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초점 1
공안탄압, 이제부터 시작이다
박 래 군 / 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1. 글머리에
스필버그라는 미국의 유명한 감독이 만든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있다. 2년전 처음 선보였던 이 공룡영화는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고, 그 여파를 몰아 다시 속편이 국내에서도
흥행가도에 올랐다고 한다. 쥬라기공원의 압권은 공룡이 사람을
잡아먹는 장면이다. 첫편에서는 화장실을 부수고 오들오들 떠는
사람을 공룡이 머리부터 잡아먹는 장면이 나오고, 이번에는 공룡
두 마리가 사람을 찢어먹는 장면이 나온다고 한다.
공룡시대의 약육강식은 공포다. ‘공포’ - 이것은 지금까지
인류사에서 지배세력의 통치전략이었다. 대다수 통치의 대상인
국민들을 국가기관의 공포스런 권위로 짓누르는 것, 그리하여
부당한 인권침해 당사자도, 주변의 사람들도 두려워서 감히
저항할 수 없도록 기를 꺾어 놓는 것, 이것이 공안탄압의
본질이다. 그래서, ‘약육강식의 공포를 조성’하는 것,
그리하여 몰이성의 집단폭력을 정당화하는 것, 이것이 이 나라
공안탄압의 본질이다. 말이 좋아 공안이지 공공의 안녕,
사회생활의 안전과는 거리가 먼 정부 또는 집권세력의 안전을
위해 불법적으로 조성되는 탄압국면이 바로 공안탄압 국면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들은 소위 말하는 문민정부에서도 기본적으로 변한
것이 없다. 93년도 한 해만 공안기관이나 공안 분위기가
위축되었지 94년부터는 노태우 정권으로 되돌려졌고, 이제는
6공을 넘어 5공식의 무자비한 비이성적인 공안 분위기가 이
나라에 연출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2. 97년 상반기 공안탄압의 양상
올해 상반기에는 정치적인 이유로 구속된 이들이 이미 7백명
선을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 민가협의 통계다. 민가협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1월 23명, 2월 31명, 3월 69명에 이르렀던
구속자가 4월에는 98명, 5월에는 95명이었고, 6월 들어와
323명이나 구속되는 전례없는 급증현상을 보였다. 특히 5월 30일
한총련 출범식을 전후로 진행되었던 한총련과 경찰의 공방
과정에서 6월 10일 현재 1,249명이 경찰에 연행되었으며, 법원은
이중 214명을 구속하였고 136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125명을
즉심처리하고, 746명을 훈방했다. 최근 검찰은 기소유예 없이
구속자는 전부 기소하는 이례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검찰 스스로로 올 5월 31일까지 학원시위관련 구속자가
19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구속자 100명보다 90%가 늘었다고
집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구속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인데, 한총련 전체를
이례적으로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7월말까지 시한을 두고,
탈퇴하지 않는 중앙간부 약 2천명 선을 구속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은 이미 5기 간부들을 비롯해 지역총련,
중앙집행위원회 간부 등 140명을 수배해 놓고 있는 실정이며,
남총련 학생들 중 강체열차 정지, 승차한 학생 720명에 대해서도
“전원 검거할 방침”이라고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올해의 공안탄압은 한총련을 주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총련만이 아니라 학생과 노동단체, 청년조직들로
끊이지 않고 조직사건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먼저, 학생조직사건을 보자. 지난 3월 20일 전주대생 4명이
‘단기학생동맹조직사건’으로 전북도경 대공분실과 기무사에
구속되었으며, 서울대 학생연대 회장 오준호 등 회원 13명이 4월
24일 홍제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어 구속되었다.
‘전국학생정치연맹’ 회원 12명은 96년 5월과 11월에 이어 세
번째로 4월 4일 구속되었다. 6월에 들어와서는 9일 서울대
애국청년선봉대 사건, 10일 부산대 총학생회장 9명 구속, 12일
고려대 졸업생과 학생 등 20명이 구국선봉대-청년 사건으로,
25일 전북대, 원광대 등 전북지역의 학생 33명이 자주혁신대오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이들 학생 조직사건들은 소위 ‘좌파그룹’으로 불려지던
조직들도 있으며, 한총련 NL계 비주류인 ‘사람사랑 계열’의
조직들도 포함되어 있다. 즉, 검찰과 경찰이 한총련에 대해서
비판적인 학생운동조직조차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로 몰아
부치고 있는 상황은 한총련만이 아니라 학생운동 자체를 불온시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군소그룹의 노동자․청년조직 사건들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청년연맹’ 조창묵 의장 8명이 4월에 구속되었고,
4월 23일 ‘노동정치연대’ 김혜련 전대표 등 회원 4명이
구속되었으며, 4월 8일 ‘노동자중심의 진보정당추진위원회’
부산연락소 회원 5명이 구속된 이어 노진추 울산지부 3명이 5월
29일 울산 대공분실로 연행 구속되었다. 노진추는 96년 10월에도
성두현 대표 등 회원 31명이 구속된 바 있다. 6월 20일에는
‘한국노동청년연대’ 회원 9명이 서울시경 옥인동 대공분실에
연행, 구속되었다. 이외에도 경남노협 김윤규 의장과 박성철
사무국장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군소
정치그룹에 대해서도 공안기관은 계속 국가보안법상의
이적단체로 몰아 구속시키고 있다.
그러나 공안탄압의 양상이 이런 조직사건들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4월에는 서울의 3개 사회과학서점 대표들이
이적표현물 배포 등의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컴퓨터 통신
공간에서는 5월 24일부터 6월 3일까지 천리안과 나우누리 ID가
무려 50여 개나 삭제되었다. 물론 삭제된 ID는 모두 진보단체의
것들이다. 전국연합은 경찰폭력사례, 한총련출범식 허용 촉구
성명 등이 문제가 되었으며, 민주노총 전해투, 인천연합, 한양대
총학생회 등이 경찰, 통일, 한총련 문제 등의 글을 게재한
이유로 통신 공간에서는 죽음에 해당하는 ID 삭제를 당한
것이다. 이것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미리 비판적인 사용자들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계산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연이어지는 이런 공안사건들은 철저히 계획된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며, 그 중심에 ‘좌익사범합동수사본부’가 있다.
3. ‘좌익사범합동수사본부’를 주목하라
최근의 이런 공안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대검
공안부(주선희 검사장)다. 대검은 지난 4월 24일, “전북한
노동당비서 황장엽씨가 ‘사회 각계에서 좌익세력이 암약하고
있다’고 밝힘에 따라 좌익사범합동수사본부를 발족, 학원가나
노동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로 수사 범위를 확대키로
했다.”(4월 25일자 경향신문)
대검은 지난해 8월 연세대 사태 당시 검찰, 경찰, 안기부,
교육부 등의 관계부처로 구성되었던 ‘한총련 좌익사범
합동수사본부’를 노동부, 문화체육부, 공보처 관계자까지
포함시켜 확대 개편한 것이다. 이 좌익사범합동수사본부는 당면
목표로 “학원가 좌익사범 검거 외에 고정간첩 색출,
재야-노동계 등 각 분야에 침투한 지하혁명조직 검거,
이적표현물 단속활동 업무”를 들었다.
이는 한 마디로 전 사회를 대상으로 좌익사범 색출 작업을
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며,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지난해 연세대 사태 이후 학생과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고 판단되는 한총련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했다.
한총련 학생들이 프락치로 의심되는 이석 씨와 이종권 씨
사망사건으로 몰리기 전부터 합동수사본부는 수차례 회의를 열어
한총련 지도부를 이미 친북세력으로 규정해 놓고 있었으며,
출범식 사건을 전후로 한총련을 고사시키겠다는 의지 아래
한총련 전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였고, 7월 이후 한총련과
유사한 단체도 결성할 수 없도록 ‘범죄단체해산법’이란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아울러 학교내 ‘야간
잔류허가제’란 것을 만들어 학교의 허가를 받지 않고는 밤에
학생들이 남아있지 못하도록 하고, 좌익사범에 대해서는
가석방과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마저 제출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 합동수사본부의 이런 방침은 그대로 정부 전체의
방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합동수사본부의 활동은 진보세력이라면 특히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정부는 올해 초 노동계의 총파업 당시에도 이미
노동계 지도부를 비롯한 좌익사범의 색출과 엄단을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노동계의 총파업, 한보사건 등으로 이런 기도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뒤이어 터진 황장엽씨 망명사건과 북한
귀순자 이한용 씨 피살 사건을 계기로 이런 방침을 국가안보적인
차원으로까지 격상시켰으며, 이에 따라 지난 2월에 열린
임시국회에서는 안기부법의 재개정을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말았다.
‘황장엽 리스트는 없다’는 정부 당국자의 계속되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황씨의 발언을 계기로 좌익합동수사본부를
발족한 것은 결국 황씨를 활용, 좌익사범들을 대대적으로
만들어내겠다는 포석으로 읽힐 수 있다. 더욱이 없는 것도
만들어서 활용할 대선 국면인데, 황씨와 같은 인물의 발언을
빙자한 비판세력 탄압이란 좋은 무기를 저들이 활용하지 않을
리는 없는 것이다.
4. 공안탄압의 목표는 진보세력의 거세
항간에는 지난해 말부터 전국적으로 약 40개 단체에 대한 내사가
들어갔다는 말이 나돌고 있었으며, 충격적인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이미 구로지역과 인천지역에서는 몇 개 단체가 밤마다 누군가에
의해 침탈 당했던 흔적을 발견하였고, 구로청년회의 경우에는
괴한들이 남기고 간 디스켓에서 구로지역 단체 현황과 활동상을
정리한 파일을 발견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집회 자체에 대해서
사사건건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허가하지 않으려는 작태를
보이고 있으며, 시위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진압을 일삼고 있다.
심지어는 과도한 폭력에 항의하는 시민들마저 폭행하는 사례가
빈번하고 있고, 직격탄을 발사 실명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이 공안탄압의 구체적인 표현 양태들이다.
한편으로는 한총련 식의 대규모 마녀사냥에 나서고,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입과 귀를 봉쇄하려는 기도다. 이를 통해 비판세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한총련처럼 고립시켜, 고사시켜 나가는
적극적인 방법을 구사하는 것이다. 이번의 공안탄압이
한총련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합동수사본부의 목표는 사회 전체 좌익의 척결이다.
합동수사본부가 7월말로 한총련 탈퇴 시기를 결정한 것은
8월부터 대대적인 마녀사냥에 돌입하겠다는 선전포고며, 8월
중에 통일운동세력까지 대체로 정리한 다음에 9월 정도에는
본격적인 간첩 사건으로 대선 국면에 돌입하기 전 사전 분위기를
정비하겠다는 포석을 깔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 공안탄압의 본질이 있다. 진보세력은 지난 시기
중요한 정치적 국면이나 선거시기마다 공안사건들이 어떻게
조작되었고,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선거국면에서 ‘반국가단체’ 또는 ‘이적단체’로 한번
낙인찍히면 헤어날 수 없다. 누가 그 상황에서 항의라도 제대로
할 것인가.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매번의 사건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상황을 조사하는
것이다. 올해의 사건도 예년의 국가보안법 사건처럼 이미 활동을
정리했던 사람들과 표현물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사건을
키웠다. 이런 점에 대해서 끊임없이 폭로하고 이를 통해
합동수사본부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또한 무리한 수사와
기계적인 구속이 이어질 것이며, 가혹행위 등이 반드시 수반될
것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포착하여 폭로해 내야 한다. 모든
불법행위는 철저하게 알리고, 이를 법정투쟁으로 끌고 가야
한다. 그리고 언론이 앞질러 사건에 대해 왜곡보도를 일삼는
것도 묵인해서는 안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고, 검찰에
고소, 고발해 내가는 활동을 계기가 있을 때마다 계속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 사건은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인권침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인신구속제도, 압수수색
등에 대해서 미리 인지할 필요가 있다. 사사로운 것이라고
생각될 지 모르지만 사실 활동가들 중에 영장실질심사제도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며, 압수수색시
확인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몇이나
되겠는가.
다음으로는 무조건적인 연대다. 최근의 조직사건을 보면 며칠
동안의 항의 농성도 조직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도
무기력하게 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피해 당사자만 안타까울
뿐이며, 다른 조직의 관계자들은 아예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식이라면 진보세력은 늘
합동수사본부의 밥이 될 뿐이다. 무조건적인 연대농성,
연대항의집회를 조직하는 것이 더 이상의 피해를 줄이는 첩경일
것이다(현재의 한총련 문제는 이와는 다른 성격 - 프락치 폭력
치사, 축소․은폐조작 등 - 을 지녔기 때문에 쉽게 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어쨌건 올해 하반기는 강력한 공안탄압이 예측되어지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기본권인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 시위,
결사의 자유가 매우 위축될 전망이다. 그러나 공안탄압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본적인 인권의 보장을 외치고, 이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보다 끈질기고 철저하게 실천되지 않는다면 중요
시기마다 펼쳐지는 공안탄압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공안탄압의 공포로부터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때다. 한/노/정/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