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간특별호: 한노정연 백서] 2007.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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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월드컵
 세상만사

현장에서 미래를  제122호
최세진

드디어 기나긴 월드컵이 끝났네요. 글을 막 쓰기 시작하고 있는 지금은 막 월드컵 결승전이 끝나고, 밖에는 우승컵을 차지한 이탈리아인들의 환호성이 토론토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6강 진출이 좌절된 후 좀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월드컵이 채 시작도 않은 두세 달 전부터 한국이 통째로 월드컵 광기에 휩싸여 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언론들에는 축구선수들의 발가락, 손가락 이야기, 어린 시절 일기장부터 시작해서, 외신에 실린 한국 축구에 평가를 번역한 기사들과 온갖 근거 없는 소문들로 지면을 메꾸기 시작하더니,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는 시청녀, 엘프녀 등 응원 나온 여성들의 사진들로 도배를 하더군요. 경기 응원을 위해 쉬는 학교까지 있다는 뉴스는 무슨 개그 프로그램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대부분 월드컵을 기회로 한몫 챙기려는 기업들과 언론사들에 의해 조장된 것들이겠지만, 오랫동안 숨 쉴 틈 없이 조여왔던 사회적 스트레스를 분출할 곳을 찾다가 월드컵을 만나 한판 신나는 잔치를 벌였던 것으로도 보입니다.
 
물론 이 광기에는 한국의 배타적 민족주의, 국가주의도 큰 몫을 했습니다. 한국팀의 경기가 있는 날 응원에 참가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한국인이 아니고, 만약 누군가 한국 땅에서 다른 나라 팀이라도 응원했다간 인민재판이라도 받을 것 같더군요. 500만 명이 서명하면 재경기를 할 수 있다던가, 재경기를 위해 ‘애국의 이름’으로 광화문에서 촛불 시위를 하자는 인터넷 홍보물이 돌아다니는 건 정말 경악스러웠습니다. 단지 세계를 상대로 축구라는 상품을 팔고 있을 뿐인 FIFA가 무슨 전 세계 인민의 대표기구라도 되나? 서명하고 시위한다고 재경기하게? 공공연하고 노골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죽이니마니 하는 욕설이 난무하고(여러 나라에서 그런 발언은 ‘증오 범죄’로 법적인 처벌을 받습니다), 스위스와의 경기를 마친 후 ‘북한이 스위스에 미사일을 발사 했으면 좋겠다’ 같은 황당한 만화가 인터넷에서 박수를 받으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은.. 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한편 캐나다에서 보는 월드컵은 한국에서 볼 때와 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캐나다 팀은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월드컵에 출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매일 캐나다가 경기에서 이기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처럼 그 정도의 난리는 아니었지만, 여기도 매일 응원전이 열렸습니다. 대부분 각 나라에서 온 1세대, 2세대 이민자들이 출신국가의 팀들을 응원하는 것인데, 국적을 따지고 들자면 이들 대부분은 분명 캐나다인들입니다. 매일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이긴 팀의 깃발을 꽂은 차량들이 빵빵 거리면서 온 거리를 누비고 다니기 때문에, 경기를 보지 않아도 오늘 어느 팀이 이겼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진> 위로부터 브라질, 코스타리카, 잉글랜드, 트리니다드 토바고, 그리고 제일 요란했던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한쪽에는 잉글랜드, 한쪽에는 이탈리아 깃발을 꽂고 다니던 승용차.
부모의 출신 국가가 다르거나, 현재 부부간 출신 국가가 다를 경우 이렇게 많이들 하고 다니더군요.
  
그렇다면 이런 모습에 대한 캐나다 정부나 일반 국민들의 태도는 어떨까요? 제가 밤늦게 퇴근할 때 자주 만나는 백인 운전사 아저씨가 있는데, 그 아저씨에게 "월드컵 열리고 나니까, 이제 오리지널 캐네디언들이 여기서 외국인들 같다"며 웃으며 이야기 했더니, "맞어.. 맞어. 특히 토론토에선 우리가 이제 소수야. 하하.." 그럽니다. 그래서 이런 각국 사람들의 응원 모습을 보는 느낌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재밌잖아. 토론토 아니면 어디서 이런 모습을 보겠어?" 그리고 캐나다 정부는 이민자들의 이런 응원을 권장했습니다. 심지어 토론토 시장은 이런 모습을 ‘토론토에서만 볼 수 있는 자랑스런 광경’이라고 내세우기까지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는 거 자체가 아직 불가능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것은 1970년대 이래 실시된 캐나다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라는 정책의 결과물입니다.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는 한국의 ‘단일 문화 정책’의 반대편에 서 있으며, 미국의 ‘도가니(Melting Pot) 정책’과도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남미와 미국, 캐나다의 문화 정책을 비교할 때, 남미는 보통 모든 걸 섞는 문화라고들 이야기 합니다. 남미는 새로운 문화가 수입되면 그걸 기존의 문화에 섞어 넣어버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래서 남미의 민속행사를 보면 ‘인디언, 유럽, 아프리카’ 문화가 섞여서 형식은 유럽식인데, 내용은 아프리카식과 인디언식이 혼합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음식 문화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새로운 향료나 음식문화가 들어오면 (예를 들어 중국음식) 그게 기존의 음식에도 영향을 미쳐서 새로운 음식문화로 바뀌어 갑니다. 
 
미국의 경우도 표면적으로는 남미처럼 문화를 하나로 섞는 ‘도가니’ 정책을 표방했지만, 남미와 달리 주류와 비주류가 뚜렷이 구별되고, 신규로 유입된 문화는 물에 섞이지 못한 기름처럼 둥둥 떠서 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주류는 기존의 백인 문화가 차지하고 있고,  새로 유입된 아시아, 남미 등의 문화가 저급 문화 취급을 받고 있는 거지요. 게다가 최근 들어 부시정권 이후 최근 우파 보수주의가 강화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더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한 예가 최근 미국내 이민자, 이주노동자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는 일명 ‘샐러드 그릇(Salad Ball)’ 혹은 ‘모자이크 문화’라고 불리는데, 이는 새로 유입된 문화를 기존의 문화와 섞는 남미형이나, 백인의 주류문화가 지배하는 미국문화와는 전혀 다른 발상의 정책입니다. ‘다문화주의’ 정책에서는 기존의 문화든, 새로운 유입된 문화든 각기 다 자기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공존합니다. 즉, 죽처럼 휘휘 섞거나, 기름과 물처럼 둥둥 떠 있는 게 아니고, 샐러드나 모자이크 그림처럼 각기 고유한 색과 맛을 유지하면서 함께 어울려서 하나의 커다란 그림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전체의 모습을 ‘캐나다 문화’라고 하는 것이죠. 즉, 차이나타운의 중국 문화도 캐나다 문화고, 리틀 이탈리아의 이탈리아 문화도 캐나다 문화고, 한인 타운의 한국 문화도 캐나다 문화가 되는 것입니다. 캐나다 정부의 ‘다문화주의 장관’은 인종주의, 민족주의 등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캐나다 내에 있는 각 민족의 문화를 보호하고 육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언어에 있어서도 헌법에 영어와 불어를 기본언어로 명시하고 있지만, 그 외 다른 언어에 대해서도 ‘보존’ 의무를 법에 명시하고, 행정 ‘편의’를 봐주도록 보장하고 있습니다. 즉, 공식적으로는 영어와 불어가 사용되지만, 다른 언어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지 않고, 모두 ‘캐나다의 언어’로 수용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런 ‘다문화정책’이 캐나다라는 나라가 출범할 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 캐나다는 ‘영어’를 기본으로 사용하는, 영국 문화의 국가였습니다. (참고로 캐나다는 초기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로 개척되었고, 현재도 캐나다 총독이 영국 여왕을 대리하는 영국의 식민지입니다.) 그러다 1960년대 불어를 포함하는 ‘두개 언어, 두개 문화’정책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1969년 그것이 법으로 확정되었습니다. 퀘벡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문화권을 포용하면서 내세운 정책이었지만, 그 ‘두문화’정책을 둘러싸고 논쟁이 심했습니다.

사진은 토론토 시내 재활용통에 쓰여진 광고입니다. ‘읽고 쓸 줄 아는 것은 우리의 권리’라고 한글로도 함께 씌어져 있습니다.

기존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영어 사용자들뿐만 아니라, 영어/불어가 아닌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캐나다인들이 문제제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논쟁이 계속되는 와중에, 두 문화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미국의 ‘도가니탕’ 문화 정책과는 다른 ‘모자이크 문화주의’를 제안했고, 이것이 당시 캐나다 정부에 의해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시 수상이었던 자유당의 삐에르 트뤼도(Pierre Trudeau)는 그들이 제안한 ‘다문화주의’를 캐나다의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1971년 캐나다의 공식적인 정책으로 확립했습니다. 그 뒤 이 정책은 1982년 캐나다 헌법의 ‘캐나다인의 권리와 자유에 관한 장’에 27조를 추가하고, 1988년 ‘다문화주의법’을 신설함으로서 제도적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캐나다 헌법 27조, 이 장은 캐나다의 다문화적인 유산의 보전과 증대와 관련해서도 일관되게 적용될 것이다."
 이렇게 자리잡은 다문화주의는 이제 한 세대를 거치면서 캐나다의 문화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기와 다른 타인에 대한 관용과 이해, 예절이 기본적인 캐나다인의 특성이 되었고, 그것이 미국인과 캐나다인을 구별하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다문화정책에 따라 보통 백인종이 아닌 유색인종들을 ‘Visible Minority(눈에 보이는 비주류)’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예산지원이나, 취업 등에 있어서 우선 지원하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시아와 남미로부터 이민자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서, 토론토 같은 경우에는 유색인종이 오히려 더 많기도 해서 과연 이들을 ‘비주류’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논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백인이 주류였으나, 최근에는 이제 누가 주류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거지요. 그래서 인구센서스를 보면 재미있게도, Visible Minority의 반대를 Majority(주류)라고 표기하지 않고, Not Visible Minority(눈에 보이는 비주류가 아닌 사람들)로 표기하더군요. 즉, ‘눈에 보이는 비주류’와 ‘비주류가 아닌 사람들’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캐나다에서는 모두가 소수이고, 모두가 주류가 된 것이죠.

사진은 토론토의 지하철 광고입니다. 다음과 같이 써 있습니다. “토론토와 광역 토론토는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커뮤니티 중 하나이다. 그래서 TTC(토론토 교통 위원회)는 자랑스럽게 이러한 풍부한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 지난 3년 여간, 고용된 1,200명의 기관사 중 42 퍼센트가 ‘Visible minority’로 부터 고용되었다. TTC는 매일 버스, 전철, 지하철로 1천 4백만명의 승객을 실어나르고 있다.”
 
그러다보니 저도 1년 가까이 캐나다에 지내면서 한번도 ‘외국인’ 취급을 당한 적이 없었고, 영어가 서툴어도 그것 때문에 타박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놓고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는 더더구나 없었구요. 캐나다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나 행동은 그것 자체가 범죄인데다, 지탄을 받는 행위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각오를 하기 전에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런 행동을 하기 힘듭니다. 정치인이든 일반인이든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그 자체로 추잡한 스캔들이 됩니다.
 
캐나다에서는 현재 ‘다문화주의’는 주로 영국계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보수당’ 조차 지지를 재차 표명할 정도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7일 수상을 암살하려는 테러가 적발된 이후, 보수주의자들이 캐나다의 민족적 다양성이 캐나다를 약하게 만들고, 테러에 취약한 국가로 만든다는 지적을 하자, 이 보수당의 하퍼 수상은 6월 19일, "그러한 지적이 사실 일 수 있으나, 훌륭하게 성장한 캐나다의 다양성은 캐나다의 위대한 힘이다"라고 말하며 "우리 정부는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고, 테러리즘이 캐나다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며, 이는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온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강화함으로서 바로 그렇게 할 것이다"라는 정견 발표를 했습니다.
 
물론, 아직 캐나다에서 ‘다문화주의 정책’이 추구하던 모든 이상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까지도 캐나다에서 인종차별 반대, 이주노동 관련 단체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런 ‘다문화주의’가 정치적 수사일 뿐이고, 실제로는 인종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예로 토론토, 뱅쿠버, 몬트리올 등 3대 대도시를 빼고 나면 아직도 대부분 백인 사회이며, 그곳에서는 인종차별이 그대로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또한 현재 각종 통계에서 보여주듯이 부자의 대부분은 백인이고, 가난한 자의 대부분은 유색인종입니다. 그러한 빈부격차는 유전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한 의회의 구성에 있어서도 캐나다의 인종적 다양성이 반영되지 못하고, 대부분 백인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는 유색인종이 백인보다 더 많다는 토론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시의원이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의 상황과 비교해보면, 캐나다의 다문화정책이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꾸준히 사회를 바꾸어가고 있으며,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지만,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과 활동가들의 꾸준한 투쟁으로 하나하나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사진은 한국과 스위스의 경기가 있던 날 한국깃발과 캐나다 깃발을 들고 함께 응원하던 모습입니다(저는 사진을 찍고 있는 중). 왼쪽과 오른쪽 끝은 ‘한국계 캐나다인’, 가운데 왼쪽은 ‘필리핀, 아일랜드계 캐나다인’, 그 옆은 ‘한국, 아일랜드, 독일계 캐나다인’ 복잡하지요. 후후..
 
현재 한국에는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40만이 넘고, 이미 알게 모르게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같이 살아가고 있으며 다양한 민족의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정부가 이들에 대한 포용 정책을 표방하자, 북한에서는 ‘순혈주의’를 내세우며 민족의 피를 더럽히는 반민족적 발상이라는 비난했더군요. 솔직히 그 발표를 보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히틀러의 역작이라고 이야기하는 <나의 투쟁>이었습니다.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보면 제일 첫 페이지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하나의 핏줄, 하나의 조국.’ 혹시 북한은 자신들이 히틀러가 찬양하던 ‘게르만족’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이 북한의 정책에 대한 글이 아니라서 더 깊은 언급은 안 하겠지만, ‘선군정치’도 그렇고 참.. 그런 주장들을 듣고 있자면, 옛날 나찌나 파시스트들의 주장과 뭐가 다른지 기회가 될 때 한번 비교해보고 싶을 지경입니다. 
 
뭐. 북한은 그렇다고 치고, 한국에서도 일본이나 미국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핏대를 세우고 비난하면서도 스스로의 인종차별인 제도와 관행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모습은 또다른 ‘민족주의적 편향’으로 보입니다. 즉, 일본과 미국을 비난할 목적으로 ‘인종차별’이라는 주제를 이용하고 있을 뿐, ‘인종차별’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겁니다. 기회만 있으면 공공연하게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이 넘쳐나고, 정부의 정책 또한 이를 극복할만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 ‘다문화주의’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 것입니다. 다만, 한국 땅에서 같이 살아가는 다른 이들을 생각하고, 조금 더 관용적이고, 조금 더 열려진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봤으면 합니다.  아니, 이는 굳이 한반도에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고 세계 속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없이는 만들어 갈 수 없습니다. 이주 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이들과 연대를 통해 그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2006-07-31 17: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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