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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돕기와 노동자 운동

현장에서 미래를  제22호
김진균

권두언


북한돕기와 노동자 운동






김진균 / 자문위원․서울대 교수, 사회학




1. 북한에서 근년에 큰 물난리를 몇 번에 걸쳐 치루는 참상이 이 세상에 차츰 알려지고 북한이 세계를 향하여 식량구호를 요청하게 되자 한국에서도 이제 민간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북한식량돕기운동에 나섰는데 그 규모를 보면 호응도가 큰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기본적 근거는 인도주의에 있고 옛 전통의 규휼하는 마음씨가 훌륭히 전해와서 되살려지고 있는 셈이다. 인도주의, 동포애, 우애 등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는 최대의 또는 최소의 명분일 것이다.
50여 년 간의 분단체제에서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고, 배제하고, 비방해 온 남북한 간의 관계에서 보면 온 몸에 스며들어 있을 반공이데올로기가 무의식으로 발로되는 현실에서 인도주의와 동포애만으로도 북한식량돕기에 온 국민의 각계 각층이 망나해서 성금을 거두어 내는 것을 보면 놀랍기만 하다. 옥수수보내기, 겨레사랑-북녁동포돕기, 밥나누기 사랑나누기, 평화의 쌀보내기, 한끼대접하기, 남북나눔, 어린이 어깨동무 등 등의 이름으로, 초등학교 어린이, 중고교 학생, 대학생, 사무직 노동자, 생산직 노동자, 종교인과 신도, 교수 등 등의 각계 각층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근래에 파업투쟁을 전개한 민주노총도 그간 노동운동에만 몰두해 온 아집같은 인상을 벗어내기라도 하듯이 북한식량돕기에 나서서 그 넉넉한 기반의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2. 사실 남북한 사이에 근래 여러 형태의 교류가 있었고 만남의 일도 많았지만 남북한 노동자만이 만나 대화와 교류를 한 적은 없다고 기억된다. 남북의 자본가들은 북한에 가서 경제교류와 합작투자를 상의하고 실제로 투자를 진행하기도 한다. 남한의 자본이 북한에 진출해서 북한의 노동자가 만든 물건과 제품이 남한으로 들어와 일반 소비자뿐만 아니라 노동자들도 소비하고 있지만 남북의 노동자계급이 서로 만나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협동의 어떤 노력을 해본 일이 없다. 남한 사람들은 북한에서 빚은 술이 담백하다며 그 맛도 즐기고, 생선과 산채나물도 맛보곤 한다. 북한 미술가가 그린 작품이 소박한 품위가 있음도 감상하곤 한다. 단지 북한의 공업제품이 너무 소박하여 질이 낮다는 평가를 쉽게 하기도 한다. 그것으로 보면 남한의 노동자가 북한의 노동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만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50여 년의 분단상황이 체제적으로 전개되어 오면서 우리 일상 생활에 반공-반북이데올로기가 스며들어 있고, 분단 반공의 체제 조건에 의하여 기득권을 거머쥔 계급 계층 세력 또한 만만치 않아서 남북통일을 전망하는 근래의 분위기와 전국민적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는 북한식량돕기운동의 상황에서도 북한의 식량사정을 의심하거나, 군용미로 비축될 위험성을 의구하거나, 내심 붕괴되어 남한으로 흡입될 것이라는 단순한 사고의 환상을 갖는 언술이 너무 혼잡스럽게 분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북한이 대외적으로 보이게 하는 의례적 사업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한다는 보도를 나게 함으로써 그러한 의구의 빌미를 주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이번 북한식량돕기운동에 성심껏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들로서는, 그리고 ‘철의 노동자’ 이름으로 파업불사의 강한 의지로 남한의 노동운동을 전개해 온 노동자들로서는 북한의 ‘동포’를 ‘민족’의 이름 아래 돕기로 나선 것은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할 것이다. 80년대 이론진영과 실천운동진영에서 정파에 따라 계급과 민족의 숱한 모순의 정체를 내세우거나 그 양자 간의 관계를 이론적이나마 한 논리선상에 놓고 고민하던 형편과는 달리, 그들은 이제 남한노동계급에 어쨌든 ‘민족’을 포괄해서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을 6․25 전쟁의 주범으로 ‘쳐부수자 공산당’ 슬로건의 교육만 평생 받아온 터라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 식량돕기에 나섬으로서 어쨌든 냉전-반공의식을 전환시켜야만 북한을 돕는 자신을 스스로 용납하고 더 나아가 남북의 문제를 노동자계급적 입장에서 생각도 하고, 토론도 하고, 공론을 모아나갈 수 있도록 자기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객관적으로는 북한에 남한의 자본이 진출하고 있고 앞으로는 외국자본과 함께 더욱 규모가 크게 체계적으로 진출하려는 상황을 동포애나 인도주의 차원을 넘어 선 상태를 가상해서 깊히 인식하고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일시적인 북한돕기로는 북한의 어려움이 해결될 것 같지도 않을 것이며, 남북교류의 증대가 통일을 전망해야 하고 거기에는 어쨌든 남한 노동자의 위상이 연관되어 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3. 과도하게 말하자면 북한은 한국과 미국, 일본의 자본운동에 이미 편입되어 불가피하게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작동 속에 들어서서 그 운동에 적절히 개방, 발전, 성장의 이름으로 적응해 가지 않으면 않될 처지에 있다. 북한의 생산력 수준이나 경제체제의 조건 때문에 자본주의의 헤게모니에 종속되는 상황을 연출할 수밖에 없고 그 상태를 예견할 수 있다면 (북한의 사회주의체제가 자본주의의 자극 내지 물결을 어떻게 흡수할 것인지는 그들대로 큰 과제일 것이고 우리 역시 큰 관심거리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한국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체험한 바를 성찰하는 국면에서 북한에 대한 자세와 전략을 찾아 나가게 될 것이다.
우선 한국에서 60년대 이후 경제개발의 이름으로 공업화를 자본주의 생산방식대로 추진할 때 한국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라는 오랜 딱지 밑에서 노동해야 했다. 그 장시간 저임금의 강도 높은 노동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세계 최고의 산재율을 기록하면서도 노동자에 대하여 兵營과 같은 노동통제를 가해야 했고 따라서 군사정권의 존재는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파쇼체제에서 구축되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출혈적 테일러이즘’의 사례로 한국이 지목되었던 것이고 70년대 중반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된 중화학 공업화의 경우는 병영적 포디즘이라는 모형을 내세울 정도로 강압적인 노동통제가 전개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남북통일을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내세웠던 ‘유신체제’로 이어지고 또다시 80년대의 파쇼체제로 연장되었던 것이다. 나이가 든 웬만한 사람들은 이 무자비한 통제를 몸소 겪어 왔고, 그렇기 때문에 반독재, 반군사파쇼, 반독점 민주화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을 겪어 왔다. 노동운동이 단순한 임금인상 문제나 노동조합 결성을 위한 것이었어도 곧장 독재정권 타도의 정치적 함의를 갖는 것이 되어 버리곤 하였던 그간의 사정이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남한의 자본이 들어가서 곧 연출할 것이 바로 이 ‘장시간 저임금의 출혈적 테일러리즘’이라면, 남한의 노동자는 어떤 처지가 선택될 수 있을 것인가? 남북의 경제체제 사이에 북한의 노동자가 생계를 위한 강제적 분업구조, 즉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3D에 대량적으로 배치되어야만 한다면, 그것도 먹고 살기 위해 치루어야 할 값이라고 치부하고 말 것인가? 이러한 미묘한 문제는 우리가 체험하는 현안의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 나라 노동자는 60년대부터 외국으로 많이 송출되었다. 개인별 이민이나 밀입국을 제외하면 우선 서독에 간호원과 광부가 송출되었고, 70년대 중동에 건설붐이 일자 우리 나라 노동자는 사막의 열기에 시달리면서 고립된 장소에서 집단적 수용의 형태로 고용되어 노동을 하였으며, 그 뒤에는 우리 나라 노동자보다도 더 열악한 조건으로 동원된 여러 종류의 외국노동자들과 함께 일함으로써 그 노동의 상대적 위상조차 알게 되었다. 이런 경우 한국의 노동자는 외국 자본가의 통제에서 오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기인시켜 인종차별 또는 민족차별의 명목으로 싸우기도 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외국에서의 한국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인종-민족차별의 맥락에서 인식하는 방식을 다져 온 것이 사실이었다.
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자본이 본격적으로 외국으로 나가게 되고 중소기업조차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동남아를 주무대로 하여 해외로 이전해 갔다. 이러한 현상은 곧 국내에서 아주 저렴한 노동력을 마음껏 동원할 수 없게 되는 사태와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국의 저렴한 노동자가 차츰 국내로 유입해 들어 왔다. 지금 중국 - 그 중에서도 조선족이라는 일군의 노동자는 동포와 외국인의 이중적 이미지를 가지고 유입되고 있다. 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남한 노동자계급의 자세를 세워나가는 일에서 남북 노동자를 아울러 보게 되는 단초가 제공된다.
‘철의 노동자’라고 불리웠던 전노협도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을 때, 지배블럭으로부터 집중적 탄압을 받는 와중에서도 처음의 어정쩡한 태도에서 벗어나 곧 동일한 노동자계급으로 인식하고 차별이 없어야 됨을 천명하였다. 기회가 되는대로 노동자대회에 그들을 참여시켜 문제를 호소케 하였다. 그러나 전노협 정도의 조직역량으로는 동일한 노동자계급으로 끌어 들일 수 없었다. 종교단체나 노동운동단체에 맡겨 두는 수밖에 없었다. 97년 1월 노동자 대파업투쟁에서도 노동법 개혁의 핵심적 문제는 ILO권고안을 기초로 하는 것이었다. 민주노총 측에서 전진적으로 부각시키려고 한 것은 전교조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교사의 노동 3권 문제와 국가공무원의 노동 3권 문제였다. 그러나 오히려 지배블럭에 의해 국회에서 아예 도외시되어 ILO기준조차 멀리 떠밀렸으며, 새로 결성되는 노조에서는 전임자의 임금이 보장되지 않음으로써 그나마 새로 만들어진 노동관계법의 실질적 포괄에서 제외되어 노동자가 현실적으로 다수를 이루게 되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 게다가 노조가입 조건도 더 까다롭고 억제되게 되었다. 즉, 국내의 노동자도 노동법의 실질적 혜택을 쟁취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적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민주노총에서 외국인 노동 자문제를 다룰 특별한 기구를 설치한다 해도 하나의 노동자계급으로 포괄해 갈 조건은 산넘어 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조건에서도, 불과 얼마되지 않은 “옛날”에 우리 나라 노동자가 했듯이, 3D의 일을 맡아하고, 그것마저 저임금인데도 본국으로 가면 큰 돈이 되는 벌이를 한다는 ‘선심주기’ 마음이 사용자나 옆에서 함께 노동하는 한국노동자에게있어서, 멸시하고 차별하고 깔보고 하는 사태마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외국인노동자를 하나의 노동자계급으로 안아들이고 그들이 ‘외국인’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우리 나라 노동관계법의 보편적 대상이 되도록 하여야 하고, 그들이 외국인으로서가 아니라 노동자로서 노동인권의 개혁운동에 동참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ILO권고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사고에서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한국의 민주노동운동진영이 인종을 초월하면서 계급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까운 시금석이 바로 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4. 위에서 민주노동운동이 북한 식량돕기운동에서 노동운동에 실질적으로 ‘민족’을 끌어들이게 되었다고 지적하였지만, 계급차원을 떠나서 생각해 본다면 우리 나라 사람처럼 또한 민족의식에 강박감이 강한 민족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남북의 문제가 그 민족의식만으로 모두 풀어 낼 수 없다는데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 너무 크게 자본주의의 작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해서 몇가지 검토해 보자. 남한의 자본은 이제 꽤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물결을 탈 정도로 거대 국제자본과의 연계성이 긴밀해 졌다고 할 수 있다. 자본가들은 처음에 국가 내지 정권의 비호 아래 온갖 유착으로 성장했지만 80년대 후반에 오면 상당히 자율적으로 그들의 이익을 주장할 수 있을 정도의 ‘재벌’로 자리잡았다. 이들이 국내에서는 군사독재정권의 물질적, 반공이데올로기적 통제수단, 기계화와 자동화의 기술적 장치, 가부장과 권위주의의 전통적 통제방법을 조직안에서 유효하게 통합해서 노동자를 통제하는 방법을 능숙하게 구사해 온 경험이 누적되어 있다. 해외로 나가서는 아무리 미숙한 수준이었던 간에 어떠한 형태의 국가에도 나아가 그 쪽의 정치세력과 만나고, 어떤 형태의 자본과도 거래하고 합동해서 자본을 굴려보기도 하고, 어떤 종류의 노동력과도 만나 고용해서 통제관리도 해본 경험이 누적되고 있다. 말하자면 거대한 국제자본의 틈새에서 그들의 활동영역을 구축하고 ‘다국적기업’의 체질로 전환시켜 나가 그 콘소시움의 묘미를 향유할 정도로 진전하고 있다.
이러한 만만치 않은 재벌 자본가계급에 대해 남한의 노동자 역시 그들과 겨루면서 계급으로 성장해온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임금인상투쟁을 기초로 해서 노동시간과 고용조건의 개선을 위한 투쟁,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결성과 노동 3권의 확보를 위한 노동법개정운동, 이러한 운동에 국가보안법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서 국가보안법개폐운동을 전개하는 등, 이름하여 노동운동이 반독재 반파쇼 민주화운동으로, 반독점민주화운동으로 줄기차게 한 맥락을 이루면서 성장해 왔고 그러는 동안에 자본가계급 및 지배블럭의 총체적이고 치밀한 지배와 통제를 상당히 견제하고 억제하고 자기 주장을 정치적으로 펼칠 줄도 알게되었다. 그러한 능력을 확보, 유지하는 조건으로서 노조의 조직확대 및 민민운동세력과 연대하고 자기들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반영, 대변 또는 직접적 표현을 할 수 있는 정치적 세력의 정치적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기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보면 남북한에 걸처서 남한의 자본가 및 그들과 연계하고 있는 국제자본가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조직된 남한의 민주노동운동세력 밖에 없다.

5. 남한과 북한의 차이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회-국가의 통합형태가 크게 다를 것이다. 남한은 국가 내지 자본가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지배블럭과 대립구도가 뚜렷하고, 지배블럭과 민중과의 대립구도가 있고 그 대립구도가 한국사회의 발전을 어떻게 하든 가장 동태적으로 이끌어 온 원동력이며 보다 민주적인 사회체제로 향한 대장정의 추진력이었다. 한국의 민중은 지배블럭의 정권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독재’인 한 민중의 대중적 힘으로 추출한 경험을 쌓아왔다. 그 힘이 차츰 사회의 중층적 중하위수준으로 민주화를 추진시키는 과제는 당면한 것으로 제기되어 있다. 북한은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체제임을 표방하고 있고 맑스-레닌주의를 탈피하여 주체철학에 기초하여 수령, 주석, 당, 군, 인민 모두가 하나의 일체성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주장되고 있다. 남한의 경우처럼 국가와 시민 또는 민중, 자본가계급에 강력하게 대립하는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발생하는 균열이 북한에서는 없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의 운동은 그 운동의 대상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분화 내지 차별화시킴으로서 이윤을 창출하고 보전해 가는 보편적 성격이 있다. 노동력의 직업과 직종을 노동시장을 통해 계급으로 분화시키고 지역을 중앙과 주변으로, 남녀를 일-이차 시장영역으로 분화시키는 과정에서 축적의 영역을 확대심화하고 축적의 메카니즘이 작동하도록 한다. 북한체제가 바깥의 자본을 받아 드릴 경우 그 자본의 작동을 북한의 일체적 체제에서 어떻게 소화흡수하느냐 하는 것은 그 자체의 체제능력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 전개하고 있는 초급사회주의 발전 전략에서 국외의 자본을 받아드림으로서 발생하는 분화와 사회적 균열을 보면 북한에서 그러한 균열이 전혀 없을것이라고 추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현재 북한의 생산력수준과 그 경제체제적 체질로 보아 남북간에 경제교류가 증대하고 남한의 자본이 대규모로 투입된다면 북한은 남한보다 낮은 수준에서 남북 분업구조로 강제편입되는 상태를 맞이 할 것이고 자본을 받아드린 만큼 ‘출혈적 테일러이즘’을 연출하기에 이를 것이다. 이점이 남한 노동자계급이 주목해야 할 지점인 것이다. 자본은 민족 앞에서 환상적인 평등적 화합을 원래 조성해 주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태를 예상할 수 있는 한가지 사태라고 한다면, 남한의 노동자는 두가지 선택을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노동자도 자본가의 축적에 편승하여 북한노동자가 그 ‘출혈적’ 노동을 통해서 제공하는 경제적 잉여에 혜택을 나누어 받는 ‘노동귀족’으로 자리잡는 길이 있다. 이러한 선택은 이미 서구의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보여준 사례가 많으며, 따라서 자본주의국가가 제국주의적 전략을 구사할 때 함께 편승하고 국내에서는 노사협조의 대단결을 과시했었는데, 이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운동이 역사적으로 진보성을 상실해 간 바탕이기도 하였다. 다른 하나는 남한의 노동자계급이 남한에서의 계급성과 진보성을 견지해서 남북한 노동자의 계급적 위상을 하나로 묶어나가는 방향을 모색하는 방향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에서 바깥자본의 유입으로 발생할 수 있는 균열과 차별화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출혈’과 소외를 민중의 삶과 기본적 권익을 기준으로 삼아 인식하고 판단하여 대처하는 전략을 찾아가는 일이다. 민주노동운동세력은 이것을 남한 안에서 줄곧 싸우면서 실험해 오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이후만 생각해 보더라도 남북한의 사람들이 여러 경로와 형태로 만나고 교류하고 모임도 갖고 있고, 남한의 관리자와 전문적 기술자가 북한에 상당한 시간 체류해서 활동하는 경우가 있지만, 아직 남한의 노동자가 노동단체의 이름으로 교류하고 만나서 남북한 노동자의 권익향상을 위한 어떠한 조치를 구상해 본 일이 없다. 교류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위의 두가지 가상된 선택의 길은 이미 우리에게 제기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보적이고 민중적 기반이 강한 노동운동이 ‘민주노총’과 같은 전국적 조직을 만들어 하나의 언덕위에 올라와 보니 자본이 세계체제에서 움직이는 문제의 실상이 노동자와 민중의 눈에 선하게 들어오듯이, 남북한의 노동문제도 곧 눈 안에 들어 온 것이다. 남북한의 문제를 ‘민중의 시각’, ‘민중의 권익향상’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인식하고 판단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민주노동운동진영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여기서 장기적 변혁전망을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최소한도 ILO기준이라도 남북한 어느 때쯤 본격적으로 거론될 것이다. 북한노동자에 대한 장기적인 민중적 대처 전략을 구상하는데서 남한 안에서의 진보성도 확보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민주노동운동진영에서 유념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노/정/연

1997-06-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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