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현장에서 미래를 > 연재-기획 > 목록보기 > 글읽기

 
노무현 정권과의 한판 승부, 평택과 한미FTA
 정세와 초점

현장에서 미래를  제120호
배성인

1. 노무현 정권의 모순된 것의 조화

사상 최악의 여당 참패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누적된 불신과 민심이반으로 참패 결과를 빚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물론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피습 사건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선거결과가 상식있는 사람들에게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무능하고 개혁의지가 실종되었다는 것은 이제 세상 사람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상식이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신자유주의의 신봉자가 되어 비정규직 문제, 한미 FTA 졸속 추진, 경찰과 군사력을 동원한 평택 미군기지 강행, 새만금 방조제 마무리 등 ‘역사적인 대형 사업'을 추진하여 민중의 비판과 저항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정치도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킬 뿐 아니라 교육, 의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을 상품화하고자 한다. 그런 측면에서 노무현 정권은 탁월한 역량을 보이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 역시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의 중앙정치와 환상의 짝패가 되어 민중의 삶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에 의해서 부침을 거듭하는 가운데 노무현 정권이 역동적으로 격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한편으로는 평택 침탈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그리고 한미 FTA를 통해 한미 동맹의 끈을 더 조이면서 미 제국주의의 탐욕에 힘을 보태주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으로부터의 개성공단을 인정받아 남북관계를 주도하려는 집요함을 보여줌으로써 이들 양자가 상호 충돌하여 한반도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들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은 더욱 강력한 보수/수구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노무현 정권의 유약하고 온건한 추진방식과 속도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 패거리의 배후에는 자본이 독기를 품고 근엄하게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자본이 주도하는 남북관계의 진전이 민중의 진정한 평화와 거리가 멀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자유무역과 군사패권의 회오리는 인권과 평화에 대한 공격을 동시에 수반한다.

현재 한반도는 과거의 낡은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예측불가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외부의 충격에 대해 내부의 세력이 조응하면서 상호 모순이 충돌하여 폭풍전야의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월 7일 몽골 등 3개국 순방을 떠나면서 평택의 불법시위와 폭력은 결코 용납하지 말고, KTX 여승무원처럼 선거기간을 이용해 집단이익을 관철하려는 행동에 대해서도 엄정 대처하고, 한미 FTA 원정시위도 불법이므로 정부는 어떤 보호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5월 12일에는 부임된 지 한 달도 안 된 한명숙 총리가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용산미군기지의 이전은 한 나라의 수도 서울 복판에 120여 년간이나 외국군대가 주둔해온 역사를 청산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1988년부터 우리가 요구하여 추진해온 사안”이라면서 “한미동맹을 공고히 유지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민변 출신 대통령이, 여성민우회, 여성단체연합 출신의 국무총리가 최근 평택 투쟁과 관련해 쏟아낸 발언들로서 과거의 군 출신 대통령이나 장관들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노무현 정권의 반민중적/반인권적/반민주적/친미사대주의적/친자본적 성격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첨병임을 확실하게 드러내었다.
한마디로 정부가 하는 일에 딴죽을 걸면 재미없으니 알아서들 하라는 소리다. 평택 민중들이, 비정규노동자들이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는지, 한미 FTA를 왜 반대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것을 틀어막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2. 5월 평택 투쟁, 제국과의 한판

1) 미 제국주의에 대한 자발적 복종

평택 투쟁의 본질은 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잘못된 협상과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미국의 세계 및 동북아 전략이 깔려 있으며, 그 핵심이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평택이 그 출발점이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미국의 동북아시아에서 패권 강화하는 전략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동북아 질서를 절대적 힘의 우위에 기초하여 강제적으로 수립하려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lobal Posture Review, GPR) GPR과 군 변환(transformation)이 미국의 신군사전략의 핵심이다. 군 변환은 미군을 언제 어디서든지 전투가 가능한 ‘규격화된 군’으로 바꾸는 것이다. 스트라이커 전투부대가 대표적이다.
에 따라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첨단무기로 가볍게 무장하여 신속하게 불확실하고 다양한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즉 주한미군을 좀 더 빠르게 좀 더 가볍게 좀 더 정밀하게 만들어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군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서 주한미군은 ‘붙박이 군’에서 ‘기동타격대’로 변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지난 1월 19일 한미 양측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를 하였다. 미국의 세계군사 전략은 이른바 ‘선제공격독트린’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한 주한미군은 동북아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 발생하는 전쟁에 공격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원거리 투사능력이 향상된 군대와 이동거리가 늘어난 무기체계의 개발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이 세계 주요 분쟁의 발진기지로 이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발진기지의 중심이 평택인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중국과 대만 간 분쟁 등은 물론 북한문제와 관련해서 주한미군이 투입되고, 한국 내 미군 기지가 이들의 발진기지가 됨으로써 한국이 실질적으로 개입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른 바 연루(entrapment)의 위험이다. 현재의 미·중 관계를 고려할 때 실현가능성은 낮은 편이지만 최악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시나리오가 우리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평택에 집중하는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해외 군사기지들만으로 작동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 기지들을 통해 세계를 통제하고 석유 등 전략자원과 경제잉여를 무제한으로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군사기지 유지에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지난 2003년에 시작된 주한미군 기지이전 협상에서 2006년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이르는 지난 3년간의 한미관계에서 노무현 정권은 사실상 미국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였다. 정부는 ‘처음으로 협상다운 협상을 했다’고 하였지만 결국 자발적 복종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결과 용산 미군기지와 미 2사단 등의 평택으로의 확장 이전은 단순한 미군기지 이전이라는 공간이동의 의미가 아니라 주한미군의 역할변경과 전략적 유연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 되었다. 그것은 미 제국주의에 대한 조건반사적이고 무의식의 습관 속에서 나타난 자발적 복종의 대표적인 단면이다.
우리는 한국 현대사 질곡의 정점에 미국의 정책과 미국 ‘국익’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음을, 그리고 그 토대에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놓여있음을 잘 알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증하고 있고, 농촌은 피폐화를 넘어 붕괴 직전 단계에 처했으며, 생태적 토대는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정직하고 소박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려는 민중들의 생활 터전을 뿌리째 흔드는 신자유주의 공세의 원천이 미국 자본의 요구라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자본은 쾌락과 안락을 바라는 대중들의 욕구를 부추김으로써 그 영역과 몸집을 불려나가지만, 자본의 뒤를 봐주는 좀 더 큰 힘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군사력이다.

2) 권력의 야만과 폭력의 일상화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 FTA를 모두 한국정부의 끈질긴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정부의 친미사대주의는 심각한 지경이다. 지난 1월 19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2월 3일 한미FTA 협상 개시 선언, 5월 4일 평택 침탈, 5월 9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개성공단 방문 등 한-미 간 정치·경제·군사 분야에서의 일련의 변화들이 발생한 시점이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 인권유린과 민주주의 위기
국가권력의 평택 침탈은 인권을 유린하고 한국의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지난 3월 6일부터 5월 4일에 이르기까지 4차례에 걸친 평택 침탈에 전투경찰을 비롯하여 용역과 군을 투입한 것은 민중을 적으로 내모는 비민주적/반민중적/폭력적인 작태인 것이다. 그 동안 평택에서 자행된 인권침해는 상당히 심각하고도 광범위해서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대표적인 사례 몇 가지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군의 곤봉을 사용한 폭행, 군사보호시설구역의 편법 설정, 농지 무단 침탈 그리고 철조망을 설치하고 주민들의 통행을 통제하였다. 또한 행정대집행법이 허용하고 있는 범위를 넘어 폭력적으로 대추분교를 파괴하였다. 농사에 필요한 농로와 수로, 양수장 등을 파괴하였으며, 경찰의 시위대 폭력 진압, 시위대의 연행과정에서 여성에 대한 광범위한 성추행 파주경찰서의 경우에는 여성에 대한 알몸수색을 진행하였다고 한다.
, 불법적인 무더기 연행 등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평택 국가폭력·인권침해 진상조사단, 『평택 국가폭력·인권침해 1차 진상보고서』(2006.5.10).

따라서 국가권력의 평택 침탈은 계획된 대규모의 인권침해를 역할 분담하여 실행에 옮긴 것으로 국가폭력 범죄행위의 종합선물세트였다. 이는 국가가 권력을 작동함에 있어 갖추어야 할 안전과 인권 그리고 민주성을 생략한 채 스스로 폭력집단으로 전락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에도 평택의 대추리와 도두리 지역은 인권 유린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http://antigizi.or.kr)를 참조.
불심검문, 통행제한, CCTV를 통한 주민감시는 일상화되어 있다. 마을을 겹겹이 에워싼 전투병력에 의해 마을로 진입하는 통로를 봉쇄하고 불심검문을 일상화하면서 주민들을 감시와 통제 속에서 파편화/원자화 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불심검문도 모자라 대추리 입구 전봇대에 CCTV를 설치, 주민들을 감시하는 등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다. 경찰은 CCTV설치에 필요한 주민동의나 설치공고 등의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지난 5월 11일에는 도두리의 비닐하우스와 콘테이너가 군에 의해 일방 철거되는 바람에 땅 속에 묻힌 상수도관이 파괴되어 도두리 일대에 식수가 끊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매일매일 군용헬기들이 저공비행으로 주민들을 위협하여 심리적인 공포와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렇게 노무현 정권은 주민들의 인권 유린을 일상화하고 있으며, 불법적으로 사유재산을 훼손하는 등 일방적/비민주적인 행위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고 있다. 국가가 민중의 삶과 생존을 해결해주지는 못할 망정 이들의 삶을 파괴하는 이상 민주주의는 더 이상 존립할 근거를 지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006년 5월 민중을 향한 노무현 정권의 군사작전이 ‘공화국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2) 평택과 민중들의 디아스포라 대문자의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은 본래 ‘이산’을 의미하는 그리스 어이자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거주하는 이산 유대인과 그 커뮤니티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유대인뿐 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팔레스타인 등 다양한 ‘이산의 백성’을 보다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소문자 보통명사(diaspora)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글에서는 국가권력, 초국적자본, 미 제국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장경제 글로벌리즘 등 몇 가지 외적인 이유에 의해 육체는 자기가 속해있던 공동체에 있지만 의식은 의도적 강제적으로 이산을 강요당한 사람들 및 그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용어로서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사용하고자 한다.

이번 평택 투쟁은 국가권력이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야만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보수/수구적 언론들이 앞장서서 노무현 정권과 환상의 콤비가 되어 강경 진압을 부추기며 민중들을 강제적으로 이산시키는 것이었다. ‘보상론’과 ‘외부세력론’을 들먹이며 남한의 민중운동 진영을 생이별시키는 디아스포라를 생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5월 8일 기사를 보면 “주민 대책위 핵심 간부들의 보상금 최고 액수는 27억 9000만원이며 지도부 평균 보상금은 19억 2000만원”이라면서 “기지이전 반대 주민 중 범대위나 팽성대책위 등에 참여하고 있는 지도자급들도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일보가 팽택 주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익’ 외에는 인간이 행동하는 동기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조선일보 스스로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똘마니’이면서 자신 역시 ‘이익’ 창출에만 골몰하기 때문이다.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5월 5일 “백만장자가 생존권 위협을 주장한다”면서 주민들의 강제수용 반대의사를 보상문제로 폄훼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폭력적인 공권력을 사용하기에 앞서 주민들을 설득하거나 이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것도 아니다. 미국과의 협상결과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미군기지 확장을 위해 평생을 살던 곳에서 나가라고 요구할 뿐이었다.
더욱 가관인 것은 5월 4일의 군 병력 투입에 대해 “하도 반미 분위기가 심하니 그런 방법도 일리가 있다”는 송영선 한나라당 의원과 “일부 외부 단체가 들어가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조성태 열린 우리당 의원 등 국회의원들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다. 또한 조선일보는 5월 8일 기사에서 “반미시위 핵심은 한 명도 안잡혔다”면서 5월 15일 <반미·좌파 세력의 ‘평택 속셈’ 국민은 바로 봐야>라는 사설에서 “투쟁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투쟁의 화력을 키우는 연료로 평택사태를 이용하고 있다. 대추리 국민들은 볼모일 뿐이다”라고 선동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도 5월 15일 <붉은색의 환희와 슬픔>이란 칼럼을 통해 “지난 주말에도 서울과 평택에선 반미의 낡은 이념으로 채색된 그들의 ‘붉은 깃발’이 나부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보상론’과 ‘외부세력론’을 들먹이는 논리는 “사람의 모든 행위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기저에 깔고 있다. 진정 팽택 주민들이 더 많은 보상을 원한다면 투쟁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640여일(6월 3일 기준) 동안 이어진 촛불집회, 대추분교의 처절한 파괴 등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경제적으로 셈을 해봐도 2005년 12월 말, 국방부가 앞서 25만 평을 수용하면서 보상액으로 산정한 평당 약 6만 7천원 정도의 두 배가 넘는 15만원의 보상액을 받아들이거나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것이 최선이다. 실제 평택 주민들이 더 많은 보상을 원한다면 국방부의 토지수용결정 이후 ‘수용재결의’를 요구했어야 하나, 그들은 보상 문제로 ‘수용재결의’를 요구한 적이 없다.
정말 상식적인 수준에서 한 국가의 정부가 왜 이리 치졸하고 졸렬한지 한심스럽다.
또한 정부와 보수/수구 언론들은 이번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을 ‘반미세력들이 주도하는 공안사건’으로 몰아가고 있다. 평택 주민들 의사와 관계없이 외부 불순세력이 미군철수를 위해 기지이전 반대운동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그들을 친북 좌파요 반미주의자로 낙인찍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행위를 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로 왜곡 선전하고 있다.
그러면서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이 한미 간의 합의와 국회의 비준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합법적인 국책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평택주민을 비롯하여 이들과 연대하는 민중들을 국책사업에 반항하는 집단이기주의 세력으로 규정짓는 것이다. ‘국책사업’은 말 그대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전체 차원의 사업이자 문제를 말한다. 그러나 국책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사업의 대상이 국가의 구성원이자 주권자인 민중이라는 것이며, 국가는 단지 민중을 위해, 민중이 낸 세금으로, 민중의 동의를 받아, 민중을 대신하여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이러한 원칙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도 주권자인 민중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기망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행사한 권력의 비합리/부적당/비정당성을 은폐시키기 위해 이를 폭로하는 평택 주민들 및 이들과 연대하려는 모든 민중들을 온갖 추잡하고 교활하며 폭력적인 수단으로 탄압했다.

자본의 이해를 충실히 반영하는 보수/수구적 재벌언론과 무사안일이 최고의 덕목인 관료조직은 기본적으로 단순/무지몽매하다. 또한 인식능력에 한계가 있고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들이 “사람들에게는 이익이 아닌 ‘노동, 평화, 환경, 안정, 생명, 인권’ 등과 같이 경제적 이익을 넘어선 가치를 추구하면서 만족과 행복을 얻으려는 욕구가 있다”는 민중들의 보편적인 상상력을 어찌 이해하겠는가. 이들 가치를 인정할 인식상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보수/수구언론이나 정부는 범대위에게 본질을 비껴간 ‘외부세력’ 꼬리표를 씌우려는 것이다.

그런 보수/수구 언론과 정부가 ‘외부세력’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외부세력’들이 과연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을 통해서 얻는 이익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이다. 평택에서는 지배계급이 강조하는 ‘반미’ 가치는 목소리가 작다. 평택은 매향리, 부안 그리고 새만금 등에서 각각 주창되었던 평화, 생명, 인권, 환경, 통일, 신앙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들이 결집되어 있는 곳이다. 이 역시 ‘이익’과는 관계가 없는 가치들이다.
한편 노무현 정권과 보수/수구 언론들의 평택에 대한 왜곡된 대국민 선전 선동이 남한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지역 이기주의 운운하며 본질을 왜곡하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미국에 대하여 맹목성을 보이며 미국인보다 더욱 미국적인 사람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람들, 힘 센 미국 앞에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는 나약하고 졸렬한 사람들, 지배계급의 이익 창출을 위해 그들로부터 떡고물을 조금이라도 받아먹으려는 기생 인간들, 정부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무력하게 항복하는 사람들, 우리사회에 이런 사람들 많다.
이들은 대추리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며, 자신들과는 무관한 한적한 시골마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에게는 평택 주민들이 죽건 말건 상관없지만 자신들의 평안과 안전을 지켜줄(!) 미군이 그 쪽으로 이전해야하니까 평택 주민들이 자리를 터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 평택 투쟁과 시대정신 그리고 FTA

1) 국가안보제일주의에 대한 도전

평택 투쟁이 평택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문제인 것은 안보를 가름하는 핵심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가안보’는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 가치로서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면서, 재산권뿐만 아니라 모든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안보제일주의가 이번 평택 투쟁을 통해서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박순성, “‘대추리 사태’는 ‘한반도 통일’에 무엇을 시사하나”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2006.5.27).
평화권과 생존권의 이름으로.
국가안보제일주의는 전통적 관점에서의 정치·군사 위주의 안보 개념을 말하는 것으로서 아시아에서는 미국의 한국 및 일본과의 안보 동맹관계를 중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안보관에 대한 도전은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위한 평택지역 미군기지 확장 이전이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지배계급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정당성의 근거이자 상습적으로 강조해 마지않는 한반도의 안보를 근본적인 위험에 몰아넣고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의 분쟁지역에 투입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도 자유롭게 차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의사와 상관없이 국제적 분쟁에 휘말려 들 수밖에 없다. 이런 합의는 ‘미국이 중국과의 군사 충돌 시 주한미군을 투입하고, 이에 대응해 중국이 주한미군 기지를 공격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국방부는 철도, 항만, 도로시설 등의 조건 때문에 평택이 미군기지 이전지로 최적지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물론 미국에게 평택이 주한미군 기지로서의 최적지임이 분명하지만 우리에게는 한반도 및 동북아 불안의 최적지이다.
위 시설들은 산업 및 거주택지 조성에도 유리한 조건이다. 더욱이 주한미군의 군사력이 평택으로 총집중되면서 중국의 군사적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군사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이 한반도의 안보는커녕 세계평화를 심각히 위협하는 행위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결국 평택지역 미군기지 확장 이전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상식이 있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자,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사전략에 반대하는 운동임을 알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평택 투쟁은 국가안보제일주의에 저항하는 평화권·생존권 운동이다. 전통적인 한-미동맹이 미군기지 이전·확장을 계기로 충돌한 것이다. 국가안보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는 앞으로 정부가 안보영역에서도 국민들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며, 또한 평화의 관점에 기초한 새로운 안보관(인간안보)이 전통적인 안보관에 도전하여 대체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안보이다.
2) 국가권력에 대한 불복종

미군 기지를 둘러싼 갈등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예외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특히 평택 지역처럼 미군기지 확장 용도로 소중한 땅을 내놓으라는 정부에 주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지금의 평택은 결코 평택 주민들만의 평택이 아니다. 평택은 이제 주민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한반도 평화와 세계 평화의 성지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런 평택을 군부대를 동원해서라도 강제 점거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의 의지를 꺾고, 평택을 미군에게 온전하게 바치려 하고 있다. 또한 이것은 대추리 황새울에서 생존하고 있는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전역 민중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지역에 대한 미군의 영향력 강화는 곧바로 우리들의 삶과 문화가 미국의 자본에 더욱 예속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권력은 민중으로부터 나온다. 국가의 권력행사가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민중들의 동의 없이 행사된다면 그것은 불복종을 정당화시켜 주는 것이다. 평택 투쟁에서는 잔혹한 행정대집행이 끝난 바로 다음날 5월 5일, 철조망을 끊어낸 대중들의 불복종 투쟁이 전개되었다. 하지만 민중들의 비타협적인 불복종 투쟁이 오히려 온갖 기회주의 세력들로 하여금 이를 불법과 폭력으로 매도하기 시작하였다.

지배계급들은 민중들의 불복종과 저항을 공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하겠다고 협박하지만 오히려 ‘인민주권’의 원리에 도전한 국가권력이야 말로 반동적인 폭력세력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가 폭력을 전횡할 때 민중들이 의지할 수 있는 최종적 권리는 저항권이다. 그런데 이 저항권의 발동을 부정하면 민중들의 투쟁에 의해 쟁취한 민주주의 시대는 다시 보수 반동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다.

3) 5월의 평택과 광주-쌍방향의 동일성

한국사회에서 5월은 푸르름이 가득 찬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의 5월은 핏빛으로 물들곤 한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그랬고, 80년 5월 광중민중항쟁이 그랬고, 91년 5월 투쟁이 그랬고, 2006년 5월 평택 투쟁이 그랬다. 80년 5월이 2006년 5월을 구성하고 있으며, 5월 평택 투쟁은 ‘현재’를 구성하고 있다.
우리는 이번 평택 투쟁을 통해서 80년 5월을 보았다. 권력의 야만과 폭력을 보았다. 전두환의 얼굴에 노무현의 얼굴이, 군사독재위에 신자유주의 독재가 겹쳐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배후에는 언제나 미국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은 중심에서 빠져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남한의 민중과 국가권력뿐이다.
5·18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이란 반독재 반외세 정신으로서 군부독재와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자주와 민주주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평택 투쟁도 자주와 평화, 민주주의와 인권 투쟁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무엇보다 광주와 평택의 구조적 동일성은 양자 모두 지배계급이 사활적으로 추진하는 반동적 질서 재편과 정면으로 대립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배계급은 잔혹한 폭력과 막대한 이데올로기 공세를 취하고 있다.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과 철저한 계획 따라 강경 진압을 보이는 반면, 피지배계급들은 상당히 소박하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려고 한다. 이것이 적극적인 저항과 소극적인 굴복 등으로 나타나 내부의 교란이 요인이 되며, 이를 틈타 기회주의가 침투하여 상황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도 동일하다.
색깔론은 여전히 판치고 있다. 80년 광주나 2006년 평택이나 조중동 같은 수구언론들은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정당한 저항을 북한의 간첩과 불순세력의 사주에 의한 폭도들의 폭동으로 몰고 가 선량한 민중들에게 색깔론을 덧씌웠다. 더욱이 보상금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주민들을 돈 밖에 모르는 파렴치범으로 몰고 가는 탐욕론까지 가세한 것이다.
생존권적 요구와 민주적 열망, 국민에 대한 무시, 미국의 비호와 압박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 현재 평택은 본질적으로 26년 전 광주와 동일하다.

4) 평택 투쟁과 한미FTA-무장화된 세계화

평택 투쟁의 본질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전략이 민중들의 저항과 충돌한 지점이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에 따른 자본의 위기는 지역블록간의 긴장과 맞물려 ‘무장화한 세계화’라는 군사적 긴장으로 전이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 FTA 추진과 한미군사동맹의 재편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한미 FTA 저지투쟁과 평택 투쟁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미 제국주의는 각 대륙의 군사정치적 요충지에 FTA를 체결하면서 정치군사적 동맹(예속) 체제 강화와 FTA를 통한 경제 동맹(예속)을 결합시키고 있다. 그럼으로써 미 제국주의의 경제·정치·군사적 패권화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 역시 이러한 미 제국주의의 의도에 충실히 조응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를 통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구조조정을 완결 짓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및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통해, 동북아에서의 미 제국주의의 패권구도에 남한을 편입시키려 하고 있다. 이 하위동맹체제 아래서 남한자본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군사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을 공고히 함으로써 북핵문제를 포함한 남북관계에서 노무현 정권이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구상 아래, 미 제국주의의 패권전략에 적극 부응해 들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평택 투쟁은 한-미 FTA 저지 투쟁과 같은 지점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공동 투쟁전선이다. 이들 투쟁은 남한의 민중뿐만 아니라 북한의 민중 모두를 살리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투쟁이다. 또한 이들 투쟁은 미 제국주의와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군사화에 맞선 투쟁이며, 노동자계급과 전체민중운동이 함께 싸워야 할 중요투쟁이다.


4. 민중들의 끝이 없는 이야기

비정규직 노동법, 노사관계 로드맵, 전략적 유연성 그리고 평택 투쟁과 한-미 FTA는 별개의 사안이 아니다. 이는 모두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다른 측면들일 뿐이다. 우리는 자본과 국가의 폭력을 평택에서 보고 매일매일 FTA를 통해서 본다.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 직후 부시는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 혜택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규정하고, “FTA 협상은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개입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미국이 한-미 FTA 문제를 단순한 경제적 문제로 접근하고 있지 않으며,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미국은 남북관계에서 자신들의 요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다. 해서 한-미 FTA를 수단으로 한국 경제를 더욱 철저히 완벽하게 틀어쥐려고 한다.
부시 정권의 대한반도 정책과 동북아 정책이 우리의 국익과 일치한다면 Win-Win 게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천만에 만만에 콩떡, 언감생심이다. 미국에게는 축복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다. 한-미 FTA가 21세기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국운을 결정하게 될 세기의 협정이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다. 평택 투쟁에서 나타났듯이 현재 한국 사회는 주민의 자율적 영농의지와 주거 선택이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기본마저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투쟁의 승패는 평택과 한-미 FTA 투쟁에 달려있다. 조직의 문제와 대중문제를 포함하여 투쟁의 접근방식과 내용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한국의 지배계급은 지금까지 자본과 미국에 대해서 굴욕적이었다. 천박하고 비굴한 삶의 향연이었다. 강자에게는 항상 머리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었다. 이들과 함께 우리 민중들도 약자라고 도매금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초국적 거대 자본과 제국주의의 착각이다. 항상 약자만이 강자에게 무릎을 꿇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거칠고 힘있고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실상 가장 두려운 사람은 ‘큰 힘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둘 줄 아는 사람’인 것이다. 바로 이 땅의 민중들이다. 세상에는 정해진 것들이 꽤 많다. 하지만 끝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민중들의 방식으로.

2006-06-13 17:14:02

의견글쓰기 프린트하기 메일로 돌려보기
이 글에 대한 의견보기  다른글 의견보기
아직 올라온 의견글이 없습니다


| 목록보기 | 윗글 | 아랫글 |

(구)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100-272) 서울시 중구 필동2가 128-11 상전빌딩 301호   Tel.(02)2277-7957(팩스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