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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기본과제

현장에서 미래를  제2호
김세균

특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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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민주노총 건설을 위하여

     - 민주노총 건설 중간 점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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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기본과제 ? 김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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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과 사회개혁투쟁 ?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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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기본과제?에 대한 비판적 검토 ? 현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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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건설, 현장에서 말한다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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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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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기본과제





김세균(소장,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이 글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준비위원회? 주최로 1995년 7월 18일 숭실대 사회봉사관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기본과제와 조직발전 전망 수립을 위한 정책세미나’에서 본 연구소 소장인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발표한 발제문을 김세균 교수 본인이 부분수정한 것이다.

   노동조합을 ‘노동해방의 가장 중요한 노동자 자신의 계급적 대중조직’으로 정의하고, 대안적 사회 건설이라는 노동운동의 장기적 목표와 결부될 수 있는 운동노선의 추구를 강조한 이 글은 노동조합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운동목표를 당면투쟁과제에 매몰시키는 제반 경향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민주노총의 이념적 노선과 운동노선의 정립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된다.



올 11월로 예정되어 있는 민주노총의 결성은 한국 민주노조운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획기적인 사태 진전임에 틀림없다. 이 발제문의 목표는 새로 결성될 민주노총이 노동자계급의 여망에 부응하는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명실상부한 전국적인 구심체로서 발전해 가기를 기대하면서, 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기본과제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개진해 보는 데에 있다. 이 발제문이 그 문제에 대한 토론을 보다 깊이있는 수준에서 진척시키는 데에 일정하게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발제문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 될 것이다.

1. 일반적 수준에서의 고찰



앞으로 결성될 민주노총은 ‘국가코포라티즘적 노동자통제조직’으로 전락한 한국노총의 그것과는 명백히 구분되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기대되는 바의 운동이념과 노선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부언의 여지가 없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의 운동기조 등은 우선적으로 그 이름에 합당한 노동조합 운동의 일반적인 운동이념과 노선 등에 비추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본인은 노동조합을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이해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동자들 자신의 계급적 대중조직 또는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자기조직’으로 규정내릴 수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계급 자신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 옳다면, ‘노동자들 자신의 계급적 대중조직’ 또는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자기조직’으로서 노동조합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해방을 위한 노동자계급의 가장 중요한 조직적 무기로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조합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노동조합을 경제투쟁을 조직하거나 또는 경제투쟁의 조직화를 주업무로 하는 조직 정도로 간주하는 모든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규정을 통해 본인이 무엇보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노동조합이란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해방을 성취해 나가는 데에 요구되는 가장 일상적인 업무로부터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적 업무까지 능동적으로 떠맡아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는 점, 따라서 노동조합의 이념과 운동기조 등은 기본적으로 이 규정이 함의하는 바의 내용을 최대한 구현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1) 노동운동의 기본적 운동원리로서 민주성과 자주성


위의 규정과 관련하여 노동조합운동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1적인 운동기조 또는 노동조합이 노동조합다운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서 요구되는 최저기준은 ‘민주성’과 ‘자주성’의 확보이다.

이때 민주성의 확보란 노동조합운동이 어디까지나 노동자대중의 총의와 힘에 의거하고 그들의 요구와 바램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대중주체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간부는 항상 ‘노동자대중과 더불어’, ‘노동자대중 속에서’ 활동하는 운동방식을 일상화시켜야 하며, 사소한 요구사항일지라도 간부에 의한 대리해결이 아니라 대중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해결하는 운동방식이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대의기구나 권한을 위임받은 기구가 아니라 노동자대중 자신의 직접적인 자기조직이어야 하기 때문에 조합 운영은 가능한 한 총회민주주의적․직접민주주의적 실천을 일상화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민주성의 확보 없이는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자대중 자신의 운동이 아니라 이들로부터 괴리된 상층간부 중심의 운동으로 전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한 노동조합운동은 힘있는 대중운동으로 전개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조합 운영의 관료주의화를 만들어내고 국가와 자본 등이 포섭전략을 강구할 경우 노동자대중에게서 괴리된 상층간부의 특권화와 정치적․도덕적 타락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자주성의 확보란 노동조합운동이 ‘자본주의적 착취와 지배에 명백히 대항하는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관계의 재생산은 자본의 물질적 힘에 의거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유지와 재생산을 총괄하는 국가 및 자본중심의 사회적 발전을 옹호하는 제 부르주아적 세력의 실천에 의해 재생산된다. 이 점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와 지배에 대항하는 운동으로서의 노동조합운동은 자본과 국가권력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적 반대파나 시민민주주의적 대안세력 등에 대해서도 명백히 자립성을 견지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국가와 자본의 직접적인 탄압과 적나라한 착취에 반대하는 노동운동이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의 형식적인 포섭’에 저항하는 운동이라고 한다면, 노동자․민중의 자발적 동의 확보를 목표로 하여 이루어지는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지배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은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에 저항하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지배는 자본주의적 관계를 유지시키는 선상에서 노동자의 권익 신장을 옹호하는 민주적 부르주아세력들이 주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다른 한편, 국가의 억압적 탄압에 저항하는 투쟁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 노동운동은 그러한 국가의 억압적 탄압에 반대하는 민주적 부르주아세력과의 연대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할 때에도 노동운동이 민주적 부르주아세력에 대해 지닌 계급적 이해관계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망각한다면,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노동운동은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인 포섭을 가져오는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적 지배에 종속된 운동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와는 달리 노동운동의 자주성은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의 형식적 포섭’에 저항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보아 더욱 중요하게는 ‘국가와 자본에 의한 실질적 포섭’에 저항하는 운동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다.


(2) 노동운동의 당면 투쟁과제와 최저강령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해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동자들 자신의 계급적 대중조직’ 또는 ‘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자기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은 무엇보다 노동자대중의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요구와 바램을 투쟁과제로 삼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계급적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제반 정치적․사회적 질곡을 타파하는 데 자신의 힘을 집중시켜야 한다. 이 점에서 권익옹호적 요구투쟁과 제도개선투쟁의 조직화는 노동조합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며 일상적인 투쟁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특정 시기에 노동자들이 처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상황과 관련하여 요구되어지는 권익옹호적 요구투쟁 및 제도개선투쟁의 내용이 그 시기 노동조합 운동의 ‘당면 투쟁 과제’가 되며, 또한 그것이 바로 그 시기 노동조합운동의 ‘최저강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최저강령’은 그 시기 노동자대중이 처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상황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인 동시에 그 시기 노동자대중의 가장 절실한 생활상의 요구를 반영하고 노동자들의 계급적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는 그 시기의 가장 중요한 질곡을 타파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현 시기 한국에서 노동운동의 중요한 당면 투쟁과제는, 노동자대중 전체가 대체로 최저생계비 수준의 임금이라도 받는 데에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노동 3권의 확고한 보장, 노동자계급의 자유로운 정치활동 보장, 산별수준에서의 단체교섭체제의 확립, 사회보장체계의 확립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즉,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라도 당연히 누려야하는 권리들이 최소수준에서라도 보장되는 상태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태의 확보를 많은 논자들은 ‘노-자 대등관계’의 수립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노-자 대등관계’를 그러한 의미에서 사용하는 것은 실제로는 실재적 관계를 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노-자 대등관계’라는 용어가 왜 실재적 관계를 은폐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노-자 대등관계 수립을 통한 계급타협체제 구축’을 주장하는 견해가 지닌 문제점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후술하겠다.

한편 노동조합운동의 투쟁과제와 관련하여, 노동조합이란 노동자대중의 절실한 당면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조직이기 때문에 노동조합운동의 목표는 이념적․정치적 노선 등의 차이에 상관없이 가장 많은 대중들이 참여할 수 있는 그 시기의 당면투쟁 과제의 실현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입장을 우리는 ‘최저강령주의’ 또는 ‘최저강령을 최대강령으로 간주하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입장이 지닌 문제점은 노동자계급의 가장 중요한 조직인 노동조합이 노동해방 과정에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왜소화시킴으로써 노동해방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 이로 인해 노동조합을 사회적 압력단체 정도로 격하시킨다는 점, 노동조합운동의 당면투쟁을 절대화함으로써 당면투쟁을 노동운동이 추구해야 할 장기적 목표와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 등이다.


(3) 노동운동의 장기적 목표와 이념적 노선, 그리고 전략적 과제


‘노동자들 자신의 계급적 대중조직’ 또는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자기조직’으로서 노동자계급의 가장 중요한 조직적 무기인 노동조합은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을 노동운동의 장기적 목표의 실현을 위한 투쟁과 결합시키기 위해 항상적으로 노력함으로써 노동운동이 추구해야 할 장기적 목표를 실현시켜 나감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노동운동의 장기적 목표와 관련되는 노동조합운동의 ‘이념적 노선’은 노동조합운동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사회적 상을 무엇으로 파악하는가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데, 이때 가장 핵심적인 의의를 지닌 문제는 ‘노-자관계의 본질’을 무엇으로 파악할 것인가이다1). 이 문제에 관련하여서는 (가) 노-자관계를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체계로 보는 입장과, (나) 임금을 ‘노동력의 재생산비’가 아니라 ‘노동의 대가’로 보거나, 아니면 자본과 임노동을 (토지와 더불어)생산이 이루어지는 데에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두 가지 요소로 간주하면서 노-자관계를 생산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이윤과 임금이라는 자신의 ‘정당한’ 몫을 각각 주장할 수 있는 두 소득원천 소유자간의 관계로 파악하는 입장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그런데 (나)의 입장에서는 노동자가 노동력의 최저수준의 정상적인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 자본이 임노동을 착취하는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되거나2), 아니면 자본과 노동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생산과정에서 노동이 생산에 기여한 만큼 임금을 받지 못할 경우에만 자본이 임노동을 착취하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으로 파악된다3).

여기서 (나)의 입장에 서면 ‘생산’ 면에서는 노동자가 노동력의 재생산비를 더 받거나 또는 노-자가 각자의 분배 몫을 늘이기 위해 협력하고, 임금지급이나 ‘분배’ 면에서는 노동자가 정상적인 재생산비를 받거나 노-자가 각각 자신이 차지해야 할 정당한 분배 몫을 차지할 수 있는, 전 사회적 수준에서의 이른바 ‘노-자 대등관계의 수립을 통한 노-자 간의 계급타협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적 중요성을 지닌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와 같은 관계가 수립되어 있지 못한 오늘의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는 계급타협체제 구축의 전제조건이 되는 그러한 ‘노-자 대등관계’를 수립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조건을 쟁취하는 것이 당면의, 또는 (그 실현이 현 시기의 투쟁으로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경우에는) 중․장기적인 노동운동의 목표로 설정되어진다. 이러한 입장은 한마디로 ‘노-자 대등관계의 수립을 통한 노-자 간의 계급타협체제’의 구축을―그것을 노동운동의 단기적 목표로 보든, 아니면 중․장기적 목표로 보든―노동운동의 ‘최종적’ 목표로 삼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고전적 자유주의가 지닌 결함을 이른바 ‘분배 정의’의 구현을 통해 교정해야 한다고 보는 ‘혁신자유주의자’들도 동의하는) 이러한 입장은 노동운동의 역사에서는 사회민주주의운동을 실질적으로 대표해 온 사민주의 우파세력의 노동운동 이념을 대변하는 견해이다4). 또한 한국에서는 1990년대 초 ‘노동운동의 위기론’이 제창되는 가운데 이른바 ‘전투적 노동조합주의’를 비판하면서 우후죽순처럼 제기된 이른바 ‘진보적 노사관계론’이나 ‘민주적 코포라티즘론’ 또는 ‘신코포라티즘론’을 제기한 사람들이 대변하고 있는 노동운동의 이념적 노선이기도 하다.

그런데 ‘노-자 대등관계의 수립을 통한 노-자 간의 계급타협체제의 구축’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노동에 의해 생산된 잉여가치의 자본에 의한 전유’를, 그것이 노동력의 최저수준의 정상적인 재생산을 가능케 하는 임금을 지불한 이후에 차지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생산에 대한 자본의 기여도 등에 비추어 보아 자본이 차지해야 할 ‘정당한 몫’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인 한,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노동력의 최저수준의 정상적 재생산 비용을 지불하거나, 아니면 임노동이 차지해야 할 이른바 분배상의 ‘정당한’ 몫을 임노동이 차지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매커니즘을 일정하게 보장해 주는 대가로 계급타협체제, 즉 ‘자본주의적 생산을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 주는 체제’를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달성되는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헤게모니적 지배’를 ‘노-자 대등관계’로 오인하는, 사실상 노-자관계에 대한 ‘합리적인’ 부르주아적 입장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또한 이러한 입장은 ‘노-자 대등관계’의 수립을 전제로 하여 분배 몫을 늘이기 위해 노동이 자본주의적 생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포섭’을 옹호하는 입장이다. 이 점에서 ‘노-자 대등관계의 수립을 통한 노자 간의 계급타협체제 구축’을 지지하는 입장이란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의 형식적 포섭’에는 반대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국가와 자본에 의한 노동의 실질적 포섭’을 지지하거나 ‘국가와 자본에 의한 실질적 포섭체제’ 하에서 노동운동이 자본종속적인 운동으로 전락하는 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은 흔히 ‘노-자 대등관계’의 수립으로 잘못 지칭되고 있는, ‘노동자대중 전체가 최저생계비 수준의 임금이라도 받는 데에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바의 정치적․사회적 조건이 일정하게 갖추어진 상태’의 쟁취는 노동운동의 당면투쟁 과제나 단기적 목표는 될 수 있지만, 그러한 관계를 수립하여 노자 간의 계급타협체제를 구축하자는 견해에 대해서는 단호히 반대한다5). 오히려 그러한 관계의 수립은 노동자들이 처한 절실한 생활상의 문제를 일정하게 해결하는 동시에 노동운동이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지배에 대항하여 사회적 진보를 더욱 진전시키는 데에 요구되는 발판을 획득하는 것이어야 하지, 계급타협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그 단계에 이르러 더욱 전진해야 할 노동운동을 사실상 종결지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견해와는 달리 노동운동은, (본인의 견해로 추상적으로 말한다면) 일국적 수준에서만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계급적 착취와 억압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사라진, 자유가 평등의 조건이 되고 평등이 자유의 조건이 되는 ‘일하는 사람들의 연대적 평등사회’라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적 사회의 건설을 자신의 장기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노동운동이 그러한 원대한 목표를 자신의 장기적 목표로 삼을 때에만, 노동운동은 자기 발전의 어떤 단계에서나 노동해방과 사회적 진보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위해 투쟁해야 하는가를 자각하고 운동하는, 자기운동의 방향성을 지닌 운동이 될 수 있다. 그래야만 운동의 당면과제들이 충족되면서 자신이 지닌 진보적 잠재력을 잃어가는, 이 점에서 점차 화석화되고 죽어가는 운동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진보적 잠재력을 항상적으로 발휘하는 살아 있는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럴 때에만 노동운동은 노동해방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적 억압과 차별로부터의 인류해방을 주도해 내는, 진정으로 해방적인 사회적 힘으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논의와 관련하여 노동운동은 노동운동의 장기적 목표를 실현시키는데 중심적인 의의를 지닌 과제들을 자신의 ‘전략적 과제들’로서 가져야 하는데,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들은 노동운동의 장기적 목표와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을 결합시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란 해당 사회의 성격과 발전단계 등에 의해 기본적으로 규정된다.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세계자본주의체제 하에서 중위적 발전 수준을 이룩한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사회’이자 ‘분단사회’로서, 그리고 성적 억압과 생태계의 파괴와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지닌 사회로서 규정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는 노동자․민중권력의 쟁취, 독점자본의 사회화, 사회경제적 과정에 대한 노동자적․민중적 통제체제의 확립, 노동자․민중의 필요충족을 위한 생산체계의 확립, 민중적 권리들의 완전한 보장, 노동자․민중 문화의 창달, 종속성의 탈피와 민중적 통일의 달성 등과 같은 (민주변혁이라는 용어로 총괄될 수 있는) 민중민주주의적․민족적 변혁의 달성을 위한 과제들이 되어야 할 것이며, 성적 억압의 철폐와 여성적 권리의 확고한 보장, 환경문제의 근본적 해결 등도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로 포괄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이 단지 개량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노동운동의 전략적 과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의 밑거름이 되기 위해서는 당면과제의 해결을 위한 투쟁을 사회의 민주변혁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노동자대중의 정치적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작업과 항상적으로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4)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


국가가 노동과정에 억압적 방식으로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한국과 같은 사회에서는 기업단위 수준에서 근로조건의 개선을 위한 노동자들의 운동까지 여러 형태의 국가적 규제와 탄압에 맞서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로 인해 그러한 운동은 경제투쟁이면서, 비록 낮은 수준의 것이지만, 처음부터 정치투쟁의 성격을 아울러 지닌 것이 된다. 이와는 달리 노동자들이 정부정책을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거나 제도개혁 등을 위한 대정부투쟁을 전개하면, 그 운동은 상대적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정치투쟁이 된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정치투쟁의 최고 형태란 다름아닌 국가권력의 장악을 위한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인의 견해로는 ‘노동자들 자신의 계급적 대중조직이자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자기조직’으로서 노동자계급의 가장 중요한 조직적 무기인 노동조합은 위에서 말한 정치투쟁을 조직하는데 있어 투쟁의 ‘주력부대’나 ‘본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노동조합이 조직해야 할 그러한 정치투쟁에는 가장 높은 수준의 정치투쟁까지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은 노동조합은 주로 경제투쟁을 조직해야 하고, 노동조합이 정치투쟁을 조직할 경우 그 투쟁은 낮은 수준의 정치투쟁으로 한정되어야 하는 반면, 정치투쟁 또는 높은 수준의 정치투쟁은 노동조합과 구분되면서 선진노동자층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노동자의 정당이나 정치조직이 떠맡아야 한다는, 노동조합과 정당 또는 정치조직 간의 엄격한 역할분담론에 대해 명백히 반대한다. 그러한 견해는 노동자대중 자신을 사회의 진정한 정치적 주체로 상승시키는 것을 방해하며―그러나 노동자대중이 정치의 진정한 주체로 상승하지 않는 한 노동해방이란 불가능하다―, 정치조직이 노동자대중조직에게서 자립되고 자립화된 정치조직에로의 노동자대중조직이 종속되거나 노동자대중조직이 탈정치화되는 등의 상황을 초래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해방과정을 불가피하게 왜곡하고 파탄시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계급 또는 노동자․민중의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치세력화를 주로 의회나 제도권 정치영역으로의 진출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제도권 정치영역이 제 부르주아세력에 의해 독점되어 있는 오늘날의 상황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저지하는 중요한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 점에서 노동자(․민중)세력이 부르주아세력들과는 구분되는 독자적 정치세력으로서 제도권 정치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는 것은 현 시기 노동운동의 중요한 당면과제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노동자계급이 추구해야 할 정치 또는 ‘노동자 정치’의 기본형태는, 노동과정에서 분리되어 있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제도권 정치영역―이른바 ‘정치사회’―에서의 정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부르주아정치와는 달리, ‘현장투쟁’을 기본으로 하고 노동자를 정치적으로도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시키는 ‘연대적 공동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비제도적 운동정치’이어야 한다.

이 점에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있어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 것은 제도권 정치영역으로 진출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장투쟁과 연대적 공동투쟁을 힘있게 추진할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비제도적 운동정치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제도권 정치영역으로 진출하는 것은 노동자 정치운동의 형태를 ‘비제도적 운동정치’에게서 ‘제도권 정치’로 전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이렇게 될 경우 노동자 대중운동은 탈정치화되지 않을 수 없으며, 노동자대중들 자신이 정치의 주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대리정치’나 ‘위임정치’의 수혜자나 피해자로 전락하게 된다―, 역으로 ‘비제도적 운동정치’를 제도권 정치영역으로 확장시키기 위한 것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제도권 정치영역으로 진출한 부분이 노동자의 ‘정치적 대표’가 아니라 ‘제도권 정치영역으로의 파견된 사람’으로 역할함으로써 노동자 대중운동에서 자립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그 부분에 대한 노동자 대중운동의 확고한 통제체제가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계급이 추구해야 할 정치조직 또는 정당의 형태는 노동자계급의 선진노동자층이 중심이 되는 독자적인 노동자 또는 노동자․민중의 정치조직이어야지, 제 부르주아세력에 대해 독자성을 상실한 부르주아적 정치조직의 변형된 형태여서는 안된다.

그런데 노동자계급의 정치조직이 건설된다면 노동조합과 노동자 정치조직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이 문제에 대해 본인은 노동조합운동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력부대 또는 본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면, 노동자 정치조직은 주력부대의 나아갈 길을 개척하는 ‘선발부대’와 주력부대의 운동을 보조하는 ‘지원부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조직을 정치운동을 지도하는 전위조직으로 파악할 경우에도 그 지도는 지도를 계속 강화함으로써 대중을 정치적으로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지도가 아니라, 역으로 대중이 정치적으로 능동적인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나감으로써 그 지도를 소멸시켜 나가는 지도여야 하며, 또 그렇게 될 때에만 그 지도는 그 이름에 합당한 전위적 지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국가로 전화해야할 노동자․민중권력의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민주변혁을 위한 학교로서의 노동조합


현존 사회주의의 실패와 관련하여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대중이 아니라 당이 변혁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대중이 아니라 당이 국가로 전화해야 한다는 당관 또는 정치조직관에 있다. 그런데 현존 사회주의 사회에서 국가로 전화한 당 또는 국가와 융합한 당은 노동해방의 무기가 아니라 노동자대중을 지배하는 국가적 장치로 변모했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진정한 노동자․민중권력으로 전화하고, 또 이를 통해 노동자․민중에 대한 지배계급의 정치적 지배장치인 본래적 의미의 국가가 소멸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가로 전화해야 하는 것은 당이 아니라 대중의 직접적인 자기조직인 대중조직이며, 당은 항상 대중 속에서 대중과 더불어 활동하면서 대중이 자기자신의 직접적인 조직을 통해 국가로 전화하는 만큼 대중 속에서 사멸해야 하는, 현실적으로 불가피하게 출현하는 현상이지만, 목적의식적이고 지속적인 주체적 노력을 통해 해소해야 하는 노동자들간의 (사회적 의식의 측면 등에서의) 불균형적인 발전으로 인해 요구되는 조직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달리 당을 정치투쟁을 전담하거나 노동자세력이 제도권 정치영역으로 진출하는 데에 요구되는 조직으로 파악한다면, 당이 국가로 전화되거나 국가로 진출한 당이 노동자대중에게서 자립화되는 등이 불가피하게 나타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을 당면과제의 해결 등에 요구되는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에서 더 나아가 국가로 전화해야 할 노동자․민중권력의 가장 중요한 기구 또는 노동자․민중권력체제의 가장 중요한 주권적 권력체로서 사회의 민주변혁에 요구되는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로서 기능해야 할 것이다.



2. 당면의 구체적 과제들



지금까지 본인은 앞으로 결성되어야 할 민주노총의 운동기조와 기본과제를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이해를 실현시키기 위한 노동자대중의 계급적 대중조직 또는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자기조직’으로서의 노동조합에 걸맞는 노동조합운동의 기본원리, 장기적 목표와 이념적 노선, 전략적 과제, 당면투쟁과제와 정치적 운동노선 등과 관련시켜 매우 일반적인 수준에서 논의하였다. 그런데 이 문제는 현 시기에 한국 민주노조운동이 처한 주요 문제들과 관련하여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는 전국적 수준의 노동조합운동과 관련하여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바의 과제들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언급하겠다.


(1) 투쟁노선의 문제


현 시기 국가의 대노동자정책을 특징지우는 가장 중요한 측면은 국가가 임금억제정책을 계속 강력히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노총을 노동운동 통제를 위한 기구로 활용하고 기업종속적인 노사협조주의적 노동운동을 비호하는 가운데 민주노조운동에 대해서는 그 성장을 막기 위한 제반 억압적 탄압책을 부단히 강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국가의 대노동자정책은 노동자대중 전체의 생존권 요구와 노동자계급의 전국적 단결을 추구하고 있는 현 시기 민주노조운동의 지향성과 첨예하게 부딪친다. 이 점에서 현 시기에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당면투쟁과제는 임금투쟁을 통해 노동자대중 전체가 최저생계비 수준의 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상태를 쟁취해 내며,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을 방해하는 최대의 질곡인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 탄압에 저항하고 노동악법조항 및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기 위한 법개정투쟁을 힘차게 전개하는 일이다6).

이와 아울러 오늘날에는 특히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조를 중심으로 ‘노동자들 뿐만 아니라 국민 대다수의 요구’로서 파악되는 바의 ‘사회개혁투쟁’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을 높히고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어 왔으며, 이러한 주장을 수용하여 ‘민주노총준비위’는 ‘임․단투와 사회개혁투쟁의 결합’을 민주노총의 기본지침으로서 설정하였다.

그런데 현재 민주노총준비위가 설정하고 있는 사회개혁투쟁의 내용들은 현 시기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전반적인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입각해 설정되었다기보다는 소속 업종연맹들의 요구를 취합해 제시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투쟁지침에서는 경제투쟁의 과제로서 제시된 임금투쟁의 과제와 정치투쟁의 과제로서 제시된 사회개혁투쟁 과제간의 결합도가 매우 취약한 문제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개혁투쟁의 과제를 제시함으로써 노동조합이 생산영역에서의 착취와 노동운동에 대한 직접적인 탄압의 문제만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이해가 사회 전 영역에서 관철됨으로써 나타나는 제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노동운동의 대국민적 헤게모니를 높힐 수 있는 문제에 까지 자신의 투쟁영역을 넓히려고 시도하고 있는 점은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관건적인 중요성을 지닌 문제는 노동조합이 사회개혁투쟁을 전개해야 하는가 아닌가라는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개혁투쟁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 다시 말해 그 투쟁이 사회개혁투쟁을 통해 민주변혁운동을 대체하려는 중간층 중심의 시민운동과는 달리, 과연 노동자적 입장에 선 올바른 민주변혁적 지향성을 담고 있는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이다7). 본인의 견해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민주노조운동 진영의 내부에 시민운동적․시민민주주의적 경향성과 민주변혁적 경향성이 혼재된 채 병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양 경향성 중 어느 경향성이 주된 경향으로서 나타날 것인가는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장래와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다른 한편 오늘날 노동현장을 확고히 장악하려는 ‘자본의 신경영전략’에 대해 노동조합이 어떻게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것인가는 노동운동이 현장에 대중적 기초를 확고히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현장장악력의 공동화’로 인해 제반 상층 노동운동이 사상누각의 운동으로 변할 것인가라는, 노동운동의 장래와 관련하여 극히 중요성을 지닌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 수준만이 아니라 전국적 수준에서 노동조합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대응책이 강구되지 않으면 안된다.


(2) 조직노선의 문제


앞으로 결성될 민주노총이 ‘산별노조에 기초한 노동조합의 전국적 구심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발전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그러나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산별 건설의 경로인데, 이에 대해서는 업종별 노조들을 단일 산별로 전화시키자는 견해와 단위노조의 직접가입과 지역단위 편재를 주축으로 해 산별노조로 건설하자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본인은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노조들이 처음부터 산별노조의 조직체계다운 조직체계로의 지향성을 분명히 지니면서 민주노총에 가입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산별노조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임영일, [산별노조와 산별노조 건설운동], 영남노동운동연구소, 1995 참조)

이와 아울러 앞으로 건설될 민주노총은 한국노동자대중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의 미조직노동자들을 산별노조체계 속으로 조직하는 동시에 이른바 ‘중간노조’들을 민주노총으로 적극 결집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독점자본 소유의 대기업 노동자들과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및 생산직 노동자층과 사무직 노동자층을 하나의 노동자계급으로 단결시키는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해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본인은 미조직 노동자들과 해고노동자 및 큰 범위에서 노동자계급의 한 부분이기도 한 도시빈민들이 민주노총 건설과정의 한 주체로서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와 아울러 농민을 비롯한 다른 근로대중과의 민중적 연대 및 사회의 진보적 인텔리층과의 민주와 진보를 위한 연대가 굳건히 추진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한노정연


1) 노-자관계의 본질은 예를 들어 현존 사회주의체제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붕괴되었는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점에서 ‘새로운’ 노자관계의 수립을 요구하는 근거로서 현존 사회주의체제의 붕괴 등을 이유로 드는 것은 그 수립의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입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2) 따라서 이 입장에서는 노동자에게 최저생계비 이하의 임금이 지불될 경우에만 임노동에 대한 자본의 착취관계가 성립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3)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서는, 역으로 노동자계급의 힘이 강해져 노동자가 노동이 생산에 기여한 몫 이상의 임금을 받게 되면, 이는 자본이 당연히 차지해야 할 몫을 노동자들이 가로채는 것, 즉 노동이 자본을 착취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3) 따라서 이러한 입장에서는, 역으로 노동자계급의 힘이 강해져 노동자가 노동이 생산에 기여한 몫 이상의 임금을 받게 되면, 이는 자본이 당연히 차지해야 할 몫을 노동자들이 가로채는 것, 즉 노동이 자본을 착취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합리적인’ 부르주아적 입장에서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는 부르주아적 임금론이 이른바 ‘생산성 임금제론’이다.


4) 이와는 달리 사민주의운동의 소수파에 속해 온 사민주의 좌파세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최종목표로 삼지만, 국가를 ‘계급적 힘관계의 응집’으로 보는 국가관에 입각하여 그 이행이 노동자계급의 국가참여를 통해 평화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을 취한다.

4) 이와는 달리 사민주의운동의 소수파에 속해 온 사민주의 좌파세력은 자본주의 사회의 사회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최종목표로 삼지만, 국가를 ‘계급적 힘관계의 응집’으로 보는 국가관에 입각하여 그 이행이 노동자계급의 국가참여를 통해 평화적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을 취한다.

  그런데 국가를 ‘계급적 힘관계의 응집’으로 보는 견해는 유로-코뮤니즘운동이 대변하는 국가관이기도 하다. 이때 사민주의 좌파세력이 선거에 의한 다수파 형성과 국가참여를 통한 이행이라는 ‘제도권 정치영역의 정치’ 또는 이른바 ‘정치사회에서의 정치’, 즉 ‘제도권 정치’를 특권화시키는 입장을 취한다면, 유로-코뮤니즘세력은 그러한 제도권 정치와 밑으로부터의 대중투쟁의 결합을 중시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유로-코뮤니즘 우파세력이 ‘제도권 정치 우위 하에서 제도권 정치와 대중투쟁의 결합’을 지지한다면, 유로-코뮤니즘 좌파세력은 역으로 ‘대중투쟁 우위 하에서 제도권 정치와 대중투쟁의 결합’을 중시한다고 말할 수 있다.


5) ‘노-자 대등관계’라는 용어를 그 함의하는 바에 따라 정확히 사용한다면, 그 용어는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려는 부르주아세력 대 변혁적 노동자․민중세력들 간의 팽팽한 힘의 균형상태가 가져오는 이른바 ‘이중권력상태’를 가리키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6) 여기에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투쟁을 포함시킨 것은 실제로 이제까지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노동악법 조항만이 아니라 국가보안법에 위촉되었다는 혐의를 받아 투옥되어 왔기 때문이며, 나아가 국가보안법의 철폐 없이는 변혁적 또는 변혁지향적 노동운동의 합법화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7) 이와 관련하여 본인의 견해로는 ‘임금투쟁과 사회개혁투쟁 결합론’을 ‘노동자 권익옹호투쟁과 (민주변혁을 위한) 구조개혁투쟁 결합론’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 이때 노동자 권익옹호투쟁은 임금투쟁과 노동악법․국가보안법 등의 개폐 투쟁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고, 구조개혁투쟁은 민주주의 및 자본에 대한 노동자적․민중적 통제의 확대․심화를 중심 투쟁과제로 삼으면서 그 투쟁을 환경, 여성, 지역, 민족, 평화문제 등 계급문제로 모두 환원될 수 없지만 계급문제와 뗄레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는 제반 사회적 문제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는 것과 결합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1995-09-2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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