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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임단투는 첫 시험장이다.

현장에서 미래를  제21호
양경규

노동시평

97년 임단투는 첫 시험장이다





양 경 규(전문노련 위원장)




정치적 성과는 다 가져 가라!

무심코 내다 본 차창 밖으로 종묘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칼바람을 맞으며 부릅뜬 눈으로 서 있던 수 만의 노동자를 다시 본다. 정권퇴진과 악법철폐를 외치던 그 함성소리를 다시 듣는다. 그 소리를 뚫고 뚜렷이 다시 살아오는 소리가 있다.

“총파업의 정치적 성과를 함부로 말하지 말아라. 우리 현장의 노동자에게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생존권을 압살하는 노동악법, 노조활동을 뿌리부터 뒤흔드는 노동악법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투쟁이었다는 말이냐? 정치적 성과는 지도부가 다 가져 가라. 우리에게 정치적 성과를 말하지 말아라.”

일전에 현장교육이 끝나고 튀어나온 현장 조합원의 질문 겸 항의의 목소리다. 쇠망치로 뒤통수를 두들겨 맞는 아픔을 느끼며 총파업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한계와 과제가 새롭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그 때 설명할 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말로도 그 조합원의 불만과 분노를 위로할 수는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실천으로만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총파업이 끝나고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화두는 바로 이후 민주노조운동에 주어진 실천의 문제를 여하히 담보해 나갈 것이냐가 될 것이다.


노동법 개정투쟁은 끝나지 않았나 ?

노동법 개정투쟁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라고들 말한다. 여야합의를 빌어 개정하였지만 사실상 제 2의 날치기와 다름없는 노동악법의 철폐투쟁을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의지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우리는 정말 끝나지 않은 싸움, 끝내서는 안되는 싸움을 계속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다시 국회에서 법 개정을 논의하게 하고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총파업을 벌이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임․단투 체제로 전환된 현실의 조건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총파업 이후 계속되고 있는 탄압을 새롭게 추스려야 하는 개별노조의 조건을 감안할 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가?

민주노조 진영은 이번 총파업 투쟁을 통해 비록 법개정 내용의 상당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성과를 얻었다. 그러한 성과는 내용 상의 한계와는 별개로, 폄하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미완의 노동법 개정투쟁의 완전 승리를 위해 그 성과는 이후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동법 개정투쟁을 계속해야 한다면, 노동자가 정당한 권리를 누리고, 노조활동이 자유롭게 보장되는 사회를 그린다면 이러한 정치적 성과는 지도부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노동자 대중이 함께 공유해야 할 중요한 성과로 자리잡아야 하는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번 총파업을 통해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것은 건국 이후 최초의 정치적 총파업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뚫고 전국단위로 처음으로 총단결, 총투쟁을 만들어 냈다는 측면에서이다. 87년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오랜 투쟁 과제는 권력과 자본의 총체적 공세에 맞서는 공동전선의 구축이었다. 그러나 기업별 노조라는 한계는 우리의 투쟁전선을 한번도, 그것이 임․단투이건 노개투이건 민주노조진영이 모두 함께 하는 구도로 만들어내지 못하였다. 대공장의 싸움은 의례 단위노조의 개별적 조건과 이른바 기업별 이기주의를 강제하는 종업원 의식으로 시기 한 번 제대로 맞추어 이렇다 할 공동투쟁 조차 만들어내지 못했다. 전노협이 민주노조운동의 사활을 걸고 싸울 때 업종회의는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형국이었다. 95년 민주노조의 깃발을 부여잡고 명동에 옥쇄하고 있던 한국통신노조는 불어오지 않는 남쪽의 바람을 탓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치적 성과는 중간평가에 불과하다 !

적어도 이런 측면에서 이번 총파업은 비록 절반의 승리였지만 아흔 아홉 번의 패배 끝에 얻은 단 한번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총파업이 단지 이러한 구도를 만들어냈다는 의미만을 가지고 승리라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총파업이 의미를 갖는 것은 이러한 공동전선의 구축을 통해 정권과 자본의 후퇴를 우리 눈으로 확인하였다는 사실이다. 노동자의 총단결, 총투쟁은 반드시 일정한 성과를 담보한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점은 이후 우리 운동의 방식과 내용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는 87년 이후 숱한 싸움 속을 거치면서 이것은 아니다라고 수 십번, 수 백 번을 외쳐왔던 활동가에게나 노동자대중에게, 그래서 머릿속에서 이론적으로만 수없이 되뇌던 우리 운동의 방향을 실천적으로, 몸으로 확인케 해준 계기가 된 것이다. 이번 총파업을 통해 노동자 대중이 얻은 자신감과 스스로 확인한 운동방향에 대한 확신은 우리 운동을 변화시켜 갈 것이다. 바로 그 연장선 위에 미완의 과제인 노동악법의 완전철폐와 민주적 노동법의 완전쟁취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우리의 싸움이 절반의 승리에 그쳤지만 아니 어쩌면 결과물에 있어서는 그날의 그 현장조합원의 분노처럼 승리감보다는 허탈감이 더 클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조건과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분명히 확인되어야 할 문제가 있다. 미완의 과제인 노동법 개정을 이루어 내고 우리 운동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 젖힐 수 있는 이런 성과들이 사실은 완결된 성과가 아니라 단지 잠재하고 있는 가능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이번 총파업에 대한 평가는 10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성과들이 노동법 개정을 이루어 내고 산별 노조로, 정치세력화로 우리 운동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 갈 지 아니면 여러 가지 한계의 결과물인 노동악법이 이후 노동자와 노동운동의 결정적인 장애로 기능하고 이로 인해 민주노조운동이 침체에 빠져들게 될 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평가해야 된다는 것이다.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지금의 정치적 성과에 대한 평가는 결과에 대한 책임회피용 억지이거나 수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법 개정투쟁이 끝나지 않았고 계속되어야 한다면 이러한 평가는 중간평가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현장에 쏟아지는 탄압은 이미 이러한 우리의 작은 성과마저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권력과 자본의 공세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성과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민주노조운동은 총파업을 통한 새로운 전진이 아니라 노동악법에 의한 후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여하히 이 성과를 보전하고 확대,강화해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노동자 대중과 함께 공유하고 구체적인 사업 속에서 이를 실천해 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은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당면한 97년 임․단투는 바로 그런 측면에서 그 도전의 첫 시험장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97년 임․단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단위노조들이 연맹에 문의하곤 했다. 임․단투 준비를 해야 하겠는데 민주노총의 방침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들의 질문의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연맹의 방침이 아니었다. 총파업을 통해 노동자대중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민주노총이 전국의 투쟁전선을 또 하나로 묶어 투쟁을 해주길 기대했던 것이다. 예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의 정세와 조건 속에서 민주노총이 책임져 주지 않는다면 임․단투를 어떻게 치르고 노동악법을 등에 업고 현장을 무력화시키려는 사용자측의 공세 또한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가 그들의 고민이었던 것이다.

여느 때 같으면 교섭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거나 적어도 한창 교섭의 열기가 더해 갈 시점에 총파업으로 늦추어진 97년 임금 및 단체협약을 위한 교섭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 97년 임․단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노조활동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는 노동악법을 현장에서 무력화시키고 고용이냐 임금이냐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를 넘어 노동자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와 함께 민주노조운동의 조직적 과제로는 바로 총파업을 통해 확인한 공동투쟁의 전선을 다시 한번 임․단투 과정 속에서 구축해 나가는 일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97 임․단투의 당면목표를 관철하기 위한 전략이며 한편으로는 신보수주의로, 경제위기론으로 노동운동을 옥죄는 자본의 총공세를 극복하는 방안이고, 또 한편으로는 총파업으로 얻은 성과를 구체적인 사업 속에서 실천해 감으로써 우리 운동의 지평을 확대해 가는 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번 임․단투의 과정 속에서 권력과 자본은 개악된 노동악법을 현장에 뿌리내리는 계기로 삼을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97년 임․단투는 노동법 개정투쟁의 연장선에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임.단투는 분명히 종래의 방식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번 임․단투의 주요 방침으로 (1) 각급 조직의 요구와 투쟁시기, 투쟁전술을 조율하여 총괄적으로 관장하면서 전국적 투쟁전선을 구축한다 (2) 이를 위해 민주노총 소속 단위노조는 일제히 산별 연맹으로 교섭권을 위임한다고 정하였다. 적어도 방침은 전국적 투쟁전선의 구축을 분명히 하면서 총파업의 성과를 실천적으로 사업 속에 구체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선구축을 통해 정경유착과 재벌개혁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사회개혁투쟁에 힘을 싣고 제 2의 노동법 투쟁을 임․단투의 공간을 통해 벌여 나간다는 방침 또한 덧붙이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6월 중순 이후 우리는 다시 총파업의 전선을 치고 정권과 자본을 향하여 악법의 개정과 재벌개혁과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종묘공원에, 명동성당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총파업의 정치적 성과가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산별 노조의 결성과 다가오는 대선에 민주노조진영은 훨씬 더 풍부한 가능성을 갖게 될 것이다. 총파업투쟁의 정치적 성과라고 하는 것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우리 운동은 또 한번의 도약을 기약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상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준다. 기업별 노조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그리고 전국적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데 필수인 교섭권 위임은 민주노총의 방침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연맹의 경우 자체 판단에 따라 자의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경험의 부족과 단위노조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지금의 진행정도라면 시기집중도 만만치 않은 문제가 될 판이다. 대중운동은 조직의 조건과 정서를 거역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중의 조건과 정서를 정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0년 동안 기업별 노조의 아편주사를 맞아 온 조합대중이 단 한 번으로 바뀔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민주노총의 결정된 방침을 산별 조직이 얼마나 책임 있게 관철시켜 가려는 노력을 했느냐 하는 점일 것이다. 민주노총 또한 노동자 대중 속으로 이 문제를 얼마나 철저하게 갖고 들어갔냐는 자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다시 민주노총은 지도력을 발휘하여 조직화에 나서야 한다. 각급 조직은 현재의 조건 속에서라도 총단결, 총투쟁의 구도를 가능하게 할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97년 임․단투는 전환점이다

물론 이번 임․단투를 통해 전국적 전선을 구축하지 못했다고 해서 민주노조운동이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노자의 세력관계 형성의 시금석이 될 97년 투쟁을 총파업 이전의 방식으로 되돌린다면 민주노조운동은 노동법 개정을 위해, 산별 노조를 위해, 정치세력화를 위해 훨씬 멀고 힘든 길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더구나 권력과 자본의 현장탄압이 강화되고 있는 지금, 한국사회를 절대적으로 규정하게 될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는 지금, 신보수주의의 그늘에서 자본이 춤을 추고 세계의 진보진영은 숨을 죽이는 지금, 새로운 운동의 지평을 열 수 있는 단초를 놓친다면 노동자 대중은 어디서 다시 자신감을 찾을 것인가? 운동의 전기는 우연히 찾아오는 것도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97년 임․단투를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다는 각오를 가져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던져 노동법 개정 투쟁의 길에 동참하고자 했던 그날의 그 현장 조합원을 포함하여 50만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그리고 이 땅의 1200만 노동자에게 우리의 총파업 투쟁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997-05-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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