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론
국제노동조합조직
정병기(해외연구원, 베를린자유대 정치학 박사과정)
서 론
국제연대를 조직할 필요성은 공동의 적을 상대할 때 구체화된다.
서로의 이익을 쫓아 이합집산하고 합종연횡하는 것을 연대라 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연대의 참모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노동자 국제연대의 대표적 예를 가려 그
궤적을 추적함으로써 경험적 교훈을 추려 본다. 국제연대
조직화의 가장 앞선 예는 2차대전 직후 성립된
세계노조동맹(WFTU)과 그에 대응하여 건설된
국제자유노련(ICFTU)이었으며, 그 통합과 분열의 끝에 상대적
성공을 거둔 예가 유럽노조연맹(ETUC)이다.
W F T U
WFTU 건설 노력은 1941년 히틀러의 소련침공이 있은 직후
영국노총(TUC)의 제안에 따라 영국-소련 노동조합회의가 구성된
데서 시작된다. 그 후 1943년 소련노조들의 제안과 영국노총의
동의에 따라 약 2년 동안의 준비작업을 거친 후 WFTU가
건설되었다. 이로써 1945년 가을 WFTU는 사민주의적 경향의
노조들과 네덜란드 NVV 등 영국노총(TUC)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비공산계 노조들과,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프랑스의 CGT와
이탈리아의 CGIL 및 라틴아메리카의 CTAL을 비롯한 공산주의
정파노조들, 그리고 미국 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CIO까지
총괄하는 통합조직으로 공식 발족하였다(위원장은 프랑스 CGT의
루이 사이앙 Louis Saillant, 1969년까지 재임). 그러나 당시
반공이념을 고수하는 미국노조연맹(AFL)의 가입은 저지되었다.
내부적으로도 공산계와 비공산계 간의 협력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는 항상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었다. WFTU 내의 서구
블럭으로서 NVV와 TUC 및 CIO는 마샬플랜과 관련된 AFL의 정책을
지지하는 등 이중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냉전의 시작은
통합조직의 내부분열을 심화시켜갔다. 결국 마샬플랜의 선별적
지지를 주장하는 서구블럭 노조들은 48년 독자적인 모임을 갖고,
49년 1월에는 WFTU 중앙집행위원회를 퇴장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하여 분열은 선언만을 남겨놓은 상태가 되었다. 결국 같은
해 12월, 미국 AFL의 주도로 서구노조들이 국제자유노련 ICFTU를
건설함으로써 국제노동자운동의 역사는 공식적 분열의 길로
들어섰다.
45~47년 간 WFTU는 이데올로기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노력으로 전후 복구에 기여하고자 했다. 그러나 양 블럭은
소련과 미국에 지나치게 의존함으로써 처음부터 분열을 잉태하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AFL에 의한 WFTU 외부로부터의 간접적인
압력도 작용하였음은 물론이다. 분열 이후 5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 CGT와 이탈리아 CGIL에 의한 구체적인 개혁노력이
있었지만, 동구권국가들의 노조원이 95%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구조는 기본적으로 한계를 내포할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유럽의 공산계 정파노조 중 가장 큰 조직인 CGIL은
브뤼셀(Brussels)에 독자적 사무국을 두고 2년 후에는 프랑스
CGT와 공동 사무국으로 발전시키게 되었다. 더욱이 1989년
동구권의 변동기가 시작되면서 WFTU는 급격한 몰락의 과정을
밟는다.
I C F T U
1949년 53개 국가가 참가한 가운데 창립된 국제자유노련(
ICFTU)에는 1996년 현재 137개국 1억2천4백만 명의 조합원을
대표하는 195개 노조가 가입해 있다. ICFTU는 노사정이
함께하는, UN 산하 국제노동기구인 ILO(행정국이 정부대표
28명과 사용자 및 노동자 각각 14명으로 구성된다)와의 관계를
중시하며, 그외 UN 산하 각종 기구와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과 WTO 회담에도 대표를 파견한다.
상설기구로서 총서기국이 관할하는 서기국 본부는
브뤼셀(Brussels)에 있으며, 그밖에도 제네바, 워싱턴, 뉴욕에
상설 사무실을 두고, 기타 주요지역에는 특수대표국을 두고
있다. 그 중 제3세계 지원과 지역 이해대변 조직으로는 다음
기구들이 있다:
• 아시아․태평양 지역기구 APRO(the Asian and
Pacific Regional Organisation) : 싱가포르 주재
• 아프리카 지역기구 AFRO(the African Regional
Organisation) : 케냐 주재
• 아메리카 국가 지역기구 ORIT(the Inter-American
Regional Organisation of Workers) : 베네주엘라 주재
특히 3 세계 노동조합의 자유권과 민주주의 확대에 대한 ICFTU의
활동은 매우 적극적이다. 노동자 생활조건의 개선과 자유권 및
평화를 기본노선으로 하는 ICFTU는 지난 96년 6월의 16차
국제대의원대회에서 자본의 지구화에 대한 대응을 진지하게
받아들임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보호와 남녀평등의 확대 및
노동조합 권리의 보호를 주요 당면과제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ICFTU의 성격은 ‘빵 - 자유 - 평화(Bread - freedom -
peace)’는 조직헌장 상의 목표를 통해 잘 드러난다. 반공노선을
고수하는 노조가 중심이 되어 WFTU의 대응조직으로 건설된
국제연맹체로서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문제삼지 않는
ICFTU는 유럽에서와 같은 다양한 사회운동 이념들을 포괄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따라 ICFTU의
주요 활동방식은 UN이나 각종 국제기구 및 지역경제기구들과의
공식 관계를 통해 세계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선진산업국 내의 전투적 노동운동보다 부르조아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3 세계의 민주화운동이나, 그중에서도
신흥공업국들의 노동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그러한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E T U C
유럽노조연맹(ETUC) 건설의 동기는 유럽공동체의 성립이었다.
1969년 헤이그에서 유럽의 정상들이 관세동맹을
경제통화위원회로 발전시킬 것을 선포하면서 유럽의 정치적
통합을 위한 포괄적 계획 실행의 일보를 내딪었을 때, 유럽의
노동조합운동은 초국가적 조직건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당시에도 이미 브뤼셀을 거점으로 다섯 개의 유럽조직들이
존재했으나• 가장 오래된 것은 역시 1950년에 설립된
ICFTU(독일어로 IBFG) 유럽지부였다. 그러나 1969년 폐지되었고,
같은 해 유럽노조 서기국에서 명칭을 변경한 ECFTU(자유노조
유럽연맹, 독일어로 EBFG)가 대체하게 되었다. 유럽노조
서기국은 1952년, 서독, 프랑스, 베네룩스 3국, 이탈리아의 금속
및 광산 노동조합과 같은 유럽공동체 철강ּ석탄노조들의
공동자문기구로 설립되어, 1958년에 독일 노총, 벨기에의 FGTB,
네덜란드의 NVV, 이탈리아의 CISL과 UIL, 룩셈부르크 CGT-L 및
프랑스의 FO를 가입노조로 하여 발전한 조직이었다. •
둘째로, 1958년 브뤼셀에 건설된 IFCTU(기독노조 국제동맹)
유럽지부가 1969년 본부 조직이 WVA(근로자 세계연맹: 독일어)로
개명함에 따라 이름이 바뀐 WVA 유럽지부가 있었다. •
한편, <유럽 노조>들과 <반유럽 노조>들간 내부갈등으로 인해
1966년에 해체되기는 했으나(1958년 설립), WFTU 또한 유럽 내의
활동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 또한 이탈리아
CGIL의 독자적 사무국이 프랑스 CGT와 합한 공동연락사무국이
있었으며, • 마지막으로 1968년 유럽자유무역연합 EFTA의
노동조합들이 결성한 EFTA노조동맹이 있었다.
, 그들은 그 수가 다양한 만큼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된 양대
국제조직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유럽 내의
다양한 이념 및 종교로도 분리되어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즉, 유럽경제공동체(EWG)가 돌연 공동체 국가내 관세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기구의 차원을 넘어 영국, 에이레 및 덴마크의
가입 협상까지 박두하자, 1973년 15개 유럽국가의 17개 노조들을
구성조직으로 하여 마침내 유럽노동조합연맹(ETUC)이
출범하였다. 이어 1년 후에는 8개의 기독노조들이 가입하고
75년에는 CGIL이 추가로 가입함으로써 ETUC는 비로소 노동운동의
다양한 정파들을 포괄하는 통일노조연맹의 성격을 획득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공산계 정파노조인 CCOO의 가입도 1980년 당시
독일노총의 반대로 거부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1990년에는
독일노총도 지지함으로써 가입할 수 있었다. ETUC는 1997년 현재
28개 국가의 5천3백만 노동자를 대표하는 58개 노조연맹체와
14개 유럽산별연맹체로 구성되어 있다.
ICFTU도 그렇지만, ETUC도 외형적으로는 거대한 조직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WFTU가 힘을 상실해가고 동유럽
노동조합들의 ETUC 가입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유럽내
ETUC에 대한 경쟁자는 사실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적 필요조건이 전혀 충족되지 못하고 있어, 그 본래의
목적과 과제는 실현 가능성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있다. ETUC
서기들과 교섭을 행하고 국제기구에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브뤼셀에 주재하는 사용자측 로비사무실인원이 아니라이
1천여개 가까운 데 비해, 5천만 명이 넘는 조합원의 이해를
대변해야 하는 ETUC의 지도부는 단지 10명 내외의 서기로
구성되어 있고, ETUC 전체도 통역과 기술 인원까지 포함하여 약
50명 안팎에 불과하다. 이는 물론 인원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각종 시설이나 설비면에서도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며, 그것이 대부분 재정상의 이유에서 비롯됨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국제연맹체는 국내 노조와 달리 법률소송도 제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단체협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원부족과 재정부족의
중요한 명분이 되어 왔다. 그러나 단체협상에 관한 한, ETUC
뿐만 아니라 UNICE(Union des Industries dans la
Communauté Européenne ; 유럽민간사용자단체)와
CEEP(Centre Européen d’Etudes de Population ;
유럽공공부문사용자단체)도 위와 같은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1991년 11월에 동의한 바 있어, 그러한 구분은 이제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일요일노동 문제나 여성의
기회균등, 기본적인 노동조합법의 존중 또는 직업교육 등에 관한
유럽 차원의 단체협약 체결이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더욱이 유럽통합이 현실화됨으로써, 저임금노동의
국경초월이 합법화되었고 실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지금,
유럽차원의 단체협상은 필연적이다.
내부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비단 구조와 조직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공산계 노조들이 독일의
공동결정제를 ‘계급화해’의 하나라고 비판하는 한편,
독일노조들은 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회적 동반자관계
전략을 더욱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WFTU나 ICFTU와는 달리
다양한 이념을 통합하고 있는 통일연맹체로서 ETUC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실로 크지만, 내부 입장차이가 아직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노조들이 관료화되어
가고 자본의 경쟁논리가 한층 가속화되는 현 실정에서, 바로 그
기성노조들의 연맹체로서 갖는 경직성은 ETUC가 국제연대체로서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뿌리깊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럽노조들의 관료화와 경쟁논리에 대해서는 이 책 중 빌리
하옠(Willi Hajek)의 글을 참조.
더욱이 그 요인이 유럽전체에 확대됨으로써 위 입장차이의 전자
중 일부가 후자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어 차이에 의한 비판의
효과조차 수그러드는 듯한 인상이다. ICFTU와 마찬가지로 ETUC를
위해서도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정리 와 결론
WFTU에서 ICFTU로 가는 과정에서 국제연대의 조직화는 통합이
분열로 가는 길이었다. 국제 지배질서의 냉전을 통한 경쟁논리가
노동자 연대를 오염시킨 결과였다. 따라서 그 한쪽을 대변하는
ICFTU가 활동하는 방식이 전체의 올바른 연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였다. 반면 ETUC의 건설은 여럿으로 분열된 무리
중심의 왜곡된 연대를 다시 통합하고자 하는 필요성이 가져온
자기 반성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ETUC조차도 재정과
조직의 절대적 부족으로 인해 활동이 근본적인 제약을
받아왔으며, 그동안 쌓여온 기성노조들의 관료성과 경직성이
경쟁의 논리와 손잡음으로써, 차이에 의한 변증법적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WFTU가 2차 대전 발발 당시 파시즘이라는 인류 공동의 적에 맞서
건설되었고, ETUC 또한 유럽공동체 성립에 따른 자본의 집중에
대항할 필요성에서 설립된 것처럼, 가속되고 있는 자본의
지구화가 자본 대 노동이라는 대립과 모순을 더욱 분명히 해가고
있는 지금, 국제연대의 필요성은 한층더 절실해져 가고 있다.
국제연대 조직화의 두 번에 걸친 실패가 자본과 지배계층의
경쟁논리에 매몰된 결과였다는 사실은 참연대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제시한다.(1997.4.15.) 한/노/정/연
참 고 문 헌
- Buschak, Willy, “Der Europäische Gewerkschaftsbund,
oder: Wie weckt man einen schlafenden Riesen?”, in Helga
Grebing․Thomas Meyer 편, Linksparteien und
Gewerkschaften in Europa. Die Zukunft einer Partnerschaft,
Köln :Bund-Verlag, 1992, 223-246쪽.
- Olle, Werner 편, Einführung in die internationale
Gewerkschaftspolitik. Ansatzpunkte gewerkschaftlicher
Internationalisierung, 제1권, Berlin: Verlag Olle & Wolter,
1978.
- Weixner, Bärbel, Stichwort:Gewerkschaften,
München
: Wilhelm Heyne Verlag, 1993.
- http://www.etuc.be/exec/constitu.htm
- http://www.etuc.be/info.htm
- http://www.icftu.org/english/econgpol.html
a>
- http://www.icftu.org/english/eicwiwd.html
- http://www.igc.org/beijing/post/wftu.html
- http://www.ilo.org/public/english/235press/l
eaflet/page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