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략품의 분배 질서를 둘러싼
어느 범죄 집단의 분란
채 만 수 / 부소장정세초점
어느 범죄 집단의 분란
노동법의 날치기와 그에 따른 총파업, 그리고 이어 터진 한보
그룹 부도를 계기로 이후 전개되고 있는 정국 상황은,
한편에서는 저들의 적자(嫡子)로 태어나지 못했으면서도 자못
위세를 부린 한 정권이 저들 독점자본에 의해서 얼마나 처절하게
보복과 능멸을 당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의 정치집단, 정치풍토가, 그리고 넓게는 부르조아
정치집단, 정치풍토가 얼마나 추악하며 범죄적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어느 신문이 현재의 김영삼 정권의 상태를 가리켜서
‘뇌사상태’라고 했지만, 대부르조아 언론으로서의 그들은
지금, 그 뇌사를 치유하거나 안락사시키는 대신에, 그 뇌사
주검의 목에 새끼를 메어 질질 끌면서 온 저자에 조리돌림을
시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개혁’․‘사정’을
떠들면서 조자룡 헌 칼을 휘둘러 우리를 제압하려던 언필칭
‘문민정부’의 참모습이다!”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경제위기’, ‘경제발전’이란 주문으로 저 독사처럼
잔인했던, 그리고 일제하에서는 천황 폐하의 충실한 정보 장교
오카모도 미노루(剛本實)로서, 40년대 말의 새로운 정세틀
형성기에는 좌우를 넘나드는 곡예사로서, 또 6∼70년대에는
군사독재의 수괴로서 철저히 반민족적, 반민주적, 반민중적 삶의
길을 걷다가 끝내 죄값을 받아 피살된 박정희의 망령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파탄난 군사독재의
망령을 ‘향수’(鄕愁)라는 이름으로 그들 독점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적통(嫡統)의 정치집단으로 부활시키려 헛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개 땐 파멸... 국정 위해서 잘된 일”(?)
김영삼 정권이 능멸․조리돌림을 당하는 것은 당연히
자업자득이고, 때문에 조금의 동정의 여지도 없다. 그들 집단이
저지른 기만, 위선, 범죄는 낱낱이 열거할 수도 없이 많고
엄청나서 ‘하늘에 닿는’ 것인데, 저들 식(式)의 사고(思考)를
잠깐 빌면, 다만 폭로되고 있을 뿐 ‘공개’되거나 ‘확인’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즉 뻔히 드러난 범죄를 철면피하게 깔아
뭉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철면피의 행렬을, 지난 5월 23일에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께서 철면피한 얼굴로
92년의 ‘대선자금 불공개’ 입장을 천명하신 직후의, “공개 땐
파멸... 국정 위해서 잘된 일”이라는 글줄기가 붙은 한 보도를
통해서 보자.
지난 몇 개월 동안 정국현안의 핵심이었던 92년의 대선자금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이 23일 ‘불공개’ 입장을 분명히 하자
...... 신한국당은 ‘예상대로’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신한국당 당직자들은 “아무튼 잘됐다”는 반응이었다.
한 당직자는 “대선자금을 공개하면 대통령직 유지가
‘위법상태’의 지속임을 확인하는 것 아니냐”며 “김대통령이
극도로 무력해진 지금 대선자금을 공개하는 것은 ‘하야’를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선자금을 공개하면 출처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면서
재벌 등 대기업 사주들을 또 한번 법정에 세워야 한다”면서
“국정의 큰 틀에서 보면 잘된 일”이라고
덧붙였다.(ꡔ동아일보ꡕ, 1997. 5. 24.)
범죄 그것은 이미 드러나 있는데도, 그리고 그 범죄의 객관적
존재 사실을 명백한 어조로 인정하면서도, 범죄 그것 때문에
‘위법상태’인 것이 아니라 그 범죄를 그 핵심 실행자가
확인함으로써만 ‘위법상태’로 된다는 저들의 뻔뻔스러운
궤변에 그저 아연할 뿐이다. 그리고 저들이 “대선자금을
공개하면 재벌 등 대기업 사주들을 또 한번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을 때, 우리는 저들 독점 부르조아 내부에
진한 공범의식이 있음을 확인한다.
온통 악취와 범죄 천지
실제로 저들 대부르조아 집단은, 여야를 막론하고, 그리고
입법․사법․행정 그리고 대통령부를 막론하고, 또
계급을 대표하여 직접 정치의 장에 나섰든 아니면 그들의
배후에서 그들을 자금이나 기타의 방식으로 부양․지원했든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범죄집단이고, 그 구성원임을 스스로의
분란을 통해서 증명해 주고 있다. “대선자금을 공개하면 재벌
등 대기업 사주들을 또 한번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으름장이
그것이고, “92년 대선자금 문제는 여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 여야 모두의 문제다. …… 정국은 항상 시끄럽게
마련이다”(이회창)라거나, 가지가지의 표현으로 ‘여야
공동책임’을 강조하고 ‘여야 공멸’이니 ‘3김 공멸’을
협박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명색이 범죄 수사기관이라는
검․경은 ‘대선자금 수사 계획 없음’을 염불처럼
내뱉으면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보’나 ‘현철씨’ 수사
등을 통해서는 권력이나 대자본이 저지른 범죄의 진상을
밝히기보다는 그것을 축소․은폐․합리화 하기에
급급한 데에서도 우리는 악취와 범죄를 본다.
이미 1970년에 ‘당시의’ 한 저항 시인은 ‘오적’(五賊)을
노래했지만, 실제로 그 ‘오적’의 지위에 오른 자들 치고
범죄자(賊)가 아닌 자 누가 있겠는가? 국회의원을 예로 들자면,
심심치 않게 ‘깨끗한 정치’, ‘돈 안 드는 정치’를 다짐하는
‘개혁적 정치인들’의 위선의 소리가 들리지만, 가장 적어도
수천만 원, 아니면 수억․수십억 원의 선거비용이 들고,
매달 가장 적어도 천만 원대 아니면 수천만 원대의 지구당
운영비, 품위 유지비가 드는데, 그들이 도적질 아니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아니하고, 대자본과 공범자가 되지 아니하고 어떻게 그
지위에 오르며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간혹,
“천지신명께 맹세코 결코 내 손으로 부정한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 못할 이가 없진 않겠지만, 특히 이른바
운동권 출신의 분들 중에 그러한 자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주장이 “내 임기 중에는 내 손으로는 한푼의 정치자금도 안
받겠다”시던 김영삼 대통령의 말씀과 얼마나 다를까? 김
대통령께서 ‘내 손으로’ 받는 대신에 ‘내 아들의 손으로’
받으셨듯이, 그들 ‘순백한 개혁적 정치인들’이야말로 필시
‘내 손으로’ 부정한 돈을 받는 대신에 그것은 ‘당의 실력자의
더러운 손’이나 ‘계보 보스의 더러운 손으로’ 받고 깨끗한 내
손은 다만 ‘당이나 선배 의원의 깨끗한 지원금’을 받을 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이 수천억 원의 부정자금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마당에 대통령부 청와대가 당당하게도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비리 사정’ 방침을 발표하여 ‘계획
사정’이니 ‘표적 사정’이니 ‘국면전환 카드’니 하는 반향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권력이 이렇게 당당하게
‘사정’을 통해 집단의 규율을 세우겠다고 나서고, 또 그렇게
나설 수 있는 것도, 바로 모두가 범죄자이고 도처에 온통 악취
뿐이라는 전제하에서이다. 지금 김영삼을, 김영삼 정권을 천하에
부도덕하고 부패한 정권으로, 범죄집단 그것으로 지탄하면서
도리돌림질하고 있는 언론과 사회명사들이 똑같은 입으로 김영삼
정권의 ‘개혁’․‘사정’을 찬양해마지 않으면서
노략품의 새로운 분배구조에 참여하려고 경쟁하고 있던 시절인
김영삼 정권의 초기에, 나는 그 ‘개혁’․‘사정’이란
사실은 이권(利權)이 흐르는 파이프라인을 김영삼 정권 쪽으로
돌리려는 ‘나와바리 싸움’에 불과하다고 규정했었는데, 그러한
규정도 당연히 온통 악취와 범죄 뿐이라는 전제하에서였다.
해묵은, 그러나 아직도 위력을 갖는 음모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여러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대선자금 공개 불가’라는 대통령 각하의 의지를 대신 전하는
자리에서, “대선자금의 근본문제는 현실이 따라가지 못하는
과거의 법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여야 정치인
모두가 사죄하는 심정에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와
관행을 고쳐 나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사고, 이러한 대안 제시는 비단 이회창
씨만의 것이 아니고, 대선자금의 ‘진상 공개’(?)를 주장하는
사람이든 반대하는 사람이든, 현재 제도권(정치집단 및 언론
등)과 그 주변(‘경실련’, ‘참여연대’ 등의 이른바 시민단체
등)의 공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언론이나 시민단체
등을 통해서, 그리고 심지어 민주노총의 이름으로도, 예컨대,
1997년 5월 27일자 ꡔ한겨레ꡕ에 실린 “대통령이
못한 개혁 국민이 완성시켜 나라를 살립시다”라는 제목의
전면광고에서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이 추진하는 사회개혁 12대
과제’의 두번째로 “돈 세탁 방지, 공익정보 제공자 보호 등
부패방지법 제정하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한 ‘제도 개혁’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제도 개혁론’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과연 ‘법제도의 개선’으로 그러한 정치적․경제적
범죄를 예방 내지 봉쇄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이러한 범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그것이 폭로되어
사회적․정치적 문제로 된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법제도의 개선’이 있어 왔다. 그리고
특히 지난 지자제 및 총선 전의 ‘통합선거법’은, 오늘날 다시
‘법제도의 개선’을 말하는 바로 그 입들을 통해서 가히
이상적인 선거법인 듯이 상찬된 바 있다. 그러나 그러한 범죄는
더욱 증폭된 형태로 거듭거듭 재연되었고, 오늘날 다시
‘법제도의 개선’을 운운하고 있다. 법가(法家)적 사고는 일견
매력적이지만, 문제 해결의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할
만도 하지 않은가?
“대선자금의 근본문제는 현실이 따라가지 못하는 과거의
법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회창 씨 등의 인식은 나름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근본문제’라고까지 말하는 것은 허위를
포장하기 위한 부르조아적 과장이지만, ‘대선자금’ 문제가
‘범죄’의 문제로 되고 있는 데에는 실제로 ‘현실이 따라가지
못하는 과거의 법제도’와 관련이 있다. 즉, 현실이 따라가지도
못할 ‘한도’를 선거법이 ‘합법적인 정치자금’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한 데에서 가엾은 김영삼
씨의 ‘대선자금’ 등 선거자금의 문제는 범죄의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와
관행을 고쳐 나가는” 것이라면, 그 방향․내용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모든 선거자금이나 정치자금의 한도․제한을
폐지하는 길 뿐이다!
그런데, 선거자금 등의 제한을 폐지한다면, 그것은, 현행의
선거법이 정치인 개인의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 수수를 그
금액 여하에 상관없이 합법적인 것으로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선거자금․정치자금을 합법화시켜
주겠지만, 그것을 정당화시켜 주지는 못한다. 대중적 설득력도
없고.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정치인이나 재벌 등 범죄
당사자들의 음모와 시민단체 등의 어릿광대 춤이 나온다.
‘법제도를 개선’하면 그러한 범죄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과 환상 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도 없이 경험해 온 대로 그것은 속임수요,
환상일 뿐이다. 그리하여, ‘법제도의 개선’을 운운 할 때
그것은, 뻔히 그러한 범죄가 재발할 것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내심 그러한 범죄를 기필코 다시 범하겠다고 다짐하는 모든
정치인들이나 재벌 등등은 고의적으로, 그리고 어리석음 때문에
환상 속에서 어릿광대 춤을 추는 시민단체 등은 과실에 의해서,
또 다른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바로, 대중을 기만하고
그들의 판단능력을 마비시키는 범죄 말이다.
우리는 왜 사소한 일에만 화를 내는가?
대중은 지금 극도로 분노하고 있다. 국민회의나 자민련 등 제도
정치집단들이나 대자본의 언론 등등이, 여러 이해득실의 계산
끝에, 아무리 김영삼 정권의 퇴진을 원하지 않고, 다만 그것을
자기들이 통어(統御)할 수 있는 상태에 묶어 두는 것으로만
그치려 해도, 대중의 분노는 그것을 넘어 그 퇴진을, 그리고
처벌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대자본과 권력간에 수십억․수백억, 아니 수천억의 뇌물이
오가고, 권력은 그 자금으로 다시 ‘정권을 재창출’하고,
자본은 그 뇌물의 대가로 온갖 특혜를 누리고 하는 데에 대해서
대중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러한 정권의 퇴진과,
그것이 뇌물을 받은 정치인이든 뇌물의 대가로 특혜를 누리는
자본가든, 그들 부패분자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한 부정부패, 범죄적 정경유착의 피해는 결국
대중의 부담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대중의 이러한 분노는 균형 있는 것인가?
혹시 대중은 정말로 분노할 일에는 분노하지 못하는 일은 없는
것인가?
생각해 보면, 물론 결코 사소한 일만은 아니지만,
정치자금․선거자금․뇌물의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착취된 잉여가치의, 자본가 계급 내부 분파간의 분배의 문제,
분배방식의 문제에 불과하다. 추잡하고 범죄적인 정경유착
때문에 가중되는 정치적 억압이라든가 인플레이션 등을 통한
착취의 부분적 강화라는 후과(後果)를 잠시 제쳐 둔다면, 정치적
부정부패의 문제는 기본적으로는 부르조아지 계급 내부의 투쟁의
문제이고, 부르조아 정치의 합리화의 문제이며, 노동자
계급에게는 차라리 간접적인 문제이다.
따라서 부르조아 정치의 부정부패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분노가
균형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분노가 부르조아 정치의
합리화를 촉구하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 그 엄청난
정치자금․뇌물이 결국은 착취된 잉여노동의 일부이자 그
뇌물을 제공하는 자본의 수중에는 더 많은 잉여가치가 보유되어
있고,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착취하기 위한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잉여노동의 착취, 그것 자체에 대한 거대한
분노를 전제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자신을
향해 이렇게 물어야 한다 : ‘나는 왜 사소한 것에만 화를
내는가?’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