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진단’과 ‘대응’ 서평
박 준 식(한림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90년대 한국 한국의 대기업 노조들이 직면해 온 핵심적 과제의
하나는 ‘합리화’에 대한 대응의 문제였다. 주지하는 바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대대적인
경영합리화를 추진해 왔다. 이른바 노사관계의 ‘신경영전략’은
이와 같은 합리화 전략에서 핵심적 위치를 점해 왔다.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추진해 온 합리화 전략의 성격을 노사관계적
측면에서 올바로 이해하고, 이것이 노동에 미친 영향을
전면적으로 파악함과 동시에 이에 대한 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한국 노조운동이 모색해야 할 핵심적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신경영전략, 혹은 이보다 더 넓은 의미에서
자본의 경영합리화에 대한 올바른 대응을 모색하는 것은 한국
노조운동뿐 아니라 세계의 노동조합들이 동시에 직면하고 있는
보편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합리화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들이 수행하는 자본축적 과정의 본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리화의 성격을 이해하고 이에
대한 대응 방향을 수립하는 것이 세계 노동운동의 보편적 과제의
하나라고 볼 때 이번에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가 수행한
기아자동차와 대우자동차의 신경영전략과 노동조합의 활동 및
대응 방향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것은
중차대한 의미가 있다.
본 연구보고서가 갖는 중요성은 우선 연구의 종합성과
포괄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보고서는 자본의 합리화전략,
그 성격에서부터 노동과정, 기업문화, 조합원 생활, 노조원
의식, 작업장의 일상적 투쟁, 현장의 조직활동, 그리고 집행부의
활동에 이르기 까지 합리화가 노동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전면적이고 총체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
시도되었던 어떤 실태조사보다 포괄적이다.
본 연구의 두 번째 의미는 방대한 정보량에 있다. 노동운동의
진정한 대상은 물론 기업 현장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그
현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노동운동이 현장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반이 되는 현장을 ‘블랙박스’로
남겨 두었던 것이 우리 노동운동의 문제였다면, 이 두 보고서는
이러한 현장 상황에 대한 정보를 그 어떤 경우보다 효과적으로
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참고자료가 된다. 독자들은 이
보고서를 한국 대기업의 조직 현장에 대한 이해를 도모함에
있어서 반드시 참고해야 할 ‘백과사전’으로 인식해도 무방할
것이다.
두 보고서의 세 번째 의의는 이것이 던져주는 메시지에 있다.
한마디로 신경영전략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상실되었던
현장에 대한 자본의 통제력을 재구축하고 노동조합의 현장
결합력을 약화시켜 온” 새로운 ‘노동통제전략’이며
체계적이며 입체적인 노동통제 양식이고, 궁극적으로 노동에
대한 새로운 포섭과 자본의 유연적 축적 전략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가 제시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는 이러한
경영합리화에 노동운동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민주적
노조운동의 현장 기반은 급속히 와해될 수 있다는 경고일
것이다. 이 보고서의 주요한 분석들을 살펴보면 신경영전략에
대한 노조의 현장에 대한 대응은 상당한 문제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노조가 ‘조합원들의
실리’를 협소하게 인식하고, 이 “‘실리’를 단기적
임금인상이나 기업내 복지에 한정함으로써 노동강도의 강화에
따른 노동자 건강문제, 직무불안이나 고용불안 문제, 현장 통제
강화의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지적은
깊은 음미가 필요한 대목이다.
신경영전략에 대한 노조의 대응 방침은 무엇인가? 보고서에서는
그 방향을 노조의 현장 조직력 강화에 두고, 이를 복원하고
강화하기 위한 조직 활동에 두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노조의 민주적 운영을 강화하고, 신경영전략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인식 하에서 현장 투쟁을 조직화할 수 있는
‘대안적 원리와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합의 일상적 대응 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일상활동’과 ‘조직활동’이 형식적인 임투, 단체협상보다 더
중시되어야 하며, 신경영전략이 총체적 성격을 갖는 만큼 이러한
총체적 내용들의 구석 구석에 대한 노조의 적극적 개입, 특히
노동력 이용 방식과 생산과정, 등에의 개입과 더불어 노조의
전문적 역량 강화가 필수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경험을 보편화시켜 해외 현지공장 등의
노조 등과의 교류를 학대하면서, 노조운동의 국제적 연대의
가능성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가 제시하는 대응의
내용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두 보고서가 갖는 분석의 중요성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방대한 현장 조사와 분석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에서
제시되는 현실적 정책 대안들은 보완의 여지가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보고서의 정책 대안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 첫 번째는 방대한 조사와 체계적인 정보 수집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제시되고 있는 현실적 처방은 아무래도 ‘나무’와
‘숲’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다시 말해
보고서가 제시하는 현실 정책들이 지나치게 작업 현장에 국한된
내용들만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들이 합리화에
대한 노조의 대응 방향을 전체적으로 인식하고, 시각을 잡아가는
데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보다 본질적인 것이다. 필자는 이 두 보고서가
설정하는 노조운동의 대응은 합리화에 대한 원론적, 전통주의적
반대론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지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합리화에 대한 노동의 대응
전략을 간략히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합리화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 전략은 크게 세 가지
수준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고자 한다. 그 첫 번째는 합리화가
노동자들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극소화시키고, 이에 반대하는
투쟁을 조직화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전략은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을 합리화의 결과로부터 보호하는 ‘보호적
전략’(protective strategy)이라 할 수 있다. 합리화에 대한
노동운동의 대응은 대부분 이 보호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전략은 자본 합리화로 인한 부정적 결과들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합리화가 노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맞서 노조의
조직력을 유지, 강화하기 위한 전투적 투쟁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합리화에 대한 근본적 대응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현실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갖지 못한 전략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또한 이 전략은 기본적으로 수세적 성격이 강하며,
생산 체제에 대한 대안적 모델의 상을 갖고 있지 못하다.
두 번째 전략은 합리화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거나 이에 대해
소극적 반대의 입장을 취하면서 합리화의 부정적 효과를
분배투쟁을 통해 상쇄하는 전략인데, 우리는 이를 ‘분배적
전략’(distributive strategy)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전략은 한국의 대기업에 널리 퍼져 있는 작업장의 교환 관행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은 컨베이어의
가동률이나 속도를 증가시키는 데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대신
이로 인한 생상성 향상 효과의 일부를 임금 인상으로 상쇄하는
전략이다. 이 경우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의 악화를 감수하지만,
임금 인상 효과를 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작업 현장에서
노동 강도를 강화하는 대신 이를 임금 인상 등으로 보상하는
교환관계는 기존의 포드주의적 작업조직을 온존 강화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며, 도리어 이를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근로조건이 열악한 공정의 하청화나 임시직 채용에 대기업
노조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대신 기존 노동력의 고용 안정을
기하는 전략 역시 이러한 분배적 전략의 한 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결과교섭’(effect bargaining)의
성격을 벗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합리화에 대한 예방적 대응이
될 수 없으며, 장기적으로 노조의 조직력에 대해서도 긍정적일
수 없을 것이다.
세 번째 전략은 합리화의 문제를 산업민주주의와 노동인간화의
관점에서 노조의 조직 과정에 대한 적극적 참여를 통해
노동운동의 과제들 중의 하나로 내재화시키고, 이에 대한 참여적
대안을 모색하는 전략으로 우리는 이를 ‘통합적
전략’(integrative strategy)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전략은 합리화의 부정적 결과에 대한 반대와 결과적 대응의
차원을 넘어 합리화 이전의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적극적
참여, 그리고 노동과정 자체에서 노동자 숙련의 향상을 통한
새로운 노동 주체의 형성 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산업민주주의와
경영참가를 통한 노동의 연대성,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노동의
형성을 지향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생산의 주체인 노동자들이
작업 현장을 포함한 조직과정에 전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참여를
통한 작업 현장 민주주의의 실현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 노동의
참여를 통한 산업민주주의의 실현은 노동인간화와 주체적이고
창의적인 노동조직, 노동력의 형성에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통합적 전략이 지향하는 노동인간화는
작업조직의 인간화와 근로조건의 개선이라는 ‘보호적’ 측면과
더불어 숙련의 향상과 노동자들의 능력 증진을 위한 적극적
투자와 교육훈련을 포함하는 ‘형성적’ 측면을 동시에 포함하는
확대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노동의 존재 조건을
항구적으로 개선하고 향상시키며,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생산적인 작업 현장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산업민주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통합적 접근이 노조가 취할 수 있는 세 번째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스웨덴이나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노조의 전략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고 판단된다.
이처럼 산업민주주의와 노동인간화에 입각한 통합적 전략의
관점에서 볼 때 합리화에 대한 한국 노조의 대응들, 다양한
연구들이 제시하고 있는 정책적 대안들은 일정한 한계를 안고
있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노조의 접근은
임금이나 근로조건, 복지와 같은 분배 영역에서의 노동자 상태
개선을 합리화에 대한 소극적 수용과 교환하는 형태로 진행되어
왔으며, 연구 보고서들이 제시하는 정책적 대안은 보호적 전략
수준을 넘어선 적극적이고 형성적인 정책들을 포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과정에서 나타난 노조의 대응 역시 ‘사전적
예방’이 아닌 ‘사후적 저항’, ‘결과 교섭’, 작업장
노동강도의 ‘수량적 교섭’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합리화에 대한 전국적 수준의 교섭 역시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합리화에 대한 노조의 대응은
가장 수준높고 전투적인 경우에 조차 현장 대의원들, 혹은
전투적인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작업속도, 노동강도, 감원 등을
규제하는 정도의 내용을 갖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조
차원에서의 조직적 대응을 가장 체계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기아자동차의 경우에도 작업장 문제를 전담하는 다양한
공동위원회, 혹은 소위원회들의 조직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으나
아직은 사전적, 형성적 측면 보다는 사후적, 사안별 대응의
수준을 넘어선 것이 아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볼 때 연구소의 보고서들이 제시하는
노조의 대응 전략 역시 보호적, 분배적 차원의 문제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으로는
새롭게 전개되는 고도의 자본합리화 전략에 대한 노조의 대응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합리화가 자본의 역사와 함께
끊임없이 새롭게 전개되는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성격의 문제라
했을 때 단위 기업 수준에 초점을 둔 전투적 반대투쟁이나 노조,
혹은 작업장의 개별적 노력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결국
노조는 작업 현장 차원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경영 참여를 통해
합리화를 산업민주주의와 노동인간화의 틀 속에 통합시키는
문제의식을 지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개별 노조 수준에서
처리되기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연대적’,
‘조정적’ 대응을 모색해 나아가야 할 것이며, 이러한 대응들
속에는 노동자 경영 참여, 숙련의 향상, 대안적 작업조직의
현실화와 같은 작업 현장 수준의 정책들과 더불어 노동운동의
산업별 조직화, 정치적 참여, 그리고 국제적 연대의 문제의식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연구소의 보고서들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모색했을 때
조사의 결과를 현실과 더 밀접히 결합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