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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파장 -한국경제 공황의 신호탄? 혹은 멕시코의 재판?

현장에서 미래를  제19호
백일

한보파장 -한국경제 공황의 신호탄? 혹은 멕시코의 재판?

백 일 ( 경제학 / 중앙대학 강사 )

1. 한보(韓寶)파장과 한국경제 최대불황

1997년은 한국경제사상 가장 많은 신기록을 남기는 ‘기록의 해’로 역사에 적힐 것이다.
97년 2월 중의 부도율(0.19%)은 한국경제 사상 최고의 부도율(1982년 장영자사건 당시 0.29%)을 넘보고 있으며, 실업율은 1990년대 들어서 최고치인 2.56%를 기록중이다. 1996년의 경상수지적자는 237억불, 미․일을 중심으로 한 대선진국 무역적자는 414억불로서 역시 사상 최고치이며, 외채비율은 1100억불로서 물론 사상 최고치이다. 97년의 경제성장률은 1979 - 80년의 부(負)의 성장( - 2.7%)을 기록한 이래 최저치인 3-5% 선이 될 것임을 금융연구원 및 각종 민간연구소 등에서 앞 다투어 전망하고 있다. 환율의 폭발적인 상승은 시장평균환율제 도입(1990)이래 사상 최고치인 900원대를 경신할 것이 예고되고 있으며, 2월중 현재 880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1978년과 1989년의 부동산가 급등 파동(79년 GNP의 4.1배, 89년 2.2배 상승)이래 또 한 번의 부동산 가격 급등 조짐이 신도시 지역과 투기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으며, 1985년 국제그룹 도산의 규모를 능가하는 수의 중소기업 연쇄부도에 이어 한보부도의 여파는 제 1금융권, 제 2금융권은 물론 지하금융권까지 휩쓸어 한국금융 초유의 은행도산 가능성과 대규모 은행합병을 예고하고 있다. 아시아의 각종 유수의 경제지들은 우리나라를 ‘97년 최악의 투자전망국’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한국의 3대 주력산업인 전자․반도체, 철강, 자동차 산업이 침체국면으로 하강한지 이미 오래다.
1997년 한국경제의 심각함, 위기상황에 대한 전망은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94년이래 계속 하강되어온 경제불황의 여파임은 물론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경제의 장단기 전망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다. 즉 최근 3-4년간의 불황의 계속성여부, 최근 경제위기의 원인분석, 그것의 해결가능성과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정치판도에 미치는 영향 등이 짚어질 필요가 있다. 최근의 경제전망에 대해서 문제를 다음과 같은 각도에서 접근해보자.
첫째, 한보사태는 세간에 비쳐지는 것 처럼 정치권과 재벌간의 비리인 정경유착의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가, 아니면 범위를 확대해서 한국경제의 전반적 불황, 더 구체적으로는 재벌위주의 경제인 한국경제의 어떤 한계, 중대한 동맥경화현상의 차원에서 조명해야 하는가.
둘째, 최근의 경제불황은 94-95년의 멕시코사태처럼, 개방형경제를 지향하는 후발자본주의 국가경제의 전형으로 간주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두가지로 접근방법을 달리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신문․방송 등의 대중매체와 저널리즘적인 보도경쟁의 홍수속에서 한보사태를 경제현상의 하나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97년 초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통과와 총파업사태에 이어, 또 한 번 이른바 문민정부를 강타한 한보파장은 주로 부정대출과 권력형 비리로서 정경유착, 즉 정치적 사안으로 관심의 초점이 모아지는 경향이지만, 그러나 이는 96년부터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이른바 한국경제 위기설과 직접 연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2. 한보파장이란 무엇인가

정태수 일가의 한보그룹은 한국의 재벌형성기중에서도 후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에 등장하여 불가사의한 속도로 10년이내에 부를 축적한 재벌이다. 한보그룹의 회장 정태수는 평범한 세무공무원을 청산하고 때늦은 나이인 50대 중반 1974년에 한보상사를 창업하였으며, 재벌이 되기까지 광산업, 건설업에 손을 대어 성장하였다. 1984년에 인수합병한 금호철강이 지금의 한보철강의 전신이며, 1997년 그룹해체직전 주력기업체는 한보철강, (주)한보, 한보에너지, 유원건설을 인수한 한보건설, 대성목재 등이다. 한보의 계열사들은 1970 - 80년대의 부실중화학기업들이 주축을 이루며, 이들 부실기업들을 특혜 흡수합병하고, 외형을 키웠다는 점에서 한보는 우리나라 대개의 재벌그룹들의 유형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만한 기업군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 당시 한보철강을 제외한 대부분의 합병기업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였기 때문에 한보의 성장동기는 산업자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한보그룹의 성장은 어떻게 가능하였는가. 한보그룹의 실질적인 성장은 1978-79년당시 제 2석유파동, 부동산가 폭등 당시 한보주택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한보의 계열사들은 대개가 적자를 내었기 때문에 80년대 한보그룹의 실질적인 재벌로의 성장은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그 불가사의의 비밀은 어디에 있는가. 1991년 수서택지사건은 한보를 세칭 ‘녹지를 택지로 바꾸는 마술사’라고 부르게 한 비밀의 원천이었다. ‘로비의 귀재’ 정태수는 이번까지 3번 구속되었는데, 수서택지사건(91), 노태우 비자금변칙 실명전환사건(1995), 한보 부정대출사건(1997)이 그것이다. 이 3번의 구속사태는 불가사의한 그룹 한보의 ‘불가사의한 자금력’의 출처가 어디에서부터 기원하는가를 대변하는 것이다. 즉 한보는 비생산적 토지투기에 의해서 성장한 재벌의 한 전형이며, 산업부문에서 적자를 토지투기라는 비생산적 부문에서 보전하는 왜곡된 한국의 재벌구조의 단면이자, 권력특혜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한보사태의 각종 비리는 그 은폐와 조작공방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역사앞에서 모든 의혹이 드러날 것이다. 한보의 교훈은 권력의 비호 밑에 있는 검은 자본은 한때의 화려한 영화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간이라는 한계를 초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의 본론은 한보비리를 밝히는데 있지 않다. 그 보다는 한보사태를 개별자본의 투자실패차원이 아니라 국민경제적 차원, 나아가서는 재벌구조에 의해 지탱해온 한국경제를 진단하는 거시적 차원으로 논의를 확대해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보사태는 정경유착, 정치자금의 비리와, 잘못된 중복 과잉투자에 의해서 발생한 사건으로 국한된 것은 물론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95년이후 철강경기하락을 비롯한 국내외적 경기침체와, 재벌위주 경제운용의 문제점, 한보철강의 무리한 투자, 즉 경제적으로는 투자실패, 혹은 과잉투자 등 등 복합적인 요인의 소산이다. 96년현재 한국의 철강생산은 3,886만톤으로 중국, 미국, 일본 등에 이어 세계 6위의 생산량이다. 그런데 반도체 철강 유화제품 3대 주요수출품목의 수출 증가율은 이른 바 신 3저시기인 94년 36%, 95년 53%로 신장한 것에 비해서, 경기가 하강하는 96년에는 무려 -2.6%로 대폭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는 반도체 가격의 세계적 폭락, 철강 과잉생산, 미 달러화의 강세에 따른 환율 변동과 유류값 상승 등이 영향을 끼치고 있었을 것이다. 철강분야에서 특이한 것은 세계경제에서도 철강생산이 세계수요를 초과하여 과잉생산되고 있으며, 투자의 대규모화로 인해 이미 선발자본주의국들에서는 사양산업으로 간주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철강부문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른바 시장자유경쟁 논리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데 있다. 세계적 경기침체와 철강산업의 후진국으로의 이행추세에도 불구하고 무려 5조원에 달하는 한보철강 투자는 상식선에서조차 이해가 안가는 과잉투자이다. 여기에는 부정대출을 둘러싼 정경유착과정이 이 몰상식한 투자를 억지로 진행시킨 요인이었겠지만, 그러나 전체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많은 재벌그룹중에서 특히 한보에 국한된 경영실패가 아니라 구조적 차원이라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것은 이른바 문민정부의 경쟁력 강화론이라는 경제지침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먼저 93 - 96년기 한국의 중화학산업분야에서 납득할 수 없는 투자조정이 발생하였는데, 제 2의 산업구조조정이라고 하는 공기업 민간불하와, 이동통신 등 특혜산업 지정, 삼성의 자동차산업, 현대의 제철산업(10조원의 투자계획) 등에 대한 과잉중복투자 등이 허용되었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경제위기설이며 경쟁력 강화의 일환으로 전 산업의 자유경쟁체제로 돌입, 시장경쟁 논리의 출현이다. 그러나 시장경쟁 확대론은 정확히 말하면 경쟁체제로의 돌입이 아니라 재벌들간의 독과점 시장의 재편과, 재벌들의 시장 장악비율의 확대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예컨데 산업총생산중 30대그룹의 부가가치생산액은 92년 15.85%에서 95년 16.78%로 불과 3년만에 1%가량 상승하였으며, 제조업비중은 92년 34.50%에서 95년 37.79%로 무려 3.29%나 증가하고 있다. 50대그룹의 매출액은 GNP의 90%를 상회함으로서 한국의 대부분의 산업은 재벌그룹을 경유하여야만 경제순환이 되고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경쟁력 제고는 독점시장지배영역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경제적 합리성으로 말하면 대자본의 등장논리는 대개 ‘규모의 경제’ 효과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해서 완전경쟁시장을 강조하기 위해서 중소기업위주의 경제구조로 산업구조를 바꾸는 것은 그것의 도덕적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모험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경제에 있어서 한 나라의 경제가 경쟁구조로 갈 것인가, 독과점위주로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실상 많은 연구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것을 판단하는 기준은 우선 경제구조의 변형에 따른 장단기의 성과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94-95년의 신 3저호황기를 거쳐 96년부터 극심한 불황체계로 들어섰다. 96년 상반기중 30대그룹 주요 132개사의 매출액은 시장의 확대에 따라 20.5%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순익은 78%나 감소하였다. 예컨대 한보의 경우 사정은 더욱 악화되어 매출액이 87%로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460억원의 적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경쟁력 확대정책은 이에 대한 숫한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국내적으로 독과점시장만을 확대시켰을 뿐, 불황회복 경기상승효과에 실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물론 최근 한국경제 위기는 전적으로 산업구조, 독과점시장재편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는 반드시 말할 수 없다. 국제반도체, 철강가격의 하락, 환율인상, 원유 원자재가 상승 등 해외적 여건의 악화는 매출량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감소시켰다. 이것은 수출구조 위주로 되어있는 한국의 대외의존형 경제가 해외경기의 침체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필연의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에서 주의할 점은 반도체, 철강 등 한국의 주력산업에 대한 세계시장의 장단기 전망은 이미 충분히 예고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메모리 위주의 반도체 산업의 위축전망은 80년대 후반부터 충분히 예고되고 있었으며, 철강 조선산업이 사양화되고 있었던 것은 70년대부터 세계적 추세였다. 반도체 철강 등은 엄청난 시설 자본 투자 때문에 투자실패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사양산업에 엄청난 투자가 공공연히 진행되었는가. 한보사태가 단순히 권력형 비리이상의 의미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1970년대 이래 형성된 한국의 주요산업은 대구모 시설투자가 수반되는 중화학공업이자, 상대적으로 잉여량이 감소하는 세계적 사양산업,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이것은 선발자본주의국가들의 주요산업이 고부가가치산업, 지적소유권의 강화에 따른 표준화상품 위주의 산업으로 이전해가는 추세의 국제적인 반영이다. 그러나 한국의 주요산업은 저부가가치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시장이 계속 확산되어가는 한, 즉 저임금구조를 통해서 잉여를 실현할 수 있는 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3저호황 같은 우연한 세계경제의 호조건은 한국경제가 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던 부대조건 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한국경제위기설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물론 여기에는 세계적 경제조건의 악화가 제 1의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해서 최근 부각되고 있는 ‘멕시코사태 재현설’과 함께 다룰 것이다.
두 번째 요인은 국내적 여건이다. 이제까지 한국경제에서 투자실패의 요인이 발생하면, 국민경제에 부담시키는 방법이 전형적이었다. 예컨대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 기업의 적자를 보전하는 방식이 경제불황기에 동원되었던 대표적 방식이다.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다는 명목하에 화폐발행의 증가와 금리인하는 물가를 상승시켜, 결국 강제저축을 유발시키고 국민경제에 부담을 지우는 흔한 방식이다. 그러나 화폐발행에도 불구하고 투자대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이 화폐자본은 다시 투기의 대상을 찾는다. 다시 부동산투기 등이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될 것이다.
한보 등의 도산은 관련 중소기업의 연쇄도산을 발생시킬 것이며, 부도율을 계속 악화시킬 것이다. 실업이 늘고, 물가가 상승할 것이며, 일반적인 불황기, 공황기의 경제현상들을 재현시킬 것이다. 그런데 시장강화론에 따라서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일반적인 경기순환론에 의하면 1910년대 또는 1930년대의 공황처럼 최악의 경제파탄이 한국경제를 파괴시킬지도 모른다. 국가가 개입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문제는 국가의 개입이 아니라 단기적으로 국내시장영역에서 새롭게 확산될 부분이 존재하는가, 세계시장의 조건이 호전되는가에 있을 것이다. 국내시장영역의 확대, 다시 말해서 신규투자의 가능성은 불행하게도 그렇게 밝지 않다. 중화학분야의 자본투자는 이미 자본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해외시장의 여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70-80년대 중화학분야 영화의 재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비재 시장의 최고의 분야인 자동차 시장은 인구와 영토, 도로라는 절대적 한계에 거의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시장으로 확장이라는 변수외에는 성장의 정체가 기정사실이다. 유일한 시장확대의 가능성은 21세기의 신산업인 정보통신시장이지만, 여기에는 98년 통신시장 개방과 해외자본과의 경쟁이라는 장벽이 가로 막고 있다. 즉 오늘의 한국경제는 저부가가치 산업에서는 이제 공업화가 시작된 동남아제국에 비하여 경쟁력에서 열세이며, 고부가가치산업에서는 기술․자본에서 경쟁력의 한계와 선발자본주의국가의 시장영역으로 파고들어갈 수 없다는 안팍의 시련에 부딫치고 있다. 단적으로 WTO의 전면화와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수입개방압력 등은 이러한 국제적 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70-80년대 국제분업구조의 파생공업국가라는 한국의 조건은 경제적 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분단국가이자 독재정부의 전통은 해외의 정치군사적인 조력을 필요케 함으로써 세계적 보호무역주의의 강화추세에도 불구하고 수입개방 등의 국제경제적 압박에 무기력하거나 오히려 일조하는 대응을 계속 유발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내외적 정치경제적 조건의 악화가 한국경제의 악화를 장기화시키는 조건이다.


3. 멕시코사태와 한국경제 불황 비교

94년 우리나라 수출의 경제성장기여율은 29.8%이며, 95년 수출의 경제성장기여율은 무려 47.3%이다. 이와같은 한국의 대외의존형 경제구조는 싱가포르 홍콩 등의 몇몇 도시형 국가를 제외하면 전세계 최고의 비율(참고로 미국경제의 수출의존 비중은 95년 현재 11% )이다. 그런데 수출 효과에도 불구하고 수입의 증가는 수출신장율을 넘어서며, 심지어 순수수출을 하기 위한 수입액의 비율은 총수입액중 91년 33%, 95년 36.3%로 대폭증가추세이다. 전 산업부흥과는 무관한 사치재 소비재 수입이 전 수입중 10%를 넘어서며, 특히 사치재 등의 수입신장율은 100%를 상회한다. 미일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대선진국 적자의 대폭증가(414억불)는 시장점유율에서 조차 급격한 하락세(대미 시장점유율 89년 4.6%, 95년 3.1% ; 대일 시장 점유율 89년 5.3%, 95년 5.0%)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동남아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지만, 여기에는 시장 다변화라는 긍정적인 현상보다, 선발자본주의국의 하청시장으로 조차 역할축소라는 측면이 더 강조된다.

WTO출범이래 우리나라의 각종 해외관련 지표들인 경상수지, 외채, 환율 등에서 최악의 상태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에, 흔히 94 - 95년의 멕시코사태와 비교된다.
멕시코사태 당시 주요 경제지표들을보면, 낮은 경제성장률 3.5%에서 -2.0%로 하락, 물가상승율 7.1%에서 42%, 경상수지적자 -294억불, 외채 1350억불(연간 원리금 상환 200억불), 환율 연간 3.5대 1에서 6.65대 1로 상승, 대출금리 140% 등이다.
멕시코사태는 취약한 산업기반을 가지고 있던 멕시코 경제가 이른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이래 대외의존형 경제를 지향하고 해외자본을 대폭 유입(하청기지화)하였지만, 기간산업에 대한 자체 운용능력을 잃고 경기 불황시 국민경제의 운용, 자체적 방어 대응능력을 박탈당하였기 때문에 더욱 심각하였다. 실제경제에서 환율자유화로 환율의 대폭 상승, 물가상승, 주요기간산업의 기계 원자재 값 인상, 정치적비리의 폭로에 의한 정국불안 등의 요소가 겹치자, 국내외 재벌, 자본들의 해외도피가 시작되었으며, 이것의 악순환이 결국 국민경제파탄, 공황을 야기하였다. 멕시코 사태의 백미는 이와같은 자본의 해외탈출에서 절정을 이루었지만,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대외의존형 경제에서 해외자본에 대한 무차별한 의존이 얼마나 허망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교훈인 셈이다.
한국의 각종 경제지표들은 환율 폭등, 경상수지 등등 거의 대부분에서 멕시코현상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최악의 경우 멕시코의 재판 운운하는 것도 결코 무리한 예견은 아니다. 물론 한국의 경우 멕시코와 결정적으로 다른 분야가 있다. 생산자본영역이 그것인데, 멕시코는 대개 해외 직접투자에 의해서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반해서 우리나라는 해외 직접투자 의존 비율이 작으며, 산업구조와 제품생산차원에서 기술수준이 다르다. 시장의 규모와 범위가 다르며, 세계시장에서 산업의 발달 수준이 다르다. 그러므로 유사한 각종 경제지표 추세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사태가 재현되리라고 단정할 수는 물론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경제지표의 변동에 따른 효과는 멕시코와 동일한 악조건임은 분명하다. 환율인상에 따라 외채의 증가는 이자총액의 증가부담을 낳으며, 물가 인상반영은 이미 국민경제에 부담을 지우고 있다. 국내경기의 하강은 국내 대자본의 해외유출속도를 재촉하고 있으며, 특정 산업분야로 자본집중은 과잉자본의 우려를 낳고 있다. 98년 해외자본 개방은 국내의 주요기간산업에 대한 자본잠식현상을 낳을 것이며, 심할 경우 급격한 자본재편현상이 낳을 최악의 시나리오도 구상할 수 있다.


4. 한국경제의 위기에 대한 장기전망

한보사태는 정확히 권력형비리인 동시에 한국경제 불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형비리로서 비난하는 단편적인 수준에서 우리나라 경제에서 한보파장의 위치를 정확히 이해하며 한국경제 회생의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 진취적인 경제학의 미래일 것이다. 요컨대, 경제적으로 말해서 한보비리는 잘못된 투자이지만, 동시에 재벌위주경제의 성장전략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국민경제에 대한 인식은 소유집중, 권력형비리 등 재벌이 야기하는 각종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규모의 경제’ 논리에 의해 재벌특혜정책이 합리화된 바 있다. 그러나 기록적인 소유집중에 대한 비판도 물론 중요하지만 한국경제운용의 장래전망을 놓고도 재벌위주의 경제와 대외의존형 경제의 무차별한 확산의 한계가 이번 기회에 보다 분명하게 짚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경제위기시에는 국민경제 전반에 대한 운용계획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재벌위주 경제의 계속은 국내의 독과점시장에 대한 재벌의 지배율만을 확장시킬 뿐, 국민경제 위기의 돌파구가 되지 못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현재의 경제위기설을 곧잘 임금 등의 고비용구조에 의한 위기설과 직결시키는 세간의 학설은 사실 전혀 근거없는 것이다. 지면상의 제약으로 입증하기는 곤란하지만 우리나라의 물가수준에서 현재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거의 최저 수준이다. 실업율은 일용직 등에 대한 고용근거를 수정하면 더 높아질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산수준은 60-7년대 저임금구조에 의거한 단순조립가공형 상품을 생산해내는 수준에 있지 않다. 고임금구조를 논리상으로 확립시키려면 이른바 선발자본주의국들의 고임금 자체를 비난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우연한 경제적 호조건(3저호황)이 지난 시점에서 세계적 시장의 확보와 자생적인 높은 기술수준으로 도약하고 있지 못한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미 자유무역을 위장한 보호무역주의는 세계적 추세이며, 국제교역조건은 더 악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며 여기에 대응하려면 실질적인 국민경제의 보호무역화가 우선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행의 경제논리는 고의로 세계경제에 무장해제당할 것을 자청하는 잘못된 시장경쟁론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가 고금리 등 비생상적 고비용구조를 하락시켜 생산적 구조로 경제를 전환시키지 않으면 세계경제에 대한 대응력은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화 될 것이다. 여기에 부동산 투기와 권력의 비호 등 비생산적 경제잉여에 익숙한 한보와 같은 졸속형 재벌은 경쟁시장의 위험성에 도전하기 보다는 국내 시장지배에 안주하는 편을 선호하며, 이것이 독점자본의 필연적인 생리라는 것은 이제까지 자본의 역사가 증명한다. 안타까운 것은 제 2, 3의 한보형 재벌이 우리나라의 국민경제를 현재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위기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지만, 현재의 재벌위주의 경제는 이것을 거부하고 있다. 70-80년대 한국경제 불황과 97년의 한국경제불황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불황은 끊임없이 재생하여 국민경제를 동요시킬 것이다. 한국경제의 위기가 장기화되리라는 전망은 이 때문이다.

1997-03-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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