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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22호
박인옥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운동


박 인 옥 / 참교육학부모회 부회장
칼럼






학부모운동은 89년 교사의 대량 해직이 강요될 즈음 ‘내 아이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우리 아이 교육을 위한’ 교육환경을 만들려는 학부모와 건강하고 올바른 교육의지를 갖고 있었던 교사 사이에 대중적인 교육운동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학부모운동이 전국조직으로 서고, 공감을 얻기까지 그 동안의 힘겨운 노력은 만 7년을 넘겨 8년 째 접어들고 있다. 조직의 확대와 활동 모습을 보면 최근 학부모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이 이전보다 많이 변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긴 시간의 싸움으로 보아 당연한 모습일 것이다. 전국의 시․도 지역에서 의식있는 학부모들이 모이고, 지역의 교육과 자녀를 걱정하며 비민주적인 교육풍토와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일 때 학부모들은 학부모 권리를 되찾고, 참교육 실현의 그 날이 올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절실한 열망이 실현되리라는 기대에 한 순간도 잊지 않고 희망을 가졌다.
이렇듯 학부모 모두에게 있어 교육은 자녀의 미래를 가늠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바람직한 사회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으로 자라도록 더 나은 교육의 질과 장(場)을 창조해야 한다. 지금 우리 교육 현실을 여기서 논하지 않더라도 학부모운동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늘 허전한 구석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전국에 있는 수많은 시민단체 중의 하나인 ‘참교육학부모회’가 우리 나라 교육정책에 대해 대표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조직의 위력을 발휘함에도 불구하고 그 관심의 정도가 폭넓지 못하고 한정되거나 무시되는 경향을 학교 현장 곳곳에서 볼 수 있음은 왜일까? 상부구조만 있고 하부구조가 없는 일반 시민 단체와 달리 전국조직으로서 하부구조가 탄탄한 학부모운동에 무엇이 장애가 되는 것일까? 원인은 학부모운동이라는 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우선, 학교 교육의 이념교육에 대한 편협된 시각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 교육은 오래 전부터 반공교육으로 일관되어 왔다. 반공교육만이 이념교육이고 이념교육은 반드시 반공교육이어야 한다는 편협된 시각 때문에 다른 이념교육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학교 교육의 질을 바꾸는 데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시대와 사회를 보는 눈이 남보다 탁월하거나 변화와 개혁에 필요한 인내가 대단한 사람이어야 한다. 불행히도 이런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며 소수의 사람들도 오랜 고초를 겪으며 또 다른 인내심을 키우며 살아야 했다. 지금 우리 교육의 질이 바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답은 ‘아니다’이다. 학교 교육은 오로지 입시를 위한 입시학원으로 전락한지 오래며 한술 더 떠 세계화를 위한 조기교육을 목표로 지식만을 담아낼 뿐이다.
학교에서 사회 비판능력이 키위지기보다 억압되어 지고, 금기요 관례처럼 누구나 지켜야 하며, 이념 교육은 불순한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사회를 건강하고, 정의롭게 만들자는 구호를 무색케 하고 있다. 이념은 사회를 바로 보도록 키우고 실천하게 만드는 밑천이 된다.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존에 누리고 있는 특권에 집작하거나 무사안일주의자일 것이다. 특히 열린교육를 표방하면서 학교와 교사, 학생 간의 거리좁힘을 위한 노력으로 견학과 놀이가 교과과정에 생겼다. 하지만 공간과 시간이 학교 안으로 제한됨으로써 학교 밖에서의 교사와 학생 간의 만남과 교육을 불온시하고 있다. 지금의 학교가 바로 이런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시민운동에 대한 인식과 확대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음으로,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의식 부재가 문제이다.
이념교육의 편협됨은 사회를 정의롭게 이끌어 가도록 하는 기초교육을 단순화함으로써 시민의 눈을 자극적이고, 소비적이며, 이기적으로 몰고 간다. 그 많은 시민운동단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이념을 표방하고 거리로 나서도 시민의 반응은 자신의 실생활에 직접적인 이익이 되지 않으면 쉽게 접근하지 않는다. 가슴에 와 닿아도 손에 쥐어지는 이익이 없으면 금세 무관심해 진다. 무관심은 시민운동의 재정과 운동방향에 영향을 끼친다. 시민단체들을 어렵게 하는 여러 요소들 중의 하나인 재정적인 문제의 해결이 시민들의 손길과 관심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함으로써 대중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은 이에 대한 반박으로 활동가의 조직관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시민단체 총 재정의 70%가 시민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서구의 경우는 우리의 현실과 상당히 대조를 보인다. 정의로운 이념교육이 부재한 시민들에게 이념을 담아낸 운동에 공감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시민의식의 부재는 자원봉사의 의미를 왜곡시킨다. 선거 때만 되면 평소 보이지 않던 노인과 부녀자들이 자원봉사라는 이름을 걸고 동원되거나 이런저런 명목으로 자원봉사 후 소비적이고, 향략적인 문화에 흡수되는 모습이 순순한 자원봉사와 시민운동을 어렵게 한다.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의식의 부재는 결국 관(官)이 주도하는 운동에 끌려갈 수밖에 없게 하고, 관(官)주도의 운동만이 사회문제의 성과물로 여겨져 시민이 동원되는 왜곡된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시민운동은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되어야 한다. 시민운동의 활동 성격과 규모는 한 시대의 정치․경제적인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이를 움직이는 인물들의 성향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지역의 특성은 이와 무관하지 않으며 역사적 배경이 지역의 특성을 결정짓는 우리 나라의 예로 보아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역사적인 배경과 지역의 특성을 심각하게 고려하다 보면 지역의 문화와 삶의 주제는 단지 형식에 불과하고 (문화행사라는 이름으로) 이념만을 일방적으로 분출하려는 의도를 강하게 보인다. 반공 교육 외에 학교 교육이라고는 배워 본 적도, 가르쳐 본 적도 없는 시민들에게 마구잡이 이념만을 주입한다고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질까? 편협된 이념교육과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의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하는 운동은 그 사람이 그 사람으로 이어지는 운동일 뿐이다. 좀 더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학교의 이념교육이 시민의식과 병행하여 시민운동이 일어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방적일 수 밖에 없고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행사가 되지 못하고 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학교 교육이 해야 할 이념교육 한 번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 것도 안타깝고, 변화하고 개선하려는 자발적인 의지에 인색한 시민의식도 답답하다. 지역의 시민을 위한 대중적인 사업이 진지하게 삶을 고민하고 지역이 갖는 문제를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도 분노스럽다. 이런 현상은 TV영상이나 대중매체들이 마구잡이로 자녀와 시민의 의식 속에 파고들어 시민의식이 단순화되고 소비지향적인 사고에 깊이 빠져들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마지막으로,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새로운 지역활동가들이 배출되어야 한다.
사회의 미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 우리의 교육이 입시와 학력 위주이고, 비민주적이며 권위주의적인 한, 새롭게 변화하려는 의지의 활동가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끊임없이 대중적인 운동과 이념을 추구하는 활동가들이 배출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인천에는 ‘평화와 참여로 가는 시민문화센터’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이 단체는 대중적 문화행사 뿐만 아니라 전문성을 갖고 지역이 갖는 심각한 문제들을 함께 풀어보자는 생각에서 모였다. 지역주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 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사업을 벌이면서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자’는 구호로, 작은 것부터 자발적인 참여을 유도하며, 시민이 원하는, 그러나 ‘관’이 풀지 못하는 문제까지 해결하면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단체가 실험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위에서 제기한 세 가지 문제점을 풀고자 하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시민단체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단체 내부의 노력 이외에 시민들이 수준높은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환경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고, 이것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한/노/정/연

1997-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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