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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
 민주노총 노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대안적 해결책의 모색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미래를  제22호
김세균

노동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
- 민주노총 노선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대안적 해결책의 모색을 중심으로 -


김 세 균 / 소장

이 글은 지난 5월 9일 「공공부문노동조합대표자회의」가 주최한
‘공공부문노동조합 조직발전과 97년 과제’의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을
대폭 수정, 보완한 것이다.
특집1

노동운동, 어디로 가야 하나?





1. 들어가면서: ‘미래는 현재 안에 있다’

유례없는 폭발력을 지니고 떨쳐 일어난 노동자 총파업투쟁 등에 힘입어 민주노총은 국가로부터 더이상 억압적 탄압의 대상이 아니라 법적, 제도적 보호의 한계 내에서 활동하도록 선도받는 ‘합법적 존재’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합법화란 노동자 총파업투쟁이 획득한 가장 부차적인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에 힘입어 민주노조운동은 보수언론 등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부르주아) 시민사회로부터도 이제 더 이상 괄시받고 무시될 수 있는 하층민의 운동이 아니라 교양과 합리성을 지니고 활동하도록 순치되어야 할 ‘시민적 운동’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 것 역시 노동자 총파업투쟁의 부차적인 성과에 불과하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무엇보다, 자본에게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아 자신의 노동을 - 그것이 육체노동이든 지식노동이든 - 제공해 주는 대신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모두의 일반적인 이익, 즉 ‘하나의 계급’으로서의 노동자 모두의 이익을 대변한 투쟁이었다. 이에 힘입어 민주노조운동은 마찬가지로 노동자이지만 여러 이유로 그 투쟁에 합류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의지할 수 있는 새로운 강력한 힘이 떠오르고 있으며, 자신들도 그 운동에 참여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옥죄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이 점에서 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최고의 성과는 민주노조운동이 그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로부터 ‘노동자대중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노동운동’으로 신뢰받을 수 있게 된 점, 그리고 자신이 노동자임을 부인해 온 많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자임을 자각토록 만들고, 노동자라고 생각할지라도 투쟁에는 참여하지 못한 많은 노동자들에게 투쟁하는 동료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게 해준 점이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에 호기심을 품고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구경꾼에서 파업투쟁의 부름에 호응하고 점차 시위대의 일원으로 나서기 시작한 이른바 ‘일반 국민’의 대부분은 사실은 노동자 자신들이었다.
그러나 노동자 총파업투쟁이 획득한 최고의 성과는 온전한 것이 아니라, 타오르다가 꺼지기 시작함으로써 잿 속의 불씨와 같은 것이 되었다. 총파업투쟁은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도 커타란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한국 노동운동은 현 시기에 이르러 운동의 동력을 잃고 있고, 방향 상실의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무엇이 이러한 상태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 이유는 구명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그 전철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잿 속의 불씨처럼 남아 있는 총파업투쟁의 위대한 성과를 다시 지피는 길이 모색되어야만 한다.
‘미래는 현재 속에 존재한다.’ 어떤 미래를 추구하고 있는가는 현재 행하고 있는 것 속에 존재한다. 노동해방의 구호가 사라진 곳에서 노동해방의 미래를 담는 현재적 과제가 제시될 수 없다. 현 시기 한국 노동운동의 당면 과제에 대한 질문은 동시에 노동운동을 통해 성취하려고 하는 우리의 미래상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2. 현 시기 정세의 성격

지난 3월 10일 여-야 합의에 의해 개정된 노동관계법은 노동자총파업 투쟁의 전개 등에 힘입어 상급단체의 복수노조 허용과 같은 개혁적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담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개악된 노동법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노동관계법의 이러한 재개악은 무엇보다 지구화-세계화의 전개와 더불어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이 자본들에게 사활적 중요성을 지니게 된 상황 속에서 그러한 상황이 가하는 압력을 노동자대중에게 폭넓게 전가시키려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새로운 반동적 공세였다. 자본의 이러한 반동적 공세는 무엇보다 노동시장과 노동과정에서 노동력 사용의 유연화, 노동운동의 무력화와 노조의 기업으로의 종속 등을 목표로 하는, 전세계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세는 우리 나라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강도높게 가해졌으며, 국가보안법을 활용한 탄압과 공안정국의 조성과 같은, (안기부법의 개악에 의해 더 한층 강화되고 있는) 구래의 파시즘적 업압책에 의해 뒷받침 받는 것이었다. 이상의 논의에 대해서는 김세균,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노동자 총파업투쟁”, 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18호(1997년 2월), 40-45쪽 참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전경련’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총독점자본 진영과 이들 총독점자본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려고 한 김영삼정권이 주도했다. 그러나 노동법의 재개악이 여-야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데에서도 드러나다시피, 야당 역시 독점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당으로서 우리 사회 전반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편에 찬성했다.
노동관계법의 재개악에 힘을 얻어 자본은 금년에 들어와 노동에 대한 공세를 조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런데 자본은 노개위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작년 6월부터 ‘경제위기론’을 본격적으로 제기하면서 그것을 노동관계법의 개악에 적극 활용해 왔다. 금년에 들어와서도 자본은 ‘경제위기론’을 통해 노동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임금총액 동결’ 혹은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데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 시기에 자본측이 제기하고 있는 ‘경제위기론’이란 경기의 상대적 위축을 경제위기로 과대포장하는 것을 통해 노동에 대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강화하고 임금인상을 억제하며, 산업구조 조정에 따른 인원 감축과 노동강도의 강화 등을 자본의 의도대로 강행하기 위한 허구적 이데올로기 이상의 어떤 것도 아니다. 실제로 작년에 들어와서부터 경제성장률의 둔화와 경상수지 적자의 누적 및 일부 생산부문에서의 과잉생산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한국경제가 정권과 자본가 및 보수언론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바와 같이 ‘위기 국면’에 빠져들었다는 것을 입증할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 시기에 제기되고 있는 제반 ‘경제위기론’에 대한 포괄적이고 심도깊은 비판으로서는 채만수, “경제위기 공세와 노동운동의 대응방향”,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편, ꡔ경제위기 공세와 노동운동의 대응ꡕ(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주최 1997년 5월 2일 정세토론회 자료집), 3-52쪽 참조.
정권과 자본 측이 제시하고 있는 통계에 의한다 할지라도, “96년도의 연간 생산 증가율은 8.5%, 출하증가율은 8.1%(내수 6.4%, 수출 12.4%)에 달하고, 재고증가율은 95년도의 14.9%인데 비해서 96년은 14.5%여서 경기가 ‘하락’ 혹은 ‘하강’하고, 생산이 축소 혹은 수축하기는커녕, 힘차게 팽창하고 있다.” 위의 글, 35쪽
“96년도의 부도업체수는 11,589개로, 호황기였다는 94년도의 11,255개와 큰 차이가 없고, 통칭 ‘호황의 정점’이었다고 하는 95년도의 13,992개에 휠씬 못미치고 있으며,” 앞의 글, 34쪽
신규업체의 설립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짐으로써 부도기업의 발생을 상쇄하고 있다. 또한 “70년대 말의 호황은 이른바 중동 건설 특수에도 불구하고 수지 적자의 증대와 동행했다.” 위의 글, 33쪽
는 점에 비추어 보아, 그리고 일부 산업부문에서의 과잉생산이 한국경제 전체의 과잉생산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에 비추어 경상수지 적자의 누적이나 일부 산업부문에서의 과잉생산이 한국경제 전체의 위기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생산이 증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실업과 실업율이 급증하고 불안정 취업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경제위기’나 ‘전반적인 경기부진’(ꡔ문화일보ꡕ) 또는 ‘장기적인 복합불황’(ꡔ조선일보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시기에 산업구조 조정이 가속화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일차적으로는 고도의 생산성을 체현하고 있는 생산설비의 도입, 즉 과학기술혁명의 자본주의적 이용이 크게 확대하고 있는 데에 기인한다. 위의 글, 38쪽 이하 참조
- 이는 현 시기에 급증하고 있는 실업이 일종의 ‘기술적 실업’에 속하는 것으로 현재 선진자본주의 사회를 중심으로 전 세계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른바 ‘제3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우리사회에도 광범하게 덮쳐오고 있음을 가리킨다. 이와 관련하여 향후 30년 이내에 세계 전체 수요에 요구되는 물자를 생산하는 데에 현재 세계 노동력의 2%만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본 윈피싱어 전 국제 기계협회 사장의 발언은 제3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기술적 실업이 앞으로 심각한 인류사적 문제가 될 것임을 암시해주는 것이다.
- 그리고 부차적으로는 더욱 치열해지는 국제경쟁에 대처하기 위해 자본측이 노동강도를 강화하기 위한 이른바 ‘감량경영’에 대대적으로 착수하고 있는 데에 기인한다. 실제로 전자 집적회로부품 등 10대 핵심자본재의 수입이 지난 해 우리나라 전체 무역적자 206억 달러의 80%를 넘어서고 있는데, ꡔ한국일보ꡕ 1997년 5월 15일자 경제-산업면 참조.
이는 무엇보다 새로운 자본재의 도입을 통한 생산시설의 혁신이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또한 이 사실은 비록 한국 경제의 대외적인 기술적 종속성이 심각함을 입증하는 자료는 될 수 있지만, 경제위기를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도 하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현 시기 한국경제의 여러 지표들은 89~90년의 전형적인 순환적-주기적 위기가 출현한 이후 한국 경제가 겪고 있는 경기의 불규칙적인 순환과정 상에서 나타난 경기의 상대적인 위축국면을 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른 한편, 김영삼정권이 들어선 이후 제반 탈규제화 조치와 공기업의 민영화 등이 이루어지고 독점자본의 금융부문으로의 진출을 허용하려 하는 것과 같은 친독점자본 정책이 폭넓게 추진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독점자본의 더 한층의 거대화와 그 지배력의 확대-강화가 크게 촉진되고 있는데, 이는 중화학공업과 경공업 및 독점자본과 중소영세자본 간의 이른바 ‘경기양극화 현상’ 및 중화학공업과 독점자본에 의한 경공업과 중소영세자본의 수탈, 즉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의 수탈’을 더한층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 노동관계법의 날치기 통과에 촉발되어 일어난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사회 각계 각층의 광범한 연대투쟁 및 국제적 연대투쟁에 의해 뒷받침 되었지만, 자본과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저지하는 데에는 별달리 기여하지 못했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데에는 제반 요인들의 상승작용에 힘입어 자본의 공세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결코 쉽게 주어지기 어려운 천혜의 기회가 찾아왔는 데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투쟁의 수위를 최고도로 올려야 할 결정적인 시점에 내부동력의 소진, ‘국민적 지지’의 확보 등을 명분으로 사실상의 ‘파업투쟁 철회’를 결정한 데에 크게 기인했다. 실제로 민주노총 지도부는 벼랑 끝에 내몰림으로써 노동자대중에게 총파업투쟁에 나서도록 촉구했지만, 정권과 자본이 일정하게 양보한다면 총파업투쟁에 나설 용의도 없었고, 또한 언제든지 총파업투쟁을 철회할 용의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주노총이 민주노총의 역량으로서는 자본 우위의 사회적 세력관계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민주노총, 『‘97년 임시대의원대회-제5차 대의원대회-회의자료』(1997.3.27), 58쪽 참조
총파업투쟁 기간 중 효율적인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정치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하는 민주노총의 자체 평가 앞의 자료집, 61쪽 참조
에 동의할 수 없다.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저지한다고 해서 자본 우위의 사회적 역관계가 뒤집혀지는 것은 아니며, 자본 우위의 사회적 세력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총파업투쟁을 통해 그 정도의 성과만을 거둔 것이 결코 불가피했던 것도 아니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행한 이른바 ‘효율적인 전술 구사’는 적어도 총파업 투쟁의 철회를 결정한 것에는 결코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쟁 수위를 가장 높혀야 할 순간에 투쟁의 수위를 급격히 낮춤으로써 민주노총은 ‘유연한 전술의 구사’, ‘성숙한 운동노선의 채택’과 같은 찬사를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지배장치인 보수언론들로부터 받았지만,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로 인해 민주노총은 합법성을 확보하고 자신의 사회적-정치적 위상을 크게 제고시킴으로써 노동자 총파업투쟁의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지만, 노동자대중은 노동법의 재개악으로 말미암아 심대한 피해자가 되었다. 게다가 총파업이 끝난 후 456개 사업장에서 무노동 무임금이 적용됨으로 말미암아 906억 원에 해당하는 임금손실이 생겨나고, 42개 사업장 365명의 노동자가 불법파업의 혐의로 고소, 고발되었으며, 사업장별로 징계가 이루어짐으로써 현대중공업에서만도 무려 1,200명이 징계당하는 피해를 노동자대중은 입었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저지하는 데에 실패했다. 그러나 총파업투쟁은 김영삼 정권에게 출범 이후 최초의 심대한 타격을 가함으로써 김영삼정권의 정국 장악력에 파열구를 내었으며, 또 이로 인해 자본과 보수언론들이 김영삼정권으로부터 대대적으로 이반하는 현상을 촉진시켰다.이에 대해서는 이해영, “3가지 위기”,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21호(1997년 5월), 14쪽 이하 참조
이러한 이반은 노동자 총파업투쟁 이후 ‘한보사건’과 ‘현철사건’이 터져나오면서 결정적으로 가시화되었으며, 김영삼정권의 통치체제를 근저로부터 허물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궁지에 몰리는 가운데에서도 정권은 노동자-민중의 진보적 부문에 대한 탄압의 고삐를 조금도 늦추지 않고 있다.
앞으로의 정국은 이른바 대권주자들 간의 권력투쟁에 의해 기본적으로 특징지워질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 총파업투쟁, 한보사건과 현철사건 등으로 인해 정권과 여당은 큰 타격을 받았지만, 여당이 결정적으로 분열하지 않는 한 DJ를 비롯한 야당후보가 15대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정국은 동시에 현철사건의 법적 처리문제와 14대 대선자금의 공개문제 및 대권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제세력들 간의 권력투쟁의 향방에 의해,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공안한파를 몰아올 것으로 보이는 ‘황풍’의 강도와 대북관계의 변화 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노동자 총파업투쟁을 통해 민주노조 진영은 자신의 사회적-정치적 위상을 크게 높힐 수 있게 되었다. 한보사태 등을 거치면서 제도정치권을 독점하고 있는 수구-보수정치 전체가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독점자본가세력들과, 정치자금의 취득과 이권 청탁 등을 고리로 하여 견고히 유착되어 있다는 사실이 폭넓게 폭로됨으로써 수구-보수정치 전체로부터 국민대중의 이탈 역시 크게 촉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탈이 노동자-민중정치를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민중세력의 새로운 비상한 주체적 노력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 보수정치인들에게도 보수정치가 대국민적 헤게모니를 계속 유지해 나가려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폭넓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이 널리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수구-보수세력들 내부의 힘관계가 개혁세력들만의 집결을 통한 정권 창출을 불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보수정치가 행할 수 있는 개혁의 폭과 심도는 극도로 제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설령 개혁적 보수정치가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다고 할지라도, 그 정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비록 일정하게는 부드러운 것으로 변화시키고 그 공세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무마시킬 조건들을 창출하는 데에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그 공세에 본질적인 제한을 가하는 정책을 결코 추진해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운동의 ‘세계화-지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 속에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앞장서서 뒷받침하는 것이 다름아닌 바로 보수정치가 행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3. 현시기 노동운동의 당면과제
- 민주노총의 노선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중심으로 -

위에서 우리는 현 시기의 정세가 기본적으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의해 특징지워짐을 밝혔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현 시기 한국 노동운동의 당면 투쟁과제는 무엇보다도 전세계적 수준에서 행해지고 있고, 한국에서 그 반동적 성격을 한층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를 모든 수준, 모든 측면에서 맞서 나감으로써 노동자와 모든 근로대중이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전망을 획득토록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의 민주변혁을 앞당겨 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 시기 한국 노동운동의 주요한 당면 투쟁과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여기서의 논의는 현 시기 한국 노동운동의 당면과제들을 구체적으로 모두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세와 관련하여 반드시 제기되어야 할 핵심적인 과제들을 구명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현 시기 한국 노동운동의 당면과제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논의는 후일의 과제로 미룰 수밖에 없다.



가. ‘잔업없는 생활임금의 전면적 쟁취’와 ‘전산업, 전 업종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 확보’ :
민주노총은 자본과 정권이 내세우는 ‘경제위기론’에 밀리면서 임금인상 요구수준과 투쟁 수위를 낮추고 있으며, 최근의 경제난 책임이 정경유착 구조,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 등에 있다는 이유를 들어 ‘경제를 살리고’ 한국 자본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수위를 낮춘 임금인상 투쟁을 보완하는 방편으로 경제개혁-재벌개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방침을 채택하고 있다. 민주노총, ꡔ97년 임시대의원대회 - 제5차 대의원대회-회의자료ꡕ, 59쪽, 70쪽 참조
그러나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경제의 현 상황은 비록 경제성장률의 둔화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임금동결이 거론되고 임금투쟁의 요구수준과 투쟁수위를 낮추는 것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악화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욱이 설령 경제위기 국면이 실제로 도래했다고 할지라도, 임금을 깍기 위한, 그 시기에 이르러 더욱 세차게 밀려올 자본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대중의 생활수준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적극 조직해 내는 것은 노동조합의 제1차적 의무이다.
우리는 경제개혁-재벌개혁 투쟁을 임금인상투쟁의 요구수준과 투쟁수위를 낮추는 것에 보완하는 방편으로 전개하는 데에 반대한다. 또한 우리는 그 투쟁을 반독점자본 투쟁, 즉 독점자본 운동에 대한 민주적-민중적 통제의 확대와 최종적으로는 독점자본의 사회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의 일환이 아니라, ‘경제를 살리고’, 한국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목적으로 전개하는 데에 더 더욱 반대한다. 민주노총이 재벌개혁을 내세우면서 지하철역 등에 부착시킨 홍보문에는 일본이 재벌체제를 해체함으로써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계속 발전해 올 수 있었다는 귀절이 나온다. 이러한 주장은 얼핏보면 설득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들에게 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사물을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며, 재벌지배라는 전근대적 요소를 배제한, 이른바 일본식의 근대화된 독점자본주의 체제를 미화한다는 문제점을 지닌다.
경제살리기의 일환으로 전개되는 경제개혁, 재벌개혁 투쟁이란 호황국면에는 설득력을 잃을 뿐만 아니라, 그 투쟁이 지닌 진정한 의의를 호도시킨다. 나아가 재벌개혁의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소유분산’과 ‘소유와 경영의 분리’란 재벌개혁을 위한 ‘소유자적-경영자적 대안’은 될 수 있어도 결코 노동자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집단적-사회적 소유의 한 형태라 할 수 있는 ‘노동조합에 의한 주식소유’ 등과 명백히 구분되는 ‘종업원 지주제’ 등의 실시는 노동자들을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시키기보다는 주식을 소유하는 소유적 개인들로 해체시키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또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란 기업운영에 대한 노동자들의 민주적 통제의 확대-심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기능적 자본가’ 역할을 수행하는 경영자층에 의한 기업 운영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른 한편, 우리는 현시기에 증대하고 있는 실업과 고용불안정이 한국경제의 경기하락에 기인한다는 자본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고용안정을 위해 임금요구 수준을 낮추거나 임금조정권을 사용자측에 위임하는 사태와 더불어 경기 침체에 따른 회사 측의 어려움에 종업원으로서 동참하고, 필요한 경쟁력 확보에 기여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생산성 향상운동’에 이른바 민주노조의 대표적인 조직까지 나서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위에서 현 시기에 이루어지고 있는 실업과 고용불안정의 증대가 결코 경기하락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화-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위한 생산시설의 혁신이 대폭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으로 인해 유휴노동력이 증대하고 있고, 임원감축을 통해 노동강도를 높히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는 데에 기인한다는 점을 밝혔다. 이 점에서 (생산설비의 혁신과 노동강도의 강화가 가져오는) 실업과 고용불안정의 증대에 대한 노동자적 대안이란 결코 고용안정을 임금인상 억제 등과 맞바꾸는 것도, 나아가 단지 해고반대를 위한 투쟁을 조직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을 전면적으로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적극 조직해 내는 것이다. 나아가 노조가 ‘회사살리기’에 나서 생산성 향상운동에 앞장서는 것은,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자본이 24시간을 바쳐 고안, 추진하고 있는 생산성 향상운동이 노동자계급에게 안겨주는 피해에 맞서고 생산과정의 기술 혁신 등을 필요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노조의 기본적인 임무를 방기하는 일이며, 노동자들을 기업 소속을 넘어서는 노동자계급으로 발전시키기는커녕 노동자를 기업종속적인 종업원의 지위로 떨어뜨림으로써 기업소속을 달리하는 노동자들 간의 경쟁을 유발하고 노동자들 간의 계급적 연대를 불가능케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와 관련하여, 현 시기 노동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투쟁과제는 (생산시설의 혁신 과정에 의해 뒷받침받고 있고 ‘경제위기론’의 제창을 통해 지원받고 있는 가운데) 임금총액 동결과 대량 해고 등을 추진하고 있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직접적인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맞서 ‘잔업없는 생활임금의 전면적 보장’과 ‘전 산업, 전 직종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 확보’를 위한 투쟁을 힘차게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현시기 민주노총의 운동노선은 그러한 투쟁의 기치를 명백히 내거는 대신에 그러한 문제들과의 대결을 회피하면서 그로 인해 생겨나는 공백을 ‘경제살리기를 위한 경제개혁-재벌개혁 투쟁’에 의해 메꾸려 하는 특징을 지닌 것이다. 이러한 노선을 민주노총은 대중이 지니고 있는 실재적인 정서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합리화할 지 모르지만, 고용보장 등에 대해 노동자대중이 지닌 불안감이 기본적으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의해 조성되고 있는 점에 비추어 현 시기 민주노총의 노선으로서는 자본의 그러한 공세를 적극적으로 타파해 나갈 출로를 노동자대중에게 제시할 수 없다. 나아가 “경제를 회복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 재벌개혁이 요구된다” 앞의 회의자료, 59쪽
고 주장하고 있는 데에서 드러나다시피, 민주노총은 근본적으로 애국주의와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자대중에게 침투하고 있고, 일반대중에게 유포되어 있는, 자본지배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지배이데올로기인 애국주의적-국가주의에 영합하고 있다. 또한 ‘경쟁의 원리’를 ‘연대의 원리’에 의해 대체하려 하기보다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본측이 제시하는 대안과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쟁력 강화’를 앞세우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큰 틀에서 수용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주노총이 노동운동을 자본지배에 대항하는 새로운 대안적 사회-정치세력으로 발전시키려 하기보다는, 자본과의 화해를 목표로 하는, ‘사회적 동반자 관계 수립’을 위한 운동으로 발전시키려는 입장을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경제살리기 등을 위해 이미 ‘경제대책 협의회’를 비롯한 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적극 참여할 의사를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 점에서 민주노총이 오늘날 자본과 정권을 대상으로 투쟁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대안적 사회질서를 창출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본과 정권이 그러한 사회적 동반자관계의 수립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그러한 정책을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민주노총이 합법성을 쟁취한 조건을 최대한 살려 노동자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바의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란 실제로는 ‘자본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을 핵심으로 하고 있으며, 노동자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그러한 전술의 활용 역시 큰 틀에서는 자본과의 사회적 동반자 관계 수립의 선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이 내세우는 그러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란 실제로는 노-자간의 사회적 동반자관계 수립 노선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나. ‘자본운동에 대한 제반 민주적-민중적 규제의 확대’와 ‘공공부분 및 공적 시설의 확대’ :
지금까지 우리는 ‘잔업없는 생활임금의 전면적 보장’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의 쟁취’가 현 시기 노동조합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투쟁과제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자본운동에 대한 모든 규제를 철폐하고, 막대한 이윤창출을 보장해주는 국-공유기업의 민영화-사유화를 추진하는데에 집중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그간 국가가 경제에 가한 규제는 한국에서는 국가 주도 하의 경제 개발을 추진해 나가는 데에 요구되는 규제의 성격을 지닌 동시에 국가관료 권력의 경제개입을 확보하기 위한 ‘관료적-권위주의적 규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국가적 규제는 유년기의 사적 자본들의 성장을 지렛대 역할을 수행했지만, 민간 주도하의 경제체제를 요구할 정도로 장성한 사적 자본들에게 이제는 자신의 자유로운 성장을 방해하는 자본운동에 대한 불필요한 간섭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관료적-권위주의적 규제는 기본적으로 반민중적, 친자본적 규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진보진영에서조차도 자본의 핵심적인 신자유주의적 요구의 하나인 ‘탈규제화’에 찬성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소수 독점자본의 권력이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조건 속에서 행해지는 탈규제화는 소수 독점자본으로의 전 국민의 경제적 삶의 전면적인 종속화를 결과할 따름이다. 이 점에서 노동운동은 ‘탈규제화’가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다수 민중의 권익 및 환경 등의 보호 등을 위한 자본운동에 대한 민주적-민중적 규제의 확대-심화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국-공유기업은 그간 한국에서 정권의 이익에 봉사한 자들을 위한 자리 제공처로서, 그리고 정치자금의 조달처로서 등으로 기능해 왔으며,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의 일반적인 물질적 조건’으로 기능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노동자대중과 일반국민에게 이윤논리를 초월한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이와는 달리 국-공유기업의 민영화-사유화는 그러한 기업을 철저히 이윤생산의 논리에 종속시키고, 독점자본의 경제권력을 더 한층 확대,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점에서 노동운동은 이미 존재하는 국-공유기업의 민영화-사유화를 저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공부문과 공적 시설을 더 많이 확보하고 그러한 부분과 시설에 이윤논리가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쟁해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나아가 노동운동은 그러한 공공부문이 단순히 전문경영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대중과 일반국민들의 민주적-민중적 통제 하에서 운영되도록 투쟁해야 하는 과제를 지니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김세균, “통신노조운동의 과제와 전망”,ꡔ현장에서 미래를ꡕ제14호(1996년 9,10월호), 142-152쪽 참조.



다. ‘노동관계법의 민주적 개정’과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모든 반민주 악법의 철폐’ :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운동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만, 앞의 회의 자료, 80쪽
노동운동 및 진보적 정치운동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중요한 법적 장애물인 국가보안법 등의 폐기를 위한 투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민주노총이 지배권력과의 대결을 가능한 한 회피하려 하고 있고, 노동자-민중운동 내부의 진보적 부분과 선을 그으려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나 민주노조 운동은 노동관계법의 민주적 개정운동을 적극 전개하는 동시에, 정치적 민주주의의 신장이 현저하게 제약받고 있는 조건이 안겨주는 한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동관계법의 민주적 개정을 위한 투쟁을 국가보안법과 같은 모든 반민주적 악법들의 철폐를 위한 투쟁과 견고히 결합시켜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회복지체제의 구축 등을 위한 사회개혁 투쟁 등이 정치적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한 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이른바 ‘시민운동’이 대체로 정치적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한 투쟁에는 눈을 감고 사회개혁투쟁만을 특권화시키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의 철폐 등을 자신의 투쟁과제로서 확고히 부등켜 안지 못한다면, 이는 노동운동을 그러한 시민운동의 수준으로 떨어뜨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라. 미조직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산별노조체제로의 이행 :
한국 노동운동이 노동자대중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미조직노동자들의 조직화에 착수해야 할 과제 앞에 놓여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그간 투쟁 속에서 단련되어온 많은 활동가들을 조직화 사업에 적극 배치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오늘날 미조직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이라는 점에서 이들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그러한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투쟁을 전국적 수준에서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노동자들 간의 분열과 경쟁을 격화시키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적극 대응하고 노동운동의 기반을 위협하는 기업종속적인 노조로의 퇴보를 막기 위해서도 산별 노조체제로의 이행을 앞당기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과제를 한국 노동운동은 지니고 있다. 이 점에서 예를 들어 ‘민주금속연맹’과 ‘자동차연맹’ 및 ‘현총련’이 ‘통합금속연맹’의 건설에 착수하고 있는 것은 금속노조운동의 발전을 물론 한국 노동운동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산별노조체제의 건설과 관련하여서는 다음의 몇가지 점이 유의되어야 한다.
첫째, 산별노조체제를 건설하는 기본원칙은 대단결의 확보, 즉 ‘대’산별체제의 구축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산별체제를 건설하는 경로는 매우 다양할 수밖에 없으며, 어느 하나의 왕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어떠한 경로를 택해야 하는가는 미리 확정지을 수 없고, 구체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해당 관계자들 간의 충분한 민주적 토론에 기초하여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산별노조 체체로의 이행이 아무리 절실하다고 할지라도 산별노조체제의 건설 자체는 건설된 산별노조의 운동노선 및 노조운영의 민주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 방도의 강구에 비하면 부차적인 중요성을 지닌 문제이다. 이 점은 민주노조운동이 한국노총 중심의 운동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것이 한국노총의 운동노선에 기인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아서도, 그리고 독일의 산별노조들이 조직 자체로서는 매우 모범적인 조직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대체로 ‘사회적 동반자관계의 수립’을 기본적인 운동노선으로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독일 노동운동의 발전을 저해하는 커다란 질곡이 되고 있고 노조의 관료제화와 같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보아서도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
셋째, 산별노조체제로의 이행이 아무리 절실한 과제라고 할지라도,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등을 포함한, 노동운동이 직면한 모든 문제들을 산별노조 체제로의 이행에 기초해서만 풀어 나가야 한다는, 노동운동 발전에 대한 단선적이고 점진주의적이며 조합주의적인 운동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들은 매우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며, 이러한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과제들을 단선적이고 점진주의적 접근방식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산별노조 건설을 적극 추진해야나가야 하지만 우리가 만일 ‘산별노조 만능주의’에 빠진다면, 이는 노동운동의 발전에 해를 끼치는 매우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넷째, 오늘날 우리 사회의 산업구조에서는 금속산업부문과 더불어 공공산업부문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공공부문 산별노조를 건설함에 있어 견지해야 할 기본적인 원칙은 그 산별조직을 현 시기에 법적 소유권의 측면에서 공공부문인 산업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으로 만들어서는 안되며, 법적으로 공기업이든, 아니면 민간기업이든 공공적 성격을 지닌 모든 부문의 노조를 단일의 소산별체제, 또는 대산별체제로 발전시킨다는 전망을 지니고 조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점은 특히 한국의 경우 통신, 운수, 방송, 언론, 병원, 학교, 부두-항만 등등이 법적 소유권의 측면에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과, 현 시기에 진행되고 있는 사유화, 탈규제화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재편으로 말미암아 과거에 법적으로 공공부문이었던 부문 중 많은 부문이 민영화되고 있는 사실에 비추어 보아 커다란 중요성을 지닌다. 이와 더불어 특히 공공부문 노조들은 총자본의 민영화-사유화 공세에 대항하여 사유화-민영화에 반대하는 투쟁과 더불어 공공부문의 확대를 위한 투쟁 및 자본이 파악하는 바의 ‘공익’의 계급적 한계를 폭로하고 공공부문 산업으로 ‘상품논리’와 ‘이윤논리’가 침투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공공부문에 대한 노동자적-민주적 통제체제의 수립을 위한 투쟁을 가장 앞장서서 조직해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마.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항하는 ‘진보적 민주연대’의 형성과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오늘날 단지 노동자대중만이 아니라, (정보통신 분야 등의 이른바 벤처기업이나 세계화-정보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능력을 지닌 전문 인텔리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들에게 막대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특히 농산물시장의 개방은 소농과 빈농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많은 중소기업의 도태를 촉진하고 있으며, 경쟁의 논리를 전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가운데 사회의 전 영역에서 많은 사람들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더욱이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구래의 파시즘적 억압책에 뒷받침 받음으로써 그 반동적 성격을 더 한층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동운동은 노동자대중에게 가해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결연히 맞서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공세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는 모든 근로대중들의 이익을 확고하게 대변할 과제를 지니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저항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확대, 심화를 위한 투쟁을 앞장서서 추진해 나가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이 내세우는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 진정으로 의미있는 것이 되려면, 그 운동은 ‘경제살리기’에 나서고 ‘생산성향상 운동’에 협조하거나 보수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은 ‘유연적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과 수구-보수정치에 의해 뒷받침 받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모든 근로대중들의 이익을 확고하게 대변하고 우리 사회 전반의 민주화를 일관되게 추구해 나가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민주 노동운동은 자본지배에 대해 그러한 명백한 투쟁노선을 견지해 나감으로써만 자신을 부르주아지배층에 맞서는 새로운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부상시키고, 노동자계급을 사회 전체의 발전을 지도하는 말 그대로의 ‘인민적-국민적 계급’(A.그람쉬의 용어)으로 성장,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민주노동운동은 그러한 시대적 과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항하는 모든 세력들의 연대투쟁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책임을 부여받고 있다. 이 연대는 군부파시즘 체제와의 투쟁을 위한 ‘범민주연합’이 아니라, 파시즘적 억압에 의해 뒷받침받고 있긴 하지만 ‘자유주의적 보수정치’가 그 가장 중요한 정치적 추동력이 되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저항하는 연대의 성격을 지녀야 한다. 이 점에서 이 연대는 무엇보다 수구세력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보수세력 전체에 대해 명백히 일선을 긋는, 과거의 ‘범민주연합’을 넘어서는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대’의 성격을 지녀야 할 것이다. 동시에 이 새로운 연합전선은 당면 투쟁과제의 해결을 중심으로 삼는 투쟁체가 되어야 할 것이지만, 당면 투쟁과제만을 절대화함으로써 노동자-민중의 더 한층의 정치적 발전을 봉쇄하는 조직체가 되어서는 안되며, (신자유주의와는 일정하게 구분되지만 부르주아 지배층의 헤게모니적 지배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의 다른 한 조류인) ‘혁신자유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적-민중주의적 소부르주아 정치세력인 이른바 ‘민족민주세력’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시기의 ‘신자유주의’와 이와 구분되는 혁신자유주의 조류가 지닌 특징들을 전반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글으로서는 김세균, “신자유주의 정치이론의 연구경향과 문제점”, ꡔ이론ꡕ 제15호 (1996년 여름,가을호), 41쪽 참조.
그런데 그간 ‘경실련’ 중심의 운동이 그 속에 혁신자유주의적 요소 역시 포함하고 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참여연대’ 중심의 운동은 대체로 ‘혁신자유주의적’ 시민운동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민족주의적-민중주의적 소부르주아 정치운동은 ‘전국연합’의 정치노선에 의해 대변된다고 생각된다.
노동자세력이 주도하고 ‘노동자-민중연대’에 기초하여 진보적 민주세력 전체를 결집시키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 총파업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범대위’는, 비록 한시적 공투체로 조직된 것이긴 하지만, 노동자-민중연대가 주축을 이루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개혁을 바라는 모든 세력들을 결집한 ‘진보적 민주를 위한 연대’의 성격을 지녔었다. 이 점에서 민주노총은 범대위를 상설적인 ‘연합전선체’로 확대-발전시켜 우리 사회의 전선운동을 재편하는 작업에 신속히 착수함으로써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강고한 새로운 연합전선체를 이미 건설했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김영삼대통령이 김수환추기경에게 일정한 양보 의사를 밝힌 것을 전해 듣자마자 ‘범대위’ 측과 일언반구의 상의도 없이 (사실상의 파업철회 결정인)‘수요파업으로의 전환’ 등을 결정함으로써 총파업투쟁의 성과를 극도로 왜소화시킨 것은 물론 범대위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강고한 연합전선체를 건설하는 길을 봉쇄해 버렸다. 이로 인해 힘있는 새로운 연합전선체를 건설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으며, 한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적 민주를 위한 투쟁은 더 많은 고통을 치루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그러한 새로운 연합전선체를 건설하기 위한 작업은 지금이라도 한시바삐 착수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적 민주를 위한 새로운 연합전선체는 동시에 다가오는 대선을 비롯한 제반 제도정치권의 정치일정에 대응하는, 노동자-민중운동세력 전체의 정치적 구심체로서도 기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제도정치권 내부에서도 보수정치에 대항하는 정치전선을 형성하기 위해 이 연합전선체가 중심이 되어 이번 대선에서는 물론 다가오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차치단체에서도 노동자-민중후보를 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는 단지 대선에서 독자적 노동자-민중후보를 내고, 노동자-민중의 대표를 의회로 진출시키는 것만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노동자-민중의 대중적인 정치투쟁 내지 대중정치를 활성화시키고 그러한 대중정치를 무한히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제도정치권에의 참여 역시 노동자-민중의 정치를 제도권정치로 흡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대중정치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또한 정치조직의 건설도 현장의 선진적 역량이 주축이 되는 현장조직 건설을 중심으로 삼고, 지역조직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보적 민주를 위한 새로운 전선연합체는 노동자계급의 변혁적 계급정당과는 구분되는 조직이다. 이 점에서 그러한 전선연합체가 만들어지다고 할 지라도 변혁적 계급정당의 건설문제는 여전히 노동자계급에게 주어져 있는 중요한 조직적 과제에 속한다. 그렇지만 변혁적 계급정당의 건설이 주-객관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당장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 속에서 노동자세력이 주도하고 노동자-민중연대에 기초하여 진보적 민주세력 전체가 결집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연합전선체는 위력있는 변혁적 계급정당 건설을 앞당기는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날 민주노총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정치세력화 논의가 주로 선거참여와 의회로의 진출문제로 축소되고 있고, 대중적 토의가 부재하고 현장의 선진적 역량과 노동운동활동가들의 참여가 배제된 상층 노조간부 중심의 논의로 축약되고 있는 점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은 한시바삐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바. 민주적-민중적 통일을 위한 사업의 전개 :
현 시기에 이르러 북한은 식량난을 비롯한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민주노총이 북한주민들을 돕기 위한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북한민중을 조금이라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고, 앞으로 북한민중과의 연대를 형성,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확고한 대북우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을 위한 민간인들의 식량지원운동에도 제한을 가하는 등, 수구적인 대북강경책에서 물러날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남북한관계에 돌파구가 열리면, 북한경제를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로 편입시키기 위한 남한 정부와 자본의 공세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세가 본격화되면 단순한 동포애적-휴머니즘적 운동은 정부와 자본의 그러한 공세의 외연을 넓히는 운동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나아가 이러한 공세는, 동유럽의 경우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다시피,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공세의 성격을 지닐 것이다. 이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한 저항은 앞으로 남북한 노동자-민중의 연대를 만들어내는 핵심고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남한 내부의 통일운동은 오늘날 한편으로는 민족주의적 성격의 학생운동과 재야운동이, 다른 한편으로는 부르주아 시민운동이 주도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노동운동은 통일운동이 노동자-민중적 노선을 지니고, 노동자-민중 중심의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현시기의 통일운동은 북한주민들을 돕기 위한 운동에서 더 나아가 남북한 평화군축체제의 구축과 국방비의 감축 및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위한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사.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항하는 국제적 연대 운동의 조직화 :
한국의 민주노동운동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대항하여 노동자대중의 이익과 신자유주의적 공세로 인하여 고통받는 모든 근로대중 및 일반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투쟁을 타국의 노동운동 및 진보적 민주세력과 연대하여 국제적 수준에서도 힘차게 전개해야 할 과제를 지니고 있다. 현 시기에 요구되는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의 기본적인 방향에 대해서는 빌리 하옠, “‘경쟁’과 ‘탈연대’의 극복을 항햐여”,ꡔ현장에서 미래를ꡕ, 제21호(1997년 5월), 41-50쪽 참조.
이 과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일은 오늘날 초국적자본들의 전일적 지배체체인 지구적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가 전 세계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지구화-세계화가 고도로 진척되고 있는 조건 속에서 해결해야 할 모든 과제들이 결코 일국 수준의 운동만으로는 적극 대응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 비추어 매우 시급하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민주노총이 한국자본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자간의 동반자적 관계 형성 등을 지지하는 이상, 민주노총이 그간 외쳐온 ‘세계의 노동자는 하나다’라든지,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는 자기모순적이고, 실재적인 내용을 결여한 빈 소리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단결과 연대의 원리’가 타 기업 노동자들에 대해 ‘경쟁의 원리’로 대체되어서는 안되다시피, 그 원리는 국제적 수준에서도 노동운동의 일관된 원칙으로서 확고히 견지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사회적 동반자 관계’ 수립을 지지하는 국제 노동운동의 상층 조직에의 참여 보다는, 국제노동운동 내부에 새로운 진보블럭을 형성하는 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그들의 투쟁을 적극 조직해야 하며, 그들이 자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노동운동 활동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그들을 적극 교육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한국 자본의 세계적 진출이 눈부시게 이루어지고 있는 점과 관련하여 타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에서 일하는 현지 노동자들과 연대관계를 형성하고 그들과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새로운 경험을 쌓아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국 민주노조는 가장 노사협조주의적인 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일본 노조를 대신하여 아시아 전체의 민주노동운동을 이끄는 중심세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4. 결론: ‘네가 떠난 로마로 나는 가고 있다’

지난 5월 27일자 한겨례신문에는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사회개혁 12대 과제’를 국민에게홍보하는 전면광고가 실렸다. 이 사회개혁 12대 과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대선자금 공개하고 정치자금법 개정하라.
2) 돈세탁 방지, 공익정보 제보자 보호 등 부패방지법 제정하라
3) 재벌의 경제력 집중 규제하고 족벌 경영 철폐하라.
4) 중소기업 금융-세제-기술 지원 확대하고 하도급 불공정 거래 일소하라.
5) 의료보험 통합 일원화와 보험적용 확대하라.
6) 연금기금을 민주적으로 관리운영하라
7) 고용보험 적용확대와 공공직업안정기관, 공공직업훈련체계 확립하라.
8) 교육개혁을 통한 사교육비 절감시켜라.
9) 근로소득 세율인하, 자산소득 과세강화 등 세제를 개혁하라.
10) 교사-공무원의 단결권 보장하라.
11) 민주노총 합법성 보장, 구속-해고자의 사면복권과 원직복직시켜라.
12) 북한동포 돕기운동 보장하라.

민주노총이 현 시기 노동운동의 핵심적인 당면투쟁과제로서 제기하고 있는 위의 ‘사회개혁 12대과제’의 내용은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무엇보다 10번과 11번 요구사항을 제외한다면 제시되고 있는 사회개혁의 내용 모두가 시민운동 단체의 요구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제시되고 있는 과제들이 대부분 노동자계급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시민운동적 기준에서 마련되고 있다는 점, 노동자대중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는 핵심적인 지점을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그 지점을 가능한 한 비켜가려 하고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제시되고 있는 과제들이 개혁적 보수주의자라면 대체로 수용할 수 있는 요구사항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 등이 들어난다.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와 관련되는 과제는 제시되어 있지만, ‘노동자대중 전체의 생존권’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과제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잔업없는 생활임금의 전면적인 쟁취’와 ‘전산업, 전업종에서의 노동시간의 단축’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임단투 수준을 넘어서서 국가를 대상으로 한 투쟁을 통해서만 확보될 수 있는 지난한 과제이다. 대선자금 공개와 정치자금법의 개정은 극히 초보적인 수준의 정치적 과제이지, 노동자대중의 정치적 성장을 가로막는 중심적인 장애물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과제는 아니다. 정치투쟁의 가장 중요한 과제와 경제투쟁의 가장 중요한 과제들을 중심에 놓고 있지 않는 요구사항들은 권력과 자본에 진정으로 맞서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탈정치적이고, 노동자대중의 진정한 바램과 희망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탈노동자적이지 않을 수 없다. 해결되어야 할 것들을 요구한다고 할지라도 중심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들을 요구하지 않는 것은 중심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의 해결을 회피하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한국의 노동운동은 총파업투쟁에서 치솟아 올랐지만 이제는 잿 속의 불씨와 같은 존재로 남아있는 ‘노동자대중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노동운동’이 다시 타오르느냐, 아니면 꺼져가느냐의 기로에 서있다. 이러한 기로에서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를 수용하고 노-자 간의 사회적 동반자관계를 수립하려는 경향이, 다른 한편으로는 애국주의와 국가주의 및 기업종속적인 애사주의의 경향이 점차 세를 불리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민주노총을 노동자대중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것들이다. 민주노총이 자신을 탄생시킨 노동자대중과 함께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동자대중을 버리고 다른 곳을 찾아 떠나가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운동이 가야할 길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외친 베드로가 ‘네가 떠난 로마로 나는 가고 있다.’고 대답한 예수의 말을 듣고 로마로 되돌아 간 것과 같이, 다시 노동자대중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베드르의 위대성은 예수의 길을 따라 다시 로마로 돌아감으로써 기독교를 반석 위에 올려 놓았다는 점이다.
‘네가 떠난 로마로 돌아가고 있다.’ 이 외침은 현 시기 한국 노동운동의 외침이 되어야 한다. 이 외침이 힘차게 울려 펴지는 곳에서 한국의 노동운동은 자신의 위대한 전통을 되찾고, 베드로가 기독교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것과 같이, 노동자대중을 우리 사회의 진정한 주인 자리에 올려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한/노/정/연

1997-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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