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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기 교수의
ꡔ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기본과제ꡕ
에 대한 비판적 검토
현광훈(정책사업위원)
민주노총은 지난 7월 18 - 19일, 이틀간에 걸쳐 '95 정책세미나를 개최하였다. 95 정책세미나 제2부는 ‘민주노총의 이념과 노선’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는데, 임영일(경남대 교수), 김형기(경북대 교수), 김세균(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소장), 김금수(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등이 발제자로 참여하였다.
이중 김형기씨 발제문을 검토대상으로 한 것은 본 발제문이 한국사회의 구조진단으로부터 민주노총의 전략적 방향까지 민주노조운동의 기본노선에 대한 이론적 틀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노선과 관련하여 중요한 쟁점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적 노자관계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가 민주노조운동의 이념과 노선 수립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 |
민주노총(준)에서 개최한 정책세미나 중 김형기 교수의 발제문은 한국노동운동의 이념과 노선이라는 면에서 쟁점이 될 만한 많은 내용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발제문이 대단히 포괄적으로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쟁점을 명확하게 정리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글은 발제문의 기조에서 주요한 내용이나 개념을 중심으로 요약․검토하여 향후 이념과 노선에 대한 보다 심화된 연구의 근거를 발굴하는데 목적을 둔다.
먼저 김형기 교수의 주장에서 쟁점사안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사회는 중진자본주의에서 선진자본주의로 발전해 가는 경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다기능 숙련 노동력과 창의적인 전문기술 노동력을 양성하는데 성공하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 경제민주주의가 실현된다면, 선진자본주의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발전도상에서 노동운동의 역할과 자본측의 인식이 전환에 따라 노동의 인간화, 민주화도 실현될 수 있다.
2) 한국사회는 군사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체제로 이행하고 있으며 이후 노동운동세력과 진보세력이 강화된다면, 진보적 민주주의(사회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현 정세의 정치지형도 ‘독재 대 민주’의 구도에서 ‘개혁 대 보수’의 구도로 재편되었다. 또한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크게 증대하고 있어 궁극적으로 신중간층이 수구세력과 결합하느냐, 노동계급과 결합하느냐가 시민사회가 민주화되느냐 보수화되느냐를 판가름할 것이다.
3) 군사독재체제가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등장했으며, 작업장내 병영적 노동통제가 해체되고 신경영혁신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현재 한국의 정치․노동정세 속에서는, 과거 유신체제에서와 같은 전투적 노조운동은 노동운동의 고립을 자초하기 쉽다. 민주노총은 유효성을 상실한 과거의 이념과 노선에 더 이상 매달리거나 연연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비인간적 비민주적 본성은 민주개혁을 통해서 완화될 수 있으며, 민주개혁이 이루어질 때 노동자들의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민주개혁은 대다수 국민의 이익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한국자본주의의 민주개혁’운동이 민주노총의 기조가 되어야 한다.
김형기 교수의 주장을 다음 세가지 측면에서 비판해 보도록 하겠다.
1. 한국사회의 발전전망과 노동의 인간화, 민주화
한국자본주의가 선진자본주의로 발전하는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창의적이고 다기능으로 숙련된 노동력이라는 것이 어떻게 노동의 인간화 ․민주화로 연결될 수 있을까? ‘노동의 인간화 및 민주화없이 단순한 노사협조를 통해 생산효율을 추구하는 축적체계로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자본도 결코 생소한 내용은 아니다. 그리고 자본은 이데 대한 자기방식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자본의 입장에서 노동의 인간화 및 민주화’는 기계의 움직임에 맞물리는 부속품이었던 임노동에서 이제는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유기적 임노동, 즉 생산과정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임노동으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본간의 경쟁속에서 사활을 같이 하고 자본이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파악하고 철저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순종적인 노동력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자본은 노동의 인간화를 요구하는 저항적 노동자들을 창의적인 다기능 숙련 노동력으로 재교육하면서 ‘순종화’하든지 아니면 이들을 주변부 노동시장으로 밀어내고 시장경쟁에 철저하게 길들여진 순종적 노동력으로 중심부 노동시장을 채워가려 할 것이다.
반면, ‘노동자에게 진정한 노동의 인간화․민주화’는 자본에 의한 임노동의 착취를 철폐하고 노동의 탈상품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보면, 생산과정에 대한 자본의 전횡을 거부하면서 노동자의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김형기씨는 한국사회의 선진화 → 생산과정의 선진화 → 노동력의 선진화 → 노동의 인간화․민주화를 노동과 자본이 상호융합하여 해결해야 할 공동의 동일과제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의 선진화에 대하여 노동자와 자본가는 각각 상을 달리하는 것으로 질적으로 차별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차별성은 계급대립의 역동성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체적으로 노동자의 대응이라는 선상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한국사회의 선진화, 노동의 인간화․민주화를 공동의 동일과제로 보는 것은 생산과정의 선진화, 노동력의 선진화를 위하여 노동과 자본간의 공존공생의 논리이며 이는 계급대립을 희석하는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현재 변화하고 있는 ‘환경파괴적 재생산구조’에서 ‘환경친화적 재생산구조’로의 전화의 경향도 구조적으로 자본의 이윤과 확대재생산을 보장하는 범위에서 가능하다. 노동운동의 압력의 주요대상도 ‘선도적 자본’보다는 과도적으로 환경파괴적 구조를 유지하면서 특별잉여가치를 추구하려는 자본 또는 환경친화적 구조로의 전화속도가 늦는 자본이다. 그리고 환경친화적 재생산구조가 일반화되는 단계에서는 노동운동의 압력이라는 것 조차도 성격이 극히 약화된다.
GR(Green Round)이 자본간의 협정과정에서는 자본간의 생태계 보존을 목표로 한 수평적 규정에서 출발하지만, 본격적인 추진․확산단계에서는 생태계보존에 대한 책임을 수직적으로도 확대하여 자본만이 아니라 노동자도 포괄하여 자본이 지어야 하는 부담을 임노동의 착취로 보상받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환경친화적 구조로의 전화는 전지구적인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이 주도하는 생태계 보존방안은 항상 ‘위기를 모면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대단히 제한적 조치라는 점에서 노동의 인간화, 민주화하고는 근본적으로 거리가 있다.
김형기씨가 제시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노-자간의 공정하고 긴밀한 공조체계를 구축하는 ‘맑고 깨끗한 자본주의체계’를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선진자본주의의 경우를 보더라도 진보적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 선진화의 실상은, 일본과 같이 자본에 종속된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하거나, 서구의 경우와 같이 관료화된 노동운동을 보장하는 가운데 성립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노동의 인간화, 민주화의 문제가 요원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한국사회의 선진화에서 한국의 독점자본은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토양의 척결을 전제로 법제도의 개선, 참여민주주의의 확대라는 선진화를 추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독점자본의 이윤추구 의지와 노동자의 인간해방 의지의 상호대립은 ‘노동운동의 압력과 자본의 인식의 전환’으로 융화되어 자본이 주도하는 선진화의 길을 가던지 아니면 이를 거부하는 치열한 노-자간의 사활을 건 투쟁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개혁 대 보수의 정치지형과
계급통제로서 시민운동의 확장
개혁 대 보수라는 현 정치지형에서 보수와 대립하는 개혁의 성격을 어떻게 부여할 수 있는가? 제도권내에서 제반 개혁정책을 실행하였으나 이는 노동자, 기층대중과는 너무도 무관하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개혁드라이브를 통해서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추진하고 있으나 명분확보 수준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노동악법이나 공권력의 개입이라는 면에서 보면 어떠한 변화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군사정권과 문민정부의 차별성을 일부분 인정한다 할지라도 정치지형의 구도가 개혁 대 보수라는 정치구도로 재편되고 있다는 주장은 개혁과 보수 각각의 주체형성과 성격이라는 측면에서 논리의 비약성이 있다.
민주 대 독재의 정치구도도 주체형성에 있어서 계급적인 민주노조운동이 급격히 발전하고 노동계급이 민주진영의 중심에 위치하므로서 계급적 성격을 내포하는 총노동 대 총자본이라는 정치구도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그 전선의 발전이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로까지 발전하지 못하여 결국 변혁(총노동) 대 보수(총자본)가 아닌 보수적 문민정부의 위로부터의 형식적 개혁인 군사독재청산으로 대치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정치지형내 나타나고 있는 개혁의 주체형성은 미약한 계급운동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그 실체도 불분명한 채 보수정치 내에서 오히려 개혁세력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현시기의 정치지형을 개혁 대 보수로 보는 시각은 총노동 대 총자본이라는 노동자, 기층대중을 중심주체로 발전하고 있는 계급운동을 희석시키는 것 이상은 아니다. 더나아가 개혁 대 보수의 정치지형은 총자본과 권력의 기반안정화를 위해 창출한 계급관리 지형에 근접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군사독재정권은 획일적 통제와 국가동원체계로서 계급통제를 유지하였으나 그러한 방식은 결국 정권(독재) 대 다수국민(민주)이라는 대립전선에 의해 무너졌다. 정치기반과 통제기제를 확고히 하고 있지 못한 문민출신의 김영삼 정권은 보수정치 밖에서의 거대한 사회세력화를 방지하는 사회(국민)분할전술으로서 시민운동을 활용하고 있다. 즉 군사독재체제가 붕괴되고 소위 문민 정부가 들어선 이후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에 의한 획일적 통제를 해소하고 시민․독점자본․권력의 다중적 통제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시민운동의 활성화는 독재에 저항하였던 다수국민을 한 묶음으로 조직된 운동세력으로 존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다양한 이익집단 또는 계급운동으로부터 자유로운 개별시민으로 존재하게 한다. 지자제의 본격화로 시민자율성은 확대되었지만 지역집단주의를 극복하기 어렵게 만들고, 그나마 소수의 시민운동조직들은 보수정당에 대한 압력단체 이상을 넘지 못한다. 시민권의 확장은 정치적으로 보수정치구도에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선거권의 확장에 머무른다. 결국 권력은 시민운동의 자율과 자치라는 명분을 부여해 주면서 상호가 견제하고 갈등하는 관계를 유지하여 계급통제의 기제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국민)분할전술로 인한 국가동원력의 약화는 국제경쟁력 강화론에 연속선상에 있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보강하고자 한다. 또한 독점자본은 이제 권력의 동원대상이 아니라 파트너로 격상되어 자율성이 증대된 독점자본이 사회(계급통제) 관리자가 되고 권력은 엄중한 법집행과 물리적 통제주체로 성격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독점자본은 국가권력에 의한 획일적 통제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아래로부터의 통제력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즉 신경영전략이라는 생산현장에서의 통제력 장악을 통하여 계급운동의 기반을 허물고 자본에 대한 임노동의 종속성을 제도적으로 고착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은 이러한 자본의 아래로부터의 통제를 벗어나는 계급운동에 대해서는 엄중한 공권력 개입을 실행한다.
이러한 계급통제의 변화는 현상적으로는 국가의 개입이 약화되고 노자간의 자율성이 점차 확장되며 시민운동이 활성화되어 일반 민주주의 확대, 노동운동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김형기 교수의 견해와는 거리가 멀다. 그 이유는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의 확대가 아니라 계급운동에 대한 통제의 새로운 형태이기 때문이다. 즉 현장에서 자본에 저항하는 노동자 계급운동은 집단이기주의라는 사회여론의 비판에 몰려 투쟁의 정당한 명분을 박탈당하게 되고 사회적으로 고립됨과 동시에 공권력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음으로서 소멸될 위기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노조진영이 주체와 성격이 모호한 개혁연합의 형태로 이러한 다중적 통제구조에 대응하는 것으로는 결코 극복될 수 없으며, 오히려 새로운 통제구도를 정착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신중간층이 수구세력을 선택하는가, 노동계급을 선택하느냐가 보수화냐 민주화냐를 결정짓는 것’으로 보는 시각은 민주노조운동진영이 신중간층을 견인하는 방향에서가 아니라 스스로 계급성을 버리고 시민운동내의 한 부문세력으로 탈바꿈하기를 희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탈색된 노동운동은 개혁 대 보수의 정치지형 속에서 보수정치세력의 권력안정에 무력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노동운동세력은 이러한 다중적 노동통제에 대하여 성급하게 시민운동영역을 개혁연합의 한울타리로 설정하려 해서는 안되며, 지금은 아래로부터의 자본통제에 전선을 확대강화해 가는 것을 당면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은 노동자, 기층민중의 독자적인 세력화에 중심에 두고 중간층 포괄전략차원에서 전선을 확대하는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개혁 대 보수의 지형이 아닌 변혁(총노동-민중진영) 대 보수(총자본)의 정치지형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3. 민주적 대안론과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성
‘가까운 장래의 실현가능한 민주적 정책대안’이란 도대체 정책수립에 있어서 어떠한 기준과 근거를 제시하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김형기씨는 ‘노동대중과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방법론에 있어서는 ‘국가정치, 생산정치, 생활정치에 참여하는 것, 주요 영역에 있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논의하고 해결하는 의사결정과정에 노동조합 혹은 노동자들이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실현가능한 민주적 정책대안’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면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로서 대중이 실천하고 투쟁할 수 있어야 하고 실리적인 성과와 축적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보면 문제는 방법론이다. 즉 참여론(경영참여, 정책참여, 지역사회의 참여등)이 현실적 실현방법이 된다.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주도하에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보장하고 이에 책임있게 기여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임노동의 ‘부분적 참여’를 용인하는데 별 부담을 갖지 않는다. 다만 임노동이 자본을 사회화하는 입장에서 ‘완전참여’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본의 속성이다. 특히 자본간 경쟁이 세계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정세 하에서 독점자본은 ‘부분적 참여’에 있어서는 적극적일 수 있으나 임노동의 입장에 입각한 ‘완전참여’에 대해서는 더욱 완고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참여’문제는 인식의 전환이라는 의지의 개념이 아니라 투쟁을 동반하는 개념이어야 한다. 현시기 한국의 노동조합은 임금수준(자본에 있어서는 인적 생산비용) 협상과 단체협약에 관한 협상도 거시적으로 ‘참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임금수준과 단체협약에 관한 참여가 의미를 갖는 것은 투쟁을 동반하고 있을 때이다.
노동의 인간화, 민주화를 목표로 하는 임노동의 ‘완전참여’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의 철저한 봉쇄와 항상 대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투쟁을 동반하지 않는 참여는 ‘현실가능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대중투쟁을 동반하지 않는 민주적 정책대안은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인식선상에서 볼 때, ‘작업장내 병영적 노동통제가 해체되고 신경영혁신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정치․노동정세 속에서 전투적 노조운동 유효성이 상실한 과거의 이념’으로 치부하는 것은 심대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노자간의 계급대립은 불가피하게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자본은 권력이라는 합법적 물리력으로 항상 무장되어 있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은 오히려 투쟁하는 조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물론 투쟁하는 조직으로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물리적인 개념으로 한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에서 지적하고 있는 노동통제의 변화 속에서는 노동조합운동이 더 이상 물리적 투쟁만으로 조직을 강화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의 전투성을 폐기하는 이념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이 전선의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세계가 자본주의로 전일화되고 자본간 경쟁이 전지구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세계정세’속에서 노동조합운동은 민주적 정책대안 마련과 함께 투쟁하는 조직으로 더욱 강화될 때 노동자의 목표가 실현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