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당수와 한강
정희석
시각장애 안마사들이 한강에 투신하는 비극을 보며 심청전이
생각났다.
심청이는 공양미 300석으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 유교주의시대에 효의 상징이라 칭송
받을만 하다. 허나 광명을 찾기 전까지 시각장애인으로써
심학규의 삶과 심청이의 일상이 순탄치 않았음은 잘 알려져
있다. 심청이는 어머니를 일찍 여윈 탓에 아버지 손에 자랐다.
그래서 동냥젖을 먹고 컸다. 심청이가 조금 커서는 아버지가
앞을 못 보니 생계를 책임졌다. 길쌈과 삯바느질이 그녀의
노동이었다. ‘심청이를 키운 심학규의 부성’과 ‘심학규를
부양한 심청이의 효성’의 연대가 이야기 속 개안(開眼)의
기적을 가능케 했다.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들 중 대다수가 안마사로 밥벌이를
한다. 이들에게 안마사라는 직업은 선택이 아니 유일한
생계수단이 된지 오래다. 헌법재판소는 실질적 직업선택권이
없는 이들에게 비시각장애인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안마사자격 독점금지를 결정했다. 바로 이 판결이
시각장애 안마사들을 현대판 인당수, 한강에 뛰어들게 하고
있다. 이들이 안마사로써 생계를 유지했을 그 동안의 생활도
비시각장애인에 비해 안락했을 가능성은 적다. 그간 고단했던
삶과 그나마의 희망마저 빼앗긴 절망감이 이들을 마포대교에
오르게 했고, 한강으로의 투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강에 뛰어들기 전 시각장애 안마사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한강에 뛰어들기 전 이들이 죽기를 각오했을지언정 공포를
느꼈음은 당연하다. 보이지 않는 허공과 강물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공포를 비시각장애인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심청이는
투신하며 아버지의 개안을 기원했다. 그리고 시각장애
안마사들은 자신의 투신으로 같은 처지인 동료들의 생계와 그
가족들의 행복을 기도했을 게다.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허용하는 것은 기본권에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판결한
헌법재판소 판사들도 나름의 고민이 깊었을 것이다. 하지만
권위의 의자에 앉은 이들의 고뇌와 마포대교 교각에 겨우
걸쳐졌던 이들의 생존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격이 느껴진다.
이 간격은 비시각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했을지언정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가치는 익사시키고
말았다.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주기 시작한 때는 1915년
경이다. 이렇게 100년 가까이 지속되어오던 제도가
스포츠마사지나 경락마사지 등 무자격 업소들이 안마시장에
진출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사 안마업소들이 10만여
곳까지 늘어나도록 정부는 아무런 손을 쓰고 있지 않았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 후 보건복지부는 “헌번재판소 결정을
존중하며 시각장애 안마사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검토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같이
시각장애인들의 생계에 대한 아무런 대책 마련도 없이
안마시장에서의 시각장애인들과 비시각장애인들간의 무한경쟁이
허락되었다. 과연 이 시장 속 경쟁에서의 승자는 누구겠는가? 왜
눈이 있으면서도 뻔히 보이는 게임의 결과를 안 보이는 척 한단
말인가? 이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확연히 드러내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헌법재판소와 정부의 입장이 더 많은
이익만을 쫓아 인신공양의 희생물로 심청이를 인당수에 내던졌던
남경상인의 야만성, 장사치의 심성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와같이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경쟁체제를 점점 더 확대,
강화해가고 있다. 또한 이 흐름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버린
파편화된 개인들은 자신만은 승자가 되리라 자기최면을 걸고
있다. 하지만 이 자본주의 경쟁체제의 규칙은 대다수가 패자가
되도록 정해져 있다. 또한 이 체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이번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저항에서 또다시 드러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도처의 인당수와 한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뱃머리에서 또는 마포대교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우리의
모습이 상상되어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