현정권의 구조적 부패임이 분명해졌다. 92년 대선자금 수수의 원죄를 헤어날 수 없었던가? 권력핵심부가 깊숙이 개입하여 한보재벌 만들기 놀음을 하면서 국민의 돈을 빼돌려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워 오던 현정권은 더이상 수면하에 둔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한보철강 부도 사건을 터뜨렸다. 96. 12. 17. ‘금융산업합병 및 전환에 관한 법률’을 이미 통과시켰고, 1월 7일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금융개혁 위원회’를 설치토록 함으로써 한보에 물려 쓰러질 은행들을 통폐합시킬 법적, 제도적 장치도 이미 만들어 둔 후였다. 그래서 이석채 경제수석은 한보사건이 터진 후인 1월 30일 한보로 부실화된 시중은행이 쓰러져도 중앙은행의 융자는 없다고 큰소리쳐서 한국기업의 해외신용금리를 올리는 물의까지 빚었던 것이다. 한보사태는 현정권 핵심이 기획한 범위와 일정수준에서 처리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고, 검찰은 실제로 깃털만 밝히고 몸체는 숨긴 채로 수사결과를 발표하여 한보사건 조사를 시급히 마무리 하였다. 비자금 장부도 압수하지 않았고, 경리 실무자인 정태수 총회장 조카인 정분순, 정선희 자매를 제대로 검거하지도 않았으며, 핵심인물인 정보근 회장도 구속조사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통령과 김현철을 불었다는 이형구 등 핵심 은행장을 불구속처리하고 은행융자 5조원 중 실질 투자로 추산되는 3조원을 뺀 2조원의 행방은 어디인지, 92년 대선때 한보의 정치자금은 받았는지, 깃털이 아닌 몸통이 무엇인지 전혀 밝혀지지 않은 채로 덮여졌다. 그러나 수사발표는 역시 현정권의 의도대로 끝났는지 몰라도 사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갔다. 날치기와 총파업으로 현정권에게서 떠난 민심은 엄청난 불신과 분노의 파도가 되어 현정권을 덮칠 듯이 거세게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현정권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황장엽의 망명과 이한영 피살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 안보 공안정국을 조성 날치기에 대한 총파업과 한보정국의 수렁으로부터 탈출하고자 기도하였다. 오죽하면 중국이 황장엽 망명허용의 조건으로 ‘한국정부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고 황장엽의 매스컴과의 접촉도 금지할 것’을 요구하였겠는가? 그러나 역대 정권이 단골카드로 써먹던 안보공안카드도 약효가 듣지 않을 정도로 위기는 심각해졌다. 현정권이 한보정국의 수렁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한보정국은 김현철 정국으로 나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과 조기 가시화를 내세우며 대선정국으로 몰아가려 해도 예전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선자금 수수의 실체, 코렉스 공법 도입시 2,000억 뇌물수수, 재벌 2세의 조직적 관리, 정부 인사에의 개입 등 등을 밝히기 위해서 청문회 증인으로 세우고 특검제를 도입 재조사하라는 등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감옥에 갇힌 전두환이 염려하듯이 현정권이 임기가 끝난후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한보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김대통령이 오늘 담화문으로 발표한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제도개혁 즉 정치자금, 선거법 개정이나 금융개혁은 이러한 진상규명과 처벌이 전제되어야만 비로소 실효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돈안드는 선거를 한다고 제정한 통합 선거법이 선거법을 위반한 야당과 무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정보를 쥔 정부여당의 정치공작으로 야당을 약화시키고 인위적으로 다수 여당을 만드는데 이용되는 장치로 전락하는 것과 같은 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는 정치, 경제, 사회의 총체적 위기이다. 지배집단에 대한 전면적인 국민신뢰의 붕괴이다.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율이 한 자리수로 떨어져서 회복될 줄 모르지만, 그렇다고 야당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경제는 탐욕스런 재벌과 이와 유착한 정권 및 여야 정치권의 부패와 정책부재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고 총파업에서의 보수, 수구야당의 기회주의적이고 무기력한 태도와 한보라는 시궁창에서 함께 싸우며 딩구는 여야 정치인들을 보고 국민은 기성의 보수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고 있다.
60~70%가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불행한 국민인가? 부패와 타락, 지역감정에 얽매인 붕당정치-기성정치의 근본이 크게 뒤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우리 노동자-민중세력에게는 새로운 기회로 전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세력으로 우뚝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비타협적인 대중투쟁전선을 확고하게 유지한 가운데 전략적인 정치조직을 형성해 낼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공세적 전술이 필요한 민주노총의 4단계 총파업 투쟁

오늘 오후 5시 민주노총은 중앙위원회를 열고 이후 투쟁방침을 결정하였다. 민주노총 노동법 개정 투쟁본부 제1차 대표자회의는 2월 20일 밤새워 회의를 한 끝에 21일 기자회견을 열고서 보수여․야당이 교사․공무원 단결 보장,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삭제, 해고자의 조합원 자격인정, 제3자 개입금지 삭제, 쟁의기간중 대체근로 금지, 쟁의기간 임금지급금지 삭제, 작업․사업장내 쟁의행위금지 삭제, 직권중재 필수서비스에 한정, 정리해고제 반대, 변형근로시간제 반대 등의 민주노총 10대 핵심 요구를 일괄 수용한다면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보장하는 ‘복수노조허용’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2월 25일로 예정된 김대통령의 담화에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한보 특혜의혹 사건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와 관련자 전원의 사법처리, 정경유착 근절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과 재벌 위주 경제구조 타파에 관련한 분명한 해결대안을 담을 것을 요구하였다. 이상과 같은 제안이 거부된다면 민주노총은 최후의 방어 수단으로서 총파업을 강행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2월 25일 대통령의 담화문에는 예상하였던대로 민주노총이 요구한 노동법 개정내용과 한보사태에 대한 대책은 담겨지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2월 27일 간부파업, 28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정하였다. 현재의 역량과 제반조건에 비추어 보면 장기파업은 불가능하고 파업기간은 하루든 며칠이든, 미리 선언하든 않든 단기간의 시한부 파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파업의 수위에서 작년 12월말과 97년 1월과 같은 투쟁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민주노총은 대단히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4단계 총파업 투쟁을 위한 주객관적 조건은 대단히 좋지 않다. 12월 26일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시에는, 그 통과 절차와 내용에 저항하여 노동자들은 즉각 전면적인 총파업 투쟁으로 일어섰고, 각계 각층의 민중 민주세력이 노동자와 연대하여 투쟁에 나섰으며, 전국민적 국제적 지지와 엄호를 받았다. 기회주의적 보수, 수구 야당조차도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통과에 반대하였고 이후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이 합법적이고 정당함을 선언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노동자와 민중 민주세력들의 예상외의 거센 저항에 당혹하여 강경-온건으로 우왕좌왕하며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고, 재벌과 관제 언론도 폭발적인 노동자 민중투쟁의 기세속에 감히 반격할 엄두도, 양비론도 내세우지 못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민심이 이반함으로써 위기감을 느낀 정권은 여야 영수 회담을 수락하고 노동법의 재개정 약속과 민주노총 지도부 구속 영장 집행유예 조치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의 객관적 상황은 이전처럼 좋지 않다. 정부는 어찌되었든 날치기로 통과했던 노동법은 개정한다고 했다. 이제 투쟁의 대상은 정부 여당으로 단일하지 않고 보수 여야당 전체가 되었다. 야당이 우호적 세력에서 일정정도 투쟁의 대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정부 여당, 재벌과 관제언론도 상황전개에 대응할 시간을 벌었고 정세를 유리하게 전환, 전개시키기 위해서 개입해 들어오고 있다.
특히 노동운동 상층 지도부에 유화적으로 대응하는 데에 반해서 하부 노동현장을 치고 들어오는 자본의 공세는 노동자들에게 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다. 고소고발이 460명을 넘어서고 있고 해고와 징계(현대중공업 1,260명, 서울지하철 3,300여명), 손해배상소송, 무노동 무임금 등이 현장 노동자들의 신분과 생계를 위협하면서 투쟁 동력을 억압하고 있다. 장기적 파업에 따른 생활상의 압박과, 지난 한달 간의 파업기간 중에 드러났듯이 각 연맹, 노조간의 조건과 역량의 불균등성도 동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회사의 운명과 존폐를 염려하는 기업별노조의식도 행동을 주저하게 하고 있다. 재파업이후에 들어올 정부권력과 자본의 각종 탄압에 의한 신분상의 불안과 경제적 손실이 압박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우리들의 총파업투쟁의 의의와 전망에 관해서 통일적이고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문제이다.
96년 12월 26일 시작되어 약 한 달간 진행된 노동자의 총파업투쟁은 역사적인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노총은 두 차례 시한부 파업으로 민주노총과 함께 하였으나 그 조직, 투쟁력의 취약함을 드러내었고 민주노총이 정세의 주도권을 쥐고 노동운동의 중심세력임을 입증하였다. 그 의의는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24일간 계속된 노동자의 총파업 투쟁은 97년 2월 18일부로 수요파업으로 전환했가 1월 22일 수요파업 하루만에 2월 17일까지 여․야당이 날치기 노동법을 민주노총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개정할 것을 전제로 2월 18일로 총파업이 유보되었다. 2월 18일 총파업은 다시 1주일 더 늦춰져서 2월 24일~28일 중에 돌입하기로 최종 결정되었다.
민주노총이 총파업투쟁을 유보하고 시한부 파업으로 전환한 후 다시 2월 18일 이후 총파업을 실행하기로 결의한 데에는 총파업을 무한정 지속시키기 어려운 힘의 한계가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민주노총은 역사적인 총파업 투쟁,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하고서도 정권을 굴복시켜 승리를 쟁취할 결정타를 먹일 힘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같은 힘이라도 유효적절히 사용 최대의 효과를 발휘하도록 하는 계획과 전술의 결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은 96년 노개위 노개투 활동과정에서 이미 결의되고 어느 정도 준비된 것이었지만, 전반적인 투쟁은 거의 자연발생적인 흐름에 따라서 이루어졌고, 체계적으로 계획되고 배치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날치기 노동법․안기부법 철회를 중심으로 정권과의 사이에 비타협적으로 쳐진 총노동전선을 보다 강고히하고 전면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노동자와 민중의 권익을 박탈하고, 역사를 후퇴시키려는 정권의 의도, 행태, 본질을 규탄하고, 노동법․안기부법의 날치기 통과에서 정권과 야합하고 그 결과로써 발생하는 노동운동의 무력화와 민중에 대한 착취의 강화를 노리는 독점재벌을 폭로해내고, 날치기 통과에 방조하고, 노동자와 민중의 비타협적인 투쟁을 지지하고 합류하기를 거부하면서 투쟁의 성과물을 가로채려는 보수야당에 대한 체계적인 비판이 부족하였다.
철저한 투쟁목표의 견지와 지도부의 구속을 불사한, 그래서 합법의 테두리에 안주하지 않는 전술계획을 실행함으로써 정권과의 대치전선을 최대한 강고히 유지하려는 노력이 부족하였다. 영수회담의 쟁취와 노동법․안기부법 재개정 약속 및 지도부에 대한 영장집행유보는 분명 투쟁의 성과이긴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치전선이 급속히 약화되고 이윽고 ‘투쟁의 성지’ 명동성당으로부터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공세적 전술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다.

투쟁의 직접적 상대자인 정부와 민주노총과의 교섭을 통한 해결을 추구하지 않고, 보수 여․야당이 국회에서 우리의 요구대로 노동법 개정을 약속하지 않으면 총파업을 하겠다는 선언으로 투쟁의 성과물을 너무 쉽게 보수 여․야당에 넘겨 줌으로써 민주노총은 무대 뒷면으로 퇴장하고 정세의 주도권이 보수여․야당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보수여․야당이 타협 절충하여 개정할 노동법 내용이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핵심으로 하는 연합단체 복수노조 인정 이외에 주요 내용에서 96년 12월 26일 날치기 통과이전의 노동법보다 실질적으로 나아질 것이 없음은 거의 확실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은 총파업 유보시부터 최소한 내면적으로는 특정 시점에 총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불가피함을 조직적으로 결정하고 총파업을 철저하게 목적의식적으로, 계획적으로 조직했어야 하였다.
제 4단계 총파업투쟁이 힘있게 조직되지 않으면 이후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탄압은 심해질 것이다. 민주노총이 개정 예상되는 노동법 내용을 수용할 수 없다면 총파업 투쟁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를 최대한 강력하게 조직해 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보수여․야당의 절충과 타헙으로 만들어지는 노동법 개정에서 우리들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 가능케하고, 자본과 정권의 탄압공세를 최소화하고, 이후 투쟁동력을 되살릴 수 있는 길이다.

97년의 모든 투쟁은 노개투가 제 1의 과제

그러나 최선을 다한 우리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보수 여․야당에 의해 만들어지는 노동법은 우리들의 요구를 거의 충족시키지 못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실현할 노동법 개정을 쟁취하기 위해서 4단계 총파업 투쟁 이후에도 지속적인 투쟁을 벌여나가야 할 것이다.
이 투쟁은 노동법 개정투쟁 기간 중에 발생하는 해고, 구속, 손배소송 등 자본과 정권의 탄압을 분쇄하는 투쟁, 97년 임단투, 대선투쟁과 함께 싸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 일련의 투쟁에서 우선적이고 제 1차적인 과제는 노동법 개정투쟁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노동법 개정투쟁은 법․제도 개악저지, 개혁을 위한 투쟁이며, 또한 노동자의 사회정치적 지위를 높이고 사회정치적 세력관계를 재편해 나가는 정치적 투쟁임과 동시에 노동자 임금, 근로조건, 해고 등 생존권적 요구 및 노동자의 민주적 권리와 노동조합의 사회적 역할, 기능 나아가서 존망이 걸린 경제, 사회적 권리를 위한 투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임투동력에 의존해서 노개투 동력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노개투 동력 자체가 임투동력보다 강력하거나 못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노개투를 잘못해 내면 임투 역시 어려워질 것이다. 3월 중하순을 넘어서면 시기상 임투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고 임투 역시 연맹차원과 전국차원의 통일된 전선을 쳐내야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임투는 우리의 노동운동 전통과 조직체계상 단위 사업장 노사가 교섭과 투쟁의 주체가 된다. 그리하여 임투시기에도 전국적 정치적 전선은 노개투를 중심으로 쳐질 것이다.
그러나 투쟁의 중점적인 내용으로서 노개투에 못지않게 한보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한 투쟁이 중요하다.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와 한보사태의 공범은 현정권과 재벌이다. ‘노동법’을 통해서 노동자를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아 정권과 재벌의 도전세력인 노조를 무력화하며 노동자를 초과착취하려 기도하고, 한보를 통해서 권력과 재벌이 결탁하여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전체 민중의 성과물을 사취해가는 전형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의 주범은 노동자가 아니라 권력과 재벌 그 자체임이 또한 드러나고 있다. 그러므로 노동법과 한보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리고 제 4단계 총파업과 임단투 등 이후 투쟁에서 자칫 연대와 지지의 폭이 협소화할 수 있는 노동자의 투쟁이 한보를 투쟁의 요구에서 전면화함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넓힐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법과 한보를 중심으로 정권과 재벌에 대한 폭넓은 폭로와 다각적인 투쟁전술을 구사함으로써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높이고 투쟁의 전망을 열어나갈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 및 정권과의 사이에 명확한 대치전선을 치고 이전선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노개투의 쟁점을 비타협적으로 유지해내고 공세적 전술을 구사할 때 이 대치전선이 계속 유지되고, 대중적 투쟁동력 역시 살아 있을 것이다.
(97년 2월 25일)

1997-03-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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