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만의 졸업?
이정하
지난 주말에는 고향에 다녀왔다. 6시간을 단숨에 달려서
도착하니 환영하는 것이 돈 받는 것이다. 14,800원, 적지 않은
돈이다. 5만원어치 기름을 넣으니 45,000원어치 기름이 들어가고
5,000원 정도는 세금이란다. 이 계산이 맞는 것인지 더 따지면
나만 멍청한 것 같고 시간도 바쁘고 해서 그냥 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언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다. 현금으로 치를 때는
그냥 5만원 어치 들어간 것으로 생각하고 말았는데…. 여하튼
한번 고향을 갈라면 길바닥에 까는 돈이 십만 원은 넘는다.
그래도 가긴 가야 한다. 36년 만에 보는 동창들 어떻게
변했는지, 도청이 들어온다는데 고향땅은 어떻게 변할지,
조상님들 산소는 온전할지…. 설레는 마음에 새벽같이
출발하지만 마음은 벌써 고향땅에 가 있다.
우리는 해마다 6월초가 되면 총 동창회와 기수별 체육대회를
한다.
동창이 많으니 33에서 50까지 참여하지만 50이 되면 주관기수가
되어 경기에는 참여하지 않고 행사준비나 진행을 맡아서한다.
마지막으로 행사를 치러주고 후배한테 물려주는 식이다. 대전에
있는 동창의 말대로 마지막 졸업인 것이다.
전날부터 비가 말 그대로 억수로 쏟아졌다.
전야제 리허설 하는 시간에도, 끝나고 술 먹을 때도, 고향
생각에 친구생각에 어울려 노래 부를 때도 쏟아지던 비가 날이
새자 노래가사처럼 맑아졌다. 우리가 지은 죄가 너무 큰 것
아니냐고 걱정하던 친구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옛날부터 우리학교는 소풍날 운동회 날이면 늘 비가오곤 했다.
비가 안 오는 날이 더 많았겠지만 그렇게 다들 생각했다.
소문에는 학교 뒤편에서 큰 구렁이를 잡고부터 그렇다고들
하기도 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지만 누구나 의심하질 않았다.
비 개인 아침 햇살을 받으며 정다웠던 학교 운동장으로 서둘러
가던 발길에 아직 남은 밤비가 새하얀 운동화를 적신다.
문득 우리가 사는 도시의 운동장이 생각난다. 아파트 아스팔트에
휩싸여 사는 아이들이 그나마 한 뼘밖에 남지 않은 운동장에서
잠시라도 흙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기회조차도
없게 되었다,
자기들은 “웰빙”이다 뭐다하며 황토방까지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인조 잔디를 깔아놓아 학교 갔다 집에 오는
아이들의 운동화가 까만 아스팔트처럼 물들어 온단다. 학교
측에서는 이미 잡힌 예산을 사용해야지 어떻게 하냐고 무책임한
말을 하고 학교 교육위원 구 시의원들은 인조 잔디 덮어씌우는
예산을 따냈다고 생색을 내고 있다니 이 나라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 걱정된다. 집에서는 시멘트 콘크리트
위에서 생활하고 돌아다니는 길에서는 아스팔트 위를 밟고,
학교에서는 온종일플라스틱 위에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뒹굴고 있을 때 저들의 엄마들은
황토방이다 머드팩이다 쫓아다니는 것을 알고 있을까?
자주 가게 되는 우리 집 옆의 초등학교는 운동장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지난해에는 배수시설을 시원하게 해놓더니
올해에는 또 가는 흙을 깔아 놓았다. 아침에 그 운동장에 가면
기분이 좋아진다. 고향의 초라한 내 모교 운동장도 생각나지만
흙냄새 나무 냄새가 난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은 흙을 밟으며 자라야 할
것이다. 전국의 골프장면적보다도 적다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그렇게 없앤다면 어찌될까? 얼마 전 정부발표를 보면 그나마
살아있는 소규모 초등학교를 또 없앤다고 한다. 건설업자만
이득이 가는 인조잔디로 운동장을 덮어버리는 것이나 학교운영을
경영실적으로 계산하는 것이나 선생님의 교육을 경쟁력으로
평가하는 것은 이 나라의 교육이 썩었다는 것이다. 이
나라의 교육이 썩은 것은 이 나라의 장래가 없다는 것이니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인간다운 교육을 시킬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하겠다. 없어져가는 초등학교 살리기 운동이나,
초등학교 운동장 살리기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원…….
여하튼 36년 만에 만난 33회 동창들 반가웠다. 다 잘사는 것
같아 좋고 소꿉친구를 만나니 더더욱 즐겁구나. 친구들 수고
많이 했다. 다음에 또 보세. 질퍽한 운동장도 좋고 허름한
막걸리 집이라도 좋지 않겠나? 친구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