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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

현장에서 미래를  제21호
채만수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
특집 4

일시 : 1997년 3월 29일(토) 오전 11시
장소 :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사무실
참석 : 김명준 노동자뉴스제작단 대표
김영곤 APWSL 한국담당
윤영모 민주노총 국제부장
이동진 전교조 연대사업위원장
이철순 여성노동자회협의회 대표(이상 가나다 순)
사회 : 채만수 부소장
정리 : 김혜란 편집기획실장
사회 이번 좌담은 「현장에서 미래를」의 5월호 특집 중 하나로 기획되었습니다. 특집은 ‘새롭게 힘을 얻어 가는 세계 노동운동’을 독자에게 소개해 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80년대 말 90년대 들어와서 자본측의 승리, 자본측의 세계화라는 이야기와 그것의 반영으로 노동운동의 침체라는 말을 많이 해왔는데, 최근에는 상황이 상당히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에 대한 논의가 국내에서는 그리 많이 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자본의 승리가 아니라 노동운동의 활성화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소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번 좌담은 이러한 취지의 한 부분으로 ‘한국노동운동의 국제연대’라는 주제 하에 논의하는 자리입니다.


총파업을 통해서 본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


사회 우선 총파업을 계기로 경험한 최근의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에 대해서 민주노총의 윤영모 씨가 말씀해주시죠.


윤영모 총파업 과정에서 국제연대가 가능할 수 있었던 점으로 우선 국제적 환경의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오히려 OECD는 자본의 입장인데 OECD로부터 얻을 것이 없다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던 것에 반해 다른 나라의 노총들은 한국이 OECD에 가입하게 되면 한국의 노동문제를 부각시켜야겠다고 계속 다짐해 왔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한국의 OECD가입을 논의하기 위한 이사회가 열렸는데 결과는 ELSA(고용노동사회문제위원회)에 한국 노동법 문제를 검토해 줄 것을 요청하며 유보되었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국제적으로는 한국 노동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총파업 직전에 한국의 노동법 개정과 관련한 상당히 많은 정보가 알려졌다는 점이 직접적인 연대의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한편, 거슬러 올라가면 전노협 때부터 비록 공식적인 관계를 맺은 상태는 아니었지만 주요 노총들, 주요 노총내에 있는 주요 집단들과 계속 연대를 해왔고, 특히 한국 정부가 ILO에 제소되어 권고를 받음으로써 한국 상황에 대힌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당시는 주로 인권적인 수준에서 열악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러한 문제인식은 총파업이 돌입했을 때도 외국 노총의 기본적인 문제인식이었습니다. 반면 대중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노동시장의 유연화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미 고민해 오고, 고통 받고 있던 문제가 접목이 되면서 총파업 기간 동안 국제연대가 압축적으로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근본적인 것이라기보다 상황적인 것인데 총파업에 돌입한 12월 26일은 외국에 편지를 보내봤자 유럽이든 어디든 연말 연초 휴가로 2주 정도 공백이 있는 시기입니다. 물론 정부는 그 문제까지 계산에 넣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부터 성명서가 들어오고, 그 사람들이 휴가를 반납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이 있었습니다. 사실 총파업에 들어가면서 총파업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내부 조직의 탄탄함과 신속한 국제연대에 달려있었다고 봅니다. 특히 연초에 2단계 총파업에 들어갈 때가 국내, 국제적으로 위기였는데 잘 버텼습니다. 그것은 작년 9월부터 한국의 노동법 문제가 꾸준히 홍보되었었기 때문에 중요한 시기에 힘이 모아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동진 윤영모씨가 작년 말부터의 상황을 중심으로 말씀하셨는데 좀 구체적으로 국제연대의 역사성을 살펴 본다면 87년 이후 몇 가지 계기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89년 전교조 교사 1,500명의 해직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탄압과 90년 전노협이 결성되자마자 자행된 무자비한 탄압이었습니다. 그 다음 직접적으로는 91년도에 ‘ILO공대위’가 만들어지면서 노동운동에서 국제연대가 싹트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가 ILO에 가입하면서 92년 3월 3일 노동측은 한국 정부를 ILO에 제소하게 됩니다. 그 때 당시는 전노협과 업종회의가 있었는데 업종회의에서는 국제노동운동과
국제연대에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내부에서 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전교조도 당시 업종회의에 속해있었는데 업종회의 내부에서 전략을 세웠었습니다. 지금도 국제노동운동은 크게 국제자유노련(ICFTU)과 산업별국제노련(ITS)이 있는데 당시 ICFTU에는 한국노총이 가입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노총은 충분하게 한국 민주노조운동을 대변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전략을 세웠던 것이 ITS 중심으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ICFTU와 ITS가 자체 협정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국제노동운동을 함께 끌고 가지만 상호 독립성을 인정하면서 ITS의 자주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ITS 중심으로 국제연대를 하자는 전략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업종회의도 전교조, 언론노련, 사무노련, 건설노련, 공공, 금속 등등 많은 산별조직이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서 각 업종들이 각 ITS들에 가입을 하기 시작합니다. 가입한 시기는 차이가 나지만 PIET(국제상업사무노련)에 사무노련, 대학노련, 전문노련이 가입하고, IFBWW(국제건설노조연맹)에 건설노련이, 언론노련이 IFJ에, 병원노련, 전문노련이 PSI(국제공공노련)에, 전노협 금속분과가 IMF에, 전교조가 EI(세계교원노동조합총연맹) 등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93년에 서울에서 회의를 할 때 ITS 사무총장들이 대거 오게 됩니다. 바로 그 시기에 한국 노동운동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들, 대표적으로 그 때까지 복직이 되지 않고 있던 해직교사들의 상황 등 기본적인 결사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 한국의 실상이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국제 노동운동의 지도자들과 직접 만나면서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알리게 된 계기가 만들어졌던 것이죠.
그 뒤 각 산별과 교류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EI, IMF 같은 경우는 한국 정부가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서 국제적으로 많이 뛰고 있다는 상황을 우리보다 먼저 알고 그 계기를 상당히 벼르고 있었습니다. 93년 3월에 ILO의 첫 권고안이 나오고, 권고안이 나와도 한국정부가 전혀 마이동풍이자 각 국내 조직과 연결되어 있는 산별 ITS들이 한국 정부를 벼르게 되었습니다. 좋은 호재가 한국의 OECD 가입문제였던 것이죠. 그래서 자기들 내부에서는 상당히 많은 준비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95년 9월 OECD TUAC이 한국의 노동운동 상황 및 국제적인 노동기준과 관련해서 타워 호텔에서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는데 OECD TUAC 입장도 우리와 비슷했습니다.
그리고 95년 11월에 민주노총이 결성되면서 국제노동운동의 지원과 연대의 표시가 많았었고, 96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OECD 가입 논의가 시작되자 각 ITS들, 민주노총에 속해 있는 각 업종들이 준비를 해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사회 두 분이 주로 활발한 국제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 경과, 이유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국제연대의 상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철순 씨께서 아시아 쪽을 소개해 주시죠.

이철순 우리 나라에 전노협이 있었던 시절에 아시아-아프리카 같은 경우도 비공식 자주노동조합이 많이 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필리핀의 KMU, 남아프리카공화국의 COSATU(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 브라질의 구찌 등인데 이런 노조들은 ICFTU에 안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오히려 가입을 선언하여 많은 관심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면서 노동단체가 굉장히 많은 선전활동을 해냈습니다. 우선 전노협이 국제연대의 경험이 없고, 어떤 국제 노동단체나 노동조합 회의가 있어서 참석을 권유하면 겁을 많이 냈습니다. 공산권이 있었기 때문에 당할지 모른다는 피해의식이 있었고, 이제 막 결성된 전노협이 COSATU나 KMU 같은 조직과 아직은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국제회의에 나가는 것을 꺼려 했습니다. 결국은 전노협에 대한 홍보를 밖에 있는 노동단체들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그들도 전노협에 대해 관심과 질문이 많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전노협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시아 쪽에서는 AMRC(아시아 노동정보센타)라든지 ‘노동자 네트워크’ 같은 경우가 대체로 선전을 많이 했습니다.

사회 한국 노동운동이 국제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연대활동은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전노협이 ICFTU에 참가하겠다고 선언한 것 자체가 오히려 국제 노동운동에 변화의 계기를 주었다고 역설적으로 평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번에는 김영곤 씨가 APWSL(아시아-태평양 노동자연대회의)과 관련하여, 특히 이번의 총파업과 관련한 연대활동을 소개해 주시죠.

김영곤 그 문제로 넘어가기 전에 한국에서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기업들의 횡포로 현장 노동자가 어려움을 겪을 때 외국의 노동자가 도움을 준 사례가 많이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습니다. 실제로 피코, 수미다, TND 등 외자기업에서 일어났던 폐업, 체불임금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미국과 일본의 노조, 노동운동단체들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원진레이온 문제 해결에서도 일본의 노동자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원진노동자를 돕는 모임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다음으로 제가 APWSL(아시아-태평양 노동자연대회의)일을 맡은 것은 96년 10월부터이기 때문에 사정을 잘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전임자인 이철순 회장이 먼저 말씀해주시고 제가 뒤따라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철순 80년도에 많은 자주노동조합들이 생기고 아시아에 자유수출단지가 만들어지면서 연대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됩니다. APWSL는 일본의 조그마한 노동조합들을 중심으로 뉴질랜드, 호주, 인도에 있는 몇 군데 노동조합이 함께 만든 것입니다. 당시에는 전체적으로 당과 연결되는 노동조합들이 많았었는데, 물론 아직도 그렇지만, 거기서 피해의식을 느낀 노동조합들이 노동조합 자체로 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빠져나와 구성된 것이죠. 그리고 아시아에 자주노동조합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연대라기 보다는 노동자 연대로 하자고 논의되어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단체와 노동조합이 함께 모인 네트웍입니다. 실제로 느슨한 작은 조직으로 보시면 됩니다.


김영곤 이어서 말씀드리면 APWSL은 80년에 시작하여 17여 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가입한 나라는 한국, 일본, 타일란드, 홍콩, 필리핀, 대만, 뉴질랜드, 호주, 말레시아, 네팔, 인도, 파키스탄, 미얀마 등 입니다. 필리핀의 KMU는 그동안 내부가 사분오열되어 나오지 못하다가 최근에 다시 합류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APWSL의 주요 활동내용은 노동운동단체 차원의 연대와 민주노조에 대해 지원하는 것입니다. 특히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김영삼 정권하에서 한국의 변혁적인 노동단체들이 이적단체로 몰려 탄압을 받을 때 APWSL이 상당히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것을 보며 이 사람들은 문민정부의 한계를 잘 알고 단순히 조합차원의 교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노동자계급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APWSL 한국위원회에는 이 좌담을 마련한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를 비롯해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정책연구소, 진방주 목사, 사무국을 맡고 있는 전국노운협 등 단체와 개인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번 총파업과 관련해 총파업이 한창 진행 중인 1월 7일 경에 한국위원회에 긴급전문이 왔었습니다. 내용은 ‘한국이 2차 총파업을 앞두고 있으니 각국의 APWSL 위원회는 그 나라에 있는 노조, 노동운동단체, 기타 모든 곳에 연락을 해서 10일 낮에 한국 대사관 앞에서 한국의 노동법․안기부법의 날치기에 항의하고 무효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조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고 또 혹시 대사관 앞에서 읽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급히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시위는 아사아 지역에서 9군데, 세계적으로는 22군데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에 로버트 리드 대표가 1월 말에 한국에 왔을 때 하는 말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세계화와 신보수주의, 유연노동과 고용문제 등의 문제가 이미 심각한 상태에 와 있고 민주노조운동이 발전한 것으로 알려진 뉴질랜드는 이미 91년에 노동법이 개악이 되었답니다. 뉴질랜드의 새로운 노동법은 노사간의 집단적인 단체협약을 없애고 노동자 개개인이 회사와 개별 계약을 하게 되어 있고, 만약 불법파업을 하게 되면 손해배상을 개인에게 청구하므로 파업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세계 2위의 복지국가를 자랑하던 뉴질랜드의 노동자의 삶도 이제는 매우 고통스러워졌다고 합니다. 대만은 노동법을 한가지씩 개정하고 있고, 일본은 97년도에 노동법 개정을 추진하다가 노조가 지주회사 제도의 도입에 찬성하는 조건으로 일단 뒤로 미루었습니다. 이러한 사정이니 한국에서 총파업이 일어났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 뜨이고 한국의 노동자가 이길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도와주기로 하고 시위를 조직한 것입니다.
우리는 외국의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지지, 지원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들은 세계화의 바람 속에서 한국과 연대, 공투를 해서 한국의 싸움이 이기게 되면 자기들의 싸움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1월 10일 전세계적 노동자의 한국대사관 앞 시위는 단순한 지지, 지원을 넘는 공동투쟁이었습니다. 사상적 측면에서나 행동의 측면에서나 국제연대가 공투차원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봅니다.

윤영모 1월 10일 시위와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민주노총이 권영길 위원장님 명의로 1월 초순에 공식문건을 ICFTU, TUAC, 노동조합 자문위원회, 20군데 주요 노총 등에 보냈습니다. 요청 내용은 '연대방문단을 조직해 달라는 것과 1월 10일 대사관 앞에서 항의 집회, 또는 항의 서한 전달식을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국제연대에서 이런 식의 구체적인 요청은 처음이었던 것같습니다. 유럽이나 호주는 공식적인 연결을 통해 많이 이루어졌고,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PIET 아시아지역 노련과 지금 말씀하신 APWSL가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위 지역은 30 곳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 이러한 움직임을 김명준 씨는 다른 측면에서 접근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말씀해주시죠.


김명준 우선 저희 활동을 잘 모르실 것 같으니 간략한 설명을 먼저 하겠습니다. 저희는 사실 노동운동의 연대로 출발하지는 않았습니다. 공식적인 노조 조직이 아니고 독립적인 영상단체이기 때문에 미디어 운동의 국제연대로 출발했습니다. 세계적으로 90년대 들어서 여러 가지 차원에서 국제연대가 활발하게 전개되는데 저희도 미디어 운동의 국제연대를 하는 과정에서 90년부터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네트워크 상의 위치를 자리잡고 있고, 제가 공식적으로 소속된 단체는 ‘비디아지무스’라는 단체입니다. 모든 대륙에 걸쳐 35개국 200여 단체가 가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지역별 보드 멤버들이 있어서 전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시아 지역 대표이며, 부의장으로 있습니다. 저번 주에 각 대륙 대표들의 회의를 인터넷으로 끝냈습니다. 아무래도 저희가 노동운동을 하다보니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굉장히 다양한 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고민도 많은데요, 예를 들어 영상운동을 노동운동에 활용하는 사례는 저희처럼 대부분 노조체계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독립적인 팀들입니다. 그렇지만 노조운동과 긴밀하게 연대하는 상태인데 그런 팀들은 브라질, 남아프리카, 영국, 미국, 일본 등 노조운동이 활발한 나라들에는 모두 있습니다. 공식적인 네크웍을 갖고 있지는 않고, 연락체계와 여러 가지의 교류 내용들을 갖고 있습니다. 따로 국제회의를 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러한 연대를 하면 자연스럽게 노조체계와도 만나게 됩니다. COSATU, 꾸찌 등 노조 책임자나 특히 교육담당자와 주로 접촉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총파업 기간 동안은 사실 영상과 정보통신 쪽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사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만든 비디오들이 민주노총에서 배포될 때, 여러 네트웍을 통해서 외국에도 배포되었습니다. 그런 비디오들이 미국, 일본, 영국, 브라질 등으로 이미 나간 상태였고 그 후 아마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확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디오가 한국 상황을 교류하고 논의하는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정보통신 쪽은 총파업 기간 동안 「정보통신 총파업지원단」이 구성되었었는데 그 성과도 상당히 컸던 것 같습니다. 자체적으로 웹사이트를 구축하고 그것을 영문서비스로 속보를 내었습니다. 노동운동 상에서 인테넷사이트를 구축하여 그것으로 매일 영문속보를 내보내고, 게다가 동화상까지 곁들여 파업기간 내내 유지한 사이트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보통 외국의 노조나 활동가들이 한국의 상황을 아는 데는 크게 두 가지의 한계에 부딪칩니다.
하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외의 전 세계 모든 공식적인 매체가 반노동자적이기 때문에 공식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BBS도 한국의 총파업을 보도할 때 첫 멘트가 ‘한국의 특권층 노동자들이 특권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파업을 했다’고 보도를 했답니다. 물론 이후에는 기조가 바뀌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이 객관적인 사실을 알리는데 상당히 많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놀랐던 것이 이 번 총파업 기간에 찾아온 손님 중에 영국 노동당 내부에서 진보적인 기관지의 기자로 있는 사람이 왔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서울에 도착했을 때 공식적인 매체가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이미 전날의 상황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또 지난 달에 로마에서 회의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이미 많은 내용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테크놀로지를 활용하는 예가 점점 증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외국에서도 90년대 초반 이후, 노조 상층 중심의 국제연대가 갖는 한계들에 대해 많은 논의가 되기 시작했었습니다. 특히 ICFTU가 가지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한계들, 기타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한 자기 비판이 있으면서 다양한 루트의 정보교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인식 하에 영상매체나 정보통신을 활용하는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영상을 통해 외국에 우리의 상황을 알렸던 것은 전노협 때부터였습니다. 91년에 전노협 홍보 비디오를 영문판으로 만든 적이 있고, 그 뒤 「87에서 95」라는 노동운동사 작품은 외국에 상당히 많이 배급도 되고 방송을 통해서도 나갔습니다. 「총파업투쟁속보」도 3~4월을 기해 방송될 것같습니다. 외국은 노동운동의 역량이 있어서 공식적인 방송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방송이 가능한 사례가 있습니다.
덧붙여서 오늘 논의와 관련하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주제의 논의는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국제연대의 수준을 어떻게 잡을 것이냐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로비활동, 공동의 정책연구, 실질적인 실천활동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할 수 있고, 현재 국제운동의 수준과 우리의 수준을 보면서 국제연대의 대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ICFTU나 그 밖의 공식적인 노조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의 흐름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COSATU나 꾸찌 같은 진보적인 노조들, 일본의 경우는 큰 노조 중에서는 국철노조가 유일하게 진보적인 노조로 남아있는데 이와 같이 공식적인 연대조직들을 통해서는 만나기 힘든 그런 조직들이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흐름들을 우리가 어떻게 볼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좀 확대시키면 사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연대하기 힘든 곳이 정치정당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뻬떼(PT) 같은 곳도 계속 우리와 연대를 하고 싶어하지만 국내에는 연대의 주체가 없습니다. 이렇게 중요하면서도 다양한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저희 쪽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테크놀로지가 국제연대에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 잠시 논의를 정리해 보면 이번 총파업을 계기로 대단한 국제연대와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일단 확인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더불어 특이하게는 인터넷이나 미디어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총파업 이후의 국내의 정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이 번 총파업은 법률적으로는 승리하지 못했지만 정치적으로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김영삼 정권이 그로기 상태에 있는 것도 총파업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렇게 정치적으로 승리를 하기까지 국제연대가 대단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호주의 항만노조, 미국의 서부항만 창고노조에서는 묵시적으로 한국 화물의 하역도 거부할 수 있다는 태도도 보였고, 한국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의 조짐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 자본에 대한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정치적으로 항복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해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윤영모 사실 호주 시드니 항만지부에서는 더 많은 것을 저희에게 요구했었습니다. ‘파업을 요청해 달라. 그러면 즉시 들어갈 수 있다’ 는 식이었습니다.
이런 모습과 함께 이번 국제연대는 각 노총위원장들이 직접 움직였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으로 그동안의 작은 노조들과의 연대가 이제는 공식적인 채녈까지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총파업이 정치적 승리를 거두는 데에 국제연대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이동진 배경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단순히 한국이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는 평가가 아니라 세계 노동운동이 지금 어떻게 되어가는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ICFTU, 각 급 ITS들이나 또는 노동운동의 주요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신보수주의 물결이나, 초국적 자본의 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노동측이 전략적인 토의를 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한국문제도 몇 년 전부터 준비해오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보통신이나 기술의 발전과 맞물리면서 보다 속도있는 연대활동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국제 연대운동의 전사(前史)

사회 아쉬운데로 첫번째 주제를 이 정도로 마무리하기로 하고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80년대 후반 이후 국제연대가 기독교 기관이나 시민단체 중심에서 노동운동 중심으로 되고 있는데 이 현상은 한국 운동의 중심이동과도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견해를 말씀해주십시오.

윤영모 지금까지는 양심적인 세력들에 대한 국제적 지원이 국제연대 운동의 핵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파업을 계기로 그러한 활동 양상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즉, 과거에는 탄압받는 사람들이 직접 조직하기 어려운 것을 기독교 기관들이 대신 상황을 알리고, 조직하였지만 이제는 운동의 주체가 직접 국제연대를 하고 있습니다. 총파업 기간을 통해 노동운동이 집중되었듯이 국제적으로도 87년 이후의 민주화운동이 가졌던 국제적인 연대가 힘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소식들이 차곡차곡 진행되다가 총파업을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총파업을 계기로 지금까지 해왔던 국제연대는 일단락되고 보다 새로운 국제연대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진 초국적 자본의 운동에 대항 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 노동운동의 연대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이 세계적으로 움직이자 노동도 세계적인 움직임으로 대항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게다가 노동운동의 네트웍도 발전하면서 그러한 움직임에 도움을 주게되었죠. 즉, 자본이 전세계적으로 움직이며 폭압적이고, 탐욕적이고, 비인간적인 모습을 띠는 것을 이제는 노동이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특히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변화에 대응해서 노동은 인간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하에 세계적인 힘의 결집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자본의 요구에 의해 현재 각 국이 교육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EI에서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ILO와 더불어서 지속적으로 세마니를 하고, 국제적 네트웍을 형성해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조건 속에서 즉,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노동운동이 주체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윤영모 저는 현실은 약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운동은 지금까지 자본의 변화에 어느 정도 편승해 왔던 부분이 있습니다. 오히려 자본의 피해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환경과 같은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그것이 노동운동에 약간씩 스며들어 와 이제 노동운동이 서서히 입장을 정리해 나가는 정도라고 봅니다. 노동조합조직이 공식화되어 일정한 위상과 권한을 차지했던 때와는 달리 자본의 변화가 공식조직들을 파열시키자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봅니다.

사회 논쟁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본다면 지금 우리는 기본적으로 국제연대의 주체가 과거에는 종교단체 중심에서 노동운동 주체로 옮아왔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측면에서는 노동운동의 성장을 반영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한국의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서 기독교적인 과거의 주변단체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포용하지 못하면서 그들 중심의 국제연대가 소극적으로 된 측면도 있지 않나 생각되는데요.

윤영모 기독교로 지칭하기 보다는 인권운동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한 인권운동단체가 노동운동이 세계사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해서 지원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담당 주체가 분명하게 정립되었을 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철순 저는 운동의 중심이 넘겨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80년대 기독교 단체가 했던 연대활동이 노동자에게 이전 되었다기 보다는 분업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70~80년대 상황이 노동자들 스스로가 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대신 해 준 것이 기독교와 다른 단체들이었다고 봅니다. 노동조합은 ICFTU 등 이미 모든 기구에 다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게 너무 어용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NGO(비정부기구)라는 것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20여년 동안 NGO가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 공식적인 기구에 이 NGO 대표들을 참여시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노동조합이 노동조합이라는 틀로 연대를 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체가 넘어 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윤영모 NGO 이야기가 나와서 잠깐 덧붙이자면 민주노총이 일정정도 공식화, 합법화되면서 이전의 NGO 차원에서 했었던 작은 소규모 집단과의 연대를 소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런 주체들이 비판했던 내용들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민주노총도 민주노총 나름의 국제연대가 꾸준히 있겠지만 그것과 별도로 NGO 주체들의 국제연대 움직임도 계속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어느 정도 하나로 수렴될 때 큰 힘을 가진다고 봅니다. 노동조합이라는 공식체계가 할 수 있는 국제연대와, 조금더 특별한 영역, 특별한 문제인식을 갖고 있는 부분과의 국제적인 연대는 분업화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재작년 10월에 ‘주간노동자신문’에 기고한 이동진 씨의 글과, 지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자료를 보면 국제노동운동의 연대에서 ICFTU의 주도성을 높게 평가하고, 그런 판단의 전제하에 민주노총이 참가하겠다고 했는데 이것은 ICFTU의 자체 성격변화를 반영하는 것인지, 우리가 ICFTU와의 관계 설정을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궁금하군요.

이동진 95년 11월 민주노총이 창립되면서 국제 세미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도 논의에 들어가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는데 저희가 91년도 ‘ILO 공대위’를 꾸린 것이나, 93년도에 각 ITS와 세미나를 하기 전에는 ICFTU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한국노총만이 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때 가입신청은 했었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연계는 되어가고 있었지만 주요 활동이나 행동은 ITS 중심으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ICFTU에도 가입이 되었으니 앞으로 연대운동을 해나갈 수 있는 축이 더 열린 것 같습니다.


이철순 90년도에 전노협이 결성되면서 ICFTU에 가입을 선언했었잖아요, 선언을 했을 때 밖에서 있었던 움직임을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전노협이 가입원서를 낸 것이 ICFTU 자체 노조들에게는 큰 파문을 일으켰었습니다. ICFTU는 누구도 고칠 수 없는 국제연대기구라고 생각했었는데 전노협이 가입을 선언하면서 그래도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도전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죠. ICFTU에서는 정식으로 받느냐 안받느냐를 놓고 4~5년 동안 토론을 했다고 하는데 그 때 가장 반대를 했던 곳이 일본 노동조합이었습니다. ICFTU에서 돈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이 일본이었기 때문에 일본이 갖는 파워가 컸다고 합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면서 민주적인 노동조합들이 자체적으로 연대를 구축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전노협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전노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우선 산재해 있는 문제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거기에 신경쓸 수 있는 여력도 없고, 물론 연대를 꺼려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사실은 밖의 단체들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ICFTU가 작년 4월에 한국에 와서 조사해 갔을 때 조사단 나온 사람들이 저에게 질문하는 것이 “왜 민주노총이 ICFTU에 들어오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반대하는 입장이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아니지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싶다고 말을 했습니다. “여기도 노동조합이니 ICFTU에 들어가서 국제연대를 같이 하겠다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했더니, 들어오면 회비, ICFTU가 정해 놓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면서 몇 가지를 말하더군요. “그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되 ICFTU도 정말 진정한 노동조합으로 변화하기를 기대하면서 가입하는 것이다”고 얘기했었습니다. 아무튼 유럽 쪽에서는 굉장히 큰 파문을 일으켰었습니다. COSATU가 들어갔나요?
윤영모 코사투는 공식적 기구에 의제로 올렸는데 부결되었고, 브라질은 들어갔습니다.

이철순 그러면서 92년부터 새로운 모습이 나타난 것이 ICFTU에 가입되어 있는 노동조합들 중 미주지역이나 독일의 노동조합과 비공식 노동조합이 함께 모여서 새로운 노동조합의 이론을 발전시켜 보자는 모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작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활동이 미약합니다.

이동진 ICFTU도 몇 가지 그룹으로 나누어 봐야 합니다. 지역별로 아사아-태평양 쪽에서 우리가 속해 있는 이쪽 지역이 하나있고, 유럽 중심, 미국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룹들이 있습니다. 사실 전교조나 업종 쪽에서 봤을 때는 당시 아시아-태평양 쪽에 큰 기대는 갖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유럽과의 많은 교류와 그 쪽으로부터의 도움을 기대했었습니다. ITS의 부분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산별로 가면서 들어갔었습니다. ICFTU, 아직 우리와는 연결이 안된 유럽의 ETUC(유럽노조연맹)와의 관계는 제네바나 브리쉘에 있는 ITS의 사무총국과의 연계 속에서 새롭게 풀어나가야 합니다.

김영곤 ICFTU에 대해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ICFTU는 한국과는 이 번 총파업 이전부터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명동성당에서 농성하고 있을 때 ICFTU에서 대표단이 두 번 왔었고 대표단 속에 AFL-CIO 대표가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는 순간에 80년대 초에 당시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AFL-CIO가 운영하고 있던 AAFLI(아시아․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 사무실에 가서 “왜 너희들이 노동자들 탄압하는 어용노총을 지원하느냐”고 항의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쫓겨 2층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가 부러지고 구속된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이런 것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없이 그냥 넘어가서는 큰일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전에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이 와서 말하는데 인도네시아는 군인 장성이 노총위원장이나 산별위원장을 하고 있는데 AAFLI가 뒤에서 이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합니다. 독일 노총도 다름이 없지요. 이런 꺼풀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한 뒤에 ICFTU와 상대를 하더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95년 8월과 10월의 사건을 통해 AFL-CIO의 지도부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과거 노선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AAFLI 부분에 대한 새로운 지도부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윤영모 AAFLI는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내부적인 노선분열도 있었지만 단체를 결성만하고 실질적인 활동자금은 미국 정부의 해외개발지원 자금으로 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FL-CIO에서는 각 지역에 있는 AAFLI와 비슷한 단체들을 통폐합하면서 축소시키고 있습니다.

사회 미국의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반성이 있으니 약간의 희망을 가져 보고 싶군요.

김영곤 ICFTU라는 것이 미국의 AFL-CIO, 일본의 연합, 독일의 노총이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조직이 아닙니까. 이런 조직들은 자국의 초국적 자본과 협력하고 초국적 자본이 해외에서 거둬들인 이익 분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 3세계 노동운동을 지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비판적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제 개인만의 견해가 아니라 이 번 총파업 기간에 각 나라에서 온 방문자들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한국의 노동운동이 ICFTU 쪽으로 기울기 보다는 ICFTU를 활용하면서 실제로는 초국적 자본에 대응하고, 아시아 지역에서 진정한 노동자 간의 연대에 힘 쓰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철순 민주노총의 ICFTU 가입을 계기로 논란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는데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뉴질랜드와 호주 쪽의 역량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강한 노동조합이었는데 그 세력이 점점 작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50~60%에 해당하는 돈을 거의 일본이 내고 있습니다. 돈 내는 곳의 입김이 셀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민주노총은 굉장히 큰 임무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홍콩에 있는 CTU와 민주노총이 그래도 자주적으로 무언가 해보려는 조직입니다. 이런 강한 노동조합이 들어가서 새로 구성하거나, 정말로 민주노총이 아시아의 노동운동을 변화시켜보겠다는 각오를 갖지 않는한 ICFTU가 변화되기는 거의 힘들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윤영모 재미있는 것은 유럽노총 쪽에서는 민주노총이 가입해서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아시아쪽 노동운동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주기를 기대하고, 아시아 쪽에서는 지금까지 유럽노동조합운동이 아무리 진보적이었다 하더라도 식민지 관계의 연장이었다는 말을 합니다. 일본 노조도 아시아쪽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세계 노동운동을 책임지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럴 경우 유럽 사람들은 최소한 식민지 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 반성이 있기 때문에 말을 못합니다. 일본 노조가 다른 용어를 가져와서 자기들 이해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나오면 더이상 말을 못합니다.


국제연대의 방향


사회 이번의 총파업은 한국이 잘해서 만이 아니고 그럴만한 시대적인 근거가 있다는 견해도 있고, 한편에서는 오히려 호주나 뉴질랜드 같은 노조들이 갈수록 힘이 약해진다는 말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묘하게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세계적인 정세와 관련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논의해 보도록하겠습니다.
김영곤 이번 총파업을 통해 한국 노동운동의 위상이 높아지고 기대가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기대라는 것은 곧 아사아 다른 나라들이 싸울 수 있는 근거나 리더쉽 형성에 앞장서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노조운동이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이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도록 뒷받침 하고 이것이 결국 제 3세계 노동자의 권익을 해치는 아(亞)제국주의의 꼴이 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국내에서의 노사협조주의는 해외에서는 바로 이런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자의 국제연대도 지금까지는 정보를 교류하고 투쟁을 지지하는 연대였지만 앞으로는 공통의 문제를 두고 어떻게 공동으로 투쟁할 것인가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 민주노총의 97년 사업계획을 보면 “국제노동운동에서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사회조항(Social Clause) 채택에 찬성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 오해를 살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선진국들이 사회적 조항을 거론하는 것은 겉으로는 제 3세계의 여성․어린이 노동 등을 금지한다는 것으로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제 3세계에서 저임노동을 제한하여 선진국 자국내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제 3세계 정부에 대해 통상압력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제 3세계의 노동자는 노동자의 기본권과 일자리의 확보, 민주주의의 실현, 개방압력에 대한 자주와 반제의 내용 등이 총체적으로 확보될 때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이 비로소 보장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사회적 조항을 찬성한다고 하면 국제적으로 오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명준 여러 가지 고민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좌담에서도 조직 간의 관계가 많이 이야기 되었지만 국제연대의 내용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초국적 자본의 최근의 움직임이나 변화와 관련하여 이제는 무엇인가 다른 형태의 국제연대가 요구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못했던 과제를 풀어야 할 문제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습니다. 1년에 한 두번 하는 회의에 영어 잘하는 사람이 가서 아무것도 축적되지 않은 채로 오고, 이후 몇 달만에 또 똑같은 수준으로 만난다는 농담도 하는 실정입니다.
국제연대의 바람직한 방향을 위해 몇 가지만 말씀드리면 우선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연대입니다. 얼마 전에 브라질 회의를 참가했을 때 마침 세미나를 하고 있었는데 주제가 ‘신경영전략’이었습니다. 점점 세계가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국제적인 자본주의의 움직임에 대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연대가 가능할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각 나라의 구체적인 활동 메카니즘에 대한 파악이 필요합니다. 연대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선언적이고, 일시적인 행동 이상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상적인 정보의 교류와 조직이 필요합니다. 실제로는 개별화되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테크놀로지의 문제인데요, 영상과 통신이 갖고 있는 힘과 기능은 매우 많다고 생각합니다. 영상매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식이 되어있고, 이 번 총파업 투쟁에서도 그 효과를 보았기 때문에 다양한 수준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은 상층조직에서의 연대가 파편화 될 수 있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4월에 록펠러 재단에서 테크놀로지의 활용에 대한 국제 회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인터넷을 통해 사전 회의를 상당히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전 같으면 참여자 소개하고, 성명서 같이 작성하는 정도의 회의가 이제는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집중적인 토론을 가능하게 합니다. 정보를 조직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집중해 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수준의 연대를 가능하게 합니다. 공식적 노조의 틀에서는 보기 힘든 조직들과 교류를 통해서 전체적인 흐름을 짚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각 급 중앙조직에서는 그런 고민을 많이 해야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회 테크놀로지를 노동자 국제연대를 강화시키는 기술상의 문제로 말씀해 주셨는데, 저는 그 문제를 좀 더 추상적인 문제로 접근하고 싶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자본과 노동 간의 투쟁의 정세가 변화하고 있는 기저에 테크놀로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즉, 자본의 세계적인 과잉축적으로 자본 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데, 그 부분을
지금 이루고 있는 과학기술혁명, 특히 디지탈 혁명이 생산기술적으로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혁명은 결국 재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배제인데 이러한 것들이 우선은 자본의 힘의 강화로 나타난 것이고, 그것이 지금까지의 경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거기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격이 시작되고 있는 국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이 테크놀로지와 관련하여 중요하게 짚어져야 앞으로의 역사 속에서 노동운동의 전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문제로 얼마전 민주노총의 대의원대회 자료와 이동진 씨의 ‘주간노동자신문’ 기사를 보면 국제연대의 주요 내용을 국제노동기구에서의 활동으로 보고 있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국제기구에 참여함으로써 옳바른 방향을 잡는 데 기여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잘못하면 나쁜 의미의 정치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강화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측면도 보아야 됩니다. 아까 얘기 나온 호주 시드니나 LA에서의 움직임과 같이 국제연대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회의나 자금 지원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실적인 힘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죠. 국내에서는 다른 기업의 파업에 대한 동조파업도 철저하게 불법시되고 있는데 이런 것을 깨면서 해외 노동운동에 대한 동조파업과 같은 방식으로 연대하는 것을 고려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김영곤 윤영모 부장도 말했듯이 민주노총 지도부가 명동성당에서 농성 할 때 김영삼 정권은 공권력 투입을 고려했습니다. 이 때 호주 부두노조는 총파업 투쟁 지도부에 대한 침탈이 있을 경우 파업을 하겠다고 결의했습니다. 그런데 김영삼 정권은 명동성당에는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고 한라 중공업 지도부 4명을 구속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놓고 호주 부두노조는 파업돌입 여부를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파업을 풀면서 불발로 끝났죠.
총파업 기간 중에 방한한 APWSL 대만위원회의 간부이며 대만화물트럭노조연합의 사무국장이기도 한 렁상수씨가 부산에 있는 화물노련을 방문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한국과 대만의 화물노련 대표들은 앞서 말한 호주와 일본, 홍콩, 필리핀, 타일란드의 부두․화물․트럭노조를 포괄하여 부두민영화 대책에 관한 국제세미나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로버트 리드 대표가 한국에 왔을 때도 이 말이 나왔지요. 한국이나 대만의 부두노동자들은 대개 경력이 20~25년이나 되는데 부두를 민영화할 경우 많은 노동자가 해고되고 남은 노동자는 하역, 정리, 운송부문으로 나뉘어 노동자의 힘이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각 나라의 항구는 바다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니까 부두민영화 반대 투쟁에서 국제적인 공동투쟁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에서 보둣이 국제 노동자 연대가 기구간의 연대나 내셔날 센터간의 연대를 넘어 산별차원의 연대로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윤영모 물론 민주노총이 주체가 되어서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있다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노총은 그러한 활동을 담아낼 수 있는 준비나 교육이 되어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이러한 활동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겠지만 동시에 민주노총과는 다른 차원에서 외곽의 단체가 독자적으로 준비해 나가는 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오히려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총은 모든 일을 공식적인 채녈을 통해서 추진하기 때문에 속도가 느릴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탄압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국제연대를 해왔었다면 이제는 공동의 주제를 갖고 의견을 모아내어 그것을 토대로 행동으로 옮겨가는 장기적이고, 정책적인 국제연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철순 저는 기구운동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노동조합은 지금까지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것처럼 닫쳐 있습니다. ICFTU도 아무리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같이 하자고 해도 스스로의 힘이 있기 때문에 하지 않습니다. 유럽의 경우 조직율이 떨어지면서 고민을 하다 커피를 만드는 공장노동자 만이 아니라 커피를 생산하는 농업노동자도 조직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을 보면서 국제화에 대해 연구, 조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노동조합운동의 변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민주노총이 스스로 조직할 수 없다면 주변에 있는 단체와 공동으로 무엇인가를 구성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을 열지 않고 밖에서 알아서 하라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외국인노동자들의 문제나 5인이하 사업장 노동자들 문제인 경우 이미 외국인 노동자 상담을 시작하여 열심히 일하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이를 수렴하여 적극적인 결합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5인이하 사업장은 여성노동자들이 많으니 여성노동단체와 적극적인 결합이 필요합니다.

윤영모 해야 하는데도 못하는 경우가 있고, 해야 한다는 인식도 뚜렷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동진 80년 대와 90년대 초반에는 국제연대를 통해 무자비한 탄압을 돌파하고자 했던 측면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들 초국적 자본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본의 공격으로 지금까지는 노동진영이 당해왔지만 이제 서서히 자세를 가다듬으면서 총자본에 대한 나름대로의 반격을 가하려고 합니다. 아직은 국제연대의 형식과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는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기구운동은 한계가 명확히 있습니다. 앞으로는 기구운동은 기구운동의 영역 속에서 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국제연대가 상층의 관광처럼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국제연대가 상층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통신과 교통의 발달에 힘입어 하층중심의 연대로 변해야 합니다. 또한 유럽 중심의 연대에서 벗어나서 초국적 자본이 가장 무자비하게 움직이고 있는 아시아-태평양 중심으로 방향과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전교조도 현장 조합원 중심의 하층연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교사교류, 교류의 제도화 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윤영모 기구차원이라면 사무총국을 중심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데 물론 이러한 활동도 막중하기 때문에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노조운동은 진보성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 진보성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 노조운동이라고 봅니다. 50만이 같은 수준의 정치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면서 운동성을 담기 위한 국제연대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영곤 이 번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자료를 보면 97년 사업으로 ‘아시아 민주노조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계획이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에는 현재는 민주노조운동연합은 어렵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이미 내셔널센타가 건설된 곳과 아직 없는 곳들을 포괄하여 네트웍을 형성하는 것이 1차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보는데요, 민주노총의 견해는 어떤지요?

윤영모 우선은 사람과 재정이 문제입니다. 올해 내에 주요 노동조합, 단체의 사람들을 초청해서 아시아에 대한 문제인식을 공유하는 계기를 만들어서 내부 인식의 토대를 갖추려고 합니다.

이철순 노동운동 뿐만 아니라 여타 부문운동도 매우 구체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필요에 의해서도 국제연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APEC에 노조가 공식적으로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기업의 해외진출로 인해 국내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각 나라 간에 구체적인 연대가 필요하게 됐음을 의미합니다. 노동조합은 기업윤리강령을 토대로 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 지켜야할 원칙을 만들어서 서명을 하게 하는 활동이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사회 잠깐 확인하고 넘어가죠. 자본의 해외이전으로 일자리가 빠져 나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선진국의 노동자들은 이것을 후진국에 일자리가 확충되는 것으로, 후진국에서는 선진국이 착취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기업이 해외 이전을 하면 자국의 일자리도 없어지면서 동시에 진출한 나라의 일자리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멕시코의 상황을 보면 중요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새로운 높은 생산력의 자본이 유입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속도보다는 기존의 자본이 파괴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입니다. 멕시코의 경우는 NAFTA의 발효 이후 새로운 실업자가 100만명 이상 생겼다고 합니다.

이철순 인도의 경우도 기존에 손작업 노동으로 취업이 거의되어 있던 상황에서 개방정책으로 기업이 들어오면서 점차 실업이 늘고 있습니다. 실업자는 늘어나고 들어갈 회사는 적으니 노동환경도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또 은행에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20~30년 일했던 사람들을 재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부 조기퇴직시키고 젊은 사람을 채용합니다. 물론 방글라데시아는 컴퓨터 한 대 들여오는 것보다 그곳 사람 20명 쓰는 것이 이익이 남기 때문에 아직 상황이 그렇게까지 진행되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무역의 윤리강령에 대해서도 남아시아 쪽은 강한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윤리강령도 그 나라의 무역을 위한 조처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유럽쪽에서 논의해서 아시아 쪽으로 제안이 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따져보자며 안 들어가고 오히려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NGO들은 APEC은 무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라 보고 무역을 하는 것은 좋지만 노동자의 권리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것을 토대로 해야 하고 자유무역은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사회 사안을 전체 시각에서 보지 않으면 어떻한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블루라운드’(Blue Round)에 대한 태도 등이 그렇습니다.
자본의 경우는 사실상 국경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본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국가 내에서는 국가주의를 고취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국제연대는 기본적으로 노동자 국제주의를 전제하면서도 사실은 자본이 고취하는 국가주의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주의의 극복에 대해서도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영곤 좋은 예가 원진레이온의 경우라고 봅니다. 한국의 자본이 중국에 기계를 팔자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중국에 파견되었던 기술자들을 불러 그들로부터 지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2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중국에서는 설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신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윤영모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서양에서 자본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아시아 쪽 정부가 쓰는 논리하고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사회 어려움은 있지만 우리 자신을 위해서 대답을 해야 합니다.


노조 이외의 조직과의 연대


사회 지금까지는 주로 대중적인 색체가 있는 연대를 중심으로 논의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정치조직과의 연대의 문제를 논의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풍부하지는 않겠지만 원칙적인 수준에서라도 접근해 보죠.

윤영모 앞으로 우리 나라도 노동자 정당조직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럴 경우 노조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는 고민해야 할 사항입니다. 물론 근본적인 변혁을 말하는 당이 아니라 현재의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영국의 노동당과 노동조합, 호주의 노동당과 노동조합, ANC와 COSATU, 브라질의 꾸지와 PT 등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민주노총에서는 사람과 재정이 뒷받침되면 양쪽 사람들을 초청해서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려고 합니다.

이철순 저는 많은 나라의 경험으로 보아 굉장히 부정적입니다. 대만도 긴급조치가 풀리면서 근로당이 결성되었고, 이후 다시 노동당과 근로당으로 분리되었습니다. 당이 분리될 때 노동조합도 분열되었습니다. 결국 역량만 축소되고 노조도 현장에서 조직을 못했습니다. 네팔도 공산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20년 동안 언더조직을 해왔던 사람들이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결국 정치적인 이슈에 말려들어서 지금은 이들 중 많은 지도자들이 자주노조로 간다고 분리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도 당이 6, 7개로 갈리는 것을 보면서 아직은 당의 문제는 시기상조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 논의를 당 문제에 집중하기 보다 현재 노동운동의 국제적인 조류 속에서 정치적 성격을 갖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한 단체와 교류할 수 있는가를 짚어보는 것으로 합시다.

윤영모 이 번에 이태리 PDS가 전당대회에 민주노총을 초청해서 현총련 전의장 이영희씨가 나갔습니다. 각 나라의 노총과 관게를 맺다 보면 불가피하게 그 나라 당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1대 1로 상대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전망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불투명합니다.

김명준 세계 여러 나라에서 90년대 이후 많은 고민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태리도 공식적으로 큰 노조가 3군데지만 이 조직들을 모두 비판하는 정치조직들도 꽤 있습니다. 규모도 어느 정도 있고요. 이런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나라는 노조운동만 존재하기 때문에 민주노총에겐 부담으로 작용하고, 노조운동의 차원을 벗어나는 정보들은 실종되기 싶다고 봅니다. 게다가 이런 다양한 정치운동들은 파악하기도 힘들고, 과장 또는 축소되어 알려져 있는 경우도 매우 많습니다. 우리가 노동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노동조합 차원의 운동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포괄해서 미래를 논의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주체나 정리방향이 잘 안보인다는 것입니다.


사회 이제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지요.

김명준 간단하게 저희들 고민과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상매체는 노동운동의 수단이자 촉매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운동에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국제 네트워킹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가합니다. 노조조직이 하는 것은 어렵고 영상운동단체와 다른 지원을 통해서 국제 네트워킹을 해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인 노동자 문제만 하더라도 외국노조의 지원으로 벌써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중미지역 같은 경우는 비디오 활동가들에 의해 이미 현지 한국 공장에 관한 비디오가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이 미국 내에서 캠페인 할 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저희 같은 경우도 「총파업투쟁속보」가 베를린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한국 노동운동에 대해 실질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를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올 해는 87년 노동자 대투쟁 10주년이기 때문에 민주노총과 국제적인 수준에서 ‘노동영화제’도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일상적인 교류도 구축해 보고자 합니다.

이철순 여성 쪽은 연대의 주제가 분명합니다. 작년에 산업구조 재조정이 여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비디오로 작성하여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민주노총이 여성위원회를 두기로 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희 단체가 올 해 10년이 됩니다. 그만큼 국제연대도 먼저 했고, 아사아-태평양 회의를 주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기대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덕분에 모든 문제가 저희에게 너무 많이 떨어지는데 매우 힘듭니다. 국제연대도 분업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김영곤 최근 노동자의 국제연대가 노조, 노동운동단체, 여성, 인권, 산재문제, 학계 등의 부문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으나 부문간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 협조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느슨한 형태라도 국내 네트웍이 필요합니다.

이동진 교원․공무원의 단결권 문제는 지금도 해결이 안되고 있어서 국제연대도 아직은 지원받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교육개혁은 노동운동이 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이런 문제는 참여 속에서 관철시킬 필요가 있는데 전교조는 법외노조여서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국제연대도 필요하지만 국내연대를 통해 우리 나름대로 역할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왠만한 국내 조직은 국제 담당자가 있는데도 모임과 의사교류가 취약합니다. 이러한 모임을 민주노총 차원으로 모으는 계기도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영모 사실 국제연대를 하기 위해서는 실무적으로 담당할 역량이 너무 부족합니다. 통역, 연락, 문서작성 등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선 재정과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기본 조건이 없는 상태에서 일상적인 연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오늘 주제가 ‘한국 노동운동의 국제연대’였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결론은 국내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오늘의 논의가 운동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노/정/연

1997-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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