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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노동자 투쟁에서 느낀 것

현장에서 미래를  제19호
백기완

이번 노동자 투쟁에서 느낀 것

백기완(자문위원)


고도의 미학, 최고의 해방어

지난 86년 겨울로 기억된다. 권인숙 양 성고문사건 규탄 대회를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여섯 달을 도망을 다니다가 잡혔을 적엔 전두환이 한테 당한 고문 후유증이 도져 스무 관이나 되던 내 몸무게가 겨우 열두 관(45킬로그램)을 맴돌 정도로 나는 몹시 어려웠다.
그래서 수사를 담당하던 사람도 나를 한축(일단) 병원에 보내 몸을 추수리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의견이었는데 그 때 청와대 쪽에서 엄명이 떨어졌다.
“악질 그 자식 그냥 처넣어” 이렇게 말이다.
그리하여 들것에 실려 검찰청을 나오는데 그곳에 잡혀와 조사를 받고 있던 학생 하나가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른다.
“선생님! 천하의 백기완이가 어째 그렇게 되셨습니까. 돌아가시면 안됩니다. 선생님.......”
그런 피눈물 소리를 뒤로하며 감옥 안마당에 들어섰을 땐 이미 밤은 깊어 매서운 눈보라가 들것에 누워 있는 내 볼을 사정없이 후려갈긴다. 발꼬락은 벌써부터 감각이 없을 정도로 꽁꽁 얼어붙고 그러나 이 때 나는 문득 그 눈보라가 이미 죽어 가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내려치는 전두환이의 쇠꼬리 채찍으로 여겨졌다. 그러자 갑자기 내몸의 저 밑두리에선 불끈하고 엄씨(짓밟힐수록 고개를 드는 씨앗)가 일어나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야 이 전 아무개야 네에미 무어다”
느닷없이 터저 나온 내 분노의 목소리는 감옥의 높은 벽을 때리며 울려 퍼지고 어디선가 메아리가 들려 오는 것이었다.
“타도 전두환”
그러자 놀래버린 교도관들은 내 들것을 들고 냅다 뛰어 철커덩 하고 감방에 내팽개친 뒤 며칠이 지나서였다. 교도관 하나가 꼼짝도 못하고 누워 있는 나를 문틈으로 빠끔히 들여다보며 말을 건다.
“여보시오 거 점잖은 처지에 그런 욕은 좀 너무 한거 아니요 인격의 문제도 되고”
이때 내가 한 대답은 빙긋이 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젊은이가 그 웃음의 뜻을 제대로 새기는 것 같지를 않아 나는 조용히 타일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욕이라고 생각되는 거요? 사실은 욕이 아니지요. 악덕의 심장을 겨냥한 최후의 일격, 고도의 미학이다” 이 말이요.
타도라는 말이 최후의 일격이듯 싶지만 사실 그것은 개념적인 말이 아니겠소. 그러나 “네이미 무어다 그것은 쌍소리가 아니란 말이요 그것은 타도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다는 결단의 총체, 개념의 총체다” 이 말이요. “오늘의 시대는 바로 그런 인격이 필요한 것이지 그 외에 인격은 사실은 거짓이다” 이 말이요 그렇게 일러주자 문을 꽝 닫고 그 젊은 교도관은 고개를 돌리고.....


세월은 흘러

세월은 흘러 십년, 마침내 나는 그때 내가 그 가파른 감옥 안에서 고도의 미학으로 처오던 그 말투를 다시 듣고선 나도 모르게 환호를 하게 되고 말았다.
무슨 말이냐. 바로 한달 전의 일이다.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처리 전면 무효를 요구하는 노동자 시민 만 여명이 종묘 공원에 모였을 때다. 나도 거기에 낑기여 그 숫한 노동자들이 앉은 찬 바닥에 엉덩이를 부치고 있는데 사회자가 “김영삼” 하고 선소리를 한다. 그러자 만 여명이 “김영삼”하고 따라할적엔 나도 그저 건성으로 “김영삼”그랬다.
나처럼 오랜 문화경험이 있는 사람이 아무런 계산도 없이 그렇게 군중심리에 휩쓸릴 수 있었던 것은 보나마나 다음 말이 “타도” 그렇게 나올 것이란 직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느닷없이 나오는 그 다음 말은 천만 뜻밖에도 타도가 아니었다. 네에미 무어다! 그러질 않는가 말이다.
어쨋거나 나는 얼김통에 네에미 무어다 그렇게 따라하고 나선 나도 모르게 멋쩍었던지 둘레를 두리번거리는데 나는 그만 그 분위기에 놀라고 말았다.
무슨 말이냐 만 여명의 군중이 그렇게 소리높혀 외쳐 대기 십 여번이나 계속되자 저 멀리 세운상가 높은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다같이 따라 외치고 지나던 시민들이 손뼉을 쳐주는 게 아니냔 말이다.
생각컨대 내가 최루탄을 먹기 시작한 것은 어즈버 삼십칠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승만 독재 시대다. 그 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따위의 군사 독재와 싸우느라 노상 마시는 게 최루탄이었다.
나는 이들 독재와 싸우는 과정에서 체포, 고문, 투옥을 거듭하기 여러번 그래도 한치도 물러서질 않고 싸웠으되 나를 빼놓고 내주변에서 “독재자 네에미 무어다” 는 소리는 일찍이 들어보질 못해 왔다. 그런데 이번 싸움에선 한 개인의 입에서가 아니라 만 여명의 노동자와 이를 따르는 시민의 갈채 속에서 터져 나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행진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어느 시민이 나를 붙들고 묻는 것이었다.
백선생님 타도 그렇게 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쌍소리는 좀 지나치지 않습니까.
나는 웃기만 하고 대답을 안했다. 그러나 그 웃음속엔 이런 말이 내포되어 있었다.
“썩은 나무도 발로 차야 그 뿌리가 뽑히는 법이요, 그러니까 그런 말투는 속된 쌍소리가 아니라니까요 이땅에 사는 사람들만이 내뱉을 수밖에 없는 분노의 함성 고도의 미학적 선언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번 싸움을 체로 거르면

한마디로 이번 노동자 싸움을 요약하면 무엇일까
물론 아직껏 우리들은 이참에 개악된 노동법과 안기부법을 전면 폐지하는 성과를 거머쥐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종묘 공원으로부터 명동으로 향하는 노동자 대오에 낑겨가며 속으로 울부짖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번 싸움은 이것으로 이겼다.
노동자 만 여명이 김영삼 “네에미 무어다”고 외친 것은 노동 대중의 투혼의 해학적 유희 아니 헤설픈 풍자적 돌파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도리어 해학적인 것 보다 더 침투력이 강한 총체적 해방어요. 그것으로 김영삼정권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것이기에 김영삼정권은 그 잔명을 이어가고 있기는 하되 이미 폐기된 것이요 따라서 이번 싸움은 분명 이겼다는 것이다.
더더구나 이번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개악 처리 시점은 연말 연시라는 시간적 함정도 있고 해서 나 같은 사람까지 혹시 이번 노동자투쟁의 대오가 날로 불어나지 않으면 어떻거나 하고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 같은 사람의 주관의 한계 그 관념성이 배회할 수밖에 없었던 기우였다.
우리 노동자투쟁는 그것이 지속될수록 날마다 그 대오가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더구나 시민들이 따라 일어나고 세계 양심이 따라 일어난 것으로 보드래도 이번 싸움은 역사 진보에 대한 관념적 배회 그 일체의 주관주의와의 싸움에서도 이겼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나의 생각은 또다시 울적해지기 시작했음을 솔직히 털어놓는다 무슨 말이냐
참된 승리자는 승리를 표상하는 깃발을 올려야 한다. 이것이 승리요 여기가 바로 승리 그것의 중심축이라는 깃발을 하늘 높이 올려야 하는데 지금 우리 노동자에게 그런 깃발이 있는가 나는 자못 걱정이 되었다 이 말이다.
또 참된 승리자는 그 승리를 환호하는 군중 즉 만백성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자 투쟁은 비록 임단투가 됐던 또는 노동법 안기부법 폐기 투쟁이 됐던 일정한 과제에 얽매이는 단역적 투쟁이 아니다 노동운동은 그 성격상 역사 진보 사회변혁이라는 과제를 관철해 가는 총체성을 본질로 하고 있다. 따라서 참된 승리자라고 한다면 이번 승리를 계기로 어떤 것이 참된 민주화이고 또 어떤 것이 참된 변혁이라는 것을 내놓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사회가 나아갈 바 노선과 관철해야 할 실천적 과제에 있어 우리 노동자 대중의 알기성(주체성)을 제시해야 하는데 과연 그리되고 있는가.
나는 그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우리 노동자 투쟁의 승리의 한계를 주시해 왔다 이 말이다.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나는 거리를 누비는 노동자 대오에 낑겨 돌아가면서 또 생각했다.
나아갈수록 점점 불어나는 저 엄청난 사람들 혹은 박수를 치고 혹은 동참의 뜨거운 눈빛을 던져 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결코 무엇인가 바뀌기를 바라는 허영이 아니었다 분명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눈초리였다 나는 그 점을 뚫어지게 읽으며 생각했다.
지금 저 거센 몰개(파도)처럼 밀려가는 노동자 대오는 그들에게 대답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노동자 대오는 대답을 못할 뿐 아니라 그 속이 강정처럼 비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령 이번에 왕창 터진 한보사태를 예들어 보자
김영삼정권이 들어서던 93년 현재 이 땅의 30대 재벌의 총자산은 약 170조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3년 뒤인 95년 말 현재 30대 재벌의 총자산이 자그마치 280조로 늘어났다.
그 동안 이 땅의 경제 성장이 그처럼 늘어났던가 아니다 그러면 무역 흑자는 늘어났던가 아니다 도리어 무역역조는 해마다 늘어났고 외채 또한 1300억불을 기록할 정도로 경제는 계속해서 위기의 늪으로 빠져들어 왔는데 어째서 재벌들만 그렇게 비대해 졌을까
분명히 말하거니와 부정이다 따라서 이참의 한보비리도 그 구조적 부패 부정의 한 단면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고하면 한보비리의 해결책은 무엇이며 그 해결자는 과연 누구일까. 잘라말하거니와 한보비리의 해결이란 이 땅의 재벌 지배의 구조적 부패를 해결하는 것이요 따라서 그 해결자도 노동자를 필두로 한 이 땅의 양심 세력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이 땅 노동자 세력이란 이 양심의 중핵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노동자 세력은 과연 총체적 부패 구조를 해결할 해결자요 희망으로 자기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지 못하다고하면 오늘의 노동자세력은 김영삼정권을 부정하면서 사실은 자기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의 늪으로 빠져 가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 오늘 이 위대한 승리를 기점으로 이 땅의 노동운동은 노동운동 내부에 있는 허무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다지며 대오의 맨끝을 필사적으로 따라 다녔음을 고백한다.

1997-03-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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