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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제 1기 총파업 학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20호
김영규

민중은 ‘제 1기 총파업 학교’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김영규(이사)




잡초(雜草)를 솎아 낼 호기

지금은 남한 역사에서 어느 때보다도 정권의 독재에 대해 민중이 직접 견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해 있다. 민중은 현 정권이 95년 전두환․노태우 등을 용서하려는 독재에 대하여, 96년에는 노동법․안기부법을 개악하려는 독재에 대하여 격렬하게 반기를 듬으로써 미흡하지만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 점에서 김영삼 정권은 집권 말기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해 남한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 동안 유지된 독재체제의 전통이 마침내 현 정권에서 구체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민중은 그러나 이 독재의 뿌리가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숲’에서 반세기간 보수라는 ‘잡초’를 무성하게 키워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잡초는 지금 우리 국가사회를 바르게 세울 ‘약초’를 가려왔고 마치 이들이 민초(民草)를 대변하는 양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중은 지금 독재의 위기를 맞아 이제 잡초를 솎아내고 마침내 그 뿌리까지 뽑아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새로운 각오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호기이다. 독재와 보수의 총체적 위기는 민중에게는 전반적 기회이다.

남한에서 과거 독재권력이 기승을 부린 데에는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세력이 부재(不在)했다는데 있다. 이러한 세력은 탄압과 착취를 깨닫는 민중으로부터 나와야 함에도 그러하지 못했다. 이것은 60년 4․19 의거가 증명하고 있다. 그후 자본주의의 진전과 함께 독재와 독점을 거부하는 민중세력이 성장해 오는데 한 20년은 걸렸다. 그러나 이런 민중세력도 독재와 보수를 타도할 만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는 군사독재의 가혹한 탄압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독점자본의 토양에서 배태된 권력과 정치에 오염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민중세력의 일부는 80~90년대 보수진영에 아예 편입되기도 했고 지금도 다른 일부는 민중진영에서 개량과 합법으로 남아 기회만 노리고 있다.


총파업, 사회변혁을 위한 교육훈련의 장(場)

지난 반세기 남한민중의 처지는 그런대로 개선되어 왔다. 노동자를 위시한 민중은 자본의 민주주의가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일부 시민권과 생존권을 투쟁으로 획득해 왔다. 이는 한편 민중의 위대한 승리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독재의 계몽적(민중통제적) 결단이며 독점의 생존적 양보이기도 하다.
90년대 들어서면서 마침내 노동자가 민중투쟁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는 80년대 모든 민중세력이 독재를 타도코자 하며 독점을 거부코자한 투쟁의 핵심성과인 것이다. 9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는 지금 노동자의 투쟁은 민중투쟁을 온몸으로 계승해야하는 책무가 주어져 있다.
노동자는 마침내 총파업을 할만큼 성장했다. 금년도 벽두 총파업에서 노동자가 민중투쟁의 계승자요, 민중전선의 파수꾼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번 총파업은 지도부의 계획과 지침에 따른 지도파업이 아니라 근로대중의 자발에 기초한 대중파업인 점에서 정치파업이다. 대중파업이기 때문에 권력과 자본은 한발 양보하는 대신 현장에 가혹한 반격을 가했던 것이다. 대중이 없으면 파업도 없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파업 지도부가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워도 대중이 스스로 결단하여 희생을 각오하고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한 어떠한 총파업도 승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번 민주노총의 파업이 한국노총의 파업과 구별되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 총파업을 통해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승리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우선 총파업의 당면 목표인 노동법 개악을 전면 무효화시키지 못했다. 또한 총파업의 성과를 정치권, 심지어 종교권과 시민운동권에게까지 넘겨준 것은 최대의 실수로 남는다. 이는 총파업투쟁이 결국 의회주의에 굴복하고 시민민주주의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노동자가 민중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이런 실패는 노동자 지도부가 파업을 연기하고 조절하는 데에서부터 이미 예견되어졌었다. 총파업 지도부의 임무는 파업의 시기선택이나 단계구분으로 그 수위를 조절하는 등 타협적 전술을 구사하는데 있지 않다. 지도부는 노동자의 이념과 노선을 분명히 하여 파업대중을 독려하고 미조직 노동자까지도 참여시켜 총파업 열기를 더욱 고양시키는데 그 진정한 임무가 있다. 타협은 권력과 자본의 투쟁전술이지 노동의 전술이 아니다.
파업은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투쟁수단이다. 그러나 파업만이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파업에만 매몰되어 다른 유효한 일상적인 투쟁을 등한시해서는 안된다. 노동자는 권력과 자본에 대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모든 형식과 모든 내용의 투쟁을 적절히 배치하거나 전환시키는 유연한 전술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는 파업의 선언주의나 기회주의를 봉쇄하는 한편 더욱 중요하게는 파업으로만 목표를 관철할 수 있다는 파업만능주의를 배격해야 한다.
이 점은 간단히 확인될 수 있다. 지난 1월 총파업을 사실상 거둔 노동자는 현장투쟁으로 시급히 전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후의 어떤 파업도 실행하기가 어려웠다. 지금은 더구나 노동투쟁의 고양기이지 사회변혁의 전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이 시기 남한 노동자에게는 총파업이 사회변혁을 위한 교육훈련의 장(場)이다. 이러한 교육훈련은 단 한 번일지라도 모든 노동자가 단호하고 격렬하며 철저하게 수행하는 총파업을 요구하고 있다.


총파업이라는 학교로부터 배운 것

민중은 이번의 총파업이라는 학교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민중이 가장 깊이 배운 것은 어떤 정권도 모든 민중의 강고하고 끈질긴 투쟁에는 무력하다는 것이다. 김영삼 정권은 민중의 총파업 연대투쟁에 굴복하고 말았다. 물론 정권의 굴복은 그 붕괴위기를 일시나마 모면하기 위한 것임을 민중은 역시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 붕괴위기를 모면했다 할지라도 집권세력의 정국주도권은 사실상 붕괴되고 말았다. 이것은 결국 여야를 막론한 보수정치세력들 간의 경쟁구도를 변화시켜 놓았다. 이 변화는 향후 정치권의 재편과 그 재편을 위한 개헌까지도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쟁(政爭)은 노동자를 위시한 민중을 배제한 채 이루어지고 있다. 민중은 바로 총파업으로부터 궁극적으로는 이 점을 익혀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시기 어떤 총파업투쟁이든 그 한계로 계속 남게 될 것이다.

민중은 ‘제1기 96~97년 총파업 학교’로부터 남한독점자본의 위기를 배우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독점자본의 축적위기는 이미 80년대부터 가격조절과 임금통제에도 불구하고 전 산업의 이윤하락으로 입증되어져 왔다. 권력과 자본은 산업구조조정이나 주력업종 육성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경쟁기업의 부가가치 창출능력을 따라갈 수 없었다. 독점자본의 위기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국주의 자본의 국내외 시장 공략에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 탈출구가 바로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포장한 노동력의 산업간․업종간 재배치 전략이다. 이것이 바로 4년 전 자신들이 창출했던 김영삼정권에게 마지막 임무를 준 이번의 노동법 개악이다. 독점자본의 21세기 노동통제 전략과 노동착취 전술은 이번 민중의 총파업 연대투쟁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완전 승리할 뻔 했다. 그러나 독점자본은 그 위기탈출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또다른 총파업을 지금부터라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고 민중의 연대투쟁도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끝으로 이번 총파업으로부터 노동자를 위시한 민중이 무엇을 배웠는가에 대해 결론을 내려보자. 그것은 단도직입적으로 노동자의 총파업을 올바르게 지도하여 남한민중이 그 역사적 과제와 임무를 올바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민중연대 정치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조직의 건설은 반독재, 반독점, 반보수를 지향하는 각계각층 민중이 비상한 결단을 내리고 비장한 각오로 시작해야 한다. 모든 민중단체들은 이제 단체의 정파적 입장과 일상적 사업을 잠시 뒷전으로 미루고 총회와 대의원 대회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정치조직의 대의를 확인해 들어가자.
이를 노동자, 농민, 빈민, 학생부터 먼저 시작하여 정치조직의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라! 지금이 만약 권력의 약화와 자본의 위기국면이라면 민중이 사회변혁을 주도하는 정치조직을 건설할 절호의 기회이다.

1997-04-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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