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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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인가? 스승인가?
 교육현장

현장에서 미래를  제120호
김산

1. 들어가며

5월 15일은 제25주년 스승의 날이었다. 그러나 그날 대부분의 스승(?)은 학교에 없었다. 집에서 푹 쉬었다. 각자 마음이야 다르겠지만 나는 그날 늦게까지 푹 잤다. 아내는 기념식에 참석하러 간다고 궁시렁 대면서 나갔고(상준다고 하니 안 갈수도 없다나), 큰놈은 학교로 작은놈은 유치원으로 갔다. 쉬는 학교가 그리 많은데 우리 애들은 왜 안 쉬는지 거참. 어쨌든 난 그날 푹 잤다. 늦게 일어나 혼자 라면을 끓여 먹은 게 좀 그렇지만 말이다.
이유야 어쨌든 노는 건 역시 좋다. 노동자에게 노는 날 보다 더 좋은 날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기분이 좋았던 건 아니다. 마음 한구석 내내 찝찝했으니 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자조 하면서 하루 종일 멍하게 보냈다. 그날 오후에 3년 전 가르쳤던 놈한테서 스승의 날 축하한다는 문자 메시지 받은 게 기쁨이라면 기쁨이라고 하겠다. 아내는 선물로 시계를 받아왔는데 그까짓 거 받으러 힘들게 갔다 왔다고 투덜댔다. 자기가 참석 커트라인에 걸렸다면서 불평을 하면서. 우리 가족의 스승의 날은 그렇게 각자 따로 하루를 보냈다.

2. 노동자인가? 스승인가?

전교조를 비난(비판이 절대 아님)하는 무리들은 전교조가 교사의 노동성을 내세운 것을 문제 삼는다. 교사가 어떻게 노동자냐는 것이다. 교사가 노동자가 되는 순간 더 이상의 스승은 아니라는 논리 아닌 논리를 들이 내민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노동자는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스승은 누군가? 스승은 뭔가 특별한 사람으로 그 일은 마치 성직을 수행하는 것과 같아 일반인과는 다른 행동, 다른 생각을 하는 저 먼 곳에 있는 속세와는 어울리지 않는 뭐 그 정도의 남다른 사람이라는 식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니 노동자는 스승이 절대 될 수 가 없는 것이며, 교사가 노동자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학부 시절 교사론 이라는 과목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은 사실 철저하게 붕어빵을 만들어내는 시간중의 하나인데(지배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도구로서의 교사양성측면에서) 그때 교사의 직업관에 대해서 토론 했던 기억이 난다. 교사를 보는 관에 대해서 노동자관이냐 성직자관이냐는 문제에 대해서 많은 학우들은 교사는 성직을 수행하는 성직자와 같아서 일반 노동자일 수 없으며 말과 행동 또한 규범적이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내 기억에 ‘교사는 노동자’라고 말한 친구는 없었으며 교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칭찬만 듣던 모범생들이 대부분이었으며(인격적으로 좋은 친구가 많아 나중에 내가 애 낳으면 너한테서 배우게 하겠다고 한 친구들이 많았다.) 대학에서의 교육 또한 동일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교사=노동자라는 생각은 상상 속에서도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당시 시대 상황이 또한 그러했다.) 나 또한 그러하였다. 나 역시 다른 친구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대한민국 교육의 훌륭한 성과물인 모범생이었으니까 말이다.(솔직히 난 생존하기 위해서 모범생인척 했는지 모른다. 일탈을 꿈꿔왔으나 살아남기 위해 잘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참스승이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시작한 교직은 몇 년이 안 되서 이게 지독한 중노동인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데서 당혹감과 좌절감을 가져왔다. 현장에 나와서야 교사가 노동자라는 것을 그것도 도대체 자율성이라고는 없는 철저한 지배이데올로기 전파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알고는 나의 원대한 꿈(?)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었다. 병아리 교사 시절 내가 출근할 시간에 추운 겨울에도 아이들이 교문에 나와서 기다려주고 창문에서 선생님을 부를 때는 나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교사라는 게 단순히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무력감이 찾아 들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 짓을 해야 하나 하고 말이다. 그 누구 보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 했지만 나는 스승의 길(?)과 점점 멀어져 갔다.
스승의 날에 즈음하여 해마다 나오는 고정 레퍼토리가 있다. 그것은 훌륭한 스승의 이야기와 타락하고 부패한 교사 이야기. 어쩌면 해마다 똑같은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똑같을 것이다. 즉, 훌륭한 스승이라 하면서 소개되는 내용을 보면 대개는 자기 월급을 쪼개서 어려운 학생을 돕거나 밤낮으로 연구를 하여 아이들을 새롭게 가르친다는 내용이다. 물론 아름다운 미담이다. 누가 거기에 이의를 달겠는가? 그런데 내 월급을 조개지 않으면 훌륭한 스승이 되지 못하니 내 월급이 아니라 국가가 해결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결코 스승이 될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은 노동운동하는 교사 나부랭이에 불과하다. 신기한 것이 전교조 교사가 부정이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 되면 전교조 교사가 그랬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좋은 일에 관련되면 전교조 교사가 아니라 그냥 훌륭한 스승이란다. 교사는 교사인데 상황에 따라 전교조 교사와 그냥 교사 이렇게 된다. 나쁜 일에는 개인이 아닌 단체와 연관시키고 좋은 일에는 철저하게 개인적이다. 그러니 욕할 때는 전교조 교사들이고 칭찬할 때는 교사 누구누구이다. 참 희한한 관점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에 전혀 보지 않는 동아일보를 식당에서 잠깐 밥 먹으면서 보니 스승의 날이라고 두 스승을 비교하고 있었다. 안병직과 이영희. 두 분은 한때 우리나라의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분이었으나 안병직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좌파에서 우파로 전향했으며 그의 제자들인 김문수와 이영훈을 훌륭하게 전향시킨 참스승이라고 추켜세우고, 반면에 이영희 교수는 아직도 전환시대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참스승과 그렇지 않은 스승의 두 모습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읽으면서 참 동아일보 기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토록 우리가 조·중·동, 조·중·동 하는지 여기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도대체 좌파가 우파로 전향해야 될 시대상황이 있는가. 사상이라는 것이 그렇게 가볍게 상황논리로 바뀔 수 있는 것인가?
오늘의 한국사회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가? 누가 진정한 스승인가? 상황논리로 쉽게 바꾸어 지배 헤게모니에 포섭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스승인가 아니면 비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끝까지 민중을 위해 지배계급에 저항하고 투쟁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스승인가? 나 혼자 잘살고 민중의 고통에 눈감게 하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라면 나는 스승이 되지 않겠다. 그들이 말하는 교사 나부랭이, 노동자 나부랭이로 살며 가르치겠다. 스승의 의미가 오독되는 현실이라고 본다.
쉽게 현실에 타협하는 자들이 있으니 한국사회의 지배 블록은 더욱 공고화 되고 그들의 이데올로기로만 가득 찬 사회가 되고 있으며, ‘존재가 의식을 규정 한다’는 명제는 한국에서 성립되지 않으며, 즉자적 계급은 넘쳐 나지만 대자적 계급은 찾기 힘든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지배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은 날로 늘어나지만 프롤레타리아의 유기적 지식인은 날로 줄어드는 것이 저 동아일보가 말하고 있는 훌륭한 스승(?)들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찌 됐든 나는 동아일보에서 말하는 훌륭한 스승은 되고 싶지가 않다. 아니 될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스승은 그들과 다르니까.

3. 스승의 날을 폐지하라!

난 스승의 날이 왜있는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스승의 날은 교사 모욕의 날, 비난의 날이다. 스승의 날 즈음되면 언론에서는 촌지나 밝히면서 어영부영하는 철밥통 교사들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그러면서 꼭 교원평가를 하여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이 교사라거나 노무현이 말한 것처럼 개혁을 가로막는 이기적 집단이라고 연신 비난을 쏟아낸다. 이 깨끗하기 깨끗한 대한민국의 오물이라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누구나 교사를 비난할 수 있을 만큼 대한민국이 맑은 사회라고 하니 부패집단의 일원인 나도 살아남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참 이상하지 않은가? 교사가 되겠다고 공부해서 교·사대에 진학한 친구들이 그렇지 못한 친구들에 비해 인격적 결함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내가 이상한지 몰라도 교사가 되겠다고 진학한 친구들을 보면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모범적(일반적으로 말해지고 있는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이고 착한 경우가 보통인데 어째서 그들이 그렇게 부패했다고 얘기 되는 것인지. 그렇다면 교·사대에서 공부하면서 부패한 인간이 되거나 교직 자체가 구조적으로 부패한 직업이라는 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지 않은가? 이렇게 본다면 해결책은 간단해지지 않는가? 교·사대를 폐지하고 학교를 없애는 방법. 그럼 세상이 깨끗해지지 않겠는가? 그 빈자리는 학원이 채우면 되니.
학교가 문을 닫아 스승(?)이 없는 현실 속에서 학원은 웃음꽃이 피었다는 훈훈한 기사가 신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예쁜 카네이션과 작은 선물을 동반하면서. 아! 이 땅의 스승은 학원에 가있었구나. 그래서 학교에는 스승이 없었군.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많은 국민들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학교에는 스승대신 돈 밝히는 교사 나부랭이들이 넘쳐나고 스승은 강남을 비롯한 유명학원에 넘쳐난다는 것을. 이것이 한국 현실이라면 일단 인정하자. 부정 한다고 달라지겠는가. 학원의 스승들이 매를 드는 것은 고마운 일이나 학교의 교사들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폭력교사라고 비난하고 교사를 고발하거나 처벌하라고 난리를 친다. 의욕이 넘치던 교사는 현실을 파악하고 나서는 의욕을 접는다. 스승의 길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모든 교사들이 스승의 길을 포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의 두뇌 한곳에 자리 잡고 있는 스승의 모습을 지우길 바란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제대로 된 노동자 의식을 갖기를 바란다. 진정한 노동자가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있다. 노동은 가장 신성한 것이다. 우리는 교육노동자로서 노동의 신성함을 가르쳐야한다. 학창시절 아버지의 직업을 이야기 할 때 노동자라고 하면 부끄럽고 창피한 시절이 있었다.(지금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노동은 비천한 것이고 공부하지 않은 하류인생들이 행하는 것으로 배웠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지금도 공부 못하면 노동자나 된다는 말을 서슴없이 말하는 교사나 부모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육체를 가지고 노동을 함으로서 생존을 이어간다는 것은 인류의 탄생 이래 지속되고 있는 신성한 행위이다. 따라서 노동을 행하는 것, 교육노동자의 인식을 갖는 것은 가장 신성한 것이며 그 본보기는 인류의 스승의 모습이다.
한국사회 아니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 일 개인의 헌신적 희생과 노력으로 변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하는 근본적 모순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혁명적 사고 없이는 바꿀 수 없는 사회이다. 따라서 교육노동자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모든 노동자들이 이러한 모순을 깨닫고 의식을 갖게 하는 것, 즉 계급적 자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즉자적 계급에서 대자적 계급이 될 때, 교사가 노동자라는 것이 당연하며 진정한 노동자가 진정한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것처럼 교사집단이 아니 전교조가 온갖 비난과 욕설의 배설구가 되는 수모는 당하지 않을 것이다. 지배이데올기로부터의 탈의식화 교육과 계급적 자각을 하게 하는 의식화 교육을 행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의무이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스승의 날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스승의 날을 폐지하고 5월 1일 노동자의 날에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할 때 우리는 진정한 스승으로 태어날 수 있다. 하루 속히 스승의 날을 폐지할 것을 촉구한다.

4. 맺으며

한 때 교사는 성직이며 참스승이 되겠다고 생각 한 적이 있었다. 다른 모든 교육 동지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것을 바꾸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그 내용이 다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노동과 성직 무엇이 다른가? 어떤 게 더 성직인가? 굳이 따지자면 노동이 더 신성하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왜 노동자는 스승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가? 그들 모두가 스승이 아니고 무엇인가? 교사만이 스승은 아닌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모든 노동자가 스승이다. 다만 우리는 좀더 가까이 가있고 직접적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수많은 동지들은 자괴감을 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이 그러하기에 우리의 할일은 더욱 많은 것이다. 우리 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로 만드는 것, 노동자가 존중 받고, 노동해방 아니 인간해방을 이루는데 우리의 할일이 얼마나 많은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노동자로서 자각 했을 때 우리는 참스승의 길도 갈 수 있고 참스승이 될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 모두 참스승의 길을 걸으며 인간해방의 꿈을 이루어 가는 교육노동자가 되는 길에 동참해야 되지 않을까? 내년에는 스승의 날 대신에 노동자의 날에 다함께 투쟁의 기치를 올리는 그런 해가 되기를 바란다.

2006-06-13 16: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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