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경쟁’과 ‘탈연대’의 극복을 향하여
빌리 하옠(Willi Hajek)
한국 민주노동운동과 연대하는 모임 SOLIKOR
노동운동의 국제연대란 국경을 초월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노동절을 획득하고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던 시절, 그것은 핵심적 사상이었다. 그러나 1차대전
당시 유럽의 노동자정당들, 적어도 대부분의 사회민주당들이
자국의 자본가 편에 섰을 때, 이러한 연대는 사라졌다. 당시
독일사회민주당은 바로 독일 제국주의가 원해 마지않던 ‘광명의
땅(Platz an der Sonne)’을 위해 모든 노동자들에게 용감히
전쟁에 참여하라고 선동했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정당들이 자기
민족의 자본과 함께 계급협력을 이루도록 이끌지 않았다면
역사는 필시 달라졌을 것이다.
러시아 혁명과의 연대는 세계노동운동 중 급진적인 한 부분에
한정되었다. 특히 사민주의적 노동조합들이 20년대에 가졌던
입장은 이후 소련과 중국 및 베트남에서 이루어졌던 인민과의
연대와 첨예한 대립을 이루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도대체 왜
냉전기간에 독일과 같은 서구의 노동조합들이 필리핀이나 한국
및 브라질의 어용 황색노조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왔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들의 사고에는 반공산주의 싸움이
노동자투쟁과의 연대를 압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연대는 거듭되는 사고와 깊은 고민을 통해 추출되는
정치적 목적과 전략적 목표 그리고 구체적 내용을 갖는
것이다.
80년대 영국 광산노동자들이 1년 동안 지속했던 파업투쟁을
생각해보자. 당시 독일 광산노조(IG-Bergbau)는 영국 파업탄광의
석탄을 대체하기 위해 독일석탄이 영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노력이나, 영국 내 역관계를 광산노동자들에게
유리하게 변화시키고 파업투쟁전선을 국제화하기 위해 투쟁을
지원하는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영국의
탄광은 세계석탄시장의 경쟁자로 인식되었다. 그에 따라 영국
광산자본의 파산이 독일 광산의 행위공간을 넓혀준다고 믿었던
민족주의적이고 친자본적인 독일 노조지도자들은 국가와 자기
지역의 일자리를 보호하려 했으며, 그러한 사고는 당시 대부분의
노조 중앙과 많은 직장평의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곧, 그들이
파업을 위한 국제적 지원을 생각할 때는 무엇보다 국제 경제
전쟁터에서 경쟁자본의 약화를 노리는 것이었다.
“만일 한국의 노동자들이 파업을 지속할 경우, 우리들의 입지는
강화된다”는 논리가 독일 대기업 내의 일상적 사고를 이루고
있다. 이러할 때 연대의 개념은 공동의 계급적 목표와 무관한 채
세계제일(Number 1)이 되려는 이기주의적 사고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광산파업 당시에도, 비록 그 영국 노동자들의
패배를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연대운동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올바른 수단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소수가 독일 노조 내부에도
물론 있었으며, 지금도 그러한 입장은 발전해 가고 있다.
연대를 올바로 의식화하기 위해서는 모순되는 두 가지 입장을
논의해야만 한다. 이제 그 두 입장의 차이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97년 2월 스페인 장거리운송노동자 파업
장거리운송은 적시생산(just-in-time-production)이라는 새로운
생산사슬의 더없이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그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즉각적으로 전체 생산사슬에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
트럭운전자들의 파업이 며칠간 계속되자 자동차 대기업들은 전
유럽에 걸쳐 임시노동자들을 고용해야만 했다. 파업운전자들은
55세로의 정년 단축과 월노동시간의 단축을 요구했다. 대기업들,
특히 유럽 전체에서 가장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의 직장평의회
위원장들 대부분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제나흐(Eisenach)의
오펠(Opel)공장 평의회 위원장도 “전체 생산을 독일로, 그리고
최상으로는 아이제나흐로 끌어옴으로써 그 파업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 할 것이
아니라 경영측과 협상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은 초국적
콘체른의 직장평의원으로서 노조적 공동경영자의 사고와 행위를
유감없이 드러낸 실례였다.
노동운동을 위한 그들의 요구가 더 공격적이고 장기적 성격을
띄고 있었음에도, 스페인 장거리운송노동자 파업에 대한 연대는
한국의 총파업 경우처럼 그렇게 폭넓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생산을 아이제나흐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바로
그 위원장도 총파업과 연대했으며, 그 중에서도 현대노조와의
연대활동은 자못 대단했다. 그는 또한 자신의 활동을 통해
아이제나흐 공장 노동자들이 훨씬 더 유연해진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영국 리버풀(Liverpool) 부두노동자 파업
유럽의 다른 많은 항구에서처럼 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해고와
일용노동자로의 전락에 대항하는 리버풀 5백여 부두노동자의
파업은 벌써 1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이 선박노동자들은
운수노조 연맹체가 이 투쟁을 지원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전역에 연대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그 결과
현재 수많은 항구와 지방에서 지지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박노동자들의 이해관계 보호보다 ‘저비용의
선착장 리버풀’이라는 산업입지 보호를 더 중시하는 그들
노조의 지도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본간 경쟁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
연대활동의 실상은 자신의 입장을 명백히 하고 실질적 행동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행동근거 뿐만 아니라 다양성과 모순도
동시에 띄고 있다. 곧, 위의 예와 같은 이기주의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시적 행동동맹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한국
노동투쟁과의 연대는 가장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산업입지 보호를 중시하는 노조들과 국제연대를 중시하는 투쟁적
노조그룹․활동가들 간에, 그리고 한국 콘체른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 내에서 이른바
공동경영자(Co-Manager)들과 직장평의회들간에도 광범위한
동맹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 반면, 베를린의 삼성 직장평의회의
경우는 삼성전체를 걱정할 뿐, 연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연대활동은 상호 비판하는 가운데 좀 더
새롭고 더욱 연대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때
단결은 이미 전제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토론을 거쳐
이루어져 가는 것이다. 단결은 보다 실제적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뚜렷이 정립되어야 한다.
1980년 영국의 전수상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가 폴란드
레닌조선소 노동자들과 졸리다르노스크 노조의 노동자권리
쟁취투쟁을 고무시켰던 사실은 아주 좋은 예이다. 이러한 종류의
‘연대’가 노동자권리의 획득을 위해서는 전혀 의미를 가질 수
없으나 폴란드정부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모순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와 유사한 동맹의 경우를 우리는 한국의 노동법 개악철회
투쟁이나 다른 투쟁들에 대한 서구의 연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최저임금을 폐지하고 유연화 정도를 극대화할 것을
요구하며 신노동법을 비판한 OECD와 유럽의 탈규제 옹호자들이
한국에 넣은 압력은 실로 컸다. 그들은 노동조합이 국가 및
기업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3자간 권력카르텔의 구성요소가
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번 파업을
지원함으로써, 한국의 노조들을 친자본적인 사회적
동반자(Sozialpartnerschaft)화함과 동시에, 많은 서구 노조들의
자본주의 체제로의 통합에까지 파급효과를 주려 했다.
여기에서 노조들은, 체제의 강제로 인해 점점 증대하는 상호
경쟁으로부터 자신을 국제적 차원에서 방어해 내고 인간의 삶과
능력을 계발하며 자본주의 체제와 그 총체적 생산의 성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운동의 하나로 굳건히 서지 못하고,
경쟁력강화라는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자신들의 과제를
폄하시킨다.
‘연대’는 우리 자신을 한 기업이나 국가, 또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특정 민족단위 경쟁체의 한 구성부분이 아니라,
국제적 단결성의 한 작은 부분으로 정의하는 곳에 존재한다.
노조지도자들이 “우리는 경제전쟁과 경쟁력강화를 원한다.
그러나 그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로부터 무엇인가
나와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곳이 여기 유럽의 현실이다. 바로
그러한 주장이 독일의 통일노조를 비롯한, 대부분 유럽 대규모
노조들의 입장이다. 프랑스 노조의 하나인 CFDT(사회주의
경향)도 최근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노조 내 강력한 반대그룹이 형성되어 1995년 12월 대규모
파업투쟁 이후 CFDT는 투쟁성을 제고할 수도 있었다. 독일에서도
또한 노조와 사회운동 내에 비판그룹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연대를 강조하는 이 그룹은 자본의 목표와 노동의 목표간 대립을
분명히 하는 것을 당면 과제로 삼고 있다. ‘한국민주노동운동과
연대하는 모임 SOLIKOR’의 대표로 지난 95년 11월 한국민주노총
창립대회에 참가했던 한스 쾨브리히(Hans Köbrich)의
연대사는 이 점을 명확히 지적하였다.
“우리는 지구의 다른 쪽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겨루는
경제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영내평화(Burgfrieden) 협정을
노동자조직이 당해 기업가들과 체결하는 그러한 ‘요새’ 유럽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전혀 새로운 길이
아니며, 오히려 노동하는 계급의 국경을 초월한 연대를 목표로
탄생한 노동조합운동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더욱 과격해진 자본주의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세계시장을 지배하는 기업들은,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우리
노동자들이 수많은 희생을 통해 쟁취해 낸 사회보장권리들을
다시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간의 내부경쟁은 고삐가 풀린 채 도처에 번져가고
있습니다. 벤츠나 제너럴 모터스 아니면 현대, 그 어느 기업을
막론하고 우리 사장님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요구를
포기하고 그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따라 줄 때, 그들과 함께 세계시장에서 승리하고 살아남을
것이며, 서로 경쟁한다면 모두가 공멸할 것’이라고. 그들의
논리는, ‘실존하는 자본주의로 인한 지구파멸과 빈곤에
대항하는 싸움이 노사가 상호 경쟁을 극복하고 공통의 목표를
추구하는 것을 배울 때에만 승산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연대의 차별성은 종종 의식적으로 감추어져
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세계를 무대로 운동하는 자본관계에
대항하고자 하는 지구적 관점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러한
연대적 관련 속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새롭게
경험하는 연대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연대의 논리와 활동을 파괴하고 수준과
차원을 막론하고 경쟁을 조직하려는 시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에서 승리자만이 살아남는 현대에, 연대에
대한 올바른 고민과 실천은 사회적 저항과 혁명적 희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권영길 위원장의 슈피겔(Spiegel)지 인터뷰 기사를 읽어볼 때,
그 내용은 지배자의 진중으로부터 친구를 얻게 할 지는 모르나,
올바른 연대로 지원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눈에는 ‘경쟁력은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단지 사회적이기를 바란다’는 기존의
지배적인 비연대적 사고에 다름 아니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적 동반자관계에 참여한 노동조합들은 매우
국제적이다. 그 대응이 다양한 만큼, 최근 한국의 파업과 95년
12월 프랑스의 파업에 대한 태도도 많이 달랐다. 한국의
파업투쟁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으며, 그 중에서도 자신이 속한
기업이나 국가, 또는 더 나아가 유럽경제의 경쟁력강화를
기본전제로 하는 가운데, ‘안정된 정권은 통합된 노조운동을
필요로 하는데, 불법화는 급진성의 지속을 의미할 뿐’이라는
입장에서 민주노총의 불인정을 비판했던 사회적 동반자들로부터
특히 많은 지원을 받았다. 때문에 독일노총과 OECD가 민주노총의
합법화를 찬성한 것은 당연했으나, 그와 달리 유연화 문제에
대해서는 그들도 같은 방향의 정책을 펴고 있으므로 거의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의 연대 개념은 다시 말해
친자본적이고 사회적 동반자관계의 노조운동을 수립하는 데
동참한다는 것이었다. 반면, 프랑스의 파업에 대해서는 진지한
청취도 지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파업의 대부분은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를 공격하는 전투적 투쟁파와 급진적
활동가들에 의해 이끌어졌던 것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기업가적 목표를 더욱 내면화해 가고 있는
세계적 자본경쟁의 시대에서 우리는, 세계시장의 ‘넘버 원’이
되고 승리자 국가군에 속하기 위해 다투는 기업과 그 국가의
행진 앞에서 우리를 끝없이 긴장케 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의 세상에 살고 있다는 총체적 관계를
더욱더 확고히 의식해야만 한다. 그 전략적 생활목표를 만국의
노동자들은 함께 세워나가야 한다.
‘세계 각국의 노동자들이 타국의 노동 가격을 낮추고, 경쟁기업
내에서 일어나는 노동운동을 궤멸시키거나 동시에 지원한다.’
이것은 이곳 독일의 노동조합들과 유럽의 다른 노동조합들 중
많은 수가 가지고 있는 사고이다. 각자 자기 나라와 자신이 속한
기업 및 사회에서 진정한 연대가 토대를 이룸으로써, ‘우리는
다른 나라 노동자들과 싸우는 전쟁에서 승리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지금까지 어떠한 전쟁에서도 노동자들이 승리자가 된
적은 없기 때문’이라는 목적의식적 비판을 모든 노동자들은
가슴 깊이 품고 있어야 한다.
상호배움이 사회운동과 연대활동에서 의미하는 것은
모순을 분명히 인식한다는 것이다.
프랑스 르노(Renault)사 파업
르노(Renault)사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자동차 콘체른 중의
하나로서, 50년대에는 노동운동과 공산주의 운동의 아성이었다.
이 회사의 노동자들은 많은 사회적 권리를 쟁취해 냈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과 미국의 역할을 반대하는 투쟁에도 앞장섰다.
80년대에 레노콘체른이 멕시코, 브라질, 포르투갈, 스페인 및
벨기에에 자회사들을 설립하고,
적시생산(just-in-time-production)의 도입 등 생산과 조직을
합리화해 감에 따라, 일자리 감축과 해고에 대한 레노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CGT 노조들(공산주의 경향)은
‘프랑스식으로 생산한다’는 ‘produire franais’ 노선, 다시
말해 프랑스에서 생산되어야 한다는 투쟁전략을 세웠는데, 그
실제 의미는 르노가 국가기업이므로 무엇보다 프랑스인들에게
노동력을 팔아 임금노동자가 되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생산활동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초국적 콘체른의
생산이 국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그러한 노선은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것으로서, 콘체른 내에서도 노동자들의 국가간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단절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주요 CGT
노조지도부들이 자칭 공산주의자들이자 실제 공산당원이었던
당시, 상황은 더 진척되기 어려웠다.
최근 프랑스 민족전선(Front National)과 같은 극우정당들이
바로 그 노선을 취해 나름대로 발전시켜 ‘프랑스 내에서,
프랑스 노동자들만에 의한 생산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CGT 내에 노동자들간 인종주의적 혹은 민족주의적 차별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극우정당들의 입장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 민족이기주의적 경향은 악화되는
경제․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민족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경향이 싹틀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
1997년 르노콘체른의 구조재편은 속도를 더해 가고 있다. 콘체른
경영진이 관철하고자 했던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었는가?
그들은 현대화 수준이 매우 높았던 벨기에 공장을 철수하고
프랑스 내의 생산을 한층 집약시킬 계획을 세웠다. 그로 인해
3천명 이상의 전 종업원이 해고상태에 처하게 된 벨기에
르노공장 빌보드(Vilvoorde)는 노동자들에 의해 점거되었고,
그와 함께 이후 5주간 지속되는 파업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벨기에 공장철수와 콘체른 경영방침에 반대하는 투쟁에 프랑스
노동자들의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부분적으로는
폭력도 불사하며 프랑스 르노사에 진입했다. 그러나 모든 공장이
그 부담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동참과
공동투쟁으로의 동원은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마침내 한 운동이 형태를 갖추고 32시간으로의 주간노동시간
단축과 모든 종업원들의 일자리 보호를 위한 투쟁이 가시화되기
시작했을 때, 그러한 공동투쟁의 전망은 발전할 수 있었다 :
‘우리끼리 갈등함으로써 서로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주
32시간제 확보를 통해 모두에게 일자리 보장을’.
1997년 3~4월에 전개된 이 생생한 경험이 말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경쟁사고와 탈연대는 오늘날 노동운동 깊숙이 침투해 있고,
부분적으로 노조의 기업이기주의적이고 국가이익에 함몰된
관점에 의해 더욱 강화되어 왔다. 거기에는 국가 경제와 당해
기업을 위한 이해관계가, 하나의 지구에 공생하는 모든
임금노동자들과 남녀를 막론한 무산자들의 공통의 이해관계보다
우선하고 있다. 독일에서 그러한 입장은 ‘산업입지보호와
일자리를 위한 동맹’이라는 정책으로 대표된다.
이와 같은 탈연대화의 과정에 대항해 싸우기 위해서는 벨기에
르노 빌보드노동자들의 행동이 보여준 것처럼 수많은 실질적이고
창조적인 발상이 요구된다. 그리고 그 발상은 우리가 과연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를, 즉 자본의 경제전쟁과 싸우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노동하는 대중과 인간이 중심이 되는
경제질서와 사회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목표를 확고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때에 비로소 32시간 또는 30시간으로의
주간노동시간 단축 주장은 총체적 부의 재분배와 같은 중심적
요구와 연결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생산성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증가분은 자본의 수익증대로 귀속되었을 뿐,
임금노동일의 단축이나 편리를 위해서도, 또는 노동현장 밖의
삶을 풍부하게 하거나 윤택케 하는 것으로도 귀결되지
못했다.
국제 노동자연대, 어떻게 ?
연대하는 국제 노동운동의 재형성을 위한 토대는 모든
임금노동자들을 위한 급격한 노동시간단축, 소수에 집중된(아래
블록 안의 글을 보라) 막대한 부의 재분배,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를 아래로부터의 사회화과정을 통해
결정하려는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생산의 목적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지배를 결과한 국가자본주의적 수단을 통한
콘체른의 국유화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와 같은
위로부터의 혁명(국가자본주의 나라들의 몰락)이 실패하였음은
명백하며 재론의 여지가 없다.
오늘날 그리고 장차에도 필수적인 사회화과정과 그에 관한
논의는 더 이상 국가라는 테두리 내에서가 아니라, 노동자운동과
사회운동의 새로운 국제연대의 한 부분으로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지행위와 지원활동이 갖추어야 할
요소로서 점차 그 중요성이 부각되어 갈 것이 분명한 연대의 두
측면은,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경계를 초월하는, 직접적인 실천적
연대와 공개적인 정치적․전략적 토론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근본적 변화는 단일한 지구적 관련 속에서만 상상할
수 있고 또 실현될 수 있다. 이제 그러한 전망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확실해져 간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이해하는 지구적
연대이다.
부: 부유층이 실로 오늘날처럼 부유했던 적은 없다. 세계
358명의 부자들이 전 세계 빈곤층의 45% 이상, 즉 약 26억 명의
재산보다 훨씬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 이 수 십 억대의 부자
한 사람은 약 7백만 명의 빈민에 해당한다. 오늘날 이와 같은
부와 빈곤의 양극화는 대륙간에도, 한 대륙 내 국가간에도,
그리고 지역간에도, 사회계급간에도 과거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세계 주요 국가들의 자본생산성은 그 국민
전체의 욕구 충족에 필요한 양을 생산하는 노동시간이 매일
4시간씩 단축될 만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1997년 4월 14일)
한/노/정/연
번역 : 정병기(해외연구원, 베를린자유대정치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