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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참복지,그리고 노동조합

현장에서 미래를  제22호
남구현

이 글은 5월 21일 민주노총 주최로 열렸던 동일한 제목의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주발제문이다. 95년 이후 사회개혁투쟁이 계속 중심 이슈로
제기되고 있는 지금, 사회개혁투쟁과 복지의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기본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21세기 참복지, 그리고 노동조합 이 글은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사회정책세미나에서 공동토론을 거쳐 생산되었다. 대학원생 중 특히 조주현, 최원탁, 이경원은 자료수집과 원고작성에 직접 참여하였다.

자료1



남구현 /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1. 서론

우리 나라의 복지가 열악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학자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 나라의 복지 수준이 세계 100위 이하이며 세계적인 차원에서 볼 때 복지후진국에 속한다는 데에는 일치한다. 5,6공과 소위 문민정부를 경유하면서 의료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수당(아동수당, 교육수당, 주택수당 등)을 제외하면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선진국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회보장제도가 완비되었다고는 하나, 사회적 지출의 규모나 사회적 서비스의 포괄범위 및 수준에 있어서 열악한 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복지분야는 민영화, 복지삭감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위 신보수주의적 정책기조 아래 오히려 후퇴하였다. 복지현실이 열악한 상태에서 복지와 관련된 논의가 주로 복지모델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든지, 우리의 현실과 상관없이 무매개적인 서구의 사례소개에 그친다든지 한다는 면에서 우리 나라에서의 복지와 관련된 논의는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이다.
한편 선진국에서는 소위 복지국가적인 발전의 결과 흔히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구성원의 모두가 복지의 혜택을 누리는 사회가 건설된 것처럼 알려져 왔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1980년대 이래 민영화, 복지삭감을 기치로 진행된 신보수주의적 반동으로 인해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 결과 극적인 복지삭감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복지국가는 완성된 형태의 구조물이 아니라 투쟁을 통해 방어해야 하는 대상임이 드러났다. 90년대를 넘어서면서 이태리, 프랑스, 독일 등 서구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주로 복지를 둘러싼 노동자 투쟁이 나라마다 활성화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에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투쟁이 복지제도개선투쟁을 중심으로 아직은 단초적인 수준이지만 제기되고 있고, 사회복지기관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노동자운동이라는 차원에서 참복지를 위한 새로운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21세기를 대비해 참다운 복지를 실현할 수 있기 위해, 사회복지에 대한 이론을 살펴본 후 이를 토대로 우리 나라의 복지현실과 복지를 개혁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주체인 노동자의 대중조직으로서 노동조합과 사회복지영역에서의 활동가인 사회복지 노동자의 문제를 다루기로 한다.


2. 자본주의 사회와 복지

자본주의적 생산은 무엇보다도 최대한의 이윤추구, 즉 타인 노동의 사적 전유를 통한 최대한의 가치증식으로 특징지워진다. 최대한의 잉여가치(자본의 입장에서는 이윤)의 생산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직접적인 목적이다.(Marx, MEW 23: 128,350,647) 한편, 복지란 무엇보다도 상호부조의 원칙에 입각해 사회구성원의 사회적 필요(social need)를 충족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김상균, 1987; Gilbert et.al., 1993) 무한한 축적욕구가 자본의 기본원칙이라면, 이는 필요의 충족을 기본으로 하는 복지의 원칙과 충돌한다. 그렇다면 왜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와서 사회복지는 필수적인 사회제도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2차 대전 이후의 소위 사회정책적 국가개입의 확대에 따라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은 마치 자본주의 국가가 아닌 것처럼 복지국가(Welfare State), 사회적 국가(Sozialstaat)의 외양을 취할 수 있었을까?
자본주의적 생산이 주도적인 사회에서는 그 초기에서부터 보다 많은 이윤을 향한 운동의 결과 과도한 노동착취에 의해 노동자계급의 존재가 통째로 위협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였고,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유지를 위한 강제법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다른 생산형태와 달리 노동자가 아니라 노동자의 노동력만이 구입될 뿐이다. 노동력의 소유자가 대체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한 노동력의 상실은 자본가의 손실이 아니어서 노동자가 파괴되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된다. 한편, 자본가들 역시 자본가 개개인이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싶어도 다른 자본가들과 경쟁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의지대로 하지 못한다. 따라서 강제법에 의해 전국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노동조건을 규정하여 무한한 잉여노동에 대한 욕망을 전사회적으로 규제해야할 필연성이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입법은 자동적으로 생겨난 것은 아니고, 노동자 계급의 장기간에 걸친 역사적 투쟁의 결과물이었다. 즉,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대한 전체 자본가계급의 대응으로서, 전 사회적인 세력관계의 변화와 맞물리면서 강제된 것이다. 영국에서 빈민법의 발전과 함께 맞물려 발전한 공장법, 독일 비스마르크의 사회입법 나아가서는 20세기에 들어와 구미 각국에서의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을 보면, 각 나라마다 상이한 계급간 세력관계를 반영하면서 복지가 발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의 이중적 성격을 볼 수 있다. 즉, 자본관계를 재생산 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가계급 측이 복지를 도입해야할 필요성이 존재하는 한편, 모순적인 자본관계의 재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계급투쟁의 결과로 복지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는 자본주의적 모순의 필연적 결과이며, 자본의 모순은 복지에 투영되어 있다(남구현, 1985: 99-103).
복지의 모순적 성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도출해 낼 수 있다.
1)노동자를 포함한 사회구성원의 필요의 충족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지는 일차적으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사회구성원 다수의 재생산을 위해 기능한다. 이러한 한에서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임금과 마찬가지의 기능을 하며, 사회적 영역에서 주어지는 임금, 즉 사회적 임금(Gough, 1979)으로 볼 수 있다. 공적부조, 산재보험, 의료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 다양한 복지혜택은 노동인구를 중심으로 산업예비군, 빈민 등의 비노동인구까지 포함한 사회구성원 다수의 물적 재생산을 위해 일차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2)그러나 이때 임금은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반면에 (실제로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노동력 상품의 가치가 임금을 규정한다) 복지는 원칙적으로 노동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위해 주어진다. 경제적 생산활동은 임금관계를 매개로 전개되는 반면, 복지는 국가의 온정주의 또는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에 근거하여 시혜의 형태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어느 나라에서나 복지는 비경제적,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대체로 국가부분에서 관장하며, 자본축적 조건이 악화될 때 일차적으로 삭감의 대상이 된다. 자본의 위기는 항시 복지의 위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3)복지는 자본의 필요에 의해서 주어지기도 하지만,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조건으로서 투쟁의 대상이며,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의 재생산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노동자투쟁의 대상이다. 마치 임금을 둘러싼 투쟁과 마찬가지로 복지를 둘러싼 투쟁은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개량투쟁의 한 부분을 이룬다. 그러나 이미 지적되었듯이 복지는 경제적 교환관계를 매개로한 임금과 달리 복지는 전체 사회구성원의 필요를 충족시킨다는 측면에서 임금과 다른 사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임투는 노동자계급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다면 복지를 둘러싼 투쟁은 전체 사회적 관점에서 배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복지투쟁은 단순히 사회적 영역에서의 보다 많은 분배를 위한 투쟁(사회적 임금 투쟁)을 넘어서 사회구성원 일반의 복지권의 확보라는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과 관련된 투쟁에는 농민, 지역주민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맞물려져 있다.
4)복지는 투쟁의 결과물로서 복지의 수준은 전사회적 세력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자본관계 자체가 지양되지 않는 한 자본의 반동에 의해 항상 되돌려 질 수 있다. 이미 확보된 복지는 따라서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방어되어져야 한다.
5)자본관계의 모순이 복지에 반영되어 있는 한 복지는 자본관계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측면과 투쟁을 통해 확보되어야 하는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노동력의 재생산 조건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투쟁의 결과물은 일차적으로는 사회구성원 다수의 최저생활 또는 삶의 질의 확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져 있다. 그러나 복지가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의 원칙과 충돌하며, 복지의 원칙의 발전은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성장하는 필요에 따른 분배라는 미래사회의 원칙의 맹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자본의 재생산이라는 관점을 넘어서 자본의 지양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복지의 발전은 전국민 최저선 또는 삶의 질 확보를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자본관계의 지양전략과 맞물릴 때, 복지는 탈상품화전략, 또는 산업화 과정의 적응전략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활동을 산업화과정에 나타난 이러저러한 문제를 땜질하는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상품시장의 비인간성에 반대해서 시장의 원리에 반대하는 것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을 전유함으로써 최대한의 이윤추구를 자기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원칙을 사회적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새로운 사회의 원칙으로 전환하는 과정 속에 위치지워야 한다는 점이다.”(남구현, 1994b: 34) 자본주의적 생산을 자본-노동 사이의 자본관계가 아닌 어떤 다른 것 - 상품, 화폐, 부, 산업화 등 - 으로 보게 되면서 자본관계의 지양과 관련하여 복지를 보는 관점은 사라진다. 자본주의를 산업화로 보는 Wilensky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의 발전을 산업화에 따라 발생하는 제반 문제에 대해 (다분히 단선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과정으로서 설명하고 있으며(Wilensky, 장인협 역, 1979), 자본주의적 생산을 상품생산으로 보는 관점의 논리적 귀결은 일종의 탈상품화 전략으로서 복지를 보는 것이다(Esping-Andersen,1990). 이러한 관점은 현실 과정을 설명하지도 못하고, 지금 존재하는 모순을 지양하기 위한 운동과도 접맥하지 못한다.

3. 우리 나라 사회복지의 특징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제도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비로소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즉, 해방 이전에도 조선구호령(1944)이 등장하였고, 해방 이후의 원조 경제기에도 사회사업기관들이 존재하였으나 제도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외원기관의 원조를 받아 구호활동을 펴는 수준이었던 반면, 1960년대에는 생활보호법(1961), 산재보상보험법(1963), 의료보험법(1963) 등 다수의 사회입법이 시작된 것이다. 60년대 초의 사회입법은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건 경제개발을 염두에 두고 준비되었다는 면에서 볼 때, 한국 자본주의 발전에 기초가 되는 사회적 하부구조(infrastructure)를 구축하기 위한 사회법적인 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각종 사회보장제도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한 것은 산재보상보험을 제외한다면 1977년 500인 이상의 사업장에 대한 의료보험의 실시를 비롯해 1980년대 들어와서이다(생보법 개정1982, 노인복지법1981, 심신장애자복지법1981, 아동복지법1984, 국민연금법1986, 최저임금법1986, 국민연금 실시1988, 최저임금제실시1988, 전국민의료보험1989). 이는 저임금 저곡가 정책에 기반한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의 결과 축적된 자본을 기반으로, 자본주의적 발전의 결과 형성된 노동자계급에 대한 사회정책적 개입이 확대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발전은 문민정부 들어서 95년 7월 고용보험제도와 농어민연금제도가 실시됨으로써, 공적부조와 사회보험을 중심으로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대부분 갖추게 되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사회적 수당(가족수당, 교육수당, 주택수당 등)을 제외하면 형식적으로는 대부분의 제도가 존재하나 포괄범위, 급여수준 등 내용에서는 매우 부실하여, 국제비교 수치상으로는 세계 122위로 분류될 정도이다.
우리 나라의 복지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무엇보다도 경제성장 정책이 항상 우위에 놓여져 있었으며, 복지는 항상 부차적이었다. 이러한 경제우선 논리는 아직도 소위 시장, 가족에 복지를 맡기고 경제성장을 중심으로 복지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생산적 복지모델에 반영되어 있다. 이와 같은 복지에 대한 관점의 문제는 구체적인 제도의 운용과정에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의 사회적 기금을 저리로 대출해 경제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의 문제가 그것이다. 강제적으로 거두었으며,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목적세로서 준조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금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도용의 결과는 사회적 기금의 고갈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연금의 경우 정부의 공식발표를 보더라도, 국민연금기금이 앞으로 36년 뒤인 2033년이면 바닥난다는 전망이다. 국민연금기금에는 올 2월 기준 786만 2천명이 가입해 기금총액은 3월 말 기준 22조 6천 7백 억 원에 이르고 있다. 기금은 2000년 43.1조 원, 2010년 1백 88.6조 원을 넘어 2020년에는 3백 51.7조 원까지 쌓이지만, 노령인구는 95년 5.9%에서 2000년 7.1%, 2020년 13.2%, 2030년 19.3%로 급속히 증가, 2033년이면 고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금운용의 문제가 심각하다. 올 3월 말까지 적립된 국민연금기금 22조 6천 7백 억 원 중 68.1%인 15조 4천 억 원이 공공부문, 28.7%인 6조 5천 억 원이 금융부문, 그리고 3.2%인 7천 3백 여 억 원이 복지부문에 투자돼 있는데, 문제는 공공부문의 이자율이 10% 안팎으로 12% 대인 시중금리보다 낮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같은 문제점을 고려, 일단 보험요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고, 연금 지급시기를 현행 60세에서 65세로 늦추는 방향으로 국민연금 제도를 개선할 전망이라한다.(조선일보, 1997년 5.16일) 이러한 문제점은 이미 수차 제기되어 왔으며, 이미 작년에도 같은 내용의 공식적인 발표가 있었다(경향신문, 1996.1.29일). 연금 수급 연령의 상한조정, 보험요율의 인상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기기 전에 무엇보다도 편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공공자금의 운용이 정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2)복지제도가 도입되는 경우에도 민중탄압과 함께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등장한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고려되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제도들이 역대 각 정권의 초기에 집중적으로 도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채찍과 당근의 통치술적 차원에서 한편에서는 민중탄압을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복지를 제공한 것이다. 나아가서는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제도의 개선이 장애를 받는 정도가 극심하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통합의 경우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음에도 노태우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로 좌절되었으며,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에도 선거공약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다.

3)복지의 발전이 제약된 결과, 소득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삶의 질은 열악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삶의 질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꼴지 수준이다. 홍콩에 본부를 둔 정치경제위험자문사(PERC) 발간 아시아 정보 보고서에서 가장 좋은 점수 0점, 최악의 점수 10점을 기준으로 할 때 말레이지아(3.92), 싱가포르(3.97), 필리핀(4.18), 홍콩, 인도(4.21), 태국(4.53), 일본(4.62), 대만(4.84) 인도네시아(5)를 이어 한국은 5.89로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유일하게 중국(6.25) 뿐이었다(중앙일보,1997년 4월 28일).

4)문민정부 들어와서 규제완화와 국제경쟁력 강화를 기조로 하는 자유화, 민영화 정책의 결과 복지는 오히려 후퇴하였다. 문민정부의 정책평가에 대해서는 민교협(1996), 김연명(1996)을 참조.
사보심의 21세기를 대비한 사회복지개혁안(1994)이나 작년도에 제시된 삶의 질 세계화를 위한 신복지구상, 의료개혁의 내용을 보면, 현행 복지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기존의 정책기조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치장한 채 유지하겠다는 의도만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정책기조는 신보수주의적 경제유연화 전략의 한국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서구의 경우 소위 복지의 과잉상태(?)에서 신보수주의와 복지다원주의의 수용이라는 경로를 밟고 있으나 우리의 경우는 복지의 절대적 부족 상태에서 신보수주의적 기조의 복지정책이 출연하고 여기에 복지다원주의와 가족의 복지기능 강화가 덧붙여지는, 서구와는 정반대의 경로를 밟고 있는 과정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김연명, 1996: 35) 단순히 재정지출의 통계수치만 본다고 하더라도 94년 사회복지 지출 수준은 GNP 대비 1.0%(선진국 20% 내외), 일반회계의 9.0% (선진국 50%내외)를 차지하고 있어 서구의 신보수주의적 정책의 단순한 이식은 사회적 재앙을 가져올 것이다. 흔히 변명처럼 제시되고 있는 과다한 국방비 지출의 문제는 우리 나라와 비슷한 국방비 부담을 안고 있는 대만이나 이스라엘의 사회적 지출이 선진국과 대등한 수준이라는 점을 볼 때 설득력을 상실한다.
5)우리 나라의 복지 발달에는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대응이 거의 역할을 하지 않아 왔다. 억압적 노동정책의 결과 노동자운동은 민주노조건설 및 사수투쟁, 생존권 확보투쟁에 거의 모든 역량을 소진했고, 이른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적 노자관계의 특성이 복지발달의 매계기에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운동과 복지 발달이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민주노총(준)을 거치면서 사회개혁투쟁이 주요한 투쟁과제로 제시되고 있는 최근의 변화를 볼 때, 노동자운동의 주체적 대응이 향후 우리 나라 복지발전의 향방을 좌우하게 될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다.


4. 우리 나라의 노동조합운동과 사회복지

우리 나라의 노동조합운동은 백 수십 년 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자계급은 60년대 이래 본격적으로 진행되어온 수십 년 간의 모순적인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형성되어 왔으며, 민주노총을 건설하고 작년도 총파업을 이끌었던 주력부대는 87년의 노동자 대투쟁의 주역들이다.
주지하다시피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결성된 수많은 민주노조세력은 88년 12월에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를 거쳐 1990년 1월 22일에 전노협을 결성하였고, 93년 6월에는 대기업, 전노협, 사무전문직의 세 흐름이 합쳐 `전국노동조합 대표자회의'를 구성하여 반어용노총 전선을 확고히 하였으며, 94년 11월에 결성된 `공공부문노조 대표자회의'와 `민주노총준비위원회'를 거쳐 95년에 11월 11일 민주노총을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조직적 발전은 노동자대중의 지난한 투쟁의 결과물이다. 즉, 제조업과 사무전문직,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등을 불문하고 노동자들은 계급적 연대에 기초하여 자본과 자본의 정치적 대리인인 정권에 대해 투쟁해 왔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역대 정권은 폭력적인 억압정책을 지속해 왔으며, 이는 문민정부의 등장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김영삼 정권의 반노동자적이고 친자본적인 속성은 그대로 이어져, 한편에서는 노사화합과 사회적 합의를 되풀이 강조하면서, 민주노조운동에 대해서는 탄압을 중단하지 않았고, 소위 ‘문민적’ 개혁조차 퇴색하면서 독점 재벌의 이해관계를 내놓고 대변하기 시작한 95년 이래에는 이러한 탄압이 더욱 심각해져, 보다 음성적인 노동통제전략인 자본의 신경영전략과 맞물리면서 95년 한 해만도 5명에 이르는 열사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결과를 빚어 냈다. 이러한 억압적 노동정책의 기조가 유지되면서 소위 ‘신노사관계구상’의 기치아래 1996년 12월 26일 날치기 노동법 개악이 진행된 것이다.
작년 12월 26일 개악된 노동법은 복수노조 금지, 3자 개입 금지 등 주로 집단적 노사관계법과 관련된 조항들을 온존시키려고 시도하는 한편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제, 정리해고제 등 개별적 노사관계와 관련 새로이 도입을 시도한 부분은 자본의 변화되는 세계적 축적조건에 맞추어 새로이 노동조건을 규율하려는 자본의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작년도 노동법개정투쟁과 총파업의 역사적 의의와 관련된 부분은 본인이 민교협에 제출했던 보고서를 보완한 것임.
즉, 그간 민주노조운동의 노동법개정투쟁의 주요 대상이었던 근대적 노동기본권은 보장하지 않은 채 소위 경제의 유연화전략, 탄력적 고용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세계적인 차원에서 강제되는 무한 경쟁의 부담을 노동자에게 떠맡기려는 것이었다. 2개월 여에 걸친 총파업을 위시한 노동자의 반발로 인해 국회에서 재개정이 이루어져 상급단체에 한한 복수노조 허용, 정리해고제의 2년 유보를 제외하면 대체로 자본의 의도는 관철되었다.
그러나 노동조합운동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에는 교사, 공무원이 제외되고 있다는 점에서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상급단체에 한해서는 단결권, 단체행동권, 단체교섭권을 중심으로 한 노동기본권이 확보되었다는 점에서 산별노조건설을 통한 조직확대의 문이 열렸으며, 소위 개별적 노사관계를 둘러싼 향후 투쟁에 있어 새로운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전체 사회의 세력관계의 재배치라는 면에서 볼 때, 노동자계급운동의 성장은 부정할 수 없다. 노동자총파업을 거치면서 노동자운동은 시민, 학생, 지식인 등 여타 계급 계층의 운동에 대해 전체 사회운동의 중심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확고히 하였으며, 자본과 정권의 의도대로 노동법이 개악되는 것을 저지함으로써 지배블럭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여 소위 문민정권 말기의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21세기가 자본의 헤게모니 아래 그들의 의도대로만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며, 새로운 대안 질서를 가능케 하는 사회적 주체로서 노동자가 그 중심에 서있음을 천명한 것이다. 주로 산별노조의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얻은 것이 없으며, 투쟁의 결과는 자본의 승리라는 관점에서 분석한 글로 임영일(1997)을 볼 것. “주목해야 할 점은 얻은 것은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며 일회적인 것 들임에 비해 잃은 것은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것, 따라서 장기적인 것 들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투쟁의 전과정에서 자본측은 사실상 거의 잃은 것이 없다는 점까지 추가될 수 있다 …… 반드시 필요한 것은 투쟁 목표의 이원화이다 …… 투쟁의 성과를 조직 내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목표가 별도로 상정되어 있어야 한다 …… 이 조직 내적 목표는 당연히 산별조직화여야 했다 …… 전략적 목표(산별조직화)가 아니라 전술적 목표(법개정 문제)에 조직 전체의 동원역량을 거는 모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노동법개정 투쟁은 법조문 몇개를 바꾸는 문제가 아니라 역사사회적이며 국제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과감히 투쟁하여 확실한 승리를 이끌어 내지 못한 것이 한계였다. 산별노조 건설이라는 조직 형식의 문제를 과도하게 전략적 목표의 수준에 배치함으로써 노동법개정 투쟁의 역사적 성과를 그것의 한계 속에서 포착하고 계급투쟁의 변화된 조건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전개된 노동자투쟁의 결과 재개정된 노동법, 그리고 변화된 세력관계는 앞으로 전개될 투쟁을 위한 조건이다. 현재 민주노총합법화 자체도 지도부의 조합원 자격 시비와 전교조 등 불법 산하단체 등을 이유로 불투명한 상태이고, 교사공무원 노동기본권 제한, 쟁의행위 기간 중 임금 지급불허, 노조 전임자 임금 불지급, 파업 중 당해 사업내 대체고용 허용, 교섭권, 체결권 단일화, 3자 개입 금지의 사실상 존치, 변형시간제 도입 등 무수한 악법 조항이 남아 있어 앞으로 올 임단투에서부터 새로 적용될 노동법을 둘러싸고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이 시작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의 일차적 과제는 민주노조운동의 민주성을 강화하여 조직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산별, 지역별 조직의 건설과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를 통해 산업, 업종, 노동의 질적 차이와 지역의 차이를 뛰어 넘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이루어냄으써 앞으로 예상되는 총자본의 공세에 대한 대응력을 키우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의 대립전선에서 전 사회적인 헤게모니의 강화를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토대로 민중연대, 그리고 나아가서는 전 사회적 및 국제적 연대를 발전시키는 것 역시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노동자운동이 향후 21세기를 대비해 장기적인 대응전략을 구상할 때에는 다음과 같은 점들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서로 간의 내적인 상관관계를 놓치지 않으면서 전 사회적 관점 속에서 개혁해 나가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구체적인 경제투쟁, 정치투쟁, 사회개혁투쟁이 상호연관 속에 배치되어야 한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임금인상투쟁 및 경영참여를 중심으로한 경제민주화를 뛰어 넘어 노동자가 생산의 실질적 주체로 나서는 관점에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치적으로 볼 때에는 노동자 정당 건설, 노동자 대통령 만들기 심지어는 노동자 권력 수립 등을 넘어서 - 이는 이미 20세기적 실천을 통해 실제로 실현해 보았으며 그 한계가 드러났다 - 직접 생산자들에 의한 실질적 민주주의의 완성과 정치적 지배 자체의 지양이라는 궁극적 목표 아래 구체적 정치운동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선거전술 또는 선거에 대응한 후보전술을 넘어서 대안 정치세력을 형성해 나가는 전략적 수준에서 현실 정치에 대한 개입이 배치되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사회개혁투쟁은 몇 몇 사회보장제도의 개선을 통해 복지분배적 효과를 통해 간접임금을 확보한다는 차원을 넘어 노동자가 단순히 경제적 주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주체라는 관점에서 교육, 환경, 문화 등 사회의 제반 영역을 포괄적으로 개혁해 나가는 관점에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복지의 발전과 노동자운동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사회개혁투쟁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민주노총의 사개투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는 남구현(1995b)를 참조.

민주노조운동 진영은 1995년도 민주노총(준) 단계에 이미 노동조합이 사회개혁투쟁에 앞장서기로 입장을 정하면서, 사회보장제도의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개혁을 선언한 바 있다. 즉, 임단투와 함께 사회개혁투쟁을 결합하면서 사회개혁투쟁으로서 주택, 교육, 의료, 교통, 언론, 환경문제의 해결을 경제민주화 투쟁과 함께 가장 중요한 투쟁과제 중의 하나로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이 포함된 것이다. 사회보장제도 개혁투쟁과제로서는 의료보장과 관련하여 의료보험 통합과 함께 회사의 의료비보조, 생계보조비 지급, 의료보험조합에의 참여와 민주화가 요구되어지고 있으며, 연금과 관련하여 퇴직금 누진제, 개인연금 보조,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의 폐지와 운영에 대한 노동자 참가 요구 등이 제기되었다.
현재 사개투는 작년도부터 진행된 법개정투쟁 등 여타 투쟁들의 시급성에 비추어 위력적으로 전개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고 투쟁과제를 배치하는데 있어서 기존의 투쟁들을 병렬적으로 결합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 투쟁과제들 간의 유기적 결합이나 내적 연관이 부족하다. 또한 아직은 사개투의 의미를 노동자 및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간접임금요구 투쟁으로서, 제도 개선과 노동자 참여 확대를 통해 사회를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노동자의 정치의식을 강화하며 전 국민적 요구와 사안인 사개투를 통해 노동조합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국민적 지지를 얻어내는 데에서 찾고 있어 협소하게 의미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임금의 형태로 보다 많은 `분배'를 위해 투쟁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을 넘어서, 즉 자본의 논리를 전제한 간접임금 인상투쟁을 넘어서, 복지, 교육, 환경, 주택, 교통 등의 제반 사회적 영역에서 노동자가 실질적인 사회적 주체로 나서는 과정에 사개투가 배치되고, 단순한 대국민 이미지 제고를 넘어서 말 그대로 전 사회적 관점에서 구체적인 투쟁이 전개된다면 사개투는 법, 경제, 사회, 정치 등 투쟁의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는 여타의 개량투쟁과 함께 대안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다.
복지를 둘러싼 전 사회적 쟁점의 중심에는 노동자가 설 수밖에 없다. 이미 상당한 수준의 복지를 향유하고 있는 서구에서도 이미 확보된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복지를 둘러싼 노동자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어서 우리는 향후 21세기를 대비해 복지를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최근 노동자투쟁의 일환으로 사회개혁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양상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의료보험 통합일원화 투쟁의 주축은 사회개혁투쟁이 선포되기 이전에 병원노련, 의료보험조합 노조 등의 앞으로 의료산별건설의 주역이 될 노동자조직으로 이전되었다.


5. 사회복지노동자와 노동조합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들의 투쟁속에 사회개혁과 함께 복지권확대라는 복지영역의 문제가 노동자 일반에게 새로운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이러한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발전과 비교해 볼 때 사회복지노동자들의 현재의 모습은 어떠한가?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 시설과 기관의 파행적 운영 및 비민주적 관행 속에서 노동을 통한 생계유지와 자아 실현이라는 노동자의 기본적 욕구도 충족되지 못한 채 복지사로서의 정체성 상실과 무기력과 허무감에 고뇌하는 것이 우리 사회복지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이러한 노동조건 속에 있는 노동자가 이것들을 극복하고자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회복지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움직임은 지금까지 미비한 상황이다. 더욱이 97년 우리사회 전체를 뒤흔든 총파업투쟁을 포함하여 기간의 노동자운동과 비교할 때 사회복지부문에서의 노동조합운동은 열악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복지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노동자인가? 전문가인가?’하는 흔히 제기되는 양자택일의 질문 속에 둘 중 하나를 택하도록 강요당해 왔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 및 장애자 등을 대상으로 일함으로 요구되는 헌신과 희생, 봉사정신의 강조, 많은 종교기관에서의 운영으로 나타나는 종교적 윤리성의 강조 또한 노동조합의 결성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되어 왔다. 사회복지 영역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이 구조화되고, 재생산되는 배경에 작용하는 이데올로기적 토대에 대한 연구로서는 이상록(1994)을 참조.
그러나 우리가 노동자계급을 자본관계 아래에서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잉여가치(이윤)을 생산하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임금의 대가로 판매하는 임노동자라고 규정한다면, 또 노동자가 전 사회적 관계로서의 계급관계 속에서 재생산된다고 한다면, 노동자계급에는 정신/육체노동자, 여성/남성노동자, 생산적/비생산적노동자, 본국/외국인노동자, 금속/공공부문노동자 등 노동자의 성, 인종, 나이 등의 차이, 노동의 질적 차이 나아가서는 산업, 직종을 불문하고 전 사회적 관계로서의 자본관계 아래 포섭되어 임금을 받고 노동하는 모든 노동자가 포괄된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개념과 생산적, 비생산적 노동에 대해서는 남구현(1993)을, 사회복지노동자의 의미에 대해서는 사회와 복지연구회(1992)를 참조.
이러한 이유로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어느 나라에서나 광범위한 영역에서 노동조합이 구성되어 있으며, 사회복지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의 경우 사회적 영역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주로 공무원, 군인, 보건, 교통, 운수 등 공공및 사회적 영역에 포함되는 수 백 개의 업종이 포괄된 산별노조인 ÖTV(Gewerkschaft Öffentliche Dienste, Transport und Verkehr)에 소속되어 있다(ÖTV, 1995: 23). ÖTV는 1993년 말 기준 1,996,371명의 노조원을 가지고 있으며, 3,146,437명의 노조원을 자랑하는 금속노조(IG Metall)에 이어 독일 산별노조의 양대 산맥으로서 가장 활동적인 노조에 속한다(Kittner, 1995: 86).
미국의 경우에는 사회사업가들이 주로 AFSCME(American Federation of State, County, and Municipal Employees)과 SEIU(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에 노조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1993년도에 보면, AFSCME에 55,000명, SEIU에 26,000명이 소속되어 있다(양 노조는 각기 1,200,000명과 925,000명의 노조원으로 AFL-CIO의 가장 크고 활동적인 노조들에 속한다). 전체 사회사업가 가운데 25% 정도인 125,000명이 노조원인 것으로 나타나는데(공공부분의 경우는 조직률 44%), 1972년도 이래 안정된 가입률을 보이고 있다. 노조원 가운데에는 전문성을 갖춘 고학력자도 참여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AFSCME 뉴욕지부에는 16,000명의 석사학위를 소지한 개별사회사업가가 참여하고 있다.(NASW, 1995, 2418-2419)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이제까지 흔히 제기되었던 사회복지사가 전문가인가 노동자인가 하는 질문은 그 자체가 우문으로서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이자 노동자라’고 볼 수 있다. 전문가 역시 노동자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문노련은 전문가들의 노조이다. 교사, 간호사, 의사 또는 교수까지도 노조를 만들지 말라는 원칙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복지사와 마찬가지로 교사조직으로서 협회와 노동조합은 나라마다 차이를 두며 존재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나라에서 교사노동조합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교사가 노동자인가의 질문은 이론적인 논쟁과 민주적인 의견수렴을 통해 결판이 난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 결정되었다. 교사의 계급적 성격에 대해서는 김언순(1990)을 참조.
노조가 배타적인 유일조직이 될 수 없듯이, 사회복지전문가로서의 조직은 다른 형식과 내용을 가지고 조직될 수 있지만, 거꾸로 전문가조직의 존재가 노조결성의 반대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 간 몇 몇 기관 및 시설에서 선구적으로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시도를 찾아볼 수 있다. 복지기관이나 시설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투쟁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볼 때 우리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곳에서 노조가 처음 조직 될 때, 그 직접적 계기가 된 것, 그리고 노동조합의 목표로 또는 노조의 위상으로 상정한 것은 사회복지노동자들 자신의 노동조건 개선이나, 임투가 아니라 시설 및 기관의 비민주적 관행 및 파행적 운영의 척결이었다.“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노조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기관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면 결과적으로 복지관의 서비스가 좋아지고 서비스의 결과는 복지기관의 수혜자들에게 돌아간다.”(홀트 노조위원장 인터뷰,한겨레21, 1997.5.15.) “조합을 설립한 동기 및 계기 모두 노동자로서의 권익보장의 측면은 무시되고 부당한 기관의 운영 등을 개선하고자 함이었다. 조합원들의 경우 기관운영의 문제만 해결되면 노조는 필요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사랑의 전화 노조활동 보고서’ 중에서) “국가의 사회복지에 대한 무관심을 공격할 수 있을만한 강력한 전국적 규모의 사회복지 노동조합의 출범이 절실할 때이다. 즉 국민들의 사회복지 욕구를 충족기키기 위한 구체화된 사회복지 재화와 서비스를 양질로 다량 생산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우리 사회복지노동자는 산별 사회복지 노동조합의 실현을 통해 이러한 정당한 국민 복지권의 보호와 구현을 위한 행동화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이문국, 1996)

노동조합의 일차적 목적은 노조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등 권익을 옹호하는 것이다. 권익확보투쟁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결속력을 끌어낼 수 있는 기반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이다. 한편 열악한 근무조건과 기관의 비민주적인 운영이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근무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관의 민주적 운영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깊은 상호관련성이 있으므로 기관의 민주성을 획득하고 나면 근로조건 개선이 저절로 이루어 지거나, 또는 민주성이 획득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싸움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기관운영의 민주화와 근로조건 개선의 문제는 같이 요구되어져야 할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주로 기관비리와 비민주적운영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기관 종사자의 권익문제가 전면적으로 같이 제기 될 수 없었던 상황은 한국 사회복지의 문제점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지기관 운영의 비민주성이나, 파행성 정도의 심각함이 자신의 사회복지노동자로서의 존재의미 자체를 빼앗아버리는 홀트 아동복지회의 경우처럼 가족이 없는 아동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는 방법으로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기관에서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가장 필요가 절실한 장애아동이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아동의 인수를 거부하도록 지시하는 기관장의 기관운영은 사회복지사들의 노동의 의미를 상실케 한다.
상황속에서 자신의 생존권은 두 번째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클라이언트의 복지권 창출과 사회의 복지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복지노동의 특성이 노동조합의 역할에 녹아들어가 활동이 전체 사회복지의 확대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에 큰 강조점이 주어진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최근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한국 사회복지실천에 대한 반성 속에서 사회복지를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다. 열악한 조건아래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되는 사회복지노동자들의 노력들은 노조설립의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 노동조합을 결성할 때 그 본래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과 더불어 어떤 관계 속에서 앞으로의 전망을 배치시킬 것인가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 시설장과 직원 사이의 관계 설정을 넘어서서, 사회복지노동자들의 활동은 보다 광범위한 단위들과 연대하여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즉, 임금 및 노동조건 개선, 기관운영의 민주화, 양질의 서비스 제공을 위한 개선투쟁에 더해 사회복지분야의 특수성이 반영된 투쟁이 다양하게 결합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민주노총 중앙차원의 사회개혁투쟁에 결합, 연대적 의미의 지역조직을 매개로 한 지역사회운동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겠다. 임금협상의 수위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복지노동의 특수성에 기초하여 다양한 투쟁이 결합될 때 복지수혜자를 위한 서비스의 향상과 전 국민의 복지권 확보, 그리고 나아가서는 필요충족의 원칙이 우선하는 대안사회의 건설을 가능케 하는 참복지 투쟁을 그 결과물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6. 결론

사회구성원 모두의 복지가 증진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회복지제도의 민주적, 유기적 운영이 전제되어야 한다. 나아가서는 국가의 온정주의와 자본의 시혜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의 원칙(경쟁이 아닌 연대, 효율성이 아닌 사회적 필요의 충족)이 관철되어야 한다.
자본의 무한한 가치증식이 최대한의 목표가 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생산 아래에서는 일단 사회구성원의 생활이 유지될 수 있는 최저선을 확보하는 것과 나아가서는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에 복지의 일차적인 목표가 있다. 그러나 복지는 기본적으로 의식주, 의료, 교육 등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복지를 둘러싼 투쟁은 자본관계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나가는 단초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즉, 자본관계의 재생산 뿐 아니라 자본관계의 지양이라는 측면에서 복지투쟁이 배치될 필요가 있으며, 21세기를 앞두고 삶의 질 향상, 전국민 최저선을 넘어서는 지향점이 현실투쟁 속에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스스로 생산한 것을 전체 사회구성원을 위한 사회적 기금으로 활용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며, 그러할 때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국가의 온정주의나 자본의 시혜에 끊임없이 호소해야 하는 단계를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는 사회사업가들은 전문직 ‘노동자’로서 일차적으로는 모든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생존권, 노동기본권적인 권리행사 즉,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나아가서 사회복지 분야에서 종사하는 전문적 노동의 ‘특수성’에 기초해 다양한 단위와의 연대활동을 통해 복지수혜자의 서비스 향상, 전 국민의 복지증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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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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