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 집 2
민주노조운동과 사회개혁투쟁
편집위원회
배, 비행기, 철도 등 대중교통수단의 침몰과 추락, 교량과
백화점, 아파트의 붕괴 등, 당장 눈에 띄는 것부터 경제적인
불평등, 비생산적인 땅투기, 부패, 뇌물수수, 사치, 고액과외,
환경 오염 등 경제․사회적인 부조리까지 이루 셀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사회적 모순을 볼 때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부르주아까지 개혁을 이야기하고 있는 판에 사회적 모순의 가장
심각한 피해자인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개혁의 내용에 대해서는 분명히 자본가와 노동자의 생각에
차이가 있다. 자본가는 기본적으로 자본운동에 적합한 조건을
만들어 내고, 최대한의 이윤추구에 장애가 되는 장벽을 없애는
데에만 관심이 있으며, 그러한 장벽을 허무는 한에서만
진보적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개혁은
도대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사회개혁투쟁의 전개는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을 의미
먼저 지난 1월 민주노총(준) 대표자회의에서 결의된
사회개혁투쟁을 검토하면서 그 의미를 짚어 보기로 하자.
민주노총(준) 대표자회의에서는 이제까지 ‘상반기에는 임투,
하반기에는 노동법개정투쟁’이라는 형식으로 연례적으로
전개되어 온 투쟁 대신에, 상반기에 ‘임투와 사회개혁투쟁을
결합’하여 진행하며, 하반기에는 상반기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노총을 건설한다는 안을 통과시켰다.
사회개혁투쟁(이하 사개투)의 내용으로는 ① 사회보장제도의
개선 : 의료보험, 국민연금,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 ② 주택,
교육, 의료제도의 개선 ③ 교통, 환경문제 등 ④ 경제민주화 :
재벌 경제력 집중 규제, 세제 및 재정개혁, 물가안정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까지는 조직사수투쟁과 임금인상투쟁이
민주노조운동의 주된 투쟁과제였으나, 이제 주택, 교육, 교통,
환경, 복지 등 직접적인 노동현장을 벗어난 전 사회적인 개혁도
노동조합운동의 투쟁과제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이에 따라 상반기에 104개 노조가(5월말 현재 요구안 확정노조
699개 가운데 14.9%) 사회개혁요구를 놓고 사측과 협상을
벌였다. 모든 노조가 의료보험법 개정을, 72개 노조가
국민연금의 민주적 관리운영을 요구사항으로 제시하였다.
요구조건을 내건 노조는 주로 병원노련 산하 노조(69개)와
건설노련 소속 노조(16개)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기아자동차, 쌍용중공업, 효성중공업, 통일중공업 등과
현대중공업, 현대정공에 이르기까지 제조업과 대기업 부문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투쟁기조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그간 변화된 노동과
자본의 세력관계를 보여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래 성장한
민주노조운동세력은 이제까지의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노조조직 사수투쟁을 넘어서 하나의 결집된 세력으로서 작업장의
경계를 뛰어 넘는 사회개혁을 주장할 만큼 성장한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의 전국적 구심인 민주노총의 건설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민주노총(준) 대표자회의가 사회개혁을 투쟁과제로
제시한 것은 소위 진보적 노사관계류의 방향전환론이 제시되던
당시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당시는 전 사회적인 공세 속에
노동조합운동이 수세에 몰리면서, 기업별 노조 하나 하나가
전투적으로 조직을 사수해야 했다. 그러한 노조운동에게 전
국민적 관점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 죽음에 이르도록 두들겨 맞고
있는 어린이에게 어른들 문제까지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꼴이었다. 그것도 전투성을 버리고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적어도 지난 수년간 어용 노총 중심의 한국판
‘사회적 합의주의’가 실패로 돌아가고, 지지 기반을 상실한
어용 노총에 대신할 새로운 구심을 형성해 들어 가는 시점이다.
이제까지의 수세적 전술을 공세적인 전술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노동자 계급의 계급성이 수세적으로 유지되는 수준을
넘어서 전 사회적인 보편성으로 ‘확장’되어야 할 때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노동 악법과, 폭력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짓밟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 있기에 이제까지의 전투성을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소위 진보적 노사관계론자는 예나
지금이나 투쟁성을 버릴 것을 권고하지만, 진보적
노사관계론자들이 우리의 종착지로 상정하고 있는 서구의
나라들에서조차 노동자들은 파업과 같은 전투적인 무기를 버린
적이 없다. 지금까지의 우리 운동의 역사는 오히려 온건한
사회개혁요구의 관철조차도 타협과 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실력행사를 통해서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95 사회개혁투쟁, 투쟁 과제들간의 내적 연관 부족
이처럼 변화된 세력관계 하에서 사개투가 가지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는 반면에,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개투는 몇 가지
점에서 문제점을 보여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투쟁과제를
배치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투쟁들을 병렬적으로 결합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투쟁과제들간의 유기적 결합이나 내적
연관이 부족한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사회개혁투쟁의 영역으로 항목별 분류를 하는데
있어서 사회보장제도의 개선은 주택, 교육, 의료, 교통, 환경
등과 함께 같은 수준에서 복지로서 개념화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며, 복지 영역에는 사회보험제도 이외에 공적부조, 사회적
수당 내지는 탁아 시설 등의 복지시설과 관련된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경제민주화 투쟁은 사개투에 포함되는
것보다는 임투와 함께 독자적인 투쟁영역으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사개투에 경제적인 영역까지 포괄하려면
적어도 정치영역까지 경제영역에 상응하여 ‘정치민주화
투쟁’식으로 포함해야 할 것이다. 물론 문제는 영역 구분을
어떻게 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투쟁 속에 각
영역이 어떤 관련성을 서로 맺을 수 있는가 하는 데에 놓여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5대 투쟁과제로 제시된 쟁점들 역시
상호관련성이 명백하지 않다. 예를 들어 사회 보장 제도의
민주적 관리운영에 대한 요구는 단지 국민연금에 한정된 것이
아니고, 의료보험, 산재보험 등의 정부 관련 위원회와 지자체의
각종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데, 왜 공공자금 관리(그
중에서도 특히 국민연금 기금)만이 5대 투쟁과제에 포함되었는지
그 근거가 충분치 않다. 나아가서는 단사 차원에서 제기할
사항과 전국적인 단위에서 제기해야 할 사항에 대한 구분도
모호하다. 예를 들어 의보 통합 일원화나 공공자금관리기금의
민주적 운영 등의 사안은 민주노총 단위에서 제기하여 전 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를 이끌어 내어야 실현 가능한 것으로, 단사
차원의 단체협약에 집어 넣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이 적다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노사 쌍방이 동의하여 국회 및 관계부처에
공동으로 법 개정을 청원하는 방식’으로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이제까지 해오던 투쟁들을 일단 사개투의 범주 아래
결합시키는데 머무른 결과로 보여지는데, 민주노조운동의 전국적
구심을 형성해 나가는 지금의 수준에서는 단순히 이제까지
해오던 투쟁을 단순병렬적으로 서로 묶는 수준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사회개혁투쟁에 대한 민주노총(준)의 입장 비판
이러한 문제점들은 사개투의 의미를 다분히 투쟁 전술 차원의
변화로 협소하게 파악하는 관점과 관련을 맺고 있다.
민주노총(준)에서는 애초에 사개투가 제기되던 당시에 그 의의를
노동자 및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간접임금요구
투쟁으로서, 제도 개선과 노동자 참여 확대를 통해 사회를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강화하며 전 국민적
요구와 사안인 사개투를 통해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국민적 지지를 얻어내는 데에서 찾은 바 있다. 사개투의 의미에
대한 민주노총(준)의 입장에 대해서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자.
첫째로, 사개투는 단순한 ‘간접 임금’ 요구 투쟁을 넘어서야
한다. 노동자 계급이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는 것은
소위 사회적 임금의 형태로 보다 많은 ‘분배’를 위해 투쟁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즉, 자본관계 아래
착취 당하는 계급으로서 자신을 해방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지양하고, 최대한의 가치증식(이윤추구)이라는 자본의
논리를 넘어서, 복지, 교육, 환경, 주택, 교통 등의 제반 사회적
영역에서 사회적 원칙과 사회구성원의 필요의 원칙에 따라
분배가 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단초로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사회개혁 투쟁을 간접임금투쟁으로서,
즉 ‘직접’임금과는 영역을 달리하지만 동일하게 더욱 많은
분배를 위한 임금투쟁으로서 한정지울 때, 전 사회적 진보와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라는 관점은 흐려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복지의 경우를 보자.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의 제 사회보험에서 보다 많은 수혜를 향한 투쟁은 간접적으로
임금이 인상되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지만, 여기서도 역시
임금과는 다른 원칙이 관철된다. 즉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비용(노동력의 가치)에 따라 규정되지만
복지혜택은 수혜자의 필요(질병, 실업, 노후대책 등)에 따라
주어진다. 자본가에게 임금은 노동의 대가로 현상하며 복지는
시혜로 이해된다. 노동자에게 임금은 최저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확보되어야만 하는 비용이지만, 복지는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쟁취되어야만 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금이다.
사회개혁투쟁의 또 다른 영역 중의 하나인 환경의 경우는 오히려
개혁이 진전되는 만큼 임금이 인상되는 효과가 생기기는커녕
임금을 억제하고 심지어는 일자리를 상실하는 경우까지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환경 규제의 강화, 원자력 발전소의
폐지와 같은 경우) 이와 같은 점에서 우리는 사회개혁 투쟁을 말
그대로 ‘사회’개혁 투쟁으로, 즉 단순한 간접 임금확보 투쟁을
넘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모순을 척결해 나가는 투쟁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노동자의 정치의식은 단지 현재의 제도에 형식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기존에
진행되어 왔던 임투와 노동운동탄압분쇄를 중심으로 한 투쟁이
그 자체로서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전면적’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었으나, 사개투는 다양한 사회제도의 문제를
제기하고 개혁을 요구하는 투쟁이므로 노동자의 정치의식이
저절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계급투쟁 조건 아래에서 임금상투쟁이나 초보적인 노동권 확보를
위한 투쟁이 가지는 정치적인 의미가 얼마나 컸는지를
생각한다면, 정치의식을 높이는 것은 투쟁의 ‘영역’이
임투인가 아니면 사회개혁인가에 달려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각
사안이 해당 국면에서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나 쟁점에 대해
대응하는 양식의 차이 등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한 참여를 통해 노동자들의 정치적 역량이 성장할 수도
있지만, 노동조합운동이 발전한 서구 여러 나라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관료주의화한 노동자운동의 상층이 이러저러한
관변단체, 위원회에 참여하여 조합원 대중의 정치적 역동성이
발현되는 것을 누를 경우에는 반대로 노동자의 정치의식은
마비되고 정치적 역량은 감퇴할 것이다.
셋째로,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사회개혁투쟁을 전개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이제까지의 투쟁이 국민들에게 너무 과격하고
계급이기주의적인 것처럼 비치니까 이제는 보다 온건하고 전
국민적인 사안을 제시하기 위해서, 즉 일반 국민에게 좀 잘
보임으로써 지지를 얻어내려는 정도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할 때마다 대규모 언론을 동원해서
여타의 계급, 계층으로부터 노동자 계급을 고립화시키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서 대국민 홍보전술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은 적지 않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사회개혁에 주체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보다
근본적이다.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전 사회의 개혁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노동자 계급의 노동과정 자체가
자본의 가치증식 과정이며, 우리 사회 전체의 기초가(그것의
모순적 구조와 함께) 자본주의적 생산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를 보자. 상수원조차 오염되어 일반 국민이
마시는 수도물까지 위협하는 최근의 강물 오염 문제를
야기시키는 주범이 일반인의 생활 폐수가 아니라 공장 폐수라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대해 부르주아는
마치 가정주부가 강물 오염의 주범인 양 법석을 떨며 문제의
원인을 가리려 하고 있다. 중간계급이 할 수 있는 대책은
고작해야 ‘강물 감시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보수도 받지 않고 강물을 쳐다보며 감시할 수 있는
여유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애초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자 계급의 조건은 다르다. 독극물을 강물에
흘려 보내는 공장들은 노동자들에게는 바로 작업장이다.
노조에서 만약 생산단위에 직접 환경부서를 설치해 작업과정
속에서 환경 감시를 일상화하고, 문제가 발생할 때 고발하는
노동자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한다면, 강물
오염을 원천봉쇄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가 나서서 사회의 제
모순을 척결해야 하는 이유는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이 사회
도처에 널려 있는 모순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실제로 그
모순들을 근본적으로 뿌리 뽑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며,
이러한 모순들의 근본적인 해결을 통해서만이 노동자 계급 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들을 속박하는 제 모순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개혁투쟁은 자본주의 태내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사회의 맹아
이제까지 민주노총(준)의 주도 아래 올해 들어와 진행된
사개투에 대하여 노동자 운동의 발전과 변화된 조건과 관련하여
그 의의를 살펴보았으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개투의 구체적인
문제점들과 사개투를 보는 기본적인 관점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우리 사회의 모순들과 이 모순들을 지양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노동자 계급의 주체적인 활동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개혁투쟁은 자본주의 태내에서 성장하는 새로운
사회의 맹아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를 부르주아와
소부르주아 주장한다고 해서 노동자 계급이 민주주의를 반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 계급의 정치활동에 장애가
없도록 더 많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주장해야 하며, 그들이
시민권을 주장할 때 그것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이
배제되지 않은 보편적 시민권을 주장해야 하듯이, 사회개혁에
있어서도 (소)부르주아가 시민운동적 형태로 개혁을 주장한다고
해서 노동자의 입장에서 사회개혁을 주장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물론 노동자 계급의 관점에서 내용과 형식을 재규정하여,
자본관계의 지양과 관련하여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의
단초로서 사개투를 배치시키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관점이 전제된다면 사개투에 대하여 그것의 내용이
이제까지 시민운동에서 전개해 온 것이고 개량투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므로 민주노조운동이 견지해 오던 전투성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임투와 노동운동탄압분쇄 투쟁을 중심으로 한
기존의 투쟁기조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은 민주노조운동이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인식하지 못한 일면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의 각 영역에 존재하는 모순을 개혁해 나가는
사개투는 그것 자체가 소위 ‘혁명주의’와 ‘개량주의’를
가르는 시금석이 될 수는 없다. 임투는 혁명주의이고 사개투는
개량주의인 것이 아니듯이, 임투를 중심으로 한 경제투쟁은
전투적이고 사회개혁투쟁은 전투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실은 임투, 노동법 개정투쟁 등도 사개투와 마찬가지로
개량투쟁으로서 우리나라의 계급투쟁조건이 그러한 투쟁을
전투적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도록 한 것일 뿐이다.
‘개량주의’는 모든 투쟁의 목적을 개량적인 데에 한정지우려
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축적되어야 하는
‘개량투쟁’과 구분된다. 문제는 투쟁영역의 확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투쟁이 중간계급의 헤게모니에 포섭된다든지
‘개량주의화’하는 데 있으며, 이러한 문제는 단지 사개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법, 경제, 사회, 정치 투쟁의 모든 영역에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배계급은 지금 전개되고 있는 사개투를 실제로는
그것의 내용이 개량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치투쟁으로
인식하고 국가 안보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할 정도로 운신의
폭이 좁다. 사개투는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요구를 담고 있어
정치적 함의는 크다고 하더라도 정치투쟁은 아니다. 이제까지의
경제투쟁 및 초보적인 노동권 확보투쟁이 우리 사회에서 그것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가 컸던 까닭으로 부득이하게 정치투쟁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듯이, 사개투도 정치적 함의가 크다고
하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투쟁은 아니다. 말 그대로
‘사회적’ 투쟁으로서, 이제까지 전개해 오던 임투와 노조 건설
투쟁과 함께 앞으로 총선, 대선 등의 선거에 대한 전술과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조직화와 관련하여 유력한 기초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의 노동자들은 투쟁의 조직적 구심을 형성해 나가면서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앞으로의 투쟁을 대비해 자신의 진지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투쟁 속에 형성된 진지는 졸속으로 지어진
저들의 왕국처럼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사개투는 앞으로
다가올 투쟁들을 위해 (또한 앞으로 더욱 발전되어져야 하는) 또
하나의 투쟁영역이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