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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꼴)굿떼 이야기를 아는가

현장에서 미래를  제23호
백기완

권두언




골(꼴)굿떼 이야기를 아는가




백 기 완 / 자문위원․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오늘은 우리 노동자․독자들에게 골굿떼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골굿떼란 무엇일까.
아무리 일을 해도 해도 사람답게 살 수가 없어 울뚝 울뚝 꼴리는 무지랭이들이 차라리 이럴 바엔 죽창이라도 들고 산으로 들어가 고기에 이밥을 실컷 먹을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이룩하리라 해서 일어난 무리를 골굿떼라 했다. 꼴리는 놈들, 즉 골난 놈들이 모여서 굿하는 떼거리의 준말이다.

이야기를 하자면 이런 것이다.
골굿떼들이 모여 있는 깊은 산골에 하루는 그 썽이 옴두꺼비처럼 돋은 놈이 하나 둘 찾아 왔기로 우두머리가 묻는 것이었다.

“자네는 어데가 꼴려서 왔는고?.”
“니에, 저는 사두이가 꼴려서 왔소이다.”
“사두이라니? 사두이라면 사람의 등뼈가 아닌가?”

“니에, 이 등뼈가 바사지게 일을 해도 해도 밤낮 허기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허리가 들쑤셔도 따슨 아랫목에서 푹 늘어지게 지질 엄두도 못 내니 사두이인들 가만 있을 수가 있습니까.”
“ ?, 그러면 자네는?”
“니에, 저는 배알이 꼴려서 왔소이다.”
“배알이 꼴리다니? 그것은 창자라는 말의 참소리가 아닌가? 사돈이 논밭이라도 샀단 말인가.”
“아니올시다. 똑같은 머슴이지만 옥녀와 눈이 맞아 살기로 했었는데 그런데, 그만 주인 놈이 울며 부는 그 옥녀를 몸종으로 사리고 말았으니 도대체가 배알이 꼴려서 살수가 있어야지요?”
“옳거니 그런데 자네는?”
“니에, 저는 대갈빼기가 꼴려서 왔소이다.”
“대갈빼기라면 머리라는 쌍말이지? 그런데 꼴리면 꼴렸지 어째 머리가 꼴리던가.”
“니에, 저는 본디 서당의 훈장인데 벼슬아치들이 하도 속임수와 거짓말 뿐이어서 나라님에게 그 잘못을 고쳐 달라고 여러 번 상소를 올렸건만 대답 대신 감옥에만 처넣기로 머리가 꼴려 살수 가 있어야지요. 그래 찾아 왔소이다.”
그런다.

이리하여 골굿떼 무리는 점점 커졌는데 어느 해 봄날 마침내 굿판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사두이가 꼴린다고 펄펄 뛰던 놈이 언덕뻬미에서 밭을 가는 누렁소 울음소리를 듣다 말고 갑자기 키득키득 울더니 슬슬 마을로 내려가며 웅얼댄다. “그렇다. 주인 놈한테 다시 사두이가 빠지는 한이 있어도 농사꾼은 역시 농사를 지어야지, 이 산골에선 더 이상 못살겠다” 며 마을로 내려가 버린데 이어서 난리가 나 버렸다.
배알이 꼴려서 죽겠다고 길길이 뛰던 그 놈도 마을로 내려갔기 때문이다. 어째서 내려갔던가.

검정치마에 노랑 저고리 파아란 풀빛 고름을 휘날리며 냉이 캐는 처녀를 보더니 그만 옥녀가 생각났던지 매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먼발치의 옥녀라도 한 번 보고 죽겠노라는 것이 그 이유다.
난리가 난건 이 뿐이 아니었다. 대갈빼기가 그리 지끈지끈 꼴린다던 놈도 나라님으로부터 유무(회답)를 받았노라며 내려간다. 자네가 원하는 바, 저울 눈금을 바로 하자, 뇌물 막물 숫청 풍속 따위를 없애자는 것쯤은 곧 고치겠노라는 소식이 있었단다.
그러니 누가 남았을까. 이놈 저놈 다 내려가 버리고. 그러나 이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나자 골굿떼는 진짜로 난리가 나 버렸다.
가을걷이를 뿌듯하게 끝낸데도 빈주먹만 남아 치가 떨리는 놈들, 장가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온몸이 꼴리는 놈들이 모여드는데 어떻게 모여드느냐.
쇠가 없는 것들은 놋요강을 들고 오고, 징이 없는 것들은 놋양풍을 들고 오고, 장고가 없는 것은 지갯장단이라도 들고 오고, 또 북이 없는 것들은 가슴을 치며 모여들어 마침내 꼴리는 놈들의 흰옷이 산과 들을 온통 하얀 쌀더미처럼 수놓고, 그네들의 한이 맺힌 피눈물은 아뿔사 메마른 산과 들을 흥건히 적시는 강물이 되고, 일제히 터져 나오는 감격의 함성은 마침내 천둥번개 벼락이 되어 높고 낮은 데를 발칵 뒤집고, 쿠리고 곪아 쑤신 데를 훤히 까발겨 그야말로 낙원정토,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의 꿈을 빚어내더라는 골굿떼 이야기.
내가 이 이야기를 진작 활자화해 내기는 지난 81년, 전두환이의 헌 칼에 여기저기서 꼬리를 사리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보다 못해 민주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 경종과 용기를 북돋아 주고자 “산 자여 따르라” 는 노랫말과 함께 들고 나왔던 골굿떼 이야기다. 그것을 이제사 다시 쳐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교훈을 얻자는 것이다.
첫째, 이 이야기를 보면 까마득한 옛날에도 무지랭이들이란 단 한발자욱을 옮기려고 할 적에도 그 목표가 분명했다는 것, 즉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고기에 이밥을 실컷 먹을 수 있는 세상의 건설이라는 염원이 분명했다.

둘째, 무지랭이들도 비록 모이고 흩어지고 좌절하고 또 때로는 분열하였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뼈대를 세워 가는 과정이었지 뼈대마저 허물어 버리는 자기 상실이 아니라는 철학의 예술적 제시다.
셋째, 그 무지랭이들의 철학의 예술적 제시에는 꿈의 실현이라는 감격이 있었다는 것, 물론 그 감격은 스스로의 힘에 대한 흔들릴 수 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솟구치는 자가 발전형 실천의지다.


지난 10년 간의 노동자 대투쟁

이러한 옛 이야기를 눈길로 하여 오늘의 무지랭이 노동자들의 지난 10년 간의 발자취를 되돌아 볼 것이면 어떤 것이 걸러질까.
우선, 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되돌아 보자. 그때의 노동자 대투쟁을 들어 너도나도 위대한 노동자의 승리라고 이르는 데는 나도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나 한편 나는 그 진부한 평가에 채찍을 드리대고 싶다. 물론 그때의 노동자 대투쟁은 무엇보다도 노동자 자신이 군사독재 청산의 주역, 즉 사회변혁의 주체적 세력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자기 획득의 위대한 성과를 기록하였다고 여겨진다. 요컨대 그 당시 재야 민주화세력들은 거의가 6월 항쟁에서 쟁취한 이른바 대통령 직선제에 머물렀지만 그때 노동자들은 ‘민주화의 실체란 노동해방’ 이라는 명제를 들고 7․8․9월까지 싸움을 발전시킨 것이야말로 노동자가 사회변혁의 참된 세력으로 비로소 진출한 본보기라고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그때 노동자 투쟁은 비로소 전국적 규모로 연대 확산된 점에서 지난 30년대 이래로 고조되어 온 노동운동의 눈부신 분수령을 일군 사실을 누가 감히 부정하랴.
세 번째로 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각개 산업현장에서 노동자 개개인이 오랜 억압의 질곡속에 주저앉았던 의식을 일깨우게 되

고 나아가 민주노조 건설에 대한 기대 속에 노동자의 현실적 이해를 통일시켜 가게 된 것이다. 그 증거로 전노협이 결성된 것이 그 한 예가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 위대한 87년 대투쟁도 자기 획득에 반비례해 자기 상실이 너무나 치명적이었지 않나 여겨진다.
가령 그 당시 노동자의 궐기 속에서 참된 민주화의 실체가 제시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도이념의 문제와 함께 노동운동의 단계론적 설정이라는 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사실은 주관적 현실 의식의 관념성과도 무관하지 않는 것이지만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노동자들이 들고 나온 명제가 노동자 자신의 희망도 못되고 나아가서는 전망을 박탈당한 대중의 희망으로 여물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일개 굿을 사는 사람들도 굿의 주제가 사람들의 보편적 의욕을 집약적으로 제시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되거늘 하물며 노동자 대투쟁에 있어서 노동자 스스로가 변혁의 알기(주체)가 못되고 변혁을 담당해야 할 실체들이 뭇 대중의 희망으로 아니 대중의 감격으로 등장하지 못할 때 어떻게 될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운동의 발전을 스스로 제약하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노동운동을 오늘의 재생산구조 속에 매몰, 사실상 노동운동의 한 단면인 생활향상운동으로 자기 해체시켜 온 것은 아니었던가. 지난 87년 노동자대투쟁을 더듬을 적마다 내 입속에서 걸기작되는 모래알이다.


97년 초의 노동자 대투쟁

며칠 전 연세대학 신문 ꡔ연세춘추ꡕ에서 6월 항쟁 기념시를 써 달라고 해서 이렇게 적어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 우리들의 유월은
움켜쥘수록 다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껍줄만 쥐었던 것은 아니던가

그날 유월의 함성은
분명 이기고도 참된 승리는 못 거머쥔
빈 수레는 아니었던가
(중략)
- ‘구름마저 목이 메인 유월’ -

이렇게 적어 보냈었거니와 이제 다시 날더러 올해 초 노동자 대투쟁에 관하여 기념시를 하나 써 보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 맨 첫구절이, “우리는 분명 / 이기고도 참된 승리는 못 거머쥔 / 빈 수레는 아니었던가” 이렇게 내뱉지 않고서는 못 베기리라고 실토한다.
어째 그러느냐. 이번 우리들의 싸움에서 분명 우리들은 이겼다. 그러나 참된 승리는 못 거머쥔 빈 수레는 아니었던가 이거다.
가령 날치기 노동법을 규탄한 노동자 궐기의 불씨가 마침내 이 땅의 각계 각층 양심들을 하나같이 불러 일으켰는데도 끝내는 노동법이 여야의 흥정거리로 귀결되었고 그 과정에서 우리 노동자들이 어쩌는 데는 너무나 한계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둘째, 이번 노동법 투쟁으로 우리 노동자들이야말로 이 땅의 부정부패, 사회 경제적 억압 모순을 청산할 해결자임이 분명해졌는데 그런데 어째서 이 땅의 노동운동은 부정부패 해결의 실체, 변혁의 실체임을 스스로 제시하지도 못하고 더더구나 자신들에게 지워진 역사적 책무를 그대로 두고만 있는 것일까.
셋째, 이번 노동운동은 세계의 양심들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이 땅의 노동운동은 오늘의 세계를 짓누르고 있는 세계사 전진에 대한 주관적 패배주의와 그 극단적 표현인 허무주의를 극복할 계기로 발전시켜야 할 것인데 지금은 대체 어떤 상황인가 이 말이다.
부정부패의 진정한 해결이란 무엇인지 세상의 전진, 사람의 희망이란 무엇인지 그것은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것을 제시하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역사전진운동은 아니지 않는가 여겨져.


나는 이 잡지의 성격에 대한 자질구레한 신경은 상관도 아니하고 머리글을 빌려 한마디 띄운다.
노동자․독자들이여, 나에게 달려올 생각은 없는가.
와서 우리네 옛날 겟쩍, 꼬꼬지 옛날 겟쩍, 한거리 벅쩍 세월에 있었던 위대한 우리네 정서, 골굿떼 이야기를 함께 나눌 생각은 없는가. 한/노/정/연

1997-07-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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